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8.11.04 (일)
181104 주일말씀(하나님의 때를 지켜라)
- 선포일
- 2018.11.04 (일)
- 성경 본문
- 다니엘서 12장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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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04-주일말씀(하나님의_때를_지켜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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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4일 주일말씀>
하나님의 때를 지켜라
본 문 다니엘서 12장 7절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 오늘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의 때>를 지켜라.”입니다.
◎ <때>를 지켜야 됩니다.
<계절>을 봐도 그러합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이 왔는데
자기만 때를 거스르고 여름옷을 입고 다니면,
결국 건강에 문제가 생기니 자기에게 손해입니다.
<병>도 그러합니다.
<때>를 따라 치료하면, 죽을 사람이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를 지키지 못하면 살 사람이 죽기도 합니다.
◎ 전도서 3장 말씀에서도 보면,
<살리는 때>도 있고 <죽이는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때>를 놓치면, 영도 육도 ‘사망’으로 가게 됩니다.
<신앙을 하다 흔들리는 때, 좌절하는 때>가 있는데,
그때 제대로 잡지 못하면
그대로 사망으로 빠져 버리게 됩니다.
◎ <때>를 보면, ‘하나님이 쓰시는 때’가 있고 ‘찾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가 쓰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를 지키지 못하고 ‘자기 때’에 맞춰 행하면,
역시 ‘때를 놓치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때>가 ‘자기 때’이니,
이때 절대적으로 행해야 됩니다.
◎ 지금 섭리사는 ‘부활과 영광의 때’를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이 선포하신 ‘완벽한 부활의 때’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살아 있는 주를 통해
‘살아 있는 역사’로 끌어 주시는데
혼자 부활의 때를 살지 못하고 죽어 있는 삶을 산다면
이 역시 ‘때를 놓친 자’가 되어 사망에 묻힌 바가 됩니다.
곧, <부활과 영광의 때>에 참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 <때>가 참 무섭습니다.
<때>를 따라
- 우주도, 만물도, 지구도, 인생도 존재를 하고
- 하나님의 구원역사도, 휴거 역사도 진행되고
- 죽음도 삶도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 섭리인들은 <때> 하면, ‘한 때 두 때 반 때’가 생각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표준 시간>을 ‘한 때 두 때 반 때’에 두십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 하나님의 표준 시간을 풀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펼 수 없었습니다.
오직 <섭리역사>만이 ‘시대 주인’이 와서
<한 때 두 때 반 때>를 풀고 하나님이 뜻하신 시대 역사를 펴 나갑니다.
◎ 오늘 성경 본문 다니엘 12장 7절 말씀,
이 ‘때’를 풀고, 알고, ‘때에 맞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행복한 일인지 깨달아야 됩니다.
◎ <주>는 ‘때’를 지켰기 때문에 지금도 역사를 펴 나갑니다.
대둔산에서 수도 생활을 할 때도,
북풍한설이 몰아치고 배고픔과 굶주림에 처해 있었어도
<하나님의 때>를 따라 준비하고 조건을 세웠습니다.
그랬기에 정확하게 ‘때’를 맞춰 <시대 복음>을 전파하고,
<휴거 역사>를 이뤘습니다.
◎ 하나님은 반드시 ‘때’를 따라 행하시기 때문에
<시대 주인>도 반드시 ‘때’를 따라 오고 역사를 펴 나갑니다.
고로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는 ‘때’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메시아>는 ‘두 가지’를 가지고 행한다고 했습니다.
곧,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때’입니다.
이 <때>를 알아야 메시아를 온전하게 알아보고 시대를 알아보면서
<때>에 맞게 주와 함께 발맞춰 뛸 수 있습니다.
특히 지금은 ‘부활의 때’라는 것을 알고
절대적으로 주를 머리 삼고, 주와 함께 행하는 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 <때를 정확히 맞추는 자>가 있다면,
첫째는 ‘메시아’요, 둘째는 ‘그 첩경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입니다.
<때>에 맞춰 ‘시대’를 맞고 ‘메시아’를 맞게 되는데,
<신약역사>에서는 세례 요한이 이것에 실패했습니다.
<때>를 따라 ‘메시아’를 맞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 <하나님의 때>를 따라 주와 함께 행하며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심판을 면하고, 축복을 받게 됩니다.
◎ 선생은 제일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가 ‘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세계를 중심한 때>입니다.
고로 <주가 제일 좋아하는 자>는
- 때를 지켜 행하는 자,
- 살아나라고 하면 때를 따라 살아나는 자,
- 알아주라고 하면 때를 따라 알아주는 자입니다.
그런 자가 ‘주의 신부’이며 ‘주와 함께 뛰고 달리는 자’입니다.
◎ 오늘 주제를 한 가지 더 말한다면,
“<때를 지키는 자>가 ‘나의 가장 사랑하는 자’다.”입니다.
<말씀 시작>
◎ 앞의 말씀은 ‘전초’라기보다는
오늘 성경 본문을 쪼개서 해 준 말씀입니다.
1차로 말씀했고,
이제 2차로 앞에 한 말씀을 그대로 연결시켜서 해 주겠습니다.
<때>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법’입니다.
고로 <때>를 지키지 않든지 <때>를 모르면,
존재하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혹은 존재는 하되, 그 밑의 단계에 처해서 그냥 살아갑니다.
<기성>은 ‘때’를 모르니,
기성의 세계에 처해서 계속 살아갑니다.
거기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기성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때>를 볼 때, ‘가장 중요한 때’가 있습니다.
곧, <전환의 때>입니다.
<시대의 전환기>가 그리도 중요합니다.
<시대의 전환기>가 언제와 같은고 하니,
마치 차를 타고 가다가 다른 것으로 바꿔 타는 때와 같습니다.
<차에 타고 갈 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꿔 탈 때>가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보낸 자>는 하나님께서 ‘때’를 시작하실 때,
그때 동참해서 역사를 폅니다.
하나님께서 ‘때’를 맞춰 그가 태어나게 하시고,
때에 맞춰서 역사해 가십니다.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이나,
<증거자들>이나, <시대 보낸 자>를 봐도 ‘때’에 맞춰 합니다.
<세례 요한>은 ‘전자’로서
예수님보다 일찍 나서 그 첩경을 해야 하는 자였습니다.
항상 세례요한이 먼저 납니다.
첩경을 평탄케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났으면 세례 요한이지, 메시아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섭리사는 세례 요한들이 나보다 어립니다.
섭리사의 세례 요한들은 자체적 세례 요한입니다.
시대적인 근본의 세례 요한은 먼저 납니다.
<시대 증거자인 세례 요한들>은 시대 보낸 자가 먼저 나고
<그 시대 신부 주관권>에서 났습니다.
<시대 세례 요한들>은 ‘자체 주관권’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주체>도, <상대>도 서로 ‘때’를 맞춰야 됩니다.
<신랑>도, <신부>도 서로 ‘때’를 맞추면서 가야 됩니다.
하나님은 ‘신랑’이시고, 우리는 ‘신부’입니다.
그런데 항상 보면, 신부들은 늦고 신랑이신 하나님은 빠르십니다.
‘신부들의 때’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때’에 맞춰야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때>에 맞추지 않고
<자기 때>에 맞춰서 목숨을 내걸고 뜁니다.
지나고 보면, 그때는 이미 하나님은 지나가시고 난 후입니다.
<자기 때>는 ‘시계’를 보고 맞춥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때>는 그 시간보다 훨씬 빠르십니다.
성경에서도 말하기를, “너희들이 생각한 것보다 빨리 진행된다.”
했습니다.
조은 목사는 늘 선생에게 말하기를,
시간이 다 됐으니 빨리해야 된다고 합니다.
이는 어떤 약속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이 다 됐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배>의 경우를 보면, ‘예배 시작 시간’이 다 됐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전(前) 시간, 전(前) 때’가 있습니다.
그 ‘전(前) 시간, 전(前) 때’를 맞춰야 된다는 것입니다.
고로 <예배>도 시작 시간인 11시에 맞추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 ‘전(前) 때’인 ‘토요일’부터 맞춰야 됩니다.
<주일예배>를 위해 토요일부터 준비하고 예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열차가 시속 300km로 달리는데,
갑자기 멈춘다고 해서 즉시 멈춰지지 않습니다.
급정거를 하면, 다 날아갑니다.
적어도 500m 전, 1000m 전부터 서서히 멈춰야 됩니다.
이같이 미리 전부터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때>를 잘 맞춰서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때>를 안 맞추면 안 됩니다.
<유대인들>은 칼날같이 무섭게 신앙을 해서 ‘자기 때’는 맞췄는데,
<하나님의 때>를 못 맞췄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때’는 빨리 진행됐습니다.
성경에 이를 비유로 말하기를,
왕권을 받기 위해서 타국에 갔는데 백성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주인이 미리 와서 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항상 <하나님의 때>는 빨리 진행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라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을 맞추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예배를 위한 전(前) 시간’을 맞춰야 됩니다.
이 ‘때’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고로, 성령님은 조은 목사를 통해
예배를 시작하기 2~3시간 전에 입당하도록 바꿔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인색하게 드리지 않고
즐거움으로 드리게 해 놓으셨습니다.
삶 가운데 뜨거운 마음으로 매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준비하고 예비해야 됩니다.
예배 때 뛰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1~2분 때문에 뜁니다.
앞으로는 그렇게 안 하겠다고 하면서도 또 그럽니다.
성령님께서는 이런 모습들을 아주 날카롭게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전국과 온 세계는 예배를 위해서 준비하고 예비하고 때를 지켜라.
<예배 시간>도 지키지만, ‘그 전 시간’도 지켜라.
<그 전 시간>을 지켜야 ‘예배 준비’가 된다.”
<전 시간>을 지키려면 집에서 하는 일도
한 시간 전에는 손을 놓아야 됩니다.
계산을 잘해야 됩니다.
계산을 잘못하면, 다른 데 가 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자께서 늘 선생을 가르칠 때 “때를 지켜라.” 하는 말을
그렇게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이 ‘그 시간을 지키는 것’만 하면,
그것 가지고는 못 받습니다.
가령 물건을 던지는 시간이 11시인데
11시에 가면 물건을 못 받는다는 것입니다.
왜요? 먼저 <물건을 받는 연습>을 해 놔야
물건을 던지면 바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성자는 말씀하시길, “<초>를 지켜라.” 하셨습니다.
처음에 성자가 <초>를 지켜 행하라고 하셨을 때는 부담이 됐습니다.
선생이 부담스러워 하니, 하나님은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편지를 통해 깨닫게 하셨습니다.
<시대 십자가를 질 때>였습니다.
한번은 편지를 다 쓰고 “속이 시원하다.” 하고 허리를 젖히고서
이제 ‘편지를 내놓아야지.’ 하고 얼른 내놓았는데,
그곳에 있는 직원이 ‘선생이 내놓은 편지’를 안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선생이 “편지요.” 하니,
그 직원은 “편지 걷어 간 지가 언제입니까? 내일 내요.” 했습니다.
그 시간이 ‘딱 1초’밖에 안 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러니 <초>를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이같이 <초>가 필요한 때가 있다.” 하셨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1초>에 순간 피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한번은 선생에게 편지가 오기를,
자기가 길을 가다 한자리에 서 있었는데
순간 빨리 피하고 싶은 마음이 와서 그 자리를 피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다섯 걸음 떨어진 곳으로 피했는데,
그 순간 “아!” 하고 누가 쓰러지는 소리가 나더랍니다.
보니까 공사를 하던 곳에서 망치가 떨어져서
자기가 서 있던 그 위치에 있던 사람이 머리를 맞고 쓰러졌더랍니다.
이 일을 겪고 1초 빨리해서 살았다고 하며
선생에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이와 같이 ‘초를 다투는 일’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시간적으로 볼 때 ‘초의 때’가 있고, ‘분의 때’가 있고,
또 ‘시의 때’가 있습니다.
<초>를 지켜야 할 때가 있고, <분>을 지켜야 할 때가 있고,
<시간>을 지켜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의 때>가 있습니다.
어느 때는 하루, 어느 때는 이틀, 혹은 3일, 4일, 5일...
이렇게 <날짜의 때>가 있습니다.
<상대의 범위>를 보면서 ‘때’가 결정됩니다.
* 잠시 쉰다.
◎ <때>에 대해 깨닫도록 계속해서 가르쳐 주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때’가 이미 지나가서 어떻게 하느냐고 합니다.
그때는 “늦었으면 늦은 대로 해라.” 하고 한 번 기회를 줍니다.
늦은 대로 하면, 안 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가령 10시간 동안 해야 되는 일이 있는데,
9시간이 지나는 동안 몰랐다고 합시다.
그러면 남은 1시간 동안이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때>를 보면 ‘그 전 시간’부터 준비할 시간이 있습니다.
<차>를 타고 지나가려도 해도
먼저 그 전에 ‘길을 닦고 준비하는 시간’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설교를 할 때>도 ‘설교를 준비할 시간’이 있어야 됩니다.
이를 볼 때 ‘준비할 시간’이 항상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한 사람>은 압니다.
<주인>은 항상 미리 해 놓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아닌 자>는 늦게 합니다.
<가르쳐 주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오늘 말씀 계속 듣겠습니다.
<다니엘 12장>에 있는 ‘한 때 두 때 반 때에 대한 예언’은
이미 이루고 끝난 것이기 때문에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주인이 와서 풀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 성경 구절은 ‘메시아의 때’에 대한 성경 구절입니다.
다니엘이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해 놓은 것입니다.
다니엘은 대선지자 중의 하나인데도, 이 예언을 못 풀었습니다.
자신이 받은 말씀인데도 못 풀었습니다.
<대선지자>라도 ‘메시아의 것’은 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로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답’을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다.
다니엘서의 말씀은 사실상 ‘<민족의 해방>이 언제 되나?’
하는 것인데, 이것도 안 가르쳐 줬습니다.
거기에 <메시아의 것>이 끼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니엘 12장 10절을 보면 “<지혜 있는 자>만 깨닫는다.” 했는데,
깨달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지혜>는 일반 지혜가 아니라
<메시아의 지혜>를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반적으로는 풀어도 제대로 깨닫고 푼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 때 두 때 반 때 인봉 속에,
- <이스라엘 민족의 고통이 끝나는 때>가 들어 있었고
- 그리고 <메시아가 오는 때>가 들어 있었습니다.
선생은 <다니엘 12장에 있는 ‘때’에 대한 말씀>을
완전하게 풀어 놓았습니다.
이 <때에 대한 말씀> 하나만 배워도 “메시아가 왔다.” 하고 압니다.
왜요? <메시아>가 오면, ‘때’를 풀기 때문입니다.
<때>를 풀면, 하나님도 그 ‘때’에 따라 행하시니
<하나님의 때>도 그냥 풀려 버립니다.
선생이 대둔산에 기도하러 다닐 때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말씀하시기를 “<때>가 있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
“<메시아>만큼은 ‘때’를 지켜야 된다.
<머리>가 때를 지키면, ‘지체’는 머리를 따라온다.
고로 <머리>가 꼭 ‘때’를 지켜야 한다.
<시대 보낸 자>도 ‘때’에 맞게 낳았다.
고로 지구상의 모든 때가 그 때에 맞다.
<때>가 중하니, 너는 ‘때’를 지켜서 시대를 잡고 나가라.
<때>를 지키지 않으면, 시대를 못 다스린다.”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늘 ‘때’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 <한 때 두 때 반 때>에 대한 말씀은
이미 다 가르쳐 줬으니 알 것입니다.
오늘 <때에 대한 말씀>을 해 주니,
핵심적으로 한 번 더 말씀해 주겠습니다.
다니엘은 자기 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을 두고 기도하며,
언제까지 이 고통을 받아야 되느냐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21일 동안 기도했습니다.
다니엘 12장 7절에서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이르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하니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여기서 <한 때>는 1년, <두 때>는 2년, <반 때>는 6개월입니다.
<날짜>로 치면 1개월은 ‘30일’로 칩니다.
고로 <한 때 두 때 반 때>, 곧 ‘3년 6개월’을 날짜로 치면
<1260일>이 나옵니다.
그리고 <하루>를 ‘1년’으로 확대해서 계산하면,
<1260일>은 ‘1260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제사를 폐하고,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인 회교 전당을 세운 때는 ‘688년’입니다.
그때부터 한 때 두 때 반 때, 곧 1260년이 지나면
<1948년>이 나옵니다.
<한 때 두 때 반 때>가 지나면 모든 일이 끝나리라 한 때가
바로 <1948년>입니다.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 민족은 독립을 맞이하였습니다.
다음으로 다니엘 12장 11절을 보면,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고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1290일>을 지낸다고 했습니다.
하루를 ‘1년’으로 확대하여 <1290일>을 계산하면,
<1290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제사를 폐하고,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인 회교 전당을 세운 때인 688년에서
1290년을 더하면 ‘1978년’이 나옵니다.
이때는 ‘메시아가 역사를 펴려고 나오는 해’입니다.
<제2의 이스라엘 민족>이 ‘구시대’에서 해방되어
이때부터 ‘성약 복음의 역사’를 펴 나갑니다.
역시 <주인>만 압니다.
그와 연관된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인봉의 ‘일부(1부)’는 떼는데,
‘이부(2부)’는 못 뗍니다.
<자기 주관권>이 아니니, 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일’동안 무덤에 있었지요?
<한 때 두 때 반 때>를 축소시키면, ‘3일’입니다.
또, 3년 6개월이 되기도 합니다.
<엘리야>도 ‘3년 6개월’동안 고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기간은 ‘고통기간’이면서 ‘준비기간, 무덤기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때 두 때 반 때>를 ‘1년’으로 따지지 않고
<세계형>으로 크게 확대시켜서 보면, <구약 4000년>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4000년 동안 무덤기간’이었습니다.
거기서 작게 보면 ‘신약 2000년’입니다.
거기서 더 작게 보면 ‘성약 1000년’입니다.
이같이 <한 때 두 때 반 때>를 크게 확대해서도 보고,
작게 축소해서도 보고 알아야 됩니다.
모르면 안 됩니다.
<개인>을 봐도 ‘자기의 한 때 두 때 반 때’가 있습니다.
이 기간을 절대 지켜야 됩니다.
안 지키면, 안 됩니다.
선생도 ‘하나님의 때’를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 성공하고,
<하나님의 때>를 맞추는 데 성공하고 끝났습니다.
고로 “이제는 만족하다. 편히 쉰다.” 합니다.
마치 “월명동도 이만하면 만족하고 살겠다.” 하는 격입니다.
모두 ‘때’를 지켜 행하기 바랍니다.
<때>를 지키면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도 좋아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 두 번째 말씀으로 <때를 지키는 것>에 대해 말씀해 주겠습니다.
<때>를 왜 지켜야 되는고 하니,
<때를 지키는 자>가 얻기 때문입니다.
<때>를 지키면 무조건 얻고,
<때>를 안 지키면 무조건 잃습니다.
그래서 <때>를 지켜야 됩니다.
<섭리사>는 ‘때’를 지켰습니다.
고로 <시대 휴거>도 얻고, <새 역사>도 얻었습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역사>가 가는데,
이 안에서도 또 ‘때’를 지켜야 됩니다.
<노래>에서도 “휴거는 이뤘다. 그런데 사는 것이 문제다.” 했지요?
<휴거>를 이루고 살면서 ‘때’를 잊으면 안 됩니다.
지금은 ‘저마다 손댈 것을 손대는 기간’입니다.
마치 월명동에 나머지 손댈 것들을 손대듯이
개인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이 ‘때’를 지켜야 됩니다.
<때를 지키는 것>은
마치 월명동 정자가 내려앉았으면 다시 부수고 짓는 것이 필요하듯,
건물을 짓는 것이 필요하듯, 소나무를 심는 것이 필요하듯
꼭 필요한 것입니다.
저마다 <자기에게 오는 때>를 꼭 좇아야 됩니다.
<민족>도 ‘때’를 못 지키면 민족적으로 손해가 갑니다.
이와 같이 <개인>도 ‘때’를 못 지키면 손해가 갑니다.
꼭 ‘자기에게 오는 때’를 지켜야 됩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겪으면서도 ‘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때>를 안 지켜서 못 얻은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신앙의 세계>에서 ‘때’를 놓치면,
영원성을 얻지 못합니다.
곧, <영원히 가져야 될 것>을 못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물>도 ‘때’가 있어서 그때 못 하면 다 ‘헛일’입니다.
<나무>를 보면, 지금은 ‘물이 다 내려간 때’입니다.
그래서 지금, 부지런히 나무를 캐다 심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나무에 물이 계속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나무를 캐다 심으면, 3일이면 말라 죽습니다.
겨울이 되면, 찬바람에 뿌리가 얼어서 죽을 것입니다.
이같이 <만물>도 ‘때’가 있으니, 그때 안 하면 헛일이라는 것입니다.
<만물>도 ‘때’를 지키고,
<사람>도 ‘때’를 지켜야 됩니다.
이번 주는 ‘때’에 대한 말씀을 계속 해 줄 테니,
<때>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때를 지키는 부활>을 하기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얻을 것을 얻기 바랍니다.
<노래> 중에 “가자! 때가 됐다.” 하는 노래가 있지요?
<2절>은 “하자! 때가 됐다.” 로 바뀌었습니다.
“가자!” 하면, ‘목적지를 가는 기간’이 있다는 것이지만
“하자!” 하면, ‘목적지에 다 왔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다 왔다.
시간을 지키는 때가 됐다. 고로 하자! (알겠습니까?)
◎ 금주는 이 말씀을 인식하고 해 나가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해 주겠습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늘 말씀하시기를,
“과거에 이미 준비하고 예비해 놓은 것이 있다.” 하셨습니다.
지금 월명동에 사다 놓는 것은 요즘 준비하고 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10년 전에 하나님께서 예비하고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단상에 있는 <나무뿌리 공예 작품>도 하나님께서
선생이 <시대 십자가를 지러 가는 해>에 딱 준비해 놓으셨다가
이때 우리가 사 오게 하셨습니다.
<파는 사람>도 아무에게도 팔지 않고 영원히 소장하려고 했는데,
우리에게만 팔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갔을 때 처음으로 문을 열어 놓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천지를 돌아다녀도 이 같은 작품은 구할 수 없습니다.
이것 딱 하나입니다.
성령님께서 “강대상을 다시 꾸며야 된다.” 하시어 결심하고
더 좋은 것이 무엇일까 찾는데, 이것을 찾게 하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 10년 전부터 준비를 하신 것입니다.
<단상에 있는 하나님의 의자>도 15년 전에 사 온 것입니다.
어느 날 성자께서 “시장에 가서 나무가 있나 보자.” 하시어 갔는데,
이 의자가 눈에 띄어서 바로 사 왔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이 의자를 뺏기다시피 했습니다.
고로, 이 의자를 위해서 계속 기도하며,
하나님께 드리려고 산 것이니 뺏기지 않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왕의 의자>이니 다른 사람은 앉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안 뺏기고 가져오게 됐습니다!
이제 독수리 작품 16개까지 들어가서 ‘하나님 보좌’가 됐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것>은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지금 ‘때’가 와서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모두 이러한 뜻을 알고 깨닫고 좋아해야 됩니다.
그냥 흘끔흘끔 쳐다보고 지나가면, 한마디로 얄밉습니다.
보면서 가치 있게 생각하고, 귀하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말씀 마무리>
선생이 대둔산에서 고통을 겪으며 수도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때>를 지켜야 되기 때문에 할 수 없다.
<봄>이 돼서 하면 안 된다. <겨울>에도 해야 된다.” 하셨습니다.
고로 그 말씀대로 ‘그때, 만들고 연단하는 때’를 지켜 행했습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의 때>도 지키게 되었습니다.
<때>를 안 지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알아야 ‘하나님의 때’가 왔을 때 지킬 수 있습니다.
배워야 ‘하나님의 때’가 왔을 때 지킬 수 있습니다.
오늘 선생이 ‘때’에 대한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께 “또 <때>에 대한 말씀을 하시네요.” 했더니
하나님은 “아직도 근본을 모르고 안 지키니 또 한다.” 하셨습니다.
고로 <근본>을 알고 ‘때’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자기 시간>에 맞추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지키자.
<하나님의 때>는 빨리 진행된다.
<때>를 지켜야 얻는다.
이미 하나님이 예비해 두셨으니, 그것을 찾아와라.
다만 보관비를 줘야 된다.”
◎ <때에 대한 많은 것>은 성령님께서도 개인에게 감동을 주시어
깨닫게 하시고, 행하게 하실 것입니다.
금주 새벽 말씀을 통해서도 말씀하겠지만,
모두 ‘생활의 때’를 항상 지키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
<기도>
하나님, 하나님의 때를 지키라고 날카롭게 말씀하셨고, 그리고 “때를 지켜서 이 시대
를 이와 같이 맞았다. 너희 때가 됐다. 때는 메시아요, 또한 뜻은 메시아다. 때는 하
나님이요, 또한 뜻은 하나님이다. 이렇게 보면서 모두 대하고 행하도록 하라.” 했습니
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때를 지키지 않아서 새로운 시대를 맞지 못하는 기성 세계를 돌아
봤습니다. 우리는 때를 맞아서 가는데, 또 이 섭리 안에서 때를 지킬 것이 있습니다.
고로 “그것을 꼭 지켜야 된다. 안 지키면 기성들이 새로운 것을 얻지 못하고 가듯이
너희들도 섭리 안에서 새로운 것을 얻지 못하고 간다. 부활기를 통해서 금주에 살아
날 것이 있는데 때에 대해서 살아나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때를 지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 것을 감당케 해 주시옵소서.
우리가 이제는 정해진 그때, 11시 예배 시간의 때가 아니라 그 전의 정해진 때를 먼
저 지키면서 행하라고 했습니다. “그 때가 어느 때죠? 하나님.” 했더니, 세례 요한이
말하는 때라고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보다 먼저 뛰지 않았느냐? 그와 같이
그 때를 지키는 것이 그 전 시간의 때니라.” 했습니다. 이를 깨닫고 모두 외치는 자,
증거자의 말을 듣고 행함이 필요하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큰 능력
과 권능이 이들 위에 함께하고, 이것이 뇌 속 깊이, 뼛속 깊이 박혀서 때를 따라 살
게 해 주시옵소서. 이와 같이 하라고 이들을 축복합니다.
영육이 빨리해야 때를 지키겠으니 치타처럼 빠르고 독수리처럼 빨리해서 때를 지켜
행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때를 지키려면 지저분한 시간들, 그리고 어떠한 사적 시
간들 탁 잘라 버려라.” 했습니다. 이런 시간을 자르지 않고는 그 좋은 때를, 황금 시
간의 때를, 다시 말해서 그 최고로 생명을 좌우하는 시간, 골든타임의 때를 놓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때를 지켜 행할 수 있도록 이들을 축복하고, 우리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사 그렇게 되게 해 주시옵소서.
성부, 성자, 성신의 큰 능력과 권능이 이들 위에 함께하고, 영광과 존귀로 하나님이
함께하기를 간절히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