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8.02.11 (일)
180211 주일말씀(마음과 행실 두 가지가 맞아야 같이 산다. 영적 장자권을 가져라)
- 선포일
- 2018.02.11 (일)
- 성경 본문
- 로마서 8장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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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11-주일말씀(마음과_행실_두_가지가_맞아야_같이_산다._영적_장자권을_가져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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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1일 주일말씀>
<마음>과 <행실> 두 가지가 맞아야 같이 산다
<영적 장자권>을 가져라
본 문 로마서 8장 6절 (참조 : 창세기 25장 19-34절)
◎ 2018년 <희망과 감사의 해>를 맞으면서
주를 맞기 전에 막바지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주일말씀과 수요말씀으로 계속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 오늘도 말씀합니다.
오늘은 ‘<마음과 행실> 두 가지가 맞아야 같이 산다.
<영적 장자권>을 가져라.’라는 주제로 말씀하겠습니다.
◎ 깊은 말씀입니다.
<전초>
사람은 ‘두 가지’가 맞아야 같이 살 수 있습니다.
첫째, <몸>이 맞아야 하고,
둘째, <마음과 생각>이 맞아야 됩니다.
<몸>이 맞아야 된다는 말은 ‘행실’이 맞아야 된다는 말이고,
<마음과 생각>이 맞아야 된다는 말은 ‘근본’을 말합니다.
<행실 한 가지>만 맞아도 같이 못 살고,
<마음 한 가지>만 맞아도 같이 못 삽니다.
남자에게는 예쁜 여자 상대가 있고,
여자에게는 멋진 남자 상대가 있다 합시다.
▸ 예쁘고 멋진 상대가 <일>은 맞게 했는데,
<마음>이 안 맞으면 같이 못 삽니다.
같이 좋다고 하며 행했어도 <마음>이 안 맞으면,
결국 ‘마음 천국’이 되지 못하여 갈리게 됩니다.
▸ 반면 <마음>은 잘 맞는데 <행할 때> 안 맞으면,
같이 행할 수가 없으니 같이 못 삽니다.
<삼위>와도, <주>와도 그러합니다.
<행실이 안 맞는 자>는 ‘마음 한 가지’만 맞아 살아가고,
<마음이 안 맞는 자>는 ‘행실 한 가지’만 맞아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행실과 마음>
두 가지 다 안 맞는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말씀 시작>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음도 행실도 일체 됐을 때>만 ‘같이 사는 시간’이다.
<한 가지만 맞을 때>는 ‘같이 사는 시간’이 아니다.
<마음이 안 맞는 자>는 ‘마음을 거스르는 자’다.
마음을 거스르니, 그에 해당되는 것에는 같이 동행하지 못한다.
<행실이 안 맞는 자>는 ‘행실을 거스르는 자’다.
고로 행할 때 같이 동행하지 못한다.
<마음과 행실>, 둘 중의 하나만 안 맞아도
<마음>이 상하든지 <행실>이 상해서 같이 못 산다.
이것을 꼭 알아야 된다.
<마음과 행실 두 가지가 일체 될 때>만 ‘같이 사는 시간’이다.
<두 가지> 다 맞지 않으면,
삼위도 주도 동행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신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상>으로는 마음과 행실 두 가지 다 맞춥니다.
그러나 <사람의 구상>으로는 마음과 행실 두 가지를 다 못 맞춥니다.
고로 <마음과 행실>을 다 맞추려면 ‘자기 중심’을 빼야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
무조건 ‘하나님과 일체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잠깐 비유를 들어서 말해 주겠습니다.
남녀가 사귄다고, 혹은 결혼해서 같이 산다고
무조건 일체 됐다고 볼 수 있습니까? - 아닙니다.
서로 사랑했어도 헤어지는 자들이 많습니다.
사랑하고 살아도
“마음과 생각이 안 맞는다.
마음은 맞는데, 막상 뭘 하면 행실이 안 맞는다.” 합니다.
<사랑 행실>만 가지고서는 못 삽니다.
<마음>이 맞아야 됩니다.
또한 <마음>만 가지고서는 못 삽니다.
<행실>이 맞아야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을 해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마음이 안 맞는 자들’이 많습니다.
또 막상 일해 보면 ‘행실이 안 맞는 자들’이 많습니다.
<삼위의 사랑의 대상자>라면,
마음도 행실도 100% 맞춰서 합니다.
<자연성전>을 봐요.
돌 쌓을 곳에는 돌을 쌓고,
나무를 심을 곳에는 나무를 심고,
잔디성전 자리에는 잔디밭을 만들고,
호수 자리에는 호수를 만들고,
운동장으로 할 곳은 운동장을 만들고,
건물이 들어설 곳에는 건물을 만들고,
샘 자리에는 샘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상>이었습니다.
그 구상대로 하니 ‘삼위의 마음’에 맞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상대로 하지 않아서 눈에 거슬린 곳>은
모두 허물고 다시 했습니다.
<말씀>도 하나님과 성령이 주신 그대로 씁니다.
설교자는 그 심정으로 그대로 전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달리 전하면, ‘심정’을 거스르게 됩니다.
고로 그 사람은 쓸 수가 없고, 동행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설교할 때도 ‘자기 것’은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의 것’만 하여,
<마음>도 <행실>도 삼위께 중심을 맞추라는 것입니다.
한집에서 같이 살아도, 혹은 한방에서 같이 생활해도
<마음>과 <행실> 두 가지가 다 안 맞으면 같이 못 삽니다.
섭리사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도 그렇지요?
가령 <마음>이 잘 맞고 <대화>도 잘 통한다 합시다.
그런데 <행실>이 안 맞아서
자기가 잘 때 저 사람은 깨어서 생활하고,
자기가 기도할 때 저 사람은 잠만 자고 있으면 같이 못 삽니다.
반면에, 이런 <행실들>은 잘 맞는데
<마음>이 안 맞고 <대화>가 안 통하면,
그것도 답답하고 심정에 거슬려서 같이 못 삽니다.
하나님 앞에도 그러합니다.
<마음과 행실> 두 가지가 안 맞으면,
<하나님의 구상>대로 안 됐으니 안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흠’이 있으면 안 받으십니다.
기계도 조금이라도 안 맞으면 ‘결합’이 안 되고,
혹여 결합이 됐다 하더라도 ‘기능’을 못 합니다.
<마음과 행실> 두 가지가 100% 맞아야
그것이 ‘진정 같이 사는 삶’입니다.
<글자>도 ‘점 하나’로 어떤 글씨인지 좌우됩니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지요?
<나>라는 글자인데 ‘점 하나’를 돌려 찍으면 ‘너’가 되지요?
<글자>도 ‘점 하나’로 좌우되듯이,
<생각 하나, 행실 하나>로 삼위를 벗어나기도 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의 역사>도 하나님과 생각과 행실이 일체 돼야
비로소 ‘뜻’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구름’을 타고 행하시는데,
‘깨끗한 구름, 빠른 구름’을 타고 행하십니다.
그가 ‘하나님과 생각도 행실도 일체 된 자’로서,
‘역사의 조건을 세운 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중심해서 <약속하신 새 역사>를 펴 나가십니다.
그러나 <구시대>는 ‘그’를 모르고 불신하니,
절대 하나님과 ‘마음’도 ‘행실’도 못 맞춥니다.
고로 ‘시대 하나님의 역사’를 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과 행실>이 100% 맞아야,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동행하십니다.
섭리사 안에서도 <마음과 행실이 100% 맞는 자>에게만
하나님도 성령님도 동행하며 같이 살아 주십니다.
그리고 ‘뜻’을 펴 나가십니다.
하나님은 <마음과 행실을 다 맞추는 자>를 중심해서 행하십니다.
그러지 않으면, 고쳐서 다시 하게 하십니다.
<마음>만 맞고 <행할 때> 안 맞으면, 50%입니다.
<마음>이 안 맞고 <행할 때>만 맞아도, 역시 50%입니다.
꼭 <마음과 행실> 두 가지를 항상 맞추고 살기 바랍니다.
그래야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고 ‘공력’이 됩니다.
천국에 가서도 ‘이 두 가지가 일체 된 자들의 영’만
<천국의 최고 주관권>에서 삼위와 가까이 삽니다.
두 가지가 안 맞는 만큼
<삼위와 점점 떨어진 위치>에서 살게 됩니다.
천국에서는 모두 ‘한집’에서 안 삽니다.
<위치>가 각각 다릅니다.
그 위치는 삼위와 주께 마음과 행실을 맞춘 대로 결정됩니다.
<세상>에서도 마음과 행실을 맞출수록 - 같이 살고,
맞추지 못할수록 - 멀리 떨어져서 삽니다.
<천국>도 그러함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지옥>은 누가 갈까요?
전능자와 <진리>도 안 맞고,
<마음>도 <행실>도 다 안 맞는 자들의 영이 갑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 보세요.
자기들은 그 길이 맞다고 하며, 온갖 정성을 다 쏟고 삽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성경에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풀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 20:3-6)
하나님을 믿어도 모르고 믿으면, 자기 기분만 좋습니다.
하나님과 ‘마음’도 ‘행실’도 안 맞게 사니,
실제로 <영의 형체>는 변화가 안 되어 있습니다.
고로 그 <영>이 ‘자기가 기대했던 영의 세계’에 가 있지 않습니다.
절대 하나님과 ‘마음과 행실’이 안 맞으면,
자기만 좋아서 믿지, 하나님이 동행하지 않으시니
자기들의 세상에서만 존재하다가 끝납니다.
한번 <우상 종교>에 잘못 들어가거나 <진리>가 잘못 들어가면,
거의 평생 그대로 믿고 삽니다.
구약인들은 1000년, 2000년이 가도 안 바뀌었습니다.
신약인들도 앞으로 1000년이 가도 안 바뀝니다.
<아들>이 100년 간다고, 스스로 <신부>로 바뀌겠습니까?
그냥은 안 바뀝니다. 개종해야 바뀝니다.
<새 역사>로 와서 ‘보낸 자’에게 배우고 따라야 바뀝니다.
그러니 ‘기존 종교에 길든 자들’에게 기대하지 말고,
아예 ‘다른 자들’을 전도하여 역사를 펴 나가야 됩니다.
선생도 ‘시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할 때,
처음에는 모든 자들에게 다 전하고 싶어서 사방을 다녔습니다.
그러나 <기성>이나 <신흥 종교>나
다 ‘본인들 교리’에다 ‘시대 말씀’을 적용하여 이용했습니다.
이에 성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러니 안 된다. 새 땅에다 하자.
아예 새 시대에다 하자.”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따라 <새 시대 2세들>을 아예 전도하여
그들에게 ‘시대 복음’을 넣어 주고 키웠습니다.
<마음>도 <행실>도 100% 하나님과 맞게 하니, 됐습니다!
<전환>
◎ 지금부터 하는 말씀을 잘~~ 듣기 바랍니다.
<장자권>을 뺏어야 됩니다.
이 <장자권>은 ‘영적 장자권’입니다.
<영적>으로 살면 ‘영이 장자권을 가지고 사는 자’이고
<육적>으로 살면 ‘육이 장자권을 가지고 사는 자’입니다.
<영적 장자권을 가진 자>가 신앙의 ‘장자’에 속합니다.
고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영원한 상속’을 받게 됩니다.
<육적>으로 살면, 누구나 그 순간 ‘가인에 속한 자’가 됩니다.
고로 <영적 장자권>을 뺏기게 됩니다.
<영적>으로 살면, ‘아벨에 속한 자’가 되어
<영적 장자권>을 가지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이삭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장자 에서>와 <차자 야곱>입니다.
<야곱>은 조건을 세우고 ‘장자권’을 뺏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야곱>에게 ‘시대 축복’을 주셨습니다.
섭리인들 중에서 ‘영적 장자권을 뺏긴 자들’이 많습니다.
모두 뺏어야 됩니다.
<영적 장자권>을 가져야 ‘축복’을 받고 ‘상속’을 받습니다.
이것은 ‘절대 하나님의 뜻’입니다.
<영적 장자권>을 뺏으려면,
<마음 맞추기, 행실 맞추기> 두 가지 조건을 꼭 세워야 됩니다.
그러려면 ‘절대 <머리>를 중심’해야 됩니다.
<머리>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입니다.
새노래를 지을 때 성령님은
“<두 가지>를 맞춰라.” 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는 <가사>와 <곡>입니다.
<가사>가 <곡>을 결정하니, 이것을 알고 부르면 됩니다.
<가사>에 따라 ‘곡’이 높아지거나 낮아지고,
<가사>가 슬프면 ‘슬픈 소리’가 나오면 되고,
<가사>가 기쁘면 ‘기쁜 소리’가 나오면 됩니다.
이와 같이 삼위 앞에도 <마음과 생각을 맞추기>에 따라
<실제 행할 것>이 흘러갑니다.
이 말을 왜 하는지 압니까?
<보낸 자>가 ‘조건’을 세워야
<삼위>도 ‘축복’을 주시며 역사를 펴 오셨습니다.
각 교회에서 ‘몸이 되는 자들’이 기도하고
그 위에 ‘머리가 되는 자’가 조건을 세워야,
마치 <몸>과 <마음>이 일체 되듯 하여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이루어집니다.
<몸>과 <머리> 둘 다 조건을 세워야
<영적 장자권, 상속권>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주를 머리로 삼고 영적으로 사는 자>가 ‘장자’입니다.
<자기를 중심하며 육적으로 사는 자>는 ‘육의 장자’라도
실제 ‘영적으로는 차자’입니다.
하나님은 <영적 장자권을 가진 자>에게 ‘천국’을 상속하십니다.
<휴거>도 ‘육신’을 가지고 ‘영’이 이루는 것입니다.
곧 <육의 행실을 통해 변화된 영>이 ‘천국’을 상속받습니다.
그런데 기성은 “<육>이 휴거된다.” 합니다.
로마서 8장 6절을 보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했고,
히브리서 9장 27절을 보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했습니다.
그런데 무지하니,
<육이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 휴거>를 기대하며 믿고 삽니다.
<영>이 ‘하나님과 맞는 생각과 육의 행실’로 인해 변화되어
천국을 상속받게 됩니다.
<육>은 ‘영’과 일체 됐어도 ‘육’입니다.
이는 마치 <남자>와 <여자>가 사랑으로 결합하여 일체 됐어도
<여자>는 ‘여자’인 것과 같습니다.
또한 <영>이 휴거되어 천국에 가서 <삼위>와 일체 됐어도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이지 ‘절대자’가 아닌 것과 같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계속해서 말씀하겠습니다.
<한 여자>가 ‘왕’과 결혼해서 일체 되어 살아도
그 여자가 ‘왕’이 되지는 않습니다.
<지체>가 ‘머리인 주’와 일체 됐어도
<지체>는 ‘지체’이지 ‘머리’가 아닙니다.
이렇게 ‘구분’을 해야 됩니다. ‘쪼개기’를 해야 됩니다.
물과 물이 하나 되면, 모두 물이 되어 쪼갤 수가 없습니다.
<주와의 일체>는 ‘물과 물이 섞이는 일체’가 아닙니다.
주와 일체 돼도
<주>는 ‘머리’이며 <따르는 자들>은 ‘지체’입니다.
다만 ‘세상의 것이 아니다. 사탄의 것이 아니다.
주의 것, 삼위의 것이 되었다.’ 함입니다.
<주>가 십자가의 조건으로 죄를 대속해 주니,
<구원받을 자들의 영과 육>이 산 것입니다.
이를 깨닫고 살아야 됩니다.
고로 <하나님의 일, 주의 일>을 할 때도
늘 ‘주의 마음과 생각’에 맞춰서 하고,
‘행실’도 맞춰서 해야 됩니다.
한 번 맞추고 다 맞췄다고 하지 말고,
늘 하나하나 할 때마다 <마음과 행실>을 다 맞춰서 해야 됩니다.
이것이 ‘영을 중심한 것’이고 ‘영적인 것’입니다.
이는 ‘아벨이 한 격’이 되어,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그러지 않으면 ‘육을 중심한 것’이 되고,
이는 ‘가인이 한 격’이 되어 하나님이 안 받으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는 안 받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신 것을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가인>은 ‘아벨’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가인>은 ‘육 입장’이고, <아벨>은 ‘영 입장’입니다.
곧 <육>은 ‘영’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로마서 8장 6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했는데,
이 말씀에서 <육신>은 실상 ‘구원받을 자들’이고,
<영>은 ‘구원자’입니다.
모두 <영이 되는 구원자>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됩니다.
그러한 삶이 ‘영적인 삶, 신령한 삶’이고,
그러한 예배가 ‘영적인 예배, 신령한 예배’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증거에 속한 세례 요한 역사>는
‘가인 입장’이고 ‘육 입장’입니다.
곧 <영이 되는 구원자> 앞에 ‘세례 요한의 증거 사명’입니다.
고로 반드시 <영>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됩니다.
<물질을 중심하는 교파>는 ‘육’에 속해 있습니다.
<가인 입장의 족속>을 데리고서는
‘하나님의 근본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영적 장자권을 가진 자>는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생명의 역사’를 해 나갑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고 하면서
실상 그 행실은 ‘육을 중심’해서 사니,
<영적 장자권>을 뺏기고
<육을 중심한 장자의 삶>을 살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위>가 ‘자기 자신’과 ‘그 교파’를 증명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영>이시니 ‘영을 중심’하십니다.
고로 하나님 역사의 주인을 분별할 때는
<영의 장자권>을 가지고 있는가,
<육의 장자권>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면 압니다.
아브라함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모두 ‘아벨 입장’으로 ‘영적 장자권자’였습니다.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시대 아벨>이 없으면, 하나님은 역사를 못 하십니다.
오직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십니다.
그 역사가 ‘영적 장자권을 가진 핵심 역사’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섭리역사!
이 역사에서 <영원한 휴거의 축복>을 받고,
<천국 황금성>을 상속받게 됩니다.
나머지는 <가인 입장>으로 모두 ‘방계 역사’입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항상 <새 시대>가 시작되면,
하나님은 <옛 시대의 삶>을 막으십니다.
모세 때, 때가 되니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하나님이 뜻하신 <가나안 복지>로 가는 노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 길>이 힘들다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다시 <이집트>로 돌아간다고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옛 시대 이집트>로 가지 못하도록 막으셨습니다.
그래도 계속 불평하고 원망하니
그들에게는 <가나안>으로 가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결국 불평하고 원망하던 자들은
<옛 시대 이집트>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새 시대 가나안>으로 가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뼈저리게 고생만 하다 죽었습니다.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새 시대 섭리역사>에 와서 따르다가
가는 노정 중에 힘들다고 불평하고 원망하던 자들은
<본래 자기가 살던 곳>으로 가려고 했으나,
<옛 삶>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섭리역사>로 오지도 못하고
<중간>에서 뼈저리게 고생하며 살고 있습니다.
<새 시대>가 시작되면, 하나님은 <옛 시대>를 막으십니다.
<하나님이 막는 길>로 가면, 고생입니다. 고통입니다.
이것을 진정 깨닫고,
그 시간에 더욱 삼위와 주와 <마음과 행실>을 딱 맞추어
늘 삼위와 주와 동행하며 뜻을 이루며,
<영적 장자권>을 완전히 뺏어 와 ‘자기 것’으로 만들고
<사랑과 기쁨과 희망의 세계>를 완전히 차지하고 살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마지막 성령의 말씀입니다.
“<마음과 행실> 두 가지가 맞아야 같이 산다.
<영적 장자권>을 뺏어라. 뺏긴 자들이 많다.
절대 ‘머리인 주와 일체’ 되어라.
<일체>란, ‘마음과 행실이 모두 맞는 것’이다.
<영적 장자권>을 가져야 하나님이 동행하며 역사하시고,
그를 통해 뜻을 이루시며, 영원한 상속을 해 주신다.
모두 <영적 장자권>을 뺏고 주를 맞아라.”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