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22.10.02 (일)
주일말씀 R
- 선포일
- 2022.10.02 (일)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7장 28-29
첨부 파일
- PDF
20221002 주일말씀_R.pdf
198.5 KB
<2022년 10월 2일 주일말씀>
말씀과 기도의 능력
[마태복음 7장 28-29절]
28.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가복음 11장 24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 시작>
• 우리에게 금년도 2022년 주제가 있습니다.
주제가 여기도 있지만 <말씀과 기도의 해>,
<기도와 말씀의 해>입니다.
오늘은 <말씀과 기도의 능력>이라는 주제로 말씀하겠습니다.
<말씀과 기도의 해>인데 <말씀과 기도의 능력>이라고 붙였습니다.
금년도 주제를 하나님, 성령님, 성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줘서
우리는 대강 알지만,
교역자들이 마지막 이 말씀을 꼭 직접 선생님께 듣고 싶다고 해서,
한 번만 해달라고 해서 말씀을 하게 됐습니다.
• 말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사회자가 본문 읽은 대로
예수님 시대 때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니
예수님이 메시아인데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몰랐을 때도,
그 말씀이 참 능력 있고 세력이 있더라.
듣는 자들이
‘그 가르치는 것이 권위가 있다. 저기 서기관들과 같지 않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과 다르고 그들의 말씀과는 다르더라.
권세가 있다. 능력이 있다.’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그들은 왜 그런지 몰랐습니다.
알고 보니 예수님은 실상적으로,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이 보낸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이기 때문에
다릅니다. 그래서 달랐습니다.
물론 그 능력과 권세가 예수님 아니라도 있는 자들이 있다면
예수님을 모시고 섬기고 메시아로 절대시 했을 때,
그때 또 능력과 권세가 나가고 권위가 있고 잘 가르쳤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오셨을 때 메시아로 제일 먼저 알아봤습니다.
그것도 예수님이 옆구리 찌르는 말씀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사람들 같이 너희도 하느냐?”
물었을 때, 아무래도 이들이 뭔가 시원찮았습니다.
결국은 물었을 때, 하나님이 가르쳐줘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다.”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때부터는 역시 베드로도 권세 있고 세력 있고
가르치는 것이 저기 서기관들과 다르게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이해해야 합니다.
• 여러분들도 많이 겪어 봤습니다.
그 사람에게 많이 얘기했는데, 1년, 2년, 3년 안 지키기도 합니다.
그건 두 가지로 봐야 합니다.
가르친 것을 인식을 못 했을 때, 못 지킨 것도 있고, 또 하나는,
육신이 약해서 알기는 아는데 못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을 모르기 때문에 두 가지로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교육할 때, 인식이 됐나 확인해봐야 합니다.
예수님도 이들이 예수님을 정말로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하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으로 끌고 가다가 물어보니
“사람들이 그럽니다.
선지자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같이 봅니다.”
했더니, “너는?” 했을 때,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교육을 시켰는데도 몰랐습니다.
여러분들도
따라오는 자들, 교인들, 인식을 정확하게 시켜줘야 합니다.
안 하는 것은 뺀돌이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인식이 안 돼서 그렇습니다.
뇌는 인식이 되면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식이 덜 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꼭 인식을 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 외부에서는 많이 섭리사가 이렇다 저렇다 하는데,
그랬으면 우리가 벌써 무너나지 않았겠습니까?
외부에서 말하는 대로 그렇게 흠결이 많으면 벌써 무너났습니다.
섭리사 잘 가지 않습니까?
• <하나님의 섭리 역사>에 자랑거리가 많은데,
그 중에 내노라하는 것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바로 무엇입니까?
<시대의 말씀>입니다.
말씀의 해! 말씀!
내노라 하는 것이 바로 말씀이고,
또 하나 내노라하는 것이 있다면 <기도>라고 해야 합니다.
기도!
그 터전 위에서 그것이 잘 됐을 때,
거기서 하나님 사랑, 예수님 사랑 한 것입니다.
그것도 안 되어 있으면서 사랑한다고 하면 물론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된 위에 사랑이 있을 땐,
받는 자가 위력이 더 큽니다.
어디서든지 듣고 찾아볼 수 없는, 과거 우리들이 볼 수 없던
시대 예수님이 가르쳐 준 말씀입니다.
우리도 똑같은 성경 말씀 믿고 섬기고,
구약말씀보다 우리는 신약말씀을 중심합니다.
거기서 나온 말씀입니다.
선생님도 거기서 말씀 배웠지 다른 전적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교리를 쓴 것이 없습니다.
성경 말씀 자체가 잘 쓰여 있으니까, 그것만 보며 하면 됩니다.
책을 잘못 썼다가는 또 다르게 돌아가니까
특별한 교리 말씀을 쓸 필요가 없다고 까지 하면서 왔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계속 읽어보면 그 자체가 예수님이 하신 원본이니
이 시대 우리가 듣는 말씀이 절대적으로 맞는 말씀이고,
예수님이 다시 영으로 와서 모두에게 전한 시대 말씀입니다.
• 핵심은 신약 때
“내가 다시 와서 말하리라.
지금 말할 수 없지만, 그때 감추인 것을 다 말하리라.”
그 말씀입니다.
그리고 “감추인 것을 말하리라.” 하고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면 없습니다.
그러고 바로 십자가 지시고
사도행전 1장 11절 말씀대로 그대로 영으로 가셨습니다.
영으로 갔다는 증거가 있는데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 바울을 전도할 때 영으로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육신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 세 번, 다른 곳에도 (증거가) 있지만,
이 증거 하나만 하면 충분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 바울을 전도한 그때
예수님께서 십자가 부활한 후의 일인데 또 핍박을 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바울아, 바울아, 너는 어찌하여 그리 나를 핍박하느냐.
이들이 뭘 그렇게 했는데 핍박하느냐. 너 눈이 멀었어.
시대의 눈이 멀었어.” 그래서 (실제) 눈이 멀었습니다.
그래서 “가서 시대 말씀 따르는 사람에게 기도 받아라.”
기도만 해주겠습니까?
시대 말씀을 가르쳐주니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그때 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때 십자가 부활 후였기 때문에 육이라면 육으로 전도했다고
(기록이) 그렇게 나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3장 9절 이하를 보면 거기도 나옵니다.
주께서 육신은 십자가에 의인을 위해 돌아가시고,
영은 살리심을 받았다. 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이 두 가지만 하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베드로가 제대로 보고 얘기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증인만 봐도 확실히 알고 나머지
예수님도 영으로 승천해서 올라가셨고, 본대로 온다고 하셨습니다.
영으로 봤습니다. 육신은 못 봤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은 영으로 다시 오셨다.
• <영으로 오신 주님이 전하시는 복음>이 우리에게 큰 위력이고,
아주 크나큰 우리의 자랑거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우리는
신약 때부터 예수님이 육체로 나타나서 활동했던 것도 믿습니다.
육으로 나타났을 때도 다 믿고,
영으로 나타난 것도 새롭게 믿고 두 가지 다 믿으니까 튼튼합니다.
두 겹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며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들으면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사오매 어디로 가오리까?” 할 정도로
예수님께 배운 말씀을 외쳐서 전해줬습니다.
예수님은 영이시니 그를 사랑하고 믿고 따르는 사명자를 통해
말씀을 주시고 모두 개성대로 외쳐 증인들이 됐습니다.
우리는 시대를 가지 않으면 어려웠습니다. 왜?
예수님 시대 때만 봤지 우리는 예수님 육신을 못 봤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이스라엘 땅에 나타났을 때는
육으로 나타나고 보이니까 말씀 들어보면 알지 않습니까?
그리고 육신이니 얘기도 하고 대화도 하는데
영으로 나타나니 보이지도 않고
다시 오신 주를 발견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를 어렸을 때부터 데려가서
15살 때부터 계속 성경을 읽고 계속 가르쳤습니다.
계속 (예수님께서 가르쳐서) 영의 세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못 보니 모릅니다.
이것을 우리도 알고 이것이 예수님이 선생님을 보내고 가르쳐줘서
사명자로 열심히 뛰었다는 근거입니다.
• 설교를 잘 해줘야 교회가 은혜 충만하고 부흥이 됩니다.
말씀이 충만해야 합니다.
사탄도 악도 물리치고 시험을 이긴 것은
말씀을 힘 있게 능력 있게 해줘서
그 말씀으로 모두 이겨 나가게 한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말씀 본문대로 하겠습니다.
• 우리가 말씀에 대해서 위력 있고 가치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다른가?
‘기독교하고 특별히 다른 것이 없어.
예수님 똑같이 믿고 가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한 마디 더 해주겠습니다.
다른 것이 무엇인가 하니
다시 오신 예수님이 영으로 오신 것을 발견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크다는 것입니다.
고로 예수님께서 “내가 다시 와서 한다.”
그러면 예수님이 다시 와서 하신다.
때로 봐서는 무조건 신약 2000년 끝나면 오신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구약 4000년 끝났을 때, 말라기 선지자 400년 후
예수님 오셨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무조건 신약이 끝나면 온다는 것입니다.
신약역사가 2000년인데 벌써 2000년을 벗어났습니다.
2000년 안이 아닙니다.
무조건 12시에서 12시 59초까지는 오전입니다.
그러나 1초만 넘어갔다고 하면 오후입니다.
때로 봐서는 그렇게 따져봐도 됩니다. 알겠습니까?
이렇게 따지는 것입니다.
소경이라도 이걸 보고 만지면 “이건 컵이네.”하고 압니다.
(소경은) 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옆에서 컵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는 때로 봐서 그렇다. 믿을 만하다.
그것을 단언하면서 예수님 영으로 오신 것을 알고,
또 말씀한 것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 다시 와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새로운 시대의 섭리를 낳았습니다.
오신 증거가 맞지 않습니까?
이를 깨닫고 열심히 믿고 따르고 자부심을 갖고 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것 한 가지가 다른 것입니다.
• 우리도 기도하고 기독교도 다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 내용이 다르지 않습니까?
다시 오신 주님을 믿고 따르니까, 예수님을 믿고 따르니까
기도 내용도 다르지 않겠습니까?
행실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주를 신랑으로 모시고 섬깁니다.
(예수님께서) 다시올 때 마태복음 25장에 신랑으로 다시 온다.
열 명 중에 다섯은 지혜로워 맞고 나머지는 미련하여 못 맞는다.
<등불>이 <사랑>이 될 수 있고, <기름>이 <사랑>이 될 수 있고,
또 <말씀>이 될 수 있다.
다 가르쳐주지 않았습니까?
절대적인 말씀을 우리가 갖고 있으니 이런 것이 다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뛰고 달리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리고 말씀을 모시고 섬기고 살아야 합니다.
같이 사는 역사가 되어야 합니다.
• 우리는 단어가 많습니다.
하나님도 불러야 하고, 성령님도 불러야 하고, 성자도 불러야 하고,
예수님도 불러야 하고, 사명자도 불러야 하고,
믿는 자기도 부르면서 잘 믿게 해달라고 하고
6번 불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믿으면 흠이 없습니다.
더 이상이 없습니다.
금년도 <말씀의 해>다.
이 말씀이 ‘핵’입니다.
이 말씀을 중심해서 해야 합니다.
• 선생님도 어렸을 때, 예수님 믿고 따르고 섬기고
맨날 “주여, 주여”한 것은 결국,
다시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영으로 만난 것입니다.
그냥은 못 만납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고 알려줘서 만났습니다.
• 우리는 또 기도가 절대적입니다.
말씀 절대시 하는 자들이 섭리 끝까지 갑니다.
말씀과 기도를 절대시 하는 사람은 끝까지 갑니다.
이 말씀 잊어버리면 끝까지 못 갑니다.
따라오다 다른 길로 간 자들은 말씀의 뿌리가 없고
(청중) 분위기에 따라왔던 자들이 많습니다.
이것을 절대시하면 그런 일이 절대 없습니다.
지금 말씀한 것을 절대 알아야 합니다.
신앙을 오랫동안 했어도 신앙 나이 상관 없습니다.
어려도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요즘 중고등부들도 말씀을 많이 가르쳐서
중고등부들이 거의 말씀이 딱 잡혔습니다.
모든 자들도, 대학부도, 청년부도, 가정국도, 장년부도
말씀에 확 잡혀야 합니다.
중고등부들이 흡수력이 (좋아) 확 잡아당깁니다.
‘그냥 믿습니다!’ 합니다.
• 섭리 역사는 <시대 말씀>과 <기도>가 위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금년도 <말씀과 기도의 해>, <기도와 말씀의 해>, <능력 있는 해>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많은 능력과 권세와 표적들이 일어났습니다.
• 시대에 맞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하고
시대에 맞는 말씀을 해야하기 때문에 말씀이 딱 맞았습니다.
위력 있고, 권세 있고, 가르치기를 잘해야
<은혜 충만>, <사랑 충만>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과 성령님을 믿고 가는 신앙을
절대시하는 것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합니다.
이 시대 말씀에 따라 살아야 신부가 되는 역사입니다.
다시 오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신부가 됩니다.
결혼 안 했으면 신부가 되지 않습니다.
신앙의 신부, 신앙의 신랑, 신앙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구시대는 자녀급 사랑입니다.
• 구약은 엄격히 종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구약시대에 있다가 다시 신약시대 때 또 왔습니다.
구약 시대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구약시대 때는 주인으로 있다가
새로운 신약시대 때는 다시 올라가서 아버지로 올라갔습니다.
다시 또 새로운 시대, 천년 역사 때는 신랑 같이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예수님도 (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깨닫고 가치를 알고 자부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다 비슷하다고 하면 보는 본인이 못 깨달은 것입니다.
무엇이 비슷합니까? (전혀) 다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은혜와 기도와 말씀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구약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보낸 자 모세를 믿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신약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님을 믿고 살았습니다.
똑같은 하나님을 믿음에도 신약시대 사람들이 훨씬 펄떡거리고
힘이 세고 능력 있고 권세 있고 희망 있게 불타서 살았습니다.
짧은 시간에 번져나갔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구약인들에 비해 신약인들은 적었지만
그 위력이 있어서 엄청나게 번져가고 엄청나게 힘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으로 모든 것이 존재합니다.
지구도 힘으로 존재하고, 모든 위성들도 힘으로 존재합니다.
공전과 자전의 힘이 엄청나지 않습니까?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빠지면 안 됩니다.
새로운 시대의 역사가 더 힘있게 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구약보다 복음이 훨씬 더 빨리 번져 나갔고 힘있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보낸 자로서 행했기 때문에
신약시대 사람들이 그렇게 힘있게 한 것입니다.
무언가 달랐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구약과 다른지 모르겠다.
우리도 하나님 믿고 거기도 하나님 보낸 자 믿으니까 똑같네.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해야 되겠네.’ 하지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같은 하나님이 행하셨지만 시대마다 차원 높여 행하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릅니다.
• 마태복음 13장 35절을 보면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했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모세를 비롯해서
창세 이후에 감추인 것을 밝힌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밝히니까 그 말씀 듣고
너무나도 밝히면서 쫓아다녔습니다.
새로운 시대는 하나님께서
보낸 자를 통해, 사명자를 통해 밝히시니 달랐습니다.
이 시대도 우리가 구시대 신앙생활을 할 때보다
어려움이 있지만, 훨씬 더 힘이 나고 희망으로 살아가게 됐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약시대 때도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살았고
여기 섭리역사 와서도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살지 않습니까.
똑같은데 왜 다를까?
다시 또 시작한 하나님의 역사, 다시 또 시작한 예수님의 역사는
다시 오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때문에 다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더 힘이 나는 것입니다.
다시 왔다는 것, 다시 온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그렇게 큽니다.
그래서 섭리역사에 와서 신앙생활하며 살고
위력 있고, 힘있고, 사명감에 불타서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대에 따라 예수님을 사랑하는 신부로 대해주십니다.
신약에서는 ‘나를 믿으면 아들의 권세를 주리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나를 믿으면) 신부의 권세를 주리라 합니다.
그래서 신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 25장에
‘내가 신랑으로 다시 올 때 너희가 맞으면 신부가 된다.’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신약 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신약에서 약속하신 예수님은 이 시대 영이 와서
사명자 선생님을 통해 가르쳐주셨습니다.
믿고 여러분들도 나와 같이 하게 한 것입니다.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하셨기 때문에
같은 나무 취급은 해도 되지만,
어디까지나 <예수님>은 ‘나무’이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머리’이고, <우리>는 ‘지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아들’이고, <우리>도 ‘아들의 권세’는 있지만
<예수님>은 ‘메시아 독생자 아들’,
<우리>는 ‘그를 믿으므로 지체 자녀급 권세를 가진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시고,
<우리>도 예수님을 믿으면 ‘왕 같은 제사장’이 됩니다.
그런 입장의 지체의 왕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구분하고 알아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이것을 완전히 구분해서 쪼개서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선생님이 예수님을 맞았습니다.
맞았으면 일체된 것입니다.
(그러나) 일체 되었다고 해서, 내가 예수님을 맞았다고 해서
내가 예수님이 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맞았다고 해서 하나님은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임했기에 (그렇게 표현) 할 수 있지만,
엄격히 쪼개서 보면 하나님과 예수님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쪼개서 보면
<나(선생님)>는 ‘신부’, <예수님>은 ‘신랑’입니다.
<예수님>이 ‘신부’이고, 내가 ‘신랑’입니까? 아닙니다!
금년도 말씀에 대한 근본을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 전에도 가르쳐왔습니다.
자동차 만들 때, 하청회사가 있습니다.
(하청회사들이) 나사못만 만들고, 엔진만 만들고, 발톱만 만들고,
타이어만 만들고, 함석만 만들고, 헤드 라이터만 만들지만,
(하청회사에서) 만들 때는 차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종합해서 가져다 놓고 울산 현대 공장에서 만들면
차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전부 각각 배우다보니 (모를 수 있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 우리는 <천년 역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예수님 말씀대로 행하며
예수님을 신랑 삼고 가니 힘이 나는 것입니다.
지금도 지구상에 36억 명 이상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사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부심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들도 우리가 이렇게 해나가면 우리가 잘못됐다고 하지 않습니다.
모두 늦기 전에 부지런하게 뛰고 달리면서
남은 인생을 하나님과 일체 되어서 같이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같이 사는 삶>이라고 하면 말하지 않아도
<성령님과 같이 사는 삶>, <성자와 같이 사는 삶>,
<예수님과 같이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꼭 말을 해야만 알아들으면 안 됩니다.
한 가지를 말하면 열두 가지를 다 알아들어야 합니다.
• <예수님>을 시대에 맞게 믿고 섬기고 사랑하며 살아야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성령님과 성자의 소원대로 이루어서
<창조목적>을 이루는 <신부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 역사를 계속 해 나가는 것입니다.
• 선생님이 하면 더 좋은 말씀 한다고 하는데
교역자들이 해도 다 그 말씀으로 지금까지 해왔습니다.
음성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섭리사 누가 잘하나, 못하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예수님>을 정확하게 가르치면
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빼면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잘하면 됩니다. 더 이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섭리사 설교 잘해.”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이 시대에 맞게 우리는 믿고 섬기고 사랑하며 살아야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룬다고 말씀했습니다.
<성자>와 <사명자>와 절대적으로 일체되어 사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 왜 <성자>와 <예수님>이 다른가 하니
<성자>는 본래 ‘영체’이고,
<예수님>은 ‘육신’을 가진 자입니다.
알겠습니까?
이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께서 “‘사람’이신 예수”라고 했을 때,
‘사람’ 빼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합당하니 끄덕끄덕하시면서 이렇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신 그리스도다. 인자(人子)다. 사람의 아들이다.
• 예수님께서는
“섭리인들 기도도 많이 하고 열심히 하는 편이다.
젊은이들이 이렇게 기도하는 곳이 많지 않다.” 하셨습니다.
• 기도에 대한 말씀이 나왔으니 한 마디 해주겠습니다.
선생님이 (시간을 어기지 않고) 기도한 지가
10개월, 거의 300일이 넘게 1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거의 약속 시간에 초를 어기지 않고 했습니다.
약속한 기도 시간에 조금 빨리 오면 되는데
늦게 다닌다고 한 번 정말 크게 혼났기 때문입니다.
골프 차 사고도 나고 그래서 그 후로 결심하고
열심히 시간 지킨다고 하며 했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약속한 기도 시간을 지키는 게 어렵습니다.
(약속한 기도 시간을 지키며 있었던 사연) 하나를 말해주겠습니다.
(약속한 기도 시간에) 늦어서 (휴거 기념관으로) 오는데
정말로 화장실이 급하고 거리가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짤막한 거리인데 어떻게 할 수가 없고
약속한 기도 시간은 다 되어 갔습니다.
어떻게 약속한 기도 시간을 지켰을까요?
(화장실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참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와서 먼저 기도 시간을 지켰습니다.
지키고 빨리 (화장실에) 갔습니다.
“하나님, 이건 시간 지킨 걸로 해 주셔야 합니다.” 했습니다.
한 번은 오다가 시간이라는 개념을 잊어버렸습니다.
멍청하니 누구 만나서 “요즘 일 열심히 하고 잘 있냐?”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재촉하는데도 거기에 빠져서 잘 몰랐습니다.
이것이 1~2분 사이인데 오다가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지키기 위해 아래층으로 들어갔습니다.
올라오면 시간이 늦어서 안 되니
지혜롭게 빨리 아래층으로 들어가서 무릎 꿇고 기도하며
“시간 지킨 걸로 해줘야 해요.” 했습니다.
이런 어려운 일들이 굉장히 많은 가운데 10개월 이상
초를 안 넘기고 했습니다.
최고 기록은 약 3초 남았을 때 휴거 기념관 본당에 도착해서
확 들어와서 확 무릎 꿇고 “지켰죠?” 그랬습니다.
시간을 지키니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자부심을 갖게 되고 좋습니다.
• <기도>는 삶에 필수적인 과목입니다.
환난이 있으나 없으나 <기도>는 꼭 해야 합니다.
<기도>를 못 해도 <기도>를 꼭 해야 합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기도가 안 되죠?”
“못해도 해야 한다. 못하는 대로 하라. 온 것이 다행이다.”
이렇게는 계속 못 하겠다고 생활 가운데 기도를 한다고 했습니다.
“생활 가운데 더 많이 할게요.” 그래서
기도를 한 번 할 때 1시간 하고 바로 다음에 3시간을 했습니다.
나머지는 가서 생활 기도로 한다고 하니 그것이 안 되었습니다.
무조건 못 박아 놓고 그때 (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니 꼼짝도 못하고 못 박은 때에 기도하게 됩니다.
자기 스스로 (기도 시간에) 못을 박아야 합니다.
기도를 절대 꼭 해야 합니다.
절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예수님 영육 일체 돼서 하나 되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령한 존재자, 영인체’, <성령>도 영인체,
<성자>도 영인체, 이제는 예수님까지 육신이 없으니 영인체입니다.
그러니 다 영이기에 우리가 신령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도함으로 신령해져야 그의 육체가 될 수 있습니다.
• 우리 교회는 복잡합니다. 왜요?
<하나님>도 부르고, <성령님>도 부르고, <성자>도 부르고,
<예수님>도 부르고 (많지만) 그래도 모두 불러야 합니다.
여러분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있는데
엄마만 불러봐.
그럼 할머니가 “저것이 보자 보자 하니까 끝이 없네.
어떻게 할머니 한 번도 안 부르냐? 엄마는 누가 낳았냐?” 하고
그러면 할아버지가 “나도 한 마디. 네 애비는 내가 낳았다.”하죠.
그래서 나는 해봤습니다.
<예수님>을 찾다보면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못 찾게 되고,
<하나님>을 찾다보면 <성령>을 잊어버리고,
부흥강사들도 보면 “성령의 불을 받아라.”하면 그때 생각납니다.
부흥강사를 통해서 성령을 그때만 찾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것은 능력의 하나님이나 구약시대 말씀을 보면
하나님 얘기만 나오지 예수님 얘기는 안 나오지 않습니까.
또 신약시대 말씀을 보면 예수님만 많이 나옵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만 찾게 됩니다.
하나님만 찾아도 다 찾는다고 했는데 해보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알겠습니까?
예수님 찾으면 다 찾는다고 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해보지 않았습니까.
교회에서 부목사님만 찾으면 한 두 번이지
목사님이 서운해 합니다.
“나는 안 찾나? 나 여기 있어.
나는 부목사도 되고 원목사도 돼.” 이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왕이면 골고루 불러주면 좋지 않으냐.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선물 달라고 할 때 ‘낙타바위’를 주셨고,
<성자>께 선물 달라고 할 때 ‘성자바위’를 주셨고,
<예수님>께 선물 달라고 할 때 ‘33톤 바위’를 주셨고,
<성령님>께 선물 달라고 했을 때 ‘성령바위’를 주셨습니다.
반드시 각각 부르며 각각 달라고 하니 각각 주셨습니다.
그래서 역시 다르구나.
여러분들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애굽에 있을 때는 ‘애굽에 있는 형제여’ 합니다.
그러나 신광야에 나왔을 때는
‘애굽에서 같이하고 신광야에 같이 나온 형제여’ 합니다.
또 가나안 복지에 가면
‘출애굽하고 신광야에서 나온 가나안에서의 형제여’ 합니다.
우리는 알았으니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싸우고
복음을 전하고 전도도 잘해야 합니다.
인식을 모두 달리하게끔 해줘야 합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저마다 부지런히 할 일을 하고
<시대 말씀>을 전해 주어 <생명길>로 인도해주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전도할 자가 회사에서 3년 가량 같이 근무합니다.
그는 역시 생명길을 찾으려고 말 안 하고 있는데
한 마디만 하면 되는데 안 합니다.
가정에도 부모들이 있습니다.
학교에도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각자 한 마디만 해봐도 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생각도 않고 자기만 신앙생활 하면 안 됩니다.
성령이 감동을 주며 <말씀과 기도의 해>라고 했는데
말씀을 배웠으니 전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령이 계속 감동을 주시니 의식하지 말고 전해주기 바랍니다.
지금은 이런 말씀을 전하면 들을만 하다고 합니다.
주와 함께 그의 육이 되어 무엇이든지 행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선생이 전에도 말해줬습니다.
“영이라는 것은 위력과 권세도 크지만, 육신이 필요한데
육신 없는 서러움을 너는 아느냐?”
그때 내가 충격 받고 그 육신이 되어 주겠다고
그렇게 외치고 다녔습니다.
• 올해는 <기도와 말씀의 해>이니
<말씀>으로 충분히 ‘능력’을 받고 깨닫고 행하는 해입니다.
지금까지 말씀한 것이 전부 자동차 종합시킨 것과 같습니다.
그동안 하나씩 하나씩 해온 것입니다.
올해는 <기도와 말씀의 해>로 계속해서 ‘말씀’을 줬습니다.
<말씀>을 충분히 주니 깨닫고 <말씀 충만>하고,
권세 있게 외쳐주는 교역자들이 되고,
또 여러분들이 나가 외쳐줘야 되겠습니다.
• <말씀>을 제대로 듣고 깨닫고, <기도>도 ‘방향’따라 하고,
<삼위>와 <예수님>, <사명자>가 가는 방향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의 ‘능력’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인해서 많은 ‘능력’이 일어났습니다.
보호도 하고, 함께도 하고, 건강도 도와주고,
각종 것을 말할 수 없이 무한히 도와줬습니다.
<각자>에게도, <섭리사>에도 ‘표적’과 ‘기적’을 행했습니다.
올해가 기도를 가장 많이 한 해 같습니다.
선생부터도 그렇습니다.
하루에 6시간씩, 8시간씩,
어느 때는 한 번에 6시간씩 기도할 때도 있었으니
따져보면 대략 나오지 않습니까.
선생은 올해 들어 현재까지 2000시간 이상 기도했습니다.
• 우리 말씀이 구시대나 다른 외치는 자들과 무엇이 다르냐고 하는데
이미 비교도 안 되는 일들도 있는데, 그것 중 하나가
<다시 오신 예수님을 맞고 가는 것>입니다.
늘 그것을 외치지 않으면 (시대) 말씀이 있어도 비슷합니다.
알겠습니까?
<다시 오시어 이 시대에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금도 전해줬습니다.
그 말씀 받고 전해주는 사명자가
섭리사의 다른 사명들과 그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가 크게 다릅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 시대에 맞게
차원 높여 이루는 것이 다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신부’되어 사는 것이 다릅니다.
고로 시대 예수님 사랑이 옛날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신약 때도 사랑했지만 우리는 신부 되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모두 시대를 알았으니 어떤 일이든지 모두 이 말씀을 듣고
끝까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예수님>을 절대 믿고
<사명자>와 함께 행하는 모든 자들이 되길 바라고,
교역자들과 일체 되어 행해야 합니다. 믿습니까?
• 여러분들 이제 다 컸습니다. 어리지 않습니다.
너무 모른다고 붙잡아 뒀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 커서 다 컸습니다.
얼마나 많이 배웠습니까.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놔둬도 신앙생활 잘합니다. 알겠습니까?
이만큼 컸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선생이 한 가지 말하는 것은
“하나님, 성령님,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며 가고 있고
늘 잘 된다고 했는데, 육적으로는 분명히 고달픈 일이 많아요.”
했습니다.
인식이 덜 됐을 때, “금년도 기도도 엄청나게 했을 때,
늘 잘 된다고 꿈도 보여주고 했는데 보면 생각보다 다르네요.”
했을 때,
하나님, 성령님께서, 특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이다. 하늘은 영(신앙)의 세계요, 땅은 육의 세계다.
신앙적으로 잘 된다. 영적으로 잘 된다는 말이다.
영적으로 지금 잘 되고 있잖아?
육도 영도 잘 되게 해주면 예수가 뭐하러 십자가 지냐?
뭐하러 십자가 지고 고통 받고
6000년 동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 고난과 아픔과 어려움을 육적으로 겪고, 순교도 하고,
많은 핍박과 어려움이 있고 억울함이 있고 그러냐?
영육이 다 잘되면 그게 천국이지.
순교할 사람도 하나도 없고 할 필요도 없고 .
육적인 것은 잡아봤자 바로 늙어 죽는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때까지 역사해봤자 헛일하는 것이다.
영을 잡아야 한다. 영적으로 잘 되게 해준다.
영적으로 잘 되게 해주지 않았느냐.
예수님도 육은 죽었어도 영은 살리심을 받아
또 전도하고 다녔다고 하지 않았느냐.
영을 크게 보고, 영의 세계를 크게 봐야 한다.”
알겠습니까?
영으로 잘 되면 괜찮은 것입니다.
“너희들 영적으로 잘 되고 있지 않냐?”
‘이렇게 잘 믿었는데 어려움이 많고 경제도 힘들고
나가서는 핍박도 있고...’
이런 것이 하나도 없으면 천국입니다.
하늘나라에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인식을 하고 이해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믿습니까?
이런 것이 없으면 육까지 아무것도 없이
하나님께서 영육으로 다 붙잡아줬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러 가시지 않았습니다.
또, 신약의 많은 순교자들이 순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육신보다는 영을 챙기십니다.
영의 세계를 잡아야 영원히 살 수 있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투자한 것을 건질 수 있지
육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하나님 섬기면서 사랑하며 살면서
전능자가 이 세상에 해준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인식하고 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꼭 해야 하고 알고 잡고 가야 할 말씀입니다.
• 금년도는 <말씀의 해>
<말씀의 해>를 무엇으로 중심합니까?
<말씀>이 그렇게도 크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말씀>이 그렇게 큽니다.
<사랑> 찾기 전에 먼저 <말씀>이 바로 서야
<사랑>이 온전해집니다.
알겠습니까?
• 항상 <예수님>을 중심 하고, 머리 삼고,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중심하며, 머리 삼고,
<예수님>이 <사명자> 보내서 구원해줬으니
역시 <사명자>도 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구원하라고 <사명자>를 보냈는데 크지 않습니까?
사람을 중심 하면 어느 때는 고꾸라지고 어느 때는 넘어져 버리고,
어느 때는 땅에 떨어져 버리기도 합니다.
육신은 이러하지만 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은 육보다 100배는 더 강하고 제재를 안 받기에
영이 땅바닥에 떨어져서 낙심하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육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을 중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전의 육체를 가진 예수님이 아니고
영체로 2000년 동안 확 잡았기 때문에 완전히 신입니다.
어마어마하고 엄청납니다.
그러니 예수님 중심 하고 머리 삼고 항상 신부로서 사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어디서나, 지도자가 있을 때가 있고, 없을 때가 있고,
(지도자는) 자기가 고통 받을 때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선생도 여러분들이 고통 받는 것을 잘 모릅니다.
그러니 무조건 모두가 고통받지 않게 기도하고,
모두가 차 사고 나지 않게 기도하지만,
사실상 일일이는 못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알지 않습니까.
(그러니) 절대 <예수님>을 마음 속에 모시고,
항상 그 위력과 능력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항상 그의 증인이 되어서 전해주고 말씀해주고 힘있게 간다면
다 배웠으니 더 이상 없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런 것을 모르면 천년 동안 들어도 인식을 못하면 안 변합니다.
이런 말씀을 듣고 나가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예수님>도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이렇게 해 나가면 됩니다.
이렇게 함과 동시에 <하나님, 성령님, 성자> 절대시하고
<하나님>도 새로운 시대 왔으니까
신약 때는 아버지로, 성약 때는 사랑하는 신랑으로,
<성령>도 <성자>도 시대가 높아졌으니 (신랑으로서 보며) 대하면
우리가 너무나도 좋고 이상적이라는 것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금년도 말씀의 하이라이트, <기도>
여러분들 <기도> 많이 하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지도자들이 그렇게 어리지 않습니다.
다 커서 설교할 때 어떻게 할까 조심하고 굉장히 열심히 합니다.
각 교회들 모두 중심 하고서 같이 하고,
모두가 더불어 일체 되어서 열심히 뛰고 달리기 바랍니다.
항상 10년이 지나도 똑같은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중심해서 산다면 선생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소원입니다. 원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이제까지 45년 동안 가르친 내용이니
이렇게 하면서 나가길 바랍니다.
알겠습니까?
• 구분해서 항상 나가야 합니다.
안 쪼개면 사탄이 들어옵니다.
아브라함이 제물 안 쪼개서 사탄이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반드시 쪼개야 합니다.
<예수님>과 <자기>를 쪼개서 알아야 합니다.
<자기>는 일체지만 ‘신부’입니다.
예수님께서 같은 포도나무라고 했지만,
분명히 너는 ‘가지’고, 나는 ‘나무’라고 했습니다.
소나무는 한 아름씩 됩니다.
하지만 가지는 뻗어나가 있습니다.
‘가지’와 ‘소나무’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같이 보면 안 됩니다.
항상 ‘가지’와 ‘나무’ (쪼개서 봐야 하고),
또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예수님과
우리도 ‘왕 같은 제사장’인데 같은 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성의 지체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또 요한계시록 (3장 21절)에 보면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했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처럼,
너희도 나를 믿으면 아버지의 보좌에 앉으리라.
그 보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를 위해 예비한 보좌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한 보좌니까 아버지의 보좌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같은 위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위치와 <우리>의 위치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같이 와서 앉게 해주니까 얼마나 큽니까.
같은 의자에 앉지는 못하지만, 같은 자리에 앉으니까
같은 위치의 왕 같은 취급을 받지만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하나님을 대하고 사랑하고,
주님을 대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믿습니까?
섭리사는 “주여”하면 <오직 주 예수님>입니다.
둘이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성자>는 (삼위일체) 절대자 (신)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구분을 확실히 하고 확실하게 쪼개고
인식을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배운 것이 안 되고,
실천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해>를 충분히 가르쳤고 이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