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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말씀2018.02.07 (수)

180207 수요말씀(룰을 정하기에 달려 있다)

선포일
2018.02.07 (수)
성경 본문
에베소서 4장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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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7일 수요말씀> 사람은 자기 머리를 채우기 위해 일생을 살아간다 룰(rule)을 정해라. 룰을 정하기에 달려 있다 본 문 에베소서 4장 15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사람은 맛들이고 길들인 대로 좋아한다.’ 라는 주제로 말씀했습니다. ◎ <큰 돼지>에 대한 꿈 이야기를 해 주면서, 섭리사 모두에게 해당되는 계시임을 말씀했습니다. <큰 돼지>는 육성, 그릇된 것, 잘못 길들여진 습관을 뜻하며, 또 악한 자, 불법을 행하는 자, 악평하는 자들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 핵심은 이것입니다. 사람은 생긴 대로 모양대로 맛들이면, 그 모양만 좋아한다. 그것에 길이 들어, ‘습관’이 되고 ‘체질’이 된다. 모두 육성과 그릇된 것과 잘못 맛들이고 길들인 것을 ‘장사하기’다. 좋게 맛들이고 길들인 것은 ‘더 하기’다. 그러나 <육성과 그릇되게 길들인 것을 고치기>가 <죽기>보다 싫다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연장은 ‘잠깐’이다. 새벽에 좀 더 누워 있다가 결국 일어나듯이, 잡을 돼지는 시간을 조금 연장할 뿐이지 결국 주인이 잡듯이, 하나님은 결국 ‘옛것을 장사’지내게 하거나 ‘심판’하신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성령>이 ‘주인’이다. 기다리는 시간은 잠깐이다. 결코 하신다! <10년의 십자가 기간> 동안,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주와 육이 떨어져 있으면서 <각자 자기 식으로 맛들이고 길들인 것>이 있거나 <아직도 고치지 못한 육성과 그릇된 것들>이 있다면, 이 말씀을 깊이 깨닫고 행하여 후회 없이 주를 맞아라! ◎ 오늘은 ‘사람은 자기 머리를 채우기 위해 일생을 노력한다.’ 라는 주제로 말씀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 사람은 ‘자기 머리’를 채우기 위해 일생을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 또 사람은 ‘자기 마음과 생각이 원하는 것’을 채우기 위해 일생 동안 수고하며 살아갑니다. 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자기 머리>를 채우고 <자기 마음과 생각이 원하는 것>을 채우고 살아도 <사람의 뇌와 생각, 심리>는 ‘만족’이 없습니다.  만사가 다 그러한데, 이해되도록 몇 가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 <먹는 것>도 그러합니다. 가령 간식으로 빵을 ‘한 개씩’ 주면, “두 개 먹으면 정말 좋겠다. 만족하겠다.” 합니다. 그래서 ‘두 개’를 주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세 개 먹으면 배부르고 좋겠다.” 합니다. ▸ <돈>도 벌면 벌수록 ‘만족’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이 정도만 벌면 소원이 없겠다. 만족하겠다.” 하지만, 그 정도를 벌게 되면 또 “더 벌어야 만족하겠다.” 합니다. ▸ <집>도 그러합니다. 처음에는 “초가집만 벗어나면 소원이 없겠다. 천국이겠다. 내 공간만 생기면 만족하겠다. 작더라도 내 집만 마련하면 만족하겠다.” 합니다. 그러다 초가집을 벗어나고, 자기 공간이 생기고, 작더라도 자기 집을 마련하고 나면 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집이면 만족하겠다.” 합니다. 그러다 후에는 “궁궐 같은 집이면 만족하겠다. 궁궐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이 부럽다.” 합니다. ▸ 또 어떤 사람을 두고 “그 사람 얼굴만 보면 만족하겠다.” 했는데, 막상 얼굴을 보여 주면 “대화하면 만족하겠다.” 합니다. 그러다 대화를 해 주면 “같이 식사하면 만족하겠다.” 합니다. 그러나 역시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더, 더 ‘원하는 것’이 생기게 됩니다.  <사람의 마음과 심리>가 그러합니다. <자기 머리>를 채우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채우려 갖은 노력을 하고 수고를 하며 살아가지만, 막상 그것을 채워도 거기서 만족하지 못합니다. 고로 사람은 ‘한계’를 정하고 살아야 됩니다. <한계>까지 하면 “만족하다.” 하고, 못을 박고 살아야 됩니다. 곧 자기가 ‘룰(rule)’을 정하고 살아야 됩니다. 그 룰(rule)에 따라 살면서 거기에 만족해야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 <기상 시간>이 아침 6시든, 새벽 5시든, 4시든, 3시든 사람은 만족하지 않고 더 자고 싶어 합니다. 단 5분이라도, 10분이라도, 20분이라도 그렇게 더 자고 싶습니다. 몇 시를 기상 시간으로 정하든지, 사람의 심리는 조금 더 자고 싶고, 더 편하고 싶습니다. 선생도 군대에 있을 때 6시가 기상 시간이었는데, 모두 한결같이 “언제 잠을 더 자 보냐...” 하며 그리도 제대하는 날을 기다렸습니다.  8시까지 더 자더라도 막상 8시에 일어나면 5분, 10분, 20분이라도 더 자고 싶습니다. 그러다 누가 깨워 주거나, 알람이 울리면 “5분만 더 자고 일어날게.” 하지 않습니까?  그래서 아예 ‘룰(rule)을 정하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룰(rule)을 정하는 대로 하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세상을 위해, 육적인 것을 위해 사는 자들도 더, 더, 더 <자기 머리>를 채우고 <자기 마음과 생각이 원하는 것>을 채우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수고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간의 머리 크기>는 하나님이 보실 때 ‘도토리 모자’와 같고 ‘커피 잔’과 같습니다. <일생>을 두고, ‘자기 머리’를 채우려 하지만, 결국 ‘그 작은 머리’를 못 채우고 죽습니다. <자기 머리를 채우는 일생의 과정>은 마치 새벽 4시까지 잠을 자다가 소원대로 5시까지 자고,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6시까지 자고, 거기서 또 만족하지 못하고 7시까지 자고, 그러다 더 자고 싶어서 8시까지 자고, 9시까지 자는 격입니다. 그러다 인생 90이 되어 죽는 격입니다. 결국 ‘남는 것’이 없습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머리’로 채우는 것을 원하고, 그것을 더 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영원히 남아져, 영원한 사랑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 <자기 생각의 잔머리나 굴리고 사는 자>는 마치 쇠똥구리가 소똥을 굴리며 기뻐하며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쇠똥구리가 계속 소똥을 굴리지만, 그 소똥을 굴려서 크게 만들어 봤자 어디에 쓰겠습니까? 사람이 볼 때는 다 소용없는 짓입니다. 하나님 앞에 ‘잔머리 굴리는 인생들’도 그러합니다.  <자기 잔머리>를 채우려다 ‘젊음’ 다 가고 ‘일생’ 다 갑니다. 그러나 결국 ‘자기 작은 머리’도 못 채우고 죽습니다. 섭리사에서도 ‘잔머리 굴리고 잔머리 채우던 자들’은 이미 다 나가고 없습니다. 섭리사에 남아 있어도 ‘잔머리 굴리는 자들’은 지금도 뒤처져 허우적거립니다. <이성>에 잔머리 굴리고, <동성>에 잔머리 굴리고, <자기만족>을 채우려고 합니다. <잠 만족>이나 채우려 하고, <편안함의 만족>이나 채우려 합니다. 그런 자는 쓸 수가 없습니다.  휴거되고도 그러하니, <휴거 자격 미달>로 ‘그 영’이 ‘땅’으로 내려와 다시 ‘의의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닙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의의 작품’을 팔고 다니기도 합니다. <주의 조건>으로 ‘300선 휴거’는 되었지만 그 후에도 자기가 ‘휴거의 삶’을 살지 않으니, <변질되지 않는 안정된 700선>에 가지 못하고 결국 ‘휴거 자격 미달’로 <영>이 ‘땅’에 내려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와서, 언제 다시 휴거되겠습니까? 다시 휴거되려면, 주와 일체 되어 목숨 다해 눈물겹게 행해야 됩니다.  사람은 ‘귀한 것’을 주면, 처음에는 가치를 모르고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후’에야 알고 ‘후회’합니다. 그러나 다시 ‘그 귀한 것’을 얻으려면, 힘듭니다. 어느 정도 힘든가 하니 - 매일 절대 정한 시간에 기도하고, - 매일 짓던 죄를 안 짓는 것만큼이나 힘듭니다.  <자기 머리 그릇의 크기>는 ‘도토리 모자’만 합니다. 커 봤자 ‘커피 잔’만 합니다. 그마저 ‘육적’으로만 생각하고 살면, 그 작은 머리도 평생 못 채우고 죽습니다. 그렇게 학문을 배웠어도, 대학을 나왔어도, 그렇게 직장을 다니며 사회생활을 했어도, 어른이 됐어도 너무 모르고 삽니다. 세상 노래 가사처럼, 그렇게 살아갑니다. 모두 ‘커피 잔 같은 머리를 채우는 삶’입니다. 그런 삶은 ‘영 구원’과 전혀 상관없습니다. 영의 세계에 가 보나 마나 뻔합니다.  <자기 머리>를 채우면서 편하게만 살려면, 끝이 없습니다. 계속 채워도 ‘자기 머리를 채우는 삶’은 만족이 없습니다. 모두 ‘자기 심리와 마음과 생각’을 깨닫고 다스리기 바랍니다! 그러지 않으면 - 결국 눕다가 잠자는 삶이 되고, 편하기 위해 그 작은 머리를 채우려 발버둥 치다가 죽는 꼴이 됩니다.  이에 성령님은 말씀하십니다. “룰(rule)을 잘 정하고 살아라. 룰(rule)을 정하기에 달려 있다. 자기가 인식하고 행하도록 룰(rule)을 많이 정하는 것이 좋다.” <잠시 쉬었다가>  <전도>도 ‘룰(rule)’을 정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1년에 1명 전도하는 것을 룰(rule)로 정하고, 어떤 사람은 1년에 3명 전도하는 것을 룰(rule)로 정하고, 혹은 10명, 20명 전도하는 것을 룰(rule)로 정하고 합니다. 10명 이상 전도하겠다고 룰(rule)을 정했으나, 그대로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룰(rule)을 정했기에 룰(rule)을 안 정한 사람보다 많이 전도합니다.  조은 목사가 명동교회에 순회를 가서 수료한 지 2년 된 17기 신학생의 간증을 들었는데, 선생에게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감동이 되어, 모두에게 간단히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처음에는 이 사람에게 ‘신앙의 밤’이 자주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말씀 필사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날도 교회에서 말씀을 필사하고 있었는데, 교회 선배가 “너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아.” 하더랍니다. 그 말에 너무 충격을 받고, 그때부터 전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명동 거리를 활보하며 다니는 게 재미있어서 전도하러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다 <17기 신학생>으로서 주와의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고, 생명을 전도하다가 힘들 때마다 주가 해 준 말씀을 생각하면 더욱 전도에 불탔다고 합니다. 그러다 결국 ‘2명’을 전도했습니다. 그러나 17기 신학생이라면 3명 이상을 전도하고 주를 맞아야 되는데, 아직 2명밖에 전도를 못 해서 애가 탔다고 합니다. 팀 전도는 시간이 늦으니, 자기가 강의하고 관리하는 것까지 다 해 보겠다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강의 공부’를 하게 되었답니다. 또 생명들을 연결해도 강의할 사람이 부족할 때마다 애가 타서 결국 ‘내가 강의해야 되겠다.’ 생각하고 더 열심히 강의 공부를 했답니다. 생명을 만나기 전날, 마치 시험공부 하듯 밤새워 강의 공부를 하고 다음 날 공부한 대로 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자기가 강의를 하기 위해 말씀 공부를 하니, 더 이상 ‘신앙의 밤’을 맞을 시간도 없더랍니다. 결국 ‘7명의 생명’을 더 연결해서 말씀을 가르치게 됐답니다. 그러다가 ‘순회 날’이 정해졌고, 그날 자기가 ‘간증’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순회가 일주일이 연기되면서, 그 사이에 ‘3명’이 말씀이 끊겼다고 합니다. 자기는 꼭 ‘7명’을 전도하여 간증하고 싶었는데, 3명이나 말씀이 끊겼으니 정말 간증하고 싶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자기가 ‘룰(rule)’을 정했답니다. ‘꼭 7명을 전도한 상태에서 간증 단상에 서자!’ 하고요! 그때부터 일주일 동안 기도하며 말씀이 끊긴 생명들에게 연락하여, 기어코 7명을 만들어서 간증 단상에 섰답니다. 자기가 룰(rule)을 정한 대로 기어코 해내고 말았습니다! 그 룰(rule)대로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도 역사하셨습니다!  우리가 룰(rule)을 정해 놓고 행하면, 하나님도 그 룰(rule)대로 역사하고 축복해 주십니다! 아멘!  <전도에 관심도 없고 룰(rule)도 안 정한 사람>은 1년에 한 명 겨우 전도하거나, 한 명도 전도하지 않습니다. 룰(rule)을 정하고 하면, 기대대로는 안 되더라도 기어코 하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생명을 구원한 공적>이 제일 큽니다. 고로 그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을 줍니다. <생명을 구원하지 못한 자>는 ‘면류관’이 없으니, 그 <영>이 ‘빈 머리’로 다닙니다. 마치 머리카락을 빡빡 밀고 다니듯 하니, 표가 확 납니다. 머리에 아무것도 없으니, 표가 납니다.  전도하려고 하면, 하루면 합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 주의 머리>로 채우고 <그 생각>이 임하면, 반드시 생명을 구원하고자 룰(rule)을 정하고, 때마다 꼭 한 명씩이라도 전도합니다. 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은 인생들입니다. 고로 하고자 하면, 누구나 전도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구원하지 않으면, 얼마나 ‘복’을 못 받고 ‘해’를 받는지 모릅니다. 당해 봐야 그제야 알 것입니다.  2017년 연말에 하나님께 ‘선물’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주시려나? 작품을 주시려나?’ 하고 기다렸습니다. 편지를 보니 ‘성전’에 대한 소식도 있었고, ‘전도’에 대한 소식도 있었습니다. 모두 잘되도록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랫동안 관리하던 생명들이 돌아왔다는 편지가 왔습니다! ‘<제일 큰 선물>은 교회나 작품보다 역시 ‘생명’이구나!’ 했습니다. 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관리하던 생명들>이 다 돌아왔습니다! <2017년 연말 끝까지 관리한 생명들>이 다 돌아왔습니다! <2017년 꿈>처럼 경주하듯 전심으로 끝까지 하니,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그릇’대로 선물을 주셨습니다! 만일 ‘한 명’을 관리했으면, ‘한 명’이 돌아오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 명’을 관리했는데, 관리한 만큼 다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셨어도 내가 ‘적게’ 했으면 ‘적게’ 돌아왔을 것입니다. 고로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룰(rule)을 잘 정하고, 많이 정하라는 것입니다! 농사도 많이 지어야,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면 많이 얻게 됩니다.  작년 연말에 ‘재물을 얻는 꿈’도 꿨는데, 하나님은 ‘생명이 돌아오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생명>을 - ‘작품 하나’로 보시고, - ‘재물’로 보시고, - ‘큰 성전 하나’로 보십니다. 역시 <생명>은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생명>을 그렇게 크게 봐야 얻을 수 있습니다!  <한 생명을 구원한 자>는 - 자연성전에 ‘작품 하나’를 사다 놓은 자와 같고, - ‘거금’을 하늘 앞에 드린 자와 같고, - ‘교회 한 채’를 산 자와 같습니다. <한 생명을 전도하는 것>이 그리도 큽니다.  사망으로 가는 생명을 생명권으로 돌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시간>도, <돈>도, <열정>도 다 투자하여 생명을 구원하게 됩니다. <시간>과 <돈>만 투자하지 말고, <진리>도 투자해야 됩니다. <진리의 말씀>이 그 마음을 완전히 채우게 해 주고, <성령>이 역사하시도록 해 줘야 됩니다. 그래야 ‘신앙’이 확 들어가게 됩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 사람은 ‘두 가지 만족감’으로 살아갑니다. 첫째, ‘잘되기 위해 더 하는 만족감’으로 살아가고 둘째, ‘편하기 위해 덜 하는 만족감’으로 살아갑니다. <더 하는 것>도 끝이 없고, <덜 하는 것>도 끝이 없습니다.  사람은 <일생>을 두고 ‘자기 머리’를 채우려 그리도 수고하지만, 결국 ‘커피 잔 같은 그 작은 머리’를 못 채우고 죽습니다. 새벽 4시까지 잠을 자다가 소원대로 5시까지 자고,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6시까지 자고, 그러다 더 자고 싶어서 7시, 8시, 9시까지 자는 격입니다. 많은 것을 채우며 사는 것 같아도, 결국 ‘남는 것’이 없습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머리’로 채우기 바랍니다! 그러면 영원히 남아져, 영원한 사랑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우리를 위해 다 해 주십니다. 그리고 얻고 사는 것은 ‘우리’가 합니다. 이는 마치 산의 짐승을 다 잡아 주고, 먹기는 ‘우리’가 다 먹는 격입니다. 고로 성삼위께 ‘사랑과 감사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사랑과 감사>가 무엇입니까? - 성삼위를 사랑하고 그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사랑하고 감사해서 되겠습니까? 그의 뜻대로 행하며 휴거와 사랑의 삶을 살고, 생명을 전도해서 키우고 구원하는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 사람은 ‘자기 머리’를 채우기 위해 일생을 살아간다. <자기 머리>를 채우면서 편하게만 살려 하면, 끝이 없다. <자기 잔머리>를 채우려다 ‘젊음’ 다 가고 ‘일생’ 다 간다. 주와 일체 되어 ‘룰(rule)’을 정하고 살아라. 룰(rule)을 정하기에 달려 있다. 자기가 인식하고 행하도록 룰(rule)을 많이 정하고 행하여라.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