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8.11.28 (수)
181128 수요말씀(육과 혼과 영적 사랑)
- 선포일
- 2018.11.28 (수)
- 성경 본문
- 서 2장 9-11
첨부 파일
- PDF
181128-수요말씀(육과_혼과_영적_사랑).pdf
191.2 KB
<2018년 11월 28일 수요말씀>
육적, 혼적, 영적 사랑
본 문 요한1서 2장 9-11절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13장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 오늘은 월명동, 사랑의 관(3.16 휴거기념관 중강당)에서
수요예배를 드립니다.
한국을 중심해서 지구촌 각 나라가 한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리니,
전체를 보고 말씀하겠습니다.
금주에는 “<사랑>이 제일이다.”라는 주제로 말씀했습니다.
<말씀 시작>
구약부터 신약까지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은 항상 ‘사랑’을 중심해서 역사를 펴 오셨습니다.
고로 예수님도 사도 바울을 통해
“<사랑>이 제일이다.” 하는 묵시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왜 바울에게 이같이 사랑에 대한 깊은 것을 깨닫게 했을까요?
바울은 하나님을 믿었으나,
유대 종교의 교리를 접하고 살다 보니 새로운 시대의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을 배척했습니다.
고로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 예수님>이
직접 세상에 나타나서 역사를 펴는데도
예수님을 미워하고, 그 제자들을 미워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대한 사랑의 눈>이 멀었습니다.
예수님은 ‘한마디’로 그의 가슴에 말씀의 칼을 꽂아서
사망으로 던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에게 영으로 나타나시어 눈이 멀게 하시고,
바울이 아나니아에게 기도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때 바울은 멀었던 눈을 뜨게 되었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바울이 ‘극적인 자’이니
예수님은 이같이 행하심으로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하시고,
<사랑에 대한 깊은 묵시>를 쓰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극적으로 미워하고 핍박하는 바울을
사망으로 던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요? <사랑>에는 ‘무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말의 무기도 없고,
실제 유형의 무기도 없습니다.
예전에 선생이 청주에서 엄청난 돈을 사기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기를 친 사람이 청주의 한 여인숙에서 만나자고 하더니
선생에게 말하기를,
자기에게 돈 받을 생각은 하지도 말라면서
약속어음 써 준 것까지 다 태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대들면 죽이겠다고 하면서
쇠로 만든 재떨이로 선생을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선생은 군대에 있을 때 특수 부대 소속이었기 때문에
손 하나만 가지고도 무기로 써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은
“사랑에는 무기가 없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로 ‘내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인데...
내가 군대에서 총을 갖고도 안 썼는데, 여기서 무기를 쓸 수 없다.’
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사기를 친 그 사람은 선생을 완전히 쓰러뜨려 놓고,
다시금 만나지 말자고 하면서 떠나 버렸습니다.
그 사람이 떠나고, 선생은 너무 화가 나서
옆에 있던 시멘트 벽을 머리로 받아 버렸습니다.
그러니 여인숙 주인이 그 소리를 듣고 선생이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사람이 소리를 지르기에 누가 죽는 줄 알았는데
살았으니 다행이라고 하면서,
얼굴도 씻어 주고 피도 닦아 주었습니다.
<선생에게 사기를 친 사람>은
빌린 돈도 갚지 않고, 약속어음도 불태워 버리고,
사람을 두드려 패고, 아주 살인적인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선생은 “사랑에는 무기가 없다.”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예수님이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형제를 사랑하라.” 하는
말을 지켰듯 선생도 그 말을 지켰습니다.
<사명>을 갖고 말씀을 지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왜요? 사명이 큰 만큼 너무나 많은 일을 겪기 때문입니다.
한두 번 말씀을 지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져서 그 육신이 죽고 끝났지만,
<시대 주>는 육신이 살았으니 하나님 앞에 계속 십자가를 지면서
참고, 또 참고, 또 참아야 됩니다.
<참는 것>은 그냥은 안 됩니다.
<뇌 자체>를 깨끗이 하지 않으면, 참지 못합니다.
가령 그릇에 물이 있는데 그 밑에는 흙이 가라앉아 있다고 합시다.
흙이 바닥에 있으면, 조금만 움직여도 그 흙이 올라옵니다.
이같이 <뇌>도 그러합니다.
아예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혈기가 올라오고,
분노가 올라오고, 화가 올라옵니다.
그로 인해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죽인 자들을 보면,
그러지 않은 자보다 10% 혈기를 더 내서 사람을 죽입니다.
그래 놓고 “내 정신이 아니었다.” 하며 자기는 모른다고 합니다.
조금의 차이로 그같이 살인을 한 것입니다.
<뇌>가 아예 깨끗해야 됩니다.
<본질>이 아예 ‘하나님의 마음’으로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참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특히 전쟁 때는 <참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적>이 ‘자기’를 죽이러 온다고 합시다.
그때 <적>을 안 죽이면 ‘자기’가 죽고 ‘아군’이 죽게 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총을 안 쏠 수가 없습니다.
그랬는데도 선생은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적이 우리를 죽인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부모>를 생각하고,
<그들의 아내>를 생각하고, <그들의 아들, 딸>을 생각했습니다.
<좋은 것>만 생각하고, 그들을 살려 보내 주었습니다.
이같이 <성경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데 <참는 것>은
우리가 참는 것보다 ‘하나님이 참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신의 존재자’이기 때문에
육신 살덩이보다 감각이 수백 배, 수천 배 더 예리하십니다.
그러니 참기가 더 힘든 것입니다.
고로 선생은 늘 하나님께 참느라 얼마나 수고하셨느냐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 때문에 참는다. 너희가 없으면 참지도 않는다.
너희를 살리려고 참는다.” 하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알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부르시고
이들을 통해 사랑의 뜻을 펴시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사랑의 대상>을
하나님께 두지 않고 ‘사람’에게 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이 깨지고,
하나님이 미워한 바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 족속은 ‘사랑이 없는 세계’로 가게 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1600년 후에 ‘노아’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니,
하나님은 ‘노아’에게 다시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자기 좋은 대로 결혼하고,
자기 좋은 대로 사랑하며 살고 있다.
때가 되면 이들을 쓸어 버린다. 너는 방주를 만들어라.” 하시며
속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양심 심판, 홍수 심판’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방주를 만들게 해서
시대 사람들에게 사는 길을 주셨지만,
거기에 안 들어오니 심판을 받고 모두 사망권에 거하게 됐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펴 나갔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아들 ‘함’이
노아를 이해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 앞에 할 일을 다 하고
<성장된 사랑, 제재받지 않는 사랑>을 했는데, 이를 부끄러워했습니다.
<사탄>은 사랑만 하면 “부끄러운 짓이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할 일을 다 하고 성장된 상태에서 사랑하는데 무엇이 부끄럽냐.
내가 사랑의 축복을 줬으니, 떳떳하게 사랑하고 살아라.” 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할 일을 다 하고 사랑했으면
부끄러울 일이 없는 것입니다.
<함>은 홍수 심판 때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서 살려 줬으면 믿어 줬어야 했는데,
아버지의 일을 안 믿고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자손 중에 <사랑의 복직>을 해서
<떳떳한 사랑을 하는 자, 노아>를 찾아 그를 통해 역사를 하시려는데,
그것을 함이 몰랐던 것입니다.
<사탄>이 ‘함’을 쓰고 또 막은 것입니다.
<절대적인 믿음>을 가져야 ‘사랑’을 지키고, 문제가 안 생깁니다.
<시대 중심자>는 ‘머리’이고, <따르는 자들>은 ‘지체’입니다.
<머리의 생각>대로 안 하고 ‘자기 생각’대로 하면 큰일 납니다.
그런데 <함>은 ‘자기 생각’대로 판단한 것입니다.
<함>이 ‘믿음의 조건’을 세우지 못함으로 인해
하나님은 400년이 흐른 후에 다시 <아브라함>을 보내셔서
그를 통해 다시 역사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건’을 세우니,
하나님은 그로부터 ‘사랑이 형통하는 역사’를 펴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이후 2000년이 지나고서
절대적인 믿음의 터전 위에 메시아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믿음의 조건>을 100% 세워야 됩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믿습니다!” 하고 따른 사람들은
신약에서 ‘아들의 조건’을 세워서 생명권으로 갔고,
그러지 못한 자들은 ‘멸망’으로 갔습니다.
하나님께 “믿습니다!” 했을 때는,
변하지 말고 그대로 믿고 가야 됩니다.
땅에 예수님이 오신 후 다시 2000년이 지나고
하나님은 ‘재림 역사’를 하셨습니다.
정확하게 날짜와 시간과 초까지 맞춰서 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모두 <사랑>을 상실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깨졌습니다.
<사랑>을 상실함으로 인해
그 자손들도 계속 ‘사랑이 없는 세계’에서 살게 됐습니다.
<섭리사>는 ‘사랑’이 교리입니다.
늘 ‘사랑 이야기’를 합니다.
<휴거>도 ‘사랑’으로 됩니다.
성령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휴거의 비밀은 사랑이다.” 하셨습니다.
고로 <사랑>을 상실하지 않고 행함으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의 뜻을 ‘휴거’로 이뤘습니다!
<휴거>를 이뤘으니,
계속해서 <사랑>을 상실하지 말고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며
끝까지 행하는 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구약>은 ‘육적 사랑의 역사’입니다.
왜요?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신약>은 ‘혼적 사랑의 역사’입니다.
<자녀급 역사>로서 ‘부자지간의 사랑’에 해당되는 정도이기 때문에
겨우 ‘혼적 세계’에 해당됩니다.
<마지막 성약역사>는 ‘영적 사랑의 역사’입니다.
<영적 사랑> 외에 더 이상은 없습니다.
<마지막 역사>에서 하나님은 사랑의 뜻을 이루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사랑’을 중심해서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때부터 계시록까지 ‘사랑 이야기’를 계속하셨습니다.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기에
하나님이 그렇게도 사랑 이야기를 하시고,
이 <사랑>을 이루시고자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사랑 안에서 영원토록 살기 위해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함으로
육도, 영도 하나님을 마음껏 사랑하며 사는
<사랑의 세계>를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이 필요해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없으면, 사랑을 못 하기 때문입니다.
<천사>에게는 하나님이 그 사랑을 다 줄 수가 없습니다.
왜요? <천사>는 하나님 앞에 자녀와 같은 입장입니다.
고로 천사들에게는 ‘신부급 사랑, 이성 사랑’을 줄 수가 없습니다.
이는 마치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이성 사랑>을 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사랑을 줄 수 있는 상대적 존재로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성 사랑의 존재자’이십니다.
사람들은 <이성 사랑> 하면, ‘남녀 이성 관계 사랑’을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육체를 가진 자>가 곧 ‘이성’입니다.
<이 세상>이 곧 ‘이성의 세계’입니다.
고로 <하나님>은 ‘이성의 주체자’이시고,
<인간>이 ‘이성의 대상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를 가진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랑이 ‘하나님과의 이성 사랑’입니다.
본래 영으로 태어난 존재가 <영체>만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이성의 사랑’이 아닙니다.
<천사들>이 그러합니다.
하나님과 천사와의 사랑은
마치 ‘남자와 남자와의 사랑, 여자와 여자와의 사랑’과 같습니다.
이는 ‘이성’이 아니라, ‘동성’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를 가졌기 때문에 이 <육체>를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것이 ‘이성의 사랑’이 됩니다.
다시 한 번 말하면,
<천사>와 같이 하나님과 같은 동질 요소로 태어난 영이라면,
<하나님과의 이성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천사들과 달리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것이 ‘이성 사랑’입니다.
<남녀의 육체관계>를 ‘이성 사랑’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하나님과 ‘뇌 사랑, 정신 사랑’을 하면
그것이 ‘이성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육체’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육체>를 가졌기 때문에 ‘뇌, 정신’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것이 ‘이성의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이성의 사랑’을 하기 위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필요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곧, ‘사랑’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남을 위해서 종을 울린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부터도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고로 실상은 “자기를 위해서 종을 울린다.”는 말이 맞는 말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자신을 위해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둘째>는 인간을 위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창조의 법칙>을 이렇게 봐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자’이십니다.
그리고 인간은 ‘사랑의 대상’입니다.
고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됩니다.
만일 <사랑의 대상>이 없이 혼자 사랑한다면,
그것은 ‘곤고한 사랑’이요, ‘자체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의 대상>이 있어야
그 대상으로부터 자기에게 사랑의 기쁨이 옵니다.
<사랑할 대상>이 없으면,
자기가 자기를 흥분시키는 자위행위의 사랑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된 것>은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을 지금 우리에게 ‘말씀’으로 주십니다.
고로 하나님과 우리는 ‘사랑 관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실 때 “아멘!” 하는 것이
하나님과 사랑 관계를 하는 것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계속해서 ‘사랑’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다 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녀의 이성 사랑도 할 수 있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야 지구상에 인간이 번성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고로 하나님은 “내가 너희에게 축복을 주나니,
먼저는 성장하고 나서 번성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번성해야 되니 하나님은 ‘사랑’을 창조하셨습니다.
<유형의 세계>는 번성해야 ‘생명의 역사’가 연속되기 때문입니다.
고로 하나님은 지구상의 사람들에게
<남녀의 이성 사랑>도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 자기 마음대로 사랑하니,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깨지고 막막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랑하고,
하나님이 정해 주신 짝과 사랑하면 계속 사랑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 지금까지 하나님이 ‘사랑의 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을 말씀해 줬습니다.
정리하면,
하나님은 사랑 안에서 영원토록 살기 위해서
인간의 육도 영도 창조하시어,
마음껏 사랑하며 사는 사랑의 세계를 이루시고자 하셨다.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 이 필요해서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성의 주체자>이신 ‘하나님’은
<이성의 대상자, 곧 육신을 가진 인간>과 이성의 사랑을 하기 위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을 이루려면,
지구상에 사람들이 번성해야 되니 하나님은 ‘사랑’을 창조하셨다.
하고 말씀했습니다.
◎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실컷 주고 싶어서
사랑의 대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만큼’ 줍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랑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에게는 사랑을 실컷 줍니다.
사랑을 주고, 또 주고, 끝도 없이 줍니다.
고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랑을 실컷 주고 싶어서 이 사랑의 세계를 창조했노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없이 사랑을 주십니다.
만물로도, 태양으로도, 물로도 주시고
그 외에도 살아가면서 각종으로 계속해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을 실컷 줘야, ‘주는 자의 마음’이 그렇게도 기쁜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이 있어야 그렇게 해 주는 것이지,
<사랑의 대상>이 없으면 그렇게 해 주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각자 연구해서 깨닫고 알기 바랍니다.
◎ 며칠 전에 멋있는 그림 하나를 그려 놓았습니다.
잠깐 그 그림을 보여 주겠습니다.
<그림 설명>
◎ <머리>는 ‘과일’입니다.
<머리카락>은 ‘잎사귀’입니다.
아마 이런 자세의 나무를 그린 것은 지구가 생기고 처음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상>을 그대로 옮겨 놨습니다.
이 그림을 그릴 때, 여러 가지로 생각해 봤지만 다 아니었습니다.
이 나무는 ‘신부들’을 상징한 것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운동해서 튼튼한 몸을 가지라는 뜻도 됩니다.
<말씀 마무리>
앞서 말씀하기를,
“<구약>은 ‘육적 역사’다.
<신약>은 ‘혼적 역사’다.
<성약>은 ‘영적 사랑의 역사, 최고 사랑의 역사’다. 했지요?
<육과 혼과 영> 중에서 ‘영’이 최고입니다.
이 시대는 <영과 사랑 일체 되는 최고로 차원 높은 시대>이기 때문에
<영적>으로도 죄를 범하면 안 됩니다.
<구약 때>는 ‘육신’을 살인한 자만 살인했다고 하지,
<마음>으로 미워한 것은 살인으로 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육신’으로 간음한 것만 ‘간음죄’로 봤습니다.
<마음>으로 죄를 범한 것은 죄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신약 때>부터는 ‘마음’으로 간음했어도 간음죄로 보고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성약 때>부터는 ‘영과 사랑 일체 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영적>으로도 죄를 범하면 안 됩니다.
<영>을 다르게 보면, ‘사랑’입니다.
고로 <사랑>에 있어 죄를 범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을 보면,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사랑>이 ‘답’입니다.
물론 미워할 때도 있고, 책망할 때도 있지만,
그때도 역시 ‘사랑’으로 해야 됩니다.
주는 말씀합니다.
너희는 ‘휴거된 자’가 아니냐.
그러니 ‘사랑’을 크게 갖춰야 된다.
어느 때는 ‘책망’을 답으로 삼고,
어느 때는 ‘미움’을 답으로 삼고 했지만,
이제 휴거를 이뤘으니 ‘사랑’으로 해야 되지 않겠느냐.
<사람의 성격>은 고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자기 성격, 모순을 안 고치면
<하늘나라의 자기가 가는 곳>도 고쳐지지 않습니다.
하늘나라라고 해서 무조건 다 빛나는 세계가 아닙니다.
자기가 만드는 대로 가기 때문입니다.
마치 도시 가운데 초가집이 있듯 하지는 않지만,
컵과 컵받침을 예로 든다면,
자기를 제대로 못 만들고 가면 컵받침과 같은 세계에 가서
‘컵을 받쳐 주는 역할’을 하면서 삽니다.
컵의 받침부터 시작해서 컵의 위쪽으로 죽 올라가듯이
천국도 층계로 천층만층으로 존재합니다.
자기가 완벽하게 만들어야
<완전한 세계, 보다 이상적인 황금 세계>로 갑니다.
이것을 깨닫고 자기를 제대로 온전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무조건 해야 됩니다.
천국에 가면, ‘했느냐, 안 했느냐’만 봅니다.
몰라서 못 했다고 해도 안 통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안 했으면, 안 한 것으로 취급해 버리십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몰라서 죽였다고 해도,
그것을 봐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몰랐어도 죗값을 받고 다 사망권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알고도 못 한 자들>은 몰라서 못 한 자들보다 더하다.”
하셨습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했느냐, 안 했느냐.’입니다.
바닥에 흙이 있으면, 계속 흙물이 나옵니다.
아예 깨끗이 해야 흙물이 안 나옵니다.
이같이 자기 마음도 깨끗이 닦아 놔야 됩니다.
아예 만들어 놔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휴거돼서 천국에 갔어도
<변두리에 사는 영>이 됩니다.
고로 천국에 가서 ‘왜 그때 못 했지? 내가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주가 직접 말씀하시고, 어떤 큰 환난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왜 못 했을까?’ 하며 영원히 후회합니다.
그러니 <주>가 말씀을 선포했으면, 생명시해야 됩니다!
구시대 ‘자녀급 말씀’을 가지고서는 휴거가 안 됩니다.
<차>를 가지고서는 아무리 좋은 세단이라고 해도
공중을 날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비행기>는 날 수 있습니다.
이같이 <시대 말씀>을 들어야 날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 말씀 마쳤습니다.
<축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오늘 말씀을 듣고 뇌 속 깊이, 뼛속 깊이 저장해서 생활하도록
축복해 주시고, 하나님 위해서 사는 모든 자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다 죽고 사랑밖
에 모르고 사는 이들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늘 하나님은 만족한 사랑, 영원한 사랑, 끝이 없는 사랑을 위해서, 또 사랑하며 영원
히 살고 싶어서 사랑을 창조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육신들이 매일 살게 날마다
축복해 주시고, 사탄에 흑암에 꼬이지 않고 살게 늘 축복해 주시옵소서.
너희들을 사랑으로 축복하고 말씀을 이룰지니, 말씀을 듣고 깨닫고 영원한 사랑에 충
만하고 충만하기를 성부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사랑하며 축원하였사옵니
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