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23.03.05 (일)
주일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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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05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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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5일 주일 핵심 말씀>
• <이 시대를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 최고로 크다.
하나님은 항상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이 시대를 맞고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가르쳐 주신다.
• <각 분야별>로 세밀하게 가르칠 때가 있고,
<전체>를 하나로 조립해서 가르칠 때가 있다.
• <자동차>를 만들 때도 ‘각 부속품’을 공장에서 만들다가,
부속품들을 조립해서 ‘하나의 자동차’로 만든다.
이와 같이 <말씀>을 인식시킬 때도
한 번의 설교로 몽땅 다 가르쳐 주지 못한다.
각 분야별로 ‘주일말씀, 수요말씀’을 통해 인식시키다가
때가 되면 조립해서 ‘이 시대’를 완전하게 인식시켜 줘야 된다.
• 섭리사는 때마다 인식시킬 것을 제대로 인식시키기 위해
<각 분야별>로 집중적으로 가르쳐 왔다.
초창기에는 <예수님>에 대해서만 가르치고,
또 한참 오다가 <선생>에 대한 것을 가르치고,
또 한 동안은 <하나님>에 대해 자세하게 가르치고,
또 어느 때는 <성자>에 대해 밝히며 자세하게 가르치고,
또 어느 때는 <성령님>에 대해 밝히며 계속해서 가르쳐 왔다.
• 사람은 뇌 특성상,
<그때 가르치는 것 하나>만 알고 생각한다.
<어린아이>일수록 그러하다.
‘하나’를 들면 ‘다른 하나’를 놓치고,
‘다른 하나’를 들면 ‘또 다른 하나’를 놓치는 격이다.
<제대로 배우고 성장한 신앙의 어른들>은
‘그동안 배운 시대교리’를 딱 쥐고 있으니,
‘전체’를 제대로 인식한다.
• <각 분야별로 가르칠 것>을 집중해서 가르쳐 줬으면,
꼭 <전체>를 조립해서 하나로 인식시켜 줘야 된다.
• <자동차>도 부속품을 만들 때는
외부 따로, 내부 따로, 엔진 따로 보니 ‘차’라는 인식이 안 된다.
각 부속품들을 가져와서 조립하면, 그때 ‘차구나’ 알게 된다.
• 이와 같이 <말씀>도 ‘전체’를 조립해서 가르쳐야,
<시대>를 제대로 인식하고 깨닫게 된다.
그동안 <삼위>와 <예수님>과 <사명자>를 따로 가르쳐 주다가,
이제 ‘전체’를 조립해서 쭉 가르쳐 주니,
<이 시대에 대한 인식>이 완전하게 되고 있다.
***
<신랑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예수님의 육신>이 되어 행해 드려야 된다.
• 선생이 행한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영이 다시 온 것>을 발견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발견한 것이 아니라,
20년 동안 공부하고 성경을 보고,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산(山)기도하면서 배웠다.
배워도, <확실하게 인식하는 것>은 어려웠다.
• 선생이 15살 때 예수님이 “너는 나의 사랑하는 신부다.” 했어도
그 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 했다.
예수님이 “나는 신랑이다.” 했을 때 바로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예수님이 신랑으로 다시 오신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왜? <기독교>에서도 예수님을 ‘신랑’이라고 하니까.
엄격히 따지면 신약 때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는데,
마태복음 25장을 보고 예수님을 ‘신랑’으로 부르기도 한다.
• <선생이 15살에 예수님의 영을 맞았을 때>는
‘재림’에 대해 아예 인식을 못 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림주 예수님을 맞은 것’으로 인식했다.
그러다 예수님께 성경을 깊이 배우고 나서 묻기를
“예수님이 다시 온다더니 다시 온 것인가요?
이것이 환상인가요, 실제인가요?” 하니,
예수님은 “실제다.” 하셨다.
“실제면 정말 예수님이 다시 온 것이 맞나요?
어떻게 하찮은 저에게 오실 수 있나요?” 물으니,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백만 명이 있어도 사랑하는 자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가듯이,
많은 사람이 나를 기다려도 사랑하는 자를 찾아간다.” 하셨다.
이렇게 하나하나 인식하면서 계속해서 말씀을 배웠다.
• 선생은 어려서부터 ‘산속의 흙’을 반반하게 만들어 놓고,
<예수님>이 오시면 ‘발자국’을 보고 알아보고 맞는다고 했다.
예수님의 영이 나타나서 다시 왔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으면,
<땅의 흙을 반반하게 하는 것>을 그만두고
<다시 오신 예수님의 영>을 맞는데 집중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것이고, 이것은 이것이라고 따로 생각했다.
<예수님의 영을 맞은 것>은 맞은 것이고,
다시 온다고 하셨으니까 <예수님의 육신>을 또 기다렸다.
<기독교 인식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시대 인식관>이 그렇게 무섭다.
선생이 그랬듯이
<인식을 확실하게 하지 않은 자>는 아직 ‘인식이 덜 된 것’이다.
• 선생은 10대 때 산(山)기도를 하면서 예수님께 ‘성경’을 배우고,
1978년에 세상에 나와서 ‘시대 복음’을 외치다가,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을 외쳤다.
선생도 <다시 오신 예수님>을
완벽하게 인식하고 외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아무리 사명을 받았어도 쉽게 아는 것이 아니다.
<완벽하게 인식하는 것>이 한순간에 되지 않는다.
예수님이 자세하게 가르쳐 주셔도 육이라 금방 잊어버리고,
생활에 부딪히면 다시 ‘아닌가?’ 하게 된다.
따르는 자들이 확실히 인식하지 못한다고 나무랄 것 없다.
육이라, 쉽게 안 된다.
선생도 시대를 정확히 깨닫고 인식하기까지
20년 밤낮 주야로 배우고 알았는데,
따라오는 사람들은 얼마나 어렵겠냐.
•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신앙을 넣어 주셨으니,
‘예수님을 뿌리로 하는 것’은 기성의 신앙과 다를 것이 없다.
<섭리사의 모든 말씀>은
‘영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을 맞기 위한 말씀’이었고,
‘예수님이 다시 와서 행하는 새 역사를 인식시키는 말씀’이었는데,
아무리 <예수님>을 귀하게 외쳤어도 사람이다 보니,
<예수님의 육이 되어 말씀을 전해 주는 사명자>를 중심하게 되고,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육적인 신앙’이 들어가기도 했다.
• 이 시대 말씀의 가장 큰 핵심은
우리가 <신랑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의 영>을 맞고,
<예수님의 육>이 된 것이다.
누구든지 <신랑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의 영>을 맞고,
<그 육신>이 되어 증거하고 가르쳐 나가면 ‘신부 입장’이다.
먼저는 <자기가 확실하게 인식하는 것>,
그리고 <예수님의 육이 되어 확실하게 인식시켜 주는 것>이
‘이 시대에 최고로 할 일’이다.
•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육신 없는 영의 서러움>이 얼마나 큰지 아느냐.” 하셨다.
선생이 행해 보니, <제2의 육신으로 쓰는 사람들>이
‘내 마음과 생각대로 그대로 행해 준다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교회에서도 교역자나 지도자가 교인들에게 어떤 일을 맡겨 보면,
<제2의 자기>라고 할 정도로 마음에 들게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오죽하시겠느냐.
그러니, 예수님이 ‘육신 없는 서러움’이 그렇게 크다고
속 이야기를 한 것이다.
• 선생도 <예수님의 육신>이 되어 드리겠다고 했는데,
<예수님의 제2의 몸이 되어 행하는 것>이 잘 안 됐다.
평생 동안 하나님께 잘해 보겠다고 하면서 해 왔어도
잘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모두 ‘예수님의 심정’을 알고, ‘육신 없는 서러움’이 큰 것을 알고,
<예수님의 육신>이 되어 드려야 한다.
***
<예수님>만이 ‘주 그리스도’시다.
• 초림 때는 <예수님의 육신>이 있었으니,
예수님이 제자들과 늘 이야기도 하고 말씀도 전해 줬다.
그러나 재림 때는 예수님이 <영>으로 다시 오시니,
맞기가 정말 어렵다.
영이니 눈에 보이지도 않고,
열심히 기도해서 만나더라도 계속해서 보이지 않고
순간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 <예수님이 영으로 다시 오신다는 것>만 확실하게 알면,
어떤 비(非)진리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선생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이를 확실하게 인식했기 때문에
1999년 이후 사람들이 서로 “내가 재림주다.” 했을 때,
절대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 초림 때는
예수님이 <육신>으로 태어나고 성장해서 역사를 펴셨고,
‘그 육신’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예수님>이 다시 온다고 말씀하셨으니까
<다시 오시는 이>도 ‘예수님’이어야 하는데,
예수님과 똑같은 유전자로 태어나서 크고 성장할 수 없다.
고로 <육신이 있는 자>는 ‘재림주’가 아니다.
• 재림 때는 예수님이 <영>으로 다시 오신다.
<영>도 다른 사람의 영이 아니라,
<초림 때 메시아 사명을 했던 예수님의 영>이 다시 와야,
그가 ‘재림주’고, ‘메시아’다.
예수님이 초림 때 “내가 다시 온다.”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이 다시 와서 그 말씀을 이루는 역사>가 ‘재림역사’다.
자기가 재림주라고 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신약 때 역사를 펴다가, 다시 온다고 성경에 써 놓고,
이 시대에 다시 와서 역사를 펴는 것이 아니니 틀린 말이다.
• 선생은 성자와 함께 <신랑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의 영>을 맞고,
‘예수님의 뜻’을 품고 세상에 나와서 외쳤다.
재림 때 <예수님의 영>이 땅에서 한 사람을 택하여
육신으로 삼고 ‘그’를 통해 말씀하시고 행하시는데
사람들이 ‘그’를 크게 보지 않겠냐.
고로 선생을 보고 - ‘주’, ‘주인’, ‘신랑’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주 예수님>과 <사명자>를 반드시 쪼개야 된다.
• 아무리 사랑으로 일체 된 부부라도,
쪼개면, <남자>와 <여자>로 구분된다.
쪼개면, 한 명은 <신랑>이고, 한 명은 <신부>다.
아무리 <선생>이 <예수님>과 일체 되어 행해도
선생이 신랑이면 예수님이 신부인데, - 이 말은 통하지 않는다.
아닌 것은 바로 아니라는 것을 안다.
***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 섭리사 초창기 때는
선생이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았다는 말씀>을 계속해서 외쳤다.
선생이 산(山)기도를 할 때 힘들어서 예수님에게서 도망쳤더니,
횟골에서 예수님이 ‘옷’이 더러워져서 나타나셨다.
그때 예수님이 마음과 심정으로 말씀하시기를
“신부가 옷을 안 빨아줘서 신랑의 옷이 이렇게 어둡다.” 하셨다.
내 혼의 옷도 어두워져 있었다.
선생이 다시 산으로 올라가서 예수님께 순종하니,
‘예수님의 옷’도 ‘내 옷’도 깨끗해져 있었다.
• 이때 겪은 것을 잊지 않고
<예수님께 배운 인식관>을 그대로 잘 외쳐 왔는데,
<청중>이 있어서 ‘청중’을 쳐다보고,
<아픈 자들>이 있어서 ‘아픈 자들’을 쳐다보고,
<때마다 인식시킬 것들>을 가르치고 교육시키다 보니,
<예수님>을 또 잊게 됐다.
그러면서 ‘육적으로 흘러간 것들’이 많이 있었다.
청중을 맞으면서 굴곡이 많았다.
• <섭리역사>에는 항상 ‘예수님’이 계셨다.
고로 ‘예수님’을 잊지 말아야 된다.
• <히브리서 13장 8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했다.
<동일한 한 가지>는
-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해 주시는 이는
- 신약 때도, 이 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라는 것이다.
• 예수님은 “재림은 초림의 연속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초림 때>도, <재림 때>도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이다.
<신약 때>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아야 되고,
<이 시대>에는 ‘영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아야 된다.
<예수님이 영으로 다시 온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면,
<그 영>이 ‘이 시대급으로 부활’된다.
• 시대 설교를 천 번, 만 번 들어도
<다시 오신 예수님>을 제대로 모르면 안 된다.
당세뿐 아니라 후손들도 제대로 인식시켜야 되기 때문에
확실하게 <주 예수님>을 중심해서 가르쳐 나가야 된다.
• 다시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외치기 시작하니, 사람들은 말하기를
“<선생님>을 ‘주’로 대하다가,
왜 다시 <예수님>을 ‘주’라고 하냐.
환난 때문에 말씀이 바뀌었냐.” 했다.
선생에게 <시대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선생을 통해 섭리역사를 펴 오신 이>는 ‘예수님’이시다.
그 위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늘 함께하셨다.
<주>는 ‘예수님 한 분’이시다.
- 이 한 가지는 어제나, 오늘이나 변하지 않고 영원히 동일하다.
• 다만, <어려움>을 <기회>로 삼고,
이 기회를 통해 모든 것을 ‘재정비’해야 된다.
<자기>를 돌아보고 파악하면서
<깨끗이 할 것>을 깨끗이 하고,
<자기 위치>도 정확히 알고,
<인식할 것>을 확실하게 인식해야 된다.
***
<육>을 중심하지 말고, <영>을 중심해야 된다.
•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말하기를
“하나님, 계시를 받을 때는 다 잘된다고 하셨는데
잘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아요. 안 좋은 일이 터졌네요” 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잘된다고 한 것>은 ‘영이 잘된다고 한 말’이다.
나 여호와는 <육>보다 <영>을 본다.
<육의 세계>보다 <영의 세계>를 본다.
<영>이 잘 돼야지,
<육신>은 죽어 없어지는데, ‘육신’만 잘돼서 뭐하냐.
고로 항상 <영>을 중심해라.
<영의 세계>를 잡아야, ‘육’도 ‘영’도 잘된다.” 하셨다.
• <하나님이 잘된다고 하시는 말씀>은
항상 ‘영이 잘된다고 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육신>이 잘되기만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일’도 없었고,
신약 2000년 역사도 ‘순교와 피어린 환난과 핍박’ 하나 없이
‘지상 천국’이 됐을 것이다.
• <마태복음 10장 28절>에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몸을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이는 <육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말이다.
<영>이 죽으면, ‘육’도 ‘영’도 끝나기 때문이다.
• 그래도 하나님께 묻기를
“<내 영>이 잘됨과 같이 <육신>도 잘되죠?” 하니,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영>이 잘되면, <육>도 ‘그 영향’을 받고 잘되지.
너를 봐라. 잘됐냐, 못 됐냐.
육신도 잘되고 형통하지 않았냐.
그러나 <육신>이 잘 되기만 할 수는 없다.
<잘 될 때>도 있고, <어려움이 있을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환경의 영향을 받는 육>을 중심하지 말고,
어려움이 있을수록 더욱 <영>을 중심하여라.
결국 <영>이 잘돼야, 영원히 잘 된다.” 하셨다.
• <육신>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만,
<영>은 흔들리지 않는다.
고로 <육신>을 중심하지 말고, <영>을 중심해야 된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예수님>도 ‘영’이시니,
오직 <삼위와 예수님>을 중심해야 된다.
***
오직 <삼위와 예수님>을 머리 삼고,
<삼위와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 같이 사는 삶>을 살아야 된다.
• 이 시대 교리의 핵심은
<삼위와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모시고 같이 사는 것’이다.
선생은 <신랑 되신 예수님>을 품고 왔다.
예수님 없이 혼자 왔으면, ‘한 청년’에 불과했다.
<시대 신부>라면,
항상 ‘삼위와 예수님’을 중심하고
자기 속에 ‘삼위와 예수님’을 모시고 같이 살아야 된다.
• <예수님이 영으로 다시 와서 하신 일>이 ‘섭리역사’를 편 것이다.
고로 <섭리역사>가 ‘예수님이 영으로 재림하신 근거’다.
• 예수님께서 <3년 반 동안 외친 말씀>을
신약 2000년 동안 전하며 왔다.
섭리사도 <예수님에 대한 말씀>만 외쳐도 충분하다.
<이 시대에 예수님이 영으로 다시 오신 것>,
<신랑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을 믿고 같이 사는 것>이 그리 크다.
• <예수님 앞에 모든 자들>은 ‘지체’다.
<예수님의 첫 번째 신부가 된 사명자>는 스스로 머리가 되어
행하지 않고, ‘삼위와 예수님’을 머리 삼고 행한다.
이와 같이 모두 <삼위와 예수님>을 ‘머리’로 삼고,
<삼위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시대말씀>을 전하면,
새로운 역사로 수많은 생명들이 몰려오게 된다.
• <성자>에 대해서도 ‘예수님’이 가르쳐 주셨다.
<삼위일체 중 한 분이신 성자>는
‘지상의 구원’을 총책임지고 계신다.
<구약 때>는 ‘모세’를 쓰고 나타나셨고,
<신약 때>는 ‘예수님’을 쓰고 오셨고,
<이 시대>에는 ‘예수님의 영’과 함께 다시 오셨다.
• 예수님께서 <성자>를 가르쳐 주셨을 때,
“<예수님>을 ‘성자’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까.
아니면, 하늘나라에 <성자>가 따로 존재하십니까?” 물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성령님, 성자>는 육체 없이 ‘영체’로 존재하신다.
<나 예수>는 ‘땅의 성자 격’이다.” 하셨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면
하늘에 성자가 두 분이 되냐고 물으니,
“<나 예수>는 ‘땅의 육신을 거친 자’이기 때문에
<영으로 존재하시는 절대신 성자>와 다르다.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근본자는 오직 ‘성삼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이시다.” 했다.
•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존재자이신지도 물었다.
<하나님>을 ‘신랑’이라고 하는 것도 맞는지,
예수님께 계속해서 물으며 확인했다.
나중에는 <성령님>에 대해서도 밝혀 주시며,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신랑이 되시는 것>과
우리가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어 창조 목적을 이루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구시대>에서는
삼위와 예수님을 아무리 사랑하고 살아도 ‘신부’가 될 수 없고,
<천 년 역사의 때>가 와야 ‘시대 신부’가 되어
‘혼인 잔치’하며 같이 살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다.
• <예수님>은 세상에 ‘하나님’을 가르쳐 주러 오셨다.
<이 시대 사명자>는 ‘다시 오신 예수님’을 가르쳐 주러 왔다.
신약 때 <베드로>로 인해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발견했듯,
<시대 사명자>로 인해 ‘영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을 발견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예수님>과
<사명자>와 <자기 자신>을 확실하게 알면 흔들림이 없다.
• 구약 때는 <하나님>께도 ‘주여’라고 했고,
<아브라함>을 보고도 ‘주’라고 했다.
신약 때는 <하나님>께도 주라고 했고,
<예수님>도 주라고 했다.
이 시대에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주 예수님>을 정확히 알게 했으니,
이것이 ‘우리의 위력이자 자부심’이다.
이제는 <삼위와 예수님과 일체 되어 같이 사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