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23.12.10 (일)
주일말씀
- 선포일
- 2023.12.10 (일)
- 성경 본문
- 잠언 30장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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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0일 주일말씀>
1. 절대 하나님의 뜻이 있어 그같이 하였다
2.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본 문 :
<잠언 30장 7-9절> “내가 두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
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
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마태복음 19장 23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요한복음 14장 8-11절>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
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
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
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
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
으라”
할렐루야!
12월 둘째 주 주일입니다.
2023년이 이제 20일 정도 남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 연말의 때에
특히 여러분이 명심하고 행해야 할 중요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과 선생의 심정을 배우고
연구하고 알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절대 하나님의 뜻이 있어 그같이 하였다.
둘째,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라는 주제입니다.
그럼,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 오늘 말씀의 사연을 먼저 들어 보겠습니다.
◈ 선생이 새벽에 잠에서 깼는데, 시계를 보니 3시 15분이었습니다.
바로 몸을 일으켜 일어나지 않고 계속 누워 있는데
몸도 마음도 너무 편안했습니다.
이렇게 10분, 20분을 있는데
‘이러다 기도 못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할수록 기도하기 힘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
“예수님! 저 좀 일어나게 해 주세요.”라며
애원하고 간구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섭리사 모든 자들이 지금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어서 속히 일어나라.” 하셨습니다.
선생이 기도를 안 하면 생명들이 점점 병들어 가고,
사탄과 악인들에게 넘어갑니다.
그래서 버르적거리다 간신히 일어나서
찬물로 씻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깨달아지기를,
‘사람이 편하면 정말 아무도 찾지 않고,
하나님, 성령님, 구원자도 찾지 않고, 안 믿게 되겠구나.
정말 편하면 기도를 못 하겠구나.
이러므로 하나님이 신앙생활을 나태하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이나 핍박을 막아 주지 않고
고생하더라도 기도하게 하고 열심히 하게 하시는구나.
편하면 편한 체질과 습관이 되어
결국 육도 사망권으로 가게 되고, 영도 사망으로 가겠구나.’
하고 깨달아졌습니다.
◇ 선생이 어릴 때 배고프다고 기도하고
산(山)에 가서 기도한 것이
그때는 고생됐어도 정말 잘했다고 깨닫게 됐습니다.
예수님이 마음이 안쓰러워도 늘 선생을 이끌고 다니며
젊은 날에 기도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 사람은 편할수록 거기에 빠져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신앙생활 하기가 어렵습니다.
편할수록, 아무 문제가 없으면 기도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사람이 편할수록, 아무리 메시아 예수님이라도
섬기고 사랑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편한데 뭘 더 원하겠습니까.
편하면 이미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한 부자 청년의 행실을 겪으시고
“부자는 천국에 가기 어렵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쉬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 19: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 사람이 편하면,
편한 환경 가운데 묶여 환각 상태에서 살게 됩니다.
이미 편하게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곳이 있다고, 같이 가자고 해도
그 사람은 가지를 않습니다.
편하게 사는 자는 편함의 목적을 이미 이뤘기에
그것을 사랑하며 일체 되어 살아갑니다.
사람이 편하면
그것을 자기의 영광, 기쁨, 천국, 사랑으로 생각하고
낙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고생되고 귀찮은 것은 그 어떠한 것도 싫어합니다.
배부르면 식당을 찾지 않습니다.
편하고 아쉬운 것이 없으면 주도, 하나님도 찾지 않습니다.
저마다 자기 자신도 그러한지를 한번 생각해 보고
확인해 봐야 합니다.
지난날 삶이 편했을 때는
기도도 못 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못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인생이 고통을 겪고 고생되니
더 편하게 살기 위해, 곤고함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아다니다 희망을 걸고 모두 섭리사로 왔습니다.
◇ 누구든지 자기 마음을 만들지 못하면
자기 몸도 다스리지 못합니다.
저마다 편하게 살면 기뻐 좋아서 자기 삶만 살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메시아를 찾지 않고 살아갑니다.
배부르고 편하면 하나님도, 주도 찾지 않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거나 섭리역사를 보면
최고의 환난과 핍박이 있을 때 신앙들이 살아나고,
하나님과 주를 찾으면서 기도도 많이 하고,
굳건해지고, 전도도 많이 했습니다.
◇ 사람은 문제가 생겨야 기도합니다.
어려움과 고통을 받게 되면, 밤을 새우면서 기도하고
자기를 도울 자도 찾고,
하나님도 찾고, 구원자도 찾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삶을 괴롭게 해서라도 깨닫게 하고
하나님과 주를 믿게 하여 영원히 구원시키십니다.
자기가 편안하고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면 신앙이 나태해지고
하나님, 성령, 성자, 주가 옆에 계셔도
인사도 안 하고 찾지도 않는 못된 인생들이 됩니다.
◇ 사람은 어렵고 힘들고 고통을 받아야
주를 찾고, 의지할 자를 찾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편할 때는 자기 천국입니다.
그러니 천국을 벗어나려 하지를 않습니다.
안일하다 주를 떠나 사망으로 가는 자도 많고,
혹은 환난 때 하나님도 주도 안 도와준다고 서운하게 생각하고
주를 안 찾고 세상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고로 잘해야 됩니다.
◇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빠져 사는 것이 편한 삶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과 주를 믿어도
간절하게 믿고 사랑하면서 살지 않습니다.
지난날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이 자기를 위해 주어
은혜를 받고 산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깨닫지 못한 자는 짐승과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시 49:20).
◈ 성경의 모든 사명자들도
극심한 고통 가운데 고생하며 살았습니다.
고생되어도 절대 하나님의 뜻대로 하여 결국 성공했습니다.
성령은 “고생되어도 생명 길을 가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영상 1)
◇ 성경 창세기 37~41장을 보면,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살았지만
배다른 형제들이 시기, 질투하며 미워하여 괴롭힘을 받다가,
형제들이 애굽의 상인들에게 팔아서
애굽 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종으로 충성스럽게 살았으나,
그의 아내가 요셉을 사랑함에 정신이 빠졌고
요셉이 청을 들어주지 않으니
여자가 겁탈하려다가 누명을 씌워서
요셉은 억울하게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요셉은 ‘큰 뜻이 있겠지.’하고 낙심치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변하지 않고 살다가,
거기서 하나님이 뜻과 목적을 이루려 연결해 주신
애굽 왕의 수종자를 만나
결국 애굽 바로 왕의 꿈을 풀어 주고 나라 문제를 해결해 주고
총리 대신이 됐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만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보냅니다.
어느 시대든지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이와 같이 이러하다.’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끝까지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 구원에 신경 쓰고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살아야
자기 구원을 이룹니다.
하나님이 은밀하게 행하심을 절대 믿고 살아야 합니다.
모두 이 시대 개인들 하나하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멘.
◇ 또 창세기 27~31장을 보면,
<야곱>도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아버지의 축복을 받고 좋았지만
형 에서의 미움을 받고 집을 떠나 갖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사랑도, 경제도 성공했습니다.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만 받고 편하게 살았으면
그 삶에서 끝났습니다.
◇ 욥기서를 보면,
<욥>도 우스 땅에서
그 시대 최고로 잘사는 축복을 받고 살았지만,
사탄을 굴복시키려 하나님이 행하셔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빼앗기며 고생하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시험을 이긴 후에는 사탄의 사고를 다 멸하고
하나님과 다투는 자, 사탄을 욥이 파멸시켜
사탄 세계가 다시는 그 같은 짓을
후손들에게까지 못 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축복해서
욥이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한다.’고 주장하고,
하나님은 ‘욥이 나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섬겨서 축복했다.
물질 때문에 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욥이 아니다.’하셨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욥이 변하지 않고 행하여 사탄과 악을 굴복시켰습니다.
그리고 더 큰 축복을 받으며 성공하였습니다.
이 시대도 사탄과 악인들은 이성 사랑으로 힐문합니다.
오직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 때문에 사랑하고 살고
하나님을 사랑해서 행하는데,
사탄과 악인들은 자기주장을 합니다.
그렇지 않음을, 욥같이 인내로 이겨서 다 굴복시켜야 됩니다.
◇ 사무엘상 18장 이하를 보면,
<다윗>도 사울 왕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을 수없이 겪으며
그 시대에 처참한 고생을 했지만,
결국 왕이 되고 성공했습니다.
다윗은 원수 사울로 인하여
전쟁도 더 겪고 배우면서 담대해졌으며,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하심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을 많이 겪고
또 하나님이 능력으로 자기에게 행하심을 겪은 것입니다.
이로써 더욱 확실한 자가 됐습니다.
절대 하나님의 뜻이 있어 그같이 한 것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습니다.
고생하며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을 더욱 찾고 기도하며
자기의 몸과 마음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야 성공합니다.
◇ 사람들은 고생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하며 생각합니다.
어려움만 보면 안 되고, 하나님의 뜻을 봐야 합니다.
고생되어도 절대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그 시대에 상상도 못 하는 표적이 일어납니다.
고생과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편안하게만 산 자들 중에 성공한 자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이지만, 편한 날이 없이 살았습니다.
평생 고통과 핍박을 받고, 억울함을 다 이겼습니다.
현재도 그러합니다.
◇ 선생도 10대, 20대 때
고생하고 배고프고 어려울 때, 가장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추운 겨울, 영하 10~15도일 때
대둔산과 기도굴로 기도하러 다녔습니다.
그때 노방전도 하러 가장 많이 다녔습니다.
그때 성경도 최고로 많이 읽고 예수님께 배우고 깨달아서
성경에 인봉된 말씀을 시대 말씀으로 받고
새 시대를 예수님과 같이 준비했습니다.
극적인 고통을 겪으면서 최고 조건을 세웠습니다.
그때 배고프고 가난하니,
하나님과 예수님께 달라는 기도를 하러 다녔습니다.
지난날 힘들 때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예수님을
가장 많이 찾고, 기도하고 가까이했습니다. (영상 1 끝)
◇ 편할수록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찾고
기도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편하게 사는 자들은 신앙생활을 잘 안 하고
편한 삶의 길로만 정신과 마음이 빠져 흥분되어 살아갑니다.
사람이 너무 편하면, 너무 편하고 좋으니
또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주도 안 믿습니다.
망하는 인생들이 됩니다.
편한 자들은 더 편하려 사망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다 돌아오지 못하게 됩니다.
한편, 사람이 너무 문제와 고통을 받으면 괴로워서
‘왜 하나님, 주님은 나를 안 도와주냐.’ 하고 낙심합니다.
이로 인해 극적인 마음까지 갖게 되어, 하나님은 없다고
믿음을 저버리게 됩니다.
어려움이 온 만큼 그로 인해 문제가 해결되게 도우시고
하나님은 자신의 것이니 절대로 결국 좋게 해결해 주십니다.
고생되고 어려울 때가
하나님과 주를 찾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기도 하고,
반대로, 안 믿는 운명의 길로 가게 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더 잘 믿게 되기도 하고, 잘못 생각하고 더 안 믿게도 됩니다.
환난 때 이같이 극적으로 갈리게 됩니다.
◇ 선생이 “나는 구원의 사명자가 아니다.”라고 생각해 보니
아닌 이유가 생각이 안 났습니다.
평생 예수님의 몸이 되어 생명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구원하며 살아서입니다.
한편“내가 구원의 사명자다.”라고 생각하니
또, 하나도 그 이유가 생각이 안 났습니다.
모두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이 하셔서 구원했기 때문입니다.
모두 우리가 하면 실패합니다. 주가 해야 됩니다.
전능자 하나님이 성령과 함께 자신의 일이니 하십니다.
온전히 맡겨야 해 줍니다.
자기가 하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입니다.
이같이 결국 삼위가 다 해 주십니다.
자기는 그동안 받은 은혜를 잊지 말고
절대로 끝까지 믿고 가야 합니다.
◎ 두 번째 말씀입니다.
◈ 모두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럼, 질문하겠습니다.
사람이 자기가 최고로 좋아하는 자가 있는데,
눈으로 보기만 하고 한마디도 대화를 안 하는 것이
좋고, 유익이겠습니까.
눈으로 안 봐도 대화하는 것이 더 좋고, 유익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것을 원하여 택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안 보여 주고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행하도록 하여
구원과 뜻을 이루는 역사를 펴 오셨습니다.
눈으로 보기만 하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까.
안 보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낫습니까.
하나님은 안 보여 주시고 사랑하시며
창세 이후 시대 따라 지금껏 역사를 펴 오셨습니다.
◇ 하나님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 방법은 망하는 방법, 겉만 좋은 사고들입니다.
예수님 때도 보고서 믿고 싶어 하는 자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는 것이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주를 보고 싶다 하면,
주가 보낸 자를 통해 그 말씀을 듣는 것이
말씀으로 주를 보는 것이다.” 했습니다.
◇ 만물은 눈만 뜨면 봅니다.
눈으로 안 보아도 듣는 귀가 열려 들으면
형상을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귀>는 ‘들어 본다.’라고 합니다.
안 보고 그 말을 속 시원히 듣는 것이 낫습니다.
<몸>은 안 보아도 ‘느껴 본다.’라고 합니다.
<입>은 못 보아도 ‘먹어 본다.’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주도 눈으로 안 보아도
마음의 눈을 밝혀 보면 됩니다.
하나님을 느껴 보면 되고,
성령님, 예수님 역시 느껴 보면 본 것입니다.
말씀해 주시고, 대화가 통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이 시대에도 안 보고 그의 말을 듣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만 들어도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을 연구하니 확실했습니다.
학자들이 연구 안 했으면, 모두 원시인 삶을 살아갑니다.
고로, 신앙의 것도 기도하면서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께 가르쳐 달라고 매달려
알도록 연구하라 했습니다.
눈으로 하나님을 보고 말 안 하고 가는 것보다
하나님을 안 보고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주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 맞느냐고 물어보니 “그러하다.” 하셨습니다.
성령도, 예수님도 안 보고 말씀해 주는 것을 듣는 것이
훨씬 낫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보여 주면 ‘에~ 하나님이 사람같이 생겼네.’ 하고
인간 차원에서 생각합니다.
◇ 매일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는 없고
한 번 보고서 또 보고 싶어 연구하다 더욱 깨달았습니다.
하나님도, 성령도, 성자도, 예수님도
매일 눈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연구한 결과의 답입니다.
선생이 옛날에 40일간 기도했어도
예수님 그림자도 못 밟아 봤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전하니 생명들이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본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아멘.
◇ 말씀을 듣는 것은
하나님을 말소리로 본 것입니다.
마음으로 들려오고 느껴져 옵니다.
하나님은 대화 조건이 절대 되어야만 대화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마음에 새겨들으면
하나님을 말씀으로 본 것입니다.
성령님도, 성자도, 예수님도 그러합니다.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을
영의 눈이나 그 어떤 것으로 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성경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잘 본다.’고 했습니다.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중고등부는 마음이 청결하고 맑으니 잘 봅니다.
예수님 본 자, 손들어 봐요.
◇ 말씀을 하셔야 자신의 뜻을 펴시기 때문에
안 보여 주셔도
말씀은 꼭 사명자에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은
생명이 죽고 사는 문제가 닥쳐왔는데
몸만 보여 주고 아무 말도 안 하고 가시면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반면에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이 안 보이시고
“생명에 관한 일이다. 어서 네 위치를 떠서 옮겨라.” 하고
말씀해 주셨을 때는
결국 그 말씀대로 옮겨서 살았습니다.
◇ 오늘 말씀이 바로
‘안 보인다고 보려고만 말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문으로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환난에서 살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네가 기도한 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계시 말씀입니다. 깨달았습니까. 아멘.
◇ 하나님이 새벽에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모습을 보여 주며 뜻을 펴 오지 않고
<말씀>으로 나의 천지 창조한 목적을 이루며 뜻을 펴 왔다.
나, 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주 하나님을 말로 듣고 본 것이다.
만일, 네가 사랑하는 나 하나님, 성령, 주가 네 앞에 있는데
얼굴을 보기만 하고 한마디 말도 못 하다가 갔다 하자.
그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본 것으로 만족하겠느냐.
그와 네게 무슨 만족이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목적을 이루겠느냐.
반대로, 얼굴은 안 보고 하고 싶은 대화를 하였다고 하자.
그럼 만족하지 않겠느냐.
목적을 서로 행하지 않겠느냐.
보고 싶은 것도 말로 물어보면 되지 않겠느냐.
하고 싶은 말을 하여 네 소원, 그의 소원을 이루고
뜻과 목적을 이루지 않겠느냐.
나 여호와도 너희를 그리 대하느니라.
가령 네 앞에 음식이 있는데
보기만 하고 안 먹는 것과
안 보고 먹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좋다고 택하겠느냐.
만사의 모든 것들을 생각해 보아라.
이때 이 시대를 분별하여라.
어떤 것이 더 실속이 있겠느냐.
안 보고 먹는 것이 훨씬 낫듯
이 시대 너희를 대함도 이러하니라.
이는 먹으면서 느껴서 보기 때문이고
먹으면서 생각해서 보기 때문이다.
이같이 나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 보고 싶은 선생 역시
안 보고 말씀을 듣는 것이 여러 가지로 훨씬 나으니라.
신약 때 빌립은 보고 믿는 신앙이었던 고로,
예수는 “나를 보면 하나님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하나님을 보여 달라 하느냐.” 하였다.
이 모든 것은 너희 선생이 기도하면서 받은
나 하나님의 계시니라.” 하셨습니다.
◇ 성경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은
자기 형상을 안 보이시고 ‘말씀’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말씀으로 만물도, 사람도 창조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보이면서 나타나는 것이
목적이 아니시고, ‘말씀’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보려고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자가 하나님을 보는 자입니다.
말씀이 그리 큰 것입니다.
사명자 역시 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그를 보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그 육의 사명자를 보세요.
◇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1600년 만에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말씀 중심하도록 안 보이시고 말씀만 줍니다.
타락하면 말씀을 안 줍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에게는 안 줬습니다.
◇ 하나님을 보여 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자를 보는 것이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낸 자를 보면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는 것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이 시대는 ‘상징’으로 볼 수도 있고, ‘말씀’도 해 주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리고, 자기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세요.
하나님이 저마다 자기 몸을 쓰고 행하시니
자기 육을 보는 것이 곧, 하나님을 상징으로 보는 격입니다.
성령과 주가 행하시면
자기 몸을 통해 성령과 주의 행하심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주도 “그러므로 너희 몸은 나의 전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 시대 보낸 자 역시
자기 사랑의 전인 여러분에게 수시로 오고 갑니다.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 또한, 하나님이 구상해 만들어 놓은 월명동을 보는 것이
하나님을 상징으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전은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몸입니다.
주의 전 역시, 주의 몸입니다.
고로 “깨끗하게 하라. 정결하게 하라.” 하십니다.
더러우면 떠납니다.
작품을 보면 작가를 본 것이라고 말들 합니다.
◈ 하나님의 전에 <나무와 돌 작품>을 사 올 때
평소같이 보통으로 생각하면 못 사 왔습니다.
순간 마음의 시동이 걸려야 행하니, 하나님은 선생에게
월명동으로 사 와야 할 나무와 돌 작품을 보이며
작든지 크든지 뜻이 있으면 호기심 나게 하시고,
희망에 차고 마음이 흥분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사게 하시고, 심을 때까지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호기심과 희망찬 그 힘으로 기뻐 행했습니다.
그런데 나무와 돌 작품을 그렇게 힘들게 갖다 놓고
잠깐 한때 좋아하고, 그 후에 보통으로 대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도
“다시 처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기뻐 좋아하며 살아라.
처음 사랑 잊으면, 해 놓고 무슨 보람이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는 “처음 사랑 잊으면, 내 입에서 토한다.” 했습니다.
(계 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
서 옮기리라”
(계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이제 다시는 그런 나무와 돌 작품을 못 사 옵니다.
그렇게 좋아하며 사 온 나무와 돌 작품들이니
처음의 그 마음으로 대하기만 하면 됩니다.
◇ <섭리사 사람들>도 그러합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과거 신앙을 다시 못 합니다.
그것은 구할 수가 없습니다.
젊음을 불사르면서 섭리사를 뛰고 살았습니다.
다시 그같이 못하니, 마음만 불태우면 됩니다. 첫사랑입니다.
저마다 처음에 섭리사를 좇으며 좋아하고 흥분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야 마음 작동이 일어나 행하기 때문입니다.
행할 때의 과정은 너무나도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섭리사에 자기를 심어 놓았으니
다시 처음같이 하면, 보람을 느끼고 가치와 은혜를 깨닫습니다.
처음 사랑, 신앙, 믿음으로 다시 열심히 해야 합니다.
이때가 중한 때입니다.
◇ <월명동 자연성전>도 그러합니다.
사람은 마음의 시동이 걸려야 행하기 때문에
하나님도 처음에는 행하는 모든 자들을 흥분시켜 주셨습니다.
고로 그 삭막한 월명동을
희망으로 개발하는 데에 마음들이 움직여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시대뿐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 때마다 모두 그리했습니다.
처음에는 <섭리역사>도
천 년 역사가 왔다고 호기심이 나서
희망과 이상을 생각하며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이 흥분되어
거기에 미쳐 좋아하게 하셨습니다.
신앙도 같이 불타서 했습니다.
그 과정은 환난, 핍박으로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해 놓고 너무 기뻐했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점점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 선생까지 그 좋아함이 식고
가물가물 잊어 갔습니다.
이제는 월명동의 그런 돌과 나무를 구할 수도 없고
하나님 전을 다시 건축할 수도 없듯이,
옛 신앙, 처음 신앙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로 인해 사랑 휴거가 된 것입니다.
다시 신앙에 불붙여, 그 은혜를 귀히 여기고 행해야 됩니다.
◇ 모두 좋아하며
월명동에 마음눈을 떠서 각종으로 쓰고,
자기 몸과 마음도 만들어 놓았으니 귀하게 써야 됩니다.
건축하며 만들 때만 좋아하지 말고
이제 해 놓았으니 각종으로 활용하며 좋아하며 쓰고,
각 교회들도 귀히 써야 됩니다.
교회도 표적으로 구하였습니다. 다시는 못 구합니다.
그때이니 구했지, 지금은 못 구합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 예수님과 선생이 구해 줬으니
귀히 쓰며, 주신 자를 증거해야 됩니다.
교회에서 싸움하면 정말 하나님이 쫓아냅니다.
교회는 화평으로 기도하는 집이니,
하나님 심정 상하면 말없이 버리십니다.
◇ 이와 같이 자기 신앙들도 만들어 왔습니다.
귀하게 여기고 기뻐하며,
사랑하여 주신 하나님, 성령님, 성자, 예수님께
다시 사연을 나누면서 써야 합니다.
섭리사의 생명들도 이러합니다.
귀하게 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자연성전을 지금까지 만드는 것도
30년간 그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이제 만들어 놓았으니 귀히 생각하고 써야 합니다.
이제는 다시 못 만듭니다.
이 자연성전같이
자기 신앙을 시작하는 것도, 지금까지 만드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자기 신앙도 이제는 옛날같이 못 만듭니다.
기회가 다 지나갔습니다.
모두 다 이제 넘어지면 다시 못 만듭니다.
선생이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는 말씀으로 다듬고 아름답게, 신비하게 할 때입니다.
◇ 하나님은 선생이 원하는 것을 섭리사에 해 주실 때마다
각종 문제와 고생을 여러 단계 거치게 하며 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한두 가지만 돕고 해 주신다고
원하는 소원이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인간들의 세상이라
이것저것 한 세월이 갈 때까지 조건을 세우면서
여러 가지로 다 도와야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사람이라 때를 맞춰 여러 단계를 거쳐 가면서 도와야
소원이 이뤄집니다.
과거에서 지금까지 한 자들은
정말 시대의 때를 잘 타고났습니다.
이제는 딴 세계, 딴 방법의 역사를 펴야 합니다.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과 선생의 심정을 배우고
연구하고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더 도움을 받게 됩니다.
◎ 결론,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왜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은 말씀만 계시해 주시고
나타나시지 않느냐고 기도하니,
이에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 하나님을 안 보고
내 할 말을 해 주는 것을 듣는 것이
나의 얼굴과 영의 몸을 보기만 하고
말 한마디 안 듣는 것보다 낫다.
보여 주면, 말씀 집중 안 한다. 생명시 안 한다.
보는 것을 중심한다.
너희들도 사랑하는 자와 만나면 그러지 아니하냐.
나의 말을 생명시하며 들어라.
말씀이 생명이다. 영의 양식이다.
말씀을 들어야 시대 의문이 풀린다. 섭리 문제가 풀린다.
그래야 환난을 이긴다.
말씀으로 나 하나님과 주도 나타나는 것이다.
말씀을 생명시하여라.” 하셨습니다.
◎ 주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말씀이
성령 안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