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7.11.15 (수)
171115 수요말씀(기도와 실천이다)
- 선포일
- 2017.11.15 (수)
- 성경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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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5일 수요말씀>
<기도>와 <실천>이다
본 문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
요한일서 3장 22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에는 ‘새벽을 깨워라.’라는 주제로
<기도>에 대해 말씀하면서,
특히 <새벽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 오늘은 <기도>만큼 중요한 <실천>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기도>는
- 자기의 생각을 삼위와 일체 시키기 위해서 하고,
- 자기 생각을 삼위와 일체 시켜 주 뜻대로 행하기 위해서 하고,
- 삼위의 힘과 능력과 지혜를 받기 위해서 하고,
- 자기 죄와 잘못을 회개하기 위해서 하고,
- 사탄과 악을 물리치기 위해서 하고,
- 삼위와 대화하며 교통하기 위해서 하고,
- 자기 힘으로 못 하는 것을 구하기 위해서 하고,
- 자기 힘으로 할 것도 삼위와 함께 하기 위해서 하는 등
<기도>를 통해 ‘대화, 사랑, 실천’이 일어나고, ‘얻게’ 되고,
더 나아가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는 ‘일’입니다.
일을 하는 만큼 일이 되듯이, 기도한 만큼 합당하면 이루어집니다.
곧 <기도>로 ‘행하는 것’입니다.
<기도>만큼 중요한 것이 있으니, 곧 <실천>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 실천하는 자>가
말씀대로 얻고 받고 성공합니다.
또한 <기도하고 행하는 자, 실천하는 자>가
기도한 것의 결과를 얻게 됩니다.
<말씀>과 <실천>입니다. <기도>와 <실천>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말씀을 듣고 스스로 실천하도록 역사하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 지금부터 <성령이 주와 함께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전해 주겠습니다.
<기도보다 빠른 것>은 ‘실천’이다.
<전도하게 기도하는 자>보다 ‘전도하는 자’가 더 빠르다.
옆에서 코 골고 자는 사람을 <기도해서 멈추게 하기>보다
<직접 깨우는 것>이 더 빠르다.
<기도>는 해도 응답받아야 효과가 있고,
<실천>은 하기만 하면 효과가 있다.
<실천하지 않는 자>는 ‘기도’라도 해서 실천하여라.
<실천>은 ‘능력’이다.
<실천하는 자>는 ‘기도한 것의 결과’를 얻는다.
<기도>와 <실천>을 하여라.
<기도할 것> 따로 있고, <실천할 것> 따로 있을 때가 있다.
밥 먹는 것이나 잠자는 것은
<기도 없이도 할 일>이니 바로 실천하면 되듯이,
<기도를 안 하고도 실천할 일>은 바로 행해야 효과가 있다.
어떤 사람은 <실천하면 될 일>인데 ‘기도’만 하고,
겁을 내고는 ‘실천’을 안 한다.
어떤 사람은 <기도해야 될 일>인데 ‘일’만 한다.
<손이 닿는 곳>은 ‘손’으로 하고
<손이 안 닿는 곳>은 ‘말’로 시켜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로 시켰는데도 안 되면, ‘자기 손’으로 해야 된다.
이와 같이 <실천할 것>은 바로 ‘실천’하고,
<실천만 해서 안 될 것>은 ‘기도’하고,
<기도했는데도 안 되는 것>은 ‘실천’도 같이 하여라.
실천하면 금방 된다.
어떤 사람은 <실천>하니 속 시원하게 금방 됐다.
고로 <말>을 안 하고 <실천>만 한다.
그러면 입을 다물고 너무 말을 안 하니, 소통이 안 된다.
<실천>도 하면서 <말>도 하여라.
이와 같이 <실천>도 하면서 <기도>도 하여라.
<기도>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의 대화, 주와의 대화’다.
땅으로는 ‘형제들과의 대화’다.
<실천>도 하고 <대화>도 하여라.
<진실한 대화>와 <진실한 실천>이다.
<잠시 쉬었다가>
<실천>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아라.
<성공한 자>는 다 ‘위대한 실천을 한 자’다.
<실천>이 얼마나 중한지 알아라.
만 명이 있어도 ‘실천자 하나’만 못하다.
<실천자>는 그 날,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만 명>이 있어도 실천을 안 하니
10년, 100년이 가도 해결이 안 된다.
섭리사에서도 이럴 때가 많다. 고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기도>로 해결이다. <실천>으로 해결이다!
<실천자>는 10년, 20년 전에 해결했다.
<실천하지 않은 자>는 지금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기도로 실천>하든지 <몸으로 실천>하든지 실천해야 해결된다.
<영웅>은 ‘실천’한다.
대둔산 용문골 바위 밑의 50년이나 된 우상을 섬기는 신당도
정당하게 <기도>하고 <실천>하니, 깨끗이 없어졌다.
<실천>은 힘들다. 꾸준히 계속해야 된다.
그러나 <실천>하면 해결된다. 기도로 실천, 몸으로 실천이다.
수만의 무리가 있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괴로움과 걱정과 문제가 없어지지 않는다.
해충도 실천하여 잡으면, 금방 해결된다.
안 잡으면, 해충이 죽을 때까지
계속 자기를 양식으로 삼고 물고 뜯어 먹는다.
사탄과 마귀도, 악인도, 악평자도 그러하다.
어떤 사람은 악평자가 괴롭히니, 바로 쫓아가서 정당하게 싸웠다.
고로 즉시 해결됐다.
악인들과 악평자들을 가만히 두면,
수만 명이라도 악평자 몇 명에게 괴로움을 당하면서 한 시대를 산다.
그러면서 “참아야 된다.” 한다. 답답한 자들이다.
정당하게 실천하여 해결하여라.
<용감한 자>는 정당하게 행하여 해결하고,
<게으른 자>와 <겁이 많은 자>는
자기가 당하면서도 참기만 하면서 해결한다.
<참을 일>이 있고, <정당하게 행하여 해결할 일>이 있다.
실천하니,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차원 높인 삶>이다. <완성하는 삶이다.>” 하셨다.
<구원자>는 혼자 있을 때가 대부분이고,
그 일을 누가 해 줄 수도 없으니 늘 ‘실천’했다.
지금도 동일하다. 누구에게 이야기 안 하고 ‘실천’한다.
여럿이 살면 ‘누가 하겠지.’ 하며, 남에게 미루고 안 한다.
어떤 사람은 혼자 있는데도 ‘알아서 되겠지.’ 하고, 안 한다.
고로 평생 가도 일이 안 된다.
이들은 ‘성공과 먼 자들’이다.
<인터넷상의 싸움>도 실상 싸움을 거는 자는 몇 명 안 된다.
수십 명이 쫓아가면, 1대1 정도다. 고로 실천하면 이긴다.
<실천의 겁쟁이들>은 ‘말’로만 한다.
<말없이 실천하는 자들>은 ‘무언의 축복’을 받는다.
말로도 실천, 기도로도 실천, 몸으로도 실천이다!
섭리역사는 지금까지 ‘실천’했기에,
오늘날같이 ‘실체’로 이루어졌다.
<실천한 것>만 됐다!
<진실로 기도한 것>만 됐다!
지금도 새벽에 씻고 기도하며 실천하니,
<글>로 ‘하나님과 성령과 주의 말’을 쓰고 있다.
실천하지 않으면,
이 새벽에 무한한 말씀, ‘한 자’ 안 남고 다 사라진다.
<실천의 재미와 기쁨의 날>이다. <실천의 역사>다.
많은 사람들이 과일나무 밑에서 죽어 있었다.
알고 보니, 배고픈데도 ‘과일을 따 먹는 실천’을 안 하고
쳐다만 보다가 굶어 죽은 것이다.
행하지 않아서 굶주리게 되고, 현실에서도 굶주림 속에 사는 것이다.
실천하면, 성령님이 옆에서 도와주시고 대화하며 말씀을 주신다.
<삼위일체>는 ‘실천의 능력자’이시다.
너도 삼위와 함께 실천하여 ‘실천의 능력자’가 되어라.
<잠시 쉬었다가>
◎ 이제 ‘편지 말씀’을 마치고,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실천>을 배우려면,
자연성전에 가서 ‘몸으로 실천’해 보세요!
몸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소나무 가지가 그냥 그대로 필요 없이 큽니다.
몸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길에 있는 돌들이 오고 갈 때마다 계속 발에 걸립니다.
<머리와 연결된 한 지체>이면, ‘주’와 같이 행합니다.
<머리와 떨어진 자>는 다르게 행하거나 행하지 않습니다.
목 운동도 그러합니다.
목 운동의 실천을 안 하면, 목이 굳습니다.
그 상태로 더 가면, 치명적인 ‘디스크’에 걸립니다.
이는 ‘전염돼서’가 아닙니다. ‘자기가 실천을 안 해서’입니다.
목도, 허리도, 무릎도, 어깨도, 각 지체도 다 그러합니다.
신앙도 그러합니다.
계속 실천하지 않으면, 마음도 생각도 행실도 굳어 버립니다.
그러다 ‘치명적인 고질병’에 걸립니다.
이성, 동성, 의심, 오해, 자기 모순과 각종 죄를
회개하고 고치는 실천을 안 하면
<치명적인 문제>가 생겨서 결국 ‘사망’에 묻히게 되고,
그대로 두다가는 ‘복직이 어려운 지경’까지 됩니다.
하루는 이들의 ‘영의 상태’를 보고는
<그 육신>이 너무 아까워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 이에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과일이 커도, 썩으면 뭐가 아깝냐.
<섭리사>만 보지 말고 <세상>을 보아라. 엄청나고 엄청나다.
<이 좋은 천국>에 아무나 들어오라고 하기가 정말 아깝다.
<기준>이 돼야 한다.
그래야 <천국>을 줘도 아깝지 않다.” 하셨습니다.
*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
“<깨끗하고 정결한 자>에게
<깨끗하고 온전한 황금성 천국>을 줘야 아깝지 않다.”
<좋은 자리>는 ‘위치’가 좋아야 되지 않느냐.
<최고 좋은 곳, 최고 좋은 위치>는
<최고로 사랑하는 자, 최고의 기준이 되는 자>에게 줘야
준 자도 아깝지 않고 기쁜 것이다.” 하셨습니다.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합당치 않습니다.
섭리사가 39년 동안 오면서,
모든 자들을 귀히 보고 사명도 크게 맡겼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귀히 안 보고 목숨 걸고 안 했던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영예’가 합당치 않습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그런 자들이 그 위치에 있음’을
원치 않으십니다.
고로 모두 ‘그 위치’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명을 귀히 보고 충성되게 행한 자들>은
지금도 행하며 받고 있습니다.
<영예>는 ‘이들의 것’입니다.
<실천하지도 않고 바라기만 하는 자들>에게는
당연히 ‘영예’를 줄 수 없습니다.
섭리사 안에서 사명을 하더라도 ‘방 안 퉁소’가 많습니다.
한마디로 안에서는 말이 많은데,
정작 실천하지 않고 주를 증거하지 않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에게 ‘영예’가 웬 말입니까?
행하지 못한 만큼 ‘십자가’를 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할 때 해야 됩니다.
<지금>이 ‘할 때’입니다. <지금>이 ‘실천할 때’입니다.
기도로 실천, 몸으로 실천입니다. 주와 함께 실천입니다.
<주>는 ‘실천자’입니다. 고로 ‘실천하는 자’와 같이 삽니다.
차도(車道)도 닦을 때 못 닦으면, 평생 걸어 다녀야 됩니다.
<행한 자>만 차를 타고 가면서 편히 뜻을 이루며 살고,
<행하지 않은 자>는 걸어가면서 뜻을 이뤄야 됩니다.
끝까지 안 하면, 결국 ‘사망’으로 가서
할 수 없이 거기서라도 해야 되는 운명이 됩니다.
<자기 행위, 자기 실천>대로 ‘선악 간’에 받게 됩니다.
<자기 행위>로 자기가 ‘축복’을 받고,
<자기 행위>로 자기가 ‘고생’도 한다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성전을 구상’하고 행하게 하셨듯이,
<섭리사 모두가 할 일>을 구상하고 행하게 하십니다.
늘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만 ‘그 구상’을 알게 되고,
<실천하는 자>만 ‘그 구상’을 실현하게 됩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할 일이 있습니다.
섭리사 당세에 할 일이 있습니다.
성약역사, 지금 휴거의 때에 할 일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을 듣는 자>는 ‘그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실천하는 자>는 ‘그 일’을 이루게 됩니다.
한 순간만 보고 가지 말고, 멀리 보고 뛰어야 됩니다.
<멀리 보고 뛰는 자>만 ‘강’을 뛰어넘습니다.
자기 인생과 영혼까지 멀리 보고,
주와 함께 힘차게 실천하며 뛰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와 <실천>이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