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7.12.10 (일)
171210 주일말씀(하나님의 법은 사랑 법이다)
- 선포일
- 2017.12.10 (일)
- 성경 본문
- 고린도전서 13장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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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10-주일말씀(하나님의_법은_사랑_법이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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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주일말씀>
<하나님의 법>은 ‘사랑 법’이다
생명을 살리려면, 이같이 하여라
본 문 고린도전서 13장 13절
◎ <12월 주일말씀, 수요말씀, 금요말씀, 새벽말씀>은
특히 더 신경 써서 ‘성령’으로 잘 전하여
듣는 자들이 <말씀>으로 마음을 일으키고 온전히 행하도록 해 줘야 된다.
이것이 ‘단상에 서는 설교자들의 책임’이다.
선생이 금식 중에 깊이 기도하며 받은 말씀이고,
조은이 그 많은 일 다 감당하면서 몸져누우면서까지 귀히 정리한 말씀이다.
마지막으로 록화 목사, 홍빛 목사까지 한 번 더 수고해서 내보내는 말씀이다.
이제 나머지는 ‘설교자’에게 달려 있다.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지금은 <110일 특별기도 기간>입니다.
선생은 현재까지 두 차례 금식을 하며 기도했습니다.
선생이 해야 하니 했습니다.
밖에서 뛰고 달리는 지도자들은 무리하게 금식하면 안 됩니다.
잘 먹으면서 뛰어야 쓰러지지 않습니다.
선생은 금식 중에 깊은 기도를 하면서 더 많은 말씀들을 썼고,
섭리사 각 부서마다 사연 편지를 많이 써서 보내 주고,
사연이 담긴 시도 써서 보내 주면서 계속 소식을 전했습니다.
◎ 오늘은 두 번째 금식을 할 때
<금식 7일째 되는 날 쓴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내용은 “섭리사 모두는 생명을 이렇게 다스려라.”라는 말씀입니다.
<전초>
하나님과 성령께서 오늘 말씀을 주시기 전에,
먼저 해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한 번 전해 주고 바로 오늘 말씀을 해 줄 테니,
귀를 기울여 잘 듣고 마음에 깊이 새기기 바랍니다.
<자막으로 보여 주면서, 하나님과 성령의 말씀을 전한다.>
“<둘>이면 언젠가는 갈리게 된다.
삼위와 하나 되어 묶여 있어야, 언제든 갈리지 않는다.
삼위와 주와 일체 되어 묶이기다.
<둘>이어도 ‘묶인 것’은
<하나>가 가면 <다른 하나>도 같이 따라간다.
묶였는지, 안 묶였는지는 ‘움직여 보면’ 안다.
묶였다면 따라가고, 안 묶였다면 갈린다.”
<삼위와 주와 묶인 자>라면,
삼위와 주가 이리로 저리로 움직여도 ‘묶여 있으니’
절대 갈리지 않고 같이 따라갑니다.
<삼위와 주와 묶이지 않은 자>라면,
삼위와 주가 이리로 저리로 움직일 때 ‘묶여 있지 않으니’
따라가지 않고 갈리게 됩니다.
이를 기억하고, 2017년 삼위와 주와 묶여서
<2018년 희망의 해>를 희망과 사랑으로 맞이하기 바랍니다.
<말씀 시작> ‘’ 표시는 보다 중요한 부분
◎ 이제, 오늘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처음부터 중요한 말씀을 하니, 잘 듣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하나님이 정한 진리>가 있는지 보아라.
보고 듣고 잘 판단하여, 오직 <참진리>를 따라서 하여라.
<진리>와 달리 하면, 애태우며 고생만 하고 끝난다.” 하셨습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정한 진리>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성경>이 아니어도 <진리>가 ‘세상을 운영’합니다.
그 <진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진리’입니다.
<진리>가 세상을 운영하니,
<하나님의 진리>는 세상에 꽉 차 있습니다.
잘 보고 듣고 판단하여,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참진리>를 따라서 살아야 됩니다.
<진리>와 달리 하면, 애태우고 고생만 하고 끝납니다.
<성경>은 옛 선조들과 그 시대 사람들을 인도할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행하신 말씀입니다.
<그 말씀>만 가지고서는 ‘이 시대 하나님의 진리와 법’을
다 실천하지 못합니다.
지금 이 세상은 ‘발달된 세상’이라 옛날과는 딴 세상입니다.
고로 <그 옛 말씀>만 반복해서는 목적을 다 이룰 수 없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이 시대를 사는 자들’에게
또 ‘이 시대’에 맞게 말씀하십니다.
시대가 발달됨에 따라서 <세상 법>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육과 영의 구원에 대해서는 <이 시대 보낸 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시대 법>을 따르며 <이 시대 새 말씀>을 듣고 행해야
<이 시대>에 맞게 실천하며 목적을 이룹니다.
<잠시 쉬었다가>
◎ 계속해서 하는 말씀을 잘 듣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오시고 <신약의 때>가 되니,
하나님은 더 이상 <구약 법>으로 그 시대를 운영하지 않으셨습니다.
새롭게 <신약 법>을 주시며, 그 법으로 시대를 운영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약의 때>가 와서 진행 중입니다.
그중에서도 지금은 <창조 목적을 이룬 휴거의 때>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를 운영하실 때
<구약 법>으로도 안 하시고 <신약 법>으로 안 하십니다.
<이 시대에 해당되는 역사>를 펴야 하니,
<이 시대에 해당되는 법과 진리>를 주고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개인>을 인도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맞춰서 합당하게 쓰시고
<그때그때> 합당하게 인도하며 행하십니다.
<각 사람>은 마치
<글자>마다 ‘획’이 다르고 ‘모양’이 다르듯 다릅니다.
한 번 보세요.
<사슴>과 <토끼>라는 글자는 ‘획’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지요?
이와 같이 <각 사람>도 다 다릅니다.
고로 하나님이 인도하실 때는 다 똑같이 하지 않으시고,
<그 사람>에 맞게 ‘그때그때’ 합당하게 인도하십니다.
고로 아무에게나 <성경의 법>을 다 적용하면 안 됩니다.
그러다가는 오히려 생명들을 죽이게 됩니다.
<구약 법>은 ‘구약 중심’이고,
<신약 법>은 ‘신약 중심’입니다.
<성약>에서는 ‘구약과 신약의 법’을 중심하면 안 됩니다.
구약 법, 신약 법 중의 <기본법>만 행하고,
우리는 <이 시대 중심의 법>을 지켜야 됩니다.
사람도 저마다 대하는 법이 따로 있습니다.
<타인 대하는 법>이 있고, <형제 대하는 법>이 있고,
<자기 애인 대하는 법>이 있습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저마다 대하는 법이 완전히 다릅니다.
고로 <타인 대하는 법>을 ‘형제’에게 쓰면 안 되고,
<형제 대하는 법>을 ‘자기 애인’에게 쓰면 안 됩니다.
그러면 완전히 실패합니다.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종 법>을 ‘신약의 자녀들’에게 안 쓰시고,
<신약의 자녀 법>을 ‘성약 신부들’에게 안 쓰십니다.
<성약의 신부들>에게는 ‘애인, 신부 법’을 쓰십니다.
이 시대는 <신부들>이니 ‘사랑의 법’을 쓰십니다.
이것을 알고, 모두 ‘옛 법’을 벗어나야 됩니다.
단, <구약과 신약의 기본적인 법>은 누구나 행해야 됩니다.
-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라.
- 우상을 만들지 말아라.
-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아라.
- 안식일을 지켜라.
- 부모를 공경해라.
- 살인하지 말아라.
- 간음하지 말아라.
- 도둑질하지 말아라.
-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아라.
- 남의 것을 탐내지 말아라.
이 법은 ‘어느 시대 누구나 행해야 할 기본법’입니다.
구약 때나, 신약 때나, 성약 때나 누구든지 지켜야 됩니다.
유월절을 지켜라. - 이 법은 <구약>에만 해당됩니다.
양과 소를 잡고 제사 드리는 것도 - <구약>에만 해당됩니다.
조상들의 율례와 예식도 - 역시 <구약>에만 해당됩니다.
<한 달>을 ‘한 살’로 해서 나이를 따지는 계산법도 -
<구약>에만 해당됩니다.
그때는 아직 ‘달력’이 나오지 않았던 때라서
<그 시대 나이 계산법>으로 계산하니,
성경을 보면 아담이 930세까지 살았고
므두셀라가 969세까지 살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나이를 그렇게 계산하지 않습니다.
<1년 365일>을 가지고 ‘한 살’로 계산합니다.
또 <구약 때>는 ‘천동설 시대’이니,
성경 여호수아서를 보면 ‘태양이 멈췄다.’ 했습니다.
그때는 <시대적인 배경>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시대가 지나서 발달되니, ‘지동설 시대’가 왔습니다.
이제는 ‘태양이 멈췄다’ 함은
그만큼 ‘하나님이 함께하시어 시간의 표적이 일어났다.’라고
풀어야 이치에 맞습니다.
그런데 <신약인들>은 무조건 ‘문자’대로만 성경을 보면서,
<시대 법>을 모르고 무지하게 따지고 계산합니다.
그러니 ‘무지’를 못 벗어납니다.
<성약> 때는 ‘기존의 성경 법’뿐 아니라,
<하나님이 이 시대에 주신 법>을 다 따르며 시대 역사를 폅니다.
고로 <성약> 때는 하나님께서 보낸 자를 통해 <성경에 없는 법>,
곧 <이 시대에 해당되는 진리>를 엄청나게 말씀하시고 행하시며
<이 시대의 목적과 뜻>을 이루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 이제 하나님이 시대마다, 개인마다
그때에 맞게 <그에 해당되는 말씀>을 주시고
그 시대와 개인을 운영하신다는 것을 알았지요?
이제,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하겠습니다.
성약 섭리사 안에서도 ‘개인마다 적용되는 법’이 다릅니다.
첫째, <성경의 기본법>을 주어 모두 지키게 하시고,
둘째, <이 시대에 해당되는 법>을 주어 각자 지키게 하시고,
셋째, <개인에게 해당되는 법>을 주어 인도하십니다.
세상도 <직업>마다, <직위>마다 ‘다른 법’이 적용됩니다.
<군인>에게는 ‘군인 법’이 적용되고,
<공무원>에게는 ‘공무원 법’이 적용되고,
<경제인>에게는 ‘경제인 법’이 적용되고,
<예술인>에게는 ‘예술인 법’이 적용됩니다.
단, <국민이 지켜야 할 기본법>은 같습니다.
<장애인 법>도 따로 있습니다.
이 법은 ‘장애인들’에게 특별히 줍니다.
그러지 않으면, 장애인들이 제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섭리사에서도 그러합니다. <신앙의 장애인>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특별법>을 줘서 다스려야, 섭리사에서 살아남게 됩니다.
또 <죄인들의 법>과 <의인들의 법>이 다릅니다.
<죄인>을 ‘의인’ 다루듯 하면, 절대 안 됩니다.
그러면 회복하지 못하고, 죄인으로 끝납니다.
그래서 <죄인>에게는 ‘회개와 용서의 법’이 있습니다.
그래야 삽니다.
<아픈 자의 법>이 따로 있습니다.
아프면, 학교도 회사도 못 나갑니다.
아플 때 학교나 회사에 못 나가면, 그것은 <법>에 안 걸립니다.
어느 정도까지 ‘치료할 기간’을 줍니다.
만일 건강한데 학교나 회사에 무단으로 안 나간다면,
이것은 <법>에 걸립니다.
<시대 법> 안에서도 ‘신앙이 병든 자의 법’이 있습니다.
이 법은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나을 때’까지 적용해야 됩니다.
이와 같이 <개인>마다 적용하는 법이 다르고,
<그때그때>에 따라서 적용하는 법이 다릅니다.
이는 마치 <글자>마다 ‘획과 모양’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가령 <치타>라는 글자를 ‘그 획과 모양’으로 쓰지 않으면,
그 글자는 ‘치타’로 기능하지 못하고 죽어 버립니다.
이와 같이 <개인>도 사람에 따라 ‘법’을 잘못 쓰면,
생명을 죽이게 됩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신앙을 오래했는지, 짧게 했는지
이것을 기준으로 하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고
<그에 해당되는 법>을 적용해야 됩니다.
이는 ‘환자에 따른 의사의 약 처방법’과 같습니다.
모든 환자에게 ‘똑같은 처방’을 내리면,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각 환자에 맞는 처방>을 내려야 됩니다.
<신앙의 법>도 ‘각 사람에 맞는 법’을 적용해야 생명을 살립니다.
<법>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말씀의 법>도 그러합니다. 고로 잘 써야 됩니다.
먼저 ‘개인의 위치’를 보고,
그다음에 ‘개인의 상태’를 보고,
그 사람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고,
<거기에 해당되는 말씀의 법>을 써야 됩니다.
만일 ‘신앙의 병’이 들었으면,
이때는 반드시 <치료법>을 써야 됩니다.
치료가 다 됐으면, 그때는 ‘약’이 필요 없습니다.
그때는 <영양가 있는 음식>이 ‘약’입니다.
고로 이때는 <일을 주는 말씀과 법>을 주어,
보람을 느끼게 해 줘야 됩니다.
이와 같이 <신앙이 병든 자>에게는 ‘치료법’입니다.
<병든 신앙이 나은 자>에게는 ‘행하는 법’입니다.
성장한 만큼 ‘거기에 해당되는 법’을 주며 대해야 됩니다.
이것이 ‘생명을 살리는 법’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의 법>은 사실 ‘딱 하나’입니다.
바로 ‘사랑의 법’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의 법’입니다.
고로 하나님은 끝까지 ‘사랑의 법’으로 대하십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사랑 법>으로 대하시는데
그 사랑을 받고도 ‘다른 길’로 가면,
그러다 스스로 ‘함정’에 빠지고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곧 <자기 무지>로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법’에 걸린 것입니다.
본인이 그 함정에서 올라오려면, 기간이 걸립니다.
안 올라오면, 그 함정에서 살아야 됩니다.
<섭리사의 법>은 핵이 ‘사랑 법’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일체 됐으니,
<사랑>이 절대 ‘삼위’께 향해야 됩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6000년 만에 <복직의 시대>가 왔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자를 통해 <시대 사랑의 법>을 주셨고,
<그 사랑의 법을 지킨 자들>은
휴거되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뤘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그 보낸 자와의 일체 된 사랑>으로
<휴거>를 이루게 됩니다.
<사랑이 병든 자들>은
세상도 사랑하고, 이성도 사랑하고, 동성도 사랑합니다.
이들은 치료해서 고쳐야 ‘휴거 복직’이 되어
그 <육>도 제대로 ‘휴거의 삶’을 살고,
그 <영>은 비로소 ‘황금성 천국’에 갑니다.
어떤 한 사람의 <영>을 보니,
아직 영이 덜 형성된 상태였고 어두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영>을 보니 그 상태를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영>이 그런 상태라면, 하늘나라에 못 갑니다.
<천국에 속한 옷>은 모두 희고,
<하늘 신부>라면 신부 옷을 입고 있으며 빛이 납니다.
<천국>에서는 ‘절대 완성된 법’을 씁니다.
<의>를 행해야 ‘천국’에 가는데,
그 <의>는 ‘절대 메시아를 믿고 일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에 속한 옷’을 입고 ‘휴거’됩니다.
<이 세상>은 ‘자기를 만드는 과정의 세계’입니다.
고로 하나님은 ‘완성된 자’나 ‘미완성된 자’나
모두 ‘사랑 법’으로 대하시며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천국>은 ‘결론의 세계’입니다.
고로, 천국에는 크나 작으나 ‘완성’돼야 들어갑니다.
<죄>가 호리라도 있으면, 못 들어갑니다.
<전자 제품>도 크나 작으나 ‘완성’돼야 쓸 수 있지요?
하물며 <천국>은 어떻겠습니까?
차원이 낮아도 ‘완성’돼야 들어가고,
차원이 높아도 ‘완성’돼야 들어갑니다.
<과정의 세계, 이 세상에서 살 때>
자기를 고치고 만들어서 ‘완성’시켜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육신>은 ‘구원의 주관권’에서 삽니다.
주가 붙들고 있거나 주를 따르기는 하니,
그 <육>은 ‘구원의 주관권’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것은 ‘육적 구원’입니다.
자신이 온전히 살지 않으면,
그 <영>은 ‘천국의 영’으로 형성되지 않아서
천국에 못 가는 영도 있습니다.
<육>은 주를 믿고 따르니 ‘구원의 주관권’에 있어도,
<영>은 육이 온전히 행해야만 ‘천국의 형체’로 형성됩니다.
<육신>이 온전하게 살지 않으면,
<영>이 절대 ‘천국의 형체’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결국 <영의 형체>대로 ‘영의 세계’에 갑니다.
이것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게 되는 ‘결론’입니다.
세상만사 무엇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만들 때도 <제대로 만든 것>은 물이 안 샙니다.
<제대로 못 만든 것>은 물이 샙니다.
그러면 물을 담아서 가도 실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생>도 그러합니다. <자기 영>도 그러합니다.
<과정의 세계, 이 세상에서 살 때> 온전히 만들어서 완성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늘 ‘기회’를 주십니다. 고로 하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은 - <개인>마다 ‘그 때에 맞는 법’으로 대하고,
- <개인>마다 ‘성장 법’으로 대하고,
- 누구든지 ‘사랑 법’으로 대하시지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절대 공통의 법>이 있습니다.
이 법을 벗어나면, 그때는 기도해도 안 됩니다.
쉽게 비유로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흰색>과 <검은색>을 섞어서 칠하면, ‘흰색’이 안 나옵니다.
<흰색>과 <검은색>을 섞어서 칠해 놓고,
<흰색>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흰색>이 되겠습니까?
절대 <흰색>만 칠해야 ‘흰색’이 됩니다.
이것은 <절대 공통 법>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검은색>은 ‘하나님의 생각을 벗어난 것’입니다.
<흰색>은 ‘하나님이 주고 행하게 한 의의 법’입니다.
누구든지 <두 가지>를 다 하면,
희고 의롭게 해 달라고 기도해도 안 됩니다.
<하늘 신부>라도 안 됩니다.
<흰색 하나>만 칠하듯, <하나님의 의의 법>을 행해야 됩니다.
이것이 <절대 공통 법>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어도, 성경을 몰라도, 하나님의 진리를 몰라도,
<법>을 범하면 ‘해’가 됩니다.
<길>을 두고 돌아가면 멀고, 질러가면 가깝습니다.
이것은 ‘길의 법’입니다.
이 <길의 법>은 하나님을 믿으나, 안 믿으나
누구에게나 다 해당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천 리 길을 돌아가면, 빨리 가지겠습니까?
<길의 법>에 따라서 절대 빨리 못 갑니다.
다만 믿음으로 합리화시킬 뿐입니다.
<성경에 없는 말씀>이라도 ‘법’은 지켜야 됩니다.
<법>을 지켜야 ‘해’를 당하지 않고 ‘존재’합니다.
지구 세상에는 75억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자들도 많습니다.
이들까지 살려야 되니, 하나님은 지구 속에 <법>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 진리’입니다.
<성경 말씀>이 아니어도 <진리>가 ‘세상을 운영’합니다.
그 <진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진리’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진리>는 세상에 꽉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진리’로 온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곧 <전체에게 해당되는 법>입니다.
<성경>에 ‘교통법’은 안 나와 있습니다.
자동차가 없을 때 성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전기에 관한 법’도 안 나와 있습니다.
전기를 사용하기 전에 성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고로 <성경>에 없어도 각자 이 시대를 보면서 학문도 배웠으니,
<이 시대 새로운 법>을 지켜야 됩니다.
<새 시대 새로운 법>은 ‘옛날’에는 없었습니다.
구약 때도, 신약 때도 안 나왔습니다.
<새 시대의 법>은 ‘새 시대’에 선포하고 행하게 하십니다.
<전환>
◎ 이제 <두 가지>를 핵적으로 말씀하고 마치겠습니다.
첫째, 오늘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법>에 대해 정리해 주고
둘째,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
중요한 말씀을 전해 주고 마치겠습니다.
<법>을 꼭 알고 행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다칩니다. 고생합니다.
손해를 봅니다. 억울하게 당합니다.
<법>은 ‘해를 안 받게, 잘되게, 보호하게 만든 성벽’입니다.
<법>을 넘어가면 ‘절벽’입니다.
<법>을 벗어나서는 못 삽니다.
고로 하나님은 <법>을 주어 서로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바다>는 따로 ‘바다’를 이루며 존재하게 하셨고,
<땅>은 바다와 쪼개져서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자연의 법’입니다.
<바다>와 <땅>이 섞여 있으면 반죽이 돼 버리고,
<바다>도, <땅>도 못 씁니다.
이와 같이 인생들에게도 <법>을 주어 서로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국가의 법, 종교의 법, 각 개인에 따른 법, 그 때에 맞는 법입니다.
오늘 말씀한 대로
▸ 첫 번째,
<옛 시대 법>과 <새 시대 법>을 쪼개서 보고 행하기 바랍니다.
<새 시대>에는 ‘새 법’이 적용됩니다.
▸ 두 번째,
옛 법 중에서도 <누구나 지켜야 할 기본법>이 있으니,
그 법은 꼭 지켜야 됩니다.
▸ 세 번째,
새 시대 법 중에서도 <전체에게 해당되는 법>이 있습니다.
▸ 네 번째,
새 시대 법 안에서도 <개인에 따라 대하는 법>이 있습니다.
각자의 처지, 상태, 상황과 성장한 것에 따라 대하는 법입니다.
▸ 다섯 번째,
<신앙이 병든 자들을 대하는 특별법>이 있습니다.
곧 고치는 법, 치료하는 법입니다.
▸ 여섯 번째, <지도자의 법>이 있습니다.
▸ 일곱 번째, <주의 법>이 있습니다.
▸ 여덟 번째, <이제 온 신입생들을 대하는 법>이 있습니다.
가령 <이성의 법>을 적용할 때
섭리사에 오기 전에 모르고 범한 것이냐,
섭리사에 와서 배우고 알고 범한 것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 아홉 번째, <이제 성장하고 있는 자들을 대하는 법>이 있습니다.
과일도 크는 대로 소독하고 봉지로 싸 줍니다.
<법>은 반드시 ‘얼마나 성장했느냐’에 따라
적용하여 대하는 것입니다.
<성장 중인 자>에게 ‘완성 법, 절대 법’으로 대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죽어 버립니다.
<잠시 쉬었다가>
◎ 오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법>으로 생명들을 살려야지,
<법>으로 묶거나 죽이면 안 됩니다.
<축구 경기>에서도 ‘법’이 없으면 경기가 안 됩니다.
고로 <전체 법>을 주고, <포지션에 따른 법>을 따로 주고,
<상황에 따른 법>을 주어 경기를 진행합니다.
<골키퍼에게 적용되는 법>은 다릅니다.
골키퍼에게는 ‘볼을 손으로 잡는 법’을 주고,
나머지는 단 한 명에게도 그 법을 안 줍니다.
단, 골키퍼도 볼을 오랫동안 잡고 있으면 걸립니다.
그리고 <축구 경기>는 골대에 볼을 넣으면 골인이지만,
예외일 때도 있습니다.
곧 공격 팀 선수가 상대편 진영에서 공보다 앞쪽에 있을 때,
자기와 골라인 중간에 상대 팀 선수가 2명 이상 없으면
오프사이드(off-side)가 되어 골이 무효가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법>도 그러함을 알기 바랍니다.
개인의 처지, 상황, 상태와 성장한 것에 따라서
<적용되는 법>이 다릅니다.
생명을 살리려고, ‘법’을 준 것입니다.
고로 <법>으로 생명을 죽이지 말고 살려야 됩니다.
<법>을 잘 배우고 써야 됩니다.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과 구원자’가 판단하고 씁니다.
고로 <자신들>이 ‘재판장, 검사’가 되어
생명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면 절대 안 됩니다!
<말씀>만 가르쳐 깨닫게 하고, 스스로 행하게 해 주면 됩니다.
비유를 들어 말해 줄게요.
과일나무에 <물>과 <퇴비>만 주면 됩니다.
그리고 ‘가을까지 가꾸기’만 하면 됩니다.
“과일이 잘 익었다. 혹은, 새가 쪼아 먹었다.” 하며 판단하지 말고,
가을까지 잘 가꾸고 관리만 해 주면 됩니다.
과일이 잘 익었는지, 과일이 잘 컸는지,
이 판단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때까지 ‘자기 만들기, 생명 관리하기’입니다.
<절대 법>은 ‘완성된 자’에게 해당됩니다.
고로 ‘절대 자기 만들기, 생명 관리하기’입니다.
<성장 중에 있는 자>에게 ‘절대 법’을 적용하면, 안 맞습니다.
죽어 버립니다.
<아이가 크는 대로 대해 주는 법>입니다.
이와 같이 <개인이 성장되는 대로 완전하게 도전하는 법>입니다.
모두 ‘자기 만들기, 생명 관리하기’입니다.
조각을 다 만들어서 다듬는 중인데,
이때 ‘강한 정’을 갖다 대면 오히려 돌이 거칠어집니다.
사람을 만들 때도 그러합니다.
때에 맞게 ‘그에 해당되는 법’을 적용하며 대해야 됩니다.
저마다 ‘만들어지는 대로 거기에 해당되는 법’입니다.
누구도 판단하지 말고 정죄하지 말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께 맡기기> 바랍니다.
죄인도 의인도 판단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께 맡기기 입니다.
누구도 ‘죄인을 다루고 판단할 권한’이 없습니다.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의’를 행하면,
하나님과 주만이 그 <의>를 아니 <죄>를 덮어 주고 용서합니다.
고로 죄인도, 의인도 ‘주’께 맡기기 바랍니다.
<자기 죄>를 해결하려면, 조용히 ‘주’께만 고하기 바랍니다.
<죄의 법>을 가지고, 생명을 죽이면 안 됩니다.
<회개>하면, ‘죄 없는 의인’이 됩니다.
주가 말씀합니다.
“<주>도 ‘너의 죄’를 두고 힐문하지 않으니,
<너희>도 ‘형제들의 죄’를 두고 힐문하지 말아라.
또한 <너 자신>도 ‘너의 죄’를 두고 스스로 힐문하지 말아라.
다만 조용히 ‘주’께 고해라. 회개하면 ‘죄 없는 의인’이다.
<과거에 사랑 죄를 짓고 용서받은 자들>은 이제는 ‘죄’가 없다.
그러나 <지금도 계속 사랑 죄를 짓고 있는 자들>은
조용히 ‘주’께 고해라. 지금 기회를 더 주고 있다.
<아직 덜 익은 과일>을 따서 “너는 왜 안 익었냐?” 하지 않는다.
더 익도록 ‘기회’를 준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이다.”
<구약 종 법>이 제일 엄하고,
그다음으로 <신약 자녀 법>이 엄합니다.
<성약 신부 법>은 ‘사랑 법’입니다.
<천국의 법>도 ‘딱 하나’입니다. 곧 ‘사랑 법’입니다.
고로 하나님은 끝까지 ‘사랑’으로 다스리십니다.
다만, 자기가 그 사랑을 받고도 다른 길로 가면
자기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법’에 걸리는 것입니다.
절대자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그렇게 다스리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은 아직 심판을 안 하셨는데,
<자기>는 심판을 하며 정죄합니다.
이는 <자기>는 ‘하나님’ 앞에 와 있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안 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직 심판하지 않고,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이것을 알고 대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계속 ‘기회’를 주십니다.
- 그러나 늦게 하면, 자꾸 상황이 돌아가서 못 돌아옵니다.
- 또 늦게 하면, ‘세상에서 받는 것’이 적고
‘세상에서 누릴 시간’이 없습니다.
힘들지만 자기를 빨리 만들고 완성할수록
<이 세상>에서 ‘육’으로 많이 받고, 긴 시간 동안 누리게 됩니다.
고로 자신도, 생명들도 정죄하거나 힐문하지 말고,
어서 <하나님과 주의 사랑의 말씀>을 듣고 자기 만들기!
생명을 <주의 말씀>으로 가르치며 관리하기! -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지나치게 <의인> 만들지 말아라.
지나치게 <의인> 만들려다가 생명 죽인다.
다만 <말씀>을 주고, 스스로 깨닫게 하여라.
<아직 성장하지 않은 자>인데
잘 못 한다고, 문제 있다고 하는 말을 하지 말아라.
<아직 성장하지 않은 자>가 완벽하게 잘하겠느냐.
<생명에 대해 지나치게 보고하는 것을 즐기는 자들>이 있으니,
이제 그만해라.
그런 것까지 다 알고 처리하니, 오히려 ‘사고’ 난다.
잘못하면, <보고>가 ‘감시’가 된다.
형제들을 너무 지나치게 판단하고 대하지 말아라.
다만, 계속 <말씀>을 해 주어라.
그들이 듣고, 스스로 행하게 해 주어라.
후에 <판단>은 ‘하나님’이 하신다.
<그때마다 합당한 지혜>가 참으로 중하니라.”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