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7.12.06 (수)
171206 수요말씀(하나님은 공의로 행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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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06 (수)
- 성경 본문
- 잠언 11장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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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06-수요말씀(하나님은_공의로_행하신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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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6일 수요말씀>
하나님은 ‘공의’로 행하신다
본 문 시편 103편 17-18절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공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잠언 11장 19절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
잠언 12장 28절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잠언 13장 6절
『<공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을 패망하게 하느니라』
잠언 14장 34절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잠언 15장 9절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110일 특별기도 기간>부터 선생은 더욱 많은 것을 겪으면서
그만큼 더욱 깊이 기도하며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모든 말씀이 그러하지만, 이 기간에 주는 말씀은 정말 값집니다.
특히 12월에는 주일, 수요일, 새벽, 금요일까지
<말씀>을 퍼부어 줄 것입니다.
<금요말씀>을 가지고서는
<교회 자체적 부흥집회>를 꼭 하기 바랍니다.
말씀이 깊고도 깊습니다.
◎ 퍼부어 주는 모든 말씀이 <주의 관심과 사랑>임을 알고,
모두 <사랑과 말씀>으로 무장하여
삼위와 주께 딱 붙어 ‘2017년 연말’을 멋있게 보내기 바랍니다.
그러면 <새해>가 밝아 오고, <희망의 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 오늘은 ‘하나님은 <공의>로 행하신다.’라는 주제로 말씀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 먼저 오늘 <잠언 6개>를 전해 주면서
오늘 말씀의 방향을 알려 주고, 이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하나님의 생각>대로 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하면 괴롭다.
<하나님의 뜻>대로 생각해야 괴롭지 않다.
<하나님>은 버리시는데, <자기>는 가지고 있으면 괴로운 것이다.
<처음에 정상일 때>는 ‘뜻이 있는 것’이었지만,
<책임을 못 했을 때>는 ‘버리게’ 된다.
그것을 알고 하나님과 같이 버려야지, 안 버리면 자기가 괴롭다.
<뜻>은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다.
그러나 책임을 못 하면, ‘본래 뜻’이 돌아간다.
<구원>도 처음에는 ‘뜻’이 있는데,
- 책임을 하면 그 뜻대로 되고
- 책임을 못 하면 뜻이 돌아간다.
<잠시 쉬었다가>
◎ 이제 말씀하겠습니다.
섭리인 중에서도 처음에는 ‘뜻’이 있으니,
책임을 하면 ‘사명’을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사명을 받고 열심히 하니,
<주>도 기쁘고 <그 당사자>도 기뻤습니다.
그러다 ‘이성’으로 무너졌습니다.
잡아 줘도 돌이키지 않고 ‘그 길’로 갔습니다.
그때는 ‘썩은 과일’같이 되었습니다.
고로 <온전한 곳>에서는 ‘상품으로 받지 않는 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버리시는데, <선생>은 안 버리니 괴로웠습니다.
<내 생각>대로 하니 괴로웠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서 ‘썩은 사과’ 버리듯 버리니,
괴로움이 사라졌습니다.
<썩은 과일>이나 <썩은 음식>을 방에 계속 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썩은 냄새> 때문에 안 버리면, 괴롭습니다.
<자기 마음과 생각과 행실>을 ‘죄’로 썩게 하지 말아요.
썩으면, ‘주인’이라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과일>도 ‘일부’가 썩으면, ‘썩은 만큼’ 잘라 버립니다.
<썩은 것>은 ‘복직’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남은 것>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사람의 다리>도 썩으면 ‘썩은 부위’를 잘라 내고,
<나머지 지체>로 삽니다.
과일이 ‘다’ 썩으면, ‘다’ 버려야 됩니다.
썩었으니, 절대 ‘복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생도 그러하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썩은 것>은 다 버리면서 역사해 오셨습니다.
<썩은 것>은 ‘복직’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성장기 때 타락함’으로
마치 ‘뿌리 뽑힌 나무’처럼 되었습니다.
<뿌리>가 썩어서 뽑혔으니 ‘복직’이 불가능합니다.
나무도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찢어졌으면,
<나머지 나뭇가지들>만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뿌리’가 뽑혔으면, 죽습니다.
<자기 신앙>도 그러합니다.
고로 ‘신앙의 뿌리’가 뽑히지 않게 잘해야 됩니다!
죄가 있으면, 회개하여 온전하게 해야 됩니다.
<온전하지 못한 것>은 결국 썩게 됩니다.
그리고 <영의 세계>에 가면 확~ 표가 납니다.
<육의 세계>에서는 정죄하지 않고 잘 대해 주니 표가 안 나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관리하지 않아서 부러진 나무’처럼
확~ 표가 납니다.
주도 정죄하지 않고 다만 <말씀의 퇴비>를 하면서 관용으로 대하니,
스스로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깨끗하게 하기 바랍니다!
자연재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합시다.
“자연재해로 인해 나뭇가지가 부러졌는데 어떻게 억지로 하냐?
어쩔 수 없지 않냐.” 하지만,
철사나 줄로 나뭇가지를 미리 매 놨으면, 100% 안전했습니다.
100% 완전하게 해야 완전합니다.
<자기 신앙>도 그러합니다.
말씀의 줄, 기도의 줄, 신경과 마음과 행실의 줄로
늘 삼위와 주께 미리 매 놓고 살면, 바람이 불어도 완전합니다.
<완벽하게 한 것>만 ‘작품’이 되어 있습니다.
<휴거 인생 작품>도 그러합니다.
<휴거의 핵>은 ‘깨끗함과 사랑’인데,
이성과 동성으로 죄를 범한 자들은
가지가 부러진 소나무 같아서 ‘최고 걸작’은 안 됩니다.
영계에서 다 표가 납니다.
고로 육계에서 <주>가 선택해도
하나님과 성령께서 여건을 틀어 달리 대하십니다.
<완전>해야 ‘대(大)걸작’이 됩니다.
<자연성전의 표상 솔들>이라도 가지가 부러지면,
<간판>은 가지고 있어도 <아름답고 흠 없는 작품>은 못 됩니다.
<인생>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것>만 ‘절대 인정’하십니다.
그래야 ‘공의로 따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은
<절대 깨끗하고 흠 없는 것>으로 정하시고 세우십니다. 아멘!
이 땅에서도 다들 ‘보는 눈과 생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공의’입니다.
경주를 할 때도 뛰다가 넘어지면 자기 책임으로 보고,
빨리 들어온 순서대로 1, 2, 3등을 줍니다.
그래야 ‘공의’입니다.
과일도 크고 빛나고 예뻐도 ‘흠’이 있으면, <상품>에서는 뺍니다.
과일이 <상품>으로 나가려면, 무엇보다 ‘흠’이 없어야 됩니다.
그래야 ‘공의’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공의’로 행하십니다.
<절대 흠 없고 깨끗한 것>으로 정하시고 세우십니다.
성경 역사를 보면, 6000년 동안 그렇게 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공의’라는 말이 200번이 넘게 나옵니다.
<공의로 행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기 바랍니다.
<공의>는 또 이와 같습니다.
가령 <죄>를 지었으면, ‘형벌’을 받으면 그 죄는 끝납니다.
<세상 죄>도 ‘메시아가 대신’했으면, 그 죄는 끝난 것입니다.
이것이 ‘공의’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공의’로 행하십니다.
가령, 사고가 나서 얼굴에 ‘상처’가 났다고 합시다.
<상처 난 얼굴>은 ‘온전하다’ 할 수 없습니다.
그 상처가 온전히 다 나았으면, 그때는 ‘온전한 자’에 들어갑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합시다.
그 나무는 ‘온전한 나무’라 할 수 없습니다.
나무가 20년 동안 커서 그 자리에 가지가 다 나서 채워지면
그때는 ‘온전한 나무’에 들어갑니다.
고로 <죄>가 있으면,
빨리 ‘회개’하고 ‘옳은 행실’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건을 세우고 올라오면, ‘온전한 자’가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현대 사회는 <무분별한 이성 교제>도 문제이지만,
<동성연애>가 너무 많아져서 문제입니다.
섭리사에서도 ‘동성연애자들’이 몇 명 있어서,
이를 두고 기도했습니다.
영계에서 보니, 역시 ‘죄인’이 되어 묶여 있었고,
<거하는 주관권>이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공적인 일, 잘되는 데’서 빼시고,
회개하기를 기다리며 ‘일반적인 일’만 시키셨습니다.
그로 인해 <휴거>도 ‘기대하는 위치’에 오르지 못하고 있었고,
겨우 ‘하(下) 단계의 영’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자들은 계속 회개하지 않고 더 하니,
<휴거 선>에서 더 내려와 ‘휴거를 상실’하기도 했습니다.
<영의 세계>는 마치 저울에다 머리카락까지 달듯이
<죄>도 <의>도 다 달아서 계산합니다.
그러나 <육의 세계>에서는 별 표가 안 납니다.
그러나 분명! <육신>이 행한 그대로 ‘영’이 타격을 받습니다.
꿈에 <내 혼>이 어디를 가는데,
길옆에 ‘쓸 만한 것’이 있어서 주웠습니다.
그리고 길을 가는데 <한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았고,
잠시 후에 뒤에서 <큰 황소>가 오더니 뭘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황소가 ‘내가 주운 것’을 보더니, 나를 물었습니다.
이때 옆에 있던 할머니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그 물건’을 가져다가 집어던져서
그것을 이 사람이 주운 거야.” 했습니다.
그랬더니 황소가 말하기를
“그 사람이 내 것을 훔쳐 간 것이다.
그러다 내게 쫓기니, 그놈이 버리고 간 것이다.” 했습니다.
이때 내가 황소를 쓰다듬어 주니, 더 이상 물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주운 물건’을 다시 돌려줬습니다.
그런데도 황소는 나를 끌고 갔습니다.
그러다 황소는 자기 외양간으로 가고,
나는 다른 길로 나왔습니다.
이처럼 <주운 것>이라도 ‘내 것’이 아니면,
<주인>이 나타났을 때 걸리는 것이 ‘원리, 원칙’입니다.
<하나님의 법>도 그러합니다.
죄 있는 자가 ‘회개’하지 않았는데,
계속 <그 위치, 그 자리>에 놓고 똑같이 사랑해 주고 대하면
그것은 ‘공의’가 아닙니다.
반드시 <회개>로 깨끗하게 해야 됩니다.
그래야 ‘온전한 자’로 대합니다.
이것이 ‘공의’입니다.
이성 죄나 동성 죄는 결국 자기를 망하게 합니다.
마치 ‘그물망에 물고기가 걸리듯’ 다 <하나님의 법>에 걸립니다.
영의 세계에서 ‘이성과 동성 죄를 범한 자의 영’을 봤는데,
사람들에게 잡혀가는 <예쁜 물고기>로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그 예쁜 물고기를 잡아서 찌개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찌개로 만들기 전에 그 물고기를 잡아갈 때 돈을 주고 사니,
그제야 벗어났습니다.
<죄를 지은 자들> 앞에 주가 이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가르치며 깨닫게 한 <꿈 계시>였습니다.
이성 죄나 동성 죄가 있는데 ‘목사’라면,
계속 그 직급으로 불릴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공적자’라도, ‘사명을 하는 자’라도 그러합니다.
회개하여 용서받고 조건을 세우고 근신한 후에 복직될 때까지
<목사>가 아닙니다.
회개하고 근신하고 조건을 세워 복직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죄’는 없어지고 ‘온전한 자’가 됩니다.
이성 죄, 동성 죄가 있는데
<설교 단상>에 서거나 <영광 무대>에 서는 자들은
스스로 자제하기 바랍니다.
누가 몰라도, 누가 안 봐도
스스로 양심이 말하는 대로 자제해야 됩니다.
그리고 어서 ‘회개’하고 ‘근신’해야 됩니다.
그래야 ‘빨리 복직’됩니다.
회개는 안 하고 모르는 척하고 계속 단상에 서면
- 하나님도 성령님도 심정이 상하시고,
- 아는 자들도 심정이 상합니다.
특히 <하늘을 위해 산다는 자들>은
하늘 앞에 서약하고 사니 정말 잘해야 됩니다.
그 약속을 믿고 하늘 위해 사는 것을 허락했으니,
약속을 지킨 만큼 ‘신뢰 있는 신부’가 됩니다.
술, 담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연이 있어서 술을 먹고 담배를 피웠어도
하나님은 ‘그 사연의 내용’을 안 보고 저울에 달아 보십니다.
모두 <하나님의 법>에 걸리면 그 직급은 상실이 되고,
온전해지면 그때 다시 세우고 선정돼야 합니다.
과일에 ‘흠’이 있으면 어떤 일이 있어서 흠이 생겼는지는 안 보고
무조건 ‘상품’으로는 내놓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술 먹고 담배를 피우면,
술 안 먹고 담배를 안 피울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스스로 양심의 소리를 듣고, 회개하고 자제하기 바랍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신부>로 선택하는데,
이런저런 사정이 있다고 ‘흠 있는 자’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절대 ‘공의’가 될 수 없습니다.
고로 절대 <법>과 <조건>으로 ‘분별’하시고,
<의>를 가지고 ‘공적인 자격’을 보십니다.
매끈한 조약돌에 ‘흠’이 있으면
자기가 갈아서 ‘흠’이 없게 만들듯이,
자신에게 ‘죄’가 있으면
자기가 ‘회개’하며 행해야 됩니다.
조약돌을 갈면 ‘흠’은 없어지지만,
만일 ‘흠’이 크다면 갈아 낸 만큼 돌이 작아집니다.
고로 처음에 죄를 지었을 때 회개하기,
죄가 점점 더 커지기 전에 회개하기,
죄를 반복해서 짓다가 생활이 되기 전에 회개하기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전시회 때 작품을 고르는 자들>은
‘흠이 없고 완벽한 것’을 고릅니다.
하나님도 주도 각 센터마다 ‘흠 없는 자’를 뽑아서 쓰십니다.
아무리 <주가 쓰고 싶은 사람>이 따로 있어도
<하나님>이 보시고 “이 사람이 흠 없는 작품이다.” 하시면,
그 자리에는 ‘그 사람’을 써야 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표상을 뽑으실 때>는
마치 100m, 1000m 뛰기를 해서 1, 2, 3등을 뽑듯 뽑으십니다.
그는 ‘본’이 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들 ‘보는 눈과 생각들’이 있으니, 아무나 뽑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공의’입니다.
저마다 공적대로, 실력대로, 사연대로 뽑습니다.
또한 저마다 만든 대로 뽑습니다.
고로 온전히 행하며 자기를 흠 없이 만들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책임을 다하고 잘해서 ‘공적 사명’을 맡겼는데
하나님과 주께 쓰여질 때
이성, 동성, 술, 담배 등 ‘눈에 거슬리는 죄’를 지으면,
보는 자들의 눈에 거슬리니 ‘그 사명의 위치’에서는 못 씁니다.
누가 알기 전에, 스스로 근신하기 바랍니다.
끝 날에는 하나님이 다 드러내시니,
그 전에 <회개>와 <옳은 행실>로 ‘죄를 없애기’입니다.
저마다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데’ 전념을 다해야 됩니다.
<명예>나 <청중 가운데 나타나 일하는 것>이 ‘큰 것’이 아닙니다.
먼저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일>이 ‘최고로 큰일’입니다.
자기를 깨끗하게 만들어 놓으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보시고 통과시키면 귀히 씁니다.
어떤 사람을 ‘한 위치의 공적 일’에 쓰려는데,
이상하게 계속 빗나갔습니다.
<주>는 원하는데, <상황>이 계속 틀어졌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 이성 문제가 있었습니다.
<주>는 속였지만, <하나님>은 아시고 트신 것입니다.
대개 ‘자기 이성 문제’를 알게 되면,
자기가 사명을 못 할까 봐, 자꾸 숨깁니다.
<주>는 살리는 것만 중심하니, 믿고 넘어가 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성령님>은 아시고, 상황을 틀어 행하십니다.
처음에 <주>를 속여 ‘사명’을 받았어도
후에 드러나면 바로 바꿉니다.
자기는 <자기 죄>를 아는데 ‘숨긴 자, 속이는 자’는
계속 죄를 짓게 되어 마치 빚이 계속 불어나듯 <죄>가 더 커집니다.
후에 드러나면, ‘근신 기간’만 길어져서
회개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에 따른 ‘형벌의 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흠>이 있으면 자기가 아니, ‘회개와 근신’을 해야 됩니다.
<죄>가 더 불어나기 전에 <흠>이 더 커지기 전에 회개와 근신입니다.
그리함으로 ‘빠른 복직’을 해야 됩니다.
깨끗해야 ‘성령’이 오십니다.
더러운 방에는 안 들어가듯, <더러운 몸과 생각>에는 안 가십니다.
사람들도 ‘더러운 손으로 만든 것’은 먹지도 않습니다.
악수도 꺼립니다.
흠 없이 정결하고 깨끗해야 됩니다.
그래야 감출 수 없이 <육>도 <영>도 빛이 납니다.
특히 <영>은 더 찬란하게 빛이 납니다.
그 빛을 보고, 모두 놀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마지막으로 <섭리사 무대에 서는 자들>과 <목회자들>을 교육하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섭리 가수나 예술인들 중에서 ‘위치’를 줬다고,
이성끼리 서슴없이 지내는 자들이 있습니다.
섭리인들이 보고, 정말 은혜가 안 된다고 말합니다.
특히 ‘여자 몇 명’입니다.
<영화로운 위치>를 줬으면 잘 지켜야지,
<위치 떠난 천사>같이 자기 위치를 안 지키다가는 위치가 바뀝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위치가 중하다.” 하시며,
<좋은 법>을 주셨습니다.
그래도 자기 좋은 대로 위치를 떠나 행하면,
그런 자들에게는 ‘새 노래’를 안 줍니다.
앞으로 <대중 곡>은 ‘섭리사 전체’에 주고,
<인기 곡>은 ‘정말 흠 없이 하는 자, 선정된 자’에게만 줍니다.
<귀한 것을 모르고 사는 자>에게는 ‘귀한 것’을 안 줍니다.
앞으로는 더욱더 ‘흠 없는 자’를 선별하여
<영광의 자리>에 세웁니다.
<노래>도 ‘말씀’입니다. ‘곡조 있는 말씀’입니다.
<말씀 단상에 서는 자>가 ‘흠’이 있으면 되겠습니까?
이와 같이 <영광의 단상에 서는 자>가 ‘흠’이 있으면 되겠습니까?
그런 자를 ‘영광의 자리’에 세우는 것은 ‘공의’가 아닙니다.
<섭리사 새 말씀>이 중요한 만큼, <섭리사 새 노래>도 중요합니다.
그것이 ‘말씀을 전하는 한 파트’입니다.
지금까지 ‘한두 가지’만 잘하면, ‘가수’로 뽑았습니다.
그렇게 하니, 수준이 낮습니다.
모두 배우고 해야 됩니다.
첫 번째로 ‘정성과 신앙’을 보고,
두 번째로 ‘실력’을 봅니다.
<전문 가수>가 아니더라도 ‘부흥강사’처럼
- <노래를 받을 만한 조건>이 되고
- 어느 정도 <노래 실력>이 되면
선생이 ‘그 사람에게 맞는 곡’도 써 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가수’가 됩니다.
벌써 부흥강사에게 ‘몇 곡’을 써 줬습니다.
그중에 ‘님을 찾았네’라는 곡이 있습니다.
부흥강사가 행한 대로 ‘가사와 곡’을 썼습니다.
뮤지컬 식으로 노래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께서 입력해 주시는 대로 곡을 쓰니,
계속해서 ‘더 좋은 곡, 더 발전된 곡’이 나오고 있습니다.
과일나무의 나뭇가지들이 부러지면,
<나머지 가지>에서만 ‘열매’가 열립니다.
나무가 수년간 크면,
가지가 다시 자란 만큼 ‘열매’를 열게 됩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흠 있는 자들은 다시 온전하게 하기 바랍니다.
온전하게 한 만큼, 그 센터에서 귀히 쓰입니다.
<목회자>도 처음에 잘하겠다고 해서 사명을 맡겼는데,
목회를 시작했는데도 제대로 안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격 문제’로 뺐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열심히 안 하고,
뺀다고 하니 그제야 잘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교인들과 생명들은 어떻게 합니까?
목회자가 제대로 안 하는 만큼, 교인들이 죽어 갑니다.
<목회할 때>, 그때 잘한다는 소리가 하나님에게까지 상달되고,
주의 귀에까지 들려와야 됩니다.
반면에 <잘하는 목회자들>은
이제 교회가 합봉을 하고 새 성전을 얻어서 더 커졌으니,
<새 교회, 큰 교회>를 맡깁니다.
특히 <목회자>는 ‘실력’이 있어야 됩니다.
그 <실력>은 ‘크게 다섯 가지’입니다.
첫 번째, 주와 일체 돼야 합니다.
두 번째, 설교를 잘해야 됩니다.
세 번째, 운영을 잘해야 됩니다.
네 번째, 전 교인들과 교회 지도자들과 일체 돼야 합니다.
다섯 번째, 선교를 잘해야 됩니다.
네 번째까지 잘하면, ‘선교’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하나 더 말하자면, ‘이성 문제’나 ‘생명 관리’나 ‘조직’ 등
두루두루 신경 써야 됩니다.
이것까지 잘하는 목회자는 ‘정말 유능한 자’입니다.
<잘하는 자>와 <못하는 자>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도
실전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운동선수들도 <잘하는 자>와 <못하는 자>는
겉으로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올림픽에 나가면 <잘하는 자>는 ‘메달’을 따고
<못하는 자>는 ‘빈손’으로 옵니다.
이래서 교인들이 ‘더 잘하는 목회자’를 원하고 찾습니다.
주가 말씀합니다.
“지도자는 노력해라. 배워라. 지혜를 가져라.
지도자는 배우지 않으면 ‘내놓을 것’이 없다.
그런데 지도자들이 ‘배우는 데에 있어 지혜’가 없다.
<배울 수 있는 실 가닥 같은 통로>라도 찾아서, 그 길로 배워라.
이 인봉을 풀어라.
<기도하는 목회자, 노력하는 목회자>는 ‘표’가 난다.
교회 전체가 힘내서 하고, 운영이 잘되고, 선교도 잘된다.
제때, 제 위치에서 뛰고 달려라!”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