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8.10.07 (일)
181007 주일말씀(사랑의 승리다)
- 선포일
- 2018.10.07 (일)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22장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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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7일 주일말씀>
사랑의 승리다
본 문 마태복음 22장 36절 - 40절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 오늘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잘 듣고, 깨닫고, 행해야 되겠습니다.
<말씀 시작>
오늘 새벽 1시에 기도할 때, 어떤 말씀을 전해 주면 좋을지 물으니,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전달하시기를, “사랑의 승리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
“나에게는 <사랑의 승리자>가 필요하다. 그를 통해 나의 뜻을 이룬다.
나 여호와는 사랑 덩어리다.
내 편이 되려면, ‘사랑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사랑 덩어리’이십니다.
고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편이 되려면,
자기도 ‘사랑 덩어리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사랑 덩어리’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힘들어도 깎고 만들어서 ‘사랑 덩어리’가 돼야 합니다.
어디까지요? 원수를 사랑하는 단계까지 해야 됩니다.
그리고 절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고,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야 ‘사랑 덩어리’가 됩니다.
<가정>에서도 남편 앞에 부인이 ‘사랑 덩어리’가 되어야 하고,
부인 앞에 남편이 ‘사랑 덩어리’가 되어야 하고,
그리고 자녀들도 부모 앞에 ‘사랑 덩어리’가 되어야 합니다.
또 <백성들>은 국가 앞에 ‘사랑 덩어리’가 되고,
<국가>는 백성들 앞에 ‘사랑 덩어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형제들을 사랑하라.” 했습니다.
신약 2000년 동안 이 두 계명을 이루어 왔듯이,
성약역사에서도 이 말씀을 이뤄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사랑의 승리>입니다.
경제 승리에 앞서, 주권 승리에 앞서, 운동 경기 승리에 앞서
<사랑의 승리>입니다.
<사랑>에서 승리하려면, ‘사랑’에 대해 잘 알아야 됩니다.
<진실한 사랑>, <절대적인 사랑>,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 <미우나 고우나 사랑>이어야 됩니다.
이런 것, 저런 것 따지면 사랑을 못 합니다.
<사랑>하면, 약점이든 단점이든 어떤 것도 보이지 않고
<사랑>만 보입니다. 하나님은 이 같은 사랑의 존재자이십니다.
<육신>은 ‘일생’까지지만, <영>은 ‘영원’까지 있습니다.
<사랑>도 그러합니다.
<사랑>은 ‘영원’까지 있습니다.
<사랑>이 없어서 개인, 가정, 민족, 세계에 싸움이 일어납니다.
<사랑>하면, 싸움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지구촌에 전쟁이 없는 것도 그만큼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이 불붙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로 <평화의 역사>, <희망 있는 역사>가 됐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랑’을 계속 실천하시고,
세상을 정녕코 ‘사랑의 세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랑의 승리>를 해야,
하나님께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됩니다.
<사랑의 승리>를 해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주권>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주권>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했어야 됐지만,
사탄의 꾐을 받아서 육적 사랑만 하고 끝났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을 사랑할 주권’을 뺏겼습니다.
곧,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부른 목적은
<인간을 자신의 사랑하는 자로 삼는 것>이었지만,
아담과 하와가 타락함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깨진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은
“<타락된 사랑>은 안 받는다. <썩은 사랑>이다.
지구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창조한 것은
그로부터 사랑을 받기 위함인데 그 뜻이 깨졌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말아라.”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사랑의 주권>이 그렇게도 무섭습니다.
<사랑>에는 이성, 저 성 다 들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성적 사랑>도, <정신적 사랑>도, <영적 사랑>도
모두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인해 ‘사랑의 주권’을 뺏긴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주권>을 뺏기고서
사탄, 마귀나 사랑하고, 비원리나 사랑하니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해야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사람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기쁩니다.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고로 하나님은 ‘사랑할 사람’을 계속 찾으셨습니다.
구약 때 ‘노아, 모세, 다윗’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완전한 사랑’을 드렸습니다.
<노아>를 두고 “<완전한 자>다.” 한 것도,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크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함으로 <완전한 자>로 ‘하나님의 어인’을 찍어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내 마음에 든다.” 한 것도
담대하고 싸움을 잘해서 그리 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어인’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할 사람’을 계속 찾으시며
<구약의 섭리 역사>를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은 때가 되어 메시아 예수님을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선포하시기를,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하나님의 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
“또 하나가 더 있으니,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형제들을 사랑하라.” 했습니다.
이 <두 계명>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확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계명>을 이루는 자가 큽니다.
이 <두 계명>을 이루려면, 적어도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여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계명을 이루고 ‘사랑의 승리’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변함없는 사랑>으로 온 세상을 대하고,
온 인류를 위해 죽어 주면서 하나님 앞에
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대단하다. 역시 내가 보낸 독생자다.” 하고
불신한 자들을 용서해 주시고,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절대신이 예수님에게 임해서,
땅에서‘절대자의 역사’를 해 나가셨고,
결국 사랑을 이루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큰 자’이며 ‘메시아’입니다. (믿습니까?)
<사랑의 말씀, 진리의 말씀>은 참으로 크고 위대한데,
그 말씀을 행하여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눈물의 빵을 먹어도, 환난과 핍박을 당해도,
어려움이 있어도, 형제가 잘못했어도, 아내 혹은 남편이 잘못했어도,
민족이 잘못했어도 <사랑>을 베풀어야 됩니다.
<섭리사>는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왔기에
지금 이와 같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나머지 못 한 것들’을 행하여서
모두 오늘 말씀을 이루는 자들이 꼭 되기를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 계속해서 오늘 새벽에 받은 말씀을 한 잠언씩 전해 주겠습니다.
◉ <하나님의 최고 목적>은 ‘사랑’이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것도,
사람을 창조하신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창조자, 만든 자>는 그것을 만든 목적이 절대 있습니다.
미움 때문에 만들지도 않으셨고, 경제 때문에 만들지도 않으셨고,
아름다움을 위해 만들지도 않으셨고,
끼리끼리 살다 죽으라고 만들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랑’입니다. <사랑> 때문에 만드셨습니다.
이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해 오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다 ‘사랑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니까 도와주고, 생각해 주고,
기억해 주고, 늘 함께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자>를 더욱 살피시며
그를 통해 역사해 나가셨습니다.
◉ <하나님의 최고 목적>은 ‘사랑’이다.
고로 하나님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의 나라>를 이루려고 하셨다. (알겠습니까?)
그래서 땅에서도 <하나님의 주관을 받는 나라>일수록
<사랑의 나라, 너그러운 나라, 긍휼을 베푸는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은 전체를 다 살피시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한 자들>을 더욱 챙기시고 그 나라와 함께하십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그리고 땅에 보낸 자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가 ‘사랑의 승리를 한 자’다.
◉ <사랑의 승리를 못 한 자>는 ‘인생 승리를 못 한 자’다.
여러분들은 ‘사랑의 승리를 한 자’입니까?
<사랑의 승리>를 하려면, ‘두 가지’를 해야 됩니다.
- <삼위와 주를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과
- <형제들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이미 이 두 가지를 한 것으로 인정하셨습니다.
그다음에는 ‘얼마만큼 강도 높게 했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 <사탄>은 ‘사랑의 승리를 못 한 존재’다.
왜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이유를 달고,
아니라고 하고, 오히려 다른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미워하고, 악을 행하는 데’에는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이 승리의 결과는 ‘지옥 세계’입니다.
◉ <사랑 승리>를 해야 인생의 모든 축복을 받는다.
◉ <사랑 승리>는 ‘영원한 승리’다.
◉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생 동안 <삼위와 그 보낸 자>를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한 자는 ‘영원한 사랑의 승리를 한 자’다.
<사랑의 승리를 한 자>는 정녕코 <사랑의 나라>로 간다.
<사랑>을 이뤘기 때문이다.
◉ <사랑의 나라>에서는 ‘사랑’이 주권이다.
◉ <사랑의 승리>는 ‘생명이 사는 승리’다.
▸ 이 말씀에 대해 설명해 주겠습니다.
선생이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였습니다.
한 작전이 끝나면 그곳에 현지답사를 가야 하는데,
하루는 분대장이 선생과 다른 한 사람에게
현지답사를 다녀오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곳은 험한 장소였습니다.
고로 100m를 가는 데 1시간 30분이나 걸렸습니다.
그곳은 작전을 한 곳이니 시체들이 있었고,
또 그 시체들을 데리고 가려고 온 적들도 있을 수 있으니,
우리는 고양이 기어가듯이 천천히, 조심히 걸어갔습니다.
적들은 자기 나라이니 그곳의 지리와 위치를 잘 알았고,
선생은 평생 처음 가는 곳이니 지리와 위치를 잘 몰랐습니다.
고로 조심히 살피며 가는데,
나와 같이 갔던 사람이 앞서가다 바위 위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놀라서 주변을 살피니,
큰 나무 뒤에서 한 사람이 나를 쏘려고 총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그 거리가 3m 정도였습니다.
서로 총을 대면, 끝과 끝이 서로 닿을 정도의 거리입니다.
선생도 총을 가지고 있었지만, 총구가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살려고 발버둥을 치며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지만,
손이 굳어서 총구가 안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선생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처음에는
“<이 자리>가 네가 죽는 자리다. 생명의 종착역이 이곳이니라.
<열차>가 떠나면 철로 끝까지밖에 못 가듯이,
<네 생명의 끝>이 여기니라.” 하는 영감이 왔습니다.
고로 선생은 ‘대책을 세워야겠다.’ 하여
하나님께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사~랑~하~라.” 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소리가 들리는데, 천지가 진동했습니다.
마치 온 세계 사람들이 다 듣는 소리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니, 긴장이 완화됐습니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러 적에게 가면 적이 내게 총을 쏘니,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때 또 한 번 “사~랑~하~라” 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내게
‘적이 너를 쏘지 않는다.’는 인식을 주셨습니다.
그러고서 나무 뒤에 있는 적을 쳐다보며 발걸음을 떼는데,
그의 얼굴이 ‘선생의 여동생 얼굴’로 보였습니다.
그때 “내 동생 영자야! 네가 언제 여기로 잡혀왔느냐?” 하고
뛰어가서 꽉 껴안았습니다.
<뇌>가 순간 여동생으로 인식을 하여,
적을 여동생으로 보고 뛰어간 것입니다.
껴안고 보니, ‘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같이 보이게 하신 것입니다.
그때 적을 붙잡고 울면서 말하기를
“왜 내가 너를 쏴야 되고, 왜 너는 나를 쏴야 되느냐?
네가 나에게 해를 준 것도 없고,
내가 너에게 해를 준 것도 없는데 왜 죽여야 되느냐?
전쟁 때문이다. 서로 미워해서 전쟁을 하지만,
우리는 사랑해서 서로 살자.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셨다.”
했습니다.
서로 언어가 다르니,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기도하는 모습을 표현해 보이고,
십자가를 손으로 그려 보여 주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자기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십자가 목걸이를 자기 가슴에서 꺼내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내게 하는 말이
“조심해라. 내가 지금 깔고 앉은 것이 있는데,
이것이 터지면 둘 다 죽는다.” 했습니다.
보니까 수류탄인데, 안전핀이 빠져 있었습니다.
만일 아군이 오면 자기를 쏘게 해서 죽고,
적이 오면 수류탄을 터트려서 같이 죽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미 그의 무릎에는 총알이 관통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고로 자기를 희생해서 수류탄을 터트리고
적들을 죽이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내 머리를 잡고 땅바닥에 대면서
자기도 그리할 테니, 내게 빨리 엎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고서 자기가 깔고 앉아 있던 수류탄을 빼서 바로 던졌습니다.
“쾅!!”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수류탄이 터지고서 보니,
선생이 있던 자리에서 불과 3m 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바위 밑이라서 파편이 안 날아온 것이었습니다.
괜찮은 것을 확인하고, 그가 무릎에 맞은 총알을 빼 주려고 하니,
빼면 피가 솟는다고 하며 못 빼게 했습니다.
그때, 선생 앞에 먼저 갔던 자가 정신 차리고 일어나서는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런데 ‘적’이 나와 같이 있으니 그를 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선생이 쏘지 말라고 하며 총을 뺏었습니다.
이 사람 때문에 너도 살고, 나도 살았으니 살려 주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둘을 옆에 두고 대화를 했습니다.
그는 큰 십자가 목걸이를 보이며
자기가 천주교인이라고 하면서 성경책을 내놓았습니다.
선생도 작은 신약성경 하나를 내놓았습니다.
서로 악수도 하고 계속 이야기를 하는데,
선생이 자기를 쳐다볼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사랑하라.” 하는 말이었다고 했습니다.
선생과 같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왜요? 그래야 서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차고 있던 좋은 시계와 총을 내게 주며,
“전쟁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는 것입니다.” 했습니다.
이같이 사랑하니, ‘생명이 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사랑의 승리>는 ‘생명이 사는 승리’다.
- 이 말씀을 해석해 줬습니다.
사랑하지 않아서 죽은 사람이 지구촌에 수억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생명이 사는 역사’가 됩니다.
<사랑>은 ‘생명의 승리’입니다. (믿습니까?)
<잠시 쉬었다가>
◎ 계속해서 말씀 전해 주겠습니다.
◉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사탄의 꾐>을 받고 행하여 ‘사랑’에 실패해 버렸다.
<신앙의 선조들>은 실패했어도, 우리는 승리해야 된다.
<옆에 있는 사람>이 실패했어도, 우리는 승리해야 된다.
◉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준다. (맞지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죄지은 것’도 덮어 주신 것입니다.
<덮어 줬다는 것>은 “용서했다.” 함입니다.
예수님도 그러했습니다.
누가 어떤 사람을 죄인시하면,
예수님은 “아니다.” 하고 그를 잘 대해 주셨습니다.
◉ <사랑>은 ‘구원’을 시킨다.
<사랑>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서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의 말씀>을 실천함으로 구원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한마디로 말해서 ‘사랑의 종교’입니다.
<불교>는 ‘자비의 종교’라고 하는데, 자비도 사랑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종교들>도 ‘사랑의 종교’로서
나름대로 역사해 나가시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원(原)틀, 원본(본틀)>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직접 모시고 살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들러리, 구경꾼 종교’밖에 안 됩니다.
◉ <사랑>은 ‘이상세계, 유토피아’를 이룬다.
◉ <사랑의 은혜>를 받고
<완전하게, 온전하게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흐지부지하는 사랑, 가다 변하는 사랑>이 되면 안 됩니다.
<사탄, 마귀들>은 사정없이 사랑을 반대합니다.
특히 <하나님이 보낸 자,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극적으로 칩니다.
<선생>도 ‘사탄, 마귀들’이
그렇게도 괴롭히고, 아프게도 하고, 각양각색으로 쳤습니다.
오늘도 설교하는 데 지장을 주려고 감기 몸살이 오게 했지만,
선생은 할 것을 다 했습니다.
목이 쉬어서 말을 못 하게 될까 봐 걱정했지만,
성령께서는 “목이 쉬었어도 살살 하면 다 들린다.
또박또박, 천천히 하고, 맛있게, 야금야금 듣게 하자.” 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소리를 지르지 않고 잔잔하게 설교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는 ‘사랑 덩어리’다.
고로 자기도 ‘사랑 덩어리’가 돼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와 일체 된다.
◉ <사랑>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많이 겪어 봤을 것입니다.
<사랑>을 목적으로 두고 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됩니다.
땅 뺏기 전쟁, 나라 뺏기 전쟁, 행정 뺏기 전쟁, 사람 뺏기 전쟁 등
이런 전쟁을 하니까 계속 싸우게 되고, 승리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한국>은 ‘사랑의 나라’입니다.
전쟁의 위험이 있고, 북한은 원자폭탄이 있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우리나라에는 원자폭탄이 없습니다.
한번은 하나님께 기도하니,
“너희에게는 <사랑의 원자폭탄>이 있느니라.
고로 그들을 끝까지 사랑으로 대해 줘라.” 하셨습니다.
어떤 자들은 우리가 맨날 북한에다
뭐도 갖다 주고, 뭐도 갖다 준다고 하면서 성을 내지만,
이는 우리가 ‘사랑’이 많기 때문에 그리한 것입니다.
계속 ‘사랑’으로만 대해 준 것입니다.
지금은 <사랑의 시대>가 와서 사랑으로 더 채워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양이 큰 사람이라도
돼지 한 마리를 먹이면 그가 더 이상 먹을 수 없듯이,
이와 같이 사랑을 차고 넘치게 주니,
이제는 사랑 앞에 굴복이 된 것입니다.
“어느 나라가 잘해서 그렇다, 쳐다보는 눈이 있어서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 ‘사랑’으로 대화했기에 잘된 것입니다.
<한국>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나라’입니다.
<제2의 이스라엘>과 같은 입장입니다.
고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서 뜻을 못 푼 것이 있으면
한국에서 푸시고,
혹은 이스라엘에서 뜻을 풀었어도 <시대>에 따라 풀 것이 있으면,
우리나라를 통해서 푸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역사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공산주의 나라, 무서운 나라, 골칫거리 나라’를
우리나라가 결국 무기 없이 ‘사랑’으로 이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북한을 사랑하라.” 한 말씀을 우리가 실천한 것입니다.
전 세계도 모두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됐지?’ 할 것입니다.
<원자폭탄> 없이 ‘사랑의 원자폭탄’으로 이긴 것입니다.
이같이 <사랑>은 ‘표적’을 일으킵니다!
◉ <사랑>이 깨지면,
천국도 깨지고, 인생도 깨지고, 희망도, 소망도 깨진다.
맞는 말이지요?
<잠시 쉬었다가>
오늘은 <사랑 설교>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제일 잘하는 설교가 사랑 설교다.” 하셨습니다.
왜 잘할까요? 하나님 앞에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선생의 철학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최고 철학이고, 사상이고, 이념이었습니다.
<성경 31,062절> 중에 선생이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마태복음 22장 36절에서 40절까지>였습니다.
이 말씀을 그렇게도 좋아했습니다.
이 말씀은 모두 다 좋아하지만,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 만주의 주>는 상천하지의 사탄을 이기고
결국 <사랑의 승리>를 했습니다!
<사탄>을 이기지 못하고서는 ‘사랑의 승리’를 할 수 없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역사를 반대하고 막아서 깨뜨린 자들이니,
끝까지 사랑을 깨트립니다.
<사탄>은 그 수가 ‘천천, 만만’이 아니라, 수백억, 수천억입니다.
<주>는 그 사탄들을 다 이겨 버렸습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의 말씀>에만 계속 순종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탄을 이긴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누구와 싸울 것도 없습니다.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만 죽자 살자 하며 지키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지구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사랑의 뜻>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하나님의 최고 사랑의 목적’을 가르쳐 주고
행하게 함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휴거 역사>를 이뤘습니다!
<휴거>는 육신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함으로
그 육도, 영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함으로 육도 땅에서 삼위와 사랑하며 지상천국을 이루며 살고,
그 영도 천국에서 삼위와 영원히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 <휴거의 사랑>을 이루었습니다!
◉ <사랑>이 없으면, ‘사랑이 없는 심판’을 받게 되고
<긍휼>이 없으면, ‘긍휼이 없는 심판’을 받게 된다.
◉ <10계명>은 ‘땅의 계명’이라고 하면,
<마태복음 22장 36절에서 40절까지의 말씀>은
‘하늘의 계명’이니라.
◉ <사랑의 승리>를 해야 ‘하나님의 최고 목적’을 이룬다.
이는 곧, <사랑의 목적>이니라.
◉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반대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모르고 막기도 한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구약시대에 나를 믿던 자들>이
<신약의 예수를 믿는 자들, 내 사랑하는 자들>을 막지 않았느냐.
시대를 깨닫고, 그와 같이 <이 시대>도 그러함을 생각하라.”
하셨습니다.
◉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시고, ‘사랑’을 이루신다.
그래야 <사람>도 ‘사랑의 세계’를 이루며 ‘하나님의 뜻’도 이룬다.
만일 <하나님의 뜻>을 ‘사람’을 통해 이루지 않고
만물을 통해 이루면, ‘만물’만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 스스로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말씀 마무리>
하나님은 <보낸 자의 육신>을 통해 “사랑해 주어라.” 말씀하시면서
개인, 가정, 민족적으로 <사랑과 평화의 세계>를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모두 자부심을 가지고 어려운 환경에 있을지라도
<사랑>만큼은 포기하지 않고 해 나가기 바랍니다.
선생은 지난 40년 동안 사람을 백만 명 이상 대해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다 해 봤어도 결국 ‘사랑’으로 대해 줘야 통했습니다.
<교육>도 안 통하고, <옳은 말>을 해도 안 통하지만,
결국 끝까지 사랑으로 대하니 통했습니다.
<교육>보다 높은 것이 ‘사랑’입니다.
<따지는 것>보다 높은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신앙철학>도 많이 배웠는데,
예수님도 무조건 ‘사랑’이었습니다.
고로 그 사랑으로 신약 2000년 역사를 펴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터전 위에
또 ‘사랑의 역사’를 펴 가고 계심을 알아야겠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언제든지 서로 ‘사랑’으로 대하고,
미운 털이 났어도, 미운 오리 새끼라도
서로 ‘사랑’으로 대하며 가기 바랍니다.
◎ 여기서 말씀 마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성령님, 그리고 성자, 절대신 삼위의 하나님을 믿습니
다. 그리고 예수님을 세상에 메시아로 보낸 것을 절대시하고, 믿고 사랑해 왔습니다.
그 말씀대로 한다고 하면서 세상을 살아오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 이와 같은 곳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깨닫고 감사하옵나이다. 그리고
사람을 쓰고 하시는 하나님임을 깨닫고, 쓰임을 받은 자에게도 그 수고에 감사하고,
역시 우러러 칭찬합니다.
웅장하고, 아름답고, 멋있는 장소에서 멋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곳이 늘 귀
하게 쓰여지는 장소가 되게 해 주시고 잘되고 형통되게 기도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으로 은혜를 더해 주시옵소서. 이곳도 만들 때, 사람들이 “왜 저렇게 크게 만드
냐?” 하고 말들도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멋있게, 아름답게 만들었기 때문에 여
기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고, 민족의 역사도 이루며, 결국 다 만들어 놓은 다음에
보는 사람마다 칭찬하는 장소가 됐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우리도 이와 같이 웅장
하고 아름답고 멋있게, 이 축구장같이, 시민의 광장같이 만들어지게 해 주시고, 사랑
으로 만들어지게 해 주시옵소서.
사랑하면 넓은 마음이 되고, 사랑하면 자기가 좋게 막 변해요. 사랑하면 하나님을 찾
게 돼요. 사랑하면 죽음을 면하게 해 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돈과 부귀영화가 없다
해도 그보다 사랑의 부자가 되기 위해서 항상 사랑을 베풀게 해 주시옵소서. 이 사랑
은 자기가 얼마든지 알프스 산만큼, 그리고 세계적으로 높은 에베레스트 산만큼 얼마
든지 내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이 차고 넘치도록, 오늘 전능자의 말씀을
사람을 통해서 듣고 행하는 이들이 되도록 축복합니다.
온 세계 이 복음이 들어간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더 활발하게 날며 역사를 일
으키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성부와 성자, 성령께 간절히 간구하고 축원하옵나이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