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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8.01.14 (일)

180114 주일말씀(죽음에는 육의 죽음, 영의 죽음 두 가지가 있다)

선포일
2018.01.14 (일)
성경 본문
마태복음 27장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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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114-주일말씀(죽음에는_육의_죽음,_영의_죽음_두_가지가_있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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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4일 주일말씀> 죽음에는 육의 죽음, 영의 죽음 두 가지가 있다 본 문 마태복음 27장 50절, 53절, 요한복음 5장 25절, 야고보서 2장 26절, 요한일서 3장 15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죽음에는 육의 죽음, 영의 죽음 두 가지가 있다.’라는 주제로 말씀하겠습니다. 핵심만 말씀해 줄 테니 나머지는 성경을 찾아서 읽고, 또 생활 속에서 보고 겪으면서 알면 됩니다. <말씀 시작>  사람들은 <사람의 죽음>을 ‘한 가지’로만 알고 따집니다. <육신>만 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사람의 죽음>을 크게 ‘두 가지’로 따지시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네 가지’로 따지십니다.  <사람의 죽음>을 크게 보면 첫째 ‘육 죽음’이 있고, 둘째 ‘영 죽음’이 있습니다.  오늘 성경 본문 말씀도 <육 죽음에 대한 성구>와 <영 죽음에 대한 성구>를 읽었습니다. ▸ 마태복음 27장 50절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 이는 <예수님의 육 죽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 마태복음 27장 53절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 이는 <예수님의 영 부활에 대한 말씀>입니다. - 예수님은 <육신>은 죽었고 <영>은 살았습니다. ▸ 요한복음 5장 25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 이는 <메시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의 육과 영의 부활에 대한 말씀>입니다. ▸ 야고보서 2장 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이는 <행함이 없는 자들의 죽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 요한일서 3장 15절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 이는 <형제를 미워하는 자들의 죽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육의 죽음>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 첫째, <육의 숨이 아예 끊어져서 육이 죽은 자>는 육신이 아예 영원히 죽은 것입니다.  둘째, <육신은 살았으나 행하는 기능을 못 하는 자>는 행하지 못하니 죽었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행실 죽음’이라고 합니다. 행하지 않으면, 죽었다고 합니다.  셋째, <육신은 살았으나 알 것을 모르는 자>는 몰라서 해를 당하니 죽었다고 합니다. <자기를 구원할 메시아를 모르는 자>도 ‘죽은 자’이고, <속이는 자, 사기꾼, 악한 자들을 모르는 자>도 ‘죽은 자’입니다. <알 것을 알고 행하는 자>는 ‘산 자’입니다.  넷째, <새 시대가 왔는데 구시대에 사는 자>는 시대적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새 시대에 사는 자>는 시대적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 다섯째, <낮이 왔는데도 밤에 속한 삶을 사는 자>는 죽었다고 합니다. 아직 낮이 안 왔는데 태양 없는 어둠 속에 산다면, 이때는 죽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태양이 떴는데도 어둠 속에 산다면, 이때는 죽었다고 합니다.  여섯째, <육신이 살았어도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이 보실 때 죄로 죽었다고 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 <하나님과 주의 말씀을 자기 임의로 빼거나 더해서 전하는 설교자>도 그 면의 죽은 자입니다. 설교를 하다 보면, 한두 글자 정도는 순간 혀가 안 돌아가서 빼먹기도 하고 더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어떤 설교자는 한 번의 설교에 20~30회씩이나 자기 식으로 틀리게 전합니다. 이 같은 설교는 ‘죽음이 낀 설교’입니다. 똑같이 설교를 들어도 <산 자들>은 ‘죽음이 낀 설교’를 알아채고, <죽은 자들>은 똑같이 죽어 있으니 모릅니다.  하나님과 주의 말씀을 - 수차례 빼고 전하거나 - 자기 임의로 더해서 전하게 되면, 하나님과 주의 말씀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가령, 주는 “<17기 신학생들>이 어리고 부족하지만, <주의 가르침>을 받고 힘을 얻어 해내고야 말았다.” 했는데, 설교자가 ‘주의 가르침’이라는 단어를 빼고, “<17기 신학생들>이 열심히 하여 해내고야 말았다.” 하면, 이 내용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들끼리 잘했다는 내용이 됩니다.  이런 식으로 계속 <핵심 내용>을 빼먹고, <하나님과 주>라는 단어까지 빼먹는 설교자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 설교가 어떤 힘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주의 말씀>에서 ‘하나님과 주’가 빠지면, 하나님의 뜻을 놓고 행한 일인데도 하나님과 주 없이 알아서 했다는 말이 됩니다.  성경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 주의 말을 빼거나 더하면서 자기 식으로 하면, 성경에 기록된 재앙이 그 사람에게 가게 됩니다. 회개하고 돌이켜 제대로 해야 됩니다.  선생이 하나님과 성령께 말씀을 받아서 기록하고 조은 목사가 그 원본을 최대한 정리하고 교정해서 내보냅니다. 얼마나 몸부림치면서 자세히 정리하고 교정하는지, <정리해서 보내 준 말씀 그대로> 전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선생이 항상 <정리가 완성된 설교>를 한 번 더 확인하는데, 그 정도면 손댈 곳 없이 좋습니다. 간혹가다 ‘한두 글자 틀린 것’이 있을 때도 있는데, 이런 것만 바로 고쳐서 전하면 됩니다. 나머지 설교자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설교가 끝나고 해 주면 됩니다.  <자기 말>을 <하나님과 주의 원본 말씀>에 섞으면, 마치 꿀에 설탕을 섞은 격이 됩니다. 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자기 식>은 ‘육에 속한 것’이다.” 하셨습니다.  <하나님과 주의 말씀>을 조금씩 빼고 더하다가 습관이 되어, 결국 ‘자기 식’이 됩니다. 안 고치고 계속 그렇게 하는 자는 섭리사에서는 못 큽니다.  <생명의 말씀>은 한두 자만 빼고 전해도 - <뜻과 방향>이 달라지고, -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가 쓰는 고유 문학의 향기>가 안 풍깁니다.  <주의 말>과 <일반 사람의 말>은 ‘표현’이 다릅니다. 그 ‘의미’도 100만 배나 더 차이가 납니다. 시를 쓸 때도 혹여 <문학가>는 문맥이 맞게 더 잘 표현하고, <주>는 문맥에 맞게 잘 표현하지 못했어도 <주가 한 말>이 더 큽니다. <주의 말>에는 항상 ‘생명과 구원과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 가령 <예수님이 그린 그림>이 있는데 실력이 보통이고, <전문 화가가 그린 그림>이 있는데 잘 그렸다고 합시다. 어느 것이 더 값이 나가겠습니까? 아예 비교가 안 됩니다.  세상에서도 <왕이 쓰던 물건과 집>은 역사에 남깁니다. 별로여도 의미가 있고 귀하기 때문입니다. <일반 사람이 쓰던 물건과 집>이 <왕이 쓰던 물건과 집>보다 더 좋아도 값이 별로 안 나갑니다. <이것을 깨닫는 자>가 ‘큰 자’입니다.  <유명 관광지>가 <자연성전>보다 더 귀하고 비쌉니까? <자연성전>이 <유명 관광지>보다 더 귀하고 비쌉니까? 깨달아 봐요. 하나님께 물어봐요. <모르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 육신이 숨을 안 쉬고 아예 죽으면, <육신 죽음 한 가지>로 끝납니다. <생활 속에서 죽는 사건>은 ‘수백 가지’입니다.  화재가 났을 때도 살 수 있는데 나오는 통로를 모르면, 죽습니다. 이와 같이 생활 속에서도, 신앙을 할 때도 모르면 행하지 못하니, ‘죽은 자’입니다.  <자연석>이 형상이 좀 별로여도 <인조석>보다 더 귀하고 비싸듯이, <시대 말씀>도 ‘주의 원본 말씀’이 그리 크고 엄청납니다. 가령 비유로 ‘개미 비유’를 들었으면, 아무리 ‘코끼리’가 개미보다 크고 힘이 좋아도 자기 임의로 바꾸지 말고 ‘개미 비유’를 그대로 써야 됩니다. 그 부분에는 ‘개미 비유’가 맞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 때에도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더 작은 사건>이라도 기록하여 성경에 넣었고, <더 큰 사건>이라도 성경에 안 넣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메시아 예수님과 직접 관련된 사건>은 작은 사건이라도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알아야 됩니다. 깨달아야 됩니다. 모르면, ‘죽은 자’ 취급을 받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지금까지 <육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 육신이 살았으나 기능을 못 하면 ‘죽은 자’입니다. 다시 행하여 기능을 하면 ‘산 자’가 됩니다. 육신이 살았으나 모르면 ‘죽은 자’입니다. 제대로 알면 ‘산 자’가 됩니다. 새 시대가 왔는데도 구시대에 있으면 ‘죽은 자’입니다. 새 시대로 오면 ‘산 자’가 됩니다. 육신이 살았으나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죽은 자’입니다. 회개하고 회복되면 ‘산 자’가 됩니다.  그러나 육신이 아예 숨이 떨어지면, <육>은 영원히 다시는 못 삽니다. 이와 같이 <영>도 ‘아예 죽는 죽음’이 있습니다. 곧 <영>이 아예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사망 선고를 받아 사망권으로 가면, ‘아예 죽은 영’이 됩니다. 그때는 <영>이 영원히 사망권에서 못 나옵니다. 고로 <영>이 아예 죽지 않게 해야 됩니다.  영이 아예 죽지 않아도 <죽었다고 취급받는 때>가 있습니다. ▸ 영이나 혼이 하나님의 생명의 주관권을 넘어가서 행하면, 죽었다고 합니다. ▸ 하나님의 역사와 주를 악평하고 사탄과 하나 되어 행하면, 죽었다고 합니다. 가령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악평하고 반대하면서 구약 율법 주관권에 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시다. <구약>에서는 ‘산 자’이고, <새 시대 신약>에서는 ‘죽은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 예수님의 육신’을 쓰고 행하시는데 그것을 악평하고 반대했으니, 구약에서 하나님을 잘 믿어도‘죽은 자’입니다.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시대 사명자’를 쓰고 역사를 펴시는데 악평하고 반대하고 막으면, 기성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잘 믿어도 ‘죽은 자’입니다. 모르고 했어도 <하나님이 사명자의 육신 쓰고 행하신 일>을 반대하고 악평했으니 육도 영도 죽어 ‘사망권에 처한 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보시고, 무지하여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막은 요시야 왕같이 안타깝다 하십니다. 모르면, ‘그 면의 죽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면, ‘육도 영도 죽었다.’ 합니다. 고로 밤낮으로 배우고 알고 행하여 ‘산 자’가 돼야 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육신>은 멀쩡해도 <그 영>을 보면 ‘사망권에 죽어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육신>은 살았으나, <말>과 <생각>과 <행실>이 ‘사망권에 있는 자들’입니다. 모두 문제를 해결하고 사망권에서 나와야 ‘산 자’가 됩니다. 그냥 보면 ‘죽은 것’이 안 보입니다. 고로 해결을 못 합니다. <기도>하고 봐야 됩니다. <주의 말씀>을 듣고 봐야 됩니다. 그리고 고칠 것을 고쳐야 됩니다. 죄를 회개하여 용서받아야 됩니다.  모두 <영적으로 죽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 전문가>가 돼야 합니다. <죽은 것이 무엇인지> 정말 배우고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죽은 상태’에서 살지 않습니다.  그냥 봐서는 ‘죽은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도 ‘육’을 보면, 죽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실 때 <육>도 <혼>도 <영>도 ‘사망권의 죽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과 메시아를 안 믿는 자들>은 ‘죽은 자들’입니다.  <하나님과 메시아를 믿어도 말씀을 지키지 않는 자>는 살았다 하나 ‘죽은 자’입니다.  <이성과 동성, 세상 사랑에 빠져 선을 넘어 사는 자>는 살았다 하나 ‘죽은 자’입니다.  <술·담배를 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는 자들로 역시 ‘죽은 자’입니다.  <하나님과 주께 감사할 일이 있는데 감사하지 않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 <주를 제대로 모르고 주의 가치를 모르는 자>는 살았다 하나 ‘죽은 자’입니다.  <교인들을 교육하고 관리하지 못하는 교역자>는 ‘죽은 자’입니다. <교인들이 이성이나 동성, 다른 데 빠져 있어도 모르는 교역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있어도 ‘죽은 자’입니다. 교역자가 관리하는 만큼 교회에 문제가 덜 일어납니다. 교역자가 ‘영적 소경’이 되어 모르면, 정말 안 됩니다. 이성과 동성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고 그냥 두면, 결국 사탄이 끌고 나가게 됩니다.  <하나님의 자연성전에 대해 알 것을 모르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백보좌 작품>을 만드셨는데 몰랐을 때는 모두 다 ‘소경’이었고 ‘그 면의 죽은 자’였습니다. 결국 20년 만에 선생이 먼저 알고, 모두에게 말해 줬습니다. <한 명>이 알고 살아나야, <모두>에게 말해 주어 살아나게 해 줍니다! 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의 뜻>을 ‘시대 보낸 자’가 먼저 알고, 그가 먼저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전해 주어, 모두 살아나게 해 주었습니다!  <제자리, 자기 위치를 안 지키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 <자기 사명의 위치를 떠난 자>는 ‘죽은 자’입니다.  <자기 할 일을 제대로 안 하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 <순리와 질서대로 안 하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 여기서 ‘육과 영의 죽은 행실 30가지’만 더 깨닫고 행하면, <무엇이 죽은 것인지 아는 전문가>가 됩니다. 그냥 봐서는 모르니 주의 말씀을 듣고 행하고, 기도하며 행하고, 영적으로 죽은 것을 전적으로 연구하며 행하기 바랍니다. 알고 행하면, ‘산 행실’을 하여 ‘산 자’가 됩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 <죽은 자>는 ‘하나님과 주와의 연결이 끊어진 자’입니다. 전기선도 끊어지면 ‘죽었다.’ 합니다. <선>을 다시 연결하면 ‘살았다.’ 합니다. 그러나 <선>은 연결됐어도 <모터>가 죽었으면 ‘아예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와의 연결이 끊어지고, 하나님과 주와의 생각에서 끊어지면 ‘죽은 자’입니다. 다시 연결하면 ‘산 자’가 됩니다. 그러나 <생각과 사고와 행실과 몸>이 아예 악한 쪽으로 넘어가 버리면, 그 영이 ‘아예 죽은 자’가 됩니다. <아예 죽은 자>가 되지 않도록 약해도 주 안에서, 강해도 주 안에서 못해도 주 안에서, 잘해도 주 안에서 살기 바랍니다!  섭리역사 10년의 십자가 기간이 끝나고 <희망과 감사와 기쁨의 부활의 해>가 왔는데도 - 아직도 죄나 자기 생각이나 세상에 빠져 일어나지 못하는 자, - 섭리의 때를 알지 못하여 지금이 어느 때인지 모르는 자는 <희망>을 맞지 못하여 <감사와 기쁨>이 없으니 ‘죽은 자’입니다.  - 모두 죄 문제를 깨끗이 해결하고, - 육뿐만 아니라 영원까지 연결되는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 안에서 행하며, - 주님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알고, - 섭리역사의 때를 확실히 알고 행하고, - 주를 맞기 전에 각자 예비할 것들을 열심히 행하며 <희망>을 맞고 그로 인해 <감사>하며 <산 자>로서 일어나 빛을 발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