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21.09.19 (일)
주일말씀
- 선포일
- 2021.09.19 (일)
- 성경 본문
- 로마서 8장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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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9 주일말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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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9일 주일말씀>
‣ 정조은 원고 : 선생님께서 전 세계에 보내 주라 하셔서 보냅니다.
전 세계 교역자들, 신학생들은 특히 참고하라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육적인 모순>을 잘라야
<자신의 크고 아름다움>을 나타내 기쁘게 한다
본 문 영적으로 해야 온전하게 보이기도 하고 들리기도 한다.
<육의 생각>은 하나님 마음을 거스르나니
<성령의 생각과 감동>으로 하여라.
자기 모순을 제거해야,
아름답고 큰 자임을 인정하며 알게 된다.
로마서 8장 6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인사 후, <주제 발표>와 <성령님 말씀>
• <오늘 주제>부터 발표하겠습니다.
여러분 알죠? <주제>는 ‘말씀의 핵심’입니다.
<자막1> 누구든지 <자기 육적인 모순>을 잘라야
<자신의 크고 아름다움>을 나타내 기쁘게 한다.
* 그러면 <성령님께서 선생님을 통해 하신 말씀>을 -
앞에 <시대 성경과 성경 봉독 시간>을 통해서 들었지만,
지금 한 번 더 정리해서 들어보겠습니다. <영상1>
• <영적>으로 해야 ‘영의 세계’가 제대로 보이고 들리며,
<육의 세계의 것>도 제대로 알게 된다.
• 또한 <하나님과 성령님>도 ‘영’이시니,
<영적>으로 해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잘 통하게 되어
<그동안 잘 몰랐던 것>을 깨닫도록
말씀해 주시고, 보여 주시고, 듣게 해 주신다.
• <영적>으로 하지 않고 <육적>으로 하면,
<하나님과 성령님의 마음을 거스르는 자>가 된다.
• <영적>으로 해야 ‘육의 것’도 ‘하나님께 속한 것’도
제대로 보여 주고 듣게 하고 알게 해 준다. <끝>
• 아직은 어떤 말씀을 할지, 모르겠죠?
오늘 말씀은 깊지만, 쉽습니다.
• <먼저 성령님이 해 주신 말씀의 핵심 키워드>는?
★‘영적’으로 해야!! - 그러면?
- 첫째, <영의 세계>가 보이고 들린다.
- 둘째, <육의 세계의 것>도 제대로 알게 된다.
- 셋째, <하나님과 성령님>과 잘 통하게 된다. “그러니까?”
- <그동안 몰랐던 것>을 깨닫도록
말씀해 주시고 보여 주시고 듣게 해 주신다.
<첫 번째 말씀>
• 그렇다면, <오늘의 첫 번째 말씀>
왜 ‘영적’으로 해야 될까?
왜 그런지 알아야, ‘동기부여’가 돼서
<해야겠다는 마음>도 생기고 <하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 먼저,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는지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육의 몸>만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세 가지>로 창조하셨습니다. 어떻게?
<도표> <육의 몸=육체>, <혼의 몸=혼체>, <영의 몸=영체>로
창조하셨습니다. (<육>이 태어나면서, <혼과 영>도 존재하게 됨.)
• <육의 몸>으로는 무엇을 하느냐?
<육의 것>을 보고 듣고, <육의 생각>만 하며 삽니다.
<육의 몸>으로 ‘영의 것’까지 보고 듣고 생각하면
<육신>이 제대로 살 수가 없겠죠!
•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의 몸>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의 몸>은 ‘영의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영의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 <영의 몸>을 가지고 ‘영의 생각’을 하지 않으면,
- 그 <영>이 제대로 ‘존재’하거나 ‘성장’하지도 못하고,
- <영의 것>을 ‘보고 듣지도’ 못하고,
- <영의 세계>에 ‘갈 수도’ 없겠죠!
• 그래서 - 하나님도 성령님도 말씀하시기를 <자막2>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영의 몸>이 있으니,
<영의 생각>을 하고 살아야만
<영의 것>을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하셨습니다.
• 아~ <영의 몸>이 있으니, ‘영의 생각’을 해야
<영의 것>이 보이고 들리는구나!! (이해했어요?)
<두 번째 말씀>
• 그렇다면, <오늘의 두 번째 말씀>
왜 ‘영의 생각’으로 해야 할까?
• 먼저 <육의 몸>을 생각해 봐요.
<육의 몸>이 있는데 ‘육의 생각’을 하지 않고
<육의 것>을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산다면, 어떨까요?
<몸은 살아 있는데 아무것도 못 하는 : 식물인간>과 같겠죠?
그래서 우리는 <육>을 가지고,
<밥>도 먹고, <잠>도 자고, <공부>도 하고, <생활>도 하고,
각종 ‘육의 것들’을 보고 듣고 접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야 ‘육이 존재’하니까요.
• 그러나 <육>만 있는 게 아니죠!!
사람은 누구에게나 <혼>도 있고 <영>도 있습니다.
그런데 <육의 생각>만 ‘중심’하고
<육의 것을 보고 듣는 것>만 ‘중심’하고,
<영의 생각, 혼의 생각>은 하지 않고
<영과 혼>에 대해 관심도 없이 산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영의 것>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되겠죠?
그러면 <영혼>은 제대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식물혼체, 식물영체>와 같게 됩니다.
<식물인간>은 - 몸을 못 움직일 뿐이지 다 보고 듣잖아요.
그러니까 모든 감정을 다 느낍니다.
<영혼>도 그러합니다.
<육>이 ‘육의 생각’만 하면,
<영혼>이 제대로 존재하지 못하니 – 영혼은 울어요.
<영혼>이 ‘육’보다 뛰어나지만, ‘특징’이 있기 때문이죠!
반드시 <육신>이 행해 줘야, <영혼>이 성장하니까!
(‣ 이쯤에서 적절한 위치에 <고욤나무, 참감나무> 비유 들면서
<육>과 <영>에 대해서 더 설명해 준다.)
(‣ 육, 혼, 영의 ‘대장(리더)에 대해서도 적절한 위치에 넣어 준다.)
• 그래도 어때요?
이 세상에서는 <육>을 중심해서 살아가니까,
아무래도, 우리가 노력해도 ‘육의 생각’으로 쏠리게 되겠죠?
• 맞아요! <육의 생각>은 ‘육’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육의 생각>은 자기 ‘혼과 영’까지 살릴 수 없습니다.
반면 - <영의 생각>은 ‘육’뿐 아니라
<혼과 영>까지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육’도 ‘혼’도 ‘영’도 존재하게 만들어 줍니다.
<영의 생각>은 ‘가장 높은 생각’입니다.
• 그럼 여기서 잠깐! <영의 생각>이 뭐예요?
쉽게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 생각>
• 오늘 성경 본문 <로마서 8장 6절>을 보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 사람들은 대부분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고 살듯이,
<육신의 생각>은 ‘영의 것’이 아니라,
<자기 것> = ‘육의 것’만 생각하고 보고 듣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육이 태어난 이유와 목적>을 모른 채
겨우 ‘육신 하나’만 존재시키고 끝납니다.
<육신>을 가지고 - ‘혼과 영’을 존재시키고,
그 육신이 ‘주’를 믿고 ‘주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자기 영혼>을 구원하고 휴거시켜야 하는데,
<육>은 ‘육의 생각’만 하니,
결국 <혼과 영>을 ‘사망’으로 가게 내버려 두는 꼴이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육신의 생각>은 ‘결국 사망’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 그러나 <영의 생각>은 -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를 생각하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의 것>을 보고 들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육신>을 가지고 ‘육’도 존재시키고,
<자기 영혼>도 존재시키고 성장시키고 휴거시켜
<육, 혼, 영> ‘모두 성공’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한 것입니다.
<영의 생각>으로 해야 ‘삼위와 주와 연결’되어
<영>은 ‘천국’으로 가고 <육신>도 ‘평안’하게 살게 됩니다.
• 첫째, 왜 ‘영적’으로 해야 돼요?
<영의 몸>이 있으니 ‘영의 생각’으로 하라는 것!
둘째, 왜 ‘영의 생각’으로 해야 돼요?
<영의 생각>은 ‘가장 높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와 ‘연결’시키기 때문에,
<육>도 평안하게 존재하게 하고,
<영혼>도 존재하게 하며 살린다. (여기까지 이해했지요?)
<세 번째 말씀>
•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오늘의 세 번째 말씀>
어떻게 해야 ‘영의 생각’으로 살 수 있을까?
• 이 부분이 <오늘 말씀의 최고 하이라이트>입니다.
어떻게 해야 ‘영의 생각’으로 살 수 있을까?
<주제>에 ‘힌트’가 나와 있습니다. <주제>에 뭐라고 했죠?
<자막5> <자기 육적인 모순>을 잘라야
<자신의 크고 아름다움>을 나타내 기쁘게 한다. (잠시 쉬었다가)
• 여러분이 볼 때,
평소에는 ‘보통’으로 보이고, 혹은 ‘하찮게’ 보이고,
혹은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것들이 많잖아요.
자기 자신도, 부모님도, 형제들도,
섭리사도, 말씀도, 창조 목적도, 휴거도,
이 세상도, 각종 육적인 것들도, 나무도, 하늘도, 각종 만물도...
이런 것들이 <영의 생각>과 <성령의 감동>으로 보고 들으면,
<최고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 그런데 왜 그렇게 안 보일까?
<육신의 생각>이 ‘영의 생각’을 가려서
<영이 생각하고 보는 것>을 제대로 못 보기 때문입니다.
• <핵심> <자기 육적인 모순>은 ‘영의 생각’을 가립니다.
그러니까 ‘좋은 것, 귀한 것’이 안 보입니다.
• 왜 <자기모순>이 ‘영의 생각’을 가리는지,
지금부터 ‘나무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 주겠습니다.
* 이 부분이 <오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영상을 보면서 이야기해 줄 테니까,
집중해서 잘 보기 바랍니다. <영상2>
• 어느 날 하나님께서 <기도동산>을 보고 말씀하시기를,
“여기 내가 다니는 길이다.” 하셨습니다.
• 그래서 깨끗하게 <돌>로 ‘길’을 만들어 놨는데요,
이때 성령님께서
<그 옆의 많은 나무들 중>에서 ‘한 나무’를 보여 주시면서
“잔가지가 가리고 있는 저 나무를 봐라.
잔가지들을 제거하자.” 하셨습니다.
• 그래서 그 나무를 보니까 ‘잔가지들’이 너무 많아서
그 잔가지들이 <나무의 본래 수형>을 가려서 안 보였습니다.
마치 ‘<자기모순>이 <자기>를 가리고 있는 격’이었습니다.
• 선생님은 한 시간 동안 잔가지를 다 쳐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나무의 정말 멋진 큰 가지>가 ‘네 개’나 보였습니다.
잔가지를 치고 그 나무를 다시 보니,
보는 사람들마다 “와~~ 정말 <대걸작솔>이구나.” 감탄했고,
<기도동산에서 최고로 멋있는 소나무>라는 것을 시인했습니다.
• 이 나무가 <기도동산에서 대걸작품 중의 하나>인지,
그동안 선생님도 수백 번을 봐도 몰랐고, 누구도 몰랐습니다.
최근에 깊이 기도하면서 더욱 ‘영적’으로 사니 -
성령님은 ‘영의 생각’으로 보고 듣고 행하게 하셨고,
행하고 나니 깊이 깨닫게 하셨습니다.
• 이 나무는 <기도동산 개선문 옆>에
<하나님이 말씀하여 옮겨 심은 가브리솔>에서
15m 떨어진 양달쪽에 있습니다.
• 이 나무는 땅에서부터 3m 높이로 쭉 뻗어 가면서
<한 아름씩 되는 네 개의 큰 가지>가 ‘한 몸’이 된 나무입니다.
3m 위부터는 <네 개의 큰 가지>가 동서남북으로 뻗어서
<수형>이 아름답게 잘 잡혔습니다.
직접 보면, 훨씬 더 멋있습니다.
• 이 나무는 <전망대 분재솔>보다도 작품성이 있고,
<잔디밭 위의 Y자 소나무>보다도 작품성이 있고,
<기도동산의 기도 표적솔>보다도 작품성이 있고,
<기도동산 개선문 옆에, 수형이 최고로 좋다는 소나무>보다도
더 작품성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 <이 나무의 사진>을, 한 번 더 보면서 이야기할까요?
• 이 이 나무의 <한 가지 특징>을 더 말하자면,
<위>는 ‘붉은 홍송’이고, <아래>는 ‘검은 흙송’입니다.
• 그리고 <가장 큰 특징>! ‘네 개의 큰 가지’가 확실히 보이네요!
여기서 퀴즈! 선생님께서 <이 나무의 이름>을 지으셨죠? (브이로그)
힌트!! ‘가지가 네 개인데, 한 나무에 일체 되어 있다.’
<사위일체솔>
첫째 - 하나님, 성령님, 성자 = 3위 / 주+우리들 : 4위
<삼위와 우리가 일체 됨>을 상징!
둘째 - <동서남북으로 쭉 뻗은 네 개의 큰 가지>는
동서남북으로 웅장하고 조화롭게 구상된 자연성전을 뜻함.
셋째 - <모범으로 신앙을 하자는 상징솔>이기도 함.
넷째 - <성령님>이 ‘선생님’에게 보여 주시며,
기어이 실천하게 하고 나서 주신 말씀 : <성령솔>이라고도 함.
• 그럼 <이 나무가 가진 사연>도 있나요? 그럼요!!
* 이해가 잘되게, 다시 <영상>을 보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추가 영상>
• 1993년 4월 26일 오전 9시 - 이 날은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실업 축구팀 전국 리그전>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섭리사에도 ‘실업 축구팀’이 있어서
선생님도 참여하기 위해 서울로 가려고 했습니다.
• 그래서 선생님은 전망대에서 기도하고,
<자연성전 전망대의 능선>을 타고서
<앞산이 제일 잘 보이는 위치>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너무 아프고 어지러워서
<그 자리>에서 바로 주저앉았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그 자리가 바로 <사위일체솔>이 있는 자리입니다!!
• 하나님은 여기서 <현재 야심작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 주시며,
“이렇게 하여라.” 하고, 영적으로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위일체솔>을 다른 이름으로 말한다면,
<하나님께 자연성전의 구상을 받은 장소>에 주신
<표상솔>입니다. <끝>
• <정리>
삼위와 주+우리 일체라서 = <사위일체솔>
하나님께 자연성전의 구상을 받은 장소에 주셔서 = <표상솔>
• 그러면, <사위일체솔이 있는 위치>를
가장 쉽게 설명해 주겠습니다.
<사진> 생가터 기념관 뒤 – 여기서 보면, 앞산 야심작이 딱 보임.
• 하나 더!! (★오늘 말씀의 최고 최고 핵심)
이 소나무같이 섭리인들도 모두 영적으로 육적으로 갖춰져 있다.
그런데 <자기 육적인 모순>이 ‘자기’를 가리고 있다.
이 모순들을 - 가지치기 하듯 자르면,
<자신>이 ‘영육으로 웅장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알게 된다.
* 이 나무를 통해 <성령님>은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볼래요? 다시 영상을 보겠습니다. <영상3>
•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가린 것을 잘라내니,
<기도동산의 걸작솔>로 확인되어 시인하지 않냐.
섭리사 모든 사람들은 ‘이 나무’와 같다.
이와 같이 <자기 육의 생각>이 <자기 영의 생각>을 가리면,
자기가 <큰 작품>인데도 안 보인다.
그러므로 육의 생각, 이성과 세상 향락,
세상에 속한 그릇된 것들, 미디어, 세상 생각,
미움, 다툼, 의심, 불평불만, 태만함, 게으름을 다 잘라내라.
그래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를 생각하고,
<영의 생각>으로 보고 듣고 행하게 된다.
그제야 <자기>가 ‘큰 작품솔’같이 귀히 보인다.
그러니 <영적인 것을 좇아 행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고,
<영적>으로 행하니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고,
<영의 세계>가 얼마나 큰지도 알게 된다.
저마다 <자기 육의 모순>과
<하나님이 원치 않는 육의 생각>을 잘라내야
<육>도 <혼>도 <영>도 빛나게 되고,
<자신>이 ‘큰 걸작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이 말씀을 모두에게 전하여
깨닫게 하고 행하게 하자.” 하셨습니다. <끝>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부분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말씀해야 함. 그리고 당부)
• 전 세계 SS들!!
하나님과 성령과 주님께서
여러분의 <육과 영>을 이 소나무처럼 만들어 놓으셨대요.
그런데 <자기 육적인 모순>이 ‘빛나는 자신’을 가리고 있대요.
<자기 육적인 모순>을 하나하나 없애다 보면,
결국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섭리사의 가치>를 발견하고,
<창조 목적의 가치>를 발견하면서 ‘빛나는 자신’을 찾고,
너도, 나도, 삼위도, 주도 보면서 감탄하고 기뻐합니다.
• 여러분은 다들 하고 있죠? 이미 시작했죠?
<슈스예배>를 통해 <주님의 말씀>이 들어가면서, 변화되고 있죠?
(*여기서부터 <슈스예배 피드백, 편지를 참고해서 마무리)
노담, 노술, 노이동, 노음, 노미디어.
웹툰, 음란물, 미디어, 아이돌을 끊은 SS들의 사례.
<유투브 자리>를 ‘팜’으로 바꾼 사례 등등
실제로 행하고 있는 SS들의 사례를 말해 주면서 마무리
• <팜스테이션>을 통해 ‘영적인 것들’ 보고!!
<가장 영적인 성령과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또 <모두 함께 21일 특별기도>에 동참하기도 하고!!
특수부에, 10대 교사에, 말씀 듣고 하나하나 해 나가고 있다.
엎어지면 또 뒤집어지기 위해 : 오늘도 또 왔다! 잘하고 있다!
이렇게 <자기 육적인 모순>을 하나하나 잘라내다 보면,
<자기를 가리고 있던 것들>이 없어지면서 – 오늘 주제처럼
<아름답고 위대한 자기 육과 혼과 영>을 보고 기뻐하게 됩니다!
* <오늘 말씀의 핵심>을 한 번 더 영상을 통해 정리하면서,
마치겠습니다. <영상4>
• 첫째, <영적>으로 해라. (왜?)
<영의 몸>이 있으니 ‘영적’으로 해라.
• 둘째, <영의 생각>으로 해라. (왜?)
<영의 생각>은 ‘최고 높은 생각’으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를 생각하게 하고,
그 생각만이 ‘육, 혼, 영’을 다 살린다.
• 셋째, (오늘 말씀의 최고 핵심)
<자기 육적인 모순>을 잘라라.
그래야 ‘자기가 크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어떻게 <육 생각의 가지들>을 자를까?
<영의 생각, 하나님과 주가 주신 생각>으로 자르자!
그러면, <사위일체솔>처럼
<자기>가 ‘걸작인생’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끝>
누구든지 <자기 육적인 모순>을 잘라야 된다.
Everyone must get rid
of <the faults in your physical life>
그러면, <자신의 크고 아름다움>을 나타내 기쁘게 한다.
Then! 'your beauty and greatness'
can shine through and be pleas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