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8.05.09 (수)
180509 수요말씀(행할 때 행하여라) 영상표시만 새로
- 선포일
- 2018.05.09 (수)
- 성경 본문
- 잠언 4장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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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09-수요말씀(행할_때_행하여라)-영상표시만_새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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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9일 수요말씀>
행할 때 잘 행하여라
본 문 잠언 4장 25~26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말씀은 ‘행할 때 잘 행하여라.’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사람들은 ‘희망과 소망’이 차고 넘치는 가운데 삽니다.
<희망과 소망>은 ‘때’가 되면 오는 것입니다.
<자기의 희망>이 오고,
<하나님이 성령과 함께 주시는 희망>이 옵니다.
바라면, 그 희망이 이뤄지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준비하고, 예비하고, 때가 와야 ‘희망’이 오는 것입니다.
<땅>으로도 준비하고 예비하고,
<하늘>로도 준비하고 예비해야 얻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의 폐단은,
준비하고 예비는 했는데 실제에 그날이 왔을 때는 잘 모르고
제대로 행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행할 때> 잘 행해야 됩니다.
제대로 행하려면, 바로 행해야 됩니다.
제대로 행하려면,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야 됩니다.
항상 <행할 때>가 문제입니다.
<행할 때> 잘못 행해 놓으면,
어떤 것은 일생 동안, 어떤 것은 다시 제대로 할 때까지
행한 것을 그대로 두고 보면서 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행할 때>는 많은 지식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또한 주님이 필요하고, 하나님과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행하는 데 있어서,
<쓰여지는 도구>가 충분히 있어야 제대로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 해당되는 여건>이 갖춰져야 됩니다.
<스스로 행할 때>는
자기 정신, 생각, 지혜 등 모든 것이 필요합니다.
행할 때마다 충분히 알고 행하기입니다.
특히 섭리사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행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확실히 알고, 충분히 알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주와 함께 행할 때>는
먼저 무슨 말씀인지, 제대로 확실히 전달받고 행해야 됩니다.
흔히 보면 <주>가 무슨 일을 시키면 알았다고 하고,
가서 행할 때는 다르게 행합니다.
이는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듣고 행한 일’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일을 하면,
그것을 ‘작품’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 훨씬 더 아름답고, 멋있고,
평생 아름다운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를 만들 때>도 ‘작품’으로 만들어야
가치 있고, 아름답고, 신비합니다.
요즘은 주와 같이 행하기 때문에
정~말 수준을 높이고, 진정 100% 주와 같이 해야 됩니다.
지금은 늘 주와 같이 먹고 마시며 일을 합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랑하며 실제 일들을 하면서,
그것들을 ‘눈으로 보는 시대’입니다.
<가상적인 시대>가 아니고, <실제적인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주 앞에 정~말 잘 행해야 됩니다.
주의 마음을 모르고 행하면 안 됩니다.
주와 같이 일하고, 하나님과 같이 일하고,
성령님의 감동대로 일하는 것을 원했지만,
사람들은 목숨 걸고 진짜 멋있고 아름답게 하는 것을 잘 모릅니다.
사람들은 그냥 겉으로만 보고 일반적인 일로 행합니다.
<작품>으로 하면 아름답고 멋있는데,
그렇게 인생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하라고 했어도 늘 확인하며 안 하니,
나중에 보면 전부 착오가 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뜻을 목숨을 다해서
더 아름답게, 더 멋있게, 더 웅장하게, 더 신비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더 애간장을 태우고, 더 힘을 들여 수고하면서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단코 해낼 수가 없습니다.
<선생이 시키는 일>은
가장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쉬운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배우고 터득하면,
- 쉽고 재밌고 희망적입니다.
- 작품을 만드는 작가의 마음같이 기쁘고 희망차고 행복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늘 구상하시고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상’으로 행하는지,
그러지 않고 ‘자기 의향’으로 행하는지 늘 보십니다.
하나님은 눈으로 안 보이고, 또 자기 생각으로 하는 게 빠르니,
하나님이 자기 옆에 계셔도 같이 의논하지 않고 행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과 마음이 일체 되고
성령의 감동을 받으며, 주와 함께 해야 됩니다.
그냥 하면,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마음에 들게 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마치 <국가 대표 선수>가
연단과 수고의 대가로 자기 기술을 발휘해서 메달을 따오는 것과 같이
우리도 그렇게 해야만 그만큼 한 일이 이상적으로 될 수가 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오늘 말씀의 주제가 무엇이지요? (잠시 쉬었다가)
“행할 때 잘 행하여라.
제대로 잘 행하여라.
제대로 바로 잘 행하여라.”
→ 이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사람들은 정말로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자기 소망을 이루기 위해 많은 것을 생각하나,
<하나님이 소망을 이루게 해 주신 것>은 잘 모릅니다.
<기도>도 하고, <각양각색으로 닦을 것>을 닦아야 됩니다.
볼을 차는 것도, 배구를 하는 것도, 탁구를 치는 것도
모두 할 줄 알아야 할 수 있습니다.
할 줄 모르면, 못 합니다.
할 줄 모르면, 못 하는 선(線)에서 살다가 끝나게 됩니다.
할 줄 알면, 아는 세계에서 일도 하고, 공적을 세우고
하나님께 얻을 것도 얻고 살 수 있습니다.
* 잠시 쉰다.
운동선수들이 많은 관중들 앞에서 ‘실제’ 게임을 하듯이
섭리사도 지금! ‘실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구상대로 일을 하며 실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성자는 늘 말씀하시기를,
“사물을 볼 때는 꿰뚫어 보아라.
소홀히 보지 말고 완전히 보아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행해야 됩니다!
그리고 지금! ‘실제’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때에는,
- 완전히 행해야 됩니다.
- 그리고 사랑으로 행해야 됩니다.
- 재미와 즐거움으로 행해야 됩니다.
- 그리고 오해하지 말고, 행해야 됩니다.
<일을 할 때>도 ‘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을 하면서 노래하고, 기뻐 찬양하고, 화동하면서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일>만 하면, 지겹고 힘들고 어렵습니다.
<일>은 ‘복’이요, ‘낙’입니다.
<재미>와 <즐거움>과 <기쁨>으로 행해야 됩니다.
또 <일을 하는 시간>은 ‘자기를 존재하게 하는 시간’입니다.
<일>을 하면서 깨닫고, 생각하고,
많은 만물들을 직접 꿰뚫어 보고,
자신의 신혼골수를 쪼개 볼 수 있습니다.
* 잠시 쉰다.
월명동을 보면, ‘크고 아름다운 돌’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띄엄띄엄 있습니다.
일을 해서 돌을 세워 놓으니,
볼 때마다 “좋다. 멋있다.” 하며 씁니다.
지금 이 말씀을 쓰는 중에 환상으로 아주 멋있는 돌이 보였습니다.
‘이런 돌이 어디 있나?’ 하고 생각해 봤지만,
어디서 봤는지 본 기억이 안 났습니다.
그래서 ‘다른 돌을 본 것인가?’ 하고 보니,
<성자바위 옆에 있는 납작한 돌>을 본 것이었습니다.
그 돌이 그렇게도 아름답고 멋있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 돌이 그렇게 아름답고 멋있게 보였을까요?
(잠시 쉬었다가)
<영적>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환상으로 볼 때>는 비몽사몽간에 봐서
‘이렇게 멋있고 아름다운 돌이 있었나? 사다 놔야지.’ 했는데,
이미 사다가 성자바위 옆에 놓은 것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보니,
아름답게 빛이 나고, 반질반질하고, 너무 멋있었습니다.
<영상 자료 1>
이 돌은 성자바위 옆에 있는 ‘성령바위’입니다.
선생이 ‘영적’으로 본 것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멋있었습니다.
이같이 <사람>도 영적으로 봐야
더 아름답고 더 신비하고 웅장합니다.
<영의 세계>도 그 단계까지 봐야
기쁘고 즐겁고 심령의 낙을 누리며 감사, 감격하며 좋아하게 됩니다.
육적으로 보면, 보통으로 보입니다.
육적으로 봐도 신령하게 보는 것이 있지만,
그렇게 보려면 아주 꿰뚫어 보고 사물을 확실히 봐야 됩니다.
* 잠시 쉰다.
월명동에는 ‘미술관’이 있습니다.
이곳의 그림은 수시로 바뀝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 근본’을 아는 자가 없습니다.
<그림을 볼 때> 근본을 모르고 보면,
재미도 없고, 자기 취향으로 보고 끝납니다.
근본을 알고 보면, 뜻을 아니 상상도 못 하는 지식을 얻게 되고
그림에 조예가 깊은 자가 됩니다.
이제 사람이 모이면, 하나씩 설명해 줄 것입니다.
오늘 ‘그림 하나’에 대해 설명해 줄까요? (잠시 쉬었다가)
<월명동 미술관>에는
코끼리가 코로 큰 뱀의 목을 감고 아주 여유 있게 가는 모습의 그림
이 있습니다.
월명동에 오면, 이 그림을 보기 바랍니다.
<영상 자료 2>
이 그림을 보면,
<코끼리>가 ‘뱀의 목’만 자기 코로 한번 챙챙 감아서 꼭 조이고,
발로는 밟지 않고 갑니다.
▸ <코끼리>는 ‘왕’이요, ‘선생’을 상징한 것입니다.
‘주’를 상징한 것입니다.
이는 ‘형이상학적’으로 본 것입니다.
▸ 그리고 코끼리 뿔은 ‘2개’가 나 있는데
<우측 상아>는 높게 나 있고, <좌측 상아>는 조금 낮습니다.
<좌우 크기>는 비슷합니다.
<우측 상아>는 ‘영적인 세계’를,
<좌측 상아>는 ‘육적인 세계’를 의미합니다.
<영적인 세계>는 차원이 높으니 더 높게 그렸고,
또,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는 밸런스가 맞아야 되니
<두 개의 상아의 크기>를 같게 그렸습니다.
▸ <뼈, 상아>는 권세요, 세력이요, 능력이요,
사명이요, 무기요, 각종의 힘입니다.
▸ 그리고 <코끼리 코>로 ‘뱀’을 한번 힘 있게 감았습니다.
<발>은 뱀을 밟지 않고 여유 있게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발>로 뱀을 밟지 않은 것은
‘<코>만 가지고도 충분하다.
<코의 능력>만 가지고도 충분하다.’는 의미입니다.
<목>을 조이기만 하면, 다른 것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끝난 것입니다.
▸ 그리고 <발>을 사용하는 것은 각종 의미가 있습니다.
그중에 ‘<법>으로 하지 말아라.
<또 다른 방법>으로 하지 말아라.’ 함입니다.
▸ <코>는 ‘호흡’입니다.
<호흡>은 ‘기도’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본 것입니다.
선생이 세상을 위해, 시대를 위해 십자가를 질 때,
그냥 나가면 안 되기에 기도 작전을 했습니다.
<기도>가 마치 ‘코끼리의 코’같이 작용을 했습니다.
<기도>로 사탄을 멸하고, 악인도 멸하고, 악도 멸하고
<기도>로 나를 연단시키고, 만들고, 깨닫게 했습니다.
그때는 나에게 대항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로 밤낮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선생에게
‘코끼리가 코로 큰 뱀의 목을 감은 입장’과 같았습니다.
그러니 늘 성자도, 성령님도
“기도해라. 기도만 해도 충분하다.” 하시며
각종 문제를 기도로 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터졌을 때도 ‘기도’로 해결했습니다.
그때 섭리사 모든 사람들이 기도를 해도,
선생의 사정을 알고 기도하는 사람은 100명 중에 하나 정도였습니다.
<알고 기도하는 것>과 <모르고 기도하는 것>은
애절함도, 간절함도 다릅니다.
“기도해라.” 하면, 꼭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안 하면, ‘기도의 시험’에 듭니다.
특히 <새벽>에 꼭 기도해야 됩니다.
생활 속에서 기도해서 되는 것도 있지만
새벽에 기도함으로 신령함을 쌓고, 자기를 만들어야 됩니다.
그리고 <낮>에도, <밤>에도 기도를 해야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와의 대화’입니다.
<기도>는 ‘생명’이요, ‘능력’입니다.
<기도>로 병도 치료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원하는 것은 들어준다. 그러나 책임을 갖고 행해야 한다.”
했습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행할 때 잘 행하여라.
<지혜와 지식과 하나님의 구상>으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보는 자가 아름답고 웅장하고 신비하게 본다.
자기를 이와 같이 만들어라.
멋있게 개발하고, 아름답고 신비하게 자기를 만들어라.
또 하나는, 주가 실제로 뛰고 달리니 행할 때 잘해야 한다.
정말로 행할 때 잘해야 된다.
행할 때 작품으로 멋있게 행하자.
지금까지 성령님께서 주에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해 주었습니다.
<영상 자료 3>
<성지 땅 월명동>도
하나님의 구상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니,
아름답게 멋있게 됐습니다.
언제 봐도 아름답고 신비하고, 기쁘고 즐겁습니다.
항상 <절대적인 하나님의 구상과 실천>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월명동에 해 놓으신 것>을
각종으로 알고 꾸미고 만들어야 될 때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사랑하심과
그 구상과 인자하신 사랑이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