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8.10.21 (일)
181021 주일말씀(사랑의 복음)
- 선포일
- 2018.10.21 (일)
- 성경 본문
- 로마서 10장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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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1일 주일말씀>
사랑의 복음
본 문 로마서 10장 14-15절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 오늘 말씀의 주제는 <사랑의 복음>입니다.
◎ <복음>을 쉬운 말로 풀면, ‘복 받는 음성’입니다.
또 <영적>으로 해석하면,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복음의 세계>를 보면,
시대마다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가 다릅니다.
마치 어린아이 때와 성장했을 때 부모가 가르치는 것이 다르듯이
<하나님의 역사>도 ‘성장’에 따라 복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대마다 ‘그 복음을 가지고 와서 전하는 자’도 다릅니다.
◎ 이같이 <복음의 세계>는 다양한데,
몇 가지만 이야기를 하면서 말씀에 들어가겠습니다.
<말씀 시작>
<복음>을 구분해야 됩니다.
<물건>을 보고 ‘어느 시대에 사용되는 물건’인지 알아야 되듯이,
<복음>도 ‘어느 시대의 복음’인지 알아야 됩니다.
가령 <집>에 대해 논할 때,
언제 집을 지었고, 무엇으로 지었고, 얼마나 돈이 들었는지 논하듯이
<복음>도 논하고 분석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면 다 좋다.” 한다면
오히려 안 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구약 말씀>을 들으면,
안식일마다 ‘양, 소’ 등을 잡아서 하나님께 바쳐야 됩니다.
안 하면 하나님께서 “너 모르는 체하고, 없는 체할래?” 하십니다.
<신약 때>는 구약 때와 같이 동물들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일은 안 했습니다.
그때는 <예수님의 몸, 따르는 자들의 몸>이
하나의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리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성약 때>는 역시 ‘자기 몸’이 제물이면서,
<자기 마음, 생각, 혼과 영>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게 됐습니다.
곧, <사랑>이 ‘제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뜻을 이뤄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복음>을 ‘구분’해야 됩니다.
<어느 시대 복음>인지 알아야 됩니다.
<성약>은 ‘사랑의 세계’입니다.
고로 그 복음도 ‘사랑의 복음’입니다.
이 <사랑의 복음>을 듣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시대 사랑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지 않았습니까?
이 복음은 선생이 열다섯 살 때부터 본격적인 기도생활에 들어가면서,
그 후에 조금씩, 조금씩 배우며 받았습니다.
복음을 받을 때는 “이것은 구약 복음이고, 이것은 신약 복음이다.”
하고 확실히 구분이 돼야 합니다.
<구약과 신약 복음 전체>를 터득하고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이 시대에는 이러한 복음이 나와야 한다.’ 하는
단계를 깨닫고, 그때부터 점진적으로 ‘성서의 근본’을 깨닫습니다.
이 단계를 거쳐 ‘성약 사랑의 복음’을 하나씩 깨닫고 받았습니다.
<구약의 의문점>은 ‘신약’에서 풀고,
<신약의 의문점>은 ‘새 시대, 성약역사’가 와야 풀립니다.
그래서 기성인들을 보면,
“메시아가 오면, 그가 와서 풀어준다. 구해 준다.” 하고 기다립니다.
기성에서는 메시아가 안 왔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지요.
왜요? 아직 안 맞았으니, 안 온 것이지요.
그래서 누가 성경을 풀었다고 하면,
잘못된 자, 비원리의 사람, 이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해석으로 성경을 풀고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각과 다른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알 수가 없습니다.
<구약역사> 다음에 ‘신약역사’가 오듯이
<신약역사> 다음에 ‘성약역사’가 있습니다.
<성약역사>는
성경에서 “앞으로 1000년 동안 왕 노릇 하리라.” 한 역사입니다.
이 역사는 구약 때나, 신약 때 하는 역사가 아닙니다.
<구약 때>는 4000년 동안 구약역사를 하느라,
<신약 때>는 2000년 동안 신약역사를 하느라
시간을 꽉 채웠기 때문에 천 년 혼인 잔치 역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거쳐 마지막 성약역사의 때가 와야,
그때 ‘천 년 혼인 잔치 역사’를 합니다.
<성약역사>에 대해서는 ‘새로운 역사 시간, 1000년’이라고
신약성경에도 나와 있습니다. (계시록 20:4-6)
<1000년 혼인 잔치 역사>는 ‘지상 천국 역사’로서
이 기간에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휴거로 이룬다.
결혼해서 혼인 잔치 하듯, 이 혼인 잔치 역사를 1000년 동안 한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풀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보통으로 풀면 쉽게 풀리지만, ‘누가 100% 푸느냐’가 중합니다.
보통으로 풀면, “하나님이 하시니 1000년 동안 하시지.
1000년 동안 하늘나라에서 혼인 잔치 하지.” 합니다.
그리고 “혼인 잔치를 하는데, 예수님을 맞고 공중으로 올라가서
거기서 혼인 잔치를 한다.” 합니다.
공중으로 올라가서 하면 지상 혼인 잔치는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
그것도 지상에서 조금 하다가 공중에 올라간다고 하며
보통으로 풀고 말을 합니다.
<신약 말씀>으로는 이 말씀을 ‘땅띔’도 못합니다.
<천 년 혼인 잔치>는
기다리는 자들이 생각하는 그런 식의 혼인 잔치가 아닙니다.
<천 년 혼인 잔치>에 대해 이렇게 물어봐도, 저렇게 물어봐도
모순 없이 대답해야 그것이 ‘답’입니다.
하나님이 “확실히 맞다.” 할 정도까지 알아야 ‘답’입니다.
그 인봉은 오직 ‘메시아’만 뗍니다.
<성경의 모든 인봉>을 떼면, 그는 ‘메시아’입니다.
<천 년 혼인 잔치>란,
지상에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신랑, 사랑의 주체’로 맞고
자기는 ‘신부’가 되어서 삼위를 사랑하고 모시고 섬기며 사는 삶,
그 누구보다도, 세상 어떤 물질보다도 삼위를 사랑하고,
하나님 사랑에 흥분되어 사는 삶, 하나님의 진리대로 사는 삶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 년 혼인 잔치 기간>에는
- 세상에서 살 때 삼위를 모시고 섬기고 사랑하며 사는 삶을 살고,
- 그와 같이 메시아를 사랑하고 그가 전하는 말씀대로 살다가
때가 되어 그 영이 휴거되면,
천국 황금성에서 삼위와 영원히 사랑하며 삽니다.
이 같은 삶이 천 년 동안 진행됩니다.
고로 하나님은 이 역사를 위해 땅에 한 사람을 보내십니다.
모세 때는 모세를 보내셨고,
예수님 때는 예수님을 보내시어 그를 통해 역사의 복음을 전하셨듯이,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땅에 한 사람을 보내시고 그를 통해 복음의 역사를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성약역사에서
<하나님의 최고 창조 목적>을 ‘휴거’로 이룹니다.
이 목적을 하나님이 보낸 자가 난 지 70년 만에 다 이루고
성경에 아무도 모른다고 했던 그날,
성자는 <휴거된 영들>을 하늘나라의 최고 좋은 장소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곳은 ‘천국 최고의 장소, 하나님 보좌’ 바로 앞에 있습니다.
거기서 휴거된 자들은 삼위와 영원히 사랑하며 삽니다.
이곳은 ‘황금성 천국, 최고 첨단의 천국’입니다.
<구약>은 ‘구약 복음의 수준’대로 그 단계의 세계에 가서 살고,
<신약>은 ‘신약 복음의 수준’대로 그 단계의 세계에 가서 삽니다.
이것은 영원히 변함이 없습니다.
<구약의 율법의 복음>, <신약의 믿음의 복음>과
<성약의 사랑의 복음>은 완전히 다릅니다.
고로 <어느 시대 복음>인지 확실히 구분하고 알아야 됩니다.
<복음의 주인>은 알고 설명해 줍니다.
<잠시 쉬었다가>
◎ 계속해서 <천 년 혼인 잔치>에 대해 말씀해 주겠습니다.
<천 년 혼인 잔치>라고 하면, 세상에서 한 남자가 결혼해서
하루 동안 혼인 잔치하는 것과 같이 생각합니다.
고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1년 365일 혼인 잔치를 하지?
하루 저녁 잔치하면, 그다음부터는 생활을 해야 되는데...” 합니다.
하나님은 <이 복음이 끝날 때까지>를 ‘잔치 기간’으로 보십니다.
<구약 복음이 끝날 때까지>는 ‘종급 잔치 기간’
<신약 복음이 끝날 때까지>는 ‘자녀급, 자녀 사랑 잔치 기간’입니다.
그리고 <성약 복음이 끝날 때까지>는 ‘신부 사랑 잔치 기간’입니다.
이 기간을 ‘천 년 혼인 잔치 기간’이라고 합니다.
이때, 성약 복음을 듣고 삼위와 그 보낸 자를 사랑하며 삽니다.
천국에 가면, 잔치가 없는 날이 없습니다.
매일 잔치입니다. 고로 ‘매일 혼인 잔치’라고 합니다.
<매일 사랑의 잔치>입니다.
매일 잔치를 해도, 똑같이 잔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 잔치와 오늘 잔치는 또 다릅니다. 계속 색다르게 합니다.
손님이 바뀌듯이 계속 바뀌면서 그 잔치를 계속합니다.
그러면 아마 생각하기를, ‘거기서 심부름은 누가 하지?
고달프겠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의 잔치>는 고달프지 않습니다.
왜요? <생각 실상 세계, 말의 실상 세계>이기 때문에
<말>로 “음식아, 이리 와라!” 하면 와 있고,
“사라져라!” 하면 사라져 있습니다.
가령 <생각>에서 무엇을 하겠다고 하고 ‘말’로 선포해 버리면,
그것이 ‘실체’가 되어 나타납니다.
고로 누구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 영이 실체로 와 있습니다.
천 리 길이어도, 10광년이 떨어져 있어도
어떤 영을 만나고 싶다고 하면 실체로 와 있다는 것입니다.
<육의 세계>는 둔하니 계속 기도하고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중계 탑’을 통해 전파를 보내어,
그 전파가 그 사람의 머리를 때리고 혼을 때려서 감동시키고
그것을 육에게 전달시켜서 오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같은 장치를 다 해 놓으셨습니다.
고로 늘 “하나님께 고하여라. 말하여라.” 하지 않았습니까?
세상의 송신탑만 봐도 어마어마하게 큰데,
하나님의 것은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상상도 못 하게 큽니다.
고로 ‘하나님의 중계 탑’을 통해 전파를 보내면,
상대의 육도, 영도 온다는 것입니다.
◎ <천국 혼인 잔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생각 실상 세계, 말의 실상 세계>에 대해 잠시 설명해 줬습니다.
* 잠시 쉰다.
<천 년 혼인 잔치 역사>는
지상에서 성약 복음이 끝날 때까지 계속 진행됩니다.
이를 비유를 들어 말해 주겠습니다.
가령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식을 했다 합시다.
혼인 잔치는 ‘결혼하는 그 날 하루’ 잔치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둘이 같이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좋은 카페에 가서 차도 마시면서 계속해서 잔치가 연속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국>에서도 천 년 동안 혼인 잔치를 합니다.
이 기간은 ‘인간의 날’로 볼 때 ‘1000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날 1000년>을 ‘하루’로 잡고
시간을 돌리십니다.
<하늘나라 시계>와 <인간의 시계>는 완전히 다릅니다.
고로 <인간의 날 1000년>을 ‘하루’로 계산하면,
천국에서의 1000년의 기간은 어마어마한 시간입니다.
<영>은 영원히 나이를 먹어도 죽지 않으니,
삼위와 혼인 잔치 하며 사랑하는 삶을 영원히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사랑의 복음 역사>를 맨 마지막에 하십니다.
<하이라이트>는 ‘맨 마지막’에 하지, ‘처음’에 하지 않습니다.
성경 역사를 보면,
이 <하이라이트 역사>가 바로 ‘성약 천 년 기간’입니다.
그중에서도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가 살아 있는 기간’이
최고의 하이라이트입니다.
고로 이때 <따르는 자들>과
보다 이상적인 혼인 잔치 역사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는 잔치 음식도 많지요?
그래서 여러분들을 보면, 아마 지구상에서 제일 잘 먹는 것 같습니다.
돼지, 오리, 닭, 계란, 부침개, 과일 등 지금까지 베푼 것을 보면
수만 번은 될 것입니다.
배불러서 못 먹겠다고 하는 정도입니다.
하나님은 보낸 자를 통해 그같이 퍼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역시 <혼인 잔치>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곧 <말씀>입니다.
<말씀의 혼인 잔치>, <복음의 혼인 잔치>입니다.
<천 년 혼인 잔치 기간>은
<말씀과 사랑의 혼인 잔치>로 진행되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오늘 말씀 처음에 말씀하기를,
<어느 시대의 복음, 누구의 복음을 듣느냐>가 중하다고 했습니다.
<어느 시대, 누가 전하는 복음>을 듣느냐에 따라
<육계>도 좌우되고, <영계>도 좌우됩니다.
아마 불교의 설법을 듣는 자는 절에 가 있을 것이고,
구약 율법의 복음을 듣는 자는 율법 제사장들의 모임에 가 있을 것이고
신약의 복음을 듣는 자는 기성 교회에 가 있을 것입니다.
<어느 시대 복음을 듣느냐>, <누가 전하는 복음을 듣느냐>가
그렇게도 중합니다.
<이 시대 복음을 듣는 자>가
- <이 시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고,
- <하나님의 최고 뜻>을 이루고,
- <이 시대에 얻을 것>을 얻고 누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복음이라도,
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전해야 됩니다.
만약 선생이 21년 동안 산에서 깨닫고 배운 복음을 전하지 않았으면,
<복음의 사역>도, <구원의 역사>도 못 하고 혼자 있었을 것입니다.
<복음>을 가지고 ‘전함’으로 구원하는 것입니다.
선생이 이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최고 핵심지, 서울>에 가서 이 말씀을 전해라.
전쟁 때 원자폭탄을 쏘는데 시골에 쏘면 승산이 없지 않느냐.
핵심지에 떨어뜨려야 되듯이, 말씀도 최고 핵심지에 떨어뜨려야 된다.”
하셨습니다.
고로 서울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서울에 가서 처음에는 이리저리 다니면서 ‘지리’를 익혔습니다.
길을 잘못 들면 시간 소모가 많으니, 먼저는 지리를 익힌 것입니다.
그때는 1년에 10군데씩 다니면서 지리를 익혔습니다.
중곡동, 행당동, 동대문, 창신동, 독산동, 광명, 증산동, 남가좌동,
삼각산, 을지로, 창경궁 쪽 원남동, 용산구, 정릉동, 삼선교까지
계속 돌면서 지리를 익혔습니다.
그런데 지역을 정찰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1978년도 이전에도 했습니다.
1976년도에도 서울 지리를 정찰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전쟁을 하기 전에 먼저 지형 정찰을 해서 확실히 알면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습니다.
고로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돌아다니게 하시어 지리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복음을 전하는데, 그 대상은 젊은 자들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들도 아니고, ‘대학생들’을 중심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전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외부에서 말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따르는 자들>이 이 복음을 듣고 전해야 되니
먼저는 <성장하고 학문을 배운 자들>을 대상으로 전한 것입니다.
<멋있는 자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대상에 해당되는 조항들이 7가지 정도 됐습니다.
그 후에는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직강을 하듯, 당시에는 직접 강의를 했습니다.
그때 말씀을 듣고 영계를 겪고서
어마어마한 세계를 보고 왔다고 하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선생이 흰옷을 입고 자기를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한번 강의를 하면 15일씩 밤낮, 주야로 했습니다.
장소가 없으니, 직접 거리를 다니면서 전도하고
나무 그늘 밑에서도 말씀을 전했습니다.
실력이 있으니, 사람들이 말씀에 쭉 빨려 들어갔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나면, 어디 가시냐고 하며 쫓아왔습니다.
그렇게 한 명씩, 한 명씩 복음을 전해서
30명, 40명... 사람의 수가 점점 더해져 갔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믿지 않는 자들’이 알 수가 없습니다.
한 식구라도, 사랑하고 같이 사는 사람이라도 말을 안 하면 모르는데,
<복음>을 듣지도 않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듣지도 않았는데, 메시아를 어찌 믿으리요.”
- 이는 메시아 예수님을 두고 한 말입니다.
사도들은 이를 깨닫고,
“그는 일반 사람도 아니고, 제사장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다.
우리가 확실히 아니, 전하자. 전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 하며
목숨을 걸어 놓고 전하고, 글로 써서 성경으로 남겼습니다.
그때는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하는 때>로서,
<예수님이 영으로 나타나서 돌아다니시며 말씀하시던 때>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제대로 못 한 것이
한이 돼서, 그때부터 목숨을 걸어 놓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시대>를 볼 때, 그와 같은 기간이 ‘지금’입니다.
고로 이때, 하나님은 그 육신을 쓰고
각종으로 보여 주시며 역사하십니다.
말씀으로, 설교로, 지휘로, 노래로, 운동으로 각종 것을 다 보여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보낸 자를 통해 나타나십니다.
<주>는 말씀합니다.
“지금 이와 같이 많은 것을 보는데, 너희만 보기 아깝지 않느냐.
고로 전해라. 모여들게 해라.
왜 맨날 혼자 다니느냐? 데려와라.
정말로 이 복음을 전해야 된다.
전하지 않았으면, 여기에 한 사람도 안 왔을 것이다.
전해야 알고 올 수 있다. 이것이 그렇게도 크다!”
언제까지 꿈틀거리고, 자제하고, 절제하려고 합니까?
자제도 말고, 절제도 말고 해야 됩니다!
새로운 자들이 왔을 때 잔치가 볼 만하고, 더 이상적입니다.
오늘도 <많은 새로운 자들>이 있기 때문에
말씀도 더 힘차게, 기차게 나가고, 능력껏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말씀 마무리>
◎ 마지막으로 꼭 알아야 할 것을 전해 주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가치성>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은 ‘과거에 기다리던 자’를 직접 보고 살고 있습니다.
가치성을 알아야, ‘복음의 말씀’이 잘 들어갑니다.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이 귀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성경을 2000독씩 하고, 전쟁터에서 총을 가지고 다니면서도 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머릿속에 꽉 차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계시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말씀>을 그렇게도 귀하게 봤습니다.
이같이 말씀을 귀하게 보니,
하나님은 <시대 5만 잠언>을 각종으로 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말씀>을 들었으면, 좋아하고 귀하게 여겨야 됩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할 때>, 그렇게도 좋아해야 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으니
자기를 이곳에 데려온 자가 누군지 알아야 됩니다.
사람들을 보면 ‘자기를 전도하고 복음을 전해 준 자’를
그렇게도 귀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입니다.
삼위의 마음에도 들어야 되고, 예정도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주’가 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봐야지,
주인으로 보면 안 됩니다.
이것을 알고 이 복음의 역사에 동참하고
시대를 따라가는 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오늘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고 사랑하도록 사랑의 복음을 들었으니, 이 복음의
영영함을 주시고, 확실함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뜻, 창조의 목적을 이룬 위대한 이
복음, 지구촌의 종교 역사 6000년을 두고 볼 때 최고의 복음임을 우리는 알고
그동안 전해 왔습니다. 오늘 말씀 중에 더욱 깨닫도록 축복해 주시고 함께하심을
감사합니다.
이제는 사랑의 복음을 우리만 듣고 우리에게서 끝날 것이 아니라, “저들이 듣지
못하면 어떻게 알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는데 어떻게 들으리요!” 이 말이 핵심이
되어서 전하고, 가르치고, 인도해서 지혜롭게 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삼위의 큰 능력과 권능이 이들 위에 함께하기를 바라고, 이 말씀이 뇌 속에, 뼛속에
깊이깊이 저장되고 때마다 행하도록 축복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영광과 사랑을
영원하신 우리 하나님께 드리고, 복음을 듣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천 년 동안 가는
이 복음을 온 기성들이 기다렸고 종교인들이 기다렸는데, 우리가 주인이 되어서 하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 감사하며 간절히 간구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