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7.11.26 (일)
171126 주일말씀(신경을 써라)
- 선포일
- 2017.11.26 (일)
- 성경 본문
- 잠언 4장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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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6일 주일말씀>
신경을 써라. 마음을 지켜라
본 문 잠언 4장 23-27절, 5장 1-6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신경’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그동안 <신학 특강>과 <신학 전도집회 말씀>을 통해서
<신경>에 대해 어느 정도 말씀해 줬습니다.
오늘은 <섭리사 전체>에 해당되도록 말씀해 주겠습니다.
<신경>에 대한 말씀은 오늘 한 번에 다 말할 수가 없어서
이번 주 수요일과 금요일까지 세 번에 걸쳐 말씀해 줄 것입니다.
모두 말씀에 신경 쓰고
오늘 주일말씀, 이번 주 수요말씀, 금요말씀까지 쭉 듣기 바랍니다.
<말씀 시작>
사람이 살아가면서 실수하거나, 문제가 생기거나,
사고 나거나, 죽거나, 할 일을 안 해서 손해를 보거나,
말하거나 생활할 때 제대로 못 하거나,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와 형제들에게 해를 주거나
은혜롭게 하지 못하는 원인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신경을 안 쓰고 행하기 때문이다.
신경을 안 쓰니 잊기 때문이다.
항상 신경을 써야 된다.” 하셨습니다.
말을 할 때나 행할 때 신경을 안 쓰고 하니
실수를 하고, 문제가 생기고, 사고도 나고, 죽기도 하고,
할 일을 안 해서 손해를 보고, 상대에게 해를 주고
은혜롭게 하지 못하여 형제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사람의 지체 중에서 최고로 예민한 것>이 ‘신경’입니다.
<뇌>에는 주먹만큼 신경이 뭉쳐져 있는데,
한마디로 <뇌>는 ‘신경 덩이’입니다.
<온몸>에는 가늘게 신경이 깔려 있습니다.
신경을 어느 쪽으로 쓰느냐에 따라서
<그에 해당되는 생각>이 발생됩니다.
<그 생각>이 ‘온몸의 신경’으로 전달되어 행하게 됩니다.
곧 사람은 <신경>으로 인해 ‘생각’이 나서 행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신경>이 있어서
어떤 방향을 두고 신경을 쓰는 만큼 생각하고 느끼고 행합니다.
그러나 <있는 신경>도 가만히 놔두면, 잠잠합니다.
<몸>도 가만히 놔두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하듯이,
<신경>도 안 써먹고 가만히 놔두면 한 가지도 못 합니다.
<신경>은 ‘칼날’같이 예리합니다.
그런데 그냥 놔두면 ‘칼등’같이 무딥니다.
<칼>도 <도구>도 ‘써야’ 빛이 나듯이,
<신경>도 ‘써야’ 빛이 납니다.
그러나 <신경>을 잘~~ 써야 됩니다.
<신경>을 근심, 걱정, 염려, 불안 쪽으로 쓰면 ‘병’이 됩니다.
형제의 말과 행동으로 상처 받은 것, 억울한 것에 계속 신경을 쓰면
신경과민증, 공포증, 우울증이 옵니다.
이때는 <자기 할 일>에 신경 쓰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께 신경 쓰고,
<보다 생산적인 것>에 신경 쓰면서
<신경과 생각>을 ‘다른 쪽’으로 돌려야 됩니다.
<몸>도 잘 써야 하듯, <신경>도 알고 ‘잘 써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잠시 쉬었다가>
<뇌신경>은 ‘몸의 핵’입니다.
<뇌신경>이 몸에서 제일 먼저 느끼고 압니다.
<신경>이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뇌’를 통해서 생각의 작동을 합니다.
<신경>이 온몸에 깔려 있어서 ‘신경’으로 느낍니다.
그래서 <신경을 안 쓰는 자>는 보고 들어도 모르고 못 느낍니다.
사람이 못 느끼면 ‘죽은 자, 식물인간’이라고 합니다.
<신경>에 따라서 ‘전체’가 좌우됩니다.
신경을 안 쓰면
하루, 일주일, 한 달, 1년이 가도 할 일을 모르고,
옆에서 행해도 인식이 안 돼서 모릅니다.
신경을 안 쓰면, 모릅니다.
모르니, 행하지 못합니다. 고로 패합니다.
신경을 쓰면, <생각>으로도 알게 됩니다.
아니, 행합니다. 고로 이깁니다.
신경을 예리하게 하고 정신일도 하면,
멀리 있는 것도 ‘뇌’에 느껴집니다.
그것이 ‘마음과 생각’으로 전해집니다.
신경을 써야 느끼고,
신경 쓴 것이 <생각>으로 전달되고,
<그 생각>을 <몸>으로 행하게 됩니다.
고로 <신경 쓰라>는 말은
“정신을 써라. 생각을 써라.”라는 말로 연결되고,
“몸을 써라. 힘을 써라. 실천해라. 행해라.”라는 말로 연결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의 지체 중에서 최첨단인
<신경>으로 싸우고 행하고 도전해라.”입니다.
사람이 신경 안 쓰고 보고 들으면, 봐도 모르고 들어도 모릅니다.
신경을 쓰고 보고 들으면,
마치 화면이 잘 보이는 것같이 훤히 느껴져 깨닫고 알게 됩니다.
<신경>이 잠을 자거나 죽어 있으면,
- 각종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못 느낍니다.
- 남녀가 사랑을 해도 못 느끼고 돌이나 나무를 잡는 것 같습니다.
신경을 안 쓰면, 차에 물건을 놓고 내립니다.
신경을 안 쓰면, 시장에 갔다가 아기를 놓고 옵니다.
신경을 안 쓰면, 돈 계산도 실수합니다.
고로 무엇이든지 할 때마다 집중하고 신경 써야 됩니다.
신경을 안 쓰면 시작해도 모르고, 끝났어도 모르고,
급선무로 할 일인데 다른 것만 합니다.
신경을 안 쓰면,
자기가 타고 있는 배가 가라앉고 있어도 이야기나 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그 환경에서 제대로 신경 써야 됩니다.
신경을 안 쓰면
- 설교하거나 강의할 때 실수하고,
- 넋이 나간 사람처럼 있으면서 육체만 움직이는 자가 되고,
- 비몽사몽 상태에서 몸만 다니게 됩니다.
신경을 안 쓴 상태에서는
- 어떤 것을 보고 들어도 기억이 안 나고,
- 어떤 일을 해도 하나도 기억이 안 납니다.
사람은 <신경>으로 느끼고 기억합니다.
<신경>을 통해
기쁨도 느끼고, 흥분도 느끼고,
좋은 것도 느끼고, 나쁜 것도 느끼고,
선도 느끼고, 악도 느낍니다.
“<신경>을 통해 느끼는 것이 아니다.
<마음과 생각>을 통해 느끼는 것이다.” 하는 사람은
한 번 ‘뇌신경’을 들어냈다고 생각해 봐요.
아무것도 못 느낍니다.
<신경>에 ‘마음, 정신, 생각’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혼>과 연결됩니다.
고로 <영의 세계, 혼의 세계>도 ‘뇌신경 덩이’에서 좌우됩니다.
<영>은 뇌처럼 ‘영체’가 모두 ‘신경 덩이’라고 보면 됩니다.
고로 <영>은 잘 느끼고, 신적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신경>은 ‘송수신기’와 같습니다.
<신경>에 ‘마음·정신·생각’이 들어 있어서
- 신경을 쓰는 방향에 따라서 생각하게 되고,
- 그 생각에 따라서 ‘몸’으로 행하게 되고,
- 그 생각이 ‘혼’과 연결되고
- 생각과 행실이 ‘영’과도 연결됩니다.
<인간 최첨단의 송수신기>인 ‘신경’을 정말 잘~~ 써야 됩니다.
<신경>을 안 쓰거나 잘못 쓰면
신경 자체 능력의 1억 분의 1밖에 못 쓴다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신경>은 ‘눈’과 함께 보고, ‘귀’와 함께 듣고,
‘뇌’와 함께 생각하고, ‘몸’과 함께 행합니다.
<신경>에서 느끼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행합니다.
그러나 신경을 써야 느끼고 압니다.
오늘 말씀을 들었으니,
<신경>이라는 두 글자를 잊지 말고 신경 써야 됩니다.
자기가 무엇을 신경 쓰고 잊지 말아야 되는지,
무엇을 신경 쓰고 행해야 되는지,
그 센터의 한 단어만이라도 메모하거나
중얼거리며 암기하고 다녀야 됩니다.
그럼 ‘신’같이 되어, 잊지 않고 행하게 됩니다.
신경을 쓰면 ‘할 일’이 많습니다.
특히 지도자들은 ‘자기 사명의 센터’를 신경 쓰면서 해야 됩니다.
<그 센터에서 생각나는 단어>가 있으면,
메모하거나 암기하여 잊지 말고 신경 써서 행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계속해서 ‘신경’에 대해 말씀할 테니, 잘 듣기 바랍니다.
<신경 쓴다>는 말은
마치 힘을 쓰듯이, 몸을 쓰듯이 뇌신경을 사용한다.
생각한다. 느낀다. 행한다는 말입니다.
생각하지 못하면, 모릅니다.
느끼지 못하면, 모릅니다.
<생각>도 <느낌>도 ‘신경’을 통해 전해집니다.
그래서 <신경>이 죽어 있으면 봐도 모르고,
손이나 몸에 닿아도 느낌을 모릅니다.
<신경이 죽는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신경이 아예 죽은 것이고
둘째, 신경이 살아 있는데 신경을 안 써서 기능을 못 하는 것입니다.
신경이 살아 있는데 신경을 안 쓰면,
<신경>이 ‘기능’을 못 해서 ‘죽은 것’과 같습니다.
신경을 깨워야 됩니다.
신경 쓸 것을 자꾸 보고, 듣고, 배우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야 <신경>이 다시 기능을 하고 느낍니다.
<신경>이 깨어 있어야 됩니다.
<신경>이 깨어 있으면 ‘예감, 직감, 영감’ 등이
수시로 <생각>에 전달되어 떠오릅니다.
<신경>이 잠을 자면
하루 종일 있어도 ‘특별히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상대의 신경이 잠자는 상태>에서 보여 주고 말해 주고 건드리면
그 상대는 봐도 모르고, 말씀을 들어도 모르고,
누가 만져도 모릅니다.
<신경이 잠자는 상태>는 ‘의식이 없는 격’입니다.
- 이는 ‘잠자는 자에게 말해도 모르는 격’입니다.
- ‘비몽사몽인 사람에게 진정 이야기해도 모르는 격’입니다.
이때는 제대로 다시 인식시키고,
<상대의 신경이 깨어나 제대로 느끼고 생각할 때>
그때 보여 주고 말해 줘야 됩니다.
혹은, 상대의 신경이 청청하고 생각이 총명해도
<상대가 제대로 신경을 안 쓰고 있는 상태>에서 보여 주고 말해 주면
하루 종일, 일주일, 한 달 동안 보여 주고 말해 줘도 모릅니다.
<신경과 생각을 집중하게 한 후>에
그때 보여 주고 말해 줘야 제대로 느끼고 압니다.
이제야 주가 말씀한 것을 제대로 알았다고 편지를 많이 보내오는데,
다들 섭리사에 온 지 10년, 20년 된 사람들입니다.
왜 그동안은 잘 몰랐는데, 지금은 제대로 느끼고 알았을까요?
그동안은 <신경과 생각이 그쪽으로 깨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보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카메라>는 보이는 대로, 각도대로만 찍힙니다.
<신경>도 그러합니다.
신경 쓴 대로만 보이고 들리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신경 써서 세밀히 안 보고 안 들으면, 대강만 압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하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의 말씀>도 그러합니다.
신경 써서 보고 들어야, 제대로 느끼고 압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다 배우고 주를 알았어도
회개를 안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죄>에 대해 배웠어도 ‘지식’으로만 배우고,
<자기 죄>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쓰고 생각을 안 하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회개>에 대해 가르쳐 줘야 됩니다.
그쪽으로 신경 쓰게 해 줘야 됩니다.
단, 누구도 상대를 ‘정죄’하면 안 됩니다.
<말씀의 퇴비>를 주며, 스스로 신경 써서 하도록 가르쳐야 됩니다.
매일 신경 써서 기도하며 <자기 죄>를 고하고 회개하여 청산하고,
<섭리사와 민족과 세계의 죄>를 고하며 회개해야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운명을 돌릴 것’을 다시 돌이키십니다.
매일 신경 쓰고 ‘죄’를 고해야 됩니다.
<사랑>도 신경 써야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자기 사랑하는 애인>도 신경을 안 쓰면, 잊고 삽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도 신경을 안 쓰면, 잊고 삽니다.
한 시간에 몇 번씩은 불러야 됩니다.
그렇게 불러도 총 2~3분밖에 안 걸립니다.
수시로 삼위와 주를 부르니
<신의 역사>를 받고 <신경>이 깨어나 ‘신과 교통’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사람이 무엇이든지 ‘안 하던 것’을 처음으로 하면,
마치 ‘처음 그림을 그려 보는 것’같이
많이도 못 하고 제대로도 못 합니다.
<운동>도 처음 해 보면, 조금밖에 못 하고 잘 못 합니다.
죄 회개도, 전도도, 기도도, 말씀 행하기나 말씀 외치기도
가르쳐 주고 보여 줬어도
막상 행하려면 처음에는 조금밖에 못 하고 잘 못 합니다.
하나하나 배워 나가면서, 신경 써서 여러 번 해 봐야 됩니다.
신경 써서 여러 번 하다 보면,
<방법>도 생기고 <기술>도 생기고 <자신감>도 붙어서
점점 잘하게 됩니다.
<자기 잘못과 모순을 고치는 것>도
자기가 운동해서 몸의 형태를 잡고 건강해지는 것만큼이나 힘듭니다.
그만큼 신경 써서 제대로 해야 됩니다.
약을 먹어도 몇 번 먹으면, 효과가 없습니다.
<신경에 해당되는 것>은 신경이 예민하니
한두 번만 약을 먹어도 금방 반응이 있고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위장, 대장, 간장, 심장 등 <체질적인 것>은
한 달, 두 달, 세 달 동안 지속적으로 신경 쓰고 먹어야 좋아집니다.
<위장>이 안 좋으면
- 때마다 시간을 맞춰서 지속적으로 약을 먹고,
- 식사 조절도 꾸준히 하고,
- 등산이나 그 센터의 운동을 집중적으로 해야 낫습니다.
하다 말거나 조금만 하면, 효과가 없습니다.
<상처가 난 부위>도 며칠에 한 번, 몇 주에 한 번씩만 소독하면
상처가 번져 나가서 곪아 터집니다.
매일 소독하고 약을 발라 주면서
신경 써서 전적으로 매일 치료해야 낫습니다.
상처 난 곳도, 자기 자신도, 생명도,
신앙도, 휴거도, 교회도, 자연성전도
배고플 때 밥 먹듯이, 목욕탕에서 때 밀듯이, 머리 깎듯이,
일을 할 때 아예 해서 끝내 버리듯
신경 쓰고 집중해서 관리해야 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됩니다.
이것이 <신적으로 신경을 쓰고 행하여 목적을 이루는 방법>입니다.
<신앙의 삶>도 신경 쓰고 지속적으로 해야 됩니다.
그러면 ‘표’가 나고 ‘운명’이 뒤바뀝니다.
<새벽 제단>도 일주일 동안 지속적으로 드리고,
21일, 40일, 70일, 100일, 110일, 1년 동안 지속적으로 드려야
정말 ‘표’가 나고 ‘운명’이 뒤바뀝니다.
<신앙>을 하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쫄딱쫄딱하면
그때 그 순간 기분 전환만 될 뿐이지,
절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운동>도 그러합니다.
가끔 한 번씩 근육 운동을 하거나 뛰는 것은
그 당시 피로가 누적된 몸을 순간 풀어 주는 정도입니다.
온몸과 근육과 폐에 좋은 영향을 주려면,
매일 운동하되 한 달, 두 달, 세 달은 지속적으로 해야 됩니다.
매일 생활 속에서 해야 됩니다.
비빔밥을 먹을 때 <밥>과 <비빌 반찬들>을 같이 넣고 비비듯이,
생활 속에서 <일>을 할 때 순간순간 <운동>도 하면서 몸을 풀면,
하루 종일 하니 ‘많이’ 하게 됩니다.
그래야 ‘몸’이 변화됩니다.
<신앙>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할 일을 하면서 삼위와 주를 부르고, 대화하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삼위께 영광 돌리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잠잘 때까지 하게 됩니다. 고로 ‘많이’ 하게 됩니다.
한두 번 하다가 말지 말고, 지속적으로 신경 쓰고 하기입니다.
선생은 <글>도 ‘생활 속’에서 씁니다.
<글>을 따로 쓰려면, 백날이 가도 몇 편 못 씁니다.
<생활 속>에서 쓰니, 보고 듣는 것도 다양합니다.
고로 ‘다양한 글’이 떠오르고 써집니다.
신앙도 ‘생활 속의 꾸준한 신앙’입니다.
그러면 ‘다양한 신앙’이 됩니다.
<신경>과 <생각>과 <정신>을 집중하여
<시간>을 다스리고 <자기>를 다스리고
<하나님과 성령과 주의 인도>에 따서 집중해서 실천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인생이 의미 있고, 희망 있고, 보람 있고, 멋있습니다.
그래야 얻고, 누리고, 영광스럽습니다.
자연성전도 <신경>을 안 쓰고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깔짝깔짝하고 우물쭈물했으면,
하나님의 구상에 따라서 오늘날같이 건축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과 제자들이 삼위와 함께 몸짝 붙이고
긴긴 세월 오랫동안 과감히 행하였기에
오늘날같이 ‘환경 천국’을 만들어 놓고,
<이 시대 휴거>를 이루고 가치 있게 쓰면서 살아갑니다.
<집>도 원하는 대로 지어 놓고 살면 걱정을 안 하듯,
<신앙의 집>도, <육신의 환경>도
원하는 대로 만들어 놓고 살아야 만족합니다.
모두 <자기 삶>을 놓고, <자기 신앙과 휴거>를 놓고
끈기 있게, 지구력 있게, 강하게 해 나가며 잘 만들기 바랍니다.
그래야 평생 기뻐하며 편하게 살아갑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왜 나는 안 되지?” 합니다.
주가 말씀합니다.
“안 하니, 안 되는 것이 아니냐.”
어떤 사람은 “왜 나는 해도 안 되지?” 합니다.
주가 말씀합니다.
“조금해서다. 하다 말아서다. 나와 함께 안 해서다.”
어떤 사람은 “왜 나는 많이 했는데 안 되지?” 합니다.
주가 말씀합니다.
“나와 함께 안 해서다. 방법과 방향을 달리해서다.
신경을 안 쓰고 해서다. 육적으로 해서다.”
어떤 사람은 “왜 열심히 전도했는데 생명들이 나가지?” 합니다.
주가 말씀합니다.
“신경을 제대로 안 써서다. 기술 부족이다. 혼자 해서다.
인본주의적으로 해서다. 뭔가 잘못해서다.”
하나님과 성령과 주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말씀>과 <잠언>으로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그 말씀은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행하는 자>에게 ‘말씀 그대로’ 역사가 일어납니다!
매일 지혜와 지식을 받고 행하라고 말씀해 줍니다.
고로 그 <말씀과 잠언>을 보고 ‘제대로’ 해야 됩니다.
뭐든지 처음부터 잘되지 않습니다.
몇 번 한다고 잘되지 않습니다.
<수영>도 몇 번 한다고 잘되지 않습니다.
여러 번 배우고 수십 번씩 해 봐야 물에 안 빠지고 겨우 수영합니다.
선수까지 되려면 3년, 7년, 10년씩은 해야 됩니다.
<신앙>도 그러합니다.
모두 ‘끝까지 하기’에 신경 쓰고,
‘신경과 생각을 집중해서 하기’에 신경 써야 됩니다.
여행을 갈 때도 ‘하나’만 신경을 안 써도,
꼭 ‘그것’을 빠뜨리고 갑니다.
그 중요한 ‘여권’을 빠뜨리거나 ‘귀중품’을 빠뜨립니다.
며칠 집을 비우는 동안 반려견이 밥을 먹도록 해 놓고 가야 되는데
그것을 신경 못 써서 개밥을 준비 안 해 주고,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그제야 생각합니다.
그것에 신경을 안 쓰니 잊어버리고 가다가,
가는 도중에 신경을 쓰니 그제야 생각나는 것입니다.
<휴거>도 그러합니다. 신경을 안 쓰면 ‘변화’가 안 됩니다.
생활도, 어떤 일도, 신앙도, 휴거도,
뭐든지 ‘신경 쓰는 대로’ 해집니다.
혼자서는 잘 모르니 서로 신경을 쓰고,
상대가 신경을 못 쓰고 있으면
먼저 신경 쓰고 생각한 사람이 말해 주기 바랍니다.
서로 지적하며 정죄하지 말고,
은혜롭게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같은 편에 서서 줄다리기를 하듯 하기 바랍니다.
특히 교역자들과 지도자들은
<자기 사명의 센터>에서 여러 가지로 신경 써서 해야 됩니다.
또 나이 든 사람들은 자꾸 잊어버리니,
<자기가 한 말>이나 <행동>에 더 신경 쓰고
<자기 할 일>에 더 신경 써야, 제대로 합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신경을 잘 쓰면, ‘젊은 머리’가 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말할 것은
<한 가지>만 신경 쓰지 말고
이 일을 함으로 다른 것은 문제가 없는지
<두 가지>를 신경 쓰고 생각하고 해야 됩니다.
육적인 일을 할 때도 그러하고, 신앙의 일을 할 때도 그러합니다.
급하다고 <한 가지>만 생각하고 하면 안 됩니다.
갈 길 급하다고 <가는 것 한 가지>만 신경 쓰고 가지 말고,
앞에서 차가 오는지도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벌이 쐈다고 합시다.
그러면 ‘벌집을 때려 부수자!’ 하고 한 가지만 신경 쓰지 말고,
반드시 ‘벌이 몰려와서 쏜다.’ 하는
다른 한 가지도 신경 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사 모든 일을 이렇게 해야 됩니다.
어떤 일이든지, 항상 <두 가지>를 생각하고 해야 됩니다.
<말씀 마무리>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신경을 써라.
그러나 ‘걱정, 근심, 염려’나
‘상대의 속상한 말과 행동’에는 신경을 꺼라.
그쪽으로 자꾸 신경 쓰면,
신경에 병이 와서 우울증, 신경과민증이 된다.
신경을 쓰되, 잘~~ 써야 된다.
<자기 할 일>이 무엇인지 신경 써라.
자기가 맡은 ‘그 센터의 할 일’에 신경 써라.
그러면 <할 일>을 하니, 엄청난 운명이 좌우된다.
신경 써야 교회도 개인도 ‘밭에 감춰진 보화’를 찾게 된다.”
<자기 신앙>과 <휴거>에 신경 쓰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께 신경 쓰고,
<섭리 인생>에 신경을 써야 ‘급히 해야 될 일’이 보입니다.
지금은 섭리사 전체가 <110일 특별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이때 더욱 신경 써서 깊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때를 맞기 전, 매우 중요한 시간입니다.
이때 더욱 신경 써서 기도해야, 그동안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110일 특별기도 기간>은
<주를 맞기 전, 마지막 큰 기도 기간>이기도 합니다.
이때 별 기도를 못 하고 끝나면 안 됩니다.
<기도>도 신경을 안 쓰면, 무슨 기도를 해야 될지 모르고 끝납니다.
무슨 기도를 해야 될지, 신경 써서 기도해야 됩니다.
<신경 써서 기도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자를 세워서 일체 행하게 하셨습니다.
이전에는 기도했어도 신경을 안 쓰고 하니 흐지부지 끝났지만,
이번 <110일 특별기도>는 정말 신경 쓰면서 해야 됩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
◎ <신경>에 대해 전할 말씀이 너무 많아서
나머지는 수요일과 금요일에 더 말씀하겠습니다.
수요일과 금요일에 또 만나요.
◎ (전하지는 말고) 교육국만 참고
11월 26일 주일말씀, 11월 29일 수요말씀,
12월 1일 금요말씀, 신학 특강 말씀 합쳐서
<신경과 생각>에 대한 책 엮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