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8.02.04 (일)
180204 주일말씀(사람은 맛들이고 길들인 대로 좋아한다)
- 선포일
- 2018.02.04 (일)
- 성경 본문
- 잠언 24장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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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04-주일말씀(사람은_맛들이고_길들인_대로_좋아한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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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4일 주일말씀> * 말씀이 깊다. 설교자는 성령으로 외치도록 철저히 준비해라.
사람은 맛들이고 길들인 대로 좋아한다
본 문 잠언 24장 12절
마태복음 16장 27절
요한계시록 22장 12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2월 첫째 주 주일>입니다.
<희망과 감사의 해>가 완연히 떠올랐습니다.
◎ 모두 지난 주 주일말씀 기억하지요? 뭐였지요?
네!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 흥분이다.
흥분돼야 제대로 하고, 희망과 감사로 한다.’입니다.
이 시기뿐 아니라
<섭리의 삶>과 <휴거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말씀이라,
생방송으로 더욱 이해되고 흥분되게 말씀해 줬습니다.
모두 잊지 말고, ‘흥분의 삶’을 살기 바랍니다.
◎ 오늘은 ‘사람은 맛들이고 길들인 대로 좋아한다.’라는 주제로
말씀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맛들인 대로 좋아한다.
길들인 대로 좋아한다.” 하셨습니다.
자기가 어디에서 태어났든지,
태어난 곳의 배경과 환경에 정들어
그곳에 맛들이고 길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길들어진 대로 좋아합니다.
종교인들도, 정치인들도, 경제인들도, 언론인들도,
예술인들도, 지식인들도, 운동하는 자들도,
공부하는 자들도, 사랑하는 자들도, 농사짓는 자들도,
혹은 동성연애를 하는 자들도, 음란물을 보는 자들도
모두 거기에 맛이 들고 길이 들어서 그것을 좋아하며 합니다.
어떤 것이든 오래 하다 보면
<뇌>도 체질이 되고, <몸>도 체질이 되고,
<마음과 정신과 생각>도 체질이 되어
맛이 들고 길이 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길들어진 상태로 변화되어서 살게 됩니다.
◎ 이제 한 단계 차원 높여 말씀하겠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맛을 들이고 길을 들였느냐에 따라서
<그에 따른 모양과 형상>을 좋아하게 됩니다.
쉽게 이해하도록 이야기해 줄게요.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배고플 때 음식을 먹으면 다 맛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어떻게 가공한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서
그것에 맛이 들고 길이 들게 됩니다.
<그 모양의 음식>을 먹으면서,
<그 음식의 모양>에까지 맛들이고 길들어지게 됩니다.
가령 <밥>을 해서 먹으면 ‘밥 모양’이 맛있다고 하고,
<떡>을 해서 먹으면 ‘떡 모양’이 맛있다고 하고,
<과자>로 만들어서 먹으면 ‘과자류의 모양’이 맛있다고 합니다.
그것에 길이 들어서, 그것을 좋아하게 됩니다.
한 번 더 말할게요.
<과일>은 먹으면 다 맛이 있습니다.
사과, 배, 복숭아, 자두, 딸기,
바나나, 수박, 체리 등 각종 과일입니다.
그러나 배고플 때 <어떤 과일>을 먼저 먹느냐에 따라
<그 모양의 과일>에 맛이 들고 길이 들어서
<그 모양>까지 좋아하며 즐기게 됩니다.
처음에 <작은 과일>을 맛있게 먹고 길이 들면
<그 모양의 과일>이 맛있다며 계속 먹고,
처음에 <큰 과일>을 맛있게 먹고 길이 들면
<그 모양의 과일>이 맛있다며 계속 먹습니다.
<종교>도 그러합니다.
처음에 <우상 종교>를 접하여 맛들이면
70~90% 이상이 ‘그 종교’가 좋다면서 계속 믿고 살고,
처음에 <이단 종교>를 접하여 맛들이면
계속 ‘그 모양의 종교’에 길들어져 좋아하며 섬깁니다.
이슬람교, 유대교, 천주교, 개신교, 새 역사 등
처음에 <어떤 모양의 종교>를 처음 접했느냐에 따라서
<그 종교>를 취하고 믿고, 그 종교에 맛이 들고 길이 들어서 삽니다.
종교뿐 아니라 정치도, 경제도, 예술도, 학문도, 취미도 그러합니다.
<배우자>나 <사랑의 대상>을 선택할 때도 그러합니다.
먼저 생각으로 상대를 택해 보고,
자기가 맛들이고 길들어진 <모양과 형상>대로 택합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스타일을 좋아한다.” 합니다.
그래서 거리를 보면,
각자 자기가 맛들인 대로, 개성대로 짝을 지어 좋아하며 다닙니다.
상대가 ‘이성’이기도 하고, 더러는 ‘동성’이기도 합니다.
맛들인 대로, 길들인 대로 좋아합니다.
그래서 처음에 맛을 잘 들이고 길을 잘 들여야 됩니다.
잘못 맛들이고 길들이면, 인생 실패하고 영원한 고통까지 받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사람은 어릴 때 먼저 넣어 주는 대로
<그런 모양>이나 <그런 종류>에 맛이 들고 길이 들어서 좋아합니다.
뇌에 입력되어 기억되고 저장되었기 때문입니다.
<돌 작품>도 그러합니다.
<가늘고 호리호리한 돌>이 좋아서 그것에 맛들이면
그런 돌을 사다가 정원에 세우고,
<넓고 푸짐한 돌>이 좋아서 그것에 맛들이면
그런 돌을 사다가 정원에 세웁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자연성전>에는 ‘두 가지 종류의 돌’을 사다 세웠고,
그밖에도 ‘각양각색의 돌들’을 사다 세웠습니다. <끝>
<솔 작품>도 그러합니다.
<작은 분재형 나무>가 좋아서 그것에 맛들이면
분재형 나무만 사다 심고 가꾸고,
<큰 나무>가 좋아서 그것에 맛들이면
큰 나무만 사다 심고 좋아하면서 가꿉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자연성전>에는 하나님과 성자께서 ‘큰 소나무’를 심으라 하셔서
나무에 돌이 가려도 아예 ‘큰 소나무’를 갖다 심었습니다.
고로 품위 있고, 누가 봐도 멋있고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작은 소나무들’도 심어서
각자 좋은 대로 보게 했습니다.
이렇게 <자연성전>에는
분재 솔도 키우고, 중간 크기 솔도 키우고, 거목 솔도 키웁니다. <끝>
* 화면 잠시 쉬었다가
가정에도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자녀가 있고,
자녀 중에도 아기, 청소년, 청년, 어른이 있지요?
이와 같이 <자연성전의 작품>도 ‘골고루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돌 작품, 솔 작품>도 그러하고, <폭포수 작품>도 그러합니다.
제일 큰 <연회장 폭포>가 있고,
중간 크기의 <야심작 옆 폭포>가 있고,
귀여운 크기의 <잔디성전 옆 폭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구상하셨습니다.
아름답고 웅장하며,
밸런스가 맞아 조화로운 하나님의 전입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선생이 유럽에서 선교할 때,
수많은 유럽의 청년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그들의 신앙 상태를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유럽은 대부분 ‘기독교 국가’입니다.
부모가 ‘기독교’이니,
자기가 태어날 때나 어릴 때부터
부모들이 교회나 성당으로 데리고 가서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독교에 길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어렸기에 자기가 좋아서 선택할 겨를도 없이,
부모에 의해 기독교에 길들여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말만 ‘기독교인’이지 교회나 성당에는 잘 안 가고,
특별한 날에만 간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컸으니 길들어진 대로 믿지 않고,
자기가 자유롭게 종교를 선택하여 인생을 살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기는 해도
실상은 잘 모르고 믿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모르니, 하나님을 오해하는 청년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의 말을 듣고 깨달아지기를
‘그래서 이 지역에서 ‘시대 보낸 자’가 태어나지 않았구나.
간절한 나라, 준비된 곳에서 태어났구나.
그래서 내가 이곳으로 ‘시대 복음’을 전하러 오게 됐구나.’
했습니다.
그들은 ‘신앙심’은 있으나,
<하나님>에 대해, <예수님>에 대해, <구원>에 대해 뭘 잘 모르고
그저 어렸을 때부터 길들어진 대로만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의 다 ‘술, 담배’를 하고, ‘이성’도 사귑니다.
믿지만, 말씀과 상관없이 그냥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고로 <그 영>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차원이 아주 낮고,
<행위>로 볼 때 ‘의의 편’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9장 40절에 -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했지만,
그 당시에 하도 반대자들이 많으니, 그들을 보고 하신 말씀입니다.
* 이 부분 ‘성구’ 읽을 때, 힘 있게 외치기!
그러나 마태복음 12장 48-50절을 보면 -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2장 30절을 보면 - 또 말씀하시길
“<나와 함께 아니 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7장 21절을 보면 -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했습니다.
또 마태복음 16장 27절을 보면 -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구원>에 대해 정확히 말씀하시길
“행한 대로 갚아 준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보면, 그들은 ‘어긋난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 5장 26절을 보면 -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시길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며,
한 푼이라도 남지 않게 깨끗하게 할 것을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22장 37-38절을 보면 -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또 마태복음 5장 48절을 보면 -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을 보면 - 사도 바울도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지 못하니, 이 말씀에 다 걸립니다.
고로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그저 어렸을 때 길들어진 대로만 믿으면서
실상은 자기 삶을 사는 자들을 <영의 세계>에서 보면,
<간판>만 있지 ‘물건은 없는 상점’과 같습니다.
<그 영>도 ‘변화되지 않은 일반 영’입니다.
선생이 그들을 만나 대화하며 <시대 복음>을 전했지만,
그들에게는 <복음>이 안 들어갔습니다.
그 후 유럽에서 3년, 5년씩 가르쳐서 ‘소수’만 섭리사에 왔습니다.
그 수는 ‘길을 가다 물을 정도의 수’입니다.
<유럽>뿐 아니라 기독교국인 <미국>이나
<아시아 쪽의 기성인들>도 그러하고,
그렇게 신앙으로 불타던 <한국>도 그러합니다.
교회에 가 보면, ‘청년들’이 거의 없습니다.
<구시대 말씀>으로는 안 됩니다.
<종교 말씀>만으로도 안 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말씀>을 ‘영육’으로 줘야 됩니다!
곧 <주가 살아서 전하는 시대 말씀>입니다! (힘 있게!)
<섭리사 2세들>도 잘 가르쳐야 됩니다.
어렸을 때 부모에 의해
맛들이고 길들여진 대로 ‘섭리 신앙생활’을 하지만,
<시대 말씀>을 제대로 모르고 <주>를 제대로 모르고 크면
후에는 자기 식으로 길들어져 세상으로 나갑니다.
해결책인 <시대 말씀>이 있는데도 제대로 안 가르치고 안 배우면,
믿어도 그냥 믿는 ‘기성의 청년들’과 같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말씀>이 있으니,
영과 육으로 잘 가르치고 잘 배워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그리고 ‘확신’을 갖고 살아야 됩니다.
그 확신이 <무기>가 되어 비진리와 악평과 세상과 싸워 이기고,
자기 육도 영도 더 빛나게 만들어 귀히 쓰이게 됩니다!
믿습니까? (힘 있게!)
<잠시 쉬었다가> 핵심 부분, 중요 부분 (정말 잘 전해야 될 부분)
◎ 이제 <한 꿈 계시>를 이야기해 주면서,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 전할 <핵심 말씀>을 해 주고 마치겠습니다.
중요하니, 잘 듣기 바랍니다.
새벽꿈에 ‘큰 돼지’가 나를 물려고 쫓아다녔습니다.
“왜 나를 물려고 그리 쫓아다니냐?” 하니,
돼지가 말하길
“나는 더 살고 싶은데,
사람들이 자꾸 나를 잡아먹으려 한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괴롭다고, 나를 물어뜯으려 했습니다.
“주인에게 말해서 너 살려 주라고 할게.
그러니 물지 마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돼지는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돼지>가 ‘사람’으로도 보였습니다.
잠에서 깬 후에 이 꿈이 깨달아졌습니다.
<나와 섭리사 모든 자들에게 해당되는 계시>였습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기록하고, 모두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 잠시 쉬었다가
이 꿈을 꾸고 나서,
<내 육>이 더 자고 싶은데 <내 혼과 영>이 자꾸 나를 깨웠습니다.
잠은 <더 자는 것>이 ‘더 사는 격’입니다. 고로 편합니다.
사람이 잘 살려고 하는 만큼, 더 자기를 원합니다.
이때 성령님은 “좀 더 자게 두자.” 하셨고,
15분 후에 결국 깨워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결국 일어났습니다.
◎ 이제 <핵심 말씀> 나갑니다. (여기서부터 모두 정말 중요!!!)
이와 같이 사람은 길들어진 대로 좋아하며 행합니다.
이것이 ‘육성’이기도 합니다.
돼지가 더 살고 싶어 하는 만큼
더 자고 싶어 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더 하고 싶어 하고,
자기가 길들어진 대로 행하고 싶어 합니다.
꿈에 주인이 돼지에게 ‘살 시간’을 조금 더 줬듯이,
생시에 성령께서 선생에게 ‘잠잘 시간’을 조금 더 줬듯이,
인생들이 ‘길들어진 대로 살 시간’을 조금 더 줍니다.
그러나 시간을 ‘조금 연장’할 뿐이지,
결국 돼지는 주인이 잡습니다.
선생도 ‘잠자는 시간’이 조금 연장됐을 뿐이지,
결국 때가 되어 일어났습니다.
결국 돼지를 잡듯, 결국 선생이 잠에서 일어나듯,
<자기 육성과 고칠 것>을 결국 다 고치고,
<자기 죄>는 결국 다 회개해야 된다는 계시입니다.
조금의 연장이지, 결국은 ‘심판’을 해야 된다는 계시입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맛들여 사니, 쉽게 고쳐지겠습니까?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맛들이고 길들어진 대로 좋아하니, 그것을 포기하겠습니까?
새벽의 단잠만큼이나 <맛들이고 길들어진 것>을 좋아하니,
그게 쉽게 버려지겠습니까?
종교도, 삶도, 좋아하는 것들도, 이성도, 동성도,
인터넷도, 음란물도, 술도, 담배도
저마다 ‘맛들이고 길들어진 대로’ 좋아하며 삽니다.
모두 ‘육성’에 속한 것들입니다.
<죽는 것>만큼이나 <고치는 것>을 싫어하고,
<사는 것>만큼이나 <길들어진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돼지>는 잠깐만 더 살지, 결국 주인이 잡습니다.
결국 조금 연장될 뿐이지, 결국 ‘심판의 날’이 옵니다.
<큰 돼지>는 ‘육성, 잘못된 습관과 버릇, 죄’입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나를 잠에서 깨워 주시듯,
<하나님의 뜻이 있는 자들>은 다 고치게 하십니다!
<정녕 고치려 하는 자>는 ‘그릇되게 길든 것’을 고칩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자>는 고칩니다!
<황금성 천국에 가는 자>는 고칩니다!
그 외에도 꿈에 ‘큰 돼지들’이 나를 쫓아다녔습니다.
<큰 돼지>는 앞에서 말한 대로 ‘육성에 해당되는 것들’이며,
또 ‘나를 괴롭히는 자들’이었습니다.
즉시 기도하여 ‘천군’을 보냈습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잘못 길들어진 습관>과 <그릇된 육성>을 죽이듯,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악한 돼지, 불법한 돼지, 악평하는 돼지들>을 곧 잡으신다.
잠깐은 놔둔다.
<보낸 자>를 괴롭히니, 방법상 잠깐 놔뒀다가 결국 잡는다.
그 돼지는 ‘잡아야 할 돼지’다. ‘순간의 기회’만 준다.
이 <은밀한 비밀>을 깨달아라.” 하셨습니다.
북한도 그러합니다.
그들은 ‘싸움’을 좋아하고, 계속 ‘무기’를 만듭니다.
순간의 기회만 줄 뿐입니다. 결국은 잡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성령의 말씀입니다.
“사람은 생긴 대로 모양대로 맛들이면, 그 모양만 좋아한다.
그것에 길이 들어, ‘습관’이 되고 ‘체질’이 된다.
모두 육성과 그릇된 것과
잘못 맛들이고 길들인 것을 ‘장사하기’다.
좋게 맛들이고 길들인 것은 ‘더 하기’다.
그러나 <육성과 그릇되게 길들인 것을 고치기>가
<죽기>보다 싫다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연장은 ‘잠깐’이다.
결국 새벽에 좀 더 누워 있다가 결국 일어나듯이,
잡을 돼지는 시간을 조금 연장할 뿐이지 결국 주인이 잡듯이,
결국 하나님은 ‘옛것을 장사’지내게 하거나 ‘심판’하신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나 성령>이 ‘주인’이다.
기다리는 시간은 잠깐이다. 결코 하신다!”
모두 <10년의 십자가 기간> 동안,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주와 육이 떨어져 있으면서
<각자 자기 식으로 맛들이고 길들인 것>이 있습니까?
아직도 <육성>과 <그릇된 것들>을 고치지 못했습니까?
이제 <주를 맞을 때>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깨닫고 행하여, 후회 없이 주를 맞기를 축원합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