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8.01.28 (일)
180128 주일말씀(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 흥분이다)
- 선포일
- 2018.01.28 (일)
- 성경 본문
- 학개 1장 14
첨부 파일
- PDF
180128-주일말씀(좋아하고_기뻐하는_것이_흥분이다).pdf
162.2 KB
<2018년 1월 28일 주일말씀>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 흥분이다
흥분돼야 제대로 하고, 희망과 감사와 기쁨으로 한다
본 문 학개 1장 14절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성경, 개역한글 버전 참조)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흥분’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흔히 사람들은 ‘흥분’ 하면,
이성의 흥분, 사랑의 흥분만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상태, 기뻐하는 상태>
그것이 바로 ‘흥분된 상태’입니다.
<흥분>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 자기가 싫어하는 것은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 음식도 자기가 싫어하는 것은 먹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 건강을 위한 운동도 자기가 싫으면 못 합니다. 그렇지요?
<흥분>을 ‘이성 흥분, 육 사랑 흥분’으로만 생각하면,
더 넓고 깊게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흥분>은 마음을 뜨겁게도 하고, 차갑게도 합니다.
<흥분>은 좋아하게도 하고, 기쁘게도 하고,
걱정되게도 하고, 불안하게도 합니다.
방향이 다를 뿐이지,
<흥분>은 ‘마음과 생각의 상태를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이 <흥분 상태>를 잘 써야
각종 할 일들을 ‘희망과 기쁨과 즐거움’으로 할 수 있습니다.
<흥분>은 가만히 있으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생각해야 됩니다. 행해야 됩니다. 일을 해야 됩니다.
가령 <노래>에 흥분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기뻐하고 좋아하며 자꾸 노래를 불러야, 노래에 흥분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감흥이 없습니다. 맞지요?
<할 일>에 흥분되려면, 자꾸 생각하고 일을 해야 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하루 종일 <일>에 흥분되지 않습니다.
<할 일의 흥분>이 일어나지 않으니,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것입니다.
<이성 사랑, 육 사랑>만 ‘흥분’이 아닙니다.
잘못 생각하면, ‘흥분의 근본’을 깨닫지 못하고
자꾸 ‘이성 사랑, 육 사랑’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대로 배우고 생각을 잘해야 됩니다.
<삶 속의 흥분>은 ‘수백 가지’입니다.
무엇이든 좋아하고 기뻐하고 희망에 불타서 생각하고 행하면,
<흥분>이 일어나서 기쁨과 희망으로 하게 됩니다.
<기도>도 ‘흥분 상태’에서 해야 잘됩니다.
그러려면 자꾸 삼위를 찾고, 할 말을 하고,
깊이 대화해 버릇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겉도는 기도’라서
기도할 때 기쁘지도 즐겁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기도를 안 하게 됩니다.
<말씀>도 ‘흥분 상태’에서 듣고 행해야 됩니다.
모르는 것들이 많으니 반복해서 듣고,
깊이 깨달으려 하면서 집중해서 들어야 됩니다.
그러다 <말씀이 궁금해서 빨리 듣고 싶은 단계>,
<말씀이 기다려지는 단계>,
<말씀 듣기 좋아하고 기뻐하는 단계>까지 가면,
그 단계가 ‘흥분된 상태’입니다.
그 상태에서는 말씀을 행하게 되고, <행하는 맛>도 알게 됩니다.
기도와 말씀뿐 아니라 그 어떤 것이든
<자기가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좋고 기쁘면,
그것이 ‘그 면에서 흥분된 것’입니다.
<쇼핑>도 좋아하고 기뻐하며 거기에 빠져서 하면,
<생각>도 <행실>도 ‘쇼핑에 흥분된 것’입니다.
<음식>도 좋아하고 기뻐하며 빠져서 먹으면,
<생각>도 <행실>도 ‘먹는 것에 흥분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합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시길
“<육적 사랑>만 ‘흥분’을 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좋아하고 기뻐하며 어떤 것을 생각하고 행하면,
거기에 흥분된 것이다.” 하셨습니다.
<황금성 천국>은 ‘영원한 사랑과 기쁨의 세계’라서
영원히 좋아하고 기뻐하며 사니,
<흥분된 상태에서 사는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흥분되면, 좋아하고 기뻐하니 ‘힘든 일’도 하게 됩니다.
좋아하고 기뻐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든 힘이 듭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 기뻐하는 것’이 참 큽니다.
좋아하고 기뻐하기 위해, 가만히 있지 말고 생각하고 행해야 됩니다.
그래야 <흥분>이 일어나서, ‘꼭 할 일’을 하게 됩니다.
<신앙의 모든 일들>도 그러합니다.
<자기 책임의 할 일>을 좋아하고 기뻐하며 해야,
힘이 안 들고 쉽게 하게 됩니다.
하루는 <선생이 매일 꼭 해야 될 일>을 놓고
‘오늘도 또 일을 해야 되네. 힘들어. 지겨워.’ 하며
질린 상태에서 했습니다.
그랬더니 진절머리가 쳐지고, 일이 너무 지겹고 힘들었습니다.
일이 크게 보이고, 일하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너~무 하기 싫었습니다.
결국 일을 줄여 버렸습니다.
그러니 남은 일마저 ‘에잇! 이 일도 안 하면 편하겠다.’ 하고,
남은 일들도 지겹게 생각됐습니다.
<내가 할 일>을 안 하니, 안 한 만큼 하나하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결국 일은 해야 되니, 기도하고 깊이 생각했습니다.
이때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일을 좋아하고 사랑하며 흥분되어 해야 된다.
그러지 않으면 뇌신경이 일을 거부하게 되고,
생각에서 싫어지니 못 한다.
네가 할 일을 좋아하고 기뻐하도록 삼위의 뜻을 깨닫고,
네 마음을 좋고 기쁘게 흥분된 상태로 만들어라.
사랑도 좋아하고 기뻐해야 하게 되지 않느냐.” (하셨습니다.)
성령님의 말씀을 듣고서 <일>만 생각하지 않고
<생명을 살리는 기쁨과 보람>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한 뜻과 목적>을 생각하며,
왜 즐겁고 기쁜지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각종 편지나, 글이나, 그 어떤 일도
좋아하고 기뻐하며 흥분된 상태에서 하게 되었고,
그랬더니 일하는 것이 힘들지 않고,
하면 할수록 계속해서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모두 <저마다 매일 할 일>을 놓고,
‘오늘도 또 일해야 되네. 또 공부해야 되네.
힘들어. 지겨워.’ 할 때가 많습니다.
육적인 일이나, 영적인 일이나 다 그러할 것입니다.
그때마다 <그 일의 목적>을 생각하고 <보람>을 생각하면서,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하기 바랍니다.
그 일에 흥분되어서 해야
일이 힘들지도 않고, 지겹지도 않고, 진절머리도 안 치고
행한 만큼 ‘목적과 보람’을 누리게 됩니다.
공부도 좋아하고 기뻐하면서 해야
지식이 뇌에 쏙쏙 들어오고 잘 외워집니다.
공부한 만큼 육으로도 영으로도 멋있게 써먹으면 됩니다.
자연성전을 건축할 때도 참 힘들었습니다.
<무거운 돌을 쌓는 것>은
매우 위험할 뿐 아니라 노동 중에서도 중노동이라
기술자들도 ‘죽음’을 생각하면서 꺼리고 두려워했습니다.
결국 “저렇게 큰 돌을 쌓는 것은 두렵다.” 하며,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선생과 제자들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 학개 1장 14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그 일을 좋아하고 기뻐하며 마음이 흥분되게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그래서 <야심작>을 다 쌓은 후 다섯 번이나 무너졌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상의 작품>을 만드니,
좋아하고 기뻐하며 흥분되어 했습니다.
그랬더니 ‘큰 돌’도 작게 보였고,
자꾸 ‘더 큰 돌’을 구해서 웅장하게 쌓았습니다.
너무 좋아서 잠도 안 자고 밤을 새우면서, 해가 뜰 때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자연성전을 건축했으니,
모두 깨닫고 좋아하고 기뻐하며 흥분되어 쓰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오늘 성령님의 계시는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 ‘흥분’이다.
흥분돼야 제대로 한다.
흥분돼야 희망과 감사와 기쁨으로 한다.
그냥 하면 억지로 한다.
고로 힘들고 지겹고, 해도 제대로 안 된다.”입니다.
선생도 흥분되어 하지 않고서는
매일 새벽 1시, 2시에 일어나서 기뻐하며 기도를 못 합니다.
흥분되어 하지 않고서는
매일 볼펜 두세 자루를 쓸 정도로 글을 쓸 수도 없습니다.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 곧 ‘흥분’을 잊으면
그 사람은 어떤 일을 하든지 힘들고 어렵습니다.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일이 너무 많아서 힘이 없어서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때마다 조정하면서 짐을 줄이되,
일의 가짓수를 줄이거나 일을 멈추면 안 됩니다.
<일>이 ‘자기 사명’이고 ‘면류관’인데,
일이 많아서 힘이 없다고 일을 줄이면
자기 사명의 권세와 축복을 놓는 격이 됩니다.
신앙의 일도 그러합니다.
전도하는 것, 관리하는 것,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
말씀을 가르치고 외치는 것, 말씀을 연구하는 것,
설교하는 것, 노래하는 것, 기도하는 것 모두
좋아하고 기뻐하면서 해야 흥분되어 잘해집니다.
자기가 하고자 하면, 하게 됩니다.
그러나 왜 하는지 <가치>도 모르고,
<목적>도 모르고, <앞날>을 모르니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것입니다.
선생은 크게 ‘매일 일곱 가지’를 합니다.
좋아하고 기뻐하니 해집니다.
일반 사람은 ‘하루에 한 가지’ 하기도 힘듭니다.
좋아하고 기뻐하지 않으니 흥분이 안 돼서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일곱 가지 일의 내용>을 쪼개서 보면,
매일 하는 일이 ‘70가지’가 넘습니다.
그래도 빠짐없이 다 합니다.
그것도 바깥에서가 아니라, 여기서 합니다.
사실 불가능하지만, 좋아하고 기뻐하니 합니다.
선생도 지겹다고 생각하면 ‘한 가지’도 못 합니다.
<매일 하는 일곱 가지의 일>은
첫째, 새벽 1시를 기준으로 하여 기도와 대화하기.
둘째, 말씀 받기.
셋째, 설교 쓰기.
넷째, 시 쓰기.
다섯째, 작사 작곡하기.
여섯째, 각종 서류 결재, 편지 등 수십 건의 문제 해결하기.
일곱째, 근육 운동 1000회씩 하기. (입니다.)
처음에는 근육 운동을 하루 70회씩 했습니다.
매일 꾸준히 하다가, 이제는 최대 1000회씩 합니다.
이 중의 한 가지만 해도 하루가 다 가는 일입니다.
그래도 일곱 가지를 매일 꼭꼭 합니다.
이렇게 <기본으로 꼭 하는 일>이 ‘일곱 가지’이고,
쪼개서 보면 ‘70가지’나 됩니다.
그런데 이곳 환경이 좋지 않으니,
하루 종일 거의 앉아서 일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10년을 살았습니다.
하루도 내 할 일을 멈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고로 힘든 일이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몸이 절단 나는 것같이 힘듭니다.
목과 척추가 틀어지고, 어깨가 굳고,
하루 종일 서류와 편지와 글을 보니 눈이 피곤하여 안 보입니다.
그대로 두면, 몸이 다 망가집니다.
그래서 그때그때 몸을 풀면서 해결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고생돼도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놓고
좋아하고 기뻐하며 흥분되어 행하니,
하나님 앞에 ‘역사상 세계 최고의 시중’을 들 수 있었습니다.
내가 슬퍼하고 괴로워하면,
삼위는 너무나 큰 충격을 입으십니다.
고로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힘들다고 하지 않고 했습니다.
어느 때는 성자께서
“너, 견딜 수 있겠느냐?” 하셔서 “괜찮습니다.” 하니,
“그럼 됐다. 너만 괜찮다면, 내 너로 역사를 편다.”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할 일들을 다 해내니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네 주변이든, 어떤 나라든, 그 누구든지 행위대로 갚아 주고,
이 시대가 너를 대한 대로 행하였다.” 하셨습니다.
결국 10년 동안 <시대 십자가>를 지면서,
<하나님의 뜻, 최고의 사랑의 목적>을 이루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6000년 구원역사 기간 동안
하나님이 그토록 원하시는 일을 했습니다.
내가 내 사명을 안 하면 누구도 못 하니, 기쁘게 했습니다.
늘 하나님과 성령과 대화할 때마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6000년 구원역사를 하면서,
삼위께서 <마지막 섭리역사>를 놓고
얼마나 희망과 사랑이 불타셨습니까?
그러니 그 발판을 만들면서, 끝까지 하겠습니다!” 했습니다.
죄인들에게 끌려 다니고 묶여 다니며
온갖 창피를 다 당하고, 또 두려운 가운데서도
그때그때 삼위가 기뻐하시도록 할 일을 다 했습니다!
2017년 마지막 때, 또 충격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굳건히 할 일을 했습니다.
‘나는 누가 위로해 주나?’ 생각하고 있을 때,
<큰 손>이 ‘내 손목’을 꼭 잡고 있는 이상을 봤습니다.
하나님의 손이었습니다. 삼위의 손이었습니다.
시대가 모르고 막는 중에
이렇게도 모르는 자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다니,
<정녕코 하고자 하는 생각>이 나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와 <시대 모든 자들의 행위>를 놓고
새 노래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1000년 동안 ‘거울’이 되게 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사람은 누구든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절대 굳건하다,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때에 따라 다 흔들리고 바람을 탑니다.
보다 적게 흔들리느냐, 많이 흔들리느냐의 차이지,
<자연성전 세운 돌>같이 ‘안 흔들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시길
“누구든지 <영>이 ‘휴거’됐어도 <육>은 100% 못 한다.
네가 위로하고 잡아 주어라.
다 굳건할 거라 믿지 말고, 관리해라.” 하셨습니다.
주를 알아도 힘들어지면 흔들리고,
자기 생각으로 빠지면 누구나 흔들립니다.
그래서 평소에 잘한다고 해서 일만 시키면 안 됩니다.
모두 한계가 있습니다.
이는 마치 매 경기 때마다 금메달을 딴 사람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금메달을 딴 선수>도 어느 때는 ‘은메달’도 땁니다.
국가 대표 선수라도 아예 ‘메달’을 못 따기도 합니다.
섭리사에서도 그러하니,
아무리 잘하는 자라도 때마다 위로하고 관리해 줘야 됩니다.
<10년의 십자가 기간에 끝까지 한 자>는
- ‘금메달을 딴 자’입니다.
- ‘이긴 자’입니다.
- ‘주와 일체 된 자’입니다.
흔들려도 ‘끝까지’ 해야 됩니다.
<흔들려도 끝까지 할 일을 한 자>가 꿈을 이루고 승리합니다.
<마지막>이 크고도 큽니다.
이제 <시대 십자가를 다 지고 부활되어 희망을 맞는 해>입니다.
혹여 힘들어도, 흔들려도 ‘주와 끝까지’입니다!
이제 희망을 맞기까지 20여 일 남았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2월부터는 날짜를 따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모두 희망과 감사로 기뻐하며 살기 바랍니다.
<그때까지 끝까지 뛰는 자>는 ‘금메달리스트’입니다.
작년 꿈 기억나지요? <경주하는 꿈>이었지요?
사력을 다해 몸부림쳐 뛰고 달리니 숨이 가빠 기진맥진했는데,
그때 메뚜기가 앞에서 나를 슬쩍 잡아당겨 주니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받아서 다시 뛰는 꿈이었습니다.
어느새 <겨루는 자>는 뒤에 처져 있고,
<선생>은 앞서 있는 꿈이었습니다.
<메뚜기>는 ‘하나님과 성령님’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이 꿈은 <목적>을 두고 하나님과 성령께서 함께하시니,
힘들어도 경주하듯 <목적>을 향해 끝까지 뛰라는 꿈이었습니다.
<경주하는 자>는 ‘끝까지’ 뛰어야 됩니다.
아무리 잘 뛰어도 ‘끝까지’ 안 뛰면, 실격 처리됩니다.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작년 연말에 한 운동선수가 선생에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경주하는 꿈>을 생각하며, 1년 동안 목숨 걸고 뛰었다고 했습니다.
<평가전>이 있었는데,
그 경기가 끝날 때까지 경기가 잘 안 풀렸지만
끝까지 주를 부르며 이를 악물고 포기하지 않고 뛰었다고 했습니다.
<2017년 섭리사의 꿈, 끝까지 뛰는 꿈>을 가지고
뛰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맨 마지막에 국가 대표 선수로 선발됐다고 했습니다.
끝까지 하니, 하늘의 별을 따는 듯한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모두 <섭리를 달리는 사명자>가 되어
주와 같이 끝까지 하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자기가 좋아하고 기뻐하면서 하면,
흥분되어 하니 제대로 하게 됩니다.
희망과 감사로 하게 됩니다.
<할 일>을 두고 ‘하고자 하는 자’는
어떻게 해서든 틈을 내서라도 합니다.
진정으로 주를 믿고 사랑한다면,
이유를 대지 않고 즐거움과 기쁨으로 끝까지 주와 같이 행합니다.
이로써 주를 사랑하는지, 주 앞에 순종하는지 알게 됩니다.
<끝까지 한 자>는 흔들리면서 했어도 ‘승리자’입니다.
안 흔들렸어도 <끝까지 안 한 자>는
안 한 것에 있어서는 ‘패한 것’입니다.
좋아하고 기뻐함으로 흥분돼서 해야
어려운 일도, 힘든 일도, 좋은 일도, 작은 일도, 큰일도
다 할 수 있습니다.
섭리인 모두, 각자 개성대로 이같이 해 왔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기어이 할 일을 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특히 <표상자들>은 절대 기어이 행하기 바랍니다.
이제 다 왔습니다. ‘주와 끝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