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21.01.05 (화)
화 하나님의 날 말씀
- 선포일
- 2021.01.05 (화)
- 성경 본문
- 사 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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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5일 화요일 하나님의 날, 주 말씀>
1.하는 것마다 새롭게 해야 한다. 하는 것마다 사사건건 옛날식으
로 하지 말고 지금 식으로 하라.
2.새롭게 사사건건 지금 식으로 하자. 지금 현실의 하나님이 원하
시는 대로 하자.
3.하나님은 무한한 존재자라 무한한 세계로 원하고 바라고 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주를 믿는 모든 자들이 하기는 하는데
<마음>에 그렇게 다 충만하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하
려고 마음을 먹고 정말 하려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할 것이
다.
4.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하기를 원하신다. 혼자 갖고는
역사를 못 편다. 많은 사람이 못 하면 하나라도 하기를 원하신
다. 하나라도 하면 이미 땅에서 대표로 했다 치고 하나님은 다음
세계로 가신다. 다음 주관권으로 가셔서 다시 또 행하시는 입장
이다. 안 하면 그 주관권에 하나님은 또 이들이 반복하는 삶을
살게 둘 수밖에 없다.
5.성서에는 새롭게 한다는 말씀이 많이 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도
말씀하셨다. “새롭게 한다. 분명 봐라. 새 일을 할 것이다.” 하
나님이 ‘새 일을 한다’는 것은 그 당세에 이사야 선지자 때에
직접 관한 일도 있거니와, 크게 보면 새로운 세계의 신약역사를
말한 것이다.
6.(사 43:19) 그 당세 이스라엘 백성들에도 새 일을 했다. 사막
땅을 지나 횡단하면서 강을 만들고 새로운 역사를 한 것도 있다.
그러나 크게 보면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니라 온 세계 구약인들
전체의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는 새로운 역사가 신약의 역사
다.
7.구 역사에 만족한 자들은 이것이 새 역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새 역사를 펴는 사람은 “그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이
역사가 새 역사다.” 하며 예수님을 중심해서 새로운 역사를 폈
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폈어도, 3년은 너무 짤
막한 역사였다. 일생을 두고 펴야 하는데 그 엄청난 역사를 펼
수 없었다. 아무리 몸짝 붙이고 했지만 3년 동안 해서 많이 믿지
못했다.
8.이스라엘 민족은 족속별로 발달했다. 예수님은 나사렛, 그리고
갈릴리 사람이기 때문에 이 안의 풍속에서 살면서 거기 해당되는
비유도 많이 썼다. 결혼에 대한 것도, 사는 방식도 그랬다. 그래
서 옛날에 복음을 전하기 상당히 힘들었다. 복음을 전할 때 풍속
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거부가 컸다. 받아들이면 죽이니 전달받
을 수도 없고 전할 수도 없었다. 다른 지역과는 거의 담장을 쌓
아 놓고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안 갈 정도로 굉장히 엄격했다.
9.옛날에 성씨(姓氏)별로도 가정에서 엄격했다. 그 풍토를 상당히
내세우며 살았다. 선생이 살던 시대에도 격차가 많았는데, 옛날
에는 더 어마어마했다. 지금은 그렇게 격차를 안 따진다. 지금은
관광도 다니고 서로 받아들이고 사는 때이다.
10.예수님은 원시인 시대의 사람이다. 2000년 전 사람을 원시인으
로 보지, 지금처럼 발달된 시대의 사람으로 못 본다. 지금부터
20년 전만 봐도 원시인같이 살았다. 기어 다니고 뛰어 다니고,
마치 발달 되지 못한 자의 입장에서 살았다. 20년 전 만해도
그러한데, 50년 전에는 어떻게 살았겠느냐.
11.선생도 불과 50년, 60년, 70년을 뒤돌아보면 그때보다 어마어
마하게 발달했다. 당세인데도 그러하다. 문화와 모든 것이 말도
못했다.
12.옛날에는 개발이라는 것을 생각도 안 했다. 길이 조금 좁으면
넓히려고 생각도 안 하고, 샘이 좁아도 넓힐 생각도 안 했다.
얼마나 원시인들이냐. 얼마나 무책임하고 얼마나 생각 없이 살
았냐. 그만큼 머리가 발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옛날에도 선생은 꼴을 못 보고 살았다. 고쳐가면서 싸워
가면서 살았다. 동네 사람이 죽여 버린다고, 왜 우리 땅을 파버
렸냐고 연장 갖고 쫓아다닐 정도였다. 넓혀서 넓게 살고 싶어
그랬다 하니, 내 땅이니 그대로 놔두라고 했다. 그렇게 원시인
같이 살았다.
13.예수님 시대는 2천 년 전이다. 그 시대에 예수님이 태어나서 갈
릴리 언어와 풍속에서 자랐으니, 그에 해당되는 얘기를 한 것이
지금의 성경이 되었다. 그때의 혼인잔치도 우리와는 다르다. 아
주 원시인들 같이 했다.
14.선생도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한국의 언어와 풍속에 맞게
비유를 쓴다. 그래서 “부글부글 끓이듯이 말씀을 뜨끈뜨끈하게
준다.”하는 말을 하면 한국 사람에게는 확 와 닿는데, 다른 나
라 사람들에게는 와 닿지 않는다. 한국은 끓여먹는 문화가 발달
되서 이해가 잘 된다.
15.예수님도 갈릴리의 풍속과 사는 것으로 ‘이와 같이 이러하
다.’ 하며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것이 그대로 이 시대 성경이
되듯 지금도 그러하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원어를 풀 줄 알아
야 한다. 선생은 당세에 있으니 풀어주며 가는 것이다.
16.예수님도 당세에 그 문화권을 갖고 전해봤자 잘 안 들어갔다.
문화가 달랐기 때문이다. 이스라엘만 그런 문화에 속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스라엘과 비슷한 것이 900가지나 된다.
그래서 성경을 풀고 이해하는 것이 빠르다. 아예 푸는 것은 하
나님이 사명자를 보내서 풀게 하신다.
17.예수님은 나사렛에서 복음을 전하시다가 사마리아로 가셨다. 사
마리아는 나사렛과 풍속이 아예 달랐다. 그러나 예수님은 풍속
을 뒤집고 복음을 넣는 아주 기적적인 지혜와 능통한 설득력과
말의 능력이 있었다. 고기잡이 에게는 고기 잡는 비유를 하며
말씀이 싹 들어가게 하셨다.
18.예수님 당세에 어려운 환경을 파헤치며 전한 복음이 사마리아
땅에서 이웃나라로 번져갔음에도, 지금은 왜 그때의 성경을 못
푸는가 하니 지금 식으로 푸니 그러하다. 성경을 지금 식으로
풀면 안 된다.
19.선생에게도 이 시대 복음을 가르쳐주실 때 “모르는 원시인 족
속같은 기성인들, 전체에게 모르니 가르쳐줘라. 특히 복음을 진
리를 모르는 자들에게 가르쳐줘라.” 했다. 이에 선생은 외국으
로 갈 줄 알았지만 “이 나라부터 복음을 전하라.” 해서 복음
을 전했다.
그런데 듣는 자마다 좋게 따라오지 못하고 아니라고 불신하고,
특히 기독교가 이해를 못 했다. 이해를 시키고 전초를 하면서
하나하나 몇 년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기성
에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선생은 이렇게 가르친다고 하면, 선생
이 가르친 것이 맞다고 한다. 그러나 기성에 절어있는 사람은
다르게 생각한다.
20.스타가 무엇인지 완전하게 알고, 왜 하는지 근본을 깨달아야 한
다. 완전히 깨닫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좋아하며 따라야 좋지,
그냥 히적부적 따르면 하나님도 그냥 히적부적한다. 근본 뜻을
알고 따라가면 그렇게 좋아한다는 것이다.
21.한 계시자가 아침에 기도하러 가는데, 성령께서 깔끔히 입고 기
도하라고 말씀하셔서 주일에 교회에 가듯이 깔끔하게 입고 갔
다. 그리고 기도를 깊이 하는데 영계로 들어갔고, 영계에서 위
에는 넓고 밑에는 좁은 한없는 계단을 올라갔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씀대로 지켜야지 왜 안 지키느냐. 변화 되어
야 하는데 변화 되지 않으니, 작년과 똑같은 옷을 입고 왔구나.
오늘은 깨끗하게 입고 왔으니 보여준다. 단상을 통해 계속 한
자가 선생이 아니라 나다. 나 여호와다. 사람을 보내서 너희를
구원하지 않느냐.” 하셨다.
22.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안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새롭게 해야
한다.
23.선생에게 다 묻고 해야 한다. 선생은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다.
그래서 선생에게 묻고 해야 한다.
24.(영광 돌리는 자들) 와이셔츠 입지 말고 정장 입고 나타났어야
했다. 하나님도 주도 정장을 입고 나타났다.
25.하나님은 선생에게도 “일 좀 그만하고 정장 입고 외부사람들에
게 나를 권위 있게 증거 하라.” 하셨다. 그전에는 늘 일을 하
니 추리닝을 입고 나타났는데, 그 후에 정장을 입고 나타나니까
사람들이 “근엄하다. 모습이 위엄스럽다.” 했다.
26.천사들도 지금 하나님께 경배하고 있다. 성지 땅에 꽉 찼다. 흰
옷 입은 천사들, 계급장 단 천사들, 날개 3개 달린 천사들도 꽤
많이 왔다. 아주 높은 직위의 천사들이 많이 왔다. 천사들은 경
배할 때 “영원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하면서 경배한다.
27.옛날 유대 종교인들이 하나님을 그리도 섬겨서 “내가 세상에
가마.” 말씀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이 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
렸다. 그런데 어떻게 오는지를 몰랐다. 어떻게 오냐. 과거같이
차원 높은 변화된 세계로 온다. 과거같이 온다.
28.모세가 온다고 한 것을 강조한 사람이 예수님이다. “모세가 자
기 같은 사람이 온다고 하지 않았냐.” 하시며 강조하셨다. 그
런데 그 모세가 예수님으로 온지를 몰랐다. 모세가 온다는 것의
답은 예수님이 모세같이 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온다는 것이
다.
29.엘리야도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온다고 했는데, 그 말을
세례요한이 강조했다. 세례요한이 사명적으로 엘리야다.
30.에녹이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다 갔다. 그 말이 그때는 믿어
졌다. 그때 따지는 년도로는 300년이 정확했기 때문이다. 그때
원시인들이 따지는 숫자가 있다. 이를 영계에서 예수님이 선생
에게 가르쳐주셨다. 에녹은 중간에 병들어 죽지 않고 살만큼 살
다 갔다. 그때 따지는 나이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가 따지는
나이, 아브라함이 따지는 나이가 또 다르고, 그 이후에 따지는
나이가 또 다르다. 시대마다 따지는 나이가 달랐는데, 이제는
달력도 나이도 균등화 되서 거의 따지는 것이 같다. 다만 얼마
나 더 오래 살고, 얼마나 더 건강을 얼마나 관리했느냐다.
31.예수님은 선생이 지구상에서 가장 예수님의 말을 권위 있고 우
러러 본다고 했다. 선생은 예수님께 “어떻게 사람들이 그렇게
대들고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는데도 말 한 마디로 아무 말도 못
하게 만드세요? 저도 문학을 좀 하는데 놀라 버렸어요.” 하며
칭찬했다. 이에 예수님이 “어린 것이 너무 깊이 깨닫고 얘기한
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엄청난 문학의 표현을 했
어도 모른다.
32.예수님은 학교에 가서 배우기보다, 민족의 풍속과 되어지는 일
들을 정확하게 본 것이다. 그러니 이와 같이 하늘나라도 이렇게
하신다고 말씀한 것이다.
33.한 다큐멘터리에서 종교학자들과 기독교인들이 말하기를 “왜
천국을 만들었는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육신이 이 세상에서 계
속 못 살기 때문에 영원히 사는 하늘나라 천국을 만든 것이
다.” 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살아났을 때 우리도 살아서
온다.” 한다. 앞뒤가 안 맞는다. 종교인들은 예수님이 가나안
혼인잔치와 갈릴리의 모든 풍속을 정확하게 보고 말씀한 것을
모른다. 알 리가 있겠냐. 그래서 성경을 이해하지 못한다. 메시
아를 기다린 것은 잘했는데 어떻게 올 줄을 모른다. 이미 우리
는 어떻게 오는지 알고 청춘을 불사르며 하나님의 역사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시대를 확실히 알고 가도록 하라.
34.하나님의 새 일을 한다는 것을 신약에서 이뤘다. 예수님이 오셔
서 하나님의 새 일을 함으로 어마어마하고 상상도 못하는 신약
역사가 지구촌에서 이루어졌다. 갈릴리에서 하던 역사가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온 지구세상을 뒤집으면서 했다.
35.예수님은 “구약시대도 아닌 새로운 시대인데, 새로운 사람이
와야 되지 않겠냐. 앞으로 재림 때도 다른 사람이 온다. 다른
사람이 와서 한다. 왜 내가 하겠느냐. 나는 계속 해도 신약역사
다.” 했다. 기독교에서는 더 이상의 역사는 없다고 끝났다고
하지만, 이는 가나안 역사가 있는데 구약에서 끝났다고 하고 신
광야에서 끝났다는 하는 것과 똑같다. 끝났다는 말을 하지 말아
라. 끝없는 역사가 계속 있다.
36.하나님에 대해 알려면, 영원히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니다. 2천 년 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알
았어도 다 못 알았다.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는 한도 끝도 없다.
하나님이 쓰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짝 붙이고 열심히 하
라.
37.신부들이 영광을 돌리고 가면 그 뒤는 조용하다. 조용한 시대,
고요한 때에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참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깨
달았다. 그 후에는 생활의 무대, 삶의 무대다. 무대 영광은 연
습을 수십 번 하고 하지만, 생활 무대는 연습이 없다. 그러니
하나하나 할 때 정신 차리고 해야 한다. 하나님은 생활 무대에
귀를 기울이시고 불꽃같은 눈으로 보신다.
38.<생활 무대>는 굉장히 어렵다. 단상에서나 이때는 잘 대한다.
그러나 생활 무대는 또 다르다. 단상 무대는 매일 한 번씩 강의
를 듣는 다면 2시간씩인데, 생활 무대는 22시간 정도 된다. 단
상 무대에 불이 붙어 생활 무대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