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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9.09.08 (일)

주일말씀 지금은 천 년 혼인 잔치의 때다

선포일
2019.09.08 (일)
성경 본문
마태복음 22장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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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08-주일말씀_지금은 천 년 혼인 잔치의 때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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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8일 주일말씀> 지금은 천 년 혼인 잔치의 때다 본 문 마태복음 22장 1-14절 <말씀 시작>  오늘의 성경 본문 말씀 <마태복음 22장 1-14절>을 보면,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냥 나온 말씀’이 아니고, <그 시대의 현실을 보고, 비유를 들어 깨우쳐 주신 말씀>입니다. ◎ 그렇다면, <그 시대>는 ‘어떤 시대’였을까요? 이것이 <오늘 말씀의 첫 번째 포인트>입니다.  유대 종교인들은 4000년 동안 <하나님>을 믿고 섬기면서, <하나님>이 땅에 오시기를 간절히 원하며 <하나님이 온다는 약속>을 희망으로 기다렸습니다. 때가 되니 하나님은 메시아 예수님을 보내 주셨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모략으로 성장하셨고, <4000년 구약역사의 소망과 희망을 실현할 새 말씀>을 가지고 그 시대 사람들 앞에 나타나 외치기 시작하셨습니다.  네! 그렇습니다. 그 시대는 -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 시대의 새 복음을 전하시며, - 사람들의 육과 영을 구원하고, -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를 이루는 시대였습니다. - 과거에 그~토록 기다렸던 새 역사였습니다.  <과거에 기다렸던 새 역사, 새 시대>는 <최~고의 희망을 이루는 때>입니다.  예수님은 ‘이때’를 두고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뭐라고 하셨지요? “<이때>는 마치 ‘혼인 잔치의 때’와 같다.” 하셨습니다.  <일생 중에서 최고로 기쁠 때>가 있다면 ‘사랑할 때’, 그리고 ‘그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때’일 것입니다.  <그 시대>, 곧 <과거에 그토록 기다렸던 시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 예수님이 오셔서 인생들을 구원하며 <하나님이 과거 4000년 동안 약속하신 것을 이루는 시대> 이 시대를 두고 ‘최고로 기쁜 혼인 잔치의 때’라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포인트’라고 했습니다. ◎ 그런데 ‘그 시대 사람들’은 <이렇게 귀하고 기쁜 때>를 두고, 어떻게 대했을까요? 이것이 ‘오늘 말씀의 두 번째 포인트’입니다. ◎ 그 시대 사람들이 <이렇게 기쁜 때>를 두고 어떻게 대했는지,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 한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열고, 그 종들을 보내서 <청한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오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서 <청한 사람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내가 당신들을 위해 오찬을 준비했는데, 살찐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춰 놨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돌아보지도 않고,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러 갔습니다. 남아 있던 자들은 ‘임금이 보낸 종들’을 잡아서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 이에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냈고, 살인한 자들을 멸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종들에게 말하기를,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이 오지 않으니, 길거리에 가서 만나는 대로 아무나 데려와라.” 했습니다. 종들은 길에 나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임금의 말을 전해 주며 혼인 잔치에 초대했습니다.  혼인 잔칫날이 되었고, 잔칫집은 손님들로 가~득했습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잔치 마당으로 들어왔는데, 이때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에 임금은 그 사람을 보고, “친구여.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고 왔는데, 어떻게 ‘예복’을 입지 않고 왔느냐.” 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임금은 사환들을 불러서, 그 사람을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했습니다. 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이 시대 현실의 입장과 처지가 이러하다.” 하고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예수님>은 ‘임금 입장’이었습니다. 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은 ‘임금의 말을 전하는 종 입장’이었습니다.  <첫 번째로 청함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4000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린 유대 종교인, 곧 구약 주관권 안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렸던 자들이니, 예수님은 이들에게 <새 시대>로 가장 먼저 오라고 청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갈 길을 가거나, 예수님과 시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핍박하고 괴롭히고, 더러는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 그래서 예수님은 따르는 자들에게 보다 구체적으로 증거하게 하면서,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나 <일반 사람들>을 불러서 다 오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두 번째로 청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 이렇게 하니, 많은 사람들이 주 앞에 왔습니다. 그런데 <예복을 안 입고 온 사람들>이 있었지요? 결국 임금에게 책망을 받고 쫓겨났다고 했습니다. <예복을 갖춘다> 함은 ‘행실을 갖춘다.’하는 말입니다. <새 시대>에 청함을 받고 ‘주 앞’에 오기는 했는데, <행실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예의 없이 나온 사람들>은 그 <행실>에 따라서 결국 ‘어두운 사망’으로 쫓겨나서, 그곳에서 ‘이를 가는 고통’을 받게 된다고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전환>  이 말씀은 그 시대에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시대도 그와 같이 그러하다.”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세 번째 포인트>이며 <핵심>입니다.  지금은 때가 되어, <신부시대 새로운 역사>가 진행 중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와 같은 시대>입니다. - 하나님께서 구원자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들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시대이며, -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하신 약속이 이루어지는 시대이며, - 신약역사 2000년 동안 그토록 희망으로 기다린 시대입니다. - 이 시대는 <이전보다 더 차원 높인 시대>로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신랑’으로 삼고, <시대 주를 믿고 시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은 삼위와 주 앞에 ‘신부 입장’이 되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천 년 동안 혼인 잔치를 하는 역사>입니다. 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자’를 보내시고 <1000년 사 혼인 잔치>를 하려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들>을 보내어 이 잔치에 오라고 청했습니다. <첫 번째로 청한 자들>은 ‘주를 믿고 주가 오기를 희망으로 기다린 저 기성인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오기를 꺼려하고 싫어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헛소문에 의해서 오해하고 이단시했기 때문입니다. 또 이유가 있지요? 자기 할 일을 해야 한다면서 각종 핑계를 대며 안 왔습니다.  그래서 두 번째에는 <시대를 알고 따르는 제자들>을 보내서 이방인도 좋고 누구도 좋으니, 아무나 <혼인 잔치 역사>에 오도록 청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진지하게 말해 주면서, 오게 하라고 했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의 새 역사>, <성경에 기록된 천 년사 혼인 잔치의 역사>는 하나님을 믿던 사람이든, 안 믿던 사람이든, 예수님을 기다렸던 사람이든, 안 기다렸던 사람이든, 어린아이든, 누구든 다 청해서 오게 했습니다. 또 <삼위와 함께 행하는 행사들>을 때마다 준비해서, 모두 오라고 청합니다. 그리고 <혼인 잔치에 온 사람들>에게 인사하면서, 왜 이같이 잔치를 하는지, 왜 이렇게 만들어 놓고 갖춰 놨는지 그 ‘이유’를 말해 줍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신부시대에 맞지 않는 행실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삼위와 함께 행하는 그 행사에 맞지 않는 행실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자>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영적으로 볼 때, <옷>은 ‘행실의 결과체’입니다. <그 사람의 행실과 사명>에 따라서 ‘그 혼과 영이 입는 옷’이 달라집니다.  우리가 살아갈 때도 그렇지요? <예술인들>은 ‘때와 상황에 맞는 옷’을 입고 방송을 하거나 무대에 섭니다. 방송을 하거나 무대에 서는데, 아무거나 입으면 안 되죠! 가수가 콘서트를 하면 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하고, 지휘자가 음악회를 하면 지휘할 때 맞는 옷을 입어야 하고, 무용수가 무대에 서면 역시 무용할 때의 옷을 입어야죠! 아무거나 입으면, 성의도 없고 매너도 없습니다. <수영선수>가 대회를 할 때는 ‘수영복’을 입고, <축구선수>는 ‘축구복’, <배구선수>는 ‘배구복’, <야구선수>는 ‘야구복’을 갖춰 입습니다. <우주에 가는 우주인>이라면 ‘우주복’을 갖춰 입어야 됩니다. <왕궁에 사는 사람들>은 늘~ 깨끗이 입고 다닙니다. 또 <큰 사람을 모시는 사람들>을 보세요. 반~드시 ‘그때에 맞는 옷’을 입고 다닙니다. 이와 같이 때에 따라 ‘옷’을 갖춰 입어야, <자기 사명>을 제대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 성경을 보면, <까마귀>는 ‘불길한 상황’을 나타냅니다. 실제로 <까마귀>는 그 생긴 대로 ‘까만 옷’을 입고 <불길한 상황>을 찔러서 전해 줍니다. <사탄>도 그러합니다. <사탄>은 항~상 ‘검고 우중충한 옷’을 입고 다닙니다. <그 행실>대로 ‘옷’을 입고 다닙니다. 만일 <사탄이 밝고 빛나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봤다면, 십중팔구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 <성령님>은 때에 따라 의상을 ‘수백 가지’로 바꿔 입으십니다. 그 옷을 보니, 모양도 색상도 찬란하고 황홀하고 우아하고 신비했습니다. 고귀하고 신령한 옷이었습니다. 의상처럼 그 <아름다움>도 <마음>도 <역사하심>도 찬란하고 황홀하고 우아하고 신비하고 고귀하십니다. <행실과 사명>이 ‘옷’으로 나타나니, 속일 수가 없습니다.  영의 세계서도 <자기 행실>에 따라서 ‘입는 옷’이 분명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8절을 보면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했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 행실>에 따라서 절대 속일 수 없이 <육의 옷>도 입고 <영의 옷>도 입습니다.  또한 <자기 행실과 사명>에 따라서 <삶의 배경의 옷>도 입고 <환경의 옷>도 입게 됩니다. 축구선수는 <삶의 배경과 환경의 옷>이 ‘축구장’이고, 예술인들은 <삶의 배경과 환경의 옷>이 ‘예술무대’이듯이, 영의 세계에서도 <자기 행실과 사명>에 따라서 <그 혼과 영의 거하는 배경과 환경의 옷>이 달라집니다.  <옷>과 <행실>은 ‘일체’입니다. <자기 혼과 영이 입고 있는 옷>을 보면, <자기 육신의 행실>이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자기 행실>에 따라서 <혼>도 <영>도 ‘그에 해당되는 옷’을 입고 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여러분은 ‘어떤 옷’을 입고 계십니까? (진지하게 묻기.) 본인은 원하지 않았는데 청함을 받고 <혼인 잔치 역사>에 참여했어도, 본인은 원하지 않았는데 청함을 받고 <예배>나 <섭리사 각종 행사>에 참여했어도 <기본>은 갖추고 삼위와 주 앞에 나와야 되지 않겠습니까? 역사가 이렇다 저렇다, 하나님이 이렇다 저렇다. 보낸 사명자가 이렇다 저렇다. - 하지만 말고, 자신도 <기본 매너>를 갖추고 나와야 됩니다. <기본>은 ‘옷’입니다. 곧 ‘행실’입니다. <행실>을 제대로 갖추고 <매너>를 갖추고 나서 - <혼인 잔치 역사>에 참여하고, - <하나님과 주가 베푸시는 각종 행사>에 참여하며, - <하나님과 주 앞>에 나아와야 됩니다! 믿습니까?  <하와>는 타락한 직후부터 ‘자기가 벗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이는 곧, <자기 행위>가 부끄러웠다는 말입니다. 결국 <그 행위>로 인해 구원에서도 탈락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 <노아의 아들, 함>은 ‘노아가 벗고 있는 것’을 보고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하와의 입장’과 다릅니다. <노아>는 ‘그 시대에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습니다. <노아의 행위>가 부끄러웠던 것이 아니라, 함이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 수준으로 함부로 노아를 판단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함은 노아의 책망을 받고 저주까지 받았습니다.  오늘 말씀을 듣고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고 <행실>을 제대로 갖추고 하나님과 주 앞에 서야 되겠습니다! <노아의 아들 함>은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사람, 노아>를 함부로 판단했습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큰 축복을 버리고 타락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주 앞에 <함>이나 <하와>와 같은 입장이 아닌지 꼭~ 생각해 보고, <자기 행실>이 어떠한지 깨닫고 제대로 갖춰야 됩니다!  주님은 <지금 이 귀한 때, 우리 모두의 상태>를 보시고 지난 2주에 걸쳐서 깊은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로 인해 실족하지 말아라. <자신>에게도 <사람들>에게도 실족하지 말아라. <실족할 것>이 ‘태풍’같이 밀려와도 실족하지 말아라. 어떤 상황에서도 실족하지 않으면, 즉시 ‘새로운 희망과 힘’이 온다. 지금은 <전환기>다. <더 차원 높은 단계로 가는 때>다. 이전 단계에서 벗어나야, 높은 차원으로 간다. 그러나, 벗어날 때가 가장 힘들다. 주가 그러했듯이, 너희도 이 <전환기>를 잘 극복해라. 그리고 어서 <이 귀한 부활의 단계>로 넘어와라.” 했습니다. 이 말씀들을 통해서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도 우리의 마음을 풀어 주시고, 많은 문제들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 이제 이 단계에서 벗어나, <자기 행실>을 생각해야 됩니다. <자기 사명>과 <자기 위치>를 생각해야 됩니다. 이 시대가 <1000년 사 혼인 잔치의 때>임을 잊으면 안 됩니다. <자신의 행실>을 제대로 갖추고 <혼인 잔치 역사>에 참여하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 앞>에 서기를 축원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 <행실의 옷>뿐만 아니라, <실제로 입는 옷>도 갖춰 입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예배 때>나 <하나님의 거룩한 전에 들어올 때>는 제발 갖춰 입고 와야 됩니다. <사탄을 상징하는 검정 옷>은 부득이하게 회사에서나 학교에서 입어야 할 때만 입고, <하나님의 거룩한 전에 들어올 때>는 삼가야 됩니다. 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지요? 임금이라도 ‘작업복’만 입고 다니면, <작업하는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임금으로서 때에 따라 옷을 갖춰 입어야 됩니다. 여러분도 그러합니다. <갖춰 입는다는 말>은 ‘때에 맞게 입는다는 말’입니다. <때에 맞는 행실, 때에 맞는 옷>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팔자’가 돌아가기도 합니다.  어느 때는 <옷>이 자기 인물의 70% 이상을 좌우하고, 어느 때는 <옷>이 자기를 돋보이게 합니다. <자기 몸>이 아무리 멋있어도 <옷>을 대충 입으면, 그때의 분위기에 맞게 처세할 수가 없습니다. 돈이 있다고 옷을 잘 입는 게 아닙니다. 감각입니다. 감각이 있으면, 돈이 없어도 잘 갖춰 입습니다.  <행실>도 ‘깨끗한 행실’이 중요하듯이, <옷>도 잘 입지 못한다면 꼭 깨끗하게 갖춰서 입어야 됩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 <자기 행실 갖추기>입니다. <시대 말씀을 듣고 매일 거기에 맞춰 살기>입니다. 그러면 <그 행실>에 따라서 ‘그에 맞는 옷’을 입게 됩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천륜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주를 따르든지, 안 따르든지, 누구나!! ‘행실’에 따라 ‘옷’을 입게 됩니다. <행실의 예복>을 갖추려면, 반드시 시대 말씀을 듣고 매일 거기에 맞춰 살아야 됩니다! <때에 맞는 행실, 때에 맞는 옷>입니다.  저 기성인들은 시대에 맞게 주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못해서 <신부의 행실>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 혼과 영도 <신부의 옷>을 입지 못하고, <세마포 옷>이나 입고 삽니다.  섭리사에서도 그러합니다. 새 시대 말씀을 듣고 살아도 <신부의 행실>을 하지 않으니, 아직도 ‘신부의 옷’을 못 입고 다니는 자들이 있습니다. <더 좋은 옷, 더 찬란하고 깨끗한 신부의 옷>을 입으려면, 주께나 자신에게나 사람들에게나 실족하지 말고 주의 말씀을 듣고 서성이지 말고 즉시! 행하며 어서 전환기를 벗어나야 됩니다!!! ◎ 못다 한 말씀은 선생님께서 성령과 함께 <수요일>에 전해 주겠습니다. ◎ 지금은 천 년 혼인 잔치의 때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