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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7.12.20 (수)

171220 수요말씀(마음과 생각이 안 꺾이면 된다)

선포일
2017.12.20 (수)
성경 본문
마태복음 5장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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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0일 수요말씀> <마음과 생각>이 안 꺾이면 된다 <마음과 생각>이 안 무너지면 된다 본 문 마태복음 5장 8절, 6장 21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2017년 마지막 주일말씀>을 전해 줬습니다. 하나님과 주의 생각대로 하라는 말씀으로 실상은 <영원한 것과 땅의 잠깐의 것을 좌우하는 말씀>이었습니다. ◎ 하나님도 성령님도 말씀하시기를 “<마음과 생각>이 얼마나 중한지 아느냐. 사람은 <마음과 생각>으로 세상을 쥐기도 하고 놓기도 한다. <생각>이 그리도 크고 중하다. <생각>을 잘해라.” 하셨습니다. 특히 2017년의 마지막 이때, <생각>이 그리 중하다. <하나님의 생각>을 ‘알파’로 해서 시작했으니, <하나님의 생각>을 ‘오메가’로 해서 끝내야 한다.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 - 이것은 ‘하나’다. 2017년을 이렇게 마무리해야 2018년 ‘희망과 감사의 해’를 맞게 된다. 올해를 <하나님과 주의 생각 100%>로 하여 끝맺고, 새해를 <하나님과 주의 생각>으로 맞이하자.” 하시며 -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 이제 2017년 주일은 <12월 24일 성탄 전날>과 <12월 31일 송구영신>만 남아 있습니다. 추가로 ‘수요말씀 한 번, 금요말씀 한 번 더’ 전해 주면, 2017년은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러면 <2018년 희망과 감사의 해>를 맞게 됩니다. <새벽 잠언>은 주가 여러분과 늘 동행하듯, 올해의 마지막에도, 새해에도 끊임없이 나갑니다. ◎ 오늘도 ‘마음과 생각’에 대해 말씀하면서, 해 줄 말씀을 다 해 주겠습니다. <말씀 시작>  <생각>이 고장 나면 ‘모든 것’이 중단됩니다.  <생각>을 깨끗하게 하기입니다. 그래야 <삶>도 깨끗하고 <각종 신비한 세계>를 보게 됩니다.  몸을 깨끗하게, 마음을 깨끗하게, 생각을 청결하게 하기입니다.  <마음>에서 지면, 마지막에 지게 됩니다. <마음>이 꺾이면 안 됩니다.  식물의 잎사귀만 자르면, 또 잎사귀가 나서 계속 큽니다. 그러나 아예 ‘순’을 뽑아 버리면, 다시는 잎사귀가 안 납니다. <마음과 생각>은 ‘순’과 같습니다. <마음과 생각의 순>은 자기만 안 뽑으면, 평생 영원히 계속 존재하며 크고, 환난 후에 다시 행하게 합니다.  <자연성전 야심작>을 하나님과 같이 쌓았는데도 다섯 번이나 무너졌습니다. <돌>은 무너졌지만, <내 마음>은 ‘더 좋게 쌓아야지!’ 하고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고로 또 쌓았습니다. 특히 <네 번째, 다섯 번째 쌓을 때>는 더 이상은 쌓을 수 없이 ‘최고의 돌들’을 구해다 더욱 절묘하게 잘 쌓았는데, 또 무너져서 일부의 돌들이 깨졌습니다. <마음>은 안 무너졌으니 ‘다시 쌓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돌>이 없으니 어떻게 쌓을까.’ 걱정하고 낙심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더 좋은 돌’을 사러 갔습니다. 그런데 ‘돌 회사 주인이 전에 안 판다고 했던 돌’을 팔았고, 다른 돌 회사에서도 ‘새롭게 파낸 돌들’도 팔아서 결국 ‘더 큰 돌과 작품 돌’을 사 오게 됐습니다. 만일 돌이 안 무너져서 안 깨졌으면, 새롭게 돌을 안 사러 갔을 것입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무너져서 깨진 돌들>은 약해서 깨진 것이고, <안 깨진 돌들>은 강해서 안 깨진 것입니다. 그래서 <깨진 돌들>과 <전에 쌓은 작은 돌들>은 빼내고 <다시 사 온 좋고 큰 돌>로 다시 쌓았습니다. 돌이 무너질수록 ‘더 좋은 돌’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더 좋은 것’을 가지고 계시니, 하나님의 구상을 가지고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행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꼭 주셨습니다! 결국 <여섯 번째>에는 더 큰 작품 돌들을 가지고 야심작을 완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긴 역사 동안 보낸 자와 함께 기어이 완성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구원역사 6000년 만에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실현하셨습니다. <여섯 번째에 완성한 야심작>은 구원역사 6000년 만에 ‘하나님의 창조 목적, 휴거’를 이루어 사랑의 뜻을 실현함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 <섭리사의 생명들>도 그러했습니다. 책임을 못 하고 자기중심으로 산 자들이 나가면, 다시 세상에 다니면서 ‘더 좋은 생명’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과 성령과 성자께서 역사하시어, 결국 ‘야심작을 더 좋은 돌로 쌓은 것’같이 ‘더 좋은 자들’을 얻게 됐습니다! <하나님이 시대 택한 자들>을 불러와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 이와 같이 <시대 구원자>도 넘어지면 일어나고, 또 일어나서 마지막으로 시대를 위해 십자가까지 지고 할 일을 다 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완성하기 이전과 완성된 이후 영상  <야심작을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까지 쌓은 과정>은 구약부터 신약까지의 과정입니다. <여섯 번째>가 ‘성약 휴거 역사’입니다. <여섯 번째>를 위해 그동안 몸부림치며 행해 온 것입니다. 과정을 통해 ‘더 좋게’ 배워서 쌓았습니다. 마지막에 <목적>을 이루니, <과거에 몸부림치며 행한 것들>까지 ‘기쁨’이 됐습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 야심작 외의 다른 곳들도 <아예 예비된 돌들>을 구해다 한 번에 쌓았습니다. <그 당시에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돌, 작품 돌>은 거의 다 가져다 쌓았습니다. 돌 회사 주인이 돌 장사를 하다가 ‘좋은 것’을 골라 빼놨는데, 그것들을 구해다가 다 자연성전에 쌓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니 ‘하나님’이 구해 주셨습니다.  <앞산>도 특별히 더 높이 쌓으려 했는데 돌이 없어서 더 못 쌓았지, 허가가 안 나서 더 못 쌓은 곳은 없었습니다. 나머지는 이제 ‘손질하고 관리하는 것’만 남아 있습니다.  <월명동 그 위치>에 ‘하나님의 구상’대로 할 것을 다 했듯이, <시대 하나님의 섭리역사>도 ‘하니님의 목적’대로 다 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야심작의 아름다운 모습, 잔잔한 음악  <야심작>은 마치 ‘최고의 화가가 최고 작품을 그린 것’같이 됐습니다. 하나님도 보시고 “구상대로 돼서 볼 때마다 기쁘다. 최고로 잘 만들어졌다. 처음에 구상을 보여 준 것보다 더 좋게 잘 쌓았다. 행하면서 더 좋게 됐다.” 하셨습니다. <끝>  오직 <삼위가 원하시는 방향>대로 행하며 구하니,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제때 구하지 못한 돌>은 후에 기어이 구해다 쌓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육신’을 통해 정녕코 이루셨습니다!  <자연>은 수천 년, 수만 년이 가도 그대로 있습니다. 돌과 나무로 되어 있으니, 수만 년이 갑니다. <돌로 건축한 것>은 수천 년씩 갑니다. <자연성전의 돌과 나무>는 땅과 한 덩어리로 뭉쳐져 이제 굳었습니다. <야심작의 돌들>은 완성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비바람에 닳고 닳아서 더 매끈해지기만 했지, 마치 땅에 뿌리를 박듯 굳건하게 서 있습니다. 섭리사도 이제 ‘휴거’로 완성해 가니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제 계속 ‘차원’을 높여 가면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웅장한 영상, 중요, 박진감 넘치는 음악  <자연성전>은 ‘더 이상 없는 하나님의 최고 구상 작품’입니다. 더 이상 다른 구상은 없습니다. <자연적 형상>에다 ‘돌과 나무’를 짝으로 세우고 심었습니다. <자연>은 ‘남자’라면, <돌과 나무와 꽃>은 ‘여자’와 같습니다. 일체 시켜 하나 되게 만들었습니다. <본래 자연스러운 지형을 가진 산들>이 ‘삼위일체’라면, <돌과 나무와 꽃>은 ‘구원자와 시대 택한 자들’입니다. 삼위와 주와 시대 택한 신부들이 일체 되어 <1000년 혼인 잔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끝>  <자연성전>이 ‘더 이상 없는 하나님의 최고 구상 작품’이듯, <섭리역사>도 ‘더 이상 없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 실현의 역사’ 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 외에는 ‘더 이상 최고의 구상’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구상’입니다. 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알고 깨달아야 기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해 주신 것>에 만족하고 가치를 알고 씁니다. 모르면, <만족하게 해 주신 것>도 부족하다고 하며 불평불만 속에 살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한 사람이 어떤 물건을 사러 갔습니다. 한 장소에 있는 물건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사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것을 사야 만족했습니다. 주인이 소개해서 ‘제일 좋은 것’을 사고, 좋아하며 만족했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내가 산 것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당장 그 물건을 판 주인에게 가서 “내가 속았군요!” 했습니다.  주인은 “내가 속 이야기를 해 줄게요.” 하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전체 물건을 사 올 때 제일 좋은 것>을 사 갔습니다. 그것은 아예 진열을 안 하고 내가 직접 골라서 내 집에 따로 뒀다가, 당신에게 팔았습니다. 그 사람은 ‘그 제일 좋은 것’을 제외하고, <진열해 놓은 물건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처음 사 갔으니, 자기가 ‘제일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말이 그의 입장에서는 맞습니다. 그 사람은 이 사연을 모릅니다. 그러니 어느 것이 더 좋겠습니까?” 했습니다.  주인의 말을 듣고 알게 되니 만족하고 기뻤습니다. 그리고 후에 두 물건 다 전시장에 전시했는데, 보는 자들마다 <주인이 가지고 있다가 판 작품>을 최고로 봤습니다. 그리고 “마치 생명나무 돌 같아요!” 하며 감탄했습니다. 그래서 그 돌을 <하나님의 사랑 상징 돌>이라고 칭했습니다.  주인은 ‘전체에서 제일 좋은 것’을 아예 골라 놓습니다. <자연성전의 작품 돌들>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주인이 가지고 있던 것들 중의 제일 좋은 돌들’을 섭리사에 주셨습니다.  <낙타바위>의 주인은 ‘삼위일체’였는데, 삼위가 땅속에 감춰 두고 있다가 때가 되니 내놓으셨습니다.  <성자바위, 큰바위얼굴바위>도 그러하고, <두꺼비바위, ‘오직 하나님’바위>도 그러합니다. <세워 놓은 큰 돌들>도 그러합니다. 그런 돌만 30개가 넘습니다. 지금은 돌 회사의 주인들도 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돌이 없습니다. 하나님만 ‘최고 작품 돌’을 가지고 계십니다.  <하나님이 보낸 자>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전체 중의 제일 좋은 자’를 골라서 갖고 계시다가 가르치고 준비시켜 세상에 내보내십니다.  하나님은 ‘최고의 것’을 좋아하십니다. 고로 <최고의 것>을 가지고 계시다가 <제일 사랑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 모르면, ‘자기 것’이 되어 보고 있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알아야 됩니다. 알아야 만족하고, 가치를 알고 기뻐합니다.  <자기 자신>도 ‘가치’를 모르고 살면, 만족이 없습니다.  <이 시대 창조 목적의 역사>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가지고 계시다가 섭리사의 때가 되니 택한 자들을 데리고 행하셨습니다. <최고의 것>을 모르면, 행하고도 만족이 없습니다. 고로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최고 좋은 사랑 휴거 역사>에서 살아도 모르면 ‘세상과 이성과 동성’에 빠져 삽니다. 얼마나 미련합니까? <세상, 이성, 동성>으로 인해 ‘영원한 것’을 뺏긴 것입니다.  <좋은 장소>에서 살아도 모르니, 누가 꾀어 “거기보다는 저기가 좋지.” 하면, 그 좋은 장소를 팔고 갑니다. <하나님의 사랑 휴거 역사>도 100% 알아야 누가 꾀어도 ‘신앙’을 안 팔고 ‘딴 데’로 안 갑니다. 절대자 삼위일체의 말씀을 듣고도 흔들리면, <천국>에 갈 자격이 없습니다.  사탄도, 악한 자들도 <거짓>을 가지고 ‘참’을 흔듭니다. <아는 자>는 철장으로 질그릇 깨뜨리듯, <강인한 생각>으로 ‘그 거짓 이론’을 깨 버립니다! <잠시 쉬었다가>  <사람의 뇌신경과 생각>은 한 번 좋다고 인식하면 아주 안 좋은 것도 좋다고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쓰다 보면 ‘속’이 드러납니다. 그 세계를 접해서 살다 보니, 좋은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제야 ‘자기 미련함’을 알고 탄식합니다.  인간이 얼마나 무능하고 무지한지 압니까? <사탄>과 <속이는 자>는 나쁜 것을 좋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러고는 사탄도, 속이는 자도 떠납니다. 그러나 자기는 ‘그것’을 껴안고 좋아하다가 살아 보니, 그제야 속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다 ‘깊은 바다 가운데 썩은 나룻배’같이 떠다니게 됩니다. 그때는 ‘풍랑 속의 죽음의 공포’뿐입니다. 그제야 하나님을 부르고 주를 부르지만, “왜 주가 권고할 때 안 들었느냐?”하고 <양심의 음성>만 들립니다. 잘못했다고 해도, 자기가 있는 곳이 <깊은 바다>이니 계속 ‘풍랑’이 일어납니다. 거기서 나와야 ‘풍랑’이 멈춥니다. 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의 차원’에 빠져서 <염소>를 데리고 그렇게 좋아합니다. 결국 <염소>가 자기를 들이받아 언덕으로 굴러서 다치니, 그제야 <염소>라는 것을 알고, 미련 없이 버리고 <양>을 택합니다. <염소>나 <멧돼지>는 가까이 두고 사랑할 동물은 못 됩니다. 그 ‘특성’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꿈이나 생시에 ‘사람의 특성’을 보여 주시는데, 돌이나, 과일이나, 동물이나, 물고기 등을 보여 주시며 <상징>으로 보여 주십니다. <상징>으로 ‘그 사람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 주십니다.  <헤롯 왕>은 겉으로는 호화찬란한 왕인데, 예수님은 “여우다.” 하며 근본을 알려 주셨습니다. 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 사람의 특성>을 ‘상징’으로 그대로 보여 주십니다.  하나님은 ‘야곱의 열두 아들’에게도 야곱을 통해 ‘상징 이름’을 주셨습니다. 뱀, 사자, 혹은 포도나무 등 각종으로 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비유하신 대로 그 자녀들은 그와 같이 살면서 그와 같은 족속을 이루었습니다.  <예수님>은 ‘어린 양’이라고 했습니다. 혹은 ‘독수리’라고도 말했습니다. 칭한 그대로 ‘그와 같은 성품과 위력’으로 역사를 펴셨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띠와 별자리 보여 주기  동양에서는 <동물>을 ‘띠’로 정하여 ‘특징’을 말하고, 서양에서는 <별자리>를 정하여 ‘특징’을 말합니다. 어느 해, 어느 달에 태어났는지에 따라, ‘특징’을 정했습니다. <끝>  섭리인들도 ‘각종 동물, 과일, 돌’ 등 보여 준 대로 ‘특징’이 있고 ‘그 특징’대로 행하며 삽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월명동의 여섯 가지 지형, 각각 표시해서 보여 주기  <월명동의 지형>은 크게 ‘여섯 가지의 형상’이 있지요? 백보좌 형상, 금단의 과일 형상, 반월 형상, 독수리 형상, 자미원 형상, 별 형상입니다. 하나님이 그 생긴 형상대로 사용하십니다. <끝>  사람도 <생김새>나 <성품과 행실>을 보고, 치타, 낙타, 양, 말, 사자, 호랑이, 염소, 소, 사슴, 기린 등 그에 따라 ‘별명’을 붙입니다. 그러나 <자기 생김새>와 <꿈에서 본 모습>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생김새>보다 <성품과 행실>을 보고, 그에 맞는 만물이나 동물로 ‘상징’해서 보여 주십니다. 혹은 <태몽>으로도 계시해 주어, 그 사람의 ‘특성’을 보여 줍니다. ▸ 선생의 태몽은 <큰 용이 앞산에 출현>하는 꿈이었습니다. ▸ 부흥강사의 태몽은 <머리가 없는 큰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꿈>이었습니다. 그 꿈을 따라서 <주>를 ‘머리’로 삼고, <자기>는 ‘주의 몸’이 되어서 살게 됐습니다.  <자기 성품과 행실의 특성>이 ‘염소’ 같다면, 자기가 주의 말씀을 듣고 변화되어 ‘말’같이 뛰고 달리면, 그 특성도 ‘말’로 바뀝니다.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서 그 ‘특성’도 바뀌게 됩니다.  부흥강사도 처음에는 ‘치타’라고 안 했습니다. 치타같이 행하니, ‘치타’라고 했습니다. 물고기로 따지면 ‘인어’도 됩니다. 그렇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백조’로, 때로는 ‘독수리’로 칭할 수 있습니다. 깨끗하고 높이 날며 행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생긴 대로, 행하는 대로 ‘명칭’을 줍니다. <말씀 마무리> ◎ 오늘 말씀의 핵심을 정리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 <생각>이 고장 나면 ‘모든 것’이 중단된다.  <생각>을 깨끗하게 하기다.  몸을 깨끗하게, 마음을 깨끗하게, 생각을 청결하게 하기다.  <마음>에서 지면, 마지막에 지게 된다. <마음>이 꺾이면 안 된다.  식물의 잎사귀만 자르면, 또 잎사귀가 나서 계속 큰다. 그러나 아예 ‘순’을 뽑아 버리면, 다시는 잎사귀가 안 난다. <마음과 생각>은 ‘순’과 같다. <마음과 생각의 순>은 자기만 안 뽑으면, 평생 영원히 계속 존재하며 크고, 환난 후에 다시 행하게 한다.  <자연성전>이 ‘더 이상 없는 하나님의 최고 구상 작품’이듯, <섭리역사>도 ‘더 이상 없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 실현의 역사’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 외에는 ‘더 이상 최고의 구상’은 없다.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구상’이다.  <자연성전>은 ‘자연적 형상’에다 ‘돌과 나무’를 짝으로 세우고 심었다. <자연>은 ‘남자 입장’이며 ‘삼위일체’다. <돌, 나무, 꽃>은 ‘여자 입장’이며 ‘구원자와 택한 자들’이다. 일체 시켜 하나 되게 만들었다. 이와 같이 <삼위와 주>와 <시대 택한 신부들>이 일체 되어 <1000년 혼인 잔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 <자연성전의 돌과 나무>는 땅과 한 덩어리로 뭉쳐져 이제 굳었다. <야심작의 돌들>은 더욱 굳건하게 땅에 뿌리를 박고 서 있다. 섭리사도 이제 ‘휴거’로 완성해 가니 무너지지 않는다. 이제 계속 ‘차원’을 높여 가면 된다. 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알고 깨달아라. <하나님의 사랑 휴거, 창조 목적의 역사>를 100% 알고 살아라. 그래야 뺏기지 않고, 버리지 않고, 만족하고 누린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