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21.11.19 (금)
금 새벽잠언
- 선포일
- 2021.11.19 (금)
첨부 파일
- PDF
20211119 금 새벽잠언.pdf
83.6 KB
<2021년 11월 19일 금요일 새벽, 주 말씀>
* 새벽 설교를 할 때는
항상 <주일말씀 주제>를 먼저 읽고 인식시켜 주고,
그다음에 <잠언>을 전해 줘야 된다.
모두 금주 말씀에서 나온 잠언들이니,
<주제>를 생각하면서 들어야 ‘그에 해당되게’ 깨닫는다.
* 설교자는 <잠언>을 읽어주기만 하지 말고,
잠언을 한 절, 한 절 풀고 해석해 주면서 설교해 주어라.
1.<안 계시던 성령님>도 찾고, 찾고, 찾으면 오신다. 오셨을 때 같
이 행하면, 무(無)에서 유(有)로 ‘창대한 역사’를 이루게 된다.
2.<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무(無)의
존재자’와 같다. 인간이 <삼위>를 찾으면 역사하시니, 그때
‘그 존재하심’을 알게 된다. 그러다 합당하면 상징적으로 보이
기도 하신다.
3.<메시아>도 ‘실 가닥 같은 데’서 시작하여 <천국으로 가는
길>을 내고, 후에 거기에서 또 <황금천국으로 가는 길>을 냈다.
마치 <성령 길>을 만들 때 ‘소로 길’을 내고, 그다음에 ‘흙
길’을 내고, 그다음에 ‘자갈을 깐 길’을 내고, 그다음에 ‘콘
크리트길’을 내고, 그다음에 ‘아스팔트길’을 낸 것같이, <천
국 길>을 다니다가 <더 좋은 황금천국 길>을 낸 것이다.
4.<처음>에, <구약 때>부터 ‘황금천국의 길’이 열린 것이 아니
다. ‘실 가닥 같은 종의 길’로 시작해서, 후에 ‘자녀 길’로
점점 차원이 높아지다가, 마지막에 ‘신부 길’로 성약역사가 이
루어지고, <결국>에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황금천국 세계’가
이루어졌다.
5.<처음>에 ‘아는 사이’로 지내다가, 그다음에 ‘심부름시키는
사이’로 지내다가, 그다음 ‘형제’같이 지내다가, <결국>에는
‘애인’이 되어 평생 같이 살게 되듯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
자는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한 목적>을 점진적으로 이루어 오
셨다.
6.<집>을 지을 때도 - 하다 말면, ‘짐승이 사는 집’이 되고, -
끝까지 하면, ‘왕궁’도 되고, 나름대로 ‘천궁’도 된다.
7.<끝까지> - ‘희망’으로, ‘강한 마음’으로 하여라.
8.하나님은 <끝>에서 ‘네가 하는 일’을 지켜보신다. 끝까지 가
면, 하나님을 만나 ‘신’이 되어 살게 된다.
9.<신의 경지>는 ‘전능자 하나님과 성령님과 만나서 사는 단계’
다.
10.<무(無)>에서 시작하면, ‘창조자’가 된다. <유(有)>에서 시
작하면, ‘제2 창조자’가 된다.
11.(하나님) <나 여호와>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했듯이, <너>도 ‘아무것’도 없어도, ‘혼자’라도
행하여라. 하다 보면 ‘할 일’이 보이고 생각나고, 결국 ‘창
대한 역사’를 낳게 된다.
12.<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자>가 많이 얻고 누린다.
13.<하나님과 성령님>은 무(無)의 세계에서 보이지 않게 행하신다.
14.<하늘>에서 받아서 하려고만 말고, <하늘 아래, 하나님과 성령
님의 뜻 안>에서 생각하고 행하고 살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만큼 창대해진다.
15.편한 만큼, 올라가기는 어렵다. - <육>이 편하면, 그만큼
‘영’에 속해서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고생되고 편하지 않은 만큼, 올라가기 쉽다. - <육>이 고생돼
도 ‘영’에 속해서 하기 때문이다.
16.알고 보면, 사람들은 저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맨땅>에
서 시작하여 오늘날같이 만들고 살게 됐다.
17.성령과 함께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여라.
18.“하면 된다.” - 이 한마디 말씀이 ‘인생의 자본’이다.
19.<악>으로 하면, 때가 되어 자동적으로, 행한 대로 받게 되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악>은 하면 할수록 ‘소돔 땅’같
이 불바다가 되고, ‘그 영’도 불바다로 가고 만다.
20.이 잠언을 쓸 때도 <무(無)>에서 시작했다. 써 놓으니, <온 만
민에게 전할 하늘의 위대한 말씀>이 됐고, <하나님과 성령님이
인생들에게 주시는 성공 비법>이 됐고, <평생 동안 거울이 되
는 말씀>이 됐다.
21.새벽에 2시간을 기도하고 나서, ‘잠언을 안 썼으니, 하나라도
쓸까?’ 했다. <처음>에는 ‘잠언을 쓰고 싶은 마음’도 전혀
안 들었고, ‘잠언’이 생각나지도 않았고, 성령님이 주지도 않
으셨다. 그래도 혼자서 ‘잠언 하나’를 쓰고, 또 쓰고, 또 쓰
니, <결국>에는 성령님이 말씀해 주셔서 이같이 쓰게 됐다. 계
속 쓰면, ‘잠언 백 개’도 ‘천 개’도 연속해서 무한히 나오
게 된다. 그러므로 너도 이같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여
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