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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7.12.03 (일)

171203 주일말씀(신경을 예리하게 하고, 마음으로 다스려라)

선포일
2017.12.03 (일)
성경 본문
잠언 4장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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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3일 주일말씀> 신경을 예리하게 하고, 마음으로 다스려라 본 문 잠언 4장 23-27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지난 주 주일과 수요일에는 ‘신경을 써라.’라는 주제로 <신경과 생각>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도 <신경>에 대해 더 말씀하려고 했는데, 날짜를 ‘오늘 주일’로 변경해서 오늘 그 말씀을 전합니다. 원래는 생방송으로 말씀해 주려 했는데, 교역자들에게 맡기니 신경 써서 전하기 바랍니다. ◎ 지난주에는 ‘신경 쓰는 것’에 대해 말씀했다면, 오늘은 ‘신경을 다스리는 것’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 오늘 말씀은 <오실 주를 맞는 무기>이며 <큰 계시>입니다.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최고 중요 부분  사람은 더우면 그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고, 또 추우면 다시 그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폭염으로 못 견디게 더울 때, 사람들은 “차라리 강추위가 낫다.” 합니다. 그러다 싸늘해지면 “추워서 못 견디겠다. 폭염이 낫다.” 하면서, “사람의 마음이 왜 이렇게 간사하지?” 합니다. 마음이 간사한 것이 아닙니다. 신경이 예리해서 그렇습니다. <신경>이 예리하니 신경이 느끼고, 그 반응이 뇌로 전해져서 그에 따라 생각이 판단되어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한 것입니다. <신경>이 무디면, 더워도 추워도 ‘마음과 생각의 예민한 반응’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신경>을 조금 죽이고 살면, 예리한 것을 못 느끼고, 좋거나 나쁜 것도 못 느끼고, 기쁜 것도 못 느껴서 아무렇게나 마구 행하게 됩니다. 그러다 다치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 <신경>에 ‘마음과 생각과 정신’이 들어 있으니, <신경 쓰는 것>에 따라서 생각하고 행하게 됩니다. <뇌신경>을 다 들어내면, ‘마음과 생각’도 없어집니다. 고로 <뇌신경>을 들어내면, ‘혼과 영’이 있어도 육이 전혀 못 느낍니다. <신경>은 <마음과 생각>을 발생시키고 <혼과 영>으로 연결합니다.  <육의 마음과 생각>은 모두 ‘뇌신경’에서 일어납니다. <신경>을 건드리면, ‘마음’에 그대로 전해져서 나타납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인간에게 ‘뜻’을 전달하시려면, <뇌신경>을 통해 하십니다. <뇌신경>이 ‘하나님의 뜻’을 받으면, <마음>으로 느끼게 됩니다.  자기가 하나님께 약속하고 마음 굳건히 먹고 결심했어도 어떤 환경에 처하게 되면 금세 마음이 변해 버립니다. 그래서 “왜 내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지? 약하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휴거의 삶을 살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잘하지? 나는 자신 없다. 이런 마음을 가진 나를 어떻게 신학생이라 하지? 차라리 포기할까?” 합니다. 그리고 포기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더러는 <자기 편한 길>로 가서 이성이나 동성을 즐기고, 술이나 담배도 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기도 합니다. 마음이 간사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신경>이 예민해서 그 반응을 ‘자기 마음’이 느끼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신경>을 다스려야 됩니다. <신경>이 느끼니 <자기 마음>만 원망하지 말고, ‘신경이 예민해서 이런 반응이 오는구나.’ 하고, ‘못 하겠다. 나는 안 된다.’ 하는 쪽으로는 신경을 꺼야 됩니다. 못 한다는 쪽으로 계속 신경을 쓰면 우울해지고, 두렵고, 부담되고, 포기하게 됩니다.  모래 한 알만 자기 몸으로 날아와서 건드려도 <뇌신경>이 알고 반응을 보입니다. <신경>을 잘못 쓰고 잘못 다스리면, ‘신경병’에 걸립니다.  대개 <신경>을 쓰면 머리가 아프니, 생각으로 ‘신경 쓰는 것’을 제재합니다. 그러니 신경은 안 써서 좋은데 생활 속에서 각종 것들을 못 느끼니, 제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 선생도 한번은 너무 머리 아픈 일이 있으니, 신경 쓰기 싫어서 무디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예리하게 해야 될 일>을 못 하게 되어 문제가 생기고, <하나님의 예리한 말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 <신경>은 참 예민합니다. 그렇다고 <신경>을 끊으면, 마비되어 ‘식물인간’이 됩니다. <뇌신경의 예리한 부분>은 - ‘걱정하고 근심하고 불안해하는 쪽’으로 쓰지 말고, - ‘영의 세계를 아는 데’ 써먹고, -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 써먹으면 됩니다.  <신경의 예리함>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 중의 하나’입니다. 고로 머리 아프다고 무디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경을 다스리며 조종하기 바랍니다. 알겠습니까? (아멘!) <잠시 쉬었다가>  신경이 예리하지 않으면, 그림도 대강 그리고, 글도 대강 쓰고, 말씀도 대강 전하고 대강 듣고, 식사도 한두 번 씹어서 그냥 넘기고, 운전도 대강, 일도 대강, 뭐든 대강대강 하고 넘깁니다. - 그러면 어떤 것도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 오히려 문제가 생깁니다. - 발전이 없습니다.  <운동>도 ‘신경의 감각’으로 하는 것입니다. <예리하고 섬세한 운동 경기>는 칼날같이 신경을 쓰고 느끼면서 해야 됩니다. 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신경이 무디면 - 못 느끼고 모르니, <하나님이 그때마다 행하시는 것, 주시는 것>을 뺏깁니다. 또 모기가 해 질 때까지 눈에 안 띄는 곳에 숨었다가 자기 피를 빨아 먹어도 신경이 무디면 못 느끼고 계속 당하듯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도 신경이 무디면 시간마다 해를 주는 ‘사탄’에게 계속 당합니다. 고로 <신경>이 예리하게 느끼고, <마음과 생각>에 ‘그 느낌이 전달’돼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반응하고 행하여 <하나님이 그때마다 행하시는 것>을 알고 같이 행하며, <하나님이 그때마다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교회에도 ‘신경이 칼날같이 예리한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예리하게 보고 말하지 않으면, 교회가 잠을 자도 모르고 썩어 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교역자들이 이들을 자꾸 제재하니, 주는 교회마다 파수꾼을 세워서 나팔을 불게 합니다.  선생이 10대 때, 우리 어머니는 나를 보고 말씀하시기를 “너는 삐쭉빼쭉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변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대답하기를 “어머니는 나이가 들어서 신경이 무디니 잘 못 느끼지만, 저는 10대라서 예민하게 잘 느끼니 <신경 반응>에 따라서 <마음>이 수시로 변하는 거예요.”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형들도 동생들도 안 그래.”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신경이 무뎌서 큰일 나요.” 하니, 어머니는 “나도 예민하지만, 너는 나보다 다섯 배는 더 예민하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경>이 ‘영적’이라서 강도가 세요. (히히)” 하며 웃었습니다. 결국 <예리한 신경과 생각>을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는 데 썼습니다. 모두 이같이 하기 바랍니다.  신경이 무디면, <자신>도, <생명>도 관리를 못 해서 사탄이 끌고 가도 모릅니다. 신경이 무디면,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도 못 느끼고 <하나님의 예리한 말씀>도 못 느낍니다. 그러나 <예리한 신경>을 ‘마음’으로 잘 다스려야 됩니다.  특히 10대는 보는 대로, 듣는 대로, 스치는 대로 ‘금방 반응’합니다. 고로 지도자들이나 부모는 이것을 알고, 무조건 잘못했다고만 하지 말고 잘 다스려야 됩니다.  더워도 추워도 못 느끼면, ‘죽은 세포’이며 ‘식물인간’입니다. 예리하게 느끼기, 그리고 다스리기입니다.  음식도 5관 중의 하나인 ‘혀’로 예리하게 느끼면, 신경의 감각 중의 하나인 <미각>으로 제맛을 느끼고 기쁩니다.  어른들은 “밥맛이 없다. 입맛이 없다.”라고 하지요? <뇌신경>도, <혀끝으로 맛을 느끼는 신경인 미각>도 무뎌지고 무감각해졌기 때문입니다.  <신경이 예리하여 잘 느끼는 것>이 ‘축복’입니다. 다만 ‘마음’으로 다스려야 됩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대로 거기 쏠려 빠지지 말고, 다스리며 ‘하나님과 성령과 주 안’에서 행하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 같은 맥락으로 계속 말씀하겠습니다.  무릎을 꿇고 조금만 기도해도 다리가 저리고 못 견딥니다. 그래서 하루는 내 다리에게 말했습니다. “다리야~ 너무 간사하다. 무릎 꿇은 지 몇 분이나 됐다고 그렇게 아파하냐? 아기냐? 그렇게도 운동해서 튼튼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약해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냐?” 했습니다.  잠깐 다리를 폈다가 다시 무릎 꿇고 기도하니, 5분도 못 가서 또 다리가 저리고 쑤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다리에게 말하기를 “기도를 못 하겠다.” 했습니다. 그랬더니 다리는 “그럼, 쇠다리로 맞춰라.” 했습니다. 그렇다고 다리를 뻗고 기도할 수도 없었습니다.  그때 순간 깨달아지기를 ‘운동했더니 <신경>이 살아나서 예리하게 느끼도록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는데, 왜 못 깨닫느냐.’ 했습니다.  그리고 하나님께 고하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세>보다 <온전한 기도>다. 온전히 기도하여라. 다리를 뻗고 기도하든지, 하늘로 매달고 기도하든지 <최고 목적>은 ‘기도’를 잘하면 된다.” 하셨습니다.  깨닫고, <말씀>을 받아 기록했습니다. 신경이 예리해서 다리가 아픈데 계속 다리에 고통을 주면, 아프고 신경 쓰여서 기도를 못 하니 오히려 손해입니다. 너무 심하게 무릎을 꿇다가 신경통에 걸리고 인대가 늘어납니다. 꼭 기도하되, 지혜 없이 하면 안 됩니다. <목적>은 ‘온전한 기도’입니다.  옛날에는 의자 없이 마루나 바닥에서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지혜’를 주시어 <의자>를 만들게 하시고, 모두 의자에 편히 앉게 하시고, 의자에서 기도도 하게 하셨습니다.  <불교인들>이나 <우상 종교인들>은 거의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불상 앞에, 우상 앞에 수백 번, 수천 번씩 절합니다. 그들은 편히 앉는다고 가부좌를 틀고 양반처럼 앉아 있지만, 계속 그 자세로 있다 보면 옛날 충청도 양반들같이 골반이 뭉개져서 몸이 성치 않습니다.  <양반다리를 하고 앉는 자세>도 사실은 ‘불편한 자세’입니다. <의자에 앉는 것>이 제일 편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도 <의자 형상의 장소>가 ‘명당’입니다. <월명동>은 지형 자체가 ‘백보좌 형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편한 자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 ‘자연성전’을 구상하시어 <시대 하나님의 궁>으로 쓰십니다.  때마다 다리가 저리거나 마음이 저려서 힘들면 다리를 뻗고 마음을 뻗으며 자유롭게 하면서, 그 시간에 <목적을 둔 것>에 신경 쓰고 그 목적을 이루기 바랍니다.  특히 <신경이 예민한 자들>은 오랫동안 <한 자세>나 <한마음>을 지속하는 것이 어려우니, 때마다 거기에 맞게 편히 대해 주며 풀어 주기 바랍니다.  <교인들>은 ‘신경’과 같습니다. <신경>이라 예민하고 예리합니다. 그런데 교역자가 이것을 모르고, “왜 그렇게 간사하냐? 변화무쌍하냐?” 하면 안 됩니다. 마음이 간사한 것이 아니라 <신경>과 같아서 예민하고 예리한 것입니다. 고로 편한 자리에 앉게 하듯이 편하게 해 주고 편히 말씀을 잘 전해 줘야 다른 데 신경 안 쓰고 말씀을 잘 듣고 은혜를 받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 자기가 하나님께 약속하고, 잘하겠다 굳건히 마음먹고 결심했어도 금세 마음이 변해 버릴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이 간사한 것이 아니라 <신경>이 살아서 반응하니 <마음과 생각>이 그 반응을 받고 바로 느끼는 것입니다. 고로 <예리한 뇌신경, 몸신경>을 억제시키거나 참고 견디기만 하면서 혹사시키지 말고, <예리한 신경>에 맞게 ‘환경의 치료’를 해 줘야 됩니다. 더우면 시원하게 해 주고, 추우면 따뜻하게 해 줘야 됩니다. 이것이 ‘최고로 유능한 치료법’입니다.  폭염인데 “왜 이렇게 못 참지? 마음이 간사하다.” 하지 말고, 찬물로 목욕을 해 주고 시원하게 해 주면서 <신경>을 잘 다스리며 대해 줘야 됩니다. 폭염에 너무 더운데 “견디면 연단된다.” 하면서 무력으로 대하면, <신경의 법칙>에 안 맞아서 뛰쳐나가게 됩니다. 올해 한국에는 100년 만에 폭염이 왔습니다. 더위로 수백 명이 죽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지구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고로 억제하거나 참기만 하지 말고, 꼭 환경을 바꿔 주면서 ‘환경의 치료’를 해야 됩니다.  이처럼 섭리사에서도 지도자가 <신경과 같은 교인들>을 못 다스려서 신앙이 죽은 자들이 많습니다. 힘들 때, 무조건 참으라고만 하면 안 됩니다. <신경>이 예리하여 <마음>이 반응하는 것이니, 내놨다, 들여놨다 하며 ‘환경의 치료’를 해 주면서, 신경을 잘 다스리며 대해 줘야 됩니다.  화분을 사다 놓으면 - <바깥>에만 놔둬도 시들고, - 그렇다고 <방>에만 놔둬도 파리해집니다. <꽃의 체질>에 따라서 ‘온도’를 맞춰 주며 대해야 됩니다. <밖>에 놔둬도 시들고, <방>에 놔둬도 파리해진다고 “꽃아~ 너 참 간사하다.” 하면서 계속 <밖>에만 두면 꽃이 금방 시들어 죽고, 그렇다고 <방>에만 놔두면 뿌리가 죽습니다. <꽃>과 같이 <사람>도 그러하다는 것을 알고, 특히 지도자들은 ‘다스리는 지혜’를 받아서 행하기를 바랍니다!  전자 제품이나 스마트폰은 ‘예민’합니다. 살짝만 터치하면 켜지고, 살짝만 터치하면 다른 화면으로 뒤바뀝니다. 예리해서 신경 쓰인다고 ‘무딘 것’으로 바꾸면, 한참 있다가 움직이니 오히려 답답합니다.  <사람>도 그러합니다. 신경이 무디면, 잘 못 느끼고 더디 행하니 답답합니다. 신경이 예리할수록, 잘 느끼고 행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예리한 자들’을 잘 쓰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행하심>도 잘 느끼고, <하나님의 예리한 말씀>도 잘 받아들이고 행하기 때문입니다. <신경의 예리함>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 노인들이나 신경이 무딘 자들은 뜨거운 물이나 뜨거운 찜질방에 들어가서 한참을 있습니다. 어린 자들은 신경이 예리해서 너무 뜨거워서 살이 익을 것 같다며 뛰쳐나옵니다. 그런데 부모들 중에는 어린아이의 심정을 모르고, 또 그 뜨거운 데로 끌고 가는 미련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때를 불려야 된다면서 아이를 껴안고 뜨거운 데 계속 있으면, 잘못하면 아이가 죽습니다. 이처럼 섭리사에서도 <나이 들어 신경이 무딘 지도자들>이 자기 방식대로 ‘어린 생명들’을 대하다가 잘 죽입니다.  신경이 예리하지 않으면, <세밀한 것>을 느끼지 못하니 ‘섬세한 작품’도 못 만듭니다. 이처럼 신경이 예리하지 않고 무디면, <자기 자신>도, <생명>도 ‘섬세한 작품’으로 못 만듭니다. 그래서 <신앙적으로 신경이 무딘 자>는 ‘차원’을 못 높입니다.  교회의 교역자가 신경이 무뎌서 감각이 없거나, 무리하게 걱정하는 쪽으로 신경을 써서 신경이 죽어 있으면 교회와 생명들을 예리하게 살필 수가 없습니다. 자꾸 운동도 하고 기도도 하면서 <뇌신경, 몸신경>을 예리하게 만들어야 교회 안의 상황을 예리하게 파악하여 문제가 안 생기게 서둘러서 행합니다.  신경이 무디면 - 썩어서 ‘냄새’가 나도 잘 못 느끼고, - ‘좋은 향기’가 나도 잘 못 느낍니다. 이와 같이 신경이 무디면 - ‘죄의 냄새’가 나도 잘 못 느끼고, - ‘의의 향기’가 나도 잘 못 느낍니다. 신경이 무디니, ‘육적인 것’도 ‘영적인 것’도 잘 못 느낍니다. 그래서 <신경>은 ‘예리’해야 됩니다. <신경>을 ‘예리’하게 하되, 다스리면 됩니다! <영적>으로 무디면, <신경>이라도 예리하게 하기 바랍니다!  <신경>은 쓸수록 칼날같이 ‘예리’해지고, <마음>은 다스릴수록 알고 행하는 데 ‘능통’해집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 신경 써서 ‘조금 더’ 말씀할 테니, 모두 조금 더 신경 써서 말씀을 전하고 듣기 바랍니다.  항상 <신경>이 ‘눈치’를 주고 ‘느끼게’ 해 줍니다. 그 반응을 <마음과 생각>이 받게 됩니다. 고로 하나님은 ‘영감, 직감, 예감, 죽고 사는 문제’를 <신경>을 통해서 전달하십니다. 먼저 <신경>이 느껴야 <마음>이 알고 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 <마음과 생각>은 ‘신경의 심정’을 모릅니다. <신경>에서 ‘감각’을 느끼지, <마음>에서 ‘감각’을 느끼는 것이 아니니 <마음>은 ‘신경의 심정’을 모릅니다. <신경>이 아프고 고통스럽고 괴로운데 <마음>이 계속 참으라고 하기만 하면 <신경>이 쭉 뻗어 버립니다. <마음>은 ‘신경의 반응’을 받으니, <신경>이 뻗으면 결국 <마음>도 쭉 뻗어 버립니다.  계속 무릎을 꿇고 있거나 양반다리를 하고 있으면, 다리의 신경이 눌려서 못 견딥니다. 이때는 <마음>이 나 몰라라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참지 말고, 바로 일어나서 풀게 해 줘야 됩니다. 계속 견디게 하면, 다리가 저리다 못해 굳고 신경 마비 증세까지 오게 됩니다. 그러다가는 결국 <신경에 의해 존재하는 마음과 생각>도 <신경>을 따라서 쭉 뻗어 죽어 버립니다.  <신경>은 머리카락 하나만 몸에 붙어도 간지럽고, 머리카락이 자꾸 찌르니 괴로워서 <마음>에게 괴롭다고 전달합니다. 그때 <마음>이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 하고 그냥 두면, <신경>은 더는 못 견딥니다. <마음>이 ‘신경의 반응’을 받고 <자기 몸>을 통해서 순간 손대서 머리카락을 떼 주면 되는데, 참으라고 하고 그냥 두면 계속 그쪽으로 신경이 쓰여서 다른 일을 못 합니다. 결국 <신경>이 괴로우니, <마음과 생각>도 괴로워집니다.  한번은 팔뚝이 벌레에 물린 것같이 뜨끔해서 보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때 <내 마음>이 “엄살떨지 마. 아무것도 없어.” 했습니다. 조금 있으니, 그 부분이 부어올랐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세균>이 내 팔뚝에 침범한 것이었습니다. 깨끗하게 씻으니, 해결됐습니다.  <신경>은 ‘눈’보다 더 예리합니다. <눈>으로 안 보여도 <신경>은 느끼고 압니다. <눈>은 착시할 때가 많지만, <신경>은 착각을 안 합니다. <눈>으로 안 보여도 세균으로 인해 가려움과 아픔을 느낀 것입니다.  <마음과 생각>도 착각을 많이 합니다. 고로 <예리한 신경>을 통해 배우고 알아야 됩니다.  <따르는 자, 교인>은 ‘신경’입니다. <교역자, 지도자>는 ‘마음과 생각’입니다. <교인들>이 힘들어하며 뭘 말하는데도 <지도자>가 계속 “참아라. 엄살떨지 마라.” 하면 안 됩니다. 계속 참고 견디게만 하면, 결국 그 생명은 넘어지고 죽게 됩니다. 진정 깨닫고 행하기 바랍니다.  기도할 때 무릎 꿇고 기도하게 한다고,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릎을 꿇으면, 얼마 못 가서 다리가 저리고 아픈 반응이 오는 것이 근본적입니다. 오히려 신경이 눌려서 고통스럽고 정신이 분산됩니다. 엄하게 하면서 <신경에 고통>을 주지 말고, 오직 <기도>에만 신경 써서 기도하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 <단체>를 다스리거나 <국가>를 다스릴 때, 따르는 자들을 엄하게 다스린다고 잘 다스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끄는 지도자>는 ‘마음과 생각’입니다. <따르는 자들>은 ‘신경’이라서 예민합니다. 고로 이끄는 자보다 약하고, 금세 좋거나 나쁘게 오고 가고, 금세 고통을 느끼며, 그때그때 변화무쌍하게 반응합니다. <신경>은 예민하니, <마음>같이 못 견딥니다. 지도자는 꼭 이것을 알고 대하고 다스려야 됩니다. <마음>이 ‘신경’을 잘 못 다스려서 <신경>이 못 견디면, 결국 <신경의 반응>인 ‘마음과 생각’도 못 견디고 쓰러집니다.  <교인들>은 ‘신경’이라서 잘 느낍니다. 고로 <지도자>는 교인들의 말을 무시하지 말고 잘 듣고 고칠 것을 고치고, 그들을 통해 행할 것을 행해야 됩니다.  어느 날, 내 방에 날파리 한 마리가 날아다녔습니다. <마음>으로 그렇게 날파리를 잡으려 해도 못 잡았습니다. <신경>을 통해서 하니, 한 번에 잡았습니다. <인간의 신경>은 ‘날파리’보다 뛰어나니 금방 느끼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도 그러합니다. <교인들>은 ‘신경’과 같아서 빨리 느낍니다. 고로 <교인을 통해서 할 것>은 그들을 통해서 해야 금방 해결됩니다.  <신경이 느끼고 말할 때> 들어야 됩니다. 이것을 소홀히 한 교회들은 실패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신경>은 ‘육체 세계’이고, <마음과 생각>은 ‘정신세계’입니다. <육>과 <신경>은 직접 겪고 느끼지만, <마음>은 ‘육’이 아니라서 직접 못 느낍니다. 먼저 <육>이 당하고 <신경>이 당하면, 그제야 그 반응으로 <마음과 생각>이 느끼고 알게 됩니다.  <지도자>는 ‘마음과 생각’이지 ‘육과 신경’이 아닙니다. 고로 <육과 신경>이 당하고 난 후에, 그제야 느낍니다. 그러니 문제가 일어나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합니다. 고로 ‘신경이 당하기 전’에 혼적으로 영적으로 먼저 알고 해결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신령하도록 깊이 기도해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의 생각을 받고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지도자가 행할 책임’입니다. <개인>도 ‘자기 육과 신경과 마음’을 두고서 이렇게 해야 됩니다.  뇌와 온몸에 <신경>이 쫙 깔려 있습니다. 고로 <신경>은 직접 겪고, 느끼고, 반응을 보입니다. <신경>이 반응을 보이며 못 견뎌 하는데도 <마음과 생각>이 그대로 두면 <신경>이 병들어 버립니다. 그러다 <자기 몸>도 <마음>도 극적인 고통을 받게 됩니다. 교회에서도 <신경과 같은 교인들>이 힘들어하며 못 견디는데도 <마음과 같은 지도자들>이 그대로 두니, 결국 <신경>도, <마음과 생각>도 파괴됩니다. 그래서 지도자를 교체하는 것입니다. <신경을 돌아보지 않는 마음과 생각>은 못 세웁니다.  <육>이 힘들다고 부르짖으면, <마음>이 그제야 압니다. <마음>이 미리 알면, ‘육’을 다스립니다. 고로 늘 기도하고 삼위와 일체 되어 <영적>으로 알아야 됩니다.  <미리 알고 해결하는 자>가 있고, <부딪히고 당하고서야 아는 자>가 있습니다. 이는 ‘땅과 하늘 차이’입니다. 이로써 ‘유능한 자’와 ‘무능한 자’를 식별합니다.  선생이 정신일도 한다고 계속 무릎 꿇고 일하니, 다리가 저려서 계속 주무르면서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을 뺏기고, 그로 인해 <생각>도 깊이 못 하고 <일>도 많이 못 했습니다. 무릎을 펴니 다리가 안 저렸습니다. <신경>을 잘 대했더니 괜한 것에 신경도 안 쓰이고, 다른 것에 <시간>도 안 뺏기고, <일>도 많이 하고, <더 깊은 영계>에 들어갔습니다.  특히 교역자들은 깨닫기 바랍니다! <신경 같은 교인들>을 잘 대해 주면 - 괜한 것에 신경이 안 쓰이고, - 결국 본인도 할 일을 많이 하게 되고, - 본인도 교인들도 더 편안해집니다. 알겠습니까? (아멘!)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 불같이 극으로 뛰다가 지치면, 힘들어서 못 견디고 위치를 벗어납니다. 고로 <유유히 양 떼를 몰듯 꾸준히 하는 것>이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하는 방법입니다.  섭리사의 성령집회는 그야말로 ‘불’ 같습니다. 집회 때 불을 받고 생활 속에서는 불이 꺼지니, 신앙의 리듬이 깨져서 방에서 잠만 자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쉼 없이 집회만 할 수도 없습니다. 전쟁터에서도 계속 총을 쏘며 싸우지 못합니다. 왜요? 계속 총을 쏘면, 총이 뜨거워져서 총을 쏴도 총알이 안 나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계속 극적으로 열만 내면, 지쳐 쓰러집니다. 성령집회 때 불 받고 확 전환한 후에는 유유히 양 떼를 몰듯 꾸준히 뛰어야 됩니다. 주는 늘 “꾸준히 하여라. 지구력 있게 하여라.” 합니다.  부흥강사도 계속 극적으로 뛰니, 지쳐 쓰러질까 걱정입니다. 치타가 아무리 빨라도 극적으로 뛰었으면, 좀 쉬어야 됩니다. <부흥강사>는 혼자 뛰고 <청중>은 계속 바뀌니, 1년, 3년, 7년, 10년을 해도 끝이 안 납니다. 기성교회는 부흥강사가 딱 한 번 집회를 하고 사라집니다. 계속하면 못 합니다. 섭리사는 부흥강사의 몸이 다 녹아질 때까지 써먹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지치면, 그 파트가 마비되어 큰일 납니다. 고로 성령집회 때 불을 받았으면, 그 불로 교회에서도 <자체적 부흥집회>를 하여 더 불을 일으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가끔씩 <성령집회>를 통해 <성령의 불>로 점검하고, 수리하고, 녹슨 것을 닦고, 기름칠을 해 주어 잘 돌아가게 해 주면 됩니다. 알겠습니까?  12월 8일, 이번 주 금요일에도 <성령집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부흥강사에게 생방송으로 하게 하려다가 계속 맡긴 일들을 하면서 금요일에 또 집회를 해야 하니, 오늘 설교는 각 교회 교역자들에게 맡기고 <신경을 예리하게 하는 말씀 집회>를 자체적으로 하게 했습니다.  오늘 말씀 - 신경을 예리하게 하고, 마음으로 다스려라. 하나님은 인간에게 ‘완벽한 것 두 가지’를 창조해 주셨습니다. <육>으로는 ‘신경’이고, <영>으로는 ‘영체’입니다. 이 두 가지를 제대로 못 쓰면, 고통을 당하고 손해를 봅니다. 이 두 가지를 제대로 쓰면, 영도 육도 이기고 얻고 성공합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 <말씀 후 봉헌 하고, 교회 광고 시간에 광고> ① 지난 주 주일말씀, 수요말씀, 오늘 주일말씀 외에 신학 특강, 가정국 특강으로도 <신경과 생각>에 대해 ‘특집 말씀’을 보내 주었으니, 그 말씀도 모두 읽어 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신경과 생각에 대한 말씀>이 ‘총 네 편’입니다. 교육국은 <네 편의 말씀>을 ‘하나의 책’으로 엮기 바랍니다. 신학에서는 이 말씀으로 따로 교육도 해 주기 바랍니다. ③ 오늘까지 <120곡의 새 노래>를 작곡 작사했습니다. 이 중에서 20곡은 이전에 만든 곡입니다. 올해 5월 3일에 옛 노래는 폐지하고 새 노래를 만들어 부르자고 한 후부터 지금까지 100여 곡을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40여 곡은 교회로 내보내고, 10여 곡은 더 신경 써서 제작하여 앨범으로 내보냈습니다. 노래를 한꺼번에 계속 내보내니, 모두 노래를 숙지하지 못하고 다 부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 차이를 두고 내보내고 있습니다. 20여 곡을 또 신경 써서 제작해서 크리스마스쯤에 내보내고, 나머지 20여 곡은 연초에 내보내겠습니다. 그 안에 계속 곡을 쓸 거라서, 미리 내보낼 곡은 급하게라도 만들어서 주겠습니다. <이미 나간 새 노래들>은 부지런히 배우고 외우고, 매일 부르고 다니기 바랍니다. 곡마다 숨은 사연과 뜻이 많은데, 다 설명을 못 하고 있습니다. <노래 가사 속>에 ‘사연과 뜻’이 있으니 신경 써서 들으면 ‘그 사연과 뜻’이 느껴지고, 신경 써서 들으면 ‘깊은 심정과 기쁨’으로 부르게 됩니다. ② 12월 8일 금요일에는 <생방송 성령집회>가 있습니다. <성령집회>를 통해 무뎌진 신경을 예리하게 하고, 자신과 교회를 점검하고, 수리하고, 녹슨 것을 닦아 내고, 기름칠을 해서 잘 돌아가게 해 줘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