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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8.12.05 (수)

181205 수요예배(온전하게 행하라)

선포일
2018.12.05 (수)
성경 본문
시편 18: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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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05일 수요말씀> 온전하게 행하라. 본 문 시편 18:25-27, 잠언 20:7, 마태복음 5:48 『 (시 18:25-27)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니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잠 20:7) 의인은 진실하게 살고 그의 자손은 그로 인해 복을 받는다. (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말씀** 아 아아 들려요? (마이크) 요기 이거 하려면, 이걸 센치(cm)를 딱 재야 돼. 선생님 입하고. 정확하게 해야 된다고. 와서 조정하지 않게 하란 말이야. 조정해놓고 하라고. 이러면 쉽잖아. 지금부터 수요말씀을 또 하겠습니다. 월요일부터 새벽을 통해서 말씀했고, 주일말씀으로 선포하고, ‘완전하게 행하라’는 말씀을 계속 하고 있어요. 그동안 완전하게 하는데에 대해서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역사적으로 훑어보니까, 아담 후에 완전하게 행하는 사람이 1600년만에 하나 나타났어요. 그렇게 어려워요. 완전하게 행하기. 노아를 보고 하나님은 “완전하게 행했다.”고 “완전한자라.” 이렇게까지 말씀했는데, 1600년. 아담 후에 1600년 만에 하나님은 노아에게 “완전하다. 온전하다.” 말씀한 것을 볼 때, 그렇게도 온전하게 행하기가 어렵다는 거야. 그런데도 행하면 다 할 수 있어요. 안 해서 문제지. 그래서 노아로부터 시작해서 한 시대역사를 아담 때 못한 것을 해오셨는데, 또 가다가 노아 아들이 온전하게 또 못했어. 그래서 또 깨져서 아담 노아는 노아대로 역사를 해나갔지만, 한 가정이 온전치 못 하여서 결국 가정의 충만한 역사를 못 이뤘어. 가정단위. 노아 다음에 함은 이로 인해서 책망을 받고 그리고 뜻을 이행하지 못 하는 자로 남았습니다. 결국적으로서 한 가정에 하나님이 볼 때, 개인적인 온전함을 보고 가정단위, 가정전체(에) 하나님(이) 섭리해야 되니까 가정단위로 온전함을 봤어요. 그래서 결국 온전치 못한 자는 그 책망 받고, 죄함을 받고, 온전한 자들만 역사를 피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결국은 갈려나가고 그랬어요. 결국 지금도 시대도 한 가정단위로 하는 역사를 할 때는 가정이 다 하나님(을) 믿고, 온전하게 따르지 못 하고, 일부는 믿고, 일부는 못 믿으면 그것도 역시 온전치 못한 가정이에요. 개인이 온전하나, 가정단위로 볼 때 온전치 못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온전치 못한 자는 가인으로 취급하고, 아벨로는, 보다 믿고 따른 사람들(을) 아벨로 했어요. 그래서 한 가정에서도 아벨과 가인으로 갈리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러므로 가정이 하나님께 참 온전하기가 어려워요. 중심가정도 그러하고 시대마다 그리했어요. 그래서 안 따라온 자들은 그냥 뒤로 구시대에 있게 하고, 새 시대 역사는 보다 온전히 따른 자들만 행하게 했습니다. 함의 역사도 하나님 볼 때나, 우리가 볼 때, 성경 볼 때, 몰라서 그랬고. 개인적으로 모른 거예요. ‘모른 것은 누가 배워져줘야 되지 않겠냐?’하지만 그 정도는 알아야 된다. 신앙적으로 볼 때 그 정도는 개인의 삶의 하나의 알아야 할 상식적인 것이고, 신앙생활 제대로 했으면 그 정도는 알았을 것입니다. 온전치 못 했다는 거야. 노아의 아들 ‘함’이 그래서 신앙생활만 제대로 했으면, 함이 하나님이 노아로부터 행하시는 일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몰랐던 거야. 아버지(를) 통해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몰랐어요. 그리고 노아는 또 하나님께 1) 의례히 해야 할 합당한 일을 했는데도 모르는 함이 아버지를 제재하고, 그런 상태들이 이런 온전히 믿지 못 한 상태에서 발생한 일이다. 이렇게 성서를 해석하고 깨우쳐 알아야 되겠어요. 그 후 400년 후에, 또 온전한 사람(이) 나왔으니, 아브라함이었어요. 믿음이 온전해서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칭찬하고 역사했는데, 근데 원래 아브라함이 그 전부터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어요.) 아예 하나님 믿지도 않은 사람이에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게 됐던 일, 그때 당시 아브라함은 고향이 미신섬기고 그리고 우상섬기고 그리고 갈대아 사람들은 아주 극적으로 발달됐는데, 아브라함(이) 살던 곳이. 짐승 같은 거, 우상 같은 거, 이런 우상까지도 짐승까지도 우상화 하면서 살고 여러 가지 나무목상, 나무신상 혹은 (다른 우상들). 그 시대가 그로 최고로 발전되고 발달됐어요. 그런 세계에서 아브라함은 거기에 대한 상황을 알고, “이것은 절대자 신의 섬김이 아니다.” 그 중에서 삶 가운데 스스로 깨닫고, 깨달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부르신 거예요. 결국 2) 갈대아 우르에 최고의 그 시대 발달됐고, 아주 극적으로 발달된 지역이었습니다. 1) 전례에 의해서 2) 이곳은 B.C.2166년 경에 아브라함이 태어난 곳 (창세기 11장 31절)이다. 거기서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부르신 것은 그냥 어떤 예정해서 옛적부터 예정해서 불렀다는 결론도 내리지만, 그 시대 거기에 하나님 절대신을 사모하고, 이들은 절대신을 섬기지 못 하는 것을 아브라함은 알고, 다른 생각을 사상을 갖고 살았어요.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부르시고 택한 거예요. 우리 현실도 보면은 과거 섭리에 온 것을 보면, 안 믿는 상황 가운데에서도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고 사랑하고 사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하고 스스로 생각한 사람 많을 거예요. 그런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자기가 원해서 하게 된 사람 있어요. 이런 것을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그것이 택했다하고 하는데, 물론 하나님이 예정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을 그냥 예정한 것도 있지만, 뭘 보고 원하시고, 바라시나 그걸 보면은 그래도 하늘을 우러러보고, (하나님을) 찾는 자를 하나님은 찾으신다. 이런 상황을 아까 노아의 가정을 통해서 함을 통해 볼 때, 그것은 기본적인 것이 아니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 중심자를 통해서 행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기본으로 알아야 될 내용 아니냐? 그것을 함이 못 하듯이. 우리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안 믿는 사람 가운데도, 하나님을 우러러 생각하는 사람 많아요. 우리가 전도하던지 사람들이 훑어보면, 얘기를 해보면, 이들은 교회만 안 왔지. 하나님 믿고 사는 사람 많아요. 교회만 안 왔지.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기 쉽죠. 이제. 그래서 ‘예비된 자들’이라고 하고 그러죠. 전도해온 사람들이. 참으로 하나님을 어떤 성서를 배우고 설교를 들으며, 믿지는 않았지만. 생활 가운데 양심을 통해 하나님을 인정하고, 나름대로 하나님을 부르기도 하 고 이런 자들 있어요.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아브라함도 이런 입장에서 부름 받았다. 결국은 아브라함이 자리를 옮겨 가나안으로 옮겨왔죠. 거기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고, 거기서는 도대체 할 수 없는 환경을 벗어났어요. 뜻이 있는 곳에 여건을 옮기시고, 환경을 옮기시는데. 항상 보면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실 때는 옮기셨어요. 환경을 옮기시고, 구시대 자리를 뜨고 새로운 자리로 가게 되고,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모든 뜻이 있는 자들 모두 그랬어요. 때 마다. 그래서 아브라함 뿐 아니라, 야곱도 환경을 떠나서 멀리 발달한대로 장소를 옮기고, 요셉도 형제들 미워함을 통해든지 여건을 통해서 애굽으로 또 가게 되고 장소를 옮기게 됐어요. 옮긴 장소(에)서 성공들 했어요. 그리고 그 위에 많은 많은 역사의 인물들이 보면은 장소를 옮기면서 하나님 뜻을 좇고, 옛 장소에서는 많은 구시대의 행하는 행위 속에 같이 할 수 없으니, 하나님은 쪼개서 거기서 나오게 했어요.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나오게 만들고. 이런 역사로 볼 때, 우리 현실에 있는 우리들도 시대 사람들도 항상 거기서는 안되니까. 옛 구시대에서는 안 되니까, 새시대로 불러왔어요. 새시대(에서) 하나님이 마음껏 자기의 생각, 자기의 그런 평소 원했던 것을 충분히 할 수 있는 환경으로 옮겼습니다. 옮겨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여건들이 됐죠. 그 후에 아브라함도 하나님께 온전한 삶을 살게 되었고, 그 자녀권 속에도 보다 온전하다는 것은 크게 보면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고 그렇게 하나님 주관권 안에 사는 것은 보다 온전으로 볼 수 있고, 더 온전한 것을 따질 때는 거기에서 더 조건을 세우고, 하나님적 생각으로 사는 자들을 말할 수 있어요. 결국 야곱도, 이삭도, 요셉도 보다 온전한 사람의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늘 “야곱의 하나님이다. 요셉의 하나님이다. 이삭의 하나님이다.” 이렇게 하면서, 그들이 삶을 함께 했다는 것을 증거 했죠. 이런 가운데 그 후 아브라함 후로부터 주욱 내려오면서, 많은 인물들도 그동안 있었지만 성서의 입장에서는 그 후에 오랜 역사 지나간 후에 다윗이 나타나고, 또 솔로몬이 나타나고 이러면서 왕족 역사가 시작돼서 하나님이 그들을 보고 “합당하다”고 하고 그랬어요. 다윗께 “내가 마음이 든다. 합당하다.” 했고, 솔로몬에게 항상 함께하시고, 지혜주시고. 사울에게는 “자기중심 하니깐, 합당치 않다.” 하시고, 이런 역사로 펴가십니다. 근데 그 후에 역사(를) 보면, 오랜만에 또 중심자라고 하는데, 오랜만에 하나씩 하나님 뜻대로 하는 자들 일어나서, 그로 인해서 그 시대 역사를 뭉쳐서 그 말씀(을) 듣고 펴나갔어요. 우리가 볼 때, 온전한 말씀, 온전한 시대, 온전하게 살라고 말씀(을) 줬는데, 시대마다 ‘온전’이 달라요. 구약시대는 구약시대급의 말씀의 온전함을 가고, 신약시대는 신약시대 해당되는 말씀으로 온전함을 주겠고, 이 시대는 보다 온전하게 하는데, 사랑의 온전 그리고 그를 실천해야 만이 신부로 온전, 그를 신부로 실천해야 만이 휴거의 온전함으로 가게 되고 이런 역사로 하나님(께서) 해오셨어요. 그러면 크게 나눠보면 하나님 뜻 안에서 사는 것을 ‘온전’으로 표현할 수 있어요. 크게 나눠서. 구체적으로 애기하기 전에. 크게 나눠서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며 그 보낸 자와 일체되며 살 때, 그것이 온전한 자들의 삶이다. 하나님 뜻을 벗어난 자들의 삶은 그것을 온전하게 살았어도 자기 육적의 뜻을 이루는 온전한 삶이라, 하나님 주관권에 들어올 수 없는 온전함이에요. 이와 같이 역사를 우리가 볼 때, 시대까지 가서 주욱 오다가 예수님이 나타나셔서는 온전한 삶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고 하니 사랑도 온전한 삶으로 이루어지고, 말씀도 온전한 삶으로 이루어졌고 그리고 믿음도 자동적으로서 온전한 말씀의 믿게 되니까, 믿음도 온전한 믿음 이 되었고, 그리고 역사도 때를 맞춰서 온전하게 이루며 그때 맞춰 행해가셨고, 그리고 모든 죄도 구약의 제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의 제도로서 예수님이 직접 몸이 되셔서 제물이 되어 나가듯이, 온전한 시대를 쫓아 행했어요. 구약시대 때는 제물을 통해 예배드렸는데, 제사 드렸는데. 신약시대 때는 자기 몸이 (제물이 되고.) 하나님께 자녀권이기 때문에, 종권은 종권은 직접 나갈 수 없었어요. 오히려 만물이 낫다고 만물 통해 (하나님께) 오라했죠. 신약시대 때, 예수님 시대는 직접 자녀권의 그런 조건을 세우고, 그런 권세를 받아서 행함으로 하나님께 자녀권으로서 온전한 삶으로서 갔죠. 그래서 모든 것을 잊은 것을 복직하고 가는 역사였어. 신약역사부터. 신약역사 때는 이러므로 그런 말씀으로 메시아의 온전한 말씀으로 믿음이 이 루어졌고 그리고 또 하나는 온전한 사랑, 자녀권의 사랑이 이루어졌고, 온전한 삶이, 신약권 삶(을) 온전한 삶으로 이루셨어요.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회복시키는 많은 삶이 이루어지도록 말씀을 줬고, 역사를 폈어요. 그것이 2000년 동안 연속해왔어. 보다 하나님 보낸 메시아 안에 온전(한) 역사(가) 이루어 졌다 볼 수 있어요. 물론 그 안에 세밀히 나누면, “이는 온전한 자였다. 저 자는 아니었다.” 이런 사람(이) 있겠죠. 여기서 시간을 확대시킨 것이 역사인데 역사의 때를 그 때 그 때 맞추면서 해야 되는 것도 온전한 역사의 삶이며, 시간 못 지켜하는 것도 온전한 삶은 아니에요. 시간을 확대시켜보면 역사야. 역사. 역사를 제 때 지켜 가야돼요. 우리의 시대의 역사를 보면은 틀리지 않고,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역사 행하기가 우리는 모르니까, 한 때 두 때 반 때나 구약에서부터 맞춘 역사를 계속 맞춰왔습니다. 구약서부터 신약까지요. 그러다가 시대 맞춘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성서에 말씀한 역사를 그 때마다 펴나갔어요. 그 때마다 행하시고 우리 시대 역사도 시대역사를 맞춰서 나왔어요. 그래서 공생애 40년 하니까, 사생애에서부터 시작하니깐 낳고서 70년, 보낸 자 낳고서 70년 만에 휴거의 역사를 이루어서 성서에 말씀한 성구가 생각나도록. “70년 만에 예루살렘이 회복된다.” 그런 말씀같이 예수살렘은 시대 예루살렘 옛날 구시대를 상징해. 70년 역사 매듭지며 맺는 것도 성서를 알 수 있었어요. 우리는 몰랐으나, 하나님 행할 때는 그 역사를 알아요. 역사를 때를 맞춰온 것을 보니, 거진 다 때를 맞춰서 역사해왔어요. 다만, 때는 맞춰서 했지만은 따르다만 사람들 있어요. 따르다 못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지. 하나님의 역사는 지난 날에 보건데, 그때마다 맞춰서 따르는 자들로 해왔어요. 2000년 됐을 때에 새로운 역사하신다고, 한 말씀대로 새로운 역사를 했습니다. “동방의 독수리 보내서 나의 뜻을 이루겠다.” 이런 말은 다 일반사람(은) 성경으로 보지만, 그 독수리 사명자 주인만 알아요. 자기 것은 다 찾아먹죠. 자기 것을 하나님의 때를 알려줬으니까. 모르는 사람은 자기 것(을) 찾아먹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만이 그 번호를 가지고 있는데 그 번호에 해당된 것을 가져가라 했어요. 다른 사람 못 가져가요. 그와 똑같은 입장에요. 그로서 하나님께서는 지난날 40년 동안 또 선생님 태어나고, 70년 동안을 이렇게 훑어보면은 하나님은 역사를 따른 자들은 역사 그 때 그 때서 선포하시고, 그 때 그 때 맞춰왔어요. 그 역사는 초를 넘기지 않고 해오셨어요. 그래서 그 때마다 하나님 선포한대로 그대로 역사를 펴옵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는 역사를 못 맞춥니다. 자기가 정한 그러한 역사는 맞출지언정 하나님이 성서에 정한 그 역사를 맞춰야 돼요. 그래야 역사의 하나님 성서에 예언한, 말씀의 주인들이 되고, 하나님이 그와 더불어 먹고 마시며 역사를 폅니다. 그것은 선생님, 보낸 자로 볼 때, 정확하게 역사를 그 때마다 펴서 그 때를 우리가 풀어보고, 알아보면 감탄하고 정말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 항상 일어나게 해왔어요. 세상은 많은 어려움과 환란으로 일어났고, 파도가 쳤지만 하나님은 때마다 그 때가 되면 그대로 진행하게 했어요. 따르는 자들 놓고. 숫자가 적으나 많으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역사의 때를 맞춰왔어요. 그러므로 따르는 우리 안에서는 그 때를 못 맞춘 사람이 더러는 있지만, 거진 때를 맞춰서 역사를 펴왔어요. 자잘한 말씀을 한다면, 휴거를 하기 전에는 바로 성령의 역사를 하며. 2012년부터 그 때부터 약 3년 가까이 성령의 역사. 그리고 휴거의 준비역사 그리고 퍼붓는 하늘의 시대(에) 맞는 휴거에 맞는 말 씀 이러하면서 3년 동안 준비하고서 뭐 했는고 하니, 바로 2015년(의) 보낸 자 낳은 날을 하나님 도적같이 온다는 날로 정하고 역 사를 했습니다. 보면은 항상 낳은 날, 또 중심해서 언제까지 어떤 일을 한다. 성장기가 있으니까. 이런 일들은 때에 맞춰서 정확하게 하나님(이) 해오셨어요. 때를 맞춰서 하나님이 역사를 펴오셨고, 그 때는 성서에 이미 말씀해 놓았던 때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항상 때를 꼭 지켜야 되고, 때도 지키고. 때를 지키기 전에 시간을 지켜야 되요. 지금은 왜 그런고 하니 지금은 한 교회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고, 지구상 많은 지구촌 교회들은 한 번에 예배드리기 때문에 전체를 맞춰서 해야 됩니다. 칼날같이 그 시간에 맞춰서 예배드리고, 말씀을 들어야 되는 것이 아주 못 박아 놓은 때들이에요. 이를 지킴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정해진 때들은 소소한 작은 때를 지킴으로, 하나님의 역사의 큰 시대에 해당하는 때들을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음, 예수님 때, 예수님 믿고, 메시아 믿고 따른 자들은 나름대로 그 시대 온전히 살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 시대 주를 믿지 않은 자들은 온전치 못한 자들로 끝났다고 보는 거예요. 온전한 자들과 온전치 못한 자들과 구시대, 신시대로 갈려서 구약은 구약 나름, 신약은 신약 나름으로 갔죠. 만약 구약이 따라갔으면, (구약에) 하나 되서 갔죠. 그것이 하나씩 보면 사도바울이나 구시대 있었던 자들이 돌아온 역사. 그러면 구시대 역사 필요 없이 신시대 역사만 펴나가면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말씀 이후 모두 온전하게 살라고 환란 때나 비바람치고 눈보라 치고, 각종 핍박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굳세게 살아왔어요. 온전하게 살라고 그리해왔어요. 결국 2000년 지나가 하나님의 새시대 사랑의 조건을 세우고, 온전한 역사를 마지막 펴도록 창조목적을 진행했어요. 창조목적역사를 시작하고야 말으셨는데 온전한 자로 온전한 말씀을 주고 인간 창조한 목적을 받으셨고, 결국 듣고 말씀으로 행하여서 사랑의 목적을 휴거로 이루어 왔는데 역사를 보면은 어떻게 역사를 펴 왔는고 하니, 3년 동안은 십자가를 지고 세상을 위해서 조건을 내어 줬어요. 그리고 2009년부터 2009년, 2010년도, 2012년도까지 세상을 위해서 내줬 어요. 세상의 죄를 위해서 내주고 그런 일을 먼저 지불하고 줄 거 지불하고. 그리고 핵 적인 것을 다 지불해버렸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 뜻을 맞춰서 해야 되기 때문에 2012년도부터는 회개하고 깨끗게 하고 그리고 말씀을 퍼부어주고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부랴부랴 행하게 했죠. 조은목사 계속 보내서 합당한 이로 인해서 성령의 역사를 계속 불붙여 하고. 그러므로 그때에 모두 일어나 빛을 발해 최고 극적으로 해야 될 때였어요. 그 때 제대로 못 한 사람은 제대로 휴거가 안됐어요. 말씀도 줬고 성령이 역사했고 그때 최고 극적으로 말씀을 줬어요. 그 때 극적인 말씀이 무언고하니 순전히 휴거에 대한 말씀이고 사랑에 대한 말씀을 계속 퍼부어줬어요. 그래서 결국 그렇게 불을 때고 열을 내서 결국 끓고야 말았어요. 끓은 것은 먹고야 마는 입장이 됐어요. 끓지 않은 것을 먹을 수가 없었어요. 끓고 익은 것은 결국 하나님 취함을 받고 휴거 역사로 갔죠. 3년 동안 그리했고 2015년부터 그 후 3년 동안은 바로 부활기 역사를 준비하고 서서히 일어났죠. 준비했다가 그 다음에 가서는 2018년부터는 실제 말씀을 선포하며 “부활하라.”는 말씀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6개월 동안 부활의 역사를 하나님 실행하세요. 6개월 됐을 때 모두 부활되고 살아나는데 그때는 부활기였어요. 말씀을 들어도 힘들고 그러나 쉽게 마음으로는 기뻐 부활됐지만 행위로 실제 행동하면서 부활되는데 부활되려면 엄청난 힘이 필요했어요. 그래야 움직이니까. (부활해야) 죽은 시체 움직이니까. 우리 육신들이 새로운 영적인 부활 또한 새로운 부활을 하나님 (우리를 부활하게) 하(시)기 위해서 6개월 동안을 해서 결국 6개월부터 부활 하는 자들로 (부활이) 계속 시작됐죠. 선생님도 6개월 동안 걸리더라고. 부활하는 기간이. 그 전에는 살아나려고 하는 그런 꿈틀거리는 기간이었어요. 6개월이 넘으니까 완전히 살아나서 뛰고 달리기 시작하면서 운동하는 모습도 그때부터 비로소 옛날같이 “다시 죽기 전 상태 같이 또 뛴다.” 이런 말도 나왔죠. 그 후로 6개월 후로 부활역사가 본격적으로 일어난 역사 되서 “에스겔 골짜기 마른 뼈들 살아나라.” 할 때 살아났죠. 우리의 부활은 그와 같이 시대 급으로 부활이 됐어요. 신부로서 부활이 이제 됐어요. 신부들(도) 만민을 위해서 보낸 자와 같이 죽어줬습니다. 다시 또 그와 함께 또 살리심을 받아야 돼요. 다시 살아나서 역사를 펴는데 이제(까지는) 준비된 기간이고 이제는 우리가 살아나는 기간이다. 그래서 6개월 동안 사는 기간 그리고 그 후로 한 3-4개월 동안 이제 한 달, 두 달, 석 달, 넉 달, 다섯 달도 안 살아나서 뛴 거예요. 또 한 달 더 12월에 또 살아나면 6개월 동안 또 살아나서 뛴 기간으로 보는 거예요. 이것이 보다 세밀하게 구체적으로 작게 혹은 크게는 크게 이렇게 시대를 맞춰서 하나님이 역사해 와서 우리는 그 때를 쫓아왔어요. 선생님은 때를 알려주고 “이 때 기간 이 때다.” 하는 것을 정확하게 가르쳐 줍니다. 시간을 모르는데 시계 보는 것을 가르쳐주듯이 가르쳐줍니다. 밤중에 운전하고 왔는데 어딘지를 몰라. 근데 위치를 아는 내비게이션으로 위치를 가르쳐 주면 볼 수 있듯이 시대 말씀 통해 보여주는 거예요. 이와 같이 시대의 때를 지켜왔다. 이렇게 하나님 때를 지킨 성서에는 그런 것 안 나와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안 나와요. 왜냐면 신약시대 아니고 성약시대이기 때문에 신약복음에는 없는 거야. 흔히 사람들이 “너희는 없는 것을 말하냐.” 하는데 예수님 때도 새로운 시대니 새로운 말을 해야지 구역사만 말하면 구시대이게. 새로운 것을 말하고 그리고 자부심 있게 말하는 거예요. 새것과 헌것을 그냥 물건 헌 것, 새 것 비유를 하지만 실제는 새로운 역사 새로운 말씀 새로운 행위, 새로운 정신 새로운 생각들이에요. 이렇게 해서 지금은 우리 섭리사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는데 우리 섭리사가 지금은 어느 때인고 하니 살아나서 사는 기간이에요. 같이 하나님을 신랑으로 삼고, 성자도 주를 신랑으로 삼고 지금은 살아가는 기간. 아직도 부활되지 못한 자는 부활돼야겠죠. 신앙 자기 행위대로 부활되니까 지금은 부할 된 상태에서 어려움을 이기고 서로 성격도 맞추고. 일반 사람들(도) 결혼해서는 성격 맞추는 역사가 크다고 해요. 성격이 안 맞아서 이혼하고 떨어지지. 사랑을 안 해서 떨어지는 것 아니라고 해요. 그런 사람도 있겠죠, 사랑 안 해서 못 살겠다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랑해도 성격이 안 맞아서 다투고 그래요. 우리의 신앙의 세계는 무엇보다도 성격 같은 것도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맞추면서 가는데 뜻이 안 맞으면 못 살아. 주장하는 뜻이 같아야 돼. 내가 늘 주를 통해서 말씀하시는데 지금 말하는 이런 것들이 안 맞으면 같이 못산다는 거야. 흔히 나간 자들은 우리 주장이 옳지 않다는데 근데 그들의 주장이 맞냐, 그것은 백만분의 일도 하나님은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옳은 얘기한다 해도 “옳은 얘기 몇 마디 갖고 역사 피느냐.” 하고 잘라버려요 옳은 얘기를 백가지 다 실행 하려는 자들 중심해서 역사 펴는 거예요. (여기까지) 그러므로 시대의 우리들은 살 때에 어떻게 할 것이냐 궤적으로 말하면 세상 사람들은 서로 성격이 안 맞아서 못 산다고 하지만 섭리사에서는 말씀이 안 맞으면 못 살아요. 거기서부터 트러블이 일어나고 서로 너냐나냐 못살겠다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대게 남자는 나가서 세상 것을 주가 주장하고 흔히 가라지들이 말하는 그 말 을 주장하고 여자는 또 섭리에 살면서 섭리말씀을 주장하고 살아요. 여기 맞다 고 그러면서 성격 싸움 하는거야. 어떤 일반 사람들은 생각이 안 맞아서 부부 싸움을 해요. 그러나 우리섭리는 부부싸음이 어떻게 일어나는고 하니 하나님말씀 믿고 안믿고 하고 안하니까 성격이 안 맞다. 하나님 말씀대로 해야 살겠다. 그런 싸움이 일어나요. 그래서 늘 말씀을 전해줘서 깨닫게 하고 이해를 시키는거야. 하나하나 이러한 사실을 말하는거야. 지금 말한대로 때를 맞춰서 그때 그때 할 일을 하시면서 해 오신 것이 우리 들이 그것을 지켜왔어요. 우리들이 한 일이 생각나잖아요. 그 전에 한 일들. 이것을 정밀하게 보낸자라 주로서는 이것을 아니까 그것을 정밀하게 얘기 해 주는거야 때를. 6개월씩 정한대로 간 때가 있고 어떤 때는 20년씩 전반전 20년 후반전 20년 씩 정해서 가기도 하고 이것을 세밀하게 이야기 하죠. 역사인가 아닌가 역사를 펴보면 알아 일반 역사가 아닌 자들은 그냥 구시대 주관권에서 삶을 살죠. 어떤 구체적인 섭리의 역사같이 그렇게 하지를 못해요. 역사의 주인들은 구체적으로 역사를 펴 나가야 돼요. 언제서 어디까지는 무슨 역사를 지금 말한대로 척척 펴 나가고 있죠. 그런 역사를 펴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밤의 설교를 전체 맡겼는데 여기저기서 울면서 전화가 와요. 교역자가 어떻게 하냐고 어떻게 설교하냐고 왜 선생님이 해오던 주께서 해오던 설교가 있는데 거기다 우리가 들어가면 죽쓰면 어떡하냐고. 내가 너 대신 원고써서 보내줄게 걱정하지 마라 내가 책임지고 해 줄게 원고 써서 보내주마 했더니 그러다가 결국적으로 생각했어 모두 이와 같이 한 사람 교역자 같이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다 결국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명동교회 교역자가 슬피 울길래. 참 설교가지고 떨고 두려워하고 그 것은 설교를 잘하는 편에 속해 있어요. 검토 때 다 봐요. 근데 잘하는 편에 들 어있어요. 왜 그러냐니까 그동안 선생님 그 엄청난 말씀했는데 거기에 맞게 합당한 말씀 이 뭔지 알 수 없다는 거야. 뭘 해야 합당한지를 그걸 우리는 상상을 못한다. 자기도 계시 받고 하는데 그 단계를 주가 하는 그 단계를 거기에 합당한 말씀을 수요일에 할 수 있느냐 자 기는 눈물 난다고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내가 너 만큼은 보내주겠다 하다가 하나가 그러하면 교역자 전부다 그러하다 깨닫고 오늘 이런 말씀해 줄 수 있느냐 한명도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교역자 한 명도 할 수 없어. 오늘 저녁에 오직 주만 그 말씀을 맞 춰서 쭉 해주는 거야. 오늘 밤은 역사에 대한 이야기에요. 시간은 안 지키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자기로서 끝나고 자기 교회로서 끝나는 것이 아냐 지금은 핵심지가 시간을 안 지키면 전체가 망가져 버려요. 조은목사가 신경 쓰고 얼굴이 달이 됐다 별이 됐다 해가 됐다 하는 것은 시간 안 지키면 정말 안절부절 못한다고 모든 사람이. 그래서 새벽 시간을 초를 다 투고 지키고 그래요, 늘 거진 1초 늦으면 늦을까 그렇지 않으면 다 맞췄죠. 그때 맞추기가 어려워 왠고하니 여기서 말씀받고 58분에 갈 때 됬어요. 4시 58분 빨리 1분에 도착 해서 30초 준비해서 딱 마이크 끼고 그대로 진행해요. 이와 같이 풍부한 시간을 처음부터 행해야만 초를 다투는데 충분히 할 수 있 다. 하나님은 역사를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펴면서 오늘 밤은 역사에 대한 것을 말씀했어요. 너희들이 나와 같이 한 역사를 보라, 완전하신 하나님 완전히 역사를 선포하며 그때마다 우리를 완전한 역사에 이끌어 오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만 완전하라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완전한 역사를 때 맞춰서 탁탁 끊 어 왔는데 그 끊어온 것이 전체가 딱 맞아요 지금도 무슨 기간 인고하니 지금은 역시 하나님과 사는 기간이다. 사는 기간인데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과 성격이 안 맞아서 우리가 이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한 말씀을 지키지 아니함으로 그것이 안 맞으면서 안 지키면 안 지키는 주관에 있고 지키면 지키는 자 주관에 있어요. 여기서 이 혼이 좌우된다했어요. 시대말씀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 이혼 안하고 와요. 그러나 안 지킨 사람들은 다 이혼돼서 나갔어요. 나가서 결국 또 다른 사람을 택해서 다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들 개인에게는 재혼이 된거죠. 그대로 따라온 사람들은 재혼 없이 살아났고 그런 역사로 가고 있다는 것을 섬세히 생중계 해 주는 것입니다. 역사를 해온 것을 하나님 해 오신 일을 생중계해줘요. 하나님 시대를 말씀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지금은 가장 큰 것이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시대주 로 말씀한 것이 맞냐 안 맞냐 다 맞다하고 따라와야 이혼이 안돼요. 안 맞다 이것은 아니다 하는 것은 어디서 그런 주둥이를 놀리냐. 본인이 안해서 그런 주둥이를 놀리는 거야. 본인이 못 따라 다니니깐 주둥이 놀리고 행실치 않아서 주둥이를 놀려서 하나 님이 너 같이 못살아 하고 그 삶이 그래도 금주 말씀대로 온전한 것을 보이면 서 가게하고 온전한 자의 길이 다르고 온전치 못한 자의 길이 또 다른 길로 갑니다. 길이 갈려 나가면서 이혼이 되는거야. 하나님의 이 세계 에서는 이혼한다는 가서 이혼 증서도 없어요. 그대로 이혼 증서가 생활로 결정돼버려요. 지금은 그런 시대니 말씀이 맞다고 하는 자는 맞고 좋아 기뻐하는 자는 하나 돼서 가고 만약시 가롯 유다같이 떡에 손을 대는 자 말씀에 손을 대는 자는 본인이 사상이 잘못돼서 다르게 생각하는 거에요. 이와같이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게 가고 있어요. 모든 시대 말씀 선포한 것을 잘 들어야 돼요. 말씀을 어떻게 선포하셨나 그걸 보고서 역사를 펴 나가는 거야. 말씀선포 하고 가는 것을 순종해야 되요. 답안지를 다 안줘요. 성령께서도 이것은 너희가 깨달아야 할지니 너희 믿음에 차원대로 그러고 가는 것도 있어요. 그것은 본인들이 아주 믿음과 기도를 충만하게 해서 깨닫고 가야 돼요. 다 주로인해서 얘기를 다 답안지를 주는 것은 아니에요. 이것은 네 믿음대로 하라 이것은 네가 원하냐 그러면 그대로 되라 원치 않느냐 그러면 그대로 되라. 이런 것들이 있어요. 시험문제 중에서는 아주 나는 것이 있죠. 그것은 개인에게 맞기는 시험문제 있 어요. 본인들이 아는 대로 배운대로 쓰십죠하죠. 그런 것은 본인이 책임지고 써야돼요. 그러나 둘 더하기 둘은 넷이다 이것은 공식의 답을 줘야하고 본인들이 아는 대로 이 사건을 사실을 쓰시오 하면 그것이 제대로 썼으면 맞 고 제대로 안 썼으면 틀리고 그런 문제들도 잇있어요. 오늘 말씀이 이런 말씀을 듣고 보니까 시간을 지켜야 되겠어요. 하나님이 시간 을 정확하게 지키면서 끌고 왔는데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시간을 우리로서는 역사에 시간들이에요. 시간을 정확히 지켜 나가도록 해요. 그래서 오늘도 시계를 몇 개 걸었나. 오늘 아침 또 내가 시계를 그렸어요. 요런 시게를 만들어다 걸을 거라고 이 시계가 저렇게 만든 것 저걸 보고서 오늘 또 시계를 특별히 주문했어. 그래서 시계들 여기 저기 걸어놨는데 시간을 안 지키면 여러분 시계 다 있죠? 시계는 원래 사치라고만 볼 수 없어요. 절대 시간을 지켜요. 시간을 지킴으로 어마어마한 유익이 가고 엄청난 것을 얻는 것이 있어요. 시간 못 지킨 사람은 못 얻었어요. 사업하는 사람 모든 시간을 엄청난 황금 덩어리로 압니다. 시간이 돈이다. 또 골든 시간이다. 생명이 뺏기지 않게 하는 골든시간 지켜야 한다. 병원에서 도 많이 쓰죠. 운동할 때도 순간의 골든타임 시간하는데 이 시간이 정말로 순 간이에요. 축구 할 때도 보면은 볼 달고 나갔을 때 그 순간 0.1 초 0,2초 그 때 못 잡으면 안 들어가요. 그 골든타임 지켜야 성공한다는 거야. 우리 삶 가운데 그런 것들이 있는데 골든 타임을 못 맞혀. 그러면 골을 넣지 못하는 자와 같이 아깝게 경기를 패하고 끝나고 그래요. 골든시간이 우리에게 정말 많이 있어요. 골든타임을 맞춰 버려야 돼요. 설교를 원고를 오기 전까지 써서 왔는데 아침에 써놓은 설교를 밤에 한다고 했는데 그거 안 나오고 있어요. 하나님 말씀이 싹 돌아가 버렸어요. 써 놓은 것도 기반으로 하고 말씀이 돌아갔어요. 초곤 초곤해야 하나님 말씀을 중계를 제대로 하겠어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것 그 시간을 지키고 안 지키면서 어떤 산이 무너질 때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떠한 문제가 닥쳤을 때 빨리 순간 처리해야 사건 들이 처리 되는 것이 있어요. 그때마다 진짜 필요한 시간을 그때 죽음과 내바 꾸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시간을 빨리 지킴으로 인해서 죽음에서 면하고 사는 사람도 많이 있었어요, 시 간을 꼭 지키도록 시계를 차고 다니니 시간을 그냥 그냥 보통해요. 시계 하루 종일 시계 차고 다니는데 몇 번 안 봐요. ‘시계가 내게 필요한가.’ 그 정도 느끼는 사람 많이 있는데 시간에 대해서 아주 긴밀하게 보는 사람들 시계를 자주 봐요. 항상 혼자 있을 때도 시간을 보면서 초를 다투는 것을 깨닫고 알게 됐어요. ‘시간을 쫓아야 됩니다.’했어요 ‘시간에 쫓겨서는 늘 피곤하고 고달프다’고 했어요. 이래서 하나님이 오늘 말씀 가운데에 결국 이 같은 일을 하셨는데, 창조하신 목적도 시대 역사도 때에 맞춰서 다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를 맞춰 해오셨고 지금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부활돼서 사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 우리가 멀어질 거리가 있는데 그것이 ‘말씀을 지키냐, 안 지키냐.’ 또 멀어질 사건과 서로 끊어질 사건은 말씀이 자기에게 행실로 시인하고 행실로 살아야 돼요. 말씀을 ‘아멘’하고 ‘믿습니다.’하고, 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세 계는 받아들이는데 행실로 못사니 행실에 죽어요. 정신세계에는 사랑 있는데 지켜야 그 말씀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인지키면 안돼요. 휴거된 자들이니 삼위를 알고 깨닫고 일체되고, 부부일체 돼서 살아가듯이 온전하게 사는 삶이 우리에게 모두 지켜져야 되고, 그러한 세계에 온전하게 하는 삶이 항상 해 와야 돼요. 온전하게 하는 데에 대해서 온전히 하려면 선생님 겪은 걸로 볼 때는 꼼짝도 못하게 행했을 때는 온전하게 해지더라고요. 오두방정 못하게 가둬놓고 할 때는 해지더라고 그 때는 온전한 삶을 나름대로 하는데, 절대적으로 해나갔어요. 지금은 너무 범위가 커지고 생활 속에도 들어가니까 이런 것들 하려면 그만큼 힘들어요. 하는 것이 크고 크니까. 군대에서는 이 전쟁터에서 보면은 한번 실수하면 죽어요. 온전을 벗어나면 그냥. 그래서 항상 매질을 하죠 군인들. 말로 책망의 매질을 해요. 실수하면 죽는다고 총 갖고 놀기 때문에 그리고 위험한 적속에서 싸울 때는 한번만 실수해도 죽어요. 왜? 숲속에서 적을 보는데 적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면 그건 여지없이 당하 고 죽고야 말아요. 우리는 이와 같이 지금 전쟁 안하니까 생활전쟁 하고 있어요. 늘 영적전쟁, 생활전쟁, 사탄과 싸움의 전쟁이다. 악과선의 싸움의 전쟁이다. 하나님 말씀 순종하며 사느냐 하느냐못하느냐 전쟁이다 이런 전쟁 속에서 매일 살고 있어요. 우리는 지금은 확실하게 못 하면 안 돼. 하나님이 나름대로 자기 삶에 이것저것 있지만 그것만 핑계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이성의 생각과 저성의 생각이 다르듯이 자기 생각과 하나님 생각 다르고, 자기 생각과 주의 생각 다르면 큰일 나요. 다르면 흑암세계 매어있는 것입니다. 생각 같아야 되고, 하나님 생각과 같아야 되고. 같은 상태에서 생활해야 온전한 생활 했다고 하지, 같지 않은 상태에서 온전하게 했다고 해서 영원한 삶이 구원과 영육의 구원을 이루며 살 수는 없는 거예요. 이제는 신부들이 온전한 삶이다. 지도자들의 온전한 삶이다. 따르는 자들의 역시 이제 왔으나, 지난날 왔으나 온전한 삶이다. 행하는 대로 자기가 형성돼요. 자기영이 형성되고, 육신이 행하는 대로 육신도 형성되고 있어요. 어떤 모양도 그러하지만 그런 의의 형성이 된다. 삶이 형성이 된다. 생활형성이 된다. 행하는 대로 형성돼요. 그대로 먹는 대로 자기 몸이 형성되고 주관 합니다. 자기 몸도 먹는 대로에요. 영양가를 먹으면 영양가 있게 형성되고, 적으면 적은대로 형성되고 먹는 대로 좌우 됩니다. 그래서 이런 삶은 천하에 모든 사건이 다 동일한 이치고 말씀이 온전하다. 그 러하다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하는 대로 영이 형성되고 있다. 생소한 사람들이 얘기를 하지만, 그것은 늘 우리의 육신이 생활 하는 대로 이 루어지듯이 영도 똑같습니다. 행동이 그렇게 커요. 완전한 영. 완전한 영은 사탄에게 안 당해요. 완전치 못한 영이 당하고 육신도 사탄에게 당하지 늘고 속고 그러죠. 특히 우리 생활 가운데, 꼭 필요한 것은 우리 육신으로서 완전하게 행하고 그 리고 완전하게 행하려면 학인해야 되고. 완전히 행하려면 거듭 자꾸 해야 돼요. 한 번에 안돼요. 완성을 짓는 데에 있어서는 수백, 수천번 반복되는 것이 많아요. 조각가들이 완성하기까지는 수백수천 수만 번 계속 정으로 두드리고 깨고 해서 완성해 주 는데 이와 같이 완전하게 되기까지는 오랫동안 반복하면서 할 것이 많으니 자꾸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시간 지키는 것도 반복해서 다음에 지키고 계속하라. 그러면 결국 초까지 다스림을 지킬 수 있다. 이런 것이 우리들이 해야 되게 가르쳐 주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달인 되려면 시간의 달인이 되려면 시간을 불같이 지키고 행해야 돼요. 그런데 그것이 쉽지는 않아. 그러니까 아담도 못 지켰지만 아담도 온전하게 못했죠. 1600년만에야 온전하게 행하는 노아가 나타난 것은 쇼크적인 일이에요. “이야, 온전하게 살기 어렵구나.” “어렵죠.” 계획적으로 보면 돼요. 예배드리는 것도 미리 와서 하고 그때 초를 다투고 겨우 들어 닥치지 말고 적어도 30분전에(오고) 혹은 주가 와서 외치는 시대이니, 1시간 전에 직장인들도 모두(오고) 직장이 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힘든 사람도 있겠지만 최대한 시간 지켜서 여유있게 해야돼요. 그냥 맞불나게 뛰어서는 초지키가 어려워요. 40분전 1시간 전에 오면 초지키는 것 간단하잖아요. 미리 오는데 초가 안 지켜져요? 초가 아니라 100분의 1까지 다지키잖아. 미리 하는 것이 그렇게 커요. 하나님은 역사를 행하시는 것을 보면 항상 미리하셔 그래서 초를 넘지기 않고 행하셨다는 말씀하는데 “어떻게 신이지만 그렇게 할 수 있나.” 했더니 “너도 할 수 있다.” 미리 해버리는 거야. 미리하면 초가 아니라 초의 백만분의 일까지도 다 지킬 수 있어. 미리하는 것 외에는 못하는 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 미리 보면 20년 전부터 미리 했어요. 우리가 보면 2000년대 역사가 시작한다는데, 직접 온자로 주로부터 한 것을 보면 20년 전에 시작했어. 벌써. 그러니까 뭐 20년부터 지켜나가 그 시대를 맞추니깐 정확히 맞추는 거야. 왜 20년 전에 하느냐. 그날이 되면 구름타고 나타나신다는데 구림이 있어야 타지. 그 때 오면 그날 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서 이미 20년 전부터 구름을 만들어야 돼요. “인구름, 시대의 주를 믿고 말씀을 깨닫고 절대시 하는 자들이 모였을 때는 그때는 이제 구름 타고 오는 역사 너희가 눈으로 보리라.”하나님께(서) 보리 라했죠. “눈으로 보리라.” 예수님도 역시 인구름타고 그때 당시 행했다. 너희가 보지 않았냐. 따르는 제자 보지 않았냐. “그것이 맞아요?” 하나님께 할 거야. (하나님)대답도 안 하세요. 이와 같이 오늘도 이런 말씀을 보면서 온전한 자라만이 온전한 것을 할 수 있지. 온전치 못 한자는 온전한 것을 못해 요. 하나님 말씀 줄 때 온전한 자는 온전한 사건이 와요. 온전치 못 한자는 온전치 못한 사건이 계속 오고 그러므로 자기를 자꾸 알아라. 여건이 계속 옵니다. 온전해야 지체 장애자가 안 나요 온전치 못 하면 지체장애자를 낳습니다. 생명의 온전하게 못하면 생명 신앙이 와서도 온전하게 못 하면 그 면에 불구 자로 봐요. 부활도 보면 여러 가지가 있어요. 어떤 것은 부활됐고, 안 됐고 말씀 듣는 데는 부활됐고, 그리고 또 행하는 데는 부활 못 되기도 하고. 또 운동은 부활됐는데 신앙이 부활 안됐고, 신앙이 부활 됐는데 운동부활 안 된 사람 있고. 전도의 부활 못 해서 아직도 허공 헤매는 사람들 있고 부활된 자는 반드시 생명을 데리고 옵니다. 산자는 산자를 데려온다 했어요. ‘온전하게 못 하면 그 면의 불구자, 장애인이다.’ 이같이 제대로 못하면 그면의 불구자다 장애인이요. 장애인 신앙이다. 주 앞에 온전하게 행하라. 매일 거듭 행해야 그것이 온전하게 할 수 있다. 온전한 데 온전한 마음 온전한 생각 절대시하면 온전으로 행해진다. 행하는 것 이 그렇게 차이가 많은 것 아니다. 조금 더하면 온전해지고 조금 더 손질하면 온전해진다. 온전히 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도 안 한다. 왜안하냐 뇌가 거기까지 시동이 걸린다. 해버리려면 시동이 다시 걸려서 행해진다. 생각이 항상 신이 돼야 한다. 왜 생각이 죽으면 생각 잊으면 할 수 없어. 오늘새벽에 하다가 말은 것 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세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설교 끝났어요. 저마다 자기 원하는 목적을 행하여 만들 듯이 목적을 만들어서 해야지 안 만 든 것은 되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러듯이 ‘자기를 완전케 만들어라.’ 했어요. 만들지 않으면 포 안전하게 행해질 수 없다. 완전하게 만들어라. 습관 드리면 자동으로 되어져요 이 모든 근본은 자기 생각으로 뇌를 만들고 행하도록 만든 것이다. 자기가 자기 책임에서 만드는 것이 뇌를 만들어라. 만들면 만들어지지 안 만들어 지겠냐. 물건을 만들기는 쉬운데 물건 만들기는 쉬워요. 이런 것 만들기 쉬워.(컵) 그러나 사람을 완전하게 만들기는 참 그것은 자신을 못해요. 이 마이크도 만듭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자기가 만드는건 만들어요. 그런데 자기를 만드는 것은 그것은 자신을 못 합니다. 근데 충분히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이거 못 한면 죽는다.’하고 하면돼요. 이거 완전하게 못 하면 죽는다. 차타고 올 때도 완전하게 와서 살은거야. 완전하게 못 했으면 죽었죠. 그만큼 완전한 것이 생활가운데 덕을 주고, 생명역할을 을 하고 있는 거야. 갈 때도 완전하게 가야돼요. 완전하게 못하면 이 세상 떠나야 돼요. 오늘 저녁에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온 지구상에 보세요. 술 먹고 가다 죽고, 딴생각하다가 둥글러죽고 지구촌에 얼마나 사고가 많이 나는 줄 알아요. 티비 보면 알아요. 매일 4-5명씩 대한민국도 어떤 때 30명 다치고 수시로 나옵니다. 티비에. 참.. 사고를 막을 수 없어. 그런데 기계를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 조심해야 돼. 기계는 완전치 못하잖아 얼마 전 소방차가 불나서 물 딱 뜨는데 엔진 꺼버저렸어.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거야. 소방소 헬기 가라진거 뉴스 나오라고. 이렇게 사고나니 막을 길이 없다고 하더라고 기계는 완전치 못해요. 어떤 때는 기계가 완전해요. 사람보다. 그러니 사람이 가장 완전한거야. 만들어놓긴만 하면 사람이 가장 완전한거야. 온전하고 신이 된다니까. 헬기나 모든 기계들 비행기는 가다가 떨어 질 수도 있고 가다 불타기도하고 막 그래요. 그러나 사람은 완벽하게 신같이 행하면 그런 일 없다는 것입니다. 물건은 만들기는 쉬운데 자기를 의로 완전하게 만들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것 을 깨닫고 그래도 해야 된 됐어요. 자기를 온전하게 만들려면 온전하게 하나님 말씀을 먼저 알 것. 그래야 하나님 말씀을 알아야 그 말씀을 순종하려고 하니까 성령이 그냥 있지 않고 함께해서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말씀 받으면 그냥의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성 령과 일체되어 하지 않으면 안합니다. 늘 성령이 종같이 가서 해 줄 수 없는 거야. 절대신은 전지전능하신 신은 전지전능 하시니 한계가 있어요. 거기서 더 이상 안 해요. 우리가 하나되기 위해서 간구하고, 조르고, 말씀을 받았으니 실행하려면 성령 이 없으면 실행 할 수 없다고 했어요. “말씀을 받았어도 내가 함께하지 않으면 못 지킨다.” 했어요. “내가 말씀을 줬기 때문이다.” 했어요. 구시대를 보면 말씀이 온전치를 못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모를 때는 거울같이 희미하나 온전할 때는 너희가 확실히 알 것이다.’ 옛날 거울은 청동거울이라 제대로 안 보였죠. 문화예술 저 존재물이 모두 다 희미하게 오는 계시대 옛날 집도 초가집 삶도 초가집 모든 기구들도 그럭저럭 그냥 썼습니다. 지금은 뭐 기구가 발전돼서 너무 좋아요 모든 옛날에 보면 화장실서부터 시작해서 짐승 비슷하게 사용했어요. 여러분들은 지금은 잘 모를 거예요. 옛날 화장실 티브이에서 봤을 거야. 원시인들 원주민들 이렇게 해 놓고가서 화장실이라고 하고 풀 뜯어다 닦고 막. 옛날 임금들은 동아줄 꾹 까놓고 여기 걸쳤다가 싹 지나 싹 지나가면 닦아져 요. 이 사람들이 모르니까 그냥 무슨 신기한 쇼를 하며살았더라고. 하나의 쇼예요, 그거. 모르니까 참 그거 하나의 웃기는 삶을 살았어. 어떻게 그걸 발달했을까? 그렇게 닦으면 되는데 왜 동아줄서 참. 사실도 나왔고 역사에서도 말하잖아. 그렇게 했습니다. 발달이 됐어도 참 희한하게 발달됐어. 모르니까 그렇게 발달되는 거야. 모르는 것은 참으로 미련하고 짐승같이 살아요. 짐승들도 발달 되면 편한데 발달 안 되면 죽을 때까지 욕을 먹고 힘들게 살다 죽어요. 골병들어 죽는 거야. 사람들이 더 하죠, 사람들. 그것이 발달되고 볼 때는 참 그것을 그래서 빨리 노력하고 노력하면 선생님 같은 경우는 연구를 많이 하고 생각을 깊이 하고 모두 요즘 하는 말이 여러분 잘 못 들어봤죠, 가까이 이렇게 같이 있는 자들 얘기하다보면 내가 모르는 것이 뭐가 있나 살펴봐라 해요. 선생님 모르는 것이 없대. 지구상에 있는 거 다 외다시피 한다는 그런 얘기를 감탄하면서 해요. 우리는 봤다고 어떻게 그렇게 다 아냐고. 그냥 무슨 뭐가 선생님이 어떤 착용하고 있는 물건 알듯이 안다고.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 번도 접해보지 않았어도 알아요. 만나 보지 않아도 알고. 하는 방법 가르쳐 줄까요? "진리는 공통성." 뭘 물어봐요, 공통성인데 잠언에 나오지 않았어요? "진리는 공통성이다." 한 가지 백만 가지 1억만 가지 다 알아라 했어요. 그거로 아는 거지 개가서 배우고 아는 것이 아냐. 원숭이 배웠어. 원숭이 똥구멍 어떻게 생겼나, 빨갛냐, 까맣게, 촐록색이냐, 물으면 그거 안 봐도 알잖아. 같아요, 같아. 동일한 놈은. "진리는 공통성" 그죠. 이렇게 아는 거야. 그래서 하나는 제대로 알아야 됩니다. 하나는 그 면에 대해서 근본은 확실히 알아야 돼요. 그러면 그 센터는 다 아는 거야. 200만 300만 다 아는 거야. 그대로 확인할 것 없이 말씀하고 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알지? 가봤나 안가봤나 하지만 이미 아는 것을 가르쳐줘요, 이러므로 옛날에 안 봤는데 알잖아요. 확실하다 옛날에 아무리 미련하고 아무리 원시인들이래도 그 급으로 그대로 행하서 애기 낳았어. 옛날 사림들이라고 미련하다고 미련해서 이성관게 안하고 애기 낳았다?그건 안 되는 거야. 그죠? 동일한 역사에요. 그 시대 식으로 다 옛날식으로 다 했습니다. 이러므로 지금 아무리 오랫동안 운동하고 그리고 또 잘 먹고 지내도 80,90세,100세 사는데, 옛날 삶 900살 살았다고? 그게 믿어지냐? 지금 갖고 투시하고 옛날 치 갖고 지금을 투시하면 두 군데서 투시하면 백프 로 알아요. 그래서 역사를 바로 예언해버리는 거야. 몇 천 가지 예언해서도 다 맞잖아. 그런 것을 같은 이치로 맥락으로 통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하나님역사도 동시성역사도 그렇게 되고 시대 역사 동시성을 간다는 것을 모든 사람 아는데 그중에 빠진 것 있어. 동시성으로 가되, 차원 높여가. 그 한마디로 역시 주인이 되고 안 되는데 주인만 아는 거예요. 다른 사람은 겨룩 토인비가 말하길 "역사는 동시성으로 간다." 그건 재ᅢ단하ᄌ다해시잠ᄂ 애기죠, 애기. 동시성이면 똑같이 예수님 와야 되게? 시대 급으로 역사 펴나가요. 발달이니까 발전한대로 나가고 그러므로 이와 같이 모르면은 모르면은 구시대사람들이 전혀 모릅니다. 알 수가 없어. 전혀 몰라. 기성에서는 알 수 가 없어. 왜? 다른 세계 살았기 때문에 알 수가 없는 거야. 우리가 기성들이 지금 예배드리는데 무슨 말씀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몰라요. 이와 같이 우리의 삶을 모르고 있고 그러나 한 단계 올라가서 보면 무슨 설교하는지 다 알죠. 신약시대 말씀하죠. 가서 7가지 종류 안에 다 들어있습니다. 7가지 종류 안에 설교하고 있어. 대한민국에 있는 기독교 전체를 보면 3만 교회든, 5만 교회든, 10만이든 7개로 나눠보면 그 안에 다 들은 설교라고 했어요. 그중에 하나가 가끔 희망 가지고 있는 교회가 '주가 곧 오신다.' 사람들 또 신앙 깨우는 일을 하죠. 그런다고 신앙이 안 깨지 이제는, 하도 해서. 그중에 하나가 있다면 희망을 넣어주는 설교들 하고. 그중 하나 있다면 환란, 어려움 이겨나가도록 하자 그중 하나가 있다면 감사하며 바쳐야 하나님께서 주신다 할 것이고 이런 종류 의 설교들 나머지는 성경본문 갖고 하죠. 7가지종류로 하고 있다고 하나님 말씀하시잖아요. 음 말씀을 시대 말씀 못 들으면 결국적으로 어떻게 사는고 하니 수준이하로 살 수 박에 없어요. 모르는데 어떻게 완전히 행할 수 있어. 안하는데 어떻게 완전히 행할 수 있어요. 문명 문화 가지금은 극적으로 발달됐다 했어요. 신앙의 문화도 발달하는데 새로운 시대에서만 발달해. 새로운 시대 오면 모든 것이 보다 안전하게. 아까 예수님 왔을 때 믿음도 사랑도 말씀도 완전하게 하며 회복시켰죠. 이 시대도 시대 따라서 문화의 세계 또 우리가 부활시켰어요. 음악세계도 부활시켰고 예술세계 또 부화시켰고 말씀을 부활시키며 그리고 시 대 급을 부활시켜서 자녀 급에서 신부 금으로 부활시켰고 말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신부돼서 살아야 대요. 성약성사서만 이 시대에 극도로 발달된 시대를 따라가 다스려 갈 수 있지, 구시대서는 그 말씀 갖고는 그렇게 해서는 될 수가 없어 요. 예수만 메시아로 믿고 산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여. 시대 발을 맞춰서 육이니만큼 육신도 시대 잡아서 발전하고나가야ᅩ대사회돚 밥고 경제도 잡고 주인 돼서 본인이 시대를 살고 그러면서 시대를 살고 이상 을 누리고 가야지, 하늘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역사하는ᄅ나라 뜻이 이 땅 에 펴나가야 돼요 그래서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하지 않으며 법적으로 걸리고 문제 일어나고 형제 끼리 서로 싸우게 되고 서로 원수가 되고 신앙의형제들끼리도 그렇게 하게 된다. 서로 알고 온전하게 이해하고 온전하게 해야 됩니다. 한 가지만 생가하지 말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라. 항상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되려면 한 가지만 집중하면 안 된다. 그로 인해서 다른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고 재재재하고 해야 돼요. 한 가지 하는 것은 간단하죠. 그것은 온전치 못한 그런 판단하고 하는 사람들이에요. 항상 보며 한 가지만 갖고 막 해요, 어떤 사람. 한 가지만 생각하고 한다니까.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최하 두 가지는 생해야 돼, 최하. 이것을 행함으로 이런 일이 안 생길까. 두 가지 거든. 두 가지만 생가해도 팍팍 안합니다. 해도 그 단계 벗어난 일을 하죠. 그래서 항상 이것을 깨닫고 알아야 될지니 한 가지만 생각하고서는 안 된다. 알겠어요? 성경에도 말했죠? 보는 대로 판단치 말아라. 한 가지만 생각하고 본대로 판단하면 안 된다. 그 사람이 모사를 쓸 수도 있고 그 사람 자기 살려고 길을 찾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네 보는 눈으로만 생각하지 말아라. 그래서 재판할 때 피고인만 보고 말하지 말고 원고인만 보고 말하지 말고 두 사람을 보고 일단 조사하고 말하라. 그리고 다음에 저울추에 달죠. 그러나 재판은 가장 큰 문제를 이르키고 모순이 있는 것은 피해자 편만 드는데, 그래서 잘못된 재판 너무 많아요. 그럼으로 인해서 피해 받았다고 하는데 피해 받은 사람을 백프로 알고 피해준 사람 백프로 알고 보면 계획적으로 그렇게 하기도 하고 그래요. 이번도 보니까 누가 월명동 첨성대 거기 흙 파놨다고 보고했다고해. 그래서 명단 보고 얘기했더니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이 그 사람 이름을 넣고 가서 신고해버렸어요. 그런 시대가 됐어요. 그 사람이 당하겠지. 그는 와서 그럴지라도 형제를 위해서 십자가 지고 가겠다고 선생님은 나를 이해한다면 이해 안해도 나는 역시 그렇게가지 흔들리고 그렇지 않다고 다만 여기에 대해서 통감을 느낀다고 말했어요. 그렇게 해요. 누가 그런가 또 하나님은 잡아 결국은 밝히지. 이런 것들이 있어. 말씀해서 그래서 자기가 안했으니까 와서 따지러 온 거야 아니라고. 그런 일 없다고. 거기 가지도 않았다고. 여기서 얼쩡거리고 가니까 다른 사람이 우리 가고 해버리자. 그놈이 고한 것 같이 되니까. 옛날에 우리가 핍박 받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요, 핍박 받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때에 우리를 막 채 쓰고 신흥종교 연구소장이 책 쓰고 분노하고 있을 때 우리가 책 쓰고 딴 데서 신흥종교 연구소장을 살해한 때가 있었죠. 신흥연구소장 죽인 일 있었죠. 우리가 죽인 것 같이 하기위해서. 그랬어요. 그러나 나는 미리 알고 그전에 모임이 있었어요. 손해산사람들 모두 지도자 와서 10개 종교 교파 모였는데, 나도 오라고 했는데 나는 안 갔어요. 손해 간 것 없다. 다 뜻이 있어. 하나님 이렇게 저렇게도 행하시고 시대 어려우니까 어려운 일로 당한 걸로 생 각하고 간ᄃ 거기 가서 내 손해 간 것 물려 달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모임에 안 갔어요. 그 후에 살인 사건 났을 때 신흥종교 다 잡혀서 갔어. 하나님 항상 빼주셔. 원수를 사랑하는 입장에어 안 갔어. 나는 그전에 갔지. 성경에 그렇게 일어서 가르치다. 진짜 태양 멈췄냐고 하나님 그럼 능력자 아니네. 가지도 않은 태양 멈췄다고 하고. 이상하다고 이상해도 믿어야 된다고. 그렇게 따지지 뒤에서 사자같이 호랑이 싸움 붙으면 뒤에서 물어요, 사자는. 호랑이는 앞에서 물고 호랑이가 낫다는 거야. 뒤에서 무는 사람들은 사자가 호랑이 등 돌렸을 때 뒤를 무는 것이나 마찬가 지다. 호랑이는 일어서서 양쪽 발로 때려요 일로 따렴니이로 때리고. 사자는 때리고 으르렁 있는데 뒤에서 뒷말이 많은 사람은 사자요. 역시 사자 앞에서 정면 공격하면서 떳떳하게 싸우는 자들은 호랑이에요. 사자보고 비굴하게 싸운다고 해요 사람들은. 사자는 많이 다니지만 호랑이는 혼자서도 이겨요. 뒤에서 이래 저래 하는 자들은 행한 대로 받아요. 하나님 물론 영이 주관 받기도 하지만 하늘을 위해서 한다고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자기 하는 짓이 선하다고 하면서 하면 큰 일 난다는 거야. 잘못된 악한 일을 하면서. 너희 생각은 다르다. 하나님의 생각과. 항상 생가하면서 살아야 돼요. 그래서 무슨 일을 할 때에 여유 있게 한 가지만 생각하면서 말고 두 가지를 생각하면서 하자 한가지만 생각하괗하ᄌ못질하지말고 밑에 자기 발이들었어 발 못받으니까 바등어리 못바가버리너야 한가진마하지말고두가지를 자기가자기ᅳᄅᄅ고생시킨 달못하면\ 완전치 못하면 자기가 자기를 고통 받게 하고 문제 일으키게 되어요. 두 가지를 생각하고 하라 이러면서 오늘말씀을 다 했네요. 하나님 창조한 인간으로 하나님처럼 할 수가 있다. 완전하게 완전을 위해서 자꾸 하라 하면서 말씀을 매듭지었어요. 완전을 위해서 낙심치 말고 자꾸 하라 하나님 창조한 인간들은 능히 완전하게 행할 수 있다. 하나님이 노 완전하ᄀ기어려지, 우리가 완전하기 ᅥᄋ려운거에요 어린 애들이 하면 완전하게 할 것이 뭣이 어려운 것이 있어요? 하나님은 천지 만물 인생들 다 살피면서 하려니까 너무너무 엄청나잖아. 우리야, 뭐 자기생활이 크나큰 섭리의 책임자도 아니고 나름대로 하면 할 수 있잖아. 하면 할 수 있는 그런 정도가 된다 그거예요. 지도자들이 특히 무슨 일을 할 때 파악하고 완전히 알고 해야 된다는 거예요. 늘 교단도 그리고 각 교회 지도자들도 그리고 캠퍼스 지도자들 청년부 지도자 들 중고등부 지도자들부터 가정국 지도자들 장년부지도자들 전체가 돌아보면 서 완전히 행하는 자, 전문성을 가지고 행하도록. 금주에 못하면 계속 뇌 자극시키고 뇌 덩어리 자극시키고 완전히 행하는 덩어리 되도록. 마음을 자극시키는 기이이가이이 완전하게하느때ᅦᄋ 고쳐주는 기간이에요. 뇌의 구조를 생각의 구조를 뇌 덩어리를 생각 덩어리를 고치는 이때 못 고치면 언제 또 고치는 역사 얼어날지 모르겠어요. 이 기간은 꼭 지켜야 돼요. 완전하게 행하는 데에 있어서 고치면서 나머지 고치는 역사로 들어가지. 시간도 완전히 행하고 자기 할 때마다 흐리멍텅 하지말고 확시하게하지말고 이런 것들이 정말 필요합니다. 돌아다니다 보면 너무 많아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설교 전까지 돌아다녔었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녀보면 입이 아프도록 가르쳐야 될 일들이 너무 많아요. 오늘 말씀 이만치 들었으니 내일 아침 말씀하고 금주 말씀 연고학 할테니까 완전히 이르는데 감동되는 대로 계속 실행하도록. 기도 오늘은 온전히 행하는 말씀이 우리에게 전파됐고 또한 가르쳐 주었으니 이제 행하는 우리들이 알았으니 정성을 다해 마음을 다 해 완전하게 알고 깨달았으니 행할 것이 남았으니 행하면서 이들이 완전한 뇌로 완전한 생각으로 뒤바뀌어 행하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 사랑하심 공의로우심이 영원하길 간절히 간구하고 축원하였습니다. 아 멘. 말씀 마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