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21.04.03 (토)
토 새벽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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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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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에 주의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이든지 내가 실행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안 하면
하나님이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습니다.
주님도 실행하지 않으십니다.
주의 이름으로 안 하면
주를 떠나서 스스로 하는 자들,
하나님을 떠나서 스스로 하는 자들과 같습니다.
구약에서 신약까지, 지금 성약 시대까지 동일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고
이 세상이나 신앙의 세상이나 동일합니다.
일을 하는 것도 주인의 이름으로 해야지
주인 없이 주인의 일을 하면
주인의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해선 안 될 일도 하게 되고,
자기 주관, 생각의 일을 하게 되고,
자기 뜻을 이루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도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만,
일을 할 때도 주와 같이 해야 됩니다.
그럼 주는 늘 하나님과 소통하니까 그에게 묻고 행하십니다.
묻지 않고 행한 것은 자기 주관, 사상, 정신이 들어가서 하나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없죠.
하나님의 전을 구상하는 것도 주님이 하나님께 물어보고
그 구상을 제자들에게 전달해줬기 때문에
이와 같이 지을 수 있었습니다.
주는 이렇게 하나님께 받은 구상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중보자입니다.
또 하나님 앞엔 심부름꾼입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 머리가 됩니다.
성령폭포도 주님의 이름으로 안 했다면 북쪽 병풍 돌조경처럼 반
듯하게 쌓았을 텐데,
주의 이름으로 하니 산 지세에 따라서 볼록볼록하게 굴국있게,
아주 멋있게 만들었습니다.
아마 길게 닦았어도 사람들은 “이야 ~ 가물가물하게 쭉 끊어서
잘 만들었다.”할 것입니다.
왜요? 사람들은 신의 눈이 아니라 이렇게 해도 멋있다고 주장하
고, 저렇게 해도 멋있다고 주장하고 나갑니다.
이와 같이 성경도 요렇게 풀어도 좋다 하고, 저렇게 풀어도 좋다
고 합니다.
“예수님의 육신이 살아서 하나님 우편에 있다가 재림할 때가 돼
서 구름타고 다시 온다.”하고 푸는 게 얼마나 멋있습니까?
이것을 최고의 성경 풀이로 보고 아멘, 아멘 하죠.
그러나 이 풀이는 아닙니다.
종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듯이 인생은 때가 되면 다 죽어요.
메시아라고 해서 신체입니까? 육체입니다.
구약에서 엘리야도 육신이 하늘로 올라갔다 했는데
올라가긴 어떻게 올라가요? 영이 갔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푸는 것이 하나님의 구상대로
제대로 멋지게 푸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전대로 하나님은
땅에 있는 자 중에 뽑아서 구원주로 삼고 일합니다.
그를 통해서 일하시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뿐만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다 그러지 않았습니
까?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사람을 낳으시고, 그를 쓰고 역사하십니다.
그렇게 선지자도 쓰시고, 중심인물도 쓰시고, 뿐만 아니라 평신도
까지 다 쓰십니다.
죽은 예수님의 육신이 살아서 다시 온다고 하는 자는
사람은 윤회한다고 말하는 불교처럼 우상종교식으로 성경을 푼
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육신을 쓰고 행하실까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행하셔도 우린 실감이 안 납니다.
육신처럼 같이 먹고, 누리고 행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늘 같이 하신다고 하는데 그것이 눈에 보입니까?
안 보여요.
그런데 사람을 쓰고 하나님이 행하시면 실제 보이고, 만져지고,
같이 행해지니 실감납니다.
이 설교도 하나님이 육신 없이 직접 전하신다면 100년 동안 기
다려도 보이지 않을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상대인 육신을 쓰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뇌도 보이지 않지만 생각하는 대로 육신을 쓰고 움직이
죠?
뇌의 생각이 육신을 쓰고 손으로 나가고, 입으로 나가는 것이 법
칙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육신 쓰고 다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많은 육체들이 모두 하나님의 육체들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일체 되어 행하면
그 사람을 더욱 적극적으로 쓰십니다.
또 그중에서 하나님이 보낸 자, 구원자를
구원의 일에 적극적으로 쓰시고 그를 통해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자기 뇌가 손이 할 일은 손을 택해서 일하고,
발이 할 일은 발을 택해서 일하듯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택한 자를 쓰고 행하십니다.
사역만큼 쓰십니다.
주님이 지금 미국에 가서 전도하고 강의하지 못하죠?
영국에 가서 강의하고,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 거기 있는 사람을 쓰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전도하고자 하는 자를 쓰고 전도하고,
또 전도 하고자 안 할 지라도 하나님 필요하면,
“야 니 앞에 누구 있다. 걔 데려오자.”하고 행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를 시인할 뿐 아니라, 꼭 알아야 할 것은,
바로 나를 쓰고 하신 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의 이름으로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일하는 것도 주와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안 하면 기본적인 것은 되도, 영에 대한 근본 문
제는 해결이 안 돼요.
구원이 이뤄질 수가 없어요.
또 우리끼리 하면 착오덩어리입니다.
왜요? 주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달라요.
하나님의 생각이 들어왔기 때문에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생각을 받기 위해 골백이나 물어보고 또 물어봅
니다.
그러니 주와 같이 모으고 헤치며 주인과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삼위일체와 주님이 자기와 함께하시니 5위 일체가 됩니
다.
그러면 잘 되지 않겠어요?
이것을 이번 주에 아주 못을 박아야 됩니다.
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돼요.
이 역사도 주님이 머리가 되고, 우리가 지체되어서 43년 동안 일
하며 이뤄온 역사입니다.
우리끼리 했으면 시작도 안 됐죠.
그러니 꼭 주와 함께 해야 됩니다.
구약 모세 때, 백성들은 “왜 애굽에서 일끌어 냈냐면서”
보낸 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까지 원망했습니다.
이것 역시 자기 생각으로 따질 때는 맞는 거에요.
인간은 요리 따져도 좋고, 저리 따져도 좋아하니까요.
그러나 요리 공사해도 좋고, 저리 공사해도 좋은데
진짜 공사한 것을 보여주면 차이가 너무 나죠.
그러니 여러분들이 일을 할 때,
요렇게 해도 맞는 거 같고 저렇게 해도 다 맞는 거 같지만 진짜
하나님의 계시 따라서, 말씀 따라서, 주와 같이 한 거 하고는
상상도 못하는 차이가 너무 많이 있어요.
섭리를 등지고 나간 사람들이 있죠?
그들은 자기가 좋다고 나갔습니다,
“여기는 안 된다. 이 역사는 깨진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다.”
하며 그 방법이 좋다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본인들이 원했던 역사를 하나도 못이뤘습
니다.
자기 주관, 사고, 사상을 펴는 데
하나님은 100% 완벽하게 아예 함께 하시지 않았습니다.
왜요? 뜻이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기성에 가서 예수님을 좋아하고, 사랑하며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 물어보니 “아니다. 불신자다.”했습니다.
기성이나 섭리나 내내 전부 하나님의 것이니 한 종교와 같습니
다. 그런데 주를 불신했으니 기성에 가서든지, 어디에 있든지 불
신하는 것으로 인정을 해버리십니다.
그들은 뭐가 잘못됐다, 뭐하다 하는데
역시 우리 눈 속의 티는 지적하고, 자기 눈 속의 들보는 모르는
자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맞는 거 같은데
그것이 안 맞아요.
또 자기가 행했으니까 자기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가면 될 것 같
은데 아주 속 시원하게 안 해집니다.
왜냐, 항상 우리 육신은 약해요.
우리들은 육이요, 주님은 영이십니다.
마음과 정신의 근본하고, 육신의 생각하고 다릅니다.
주는 선입니다.
하나님이 보낸 자 바깥에 있으면 사탄 주관권에 있는 거예요.
그리고 주는 구시대와 신시대를 긋는 한계선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길 ‘나의 선을 보낸 자로 표시 한다.’하
셨습니다.
항상 주인을 중심해서 행해야 됩니다.
주와 휴거 되었지 혼자 휴거되지 않았어요.
휴거를 어떻게 하는가 사람들은 늘 물어보았지만
주가 오니까 너무 확실하게, 쉽게 휴거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주는 육신 부활도, 육신 휴거도 없다고 했습니다.
안 되는 것은 영원히 안 됩니다.
남자가 여자가 되려면 평생해도 안 됩니다.
천국 황금성에 가서도 그대로입니다.
이와 같이 근본을 깨닫고 알 때 가장 잘 풉니다.
동서남북의 길이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됩니다.
여러분도 전도하거나, 뭐하거나, 섭리를 살아가거나, 인생을 살아
갈 때에 이렇게 가도 길, 저렇게 가도 길입니다.
그런데 어떤 길이 가장 이상적인 길인가.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 일체된 방법의 길이
최고의 후회 없는 영원한 길입니다.
그리고 항상 주를 써먹어요. 주를 써먹으면 그게 지혜자입니다.
늘 그 이름으로 기도도 하지만
그와 같이 일도 하고 그와 같이 먹고 즐기고 그와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기간 때는 못 만나서 못한다고요?
그런 불가능한 역사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쓰고 하는데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누구를 만나는 기간이 아니고 자기를 만드는 기간입니다.
코로나 기간 때는 혼자 화장실 가는 기간과 똑같아요.
개인주의에 그만큼 신경 쓰고 해야 될 때고,
코로나 기간 때도 화면으로 얼마든지 만나요.
자기 주관권을 돌아다녀야 하나님께서 주관권에 뿌려 놓은 것을
얻고 찾을 수 있습니다.
찾으면 끝없는 일들이 많아요.
그렇게 하면서 늘 삶을 재미있게, 의롭게, 감격하며 살고
휴거란, 휴거만 했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집 사놓고 가만히 있는 것과 같고
먹을 것 잔뜩 사놓고 식어 빠지게 되는 거나 똑같아요.
휴거만 해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휴거 하고서
‘이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신부가 되어서 재미있게 사는 것이
다.
이것이 나의 원한의 꿈이다. 천지 창조한 목적’이다.
하셨습니다.
왜 천지창조를 하셨습니까?
결국은 지구상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신랑으로
삼고 같이 영~원히 살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좋은 것을 못하고 돈만 벌고 권력만 갖고 가지려 하
고,
예술성에 빠져서 살기만 하고 물질에 빠져, 땅에 빠져, 자기의 좋
아하는 것에 빠져 사랑에 빠져 살기만합니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길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할 필요
가 있느냐? 나를 사랑하면 내가 알아서 사랑할 사람을 주고, 사
랑하게 해주고, 서로 하나 되어서 살게 해준다.”하셨습니다.
이런 삶을 일생동안에 언젠가 라도 한 번 살아보고 죽어야지 원
한이 없지
그걸 자기 마음껏 자기 힘껏 자기의 최고의 첨단의 한계 것 살아
보다
죽는 것이 자기로서는 최고의 할 일을 하고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들 신앙생활 하면서 한 번 “야 더 할 수 없도록 최고의
기도도 해보고, 더할 수 없도록 하나님도 사랑해보고 주를 사랑
하고
더할 수 없도록 형제도 사랑하고
아주 상대가 만족하다 할 정도로 음식도 사줘서 실컷 먹으라고”
할 정도로 해보고 죽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사고를 갖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있을 때 하나님과 성령님을 최고 더 이상 없게 만족하
게 사랑하고 또 원하는 것을 다 하자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달력을 보면 쉬는 날도 없이 뛰고 달리십니다.
주님은 하나님께 “만일에 나에게 일을 안 맡긴다면 나는 시험
들어서 섭리 나가겠다.”하실 정도라고 했습니다.
옆에 사람들은 선생님이 여기 저기 뛰어 다니고, 또 밤늦도록 일
하고, 새벽에 기도하러 가는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이 너무 고달
프겠다고,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오히려 “나는 하나님이 안 시키면 시험 들고
나간다.”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뛰는 게 좋으시대요. 왜? 옥에 있을 때 무엇이든
시키라고, 내가 나가서 엄청나게 할 거라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요즘 생각하는 것이 뭔고 하니
7년 동안 기도한다,
10년 동안 기도한다 그거 약속해놓고 하는데
뭐 70일 기도 100일 기도 1000일 기도가 아니에요.
그것은 나눠서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하시고,
또 하나는 나에게 일을 충분히 많이 맡기라고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가 극적으로 최고로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뛰
는 거예요.
그래서 하루에 다섯 번 열 번 설교가 들어와도 다 해주실 수 있
다고 했어요.
왜냐면 육신 건강하게 해주셨기 때문이고,
선생님의 집념이 하나님께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나오셨을 때는
“나 이제 안 한다, 언제까지 또 하라는 거여?
너희들이 있는데. 왜 나만 일 시켜 왜? 너희들은 안하고”하시면
서 짜놓으면 또 하고 짜놓으면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다 하십니
다.
이와 같이 여러분들도 전도도 하고 싶어 하고, 강의도 하고 싶어
하고, 누가 오면 천사가 온 것 같이, 하나님이 온 것 같이 얘기하
고 늘 그래야 됩니다.
모든 일거리를 마치 내가 짝사랑하는 자가 돌아온 거 같이 좋아
해야 됩니다.
본인이 그렇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셔요.
하기 싫은 거 꾸역꾸역 하면
맛있게 해다 준 밥도 뺏어서 개에게 줍니다. 개는 꼬리를 치며
좋아하니까요.
이와 같이 여러분들도 하고 싶어서 좋아하면서 막 해야 돼요.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우리 섭리역사는 첨단의 머리이신 주님이 첨단에 더 이상 없는
진리를 가르쳐주시고, 그 말씀대로 사니까
하나님, 성령님, 성자께서 확확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43년 동안 행한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하는 자는 구원을 받고, 잘 되고, 형통합니다.
왜요?
주는 주의 이름으로 나오는 자들을위해 조건과 공적을 세워놨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그
랬습니다.
숨을 안 쉬면 금방 죽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의 이름을 부르며 휴거의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