수요말씀2017.09.20 (수)
170920 수요말씀(깨달을 때 깨달아라)
- 선포일
- 2017.09.20 (수)
- 성경 본문
- 잠언 1장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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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20-수요말씀(깨달을_때_깨달아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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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0일 수요말씀>
할 때 해라. 깨달을 때 깨달아라. 생각났을 때 해라
본 문 잠언 1장 3-6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에는 ‘깨달을 때 깨달아라.’라는 주제로
깨달을 때 깨달아라. 그때가 기회다.
생각났을 때 해라. 그 순간이 기회다. - 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 성령님께서 이 말씀을 주셨을 때
제일 먼저 <잠언>으로 말씀을 받고,
이 잠언에서 <노래 가사>를 빼서 ‘곡’을 쓰고,
그다음에 <설교>를 썼습니다.
◎ 이 말씀을 쓰는 시간에 육적으로 제재받는 것이 많아서
원래는 그냥 <잠언>으로만 말씀을 내보내려다가,
성령님이 “할 때 하자. <설교>로도 쓰자.” 하셔서
<주일설교>로도 말씀을 써서 내보냈습니다.
성령님이 하자고 말씀하시고 도와주셔서
할 때 미루지 않고 다 했습니다.
◎ 오늘은 성령님께 이 말씀을 받을 때 제일 먼저 받았던
<잠언>을 전해 주겠습니다.
<말씀 시작>
하나님과 성령님은 사랑하는 자가 원하는 것인데도
상황을 틀어서 안 되게 하실 때가 있다.
더 잘되게 하기 위해서다.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해서다.
기도하면, 성령이 감동을 주시고 깨닫게 하신다.
(성령) 깨달을 때 깨달아라.
깨달을 때, 그때가 ‘그 센터의 것을 깨닫는 기회’다.
시장에 갔을 때 살 것을 사듯이,
깨달을 때도, 보고 들을 때 그때 그 센터에 집중해서 깨달아야 된다.
어떤 일이든지 할 때 집중하고 몰두해서 해야지,
거기서 나오면 다른 것을 보고 듣기에 거기 것은 잊어버린다.
<깨닫는 때>는 마치 ‘음식 만드는 시간’과 같다.
음식을 만들 때 다 만들어야 되듯이,
깨달을 때 깨달아야 그 센터의 것을 깊이 확실히 깨닫게 된다.
글을 쓸 때도 ‘그 글씨’를 쓸 때 제대로 써야지,
그때 안 하면 ‘다른 글씨’를 써야 되니 안 된다.
깨달을 때도 그때 깨닫고 해야 된다.
생명을 관리할 때도 할 때 그때 해야 된다.
전도도 손댔을 때 해야 된다.
그때가 지나면, 다른 것을 보고 들으니 안 된다.
<할 때 하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다.
목적지까지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하다가 어렵다고 앉아 있고,
혹은 포기하려 하고, 혹은 포기하고 가기도 한다.
<그 일의 마지막 때>가 힘든 것이다.
쉬면서라도 해야 된다. 목적한 데까지다! 목적지까지다!
일은 ‘그 일에 손을 대서 할 때’ 해야 된다.
그 일을 해야 될 때, 성령이 생각나게 하신다.
할 때, 끝까지 해라.
(그림)
땅벌 집을 없애려고 한 번 손대면, 끝까지 손대서 싹 없애야 된다.
할 때 해야 일이 잘된다. 알기 때문이다.
(그림)
좋은 과일을 따는데, 꼭지를 비틀다가 마느냐.
할 때 끝까지 해서 거둬야 되지 않겠느냐.
이와 같이 한 번 손댔으면, 그때 끝까지 해야 잘된다.
입에 들어간 음식을 깨물 때 아예 깨물고 씹듯이
<일>도 할 때 하고,
<깨닫는 일>도 그때 깨달을 때 깨달아야 된다.
<절실히 깨닫는 자>만 하게 된다.
죽은 자를 장사할 때 깨끗이 장사하듯이
만사의 모든 일들도 할 때 해라.
할 일을 할 때, 성령도 주도 같이 하신다.
그러니 할 때 해야 된다.
할 때 깨끗이 하고 끝내기다. 그래야 시간이 적게 든다.
집중해서 할 때, 시간이 절약된다.
성령이 생각나게 해 주셨으니, 그때 하면 잘된다.
고로 생각났을 때 해라. 그때가 순간의 기회다.
3.16에 할 일은 그날 해야지, 미루면 되느냐.
이와 같이 <그 날에 할 일>은 ‘그 날’ 하고,
<그 시간에 할 일>은 ‘그 시간’에 해야 된다.
<잠시 쉬었다가>
1분 늦게 가면 ‘차’도 떠나고 ‘사람’도 떠나듯이,
할 때 안 하고 제시간을 놓치면 ‘성령’도 떠나신다.
그리고 멀리서 대화로만 통한다.
<제시간>에는 성령이 옆에서 직접 말씀해 주시고,
<제시간이 지난 때>에는 성령이 멀리서 전화하듯 하신다.
<절대자>는 절대 100% 행하면서 대해야 된다.
사람은 하려면 100% 할 수 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씻는 것도, 잠자는 것도
그렇게 신경 안 써도 100% 해진다.
그런데 <네 때>가 왔는데도
전능자 삼위일체 앞에서 못 한다고 하느냐.
할 마음이 없어서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하지 말아라.
삼위일체도 억지로 받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
그 대신 다른 사람이 하고서 후에 영광 받는 것을 보고,
시기 질투도 하지 말아라.
만일 그때 ‘행하여 영광 받는 자’를 보고서 시기 질투를 하면,
그로 인해 또 죗값을 받고 고통스럽고 괴롭다.
그래서 <너의 때>가 오면 그때 행하여 얻고,
영광 받고, 누리고, 삼위와 주와 기뻐하며 살자는 것이다.
고로 할 때 하자고, 미리 <생명의 말씀>을 해 준다.
<할 때 한 것들>은 모두 섭리사와 자연성전에 있다.
할 때 했기에 성전들도 사고, 숨은 보화들도 가지고 있지 않느냐.
주도 힘들지만, 할 때 해서 얻은 것이다.
<할 때 못 한 자>는 청춘이 지나고 인생이 늙어서
때가 지나 이제는 끝났다.
<해 놓은 것>은 없고 <얻은 것>도 없이 나이만 먹고 늙어 가니,
하나님도 성령님도 보고 민망하다 하신다.
할 때가 오면, 환경이 ‘감옥’이든 ‘궁궐’이든 해야 된다.
할 때 해 놓으면, 늘 그것을 보고 기뻐하며 잔치한다.
선생은 한창 클 때
대둔산에서 기도, 집터골에서 기도, 월명동 주변에서 기도를 하면서
성자께 배우고 깨닫고 행했다.
고로 ‘그 열매’가 지금도 해마다 열린다.
과거같이 다시 거기서 기도 생활을 하겠느냐.
행한 자가 말한다.
<할 때>는 ‘기회’라서
시간도 되고, 의욕도 불타오르고, 희망도 있고,
삼위도 연관이 되어 같이 해 주신다.
<이 새벽> 성령께서 계시를 주실 때 말씀을 쓰지,
<낮>에는 영감도 안 오고 <성령님>도 말씀을 주시지 않는다.
할 때 하니, 맑은 생각으로 척척 말씀이 써진다.
한번은 성령께 말했다.
“오늘은 글도 잘 안 써지고, 노래 가사도 잘 안 써져요.”
그랬더니 성령님은
“되는 대로라도 해. 안 하는 것보다 낫다.
일단 그렇게라도 해 놓으면,
낮에 내가 틈내서 더 보충해 줄게.” 하셨다.
100% 못 하면 50%, 70%, 80%라도 해라.
잘하려고만 하다가는 못 한다.
<할 때>가 ‘기회’다. <때>에 해야 된다.
고로 <때>가 되면, 잘 못 해도 해라.
하다 보면, 후에는 잘해진다.
섭리사 행사 때, 한 가족이 월명동 주차장에 모두 도착했다 하자.
엄마는 그늘이나 앞자리를 잡으려고 먼저 가고,
어린아이들은 엄마를 뒤따라갔다.
어려서 다리가 짧아서 뒤처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서 결국 자리에 앉았다.
이와 같이 <먼저 간 자>보다 뒤에 가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면,
결국 <목적지>까지 가게 된다.
이와 같이 뒤에 처져서 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라!
끝까지 가면 결국 목적지를 만나고, 같이 좋은 데서 즐긴다.
<앞의 것>을 하면, 그로 인해 <뒤의 것>이 생각난다.
고로 할 때 해라. 멈추면 <뒤의 것>도 따라오지 않는다.
할 때 하면, 마치 톱니바퀴같이
<앞의 것>이 돌아가면서 <뒤의 것>도 돌아가듯 하게 된다.
할 때 하면, 마치 계단같이
<첫 계단>을 디디면 <다음 계단>이 보여
쉽게 오르듯 하게 된다.
할 때 안 하면 일이 밀려서,
결국 ‘산’이 가로막듯 ‘밀린 일들’이 자기를 가로막는다.
그 순간의 일, 그 순간의 시간과 능력과 지혜다.
하다 보면, 하던 밥이 다 되듯이 하던 일이 된다.
자연성전 야심작을 쌓을 때,
다섯 번 무너졌어도 할 때 끝까지 했다.
결국 더 깊이 깨닫고 ‘더 좋은 돌’을 사다가 쌓아
여섯 번째에 완공했다.
그때 못 쌓았으면,
‘선생 손’으로는 지금껏 20년 동안 못 했을 것이다.
이래서 어렵고 힘들어도 할 때 하고 깨달을 때 깨달으라고,
성령께서 오늘 새벽에 말씀하시며 기록하게 하신다.
<잠시 쉬었다가>
할 때는 - <같이 할 대상>이 있고,
때가 지나면 - <같이 할 대상>이 사라진다.
◎ <대상>에 대한 말씀이 나왔으니,
이에 해당되는 잠언을 몇 가지 더 전해 주고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인 사랑의 뜻을 이루는 시대>다.
이때 <주체이신 삼위일체>가 행하시니,
<대상인 신부들>이 같이 해야 된다.
<황금성 천국, 신부의 사랑의 세계>다.
<황금성 천국의 신부의 사랑>은 ‘대상적 사랑’이다.
<상징적인 하늘 신부>가 아니다.
마치 남녀가 짝이 되어 부부로서 살듯이,
<삼위일체>는 ‘사랑의 중심’이 되시고,
<하늘 신부로 변화된 자들>은 ‘그 사랑의 대상’이 되어 산다.
<삼위의 사랑 대상체로서의 사랑>이다.
<실제 신부가 되어 사는 삶>이다.
<육신의 육적 사랑>을
영적 제도에 의해 하는 <정신적 사랑>이다.
이 사랑은 ‘육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영의 살>은 ‘육의 살’과 다르다.
<아기같이 부드러운 피부>이고,
화장하여 빛나는 피부가 아니라 <의와 사랑으로 빛나는 피부>다.
<영>은 ‘의와 사랑’으로 빛이 나고,
‘의와 사랑’으로 피부도 좋아지고,
‘의와 사랑’으로 아름다워지고 권세도 얻는다.
누구든지 <혼>으로 ‘꿈 영계’를 보아라.
점점 단계를 높여서 보아라.
<영> 대신 <혼>이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보다 영적인 것들>은 ‘계시자가 본 것’을 보아라.
그것을 100% 믿고 ‘혼의 것’을 보면, 자기도 알게 된다.
<육적인 것>만 배우면 ‘육적’으로 흐른다.
<영적인 것>을 배우고 깨달아라. 그래야 ‘영적인 자’가 된다.
깨닫는 대로 ‘차원’이 달라진다. 고로 알게 된다.
하나님은 어떤 일이든지, 하면 절대적으로 하신다.
<신부권>이면
애인이 애인을 대하듯 절대 ‘실제 신부’로 대해 주시고,
<자녀권>이면
부모가 자녀를 대하듯 절대 ‘실제 자녀’로 대해 주신다.
<천국>에서는 ‘생각이 실체’다. 생각한 대로 된다.
<천국에서의 영적, 정신적 사랑>은
세상 남녀의 육적 사랑 행위 식의 사랑이 아니다.
<생각>으로 하는데,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랑한다.
이는 ‘육의 사랑’과는 비교가 안 된다.
<생각>이 ‘실체’와 같다.
<천국>은 ‘관념 제도의 세계’가 아니고 ‘실체 세계’다.
육의 세계에서 <그림의 떡>은 ‘생각’으로도 못 먹는다.
그러나 <영의 세계>에서는 ‘생각’이 ‘실체’가 되어,
‘떡’ 하고 생각하면 ‘떡’이 실체가 되어 있다.
<천국>은 ‘관념적 존재 세계’가 아니라 ‘실체 세계’라서
<생각한 것>이 ‘실체’가 되어 있다.
<천국>에서는 <삼위일체>를 ‘사랑의 대상’으로 사랑해야 된다.
<천국>은 ‘천국에 간 영들끼리 사랑을 이루는 세계’가 아니다.
‘절대자 삼위일체의 사랑의 대상 세계’다.
<천국에 간 영들끼리>는 ‘횡적 사랑’이다.
<삼위일체 앞>에만 ‘종적 사랑’이다.
<말씀 마무리>
◎ 조금 더 말씀하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사람은 ‘신경’으로 느끼고 ‘생각’으로 느낀다.
<신경>은 ‘육에 속한 것’이고, <생각>은 ‘영에 속한 것’이다.
<신경>도 자극해야 느끼고, <생각>도 자극해야 생각한다.
<육>은 ‘신경 자극’으로 느끼려 한다.
그래야 온몸이 느끼기 때문이다.
<생각>으로 느끼면, ‘무한’하게 느끼고 ‘영’까지 느낀다.
매일 <생각>을 발전시키고 개발해라.
<신경>도 굳지 않도록 운동하고 움직여서 예리하게 만들어야 된다.
<몰라서 못 했다고 하는 것>도 죄다.
노력하고 알려고 했으면 알았다.
자기가 ‘알려고 하는 책임’을 안 해서, 몰라서 못 한 것이다.
하나님이 용서하시면, 거기서 그냥 끝내지 말아라.
<그동안 못 한 것을 할 기회를 주는 것>이니, 용서받고 꼭 해야 된다.
생각났을 때 해라. 그때가 기회다.
그때 성령께서 감동으로 깨달아 생각나게 하신 것이다.
고로 성령도 그때 함께하신다. 고로 생각났을 때 해라.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