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20.06.24 (수)
수요말씀 (할 때 하라)
- 선포일
- 2020.06.24 (수)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25장 1
첨부 파일
- PDF
200624 수요말씀 (할 때 하라).pdf
191.0 KB
<2020년 6월 24일 수요말씀>
할 때 하라
Do it when you are doing it
본 문 마태복음 25장 1절 - 13절
『 마25:1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
<말씀 시작>
네. 오늘은 6월 24일 수요말씀을 전해줍니다.
본문말씀 방금 봉독한 말씀을 한번 더 다른 차원에서 말씀을 전해줄게요.
새벽말씀도, 주일말씀도, 수요말씀도 지금 한참 전해주는 때입니다.
전에는 교역자들이 한번씩 돌아가면서 하고,
조은목사님도 해주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결국 선생님이 하는게 낫겠다고.
좀 해달라고 자꾸 하기시작했습니다.
사실상 그렇게 많이 하기가 힘듭니다.
일반 교회 한두개같으면 괜찮은데, 한군데 한나라 교회가 아니고,
70개국 나라의 교인들이라 다루기가 다릅니다.
<민족>이 다르고, <살던 풍속>도 다르고,
<신앙관>도 나라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같이, 할 때 하라는 말씀인거같아요.
내가 해줘야될 한 때 같습니다.
본문 말씀의 비유는, 성경을 보면 비유가 많이 있어요,
하나씩 공부하듯이 이야기를 좀 해줄게요.
일을 같이 하다보면, 말귀를 잘 못알아듣고 의견이 서로 하나가 안 돼요.
그래서 이해를 시키려면 별지의 말씀이 필요하고,
못하고 지나가는 때가 많아요.
자, 이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말씀한 말귀를 알아야 돼요.
성경의 짤막한 비유가 있어요.
사람이 마치 <나무>와 같다. <소>와 같다. <돼지>와 같다.
이렇게 간단하게 비유하는 것도 있고,
마태복음 25장 같은 것은‘사건적인 비유’로 했어요.
‘이런 사건과 같은 입장이다’하고 말씀했고,
이런‘사건적인 비유’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도 말씀한 것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대 그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긴것과 같다.
그 재능대로 각각 달란트를 맡기고 왔다. 갔다 오니 1달란트 받은 사
람이 못남기고 가지고있더라고. 그래서 왜 그런가 보니까, 나도 주인과
같이 했다고. 묻어놓고 주인 오면 주는 것이 원하는 뜻인줄 알고 그러했
다고. 나는 그래서 다섯달란트 두달란트 한달란트 갖고있었는줄 아냐?
갖고있었는데 어떻게 불어날 수 있겠느냐? 가서 정당하게 응당하게 하나
님 주신 축복중 하나는 수고해서 더 남기고, 늘어나게 만드는 것을 너는
모르느냐?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수고하고 애써서 얻는 것을 모르느
냐?’그랬어요.‘주인을 몰랐다’고.
‘모르니까 실패했다.’이런 비유가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 아주 유명한 비유에요.‘주인을 잘 모르니 실패했다.’
성경 비유중에 유명한 비유가 또 있습니다.
<탕자 비유>가 그렇게 유명합니다.
탕자는 자녀들이 있었는데, 탕진해서 탕자라고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자기 소유를 줬는데, 탕진했어요. 이름도 잘 지었고,
비유가 아주 유명한 비유이고,
문학적으로 아주 유명한 성서의 문학임을
안 믿는 사람도 그렇게 취급합니다.
비유를 들어서 말하는 것은, 이렇게 성경같이 세상책은 많지 않습니다.
아주 하나님이 비유를 특허를 내듯이 하고 있어요.
비유로 말하면 아주 금방 알아듣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어요.
아들이
“아버지 품을 떠나는 것이 아니고,
나도 가서 재능대로 살고싶습니다.”했더니“그러하라”고 내줬습니다.
실패하는 것은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게 성공의 비법이라고 말한거에요.
아버지는 탕진하고 안 되었던 것을 알고 늘 기다렸습니다.
잘되고 못되고가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늘 같이 사랑하며 살고싶은게 부모 입장이니까.
살아도 잘 되어도 부모 옆에서 잘 되는 것을 원했다는거에요
그런데 안 되고 있다가 어느날 돌아온다는 소식 듣고
‘언젠가는 돌아오겠다.’
사람들에게 말하면‘안 죽었으면 돌아올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혹시 실패했더라도 돌아오라고 표시를 해놨어요.
결국 돌아왔지요. 그래서 다시 또 출세라도 하고 온 것처럼
좋은 옷을 사입고, 금가락지를 끼워주고, 잔치도 해주고 그랬습니다.
성공한것과 상관이 없어요. 무조건 돌아온 것이 너무 좋다는거에요.
흔히 세상은 성공하고 왔다고 하면 체면도 있고 하니까
성공 잔치를 해주는데, 실패 했으면 안 합니다.
“실패해가지고 왔다고 부하시네 참 부모님.”그럽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원 위치로 왔을 때 성공했다는거에요.
탕자의 비유에서는 그것을 교훈을 주면서
하나님 입장과 그리스도의 입장을 말했지요?
여러 비유가 있는데, 그 중하나가 <열처녀 비유>인데,
이것은 굉장히 깊고, 크고 충격적인 일도 있습니다.
최고 극적인 좋은 사건인 동시에,
반면에 맞지 못한 자에게는 참 싸늘하게 끝나버리는 내용입니다.
이 비유는 에수님 당세때도 해당되는 거에요.
자녀권 사랑이라도 해당 되는 것입니다.
‘신랑이 오리니’여기는‘형제가 오리니’하겠죠.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
리라’이건 메시아에 관한 이야기에요.
예수님은 메시아이기 때문에 이런 비유를 한거에요.
자신이 왔으니까 신부 신랑시대가 아닐지라도
자녀권의 똑같은 하나님의 사랑권의 세게에요.
그러나 사랑권이라도 내용이 다르지요.
‘그러므로 그 때에 신랑이 오리니,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그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있다.
왜? 미련한 자들은 등은 가졌는데, 기름을 가지지 못해서 못맞았다.
이들이 미련한 자들이다. 슬기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지고 다니면서 신랑을 기다렸는데,
신랑이 더디옴으로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불을 준비해서 불을 키고 가니,
기름이 없는 자들이 불이 안켜지는거에요.
그래서 미련한자들이 슬기있는 자들에게 좀 달라고 하니,
이것도 쓰기가 부족하다.’했습니다.
기름은 사랑입니다. 기독교의 핵심, 종교의 핵심은‘사랑’이지요?
‘사랑’으로 표시 되었고,
이것은 다시 오는 재림때의 앞날을 얘기합니다.
‘그 때’와 ‘이 때’가 다릅니다.
‘이 때에, 천국은 마치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처녀와 같다.’
그러므로, 기름을 꿔달라니까,“우리도 꿔주다보면 쓰다 만다. 안 된다”
는거에요. 이런 비유로 말한 것을 보면,
자기가 사랑으로 하나님을 맞고 주를 맞는데,
사랑좀 꿔달라는 이야기와 똑같아요. 말도 안 되잖아요?
기름도 빌려주거나 팔거나 궈주면
자기가 맞을 수 있는 시간에 못 맞고 못 다스리지요. 쓸 수가 없지요.
이것을 정확하게 비유한 것이, 위대한 비유요,
위대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과 인간의 어마어마한 문학적인 차이입니다.
자, 이건 극적인 자와 극적인 자를 여기에 비유를 한거에요.
맞은자는 극적으로 지혜롭고, 맞지 못한 자는 극적으로 미련하고.
사람이 똑같은데, 그냥 보면 얼굴도 에쁘고, 옷도 입으면 다 예쁩니다.
그런데 미련하면 못봐줍니다. 미련하면 안 됩니다.
솔로몬도 말하기를
“미모를 말하기 전에, 미련하면 같이 못 산다.
답답해서 같이 못 있는다. 병난다”그것입니다.
미련하면 인물이던 뭐던 안 됩니다.
‘미련’이 뭡니까?‘모르는 자들’
여러분 모르는자들과 대화가 안되지 않습니까?
모르는 자들 자기주관이 너무 강하고 너무 자기 주관대로 해요.
<모르는 자>와 <미련한 자>와는 같이 못 산다.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고, 주를 제대로 모르는 자는 미련한 자입니다.
사이코들입니다.
나는 머리 생각 연구를 그렇게 집중적으로 했습니다.
그렇게 연구해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정도까지 올라왔습니다.
2천년 전 예수님과 늘 대화할 수 있을정도로.
여러분 2천년간 아무도 몰랐던 성령을 알았어요.
그렇게 집중적으로 하나님 성령님 성자 찾던 사람도 잘 모르거든.
성자를 모르고 사는 사람, 성령을 모르고 사는 사람.
성자에 대해서 잘 몰라. 성자는 예수? 성령은 하나님?
결국은 몰랐잖아요. 성경 6천년씩 믿어왔는데도 모르잖아요.
이와같이, 지혜롭기 때문에 안 것입니다.
미련하지 않기 때문에 안 것입니다.
신랑을 맞으러 간 자들이, 신랑을 맞을 준비를 안 헀다?
사실 하찮은 것입니다. 첨단의 세계인대도 하찮했다는 것입니다.
나 빠졌을 때는 여러분들 머리가 비슷비슷해요.
그러나 나 있을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차원적으로 크게 다르고 세밀하기 때문에.
지혜, 총명. 알아요.‘미련한자다.총명한자다. 슬기있는 자다’알아요.
바로 소문나요.“얘가 그런 이야기하는거 믿지마. 내가 말하니 믿지마.
그냥 그런 애여. 알겠냐?” 한마디 나오면 안 보는거에요.
“내가 교정해서 많이 좋아졌다”하기 전에는
그 머리는 그대로 못을 박아놔서 몰라요.
내가 누구인지 애들은 알기 때문에 내 말만 중심 해. 알겠습니까?
이러므로, 여러분 어디 있을 때도 여러분끼리 있을때는 서로 잘 몰라요.
그렇게 총명한지, 슬기로운지 몰라요. 그러나 나 있을땐 정확해요.
하나님이 나 있을 때 내 입을 통해서 하시니까.
그러니 내 앞에서는 그것도 말 함부러 하지 마.
나보다 더 알면 하라니까? 알겠어요?
나보다 더 높은 사명을 가졌으면 하라니까? 그전에는 하지 마.
하나님이 듣고 계셔. 성령이 듣고 계셔.
바로 꼴을 못보시고 이렇다 저렇다. 정확하게 보는 것입니다.
한참 만들었을 때는 산에서 딱 들어보면 얼마.
몇근, 몇냥 거진 98% 맞췄어요. 그정도로 감지가 강해요. 정확성있고.
그래서 사명만큼 실력을 갖고 있어요. 사명만큼 실력이 없을 수가 없어.
한번은 일 하는 대로 잘 되어서 하나님께 기도했더니만,
“성자가 가면서 내 사명 맡기고 잘 했으니까 책임지고 가야돼”합니다.
어는 때는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다 이야기 못하는데, 깨달을 자는 깨달을 거에요.
자, 이‘신랑을 맞는다는 자들’이, <신랑을 맞을 준비>가 안 되었다니
이건 잘못된 자들, 정말 미련한 자들입니다.
이 비유는 목적이 아니에요.
비유의 목적은 다른 것이 있기 때문에 풀어야됩니다.
등불 가져가면 기름은 준비해야될거 아니에요?
원본 핵심은 그것이 아닙니다.
‘메시아 오면 메시아를 사랑으로 맞아야 되는데,
그것을 준비 안 했다’는거에요.
맞을때는, ‘맞는 것’만 희망스럽게 갖고, 소망으로 가졌어요.
그런데‘메시아 맞는데 뭘 갖춰야 하는가?’를 몰랐어요.
한결같이 사랑이었습니다.
모세도 보면 최고 악평했잖아.최고 응실대고 최고 극적으로 대했지요.
자기를 구원하는 자를 그렇게 한 거여.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에수님은 구원하러 왔는데 그렇게 했어요.
모세는 이미 애굽에 있을 때도 악평했지요. 모르니까.
“저사람 어제는 애굽사람 때려죽였다. 저사람 살인자 아니냐?”
왜그런고 하니, 자기 민족을 데리고 가야되는데 벌써 하나님 때로 볼 때
놔줄 때인데 안되것다. 백성들 살려야되것다. 그러면서 자기 민족을 사랑
한다는 것을 그만큼 보여준거에요.
그것을 긍정적으로 못 보고 부정적으로 본거에요.
‘진짜 이스라엘 민족 피를 가졌구나’하고 인정했어야되는데,
‘무섭다’생각한거에요. 긍정적으로 못보고 다르게. 무식한 놈들이죠.
미련한 놈들이죠. 아주 미련하고 무식이 꽉 찼지요.
모세가 자기 민족을 인정 안하고
너희 민족을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모세는 애굽에서 왕자같이 큰 사람입니다.
왜그런고 하니, 일반적으로만 보지 않았어요.
능력부리고 권세 부리는 것을 보고 크게 봤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몰랐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따라나와서 구원했거든?
그런데 구원 받은 자들이 구원자를 악평한거에요.
애굽에서 끌고나옴받은 자들이 그랬어요.
자꾸 악평하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광야땅에 깔아버렸습니다.
예수님은 구원받지 않고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민족들이 그랬습니다.
구원하러 왔는데 그렇게 되었지요.
미련하고 미련하고 모르는 자.
메시아가 출현했을 때 그렇게도 악평하고 실랄하게 까대끼고 그랬어요.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서 심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결국 그들을 그냥 놔두지를 않았지요. 할 수없다고.
이것은 천륜의 법칙입니다.
봐줄래도 하나님을 그렇게 했기 때문에 봐줄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봐주는 것도 어느 정도가 있지요.
메시아를 묵살시키고, 끊어버리고, 최고의 불법자로, 불신해야되니까.
그렇게 하니까 이렇게도 멸망, 저렇게도 멸망하니 결국은 심판했지요.
십자가 지어줬어도 믿지 않은자는 구원 못받았습니다.
그래도 안 믿으니 전하고 안 전하고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 전체를 본거에요. 그렇게까지 해줬는데도 말을 안 들으니까.
결국은 심판의 대상이 되었지요.
십자가를 지기까지 얼마나 악평하고 그랬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십자가를 지어주게 하고,
죽어주고도 별 좋지 않게 했지요. 그러니 몰살시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몇사람 상황 보고‘전체가 그러하구나’하고 따져버립니다.
모세때도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확 믿고 따랐어야되는데,
그렇게 안했어요. 기분 좋으면 믿고, 기분 안 좋으면 믿고.
그게 조울증이에요. 우울증 환자로 봅니다.
정기적인 밀물과 썰물은 정상인데, 정기석은 떠났을 때 그러합니다.
항상 깨닫고 여러분들 행해야돼요.
자, 집을 지으려면 어마어마한 기둥도 탁탁 잘라냅니다.
7자 8자 딱딱 잘라버립니다.
이것은 9자고 이것은 8자? 그러면 웃기게 됩니다.
집이 아니라 쓰러지고 맙니다. 아무리 기둥을 크게 했어도.
여기도 보면 기둥이 똑같이 8미터입니다. 똑같아요.
이와같이, 이러므로 우리들도 그와같이 그러하다.
결국 메시아가 왔을 때 모세때도 예수님 때도
웬수나 되는 듯 그렇게까지했습니다. 본인 외에는 모릅니다.
본인만 받아봐서 아는 거에요.
아는 자는 오직 그 사명을 짊어진 사람만 알 것입니다.
그는 고통을 받고 왓다. 어려움을 받고 왔다.
결국은 십자가 져주고, 따르는 자들만 집중해서 역사를 펴나가기 시작햇
죠. 그게 신약 역사의 갈림길로 갈라져서
구시대와 신시대가 딱 갈라져서 가듯이 가는 역사가 시작되었죠?
그 역사가 2천년 역사를 지켜왔죠.
시대가 구시대와 신시대가 그렇게 극적으로 안 받아들이고,
세월 다 가고, 기다린 역사 다 가버리고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도 본문의 말씀에 예수님 말씀하셨는데,
아니라고 할 사람이 없어요.
앞 날을 보고 하는 이야기지, 이 때를 두고 한 말은 아닙니다.
그 때에 번역이 다 똑같이 되었어요. 잘못된거 아니에요. 다 맞아요.
왠만하면 성경 안 고쳤거든요? 앞날을 보고 한 말입니다.
초림때는 자녀권에도 해당되지만, 재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시 할 것을 알고 재림에 대한 이야기를 강력하게 해놨습니다.
그런 것을 알고, 이 열처녀 비유와 같이, 오늘날 시대로 말씀한것입니다.
오늘날 시대가 풀렸을 때는, 누군가 하고 있어야 풀립니다.
누군가 문제를 냈는데, 대답했으면 풀린거에요. 때가 된거에요.
시작 한 것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표현하고 역사가 되니까
하나님이 알려주신거에요. 기성에서는 기도를 예비치 않았다?
마음을 제대로 못 만들었다? 그럽니다.
차의 휘발유를 부어야되는데, 집의 들기름을 부은 사람과 같은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같이, 이미 예언을 했습니다. 앞날을 말슴했습니다.
기름 준비를 안 한 사람들. 여러분들은 이래나 저래나
말씀 사랑으로 대하고, 말씀하는자 사랑으로 대해서 남아진거에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말씀을 사랑으로 안 대하고.
아무리 그 말씀을 좋아하다가도, 절대 구구단이요
절대 곱하기 더하기 기본 수인데, 그것도 틀렸다 하는 식이지요.
이러므로 이 본문말씀을 비유가 이 시대 해당되는 여러분이 주인들이니까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 .직므도 마찬가지에요. 애굽사람들 구원받고 모세
를 신랑으로 믿고 영도자로 믿고 온 사람들도 오다가 떨어진 사람들 왕창
추풍낙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끝난 것이 아니라 2세들이 역사를 폈죠.
하나님은 하고자 하는 것을 기어이 하십니다.
이 비유의 말씀대로 미련한 자들 되지 말고.
미련한 자들 다른 사람 몰라.
해놓은 만큼 지혜에요. 자기가 해놓은 만큼 지혜를 갖고 있는거에요.
해놓은 만큼 지식을 갖고있는거에요.
이해를 못 하면 한참 가서 이해를 하죠. 내가 알아요.
못깨달으면 자기들 사상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바로 보여주죠. 이와같이 하는거라고.
그러므로 가장 큰 것은,‘아니 등불을 준비했는데 기름을 준비 못했다는
것’은 실제 등불과 기름이라면 다 준비했을거에요.
근데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못한거에요. 그것은 비유란말이에요.
<비유>라는 말이 뭔지 압니까? 보고 알면 그것은 비유라는거에요.
건물 만들 때 와꾸짜는거랑 똑같어. 세멘 공구리 치려고.
이렇게 설교하는 사람 잘 못봤죠? 성경의 주인은 주인이구나.
설교하고 내려가서 제자들중에는 그럽니다.
“내가 설교 끝난지 3시간도 안 되었는데 왜 나를 그렇게 대하냐?”
소는 소로 대해야 좋은거여. 돼지는 돼지로 봐야 좋아하지.
돼지를 돼지로 대할때가 제일 좋아합니다.
더럽다 뭐하다 해도 돼지로 대하면 좋아합니다.
그러나 돼지로 대하지 않고 다르게 대하면 바로 싫어합니다.
사람들도 그 사명대로 대함을 잊어버릴 때는,
“설교 끝난지 몇시간이 되엇간데 그렇게 대하냐?”
자기는“안 그랬는데요?”하지만 지혜자가 올 때는 저울에 달아보면서
이야기하거든. 의도 달아보고 행실도 달아보면서 이야기해요.
성령께 바로 물어보지요. 내가 실수했냐고.
오늘 말씀도 수요 말씀 해줘서 불을 피우자고 햇어요.
써온 말씀을 몇가지 해줄게요.
일을 할 때 하면 몸도 마음도 풀어져서 쉽게 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 때 안 하면 여건이 안되니 이상하게 안 되더라.
축구나, 배구나, 테니스나, 탁구나 몸이 풀렸을 때는 잘 되지요.
일도 마음도 풀리고 일머리가 알아서 잘 풀립니다.
그 때 할 때 해야됩니다.
그런데 그 때 할 때 같이 못 한 것을 보니까, 어제오늘같은 입장이 되더
라고.
어제는 상당히 뜨거웠습니다. 계획한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 뜨겁지만 할 때 하라’해서,
어제는 묘목 나무 해놓은 것 밭에다 해놓은 것 갖다가 심었어요.
지금 나무 심을 때는 아닙니다.
그래서 이 때 해야되겠어서 해버렸습니다.
근데 하는 김에 나무 있는대로 해당되는 나무 다 갖다가 옮기자.
이거 맞죠? 2차원적으로 이야기했어요.
그렇게 하다보니까 옆에 돌들이 있어요. 그것도 해야되겠다 하고
밤이 늦도록 12시까지 해버렸어요. 할 때 다 해버렸어요.
그런데 오늘 보니까 비가 계속 하루종일 오고있죠?
그거 나무 뿐 아니라 거기 해당된거 하라고 했잖아요.
돌과 나무는 다릅니다. 일도 내용도 다르고.
그래서 하는 김에 이거 하면서 다 해버렸어요.
아주 속이 시원하게 다 해버렸어요.
아주 할 때 하고 보니까, 만약시 못했으면 비가 오는데 못하죠.
나무작업도 죽이 되고 못하지요. 돌작업도 못합니다.
미끄러져서 큰일나요. 이와같이,
‘할 때 하라. 이것도 저것도 해당되는 것 할 때 하라’
오늘과 같은 날이 되더라.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에 해당되는 것이 다 보이고, 깨닫게 되더라.
고로 그 일도 할 때 해야된다. 생각났을 때 하라고.
상황이 돌아가서, 할 때 못하니까 안 되더라. 내가 해본 결과.
그랬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해본 결과 할 때 못하니까 상황이 돌아가서 안되지요.
그래도 할 때 여건이 제일 좋더라.
어느 때는 하려고 하는데 여건이 안좋아.
그래도 해야된다는거에요. 더 여건이 안 좋을 때가 있어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방문제도 기분 좋을 때,
무대가 될 때 그냥 밀어붙이고 했어야 됩니다.
한 나라의 심리도 개인 심리와 똑같아요.
개인도 그 때에 귀찮게 생각하지 않고 밀어붙이면 잘 됩니다.
그러나 할 때 못하니 안따라오고 안 되는 것입니다.
할 때 해버려야됩니다. 행함으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개 민족도 개인과 똑같아요. 어떤 사건도 할 때 밀어붙이고 해야됩니
다. 못하면 이와같이 깨작나는 일이 생기고 걱정하는 일이 생깁니다.
요즘 내가 한 달 반동안 TV를 못 봤어요.
피곤하지, 늦지. TV를 봐야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고 기도를 하지요.
그래서 그런 것을 못했더니만, 한달 반 사이에
오늘 처음으로 TV를 봤어. 이런일 저런일 북한이 폭파한다 뭐한다.
뒤숭숭한 일이 생겼어요. 그렇게 기도가 귀하다는 것입니다.
‘키를 가진 자’의 영향이 그렇게 크다는 것입니다.
할 때 해놔야 빛이 나더라.
제 때 해놔야 빛이 나더라.
삼위일체와 해놔야 빛이 나더라.
사탄은 행하지 못하도록 다른 것을 보이게 하고 끌리게 하더라.
이를 깨닫고 해야됩니다. 어떤 일을 하는데 자꾸 막아요.
거진 사탄이 합니다.나는 하도 눈에 뵈니까.
자기는 안그렇다고 하지만 사탄이 개입합니다.
사탄 개입하지 않도록 아침에 꼭 기도해야돼요.
반드시 사탄은 그 일을 못하도록 방해를 하더라.
예수님이 메시아인데도 어떻게 베드로 통해서 역사햇잖아요.
예수님이 나중에“사탄아 물러가라!”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나보다 카리스마 있어요. 어느때는 속으로 해요.
‘사탄아 물러가라.’딱 그럽니다.
항상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것,
하나님 보낸자가 하는 일을 방해 하는 것. 모르니까.
사탄이 임한거에요. 그걸 깨달아야돼요. 그건 100%에요. 거진 100%에
요. 무지속에 사탄이 역사합니다. 어둠은 빛가운데 역사를 못해.
그런 것을 회개하고 알아야돼.
그렇게 놔두고 사탄이 역사한다는 것 시인 안하면 당한다니까?
자꾸 무서워지고, 공포에 떨게되고, 자신 없어지게되고, 화내게되고.
공의로운 성질이 안나고. 그냥 화내게되고 그럽니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할 때, 그에 해당되는 일도 있고,
전혀 다른 일도 그 때 하는 김에 생각나더라. 그 때 해야된다.
일 할 때 같이하라. 저 일도 하라 .그 말입니다. 하는 김에 하라.
몸도 생각도 하고자 할 때가 기회다.
마음과 생각과 몸에 붙어 있을 때 해야된다.
‘몸에 붙어있다는 것’은 뭔고 하니,
하고자 하는 마음이 육신을 통해 일체돼요.
마음은 원인데 육신이 못할 때 있죠?
그런데 할 때는 마음도 생각도 육신과 일체되어서 해집니다.
그때다. 불 붙었을 때다.
마태복음 말씀을 해줬습니다.
등불은 사랑하는 몸이다.
기름은 그 몸에서 역사하는 진실한 사랑을 말한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잔인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월남전에서 보니가 사랑이 없으니까 총칼 그냥 휘두르고.
사랑이 없이 총칼만 휘두른 자는 더 빨리 죽는다.
내가 너희들 일일이 전하지 못하지만 말씀을 선포한다.
그것만 휘두르지 말아라. 오히려 사랑의 전쟁이 승리의 전쟁이 되었어요.
그러므로, 등불만 있고 기름없는 인생들같이,
몸은 있는데 사랑이 없는 사람은 기름없는 등불같은 사람과 같다/.
혼 나간 육신과 같다. 정신나간 육신과 같다.
이렇게 본다고 했습니다.
믿어주는 것도 사랑,
사랑은 끝까지 하나님의 생각으로 말씀으로 행하는 것이 사랑.
사랑은 항상 끊임없이 해야됩니다.
사랑 없으면 신부는 혼 빠진 육체덩어리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창조했는데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역시‘넋나간 인생’이런 사람으로 봅니다.
신부라면 신랑의 사랑을 받는 것이 기본적인 것이고,
밤에 등불을 가진 자는 기본적으로 기름이 있어야 되는 것이죠.
이 열처녀 비유중에 기름을 준비않고 햇다는 것은
다섯명은 사람은 생각도 않고 사는 자입니다.
생각 했으면 바로 사오지요. 100% 생각 아예 안한사람입니다.
‘기름이 없네?’즉시 사다놓지요.
신랑 오기 직전에 준비하니 준비가 됩니까? 안 되지요.
손님 오기 직전에 준비하니 밥이됩니까 죽이됩니까? 안 되지요.
이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맞고, 메시아를 맞으려고 기다리기만 햿습니
다. 그렇게는 못 맞습니다.
이미 하나님께 무한히 주고자 준비해놓고 기다려야돼요.
하나님이라고 뜯어먹으려고만 하면 안 돼.
메시아라고 뜯어먹으려고만 하면 안 된단 말여.
풍부한 사랑으로 하나님과 살아야 됩니다.
나는 기도할 때,“하나님 정말 진실로 사랑합니다”그런 기도할 때가 진
짜 자신 있을 때에요.
사랑이 없으면 누구든지, 사랑의 대상체 주를 못 맞습니다.
주를 맞지 못한자는 하나님도 성령도 성자도 맞지 못한 자입니다.
이론은 강한데, 기다림이요. 기다려서 뭐하려고 그래요?
유익이 없으면 행하시지 않는 하나님임을 깨달아야돼요.
유익이 없으면 무익한 종은 다 쫓아냅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으로 내 쫓아버려라 했지요?
무익한 자는 존재를 못합니다. 잔인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은 참으로 이상을 이루는 존재자입니다. 무익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과 그가 보낸 메시아를
절대 사랑으로 믿어 맞아야 된다.
이는 기름과 등불을 준비한 자들입니다.
사랑이 없는 자는 기름없는 등불을 가지고 다니는 자와 같습니다.
메시아는 사랑이다. 사랑으로 맞아야된다.
사랑으로 못 맞으면 죄인으로 끝나고 만다.
유대인들은 원리 원칙으로만 맞으려고 했고,
조상들 유전으로 맞으려고 했고, 율법으로만 맞으려고 했습니다.
형편도 없는 사고를 갖고 있어요. 세계 머리좋다고 알려져있는데,
종교 머리는 안 좋았던것같아요.
사랑의 법과 맞지 않는 사고를 갖고 있었어요.
메시아는 차원높은 사랑으로 맞아야 됩니다.
메시아가 왔는데 일반 사랑으로는 못 맞습니다.
메시아가 왔는데 일반 사랑으로 맞겠습니까? 나부터도 싫지요.
장관이 왔는데 장관을 비서 대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싫어할 것입니다.
여러분 나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잘 봐야됩니다.
‘왜 저사람 저렇게 대하나?’정말 신으로 대해줍니다.
진실로 대해줍니다. 하나님 사랑이 충만치 않으면 그 사랑이 그 사람에게
가지 않습니다.
나의 사랑은 나의 자체 사랑도 있지만, 하나님, 성령이 나를 통해 주는
사람입니다.
오직 메시아만 시대 말씀을 전하고,
나머지는 못 전한다고 결론을 짓습니다.
주는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 성령과 성자의 일체되어 오는 육신이기 때
문에 그러하다.
사랑하는 자만 오늘도 내일도 이런 때도 맞는다.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이
다. 맞은 자만 맞는 법을 안다.
맞는 법을 잘 모릅니다. 알기 때문에 다루는거에요.
다람쥐같은것도 한 3년 길러서 그들만 잘 따랐습니다.
그런데 나는 옛날에 20년, 30년전에 다람쥐 기르고 안 길러봤는데,
다람쥐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갑니다. 알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대화하고 통하고 그럽니다. 금방 알지 않습니까? 맞은 자는 삶이
다르고 받는것도 다르다.
축복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사상도 다르고, 지혜도 지식도 다르다.
그 명철함이 다르다. 거기가 거기같은데 다르다.
“넌 지혜있어서 뭘 그렇게 얻었냐? 뭘 그렇게 했냐?”하지요.
맞고 사는 자는 그 사랑의 삶이 연속된다.
주도 삼위도 예수님도 사랑으로 맞고 살았기 때문에 말씀합니다.
사랑으로 맞지 않고는 신랑의 말을 모르니 못합니다. 안 합니다.
지금도 주를 맞은 사랑은 메시아의 사랑을 아니 온전한 사랑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주를 모르는 사람은 인생 영원한 실패자, 신앙의 영원한 실패자입니다.
세상에 맞을 것이 너무 많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맞아서 하지만,
가장 큰 것은 메시아 맞는 것이니라.
그로 인해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맞는데,
하나님을 직접 맞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중심자요, 하나님 보낸자만 직접 맞습니다.
모세도 다른사람 통해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직접 가르쳤습니다.
에수님도 다른사람 통해서 가르치지 않고 직접 가르쳤어요.
그 하나만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머지는 머리를 통해서 받아야 전부
정상이라고 했죠.
시대를 맞은 사람들 끼리만 좋아하고 간다.
어느시대든지 맞은 자들은 새 역사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 어제 받은 말씀을 전해주고. 기도하겠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어제 받은 말씀 전해주셔서 모두 깨닫게 되었는데,
모두 차원 높이게 해주시고, 내가 하나님 보고 기뻐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내가 온 것은 내가 하나님 증거해서 맞고 사랑하며 살라고 햇으니, 이들
신부들 성령께서 챙기시고 늘 함께해주시옵소서. 나야 육신을 가지고있기
땜누에 때가되면 육신을 벗고 영으로 살기때무네그때는 보기 어렵단느 것
입니다. 통하기도 어렵고. 할 대 이때 하라 했습니다. 때가 되었으니.
이 때하라. 이 때가 때라 했습니다.
때가 지나니까 여건이 돌아가서 안 되더라.
모두들 깨닫고, 섭리 모두들 70개국 각 나라들이 이를 깨닫고 열심히 하
나님 섬기며 좋아하며 존경하며 살기를 축복합니다.
모두 그러함을 받고, 코로나로 인해서 다시금 번지고있사오니
이를 완벽하게 스스로 조심하며 행해야되는데
그렇지 못한 자들로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국방문제도 안 좋은데 하나님 기억해주시고,
나는 하나님 손안에 놀아감을 알고있습니다.
성령의 손 안에 놀아가고 있습니. 나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친히 민족을 더욱 깨닫게 해주시고.
이번 기회를 통해서 모든 아픔을 통해서.
코로나에서 고통을 통해 깨닫게 한다 했습니다.
고통을 주는 것은 하나님을 더욱 깨달으라고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깨닫게 해준다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이 백성들도 모두 깨닫게 해주리라.
하나님에 관한것들 개닫게 해주리라 했습니다.
이를 오늘밤도 기도합니다. 너희들이 제대로 못하면 괴롭게해서 기어이
개닫게해줄 것이다 하나님 말씀했으니
이 말씀은 이미 금년도 코로나 시작하면서 줬습니다.
개닫게 하리라 내가. 정녕코 깨닫게 하리라 말씀햇습니다.
괴롭게 하면서 깨닫게 한다 했습니다.
하나님 하시는 일을 우리는 감히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할 수없는 자들입
니다. 감사하며 긍휼과 자비로 대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말씀 듣고 모두
행하는 모든 자에게 성부와 성자, 성령의 삼위의 큰 능력과 권능이 이들
위에 함께하고 영원할 지어다. 아멘.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