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8.09.23 (일)
180923 주일말씀(1. 온전하면 신이 된다 2. 하나님처럼 온전하라)
- 선포일
- 2018.09.23 (일)
- 성경 본문
- 요한복음 10장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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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23-주일말씀(1._온전하면_신이_된다_2._하나님처럼_온전하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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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3일 주일말씀>
1. 온전하면 신이 된다
2. 하나님처럼 온전하라
본 문 요한복음 10장 35절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은 신이라 하였거늘』
마태복음 5장 48절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전국, 그리고 세계의 각 나라 모두
한 주간 그를 중심해서 실천해야 될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말씀>을 안 해 줬더니만 백성들이 방자하기 그지없더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방황하고, 어떻게 갈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하나님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군대든지, 어떤 조직 세계든지 지도자가 이야기를 안 해 주면
지도자가 명령을 하기 전까지는 자기 생각대로 합니다.
고로 하나님은 늘 말씀해 주시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7번, 하루에 한 번씩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매일 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고,
또 그 말씀을 실천해서 그 단계의 주인공이 되도록 해야 됩니다.
◎ “하나님처럼 너희도 온전하라.”
“온전하게 되면 신이 된다.” - 이 말씀을 많이 들어 봤을 것입니다.
여기서 <신>은 ‘절대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땅에서는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는 하나님과 함께 인생들을 온전함에 속한 세계로 인도합니다.
<메시아>는 ‘절대자, 신’은 아니지만,
지상에서는 가장 신에 속한 자로서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자>입니다.
◎ 오늘 말씀 주제를 보고
‘아, 이런 것을 이야기해 주시겠구나.’하고 생각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성경 본문을 읽고 들어갈 뿐이지, 그 말씀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근본의 말씀>을 해 주려고 합니다.
<말씀 시작>
사람들에게 “하나님처럼 온전하라.” 하면, 부담감을 가집니다.
그러면서 ‘우와, 어떻게 하나님처럼 하나?’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교리적으로 봤을 때, 이 말씀을 잘 전하지 않습니다.
왜요? <하나님처럼 온전하라는 것>은 ‘신’이 되라는 것인데,
어떻게 <인간>이 ‘신’처럼 될 수 있냐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 기독교에서는 ‘계시를 받는 것’도 잘못됐다고 합니다.
<구약 때 받은 계시, 예수님 때 받은 계시>는 인정하지만,
그 후로는 “계시는 옛날에 끊어졌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계시’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처럼 온전하라.” 하고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각 분야대로 깨우쳐 주시는데,
이것을 그때마다 ‘계시’로 받지 않고서는 행할 수 없습니다.
<계시가 끊어졌다고 하는 것>은 학자들이 이야기한 것입니다.
<학자들>이 보기에는
지금이 구약시대, 신약시대가 아니니 더 이상 계시는 없고,
그때 받은 계시를 가지고도 충분히 운행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적으로 볼 때>는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시>, 곧 ‘말씀’을 가지고 역사를 운행하십니다.
고로 계속 ‘계시’로 말씀하시고, 지시하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루에 얼마나 많이 계시해 주시는지 압니까?
지구 세상 75억 명 사람들에게
<만물>로 계시하시고, <양심>으로 계시하시고, <꿈>으로 계시하시고,
계속해서 계시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의 계시, 특별 계시>를 계속 해 주고 있습니다.
◎ 계속해서 “신처럼 온전하라.” 하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지도자>는 누구든지 ‘자기’를 닮기 원합니다.
<부모>도 자식을 낳고서는 ‘자기’를 닮기 원합니다.
<같은 사상>, <같은 이론>, <같은 주관>, <같은 방향>을 가지고
자기와 닮기를(닮아 가기를) 원합니다. 그렇지요?
<닮는 것>이 그리도 기쁩니다.
닮으면,
같이 닮은 점이 대화거리도 되고, 이야깃거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나니>도 새끼들을 데려다 놓고 자기를 닮으라고
계속 “나나나나나. 나 닮아라. 나나나나나.”하는 소리를 냅니다. (^^)
<나나니>는 벌 중에서 가늘고 기다랗게 생긴 벌입니다.
그 소리를 들어 보면, 진짜 ‘나’ 소리 말고는 다른 소리가 안 들립니다.
영어로도 통역이 되지요? “my my my my my” (^^)
<나나니>도 이같이 자기 닮으라고 소리를 내는데,
<하나님>은 어떠시겠습니까?
‘하나님처럼 온전하라.’는 말씀은
‘하나님 자신을 닮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부담이 됩니까?
우리가 하나님 말고 누구를 닮겠습니까?
하나님처럼 온전하라고 한 말씀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온전하지 않고서는 그 말씀을 못 합니다.
왜요? 온전하지 않으면, ‘온전함’ 자체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고로 자신이 온전하고서,
“하나님처럼 온전하라.” 하는 이야기를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쉽게 해석해야지 어렵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천재들>은 쉽게 깨닫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렵고, 복잡하고, 이해가 안 되고,
머리가 아프니 인상을 찌푸립니다.
<신앙의 천재들>도 쉽게 깨닫습니다.
고로 “<하나님처럼 온전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닮으라>는 말씀과 똑같다.” 하고 가르쳐 줍니다.
이같이 생각하니 쉽지요?
<인간>이 ‘하나님처럼 온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할 수 있습니다.
▸ 가령 <초등학교 선생님>이 구구단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
<학생들>도 선생님처럼 똑같이 구구단을 외울 수 있지 않습니까?
<선생님>이 알듯 똑같이 하면,
<선생님>과 같이 100점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 이것이 온전함입니다.
▸ <오늘 예배드리러 올 때>도 얼굴 마사지도 하고,
깨끗이 씻고 단장하고, 화장도 하고 오지 않았습니까?
- 이것도 온전하게 한 것입니다.
▸ 또 <축구를 할 때>도 아무리 볼을 차면서 멋있게 달려와도,
마지막에 온전하게 못 하면 볼이 골대에 안 들어갑니다.
볼이 골대에 들어가면, 그것은 온전하게 한 것입니다.
더 이상 없이 100% 만족하게 한 것입니다.
볼을 골대에 넣듯이,
모든 것도 그와 같이 온전하게 하면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이같이 온전하게 다 하고 있는데도,
하나님처럼 온전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님처럼 온전할 수 있지?
큰일 났다.’ 하며 겁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온전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 할 수 있습니다.
“<선생>이 알듯 너희도 알아라.
그러면 모두 얼마든지 온전하게 할 수 있다.” 알겠습니까?
<잠시 쉬었다가>
<역사의 세계>는 ‘온전한 역사를 향해서 가는 세계’입니다.
그러니 사람도 태어나서 ‘온전한 삶’으로 계속 가는 것입니다.
다만, 빨리 온전할수록 그만큼 더 많은 것을 거두어들입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사고도 나고, 문제도 생기고, 어려움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는 <온전하지 못함으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들>입니다.
<주체>가 온전하지 못했든지, <대상>이 온전하지 못했든지,
<시대>가 온전하지 못했든지 ‘온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어납니다.
<음식을 할 때>도, <세탁을 할 때>도 그러합니다.
<온전함>이 빠지면 바로 문제가 생깁니다.
가령 빨래를 하려고 세탁기에 옷을 넣고 돌렸는데,
나중에 꺼내어 보니 때가 하나도 안 지워졌다고 합시다.
왜요? <비누>를 안 넣고 세탁기를 돌렸기 때문입니다.
<비누>를 넣고 세탁기를 돌려야,
<온전하게 깨끗한 빨래>가 되어 나옵니다.
이같이 모든 것도 온전하지 못하면, 다 문제가 생깁니다.
<온전함>이란, 마치 그릇에 물을 완전하게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릇에 물을 완전하게 채우듯 해야 ‘온전한 세계’에 들어갑니다.
<말>도, <행실>도 모두 온전하게 해야 됩니다.
하면 다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니,
사고도 일어나고, 재난도 일어나고, 다치고,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문제가 안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존재자, 완전한 존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법칙의 꼭짓점’입니다. 그래서 온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컵의 뚜껑을 열 때, 뚜껑 전체를 움켜잡을 필요 없이,
<물컵 뚜껑의 손잡이, 꼭짓점>만 잡으면 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세계의 주인>이 되어 행하시니,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사는 자들>에게도 온전함을 요구하십니다.
<완전함>을 요구하십니다.
고로 <신앙>도 ‘100% 믿음’으로 해야 됩니다.
<완전한 믿음>은 ‘100%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
<진리를 제대로 모르고 믿었을 때>는 온전하지 못하니
가다가 문을 닫는 역사가 일어났고
결국 ‘구원에도, 시대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고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온전하게 행하지 않으니,
<하나님의 뜻>이 깨져 버렸습니다.
<역사>가 깨져 버리니, ‘시대’도 다 깨져 버렸습니다.
<대표>가 깨지면, 다 깨지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되는 인간이 ‘온전함’과 ‘완전함’을 실천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그 뜻과 목적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계속해서 점진적으로 역사를 펴 오셨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행하시면서 더 크게, 그 뜻을 이루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는 ‘온전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역사>가 ‘온전한 역사’입니다.
왜요? 성경의 말씀을 온전하게 다 풀었기 때문입니다.
<기성>은 교리부터가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 더 이상 없다.” 했는데,
더 이상 없으면 하나님이 왜 성약역사를 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성약역사를 예언하며 선포하셨습니다.
<완전한 역사, 온전한 역사>를 선포하셨는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역사를 안 하시겠습니까?
마지막에는 절대 땅에서 <온전한 역사>를 폅니다.
그때가 ‘제일 성장한 때’로서 종교적으로 보면 최고 전성기입니다.
고로 <온전한 역사>를 위해 하나님은
- 온전한 말씀을 주시고,
- 그 말씀을 실천해서 온전한 사랑이 무엇인지 근본을 깨닫게 하시고,
- 그리함으로 ‘온전한 휴거 역사’를 펴십니다.
지금! 그 역사가 진행 중입니다.
<종과 자녀권 세계> 위에 ‘신부권 세계’입니다.
그 위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온전하라.’한 말씀도,
<기독교>는 ‘시대’가 안 돼서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처럼 온전하라고 하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처럼 온전하냐? 그건 외람된 이야기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다른 의미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하면서
살짝 돌아 나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과 말씀을 받았다고 해서,
<전지전능하신 영체의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까?
또는 지체들에게 ‘머리’처럼 온전하라고 해서,
<지체>가 ‘머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안 되지요.
그러나 하나님처럼 온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닮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행하면,
그것이 ‘하나님처럼 온전한 것’입니다.
선생이 운동할 때 받은 묵시의 잠언이 있습니다.
“나는 <생각>과 같이 한다.”
하나님의 생각대로 우리가 행하면,
하나님도 우리와 같이 그 뜻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의 역사>는 ‘온전한 세상 만들기 역사’였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점진적으로 역사하시다가,
다 성장되어 <마지막 역사>가 됐을 때 하나님은 신부 역사를 하십니다.
그래서 그때가 되면 하나님은 보낸 자를 통해 ‘온전한 설교’를
계속 해 주십니다.
고로 오늘도 하나님은 보낸 자를 통해
“<온전하라는 것>은 나를 닮으라는 이야기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또 성령님께서도 “나를 닮아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은 ‘온전한 시대’가 못 되었습니다.
<소생급 역사>로서 ‘시작하는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약 2000년>은 ‘장성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고로 온전할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역사>는 ‘완성기’로서
그때에 온전한 역사가 일어나고, 온전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온전한 사람들>이라고 하니,
“선생님, 저는 온전할 수가 없어요.”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실수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고, 넘어짐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온전치 못하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큰 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을 믿고 절대시하는 것’
- 이것이 온전해야 됩니다.
가다가 실수 좀 하고, 새벽 3시에 일어나기로 했는데 못 일어나서
온전치 못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대 말씀>을 믿고 절대시하고, 그 핵을 믿고 따르면,
그것을 두고 온전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나머지>는 ‘생활 속에서 온전히 해야 될 것들’입니다.
<생활 속에서의 온전함>은 미완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 고치려면 고칠 수 있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나는 못 해. 약해. 내가 할 수 있을까? 가다가 끝날 것 같아.
자신이 없어.” 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인생들 저마다 지분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지분을 90% 쥐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그 지분을 갖고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요리조리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같이 역사하셨기 때문에
섭리사가 어려울 때 아무리 “더 이상 못 한다. 나는 포기했다.”
하고 나갔어도 결국 다시 역사에 와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지분’에서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두 <하나님의 행하심>을 알고, 이해하고, 깨닫고,
온전히 행하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온전히 행해야만 ‘완성’으로 끝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라고 했으니,
그 말씀대로 삶도, 경제도, 운동도 각종으로 온전해야 됩니다.
그래야 ‘완성’으로 끝낼 수 있습니다.
<큰 것>은 다 했습니다.
곧, 시대 말씀을 듣고 믿고 깨닫고 행하면서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고,
그다음에는 보낸 자를 믿고 깨닫고 섬기고 사랑하고,
그다음에는 형제들을 사랑하면서 ‘큰 것’은 다 했습니다.
<생활 속에 해당되는 것>은 ‘나머지, 부수적인 것’입니다.
이제는 ‘생활 가운데 온전히 해야 할 것’을 하면 됩니다.
이사할 때 청소해 주고 큰 것은 다 했으니,
이제는 나머지 방바닥에 흩어진 먼지들을 닦고 깨끗이 하자는 격입니다.
<큰 것>을 해 놨어도,
<자체적으로 할 일들>을 안 해 놓으면 지저분합니다.
이는 마치 <월명동에 큰 것>을 해 놨어도,
<마당 청소>를 안 하면 더럽기 그지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선생도 요즘은 계속 “완벽하게 해서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자.”
하는 말씀을 중심해서 뜻을 펴 나갑니다.
여러분들도 저마다 ‘자기 온전함’에 대해서 생각하며
<생활 속에서 온전히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행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꼭 ‘자기 모순’을 고쳐야 됩니다.
이것은 본인들이 알고 해야 될 문제입니다.
주는 말씀합니다.
“더 잘하려면, 너의 모순과 약점을 고쳐라.
그것을 싹 끊어 버려라. 아주 없애 버려라.
하나님께 나아갈 때 ‘네 모순’이 있으면 큰일 난다.
<뿌리>가 남아서도 안 된다.
뿌리가 남으면, 거기서 또 자기 모순이 올라온다.
모순이 있으면, 그 근본의 뿌리를 없애야 된다.”
<신앙>이라는 것은 ‘삶’과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늘 ‘가르치는 말씀’을 했는데,
그 말씀은 2000년이 지났어도 변함없이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온전하라는 말씀>도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에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정치인들도, 경제인들도, 학자들도, 군인들도 모두 온전하라.
-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알겠습니까?)
온전하게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를 펼 수가 없습니다.
고로 우리 섭리사는
술, 담배, 세상 모순, 이성, 모두 끊어 버리고 역사를 펴 왔습니다.
<예수님>도 그러했습니다.
<메시아>는 메시아로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을 이루기 위해
온 것입니다. 고로 <독생자>로서 온전히 행함으로 역사를 폅니다.
<메시아>는 딱 ‘하나’ 있다가 가는 것입니다.
누구한테 인계도 못 합니다.
<메시아>가 와야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줍니다.
그가 오기 전까지는 풀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예수님 때>도,
“하나님,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입니까?” 했을 때
답을 받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 한 번 더 말씀합니다.
“더 잘하려면, 모순을 고쳐라.
<온전하게 만드는 것>이 ‘마지막 청소이니라.
그것은 너희가 해야 되지 않겠느냐.
<큰 것>도 했는데, 왜 작은 것을 못 하느냐?
<온전한 세계>가 되려면, 마지막에는 모순을 고쳐야 된다.”
하나님처럼 온전해야 됩니다!
자기 모순을 고쳐야 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좋아서 입이 찢어지십니다.
하나님은 신부들이 <신부로서 온전한 삶>,
<완벽한 삶>을 살아야 마음을 놓으십니다.
<기도>도 온전하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온전하게,
<운전>도 온전하게 해야 됩니다! (믿습니까?)
◎ <온전한 삶을 사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니,
금주 한 주 동안 ‘온전한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온전히 사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주관권에서 하나님의 법을 따르며 살아야 되지,
그야말로 막 못 놀지, 이성 사랑도 못 하지....” 합니다.
그러면서 “온전히 살려면 늘 경건주의가 돼야 하나?” 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을 따지지 말고, 하나님이 “온전하라.” 하셨으면,
“네! 온전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 때>는 노아를 두고, “당세에 완전한 자다.” 하셨고,
<다윗 때>는 다윗을 세워서 “내게 합당한 사람이니라.” 하시며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이유를 대지 말고,
정신일도 하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해야 됩니다.
선생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하나님! 이번에 내가 끝내주게 해 버리겠습니다!” 하고
바로 아예 실천해 버립니다.
여러분도 이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육신을 쓰고 있을 때 온전하게 해야 됩니다.
지금 안 하면 언제 하겠습니까?
<영의 세계>는 ‘육신 세계의 복사판’입니다.
<육신>이 행한 대로 ‘영’이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육신의 성공>은 ‘영의 영원한 성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영의 영원한 성공이니,
해 볼 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이유가 많습니다.
그러니 “이래서 못 했다. 누가 말렸다. 어떤 일이 있었다.
비바람이 쳤다.” 하면서 이유를 댑니다.
하나님은 그 말을 듣지 않으십니다.
지옥에 가는 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십니다.
왜요? 그동안 해 줄 것을 다 해 줬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히 지옥을 면하고, 천국을 갈 수 있었으나
본인이 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령님도 늘 지적하시기를, “합리화를 시키지 말아라.” 하십니다.
자기가 정말 깨달았다면, 정말 사랑한다면
돌아서 가든지 별 짓을 다 해도 결국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회사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저는 그 시험만 보면 징크스에 빠집니다.
평소에는 그보다 머리가 훨씬 더 잘 돌아가서
그 회사에 근무할 수 있으니 받아 주십시오.” 한다고 되겠습니까?
이유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했는지>, <안 했는지>만 보시고,
<순종했는지>, <순종 안 했는지>만 보십니다.
고로 “누가 방해해서 못 했다. 막아서 못 했다.” 하는
이유를 대지 말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말씀 마무리>
오늘 말씀 “온전해서 신이 되자. 하나님같이 되자.
하나님을 닮아서 하나님처럼 온전하라.”
이 말씀대로 행하면서 하나님처럼 온전하기에 도전하기 바랍니다!
한번 <신>과 같이 살아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맨 마지막>에는 ‘하나님과 같이 사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사람으로서 신이 되어 해 보자는 것입니다.
같이 하면 됩니다!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노래>도 ‘온전하게, 완벽하게’ 합니다.
선생이 하는 노래는
한 번에 작사, 작곡까지 해서 완벽하게 지어서 부릅니다.
한 번의 연습도 없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이지, ‘불완전’입니까?
오늘 말씀대로 하나님처럼 온전한 삶을 살아야,
<모든 하는 일들>이 잘되고 형통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할 때는 항상 조심해서 해야 됩니다.
<한 가지>만 생각하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일로 인해 다른 문제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늘 생각해야 됩니다.
온전히 해야 됩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끝까지 해야 됩니다.
자기가 좋을 때는 “100% 온전하게 행하니 하나님 걱정 마세요.”
해도, 가다가 신앙이 죽으면 다 드러납니다.
인간은 <미결수>입니다.
<천국에 온전히 들어갈 때>까지는 ‘미결수’에 속합니다.
자기가 휴거됐다고 해도, 그래도 ‘미결수’입니다.
그 육신이 죽을 때까지 따질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휴거됐어도, 육이 타락하면 즉시 휴거의 영이 내려와 버립니다.
그러다 회개하고 복직해서 정신 차리고 온전하게 살면,
그때는 다시금 휴거 역사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온전하게, 완벽하게 하면 아무 문제가 안 생깁니다.
<온전치 못한 것>은 하늘 심판, 세상 심판 두 번을 받습니다.
그러나 누명을 쓰고, 억울함을 당했어도
온전하게 행한 것은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행한 대로 됩니다!
이것을 믿고 행하기 바랍니다!
* 잠시 쉰다.
지금까지 ‘하나님처럼 온전하라.’는 말씀을 해 줬습니다.
늘 이 말씀대로 살고,
그리고 항상 ‘온전’이라는 단어를 잊지 말기 바랍니다.
잊어버리면, 생각이 안 나서 또 실수하고, 어려움이 생깁니다.
고로 금주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고, 잊지 말고 행해야 됩니다.
또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와 같이 동행하며 행해야 됩니다.
하나님께 창피 주지 말고, 주님께 창피 주지 말아야 됩니다.
어떤 어려움과 환난이 있어도 참고 견디고 지나가는 것이 낫습니다.
못 참으면, 그다음에는 너무 무서운 환난이 옵니다.
그리고 주께 물어보고 행해야 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안 물어봤습니다.
그 당시 헤롯왕이 남동생의 부인을 취했는데,
그것을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안 묻고 “나는 불의를 못 본다.” 하고
말하다가 결국 죽게 됐습니다.
<필요 없는 곳>에 힘을 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데 힘을 써야 했습니다.
항상 <두 가지>를 생각하고 행하기 바랍니다!
지금은 <자녀급 시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극적인 사랑을 받을 만한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진실로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살 자가 우리 섭리사밖에 없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그 어마어마한 사랑을 시대 역사에 쏟아부으십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이제는 더욱 <신>이 되어서,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대 사랑의 대상>이 되어 살기 바랍니다!
◎ 말씀했으니,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제 말씀을 들었으니 그 나머지는 스스로 깨치게 해 주시고, 또
새벽마다 깨우쳐 주시고, 행해 주시옵소서. 온전히 하라는 그 말씀에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았으니 열심히 행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나 닮아라.” 하신 말씀은 결혼하면 남편이 여자보고 “나 좀 닮아.” 하듯이,
또 여자는 남편보고 “나 좀 닮아.” 하듯이, 그런 이야기와 똑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온전하게 행하면 영원히 남아지는 것을 깨닫고 행하게 해 주시옵소서.
이제 말씀을 들은 모든 자들, 한국을 중심한 온 세계 전체가 우리 하나님의 온전한
삶의 사랑하는 대상인 신부가 되어서 하나님 사랑을 실컷 할 수 있도록, 우리가
사랑의 대상이 되게 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온전히 행하지 못함으로 일을 다 그르쳐서 고민, 걱정하는 모든 자들을 위해 이미
기도해 주었습니다. 모두 풀어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의 사랑으로 너그럽게 행해
주시옵소서. 우리가 앞으로는 온전히 행하겠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 간절히 간구하고 원하오니,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다 행해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구하고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