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8.02.28 (수)
180228 수요말씀(영에 속해 영의 생각으로 해라)
- 선포일
- 2018.02.28 (수)
- 성경 본문
- 고린도전서 2장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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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28-수요말씀(영에_속해_영의_생각으로_해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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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28일 수요말씀>
<영>에 속해 <영의 생각>으로 해라
본 문 고린도전서 2장 12-14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할 일을 해 놓고 누려야 진짜 기쁨과 영광이다.’
라는 주제로 말씀했습니다.
◎ <주>는 ‘시대의 할 일’을 다 하고 ‘십자가’를 다 지고,
<기쁨과 영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얻을 때’입니다.
모두 <이때>를 놓치지 말고 <사망의 주관권에서 부활된 몸>이 되어
감사와 기쁨으로 ‘시대 할 일’을 행하고,
그리함으로 주와 함께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누리기 바랍니다.
◎ 오늘은 ‘영에 속해 영의 생각으로 해라.’라는 주제로
말씀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기쁘나 고통스러우나, ‘그때’만 기쁘고 고통스럽다.
<그때>가 지나가면 다 잊게 되고, 긴 세월도 짧게 생각된다.
고로 사람은 ‘지난날’을 생각하며 누리고 사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든, <고통>이든 ‘지금’을 누리고 사는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하루>가 ‘일 년’같이 지겹게도 안 가던 날들도
<한 세월>이 가면, 엊그제 같습니다.
<사람의 뇌>는 ‘그때’가 지나가면, 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은혜>도 그러합니다.
지난날 삼위가 도와주셨어도 모르고, 그때가 지나가면 잊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무엇을 할 때’만 돕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가령 <잔칫날에 도와준 것>만 도운 것이 아니라,
<잔치에 안 가려고 했는데 거기에 가게 해 준 것>도 도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때>만 돕지 않으시고, 거기로 가도록 도우십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같이 늘 삼위가 도와주셨어도
<지난날>은 세월이 가면 잊게 되니,
그때마다 삼위께 영광 돌리고,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지난날>을 잊지 않게 깊이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야 생각나고, 잊지 않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죄>는 ‘담’과 같아서,
갈 길을 막고, 삼위의 뜻을 막습니다.
고로 <자기 죄>는 자기가 즉시 회개해서 없애 버려야 합니다.
가만히 있다고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도 가만히 있으면, ‘죄’입니다.
자기 할 일을 안 하는 것이 ‘죄’입니다.
<할 일>은 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은 안 하는 것이
‘의’요, ‘죄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죄>를 ‘의’로 다스려라. <의의 시간>으로 쓰고 다스려라.
저마다 능히 다스릴 수 있으니, 자기 마음과 생각으로 다스려라.”
하셨습니다.
<죄>는 ‘자기’가 행하지 않아야 ‘죄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가인>은 ‘자기’가 분을 내고 행해서 ‘죄’가 되었습니다.
<하와>도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사탄의 말을 듣고 행해서 ‘죄’가 되었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행하지 않는 것>이 ‘죄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의>도 ‘자기’가 행하고,
<불의>도 ‘자기’가 행합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의’를 행하도록 기도하여라.
<기도>는 ‘일’이라, ‘기도의 일’을 하면
상황이 달라지고, 행위도 달라져서 죄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셨습니다.)
<어둠>은 ‘죄’를 짓게 합니다.
<의>를 행하면, ‘참빛’을 밝히게 됩니다.
그러면 ‘어둠’이 가까이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이나 의지’대로 합리화하면,
그것이 ‘하나님 법 안의 일’로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빛’이요, ‘온전함’입니다.
<하나님의 법>으로 해결해야지, ‘합리화’로 해결하면 안 됩니다.
<자기 생각이나 의지>로 해 놓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입니다.
<법>은 ‘능력’이요, ‘하나님’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법 안>에서 행하면,
- <죄>도 ‘자기’가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고,
- <사탄>도 ‘자기’가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습니다.
<잠>도 ‘자기’가 주관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사탄>도 그러하고, <이성>도 그러하고, <모든 것>도 그러합니다.
고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와 함께 강하고 담대하게 행하여,
사탄도, 이성도, 모든 것도 주관하고 다스리기 바랍니다.
<사랑>이 강하고 위대하듯이
<삼위와 주와의 사랑>이 강해야 됩니다! 담대해야 됩니다!
저마다 ‘죄의 틈’을 내주지 말고 ‘죄’를 짓지 않음으로
<삼위와 주와의 사랑>을 깨지 말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사람이 ‘하기 싫은 마음’이 들 때 제일 무섭습니다.
<하기 좋을 때>는 산을 넘고 밤을 새는데,
<하기 싫은 때>는 ‘밤’이 ‘낮’이 돼도 안 합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하기 싫어서 안 하게 되니,
<하고자 할 때>는 ‘영’에 속해 행해야 됩니다.
<육>은 ‘환경’을 타고, ‘분위기’를 타니,
‘그때의 여건’에 속해 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은 강하니,
<영과 혼>과 함께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행하면
환경도, 분위기도 다스리고 거기서 벗어나게 됩니다.
<잠>을 다스리듯이,
<자기 정신과 생각을 다스리기>,
<생각의 줄을 굳세게 잡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행하기>입니다.
<눈>을 뜨면 ‘세상’이 보이고,
<눈>을 감으면 ‘영의 세계’가 보입니다.
<영의 세계>를 봐야 됩니다.
<세상>은 ‘자기 주관의 세계’입니다.
고로 저마다 ‘육에 속한 육의 생각’을 합니다.
<영>에 속해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육에 속해 사는 자들’을 분별하게 됩니다.
항상 ‘자기 생각’을 중심하면 안 됩니다.
그 생각이 ‘성령의 생각’을 가로막습니다.
<자기 그릇>은 ‘하나’입니다.
거기에 ‘자기 마음과 생각’을 담으면,
<주의 생각>과 <성령의 생각>을 담을 곳이 없습니다.
<자기>라는 그릇에 ‘어떤 생각’을 담느냐에 따라
그대로 행하게 됩니다.
자기 생각, 자기 의지, 자기 계산은 ‘육’이라 땅을 면치 못합니다.
만들었어도 쓰지 않으면 소용이 없듯이,
<만든 것>은 매일 써야 됩니다.
만든 것이 없으면, 쓸 수가 없으니 만들어야 됩니다.
<들은 것>이 없으면 내놓을 것이 없고
<배운 것>이 없으면 알 수 없으니,
매일 주 안에서 성령으로 배워서
자기 그릇에 <주의 생각>과 <성령의 생각>을 담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것>은 무한합니다.
<육에 속한 것>을 배우면 육으로만 아니, 육의 것만 행하게 됩니다.
<영에 속한 것>을 배우면서
<성령>과 함께 행해야 됩니다.
<주>와 함께 행해야 됩니다.
성령과 주께 배워서 알고 행하면, 다른 세계가 됩니다.
<희망>도, <기쁨>도, <사랑>도
‘육의 것’은 영혼의 만족도 없고 허무하게 끝납니다.
<영의 것>만 영원하고, 육도 영도 만족하고 허무하지 않습니다.
고로 <육의 것>도 ‘영의 것’으로 만들어 살면,
<삼위의 주관권의 삶>이 되니, 육도 영도 형통하고 영원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그 시간, 그 때>가 중합니다.
<지금, 현재>가 중합니다.
모든 것은 현재에서 현재의 것이 이뤄지고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이미 살았기에 ‘끝난 것’입니다.
<지금 것>은 ‘지금 하는 것’입니다.
고로 <지금이신 삼위>와 ‘늘 동행하는 삶’입니다.
<머리의 삶>은 ‘지체의 삶’과 다릅니다.
<지체>는 <머리>가 되시는 ‘주’와 일체 돼야 합니다.
그를 통해 <영>이신 ‘삼위’와 일체 돼야 합니다.
하나님은 ‘중보자’와 통하십니다.
그와 함께 호흡하고 생각하시며, 그에게 말씀하시고 지시하십니다.
<머리>가 하지 않으면, ‘지체’가 머리가 되어 행하게 됩니다.
그러면 ‘육의 삶’이 돼 버립니다.
<육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니, 사망이요, 대립입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이요, 구원이요, 평안입니다.
<육의 생각>으로 안 하고, ‘영의 생각’으로 하면 딴 세계입니다.
<영에 속한 생각>으로 뒤바뀌고 변화되니,
그 세계에 속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는 ‘육에 속한 데’서는 할 수도 없는 생각들입니다.
<성령의 생각>을 받고 더 확신하여 행하게 됩니다.
<육의 생각>으로는 ‘영의 생각’을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습니다.
<영의 생각>인지 <육의 생각>인지 분별해야 됩니다.
<영의 생각>과 <육의 생각>은
- <머리>와 <지체>가 다르듯 다르고,
- <자기 나라>와 <타국>이 다르듯 다르고,
- <영의 세계>와 <이 세상>이 다르듯 다르고,
- <해>와 <별>이 다르듯 다릅니다.
<삼위의 생각>은 모두 ‘영의 생각’입니다.
영원하고 높고 깊은 생각이며, 육과 영을 형통하게 합니다.
항상 <삼위의 생각>으로 행하기 바랍니다.
<묻고 행하는 것>이 ‘인간의 지혜’입니다.
<삼위의 생각>으로 행하면,
‘말로 홀리는 올무’에서 벗어나게 되고,
‘생명의 생각’이 강해져서 확실히 알고 행하게 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어도, 모르면 쓰지를 못합니다.
그러니 항상 ‘자기’와 ‘자기 삶의 세계’를 깊이 확인해야 됩니다.
<그날의 것>은 그날 쓰지 않으면, 밀려서 쓰지를 못하게 됩니다.
<훗날의 것>은 그때 가서 써야 되는 다른 날의 것입니다.
<자기 때>에 할 일을 안 하고, 다른 날에 하려는 것은 욕심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도 끝에 가서는 다 못 쓰고 가니,
매일 써야 됩니다.
어느 한때에 다 쓰지를 못합니다.
매일 써야 많이 쓰고, 많이 남기게 됩니다.
<육의 것>도 그러하고, <영의 것>도 그러합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 하나>라도 미리 키우고 길러 내서 있는 것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있을 수가 없었다.” 하셨습니다.
그 하나라도 없었으면, 십자가의 고통을 모두 감당해야 하니
하나님은 이미 아시고 ‘그 하나’를 예비하신 것입니다.
<그 하나>는 ‘주의 고난을 위해 예비한 자’입니다.
‘시대 고난의 길에 참예하고,
주의 고난의 때에 시중을 든 자’입니다.
섭리사 모두가 그러합니다.
하나님 안에 그 뜻을 두고 태어나 살고 있으니,
자기를 깨닫고 알기 바랍니다.
<주의 지체가 되어, 고난의 때에 시중을 들며 산 자들>로
<고난의 기간>을 다스리고 주관하였습니다.
이는 곧 ‘성자가 땅에 계신 동안 행하신 모든 계획들’이었습니다.
성자가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님’이 강림하시어,
<신부들의 삶>을 더욱 온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작든지 크든지 정녕코 행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모든 뜻’을 맞추려 하심이고,
‘때’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새 역사>는 이미 비행기가 이륙해서 가듯, 가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초를 다투며 행해야 됩니다.
<육신의 생각 차원>에서 누리면, 차원이 낮아서 작게 누립니다.
<웅장한 하나님의 세계>를 만들었는데, 조금 누리면 아깝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 만물>도 그러합니다.
<차원>을 높이면, 전체를 차원 높게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차원>을 높이면, 다르게 보입니다.
<차원>을 높여서 봐야, 뭔가 다르게 보고 생각합니다.
<차원을 높인 사람>이 뭘 해도 합니다.
<자기>라는 그릇에 ‘삼위와 주의 생각’을 담고,
<차원 높인 영의 생각>으로 행하여
주와 함께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누리는 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