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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말씀2018.03.21 (수)

180321 수요말씀(부활의 때에는 부활의 새 삶을 살아야 한다)

선포일
2018.03.21 (수)
성경 본문
이사야 60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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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1일 수요말씀> <부활의 때>에는 ‘부활의 새 삶’을 살아야 한다 <부활의 역사>는 ‘영의 역사’이니, 너희 앞에 영이신 ‘주의 생각’으로 살아라 본 문 이사야 60장 1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때에 맞는 삶’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 이제, 하나님의 섭리역사는 <부활과 영광의 역사>를 맞아 새로운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고 끝장내는 역사>입니다. 모두 주를 따라 행하며 <휴거>로 창조 목적을 이루고, 시대 십자가를 지고 부활되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부활의 때>에는 ‘부활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 그러나 아직도 ‘옛 삶을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옛 삶>을 완전히 청산하고 끝내야 <새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제 부활되어 주와 함께 살아가니, <옛 삶>은 하나도 남김없이 끝내야 됩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없애는 것>이 ‘끝내는 것’입니다.  <말세 때>도, <전환의 때>도 옛것을 완전히 끝내야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갑니다. <완전히 끝내지 않은 자>는 아직도 ‘그 세계, 그 차원’에 있습니다.  <자기 죄>도 회개하여 완전히 없애야 끝낸 것이 됩니다. 고로 ‘다음 세계, 다음 차원’으로 가게 됩니다.  시대도 그러합니다. <구시대의 것을 완전히 청산하고 장사 지낸 자>만이 <새 시대 역사에 와서 사는 자>입니다. <옛것을 완전히 청산하고 장사 지낸 자>만이 <새 시대 부활의 역사에 와서 사는 자>입니다.  <정리하는 것>과 <청산하는 것>은 그 삶이 다릅니다. <청산하는 것>이란, 마치 아기가 태반에서 탯줄을 끊고 나오듯 하는 것입니다. 한 줄기 탯줄로 계속 매여 있으면, 세상으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탯줄을 완전히 끊어야 되듯, <옛것>도, <자기 죄>도, <자기중심의 생각>도 완전히 청산해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생각>에 들어가 일체 될 수 있습니다. 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도 이집트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나왔기에 그다음 단계 ‘신광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자녀급 역사>에서 <신부급 역사>로 올 때도 자녀급 사랑을 완전히 청산한 자들만 <신부급 역사>에 와서 ‘혼인 잔치 역사’에 참여했습니다. 이와 같이 만사의 모든 것도 그러합니다. 청산해야, ‘그다음 단계, 그다음 차원’으로 갑니다.  고로 주는 말씀합니다. “<옛것, 옛 삶>을 깨끗이 청산해라. 그러면 <옛것>에 매이지 않으니, <다음 단계, 다음 차원>으로 가게 되느니라. 매일 저마다 ‘삶 속에서 청산할 것’은 청산해야 <그 일의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려 들어가게 되느니라.”  <옛것>에 매이면, 눈앞의 ‘새것’을 보고도 가지도 못하고 얻지도 못합니다. 그때마다 ‘자기 할 일’을 행함으로 청산할 것을 청산해야 됩니다. 그때마다 <청산할 것>을 청산하지 않으면, 쌓이고 밀려서 결국 못 합니다. 때가 오면, 모두 청산하고 떠나야 됩니다.  아직도 ‘옛것’을 하는 자가 있습니까? 혹은 ‘옛것’도 하고 ‘새것’도 하는 자가 있습니까? 이런 자는 ‘양쪽 집 살림’을 하는 자와 같습니다. 어서 부지런히 ‘자기 할 일’을 하며 옛것을 청산하고, <삼위의 때>에 맞춰 <삼위의 뜻>을 따라 살기 바랍니다. 그래야 ‘계절의 때’를 맞듯 하여, <새로운 부활의 때>에 벅차지 않고 편안하게 가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섭리사 신부들>은 모두 ‘삼위와 주의 몸’이니, <삼위의 뜻에 맞춰 사는 삶>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 “잊으면 죽는다.” - 이 말씀을 항상 생각하기 바랍니다.  사람은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고로 <생각>에서 잊으면, ‘죽은 자’가 됩니다.  <자기 할 일>도 ‘생각’에서 잊으면 그 일을 못 하게 되니, ‘그 일이 죽은 것’이 됩니다. <그때마다 자기 할 일>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 <자기 할 일>을 잊지 않으려면, - 첫째, 늘 ‘삼위께 간구’해야 됩니다. - 둘째, 매일 ‘자기 할 일’을 행해야 됩니다. 그래야 <현재에 할 일>도, <미래에 할 일>도 잊지 않고 생각나게 됩니다.  <그때마다 할 일을 안 하는 자>는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잃게 됩니다. 항상 잊지 말고, 부지런히 ‘행할 것’을 행해야 됩니다. 할 일을 하고 나서 쉬기도 하고 놀기도 해야 됩니다.  <그때 할 일>은 ‘그 시간’과 함께 묶여 가니, <그때 할 일>을 안 하고 놀면 <그때 할 일>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와 <그 일>입니다.  <하나님의 때>에 맞춰 행해야 만사에 ‘때’를 따라 행하게 됩니다. 지금은 <부활의 때>입니다.  <하나님의 때>가 왔는데 ‘자기 할 일’을 제때 못 하면, 동료가 아무리 도와줘도 결국 또 거기에 시간이 들어가게 됩니다. 이는 마치 <자기>가 보따리에 짐을 넣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줘서 <자기>는 어느 보따리에 어떤 짐이 있는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고로 보따리를 다시 확인해야 되니, 거기에 시간이 또 들어가게 됩니다. 고로 때가 왔으면, <자기 할 일>은 ‘자기’가 해야 됩니다. 그래야 <자기 생각>도 <행위>도 ‘때’에 맞춰 제대로 잘하게 되고, 그로 인해 ‘그때 할 일’도 잘되게 됩니다.  주는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땅에 붙어 있지 아니하나니, 늘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하고 <그 지혜>로 ‘할 일’을 행하여라. <하나님의 지혜>는 너희의 일을 쉽고 가볍게 하느니라. <성령>은 늘 너희 옆에서 도우시니, 같이 대화하며 성령과 주와 함께 행하여라. 자기 홀로 하면, ‘자기 중심’이 되나니, 그런 자는 하나님이 어떻게 주시고, 어떻게 쓰실지 모르느니라. 성령과 주는 <구하고 찾는 자>와 늘 함께하나니, 매일 ‘삼위와 주’를 찾고 부르며 ‘그 지혜’를 받아 행하여라.” <잠시 쉬었다가>  <자기 할 일>을 부지런히 열심을 내어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부지런한 자’에게 좌정하십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는 새벽에도 ‘새벽을 깨우는 자’와 함께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부지런히 열심을 내어 행하지 않으면, <자기 분깃>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행해야 - 자기 분깃을 얻게 되고, 행해야 - 귀히 쓰게 되고, 그로 인해 행복도 오게 됩니다.  <게으른 자>는 - ‘날이 좋을 때’ 자고, - ‘비 올 때’ 일을 합니다. <부지런한 자>는 - ‘날이 좋을 때’ 일하고, - ‘비 올 때’는 집에서 잔치합니다.  <미련한 자>와 <알지 못하는 자>는 타인의 일에 간섭하다가 정작 ‘제때, 제 일’을 못 하고 홀로 밤을 새워 갑니다. 그리고 ‘안 해도 될 일’을 하면서, 거기에 빠져 삽니다. 그러니 했어도 ‘유익’이 없고, 오히려 ‘해’를 당하게 됩니다. 해를 당하고 나서야 ‘내가 왜 그랬지?’ 하며 자기를 탓합니다.  어떤 일은 <일생 동안 할 필요가 없는 일>인데도 몰라서 하고, 혹은 부모나 자기 동료가 시켜서 하기도 합니다. 공부도 그러하고, 어떤 것을 배울 때도 그러합니다. 돈을 쓸 때도 - 자기가 쓸 돈도 아닌데, 희망으로 자기 돈을 쓰면서 해를 당합니다. 무지하니 - 몸도 마음도 3배, 10배씩 더 고생을 하고, <황금 시간>에 자기 할 일을 못 하고 결국 때가 가 버리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를 행해도 늘 삼위와 주를 머리 삼고 묻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 <삼위와 주>께 묻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춰 행해야 - 자기에게 필요한 일을 하게 되고, - 하는 일마다 ‘유익’이고, - 하나님의 마음도 상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춰 행하는 낙,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낙’을 얻게 됩니다. 마치 결혼한 자가 ‘결혼 날’만 기쁜 것이 아니라 계속 살면서 기쁨을 누리듯이, ‘기쁨이 연속’됩니다. 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 여호와를 떠나 살면, ‘잔칫날’뿐이니라. 고로 행했어도 곤고하나니, ‘영원한 기쁨’이 되지 못하느니라. <매일 하늘의 뜻대로 사는 자>만이 나와 함께하며 늘 마음도 생각도 천국이 되어 사느니라. <나의 뜻대로 사는 자>는 그 생명이 다한 후에 그 영을 천국으로 데려와 영원히 사랑하며 살 것이니라. 그 외에는 ‘각자 자기 행위’대로 <그에 해당되는 영의 세계>에 처해 가나니, <사망>으로 가기도 하고 <영원한 지옥 세계>로 가기도 하느니라. 세상에서 살면서 ‘삼위의 사랑의 대상, 신부’가 되어 <영원한 나라, 황금성 천국>을 상속받아야 하느니라.” 하셨습니다.  <육신이 세상에서 살 때> ‘영의 삶’이 결정되니, 늘 삼위와 주와 붙어 살면서 대화하고 교통하고 사랑하며 그 뜻대로 행해야 됩니다. <육신>이 이같이 살아야, <영>도 늘 삼위와 주와 붙어 살게 됩니다.  <나무>도 서로 본질이 다르면 잘라 내고 접붙여야 일체 되듯, <자기 생각>을 자르고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를 접붙이고 - <진리의 말씀>을 접붙여야, 생각도 행위도 삼위와 주와 일체 되어 행하게 됩니다.  <월명동의 각종 돌들>도 천리만리에 각각 떨어져 있던 돌들을 사다가 붙여서 쌓았습니다. 그러니 모두 똑같이 <하나님의 자연성전의 돌 작품> 취급을 받습니다. 모두, 삼위와 주를 중심하여 이같이 해야 됩니다. <월명동의 돌들>을 붙여 쌓아 놓듯, <자기 마음과 생각>을 ‘삼위와 주’께 딱 붙여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잠시 쉬었다가> ◎ 계속해서 말씀할 테니, 잘 듣기 바랍니다.  사람은 ‘모르고 사는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하면서 행하나, 결국 그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뜻>도, <자기 뜻>도 못 이루고 무지 속에서 인생의 날들을 살아갑니다.  <구원>도 그러합니다. 사망에 처해 살면서도 “나는 구원받았다. 죽으면, 영이 좋은 나라로 간다.” 합니다. 그러나 이는 ‘구원’이 아닌 고로, 자기 인식대로 안 됩니다.  <자기 생각>과 <실체>는 다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보낸 자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죄를 회개하여 깨끗하게 하고, 삼위와 주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자기 생각 속의 구원’입니다.  지혜와 지식의 근본자이신 하나님께서 보낸 자를 통해 전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의>로 ‘사망권’을 벗어나 ‘영생 길’로 갑니다. 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에 맞춰서 행해야, <영의 뜻>도 이루고 <육의 뜻>도 이루어 기쁨과 희망으로 삽니다.  <맛있는 음식>이면, 누가 주든지 맛있고 좋습니다. 그러나 <육에 속한 것>은 ‘그때 순간’은 좋고 기뻐도 ‘영원한 기쁨, 영원한 즐거움’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에 맞춰 <하나님께 속한 생각>으로 살아야 <영>을 소생시켜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을 얻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됩니다.  모르고 살면, ‘자기 인생의 황금 시간’을 다 흘려보내게 됩니다.  <시간>은 한 번 가면, 그 시간은 ‘죽은 시간’이 됩니다. 고로 그 시간에 ‘<육>을 위해 행했느냐, <영>을 위해 행했느냐’가 중합니다. <육신>이 살기 위해 - ‘육의 것’도 하고, <영>이 영생하기 위해 - ‘영의 것’도 해야 됩니다. 이같이 했으면, <그 시간에 그 일>을 하여 ‘실체를 남긴 자’입니다.  어떤 자는 몰라서 못 하고, 어떤 자는 배워서 알았어도 안 합니다. <귀한 것>을 제대로 깨닫고, 열 일을 제치고 해야 됩니다. 해야, ‘죽은 시간’과 바꾸게 됩니다. <죽은 시간>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면 얼마나 좋습니까? <없어지는 것>을 ‘영원히 남아지는 것으로 바꾸는 자’가 지혜 있는 자요, 해 놓은 것을 가지고 계속 쓰는 자입니다.  <시간의 선물>은 매일 줍니다. 다만, 그 시간을 가지고 ‘자기가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저마다 ‘자기 차원’대로 시간을 쓰게 되니, <황금 시간>으로 귀히 쓰려면 ‘차원’을 높여 행하기 바랍니다.  <영에 속한 시간>으로 귀하게 차원 높여 쓰면 - 어떤 것은 ‘일생’동안 쓰고, - 어떤 것은 ‘천 년’ 동안 쓰게 됩니다. 반면, 자기 인생의 귀한 시간을 <육>에 속해 쓰면, - 얻는 것도 작고, - 후(後)에 가서 남는 것도 없습니다. 마치 ‘소모품’과 같아서 ‘한때’ 쓰고 끝납니다.  성령님은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찾아라. 두드려라. <영에 속한 시간>으로 써야 많이 쓰게 되고, 차원 높게 쓰게 되고, 그 가치도 크니라. <자기 시간>을 ‘영원한 것’을 위해 귀히 써라. <영에 속해 신이 된 자를 믿고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영원한 것’이니라.” <잠시 쉬었다가>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 <영>에 속해 ‘영적’으로 생각하고 행해야 됩니다.  <영에 속해 영적으로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항상 ‘삼위와 주 안’에 거하여라. <네 생각>을 항상 전능하신 삼위와 주 안에 거하게 하여라.” 함입니다.  <영>에 속해 ‘영적 단계’에서 생각하면 그때는 간절히 느끼고 만족하며 행하나, <육>에 속해 ‘육적’으로 생각하면 그때는 느낌도 별로 없고 허탈합니다. <자기 생각>이 ‘육적’으로 돌아갔으면, 다시 ‘영적’으로 돌려서 주가 하신 말씀을 보고 다시 생각하여 뜨겁게 물을 데우듯 해야 됩니다. 주와 일체 되어 항상 주 안에서 행해야 그것이 ‘영에 속해 한 것’이 되고 ‘주의 행함’이 됩니다. 알겠습니까?  <사랑>도 ‘육’으로만 하면 영원하지 않습니다. <영>에 속해 ‘영적 사랑, 뇌 사랑’을 해야 됩니다. <육적 사랑>은 ‘육’으로 끝나니 ‘한계선 사랑’입니다. <영적 사랑>은 ‘시간도, 거리도, 환경도 초월한 사랑’입니다. <영적 사랑, 뇌 사랑>을 해야만 ‘밤낮’으로 하게 됩니다. 자기 마음도, 생각도, 삶도, 육도, 혼도, 영도 다 삼위와 주께 쏟는 사랑입니다. 누구나 다 ‘자기 차원’대로, ‘자기 실력껏’ 할 수 있습니다.  <영적 사랑, 뇌 사랑>은 하나님이 천국에 계셔도 다 받으십니다. <영>은 1초에도 ‘자기가 생각한 위치’까지 가니, <자기 생각과 마음>이 ‘실상체’가 되어 대화도 하고 사랑도 합니다.  이 말씀은 지난 10년 동안 특히 많이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행하는 자>는 이와 같이 ‘자기 생각과 자기 머리를 만든 자’라서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자기 삶의 터전>에서 삼위께 영광 돌리며 사랑과 휴거와 부활의 삶을 삽니다!  마지막으로 주가 말씀합니다. “<옛것>도, <자기 죄>도, <자기중심의 생각>도 모두 청산하여라. <부활의 역사>가 왔으니 ‘부활의 새 삶’을 살아라. 그리함으로 육도 영도 꺼림 없이 <삼위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 살아야 되느니라. <자기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사탄에 속한 생각’이 되느니라. <삼위와 그 보낸 자의 생각>만이 <절대 온전한 생각, 영원한 영의 생각>이니라. 고로 <하나님의 생각>에 맞추고 <보낸 자>와 일체 되어 <부활의 때>를 따라 어서 제때, 제 할 일을 부지런히 행하여라. 그리하면 <영의 뜻>도 <육의 뜻>도 이뤄지나니, 삼위는 너희로 인해 기뻐하시며 그 영광을 받으시느니라.” ◎ <부활의 때>에는 ‘부활의 새 삶’을 살아야 한다. <부활의 역사>는 ‘영의 역사’이니, 너희 앞에 영이신 ‘주의 생각’대로 살아라.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