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7.09.24 (일)
170924 주일말씀(겉은 아름다우나 속은 다르다. 행실로 안다) 영상6번 추가
- 선포일
- 2017.09.24 (일)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7장 14-27
첨부 파일
- PDF
170924-주일말씀(겉은_아름다우나_속은_다르다._행실로_안다)-영상6번_추가.pdf
171.1 KB
<2017년 9월 24일 주일말씀>
겉은 아름다우나 속은 다르다. 행실로 안다
본 문 마태복음 7장 14-27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하는데, 성령께서 지금 섭리사의 때를 두고 말씀하시기를
“이제 모두 <마음>도 <행실>도
진정 깨끗하게 만들고 준비해야 된다.” 하셨습니다.
◎ 그리고 오늘 말씀을 주셨는데, 그 말씀이 바로
“<겉>은 아름다우나, <속>은 다르다. <행실>로 안다.’입니다.
◎ 이 말씀은 <설교용>으로 오늘 전해 주고,
나머지 못다 한 말씀은 <기록용>으로 기록하고
<책>을 엮어서 나중에 보게 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 먼저, 이 말씀을 어떻게 받게 됐는지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이 말씀을 쓰는 날 새벽이었습니다.
1시 전에 잠에서 깨는 순간, 한 장면이 보였습니다.
건물 위쪽에서 누가 ‘참외 같은 과일’을 버렸습니다.
가 보니, 과일이 아직 ‘싱싱’했습니다.
그래서 ‘싱싱한데 왜 버리지?’ 하고, 쪼개 봤습니다.
쪼개 보니, <속>은 곯아 있었습니다.
확인해 보니 ‘이래서 버렸구나!’하고 알았습니다.
잠에서 깨서 씻고,
‘오늘 성령님의 말씀이 무엇일까?’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한 현상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있는데, 다 ‘예쁘고 멋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겉>은 예쁘고 멋있는데,
누가 <속>이 좋은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겉>은 싱싱한데 <속>은 썩은 과일’이 생각났고,
그때 ‘성령님의 말씀’이 왔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정말 깊은 말씀이니, 처음부터 잘 들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그냥 <겉>으로 볼 때는 아름답고 예쁘고 멋있다.
그러나 <속>을 보면 <겉>과는 다른 자들이 많다.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겪어 보지 않고 <겉>만 보면 모른다.
확인해 봐야 안다.
이 말은 너희가 세상에서 살면서
수백 번씩 겪어 봐서 너희가 잘 알 것이다.
그렇지? (아멘!)” 하셨습니다.
정말 그렇지요?
사람은 직접 겪어 보고 확인해 보면, 겉만 보는 것과 다릅니다.
섭리 사람들은
그래도 <휴거>를 위해 ‘마음과 행실’을 닦아 놓고 개발해서
세상 사람들과 정말 많이 다릅니다.
▸ 그래도 막상 겪어 보면 <겉모습과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고,
<생각했던 것과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요?
▸ 또 어떤 사람은 겪어 보기 전에
<겉만 봐도 괴석같이 거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표가 나게 거칠게 행하니,
사람들이 실망하고 싫어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깊이 대하면서 겪어 보면
그 <속>이 어떤지 알게 됩니다.
휴거를 위해 갈고 닦고 개발한 사람들 중에서도
<아직 성격이 닦이지 않아서 거칠고 무서운 자들>이 많습니다.
그동안 이런 사람들을 많이 대해 보고 겪어 본 사람도 충격을 받는데,
어린 신입생들은 얼마나 무섭고 충격을 받겠습니까?
그러니 <닦이지 않고 거친 사람들>을 겪어 보고는
무섭다고 선생에게 편지를 보내옵니다.
어떤 사람은 겪은 후에, 너무 충격을 받아서 몇 달씩 울었답니다.
사람은 마음, 성격, 행실을 닦는 대로 <자기>도 좋고 편하고,
<상대>도 좋고 편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지금부터 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 잘 들어요.
하나님은 <창조 목적>을 두고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인류를 키우시고 <종교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종교 역사 6000년의 기간 동안 <말씀>을 주시며
인생들을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으로 만드는 데 주력하셨습니다.
<인간의 형상>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셨으니,
<인간의 성품>도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드는 것’을
하나님은 최고로 원하고 바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육>이
하나님적 지혜와 지식, 인격, 마음과 생각, 행실의 미로 닦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성장해 나가고,
그로 인해 <육>도 <영>도 변화되게 하셨습니다.
그 터전 위에 <마지막 약속을 이루는 성약역사>를 시작하시고,
<시대 사명자>를 ‘삼위의 성품’으로 만들어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시대 말씀>을 주시며, 믿고 따르는 자들을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 휴거의 자격자, 신부>로 만드셨습니다.
전능하신 성자는 ‘이렇게 만들어진 자들의 영’을
<정한 날>에 휴거시켜 <황금성>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휴거된 영들>은 거기서 1000년 동안 혼인 잔치를 합니다.
<휴거된 자들의 육신>은 ‘사명자의 육’을 중심하여
<땅>에서 계속 ‘휴거 역사’를 펴 나가며 ‘휴거의 삶’을 삽니다.
이 삶은 <시대 말씀을 듣고 행하며 삼위를 사랑하며 사는 삶>입니다.
<땅>에서도 1000년 동안 ‘혼인 잔치 역사’를 펴 나갑니다.
<혼인 잔치>란,
주를 중심하여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사랑하고,
<신부>로서 ‘삼위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 살아가고,
생명들을 이끌어 사망에서 구해 주고,
그들도 ‘휴거된 하늘 신부’로 만들어 주는 것이며,
하나님은 ‘하늘 신부가 된 자들’을 그 차원으로 대해 주시고,
그들을 데리고 ‘뜻’을 펴 나가시는 것입니다.
<구약역사>는 ‘종 차원’으로 역사를 폈고,
<신약역사>는 ‘자녀 차원’으로 역사를 폈습니다.
<성약역사>는 ‘신부 차원’으로 역사를 펴 나갑니다.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께서 신부 차원의 역사를 펴는 시대>이며,
섭리역사는 <사랑의 신부 역사>입니다.
<땅>에서 <육신>이 행하고 만든 대로
그 <영혼>이 ‘그 차원’으로 만들어지고
‘그에 해당되는 영의 세계’로 갑니다.
육신이 <종급 역사>에서 ‘종 차원의 말씀’을 듣고 만들었으면,
그 영혼도 ‘종 차원’으로 만들어져서
‘종 차원의 영의 세계’로 갑니다.
육신이 <자녀급 역사>에서 ‘자녀 차원의 말씀’을 듣고 만들었으면,
그 영혼도 ‘자녀 차원’으로 만들어져서
‘자녀 차원의 영의 세계’로 갑니다.
육신이 <신부급 역사>에서 ‘신부 차원의 말씀’을 듣고 만들었으면,
그 영혼도 ‘신부 차원’으로 만들어져서
‘신부 차원의 영의 세계’로 갑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마태복음 18장 18절을 보면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했습니다.
▸ 이 말씀과 같이
<땅>에서 ‘육신’이 행하는 대로
<영>이 ‘미와 사랑’으로 변화되고,
<황금성 천국>에 ‘자기 영의 집’을 계속 건설해 나갑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사람들은 <겉>만 보고는 모릅니다.
<속>을 100% 확인하기 전에는 모릅니다. 겪어 봐야 압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섭리사 안에서도 그러합니다.
형제들을 속이고,
주의 이름을 대면서 선량한 자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 거래나 땅 거래를 해서 손해 준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물건을 팔아서 자기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농사지은 과일이나 자기가 장사하는 물건들을
몇백 개씩 주면서 수고하는 사람들을 위해 선물하기도 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보기 민망하게 자기 이익을 취하려고
형제들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분노하십니다.
그러니 섭리사 안에서도 <겉>만 보고 당하지 말고,
주의 말을 들어 보고 하고,
기도하여 하나님과 성령님께 묻고 답을 받고 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자기 주관대로 하는 자들’은
결국 속고, 해를 당하고, 자기 기대대로 안 되고,
물질 손해를 보고, 그로 인해 분하고 억울하여 통곡하게 되고,
밤잠을 못 자고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다 신앙까지 잃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께 묻지 않고 하다가 손해를 보고,
염치가 없으니 보고도 안 하고 계속 손해를 보는 자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하려고 하다가, 결국 속고 해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세계>이니 해됨도 상함도 없게 만들었는데
<겉과 속이 다른 자들>로 인해 선량한 자들이 해를 당하면 안 되니,
모두를 위해 엄히 처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로 인해 구원받은 자들이 신앙을 저버립니다. 선교가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역사>도 ‘엄연한 사회’입니다.
고로 ‘엄연한 법’이 있습니다.
고로 해를 당한 자가 나오면, ‘법’으로 해결합니다.
하나님께서 엄히 ‘주’를 통해 다스리십니다.
신앙 안에서는 서로
<이성>이나 <인간의 정>으로 자꾸 얽히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두고 사니,
항상 누구를 만나든 ‘주 안’에서 ‘뜻’을 두고
뜻있게 만나고 행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잠시 쉬었다가>
또 섭리사 안에서 ‘자기보다 직책이 낮거나 어린 자들’을
막 다루고 함부로 대하는 목회자나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이유도 듣지 않고, 바로 직책을 내려놓게 합니다.
<원목>과 <부목>의 사이가 좋지 않은 교회도 있습니다.
<목회자>와 <교인들>이 화목하지 않은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잘 돌아가지 않고, 생명들이 힘듭니다.
그러면 ‘공의로운 심판’을 하게 됩니다.
목회자, 지도자를 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늘 ‘주의 몸’이 되어 생명들을 위해 주고, 섬겨 주고,
생명을 관리하고 살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데 <자기 직책>을 가지고,
확실히 확인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지적하여
더 힘들게 만드는 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강사는 영적으로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앞에 있는 생명을 영적으로 지적하여 힘들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목사나 지도자나 어떤 대우만 바라면 안 됩니다.
이곳은 정치 사회도 아니고, 회사도 아니고, 군대도 아닙니다.
모두 ‘같은 형제들’입니다. 자기가 ‘주’가 아닙니다.
주님의 몸 되어 뛰라고 세운 목회자나 지도자라고,
주의 대우를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목회자나 지도자는 ‘주의 몸’이 되어 정신 차리고 해야 됩니다.
각 분야의 책임자들이니, 책임지고 잘해야 됩니다.
그런데 “내가 그동안 희생하고, 봉사하고,
위해 주고 섬겨 주는 것을 다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못 하겠습니다.”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한계가 온 자’입니다.
마치 ‘기름이 다 떨어진 차’와 같아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습니다.
고로 그 직책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겉>은 싱싱하고 아름답고 멋진데,
단상에서나 생활 속에서 <속>이 다 드러납니다.
매일 갈고 닦아야 ‘목회의 보람’이 있고,
‘사명을 하는 보람’이 있습니다.
특히 <목회자 교육>을 많이 해 주는데,
교육을 받았는데도 안 바뀌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단상에서 말씀을 전해도 은혜가 안 되니,
내려오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회>는 계속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임기 기간>에 최고로 미련도 후회도 없이 잘해야
후에 ‘자기가 행한 일’을 간증하고 외치고 다니며 더 크게 뜁니다.
<잠시 쉬었다가>
목회자뿐 아니라 모두 자기를 닦고 만들어야 됩니다.
이제 <휴거 역사>이니,
자기 마음도 성품도 행실도 닦고 온전히 만들어야 됩니다.
목회자에게 바라기만 해도 안 됩니다.
<말씀>을 보고 듣고 행하면서 자기 만들기입니다.
<말씀>이 ‘주’입니다. ‘하나님’이고 ‘성령님’입니다.
고로 목회자에게만 바라지 말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 곧 말씀을 보면서 행하기 바랍니다.
모순된 성격과 행실을 다 고치고,
정말 깨끗하고 온전하게 하기입니다.
사람은 만들기에 달려 있습니다.
<자연성전의 잔디성전 옆 폭포>를 봐요. <영상2>
(* 설교자는 자연스럽게 손으로 화면 쪽을 가리키면서,
청중이 화면을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 폭포는 <높이>가 ‘7m’입니다.
그런데 원래 이 장소가 이렇게 높은 곳이 아닙니다.
높이 1m가 되는 언덕도 없었습니다.
완전히 무(無)에서 유(有)를 만든 것입니다.
선생이 어릴 때 밀짚으로 작은 물레방아를 만들어서,
이 골짜기에 물이 내려가면
물레방아를 돌리려고 이 장소에 설치하려고 갔습니다.
그런데 ‘한 뼘 높이의 경사진 곳’도 없어서
결국 그 작은 물레방아를 설치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한 뼘 높이면, 물레방아를 설치합니다.
그런데 한 뼘 높이의 경사도 없어서 못 했습니다.
이곳이 원래 그런 곳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서
<7m가 되는 폭포>를 만들어 놨습니다.
<사람>도 만들면 이와 같이 됩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늘 내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만들기에 달려 있다!” 하셨습니다. <끝>
<자연성전의 연회장 폭포>를 봐요. <영상3>
(* 설교자는 다시 자연스럽게 손으로 화면 쪽을 가리키면서,
청중이 화면을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 폭포는 물이 내려오는 시작점부터 아래 끝까지
<높이>가 ‘23m’나 됩니다. ‘절벽’입니다.
이 골짜기도 원래 ‘계단만큼 경사진 곳’도 없었습니다.
경사가 30도도 안 되는 밋밋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구상하시어 지금처럼 만들게 하셨고,
결국 <23m 높이의 연회장 폭포>를 만들게 됐습니다!
깎고 파내고 만들어서 무(無)에서 유(有)가 창조됐습니다. <끝>
저마다 <자기>라는 정원에 ‘폭포수’를 만들듯 해야 됩니다.
자꾸 고칠 것을 고치면서 파 들어가고
거기에 ‘말씀의 돌’을 쌓으면 됩니다.
자기를 깎고 파내야 됩니다.
하나님의 구상대로 좋게 깎아 내고 파내야 됩니다.
그러면 <자기 인생의 연회장>이 나오고 <폭포수>가 됩니다.
<자기>를 ‘하나님의 자연성전’같이 만들고,
‘신부 성전’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천국에서 최고로 만든 곳>이 ‘삼위일체가 사는 지역’이고,
<그다음 최고 지역>이 ‘신부들이 사는 황금성 천국’입니다.
그다음이 ‘신약 천국 - 구약 천국 - 낙원 - 선영계’ 등입니다.
이 세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자기를 만드는 대로
<육의 공적>이 ‘자기 영’에게 가서
<영>이 만들어지고, <자기 영의 직위>가 올라가고,
<자기 영이 거할 집>이 계속 만들어집니다.
고로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 때,
<주의 말씀>으로 ‘자기 마음과 행실’을 깎고 파내고 닦으면서
목숨 걸고 ‘최고’로 만들어야 됩니다. 믿습니까? <끝>
지금도 하나님은 <천국 황금성>을 더 좋게 만들고 계십니다.
성령님도 만들고 계십니다.
고로 <자기>를 갈고 닦고 만들어서
<자기 영>도 더 차원 높게 만들고,
<자기 영이 영원히 거할 곳>도 최고로 만들기 바랍니다!
<세상에서만 영광을 누리는 자들>은
세상에서 자기를 만들고 세상에서만 쓰고 끝납니다.
<세상의 것>을 다 합쳐도 ‘천국의 다이아몬드 하나’만 못합니다.
<영원한 것>을 놓고,
<주의 말씀> 으로 부지런히 자기를 만들기 바랍니다. (아멘!)
<잠시 쉬었다가>
세상 사람들은 <겉>은 싱싱하고 빛나는데,
<속>은 썩은 달걀 같은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겉>만 봐서는 모릅니다.
<겉모습>으로 이성 유혹, 사기 유혹, 물질 유혹, 생명 유혹을 합니다.
그러면서 엄청 잘해 줍니다.
처음에는 잘해 주다가 점점 속이고 유혹합니다.
스무 명을 살인한 사람도 <겉모습>은 일반 사람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속>은 여우, 늑대, 뱀, 살인자입니다.
유혹하는 자라도 <겉모습>은 일반 사람과 같습니다.
오히려 더 좋아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속>은 모릅니다.
고로 조심해야 됩니다. 속지 말아야 됩니다.
그 <속>을 알고, 얼른 등을 돌려야 됩니다.
섭리사 안에서도 간혹 ‘유혹하는 자들’이 있으니,
늘 기도하면서 주께 묻고 조심하기 바랍니다.
한 번 유혹을 당하면, 망합니다.
선생은 지난 60년 동안 수천 번을 겪어 봐서 압니다.
또 <영>으로 보고 알고 <혼>으로 보고 압니다.
고로 오늘 말씀을 해 줍니다.
모두 <하나님의 이상세계>에서 해됨도 상함도 없이
뜻 속에서 감사하고 기뻐하며 뜻을 이루며 살기 바랍니다.
또한 <세상>에서도 유혹하는 자들을 조심하고
해됨도 상함도 없이 자기를 지키기 바랍니다.
<천국>에는 이성 유혹, 물질 유혹 등이 없습니다.
이미 ‘완전히 만든 영들이 가는 완전한 세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천국>에서 그런 일이 있을까 걱정하지 않으십니다.
이는 마치 <물>이 없으니 ‘물에 빠져 죽을 걱정이 없는 격’입니다.
또 <영>은 ‘몸속에 장기’가 없으니, ‘병들 걱정’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살 때> 정말 잘해야 됩니다.
<육>으로 인해 ‘각종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돈 문제, 땅 문제, 사업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처음에는 얽혀서 같이 하면서 서로 좋다가도 가다 보면 변합니다.
고로 아예 완벽하게 해 놔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해 주겠습니다.
성령님의 말씀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사람이 만드는 것>을 <자연>이 못 따라간다.
사람이 <손>으로 ‘동상’을 만들면,
<자연석>이 ‘그 형상’을 따라가겠느냐.
<사람이 만든 것>이 ‘실제’와 거의 닮았다.
<자연성전>을 보아라. 이곳도 자연 자체로는 그렇게 못 만든다.
하나님이 신비하게 구상하시어,
<사람의 손>을 가지고 제2창조를 하게 하셨다.
자연스럽게도 만들고,
사람 손의 솜씨로도 만들어 조화롭게 했다.
<폭포수>와 <조경>을 보아라.
<손>으로 정갈하게 만들었으니 <자연>이 만든 것보다 더 멋있다.
<큰 것>은 아예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작은 것>은 ‘사람들’이 재창조하여 더 멋있게 만들게 하셨다.
<사람>의 솜씨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솜씨’를 닮았기에
그리도 잘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상대로 만들기’다.” 하셨습니다. <끝>
<자연성전>에 대해서는
설교로 나간 말씀들을 빼서 ‘월명동 가이드 북’으로 만들고,
자기도 직접 보고 소개도 해 주기 바랍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수석>이 아무리 비싸도
그 정교함은 ‘사람이 만든 것’을 못 따라갑니다.
<신비하게 잘 만든 것>은 사람이나 사물이나
그 형상을 똑같이 만듭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손으로 예리하게 만든 것>은
<자연>이 못 따라옵니다. <끝>
그러니 <자기>도 ‘하나님의 구상=말씀’을 가지고
잘 만들라는 것입니다.
인생! 만드는 대로 만들어지고, 만들기에 달려 있습니다.
<자기>를 ‘하나님의 구상’으로 잘 만들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 성품으로까지 만듭니다. 믿습니까?
<말씀 마무리>
오늘 말씀
<겉>은 아름다우나 <속>은 다르다.
<겉으로 보는 것>과 <속>은 다르다.
수박도 <겉>만 보고 아냐? <속>을 봐야 안다.
<겉>은 싱싱해도 <속>은 곯은 것이 있다.
고로 확인해라. 속이 곯았으면 등을 돌려라.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