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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22.10.01 (토)

230305 주일말씀

선포일
2022.10.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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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를 그대로 전하지 말고, 핵심을 참고하여 설교를 준비하시면 됩니다. <2022년 10월 1일 지역장모임 말씀>의 핵심을 정리한 문서이니, 선생님 모임 영상을 다시 보고 설교를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누어 설교문을 만들기 - 순서 재배치해도 됨. 앞뒤로 들어갈 보충 설명해 주기 - 선생, 나, 내가 – 라고 표현된 부분은 ‘선생님’으로 바꾸기. - 성구가 나오는 부분은, 설교자가 자막 준비해서 띄우기. * 주제와 본문은 추후 공지를 통해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2023년 3월 5일 주일 핵심 말씀> • <이 시대를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 최고로 크다. 하나님은 항상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이 시대를 맞고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가르쳐 주신다. • <각 분야별>로 세밀하게 가르칠 때가 있고, <전체>를 하나로 조립해서 가르칠 때가 있다. • <자동차>를 만들 때도 ‘각 부속품’을 공장에서 만들다가, 부속품들을 조립해서 ‘하나의 자동차’로 만든다. 이와 같이 <말씀>을 인식시킬 때도 한 번의 설교로 몽땅 다 가르쳐 주지 못한다. 각 분야별로 ‘주일말씀, 수요말씀’을 통해 인식시키다가 때가 되면 조립해서 ‘이 시대’를 완전하게 인식시켜 줘야 된다. • 섭리사는 때마다 인식시킬 것을 제대로 인식시키기 위해 <각 분야별>로 집중적으로 가르쳐 왔다. 초창기에는 <예수님>에 대해서만 가르치고, 또 한참 오다가 <선생>에 대한 것을 가르치고, 또 한 동안은 <하나님>에 대해 자세하게 가르치고, 또 어느 때는 <성자>에 대해 밝히며 자세하게 가르치고, 또 어느 때는 <성령님>에 대해 밝히며 계속해서 가르쳐 왔다. • 사람은 뇌 특성상, <그때 가르치는 것 하나>만 알고 생각한다. <어린아이>일수록 그러하다. ‘하나’를 들면 ‘다른 하나’를 놓치고, ‘다른 하나’를 들면 ‘또 다른 하나’를 놓치는 격이다. <제대로 배우고 성장한 신앙의 어른들>은 ‘그동안 배운 시대교리’를 딱 쥐고 있으니, ‘전체’를 제대로 인식한다. • <각 분야별로 가르칠 것>을 집중해서 가르쳐 줬으면, 꼭 <전체>를 조립해서 하나로 인식시켜 줘야 된다. • <자동차>도 부속품을 만들 때는 외부 따로, 내부 따로, 엔진 따로 보니 ‘차’라는 인식이 안 된다. 각 부속품들을 가져와서 조립하면, 그때 ‘차구나’ 알게 된다. • 이와 같이 <말씀>도 ‘전체’를 조립해서 가르쳐야, <시대>를 제대로 인식하고 깨닫게 된다. 그동안 <삼위>와 <예수님>과 <사명자>를 따로 가르쳐 주다가, 이제 ‘전체’를 조립해서 쭉 가르쳐 주니, <이 시대에 대한 인식>이 완전하게 되고 있다. *** <신랑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예수님의 육신>이 되어 행해 드려야 된다. • 선생이 행한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영이 다시 온 것>을 발견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발견한 것이 아니라, 20년 동안 공부하고 성경을 보고,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산(山)기도하면서 배웠다. 배워도, <확실하게 인식하는 것>은 어려웠다. • 선생이 15살 때 예수님이 “너는 나의 사랑하는 신부다.” 했어도 그 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 했다. 예수님이 “나는 신랑이다.” 했을 때 바로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예수님이 신랑으로 다시 오신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왜? <기독교>에서도 예수님을 ‘신랑’이라고 하니까. 엄격히 따지면 신약 때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는데, 마태복음 25장을 보고 예수님을 ‘신랑’으로 부르기도 한다. • <선생이 15살에 예수님의 영을 맞았을 때>는 ‘재림’에 대해 아예 인식을 못 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림주 예수님을 맞은 것’으로 인식했다. 그러다 예수님께 성경을 깊이 배우고 나서 묻기를 “예수님이 다시 온다더니 다시 온 것인가요? 이것이 환상인가요, 실제인가요?” 하니, 예수님은 “실제다.” 하셨다. “실제면 정말 예수님이 다시 온 것이 맞나요? 어떻게 하찮은 저에게 오실 수 있나요?” 물으니,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백만 명이 있어도 사랑하는 자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가듯이, 많은 사람이 나를 기다려도 사랑하는 자를 찾아간다.” 하셨다. 이렇게 하나하나 인식하면서 계속해서 말씀을 배웠다. • 선생은 어려서부터 ‘산속의 흙’을 반반하게 만들어 놓고, <예수님>이 오시면 ‘발자국’을 보고 알아보고 맞는다고 했다. 예수님의 영이 나타나서 다시 왔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으면, <땅의 흙을 반반하게 하는 것>을 그만두고 <다시 오신 예수님의 영>을 맞는데 집중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것이고, 이것은 이것이라고 따로 생각했다. <예수님의 영을 맞은 것>은 맞은 것이고, 다시 온다고 하셨으니까 <예수님의 육신>을 또 기다렸다. <기독교 인식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시대 인식관>이 그렇게 무섭다. 선생이 그랬듯이 <인식을 확실하게 하지 않은 자>는 아직 ‘인식이 덜 된 것’이다. • 선생은 10대 때 산(山)기도를 하면서 예수님께 ‘성경’을 배우고, 1978년에 세상에 나와서 ‘시대 복음’을 외치다가,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을 외쳤다. 선생도 <다시 오신 예수님>을 완벽하게 인식하고 외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아무리 사명을 받았어도 쉽게 아는 것이 아니다. <완벽하게 인식하는 것>이 한순간에 되지 않는다. 예수님이 자세하게 가르쳐 주셔도 육이라 금방 잊어버리고, 생활에 부딪히면 다시 ‘아닌가?’ 하게 된다. 따르는 자들이 확실히 인식하지 못한다고 나무랄 것 없다. 육이라, 쉽게 안 된다. 선생도 시대를 정확히 깨닫고 인식하기까지 20년 밤낮 주야로 배우고 알았는데, 따라오는 사람들은 얼마나 어렵겠냐. •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신앙을 넣어 주셨으니, ‘예수님을 뿌리로 하는 것’은 기성의 신앙과 다를 것이 없다. <섭리사의 모든 말씀>은 ‘영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을 맞기 위한 말씀’이었고, ‘예수님이 다시 와서 행하는 새 역사를 인식시키는 말씀’이었는데, 아무리 <예수님>을 귀하게 외쳤어도 사람이다 보니, <예수님의 육이 되어 말씀을 전해 주는 사명자>를 중심하게 되고,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육적인 신앙’이 들어가기도 했다. • 이 시대 말씀의 가장 큰 핵심은 우리가 <신랑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의 영>을 맞고, <예수님의 육>이 된 것이다. 누구든지 <신랑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의 영>을 맞고, <그 육신>이 되어 증거하고 가르쳐 나가면 ‘신부 입장’이다. 먼저는 <자기가 확실하게 인식하는 것>, 그리고 <예수님의 육이 되어 확실하게 인식시켜 주는 것>이 ‘이 시대에 최고로 할 일’이다. •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육신 없는 영의 서러움>이 얼마나 큰지 아느냐.” 하셨다. 선생이 행해 보니, <제2의 육신으로 쓰는 사람들>이 ‘내 마음과 생각대로 그대로 행해 준다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교회에서도 교역자나 지도자가 교인들에게 어떤 일을 맡겨 보면, <제2의 자기>라고 할 정도로 마음에 들게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오죽하시겠느냐. 그러니, 예수님이 ‘육신 없는 서러움’이 그렇게 크다고 속 이야기를 한 것이다. • 선생도 <예수님의 육신>이 되어 드리겠다고 했는데, <예수님의 제2의 몸이 되어 행하는 것>이 잘 안 됐다. 평생 동안 하나님께 잘해 보겠다고 하면서 해 왔어도 잘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모두 ‘예수님의 심정’을 알고, ‘육신 없는 서러움’이 큰 것을 알고, <예수님의 육신>이 되어 드려야 한다. *** <예수님>만이 ‘주 그리스도’시다. • 초림 때는 <예수님의 육신>이 있었으니, 예수님이 제자들과 늘 이야기도 하고 말씀도 전해 줬다. 그러나 재림 때는 예수님이 <영>으로 다시 오시니, 맞기가 정말 어렵다. 영이니 눈에 보이지도 않고, 열심히 기도해서 만나더라도 계속해서 보이지 않고 순간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 <예수님이 영으로 다시 오신다는 것>만 확실하게 알면, 어떤 비(非)진리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선생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이를 확실하게 인식했기 때문에 1999년 이후 사람들이 서로 “내가 재림주다.” 했을 때, 절대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 초림 때는 예수님이 <육신>으로 태어나고 성장해서 역사를 펴셨고, ‘그 육신’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예수님>이 다시 온다고 말씀하셨으니까 <다시 오시는 이>도 ‘예수님’이어야 하는데, 예수님과 똑같은 유전자로 태어나서 크고 성장할 수 없다. 고로 <육신이 있는 자>는 ‘재림주’가 아니다. • 재림 때는 예수님이 <영>으로 다시 오신다. <영>도 다른 사람의 영이 아니라, <초림 때 메시아 사명을 했던 예수님의 영>이 다시 와야, 그가 ‘재림주’고, ‘메시아’다. 예수님이 초림 때 “내가 다시 온다.”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이 다시 와서 그 말씀을 이루는 역사>가 ‘재림역사’다. 자기가 재림주라고 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신약 때 역사를 펴다가, 다시 온다고 성경에 써 놓고, 이 시대에 다시 와서 역사를 펴는 것이 아니니 틀린 말이다. • 선생은 성자와 함께 <신랑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의 영>을 맞고, ‘예수님의 뜻’을 품고 세상에 나와서 외쳤다. 재림 때 <예수님의 영>이 땅에서 한 사람을 택하여 육신으로 삼고 ‘그’를 통해 말씀하시고 행하시는데 사람들이 ‘그’를 크게 보지 않겠냐. 고로 선생을 보고 - ‘주’, ‘주인’, ‘신랑’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주 예수님>과 <사명자>를 반드시 쪼개야 된다. • 아무리 사랑으로 일체 된 부부라도, 쪼개면, <남자>와 <여자>로 구분된다. 쪼개면, 한 명은 <신랑>이고, 한 명은 <신부>다. 아무리 <선생>이 <예수님>과 일체 되어 행해도 선생이 신랑이면 예수님이 신부인데, - 이 말은 통하지 않는다. 아닌 것은 바로 아니라는 것을 안다. ***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 섭리사 초창기 때는 선생이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았다는 말씀>을 계속해서 외쳤다. 선생이 산(山)기도를 할 때 힘들어서 예수님에게서 도망쳤더니, 횟골에서 예수님이 ‘옷’이 더러워져서 나타나셨다. 그때 예수님이 마음과 심정으로 말씀하시기를 “신부가 옷을 안 빨아줘서 신랑의 옷이 이렇게 어둡다.” 하셨다. 내 혼의 옷도 어두워져 있었다. 선생이 다시 산으로 올라가서 예수님께 순종하니, ‘예수님의 옷’도 ‘내 옷’도 깨끗해져 있었다. • 이때 겪은 것을 잊지 않고 <예수님께 배운 인식관>을 그대로 잘 외쳐 왔는데, <청중>이 있어서 ‘청중’을 쳐다보고, <아픈 자들>이 있어서 ‘아픈 자들’을 쳐다보고, <때마다 인식시킬 것들>을 가르치고 교육시키다 보니, <예수님>을 또 잊게 됐다. 그러면서 ‘육적으로 흘러간 것들’이 많이 있었다. 청중을 맞으면서 굴곡이 많았다. • <섭리역사>에는 항상 ‘예수님’이 계셨다. 고로 ‘예수님’을 잊지 말아야 된다. • <히브리서 13장 8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했다. <동일한 한 가지>는 -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해 주시는 이는 - 신약 때도, 이 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라는 것이다. • 예수님은 “재림은 초림의 연속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초림 때>도, <재림 때>도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이다. <신약 때>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아야 되고, <이 시대>에는 ‘영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아야 된다. <예수님이 영으로 다시 온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면, <그 영>이 ‘이 시대급으로 부활’된다. • 시대 설교를 천 번, 만 번 들어도 <다시 오신 예수님>을 제대로 모르면 안 된다. 당세뿐 아니라 후손들도 제대로 인식시켜야 되기 때문에 확실하게 <주 예수님>을 중심해서 가르쳐 나가야 된다. • 다시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외치기 시작하니, 사람들은 말하기를 “<선생님>을 ‘주’로 대하다가, 왜 다시 <예수님>을 ‘주’라고 하냐. 환난 때문에 말씀이 바뀌었냐.” 했다. 선생에게 <시대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선생을 통해 섭리역사를 펴 오신 이>는 ‘예수님’이시다. 그 위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늘 함께하셨다. <주>는 ‘예수님 한 분’이시다. - 이 한 가지는 어제나, 오늘이나 변하지 않고 영원히 동일하다. • 다만, <어려움>을 <기회>로 삼고, 이 기회를 통해 모든 것을 ‘재정비’해야 된다. <자기>를 돌아보고 파악하면서 <깨끗이 할 것>을 깨끗이 하고, <자기 위치>도 정확히 알고, <인식할 것>을 확실하게 인식해야 된다. *** <육>을 중심하지 말고, <영>을 중심해야 된다. •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말하기를 “하나님, 계시를 받을 때는 다 잘된다고 하셨는데 잘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아요. 안 좋은 일이 터졌네요” 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잘된다고 한 것>은 ‘영이 잘된다고 한 말’이다. 나 여호와는 <육>보다 <영>을 본다. <육의 세계>보다 <영의 세계>를 본다. <영>이 잘 돼야지, <육신>은 죽어 없어지는데, ‘육신’만 잘돼서 뭐하냐. 고로 항상 <영>을 중심해라. <영의 세계>를 잡아야, ‘육’도 ‘영’도 잘된다.” 하셨다. • <하나님이 잘된다고 하시는 말씀>은 항상 ‘영이 잘된다고 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육신>이 잘되기만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일’도 없었고, 신약 2000년 역사도 ‘순교와 피어린 환난과 핍박’ 하나 없이 ‘지상 천국’이 됐을 것이다. • <마태복음 10장 28절>에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몸을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이는 <육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말이다. <영>이 죽으면, ‘육’도 ‘영’도 끝나기 때문이다. • 그래도 하나님께 묻기를 “<내 영>이 잘됨과 같이 <육신>도 잘되죠?” 하니,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영>이 잘되면, <육>도 ‘그 영향’을 받고 잘되지. 너를 봐라. 잘됐냐, 못 됐냐. 육신도 잘되고 형통하지 않았냐. 그러나 <육신>이 잘 되기만 할 수는 없다. <잘 될 때>도 있고, <어려움이 있을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환경의 영향을 받는 육>을 중심하지 말고, 어려움이 있을수록 더욱 <영>을 중심하여라. 결국 <영>이 잘돼야, 영원히 잘 된다.” 하셨다. • <육신>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만, <영>은 흔들리지 않는다. 고로 <육신>을 중심하지 말고, <영>을 중심해야 된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예수님>도 ‘영’이시니, 오직 <삼위와 예수님>을 중심해야 된다. *** 오직 <삼위와 예수님>을 머리 삼고, <삼위와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 같이 사는 삶>을 살아야 된다. • 이 시대 교리의 핵심은 <삼위와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모시고 같이 사는 것’이다. 선생은 <신랑 되신 예수님>을 품고 왔다. 예수님 없이 혼자 왔으면, ‘한 청년’에 불과했다. <시대 신부>라면, 항상 ‘삼위와 예수님’을 중심하고 자기 속에 ‘삼위와 예수님’을 모시고 같이 살아야 된다. • <예수님이 영으로 다시 와서 하신 일>이 ‘섭리역사’를 편 것이다. 고로 <섭리역사>가 ‘예수님이 영으로 재림하신 근거’다. • 예수님께서 <3년 반 동안 외친 말씀>을 신약 2000년 동안 전하며 왔다. 섭리사도 <예수님에 대한 말씀>만 외쳐도 충분하다. <이 시대에 예수님이 영으로 다시 오신 것>, <신랑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을 믿고 같이 사는 것>이 그리 크다. • <예수님 앞에 모든 자들>은 ‘지체’다. <예수님의 첫 번째 신부가 된 사명자>는 스스로 머리가 되어 행하지 않고, ‘삼위와 예수님’을 머리 삼고 행한다. 이와 같이 모두 <삼위와 예수님>을 ‘머리’로 삼고, <삼위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시대말씀>을 전하면, 새로운 역사로 수많은 생명들이 몰려오게 된다. • <성자>에 대해서도 ‘예수님’이 가르쳐 주셨다. <삼위일체 중 한 분이신 성자>는 ‘지상의 구원’을 총책임지고 계신다. <구약 때>는 ‘모세’를 쓰고 나타나셨고, <신약 때>는 ‘예수님’을 쓰고 오셨고, <이 시대>에는 ‘예수님의 영’과 함께 다시 오셨다. • 예수님께서 <성자>를 가르쳐 주셨을 때, “<예수님>을 ‘성자’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까. 아니면, 하늘나라에 <성자>가 따로 존재하십니까?” 물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성령님, 성자>는 육체 없이 ‘영체’로 존재하신다. <나 예수>는 ‘땅의 성자 격’이다.” 하셨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면 하늘에 성자가 두 분이 되냐고 물으니, “<나 예수>는 ‘땅의 육신을 거친 자’이기 때문에 <영으로 존재하시는 절대신 성자>와 다르다.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근본자는 오직 ‘성삼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이시다.” 했다. •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존재자이신지도 물었다. <하나님>을 ‘신랑’이라고 하는 것도 맞는지, 예수님께 계속해서 물으며 확인했다. 나중에는 <성령님>에 대해서도 밝혀 주시며,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신랑이 되시는 것>과 우리가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어 창조 목적을 이루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구시대>에서는 삼위와 예수님을 아무리 사랑하고 살아도 ‘신부’가 될 수 없고, <천 년 역사의 때>가 와야 ‘시대 신부’가 되어 ‘혼인 잔치’하며 같이 살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다. • <예수님>은 세상에 ‘하나님’을 가르쳐 주러 오셨다. <이 시대 사명자>는 ‘다시 오신 예수님’을 가르쳐 주러 왔다. 신약 때 <베드로>로 인해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발견했듯, <시대 사명자>로 인해 ‘영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을 발견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예수님>과 <사명자>와 <자기 자신>을 확실하게 알면 흔들림이 없다. • 구약 때는 <하나님>께도 ‘주여’라고 했고, <아브라함>을 보고도 ‘주’라고 했다. 신약 때는 <하나님>께도 주라고 했고, <예수님>도 주라고 했다. 이 시대에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주 예수님>을 정확히 알게 했으니, 이것이 ‘우리의 위력이자 자부심’이다. 이제는 <삼위와 예수님과 일체 되어 같이 사는 일>만 남았다. <월명동 제2성전에 대해> • <월명동 제2성전>을 짓는 것을 두고 하나님께 올렸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너희들 신부관을 지어야지.” 하셔서 짓게 됐다. 그런데 물가가 올라서 전이면 100억이 들어갈 것이 지금은 140억이 들어간다. 앞으로 계속해서 올라간다. 그렇게 되면 총 500억 이상은 들어간다고 봐야 된다. 돈이 상상도 못 하게 들어간다. 지금 다시 돈을 모아서 지을 수가 없다. • 처음에 <제2성전>을 짓는다고 했을 때 100% 믿어지지 않았다. 왜? 10년 이상 걸리니까. 빨리 하면 8년이 걸린다는데 10년 이상은 걸린다. 이번 일이 터지고 나서 하나님께 어떻게 하냐고 물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또 했다. • <3.16 휴거기념관>이 1300평인데, 쓰는 곳이 그렇게 많지 않다. <2층>도 확장시켜서 터놓으면 600명이 들어간다. <1층 식당>도 130평인데 확장시켜서 사람들이 앉게 하고, 초소 위쪽에 식당을 만들면 된다. <지하>도 화장실 20평은 놔둔다고 해도 현관까지 다 확장하면 어마어마하게 넓다. 400명은 들어간다. • <제2성전> 지으면 3천 명 정도 들어가는데, <3.16 휴거기념관>을 확장하면 2천 명이 들어간다. 천 명 더 들어가려고 4~500억을 쓸 필요가 없다. 그리고 건물 하나를 지어 놓으면 관리비가 엄청나게 들어간다. • 다른 종교에서 성전을 크게 짓는 것을 쳐다볼 필요 없다. 그들은 몇 조를 들여서 건물을 지었어도 어차피 육의 세계에서 끝나는 것들이다. 우리는 남에게 자랑하려고 짓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쓰려고 짓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 하나님이 신부들을 위해서 지어 준다고 하셨지만, 우리가 그 마음을 알고 <3.16 휴거기념관>을 사용하면서 만족하고 살면 좋겠다고 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라.” 하셨다. 후손들도 해야지, 우리만 하냐고 했다. 후손들이 지을 거면 지으라고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제2성전>을 짓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다. • 하나님은 항상 본인이 원한다고 하면 그렇게 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좋으냐?” 물었을 때 좋다고 하면 “그렇게 해라.” 하시고, 안 좋다고 하면 “좀 도와줄게.” 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도와주신다고 해도 엄두가 안 난다. 지금까지 기둥을 50개 세우는 데도 정말 어려웠다. • <월명동>은 ‘하나님의 전’이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예수님 것’까지 다 해 드렸다. 선생도 큰 집에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신부 성전을 지어 주고자 하시는 그 마음’을 알아 드리고, 우리도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더 이뤄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