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24.05.19 (일)
주일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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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9 (일)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13장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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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9일 주일말씀>
1. 마음 밭을 옥토 밭으로 만들어라
2. 흠 없이 행하여라
3. ‘보냄을 받은 자’는 ‘자기를 보내신 자’를 증거한다
본 문 :
<마태복음 13장 3-9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
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5월의 셋째 주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세 가지입니다.
“1. 마음 밭을 옥토 밭으로 만들어라
2. 흠 없이 행하여라
3.‘보냄을 받은 자’는 ‘자기를 보내신 자’를 증거한다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설교문으로 작성하지 않고,
기도할 때 계시를 받은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I. 마음 밭을 옥토 밭으로 만들어라
◎ <자갈밭>, <가시덤불 밭>, <잡초 밭>도
모두 <옥토 밭>이 되는 방법이 있다.
<자갈밭>은 모든 돌을 추려 내고,
<가시덤불 밭>은 가시덤불을 불살라 없애고,
<잡초 밭>은 잡초가 난 땅을 갈아엎어 만들고 또 만들면
모두 <옥토 밭>이 된다.
사람의 ‘마음’도 그러하다.
자갈밭 같은 마음, 가시밭 같은 마음, 잡초 밭 같은 마음,
딱딱하고 단단한 토질의 밭 같은 마음 등
안 좋은 마음 밭이라 할지라도
계속해서 좋게 만들면,
모두 좋은 옥토 밭 같은 마음이 될 수 있다.
밭의 주인은 밭이 만들어진 대로 심고 뿌린다.
◇‘몸’도 ‘마음’도 만들면,
더 빛나고 비싼 보석같이 만들 수가 있다.
사람의 ‘마음’도 ‘몸’도
돌, 지형, 나무나 다른 식물의 희귀종같이
아주 귀하고 귀한 자가 있다.
하나님은 마음이 만들어진 자를 택하시고, 뽑아 쓰신다.
만든 대로 사명도, 축복도 주신다.
하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 마음이 착하고 선한 자,
마음의 중심을 보고 택하여 쓰신다.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
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얼굴과 몸이 아름다워도, 마음이 좋지 않고 나쁜 자가 있다.
결국 그 마음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하게 된다.
◇ 선생은 10대 때, 거울을 보다가
얼굴이 못생겼다고 들여다보던 거울을 깼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얼굴이 문제가 아니다.
마음이 미우면 얼굴이 밉게 보인다.” 하셨다.
고로, 그때부터는 마음을 더욱 좋게 만들었다.
하나님,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의(義)를 가지고 마음을 닦았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매일 하였다.
옥토 밭을 만들듯 자기가 자기 마음을 닦는 것이다.
마음을 닦아 쓰니 좋은데,
마음이 만들어지지 않은 강한 자에게 상처를 너무 받는다.
누구든지 마음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
마음이 좋아야, 얼굴도 좋은 것이다.
◇ 자동차도 보면,
아무리 자동차 겉을 예쁘게 만들고 고쳐도
속의 엔진이 고물이면 폐차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의 전시용에 불과하다. 불구의 차다.
사람도 그러하다.
‘마음’이 예쁘면 영원히 가고,
‘얼굴과 몸’이 예쁘면 겨우 몇십 년 간다.
<실패자>는 ‘마음’ 때문에, ‘생각’ 때문에 실패한다.
◇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의 마음과 생각으로
무한대로 느낄 수 있게 만들어 놓으셨다.
고로,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수시로 변한다.
뇌신경이 자극하는 대로 느낀다.
뇌는 손으로 건드려 느끼기보다
생각하는 대로, 마음먹는 대로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까 생각을 잘해야 한다.
성령의 생각으로 잘 골라서 생각해야 한다.
그러고 난 후에, 행해야 된다.
생각하면 먼저는 뇌가 느끼고, 온몸으로 신경이 전달된다.
마음이 행하고 싶어 몸도 행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된 사람이지만
자기 몸은 자기 마음에 따라 작동한다.
고로, ‘운전’도 먼저는 배우고 하듯이
‘마음’도 먼저는 잘 만들고, 잘 써야 한다.
자기 마음을 배우고, 연구하고,
반복해서 행하고 겪으면서 유능하게 다스리며 써라.
◇ 사람은 마음이 하고 싶으면, 큰일도 좋아하며 기어이 한다.
그러나 마음이 하기 싫으면, 작은 것도 하기 싫어 안 한다.
마음이 감동되면,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행했을 때 해(害)가 되면
감동되기 전으로 되돌아가서, 다시는 안 한다.
또, 사람이 그동안 기뻐 좋아하며
마음도 쏟고 몸도 쏟고 살았어도,
마음이 상하면 뇌와 마음이 자극받고 화가 나서
순간 돌아가 버린다.
과거에 좋게 행했던 것을 다 버리고,
마음이 상해 생각한 곳으로 가 버린다.
그러고는 자기에게 해(害)가 가더라도 지금 처한 곳에 있고,
과거에 좋아 좇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원인은 모두 자기 위신, 자기 고집, 자기 교만,
자기 의지, 자기 생각 때문이다.
다만, 그가 후회는 한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어 마음대로 하시나
무력으로 행치 않으시고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하시어
자신이 스스로 깨닫고 다시 좋은 쪽으로 행하게끔 도우신다.
◇ 사람은 자기에게 유익과 희망이 있는 것은
마음이 흥분되어 서둘러 행한다.
행해야 될 일을 놓고 희망과 유익을 주는 것이면 행한다.
그러나 불법한 자는 이 마음의 방법을 알고서
자기의 유익과 불의한 일을 이루기 위해
거짓으로 속이고 불의의 돈을 주며 행한다.
악한 자들은 의인들을 꾀어 악인으로 만들어서
나머지 의인들을 괴롭힌다.
공의로우신 전능자 하나님은 이를 보시고
선악을 쪼개시며 영원토록 심판하신다.
개인, 민족, 세계 모두 그리하신다.
<악한 자>는 ‘악’을 행한다.
<선한 자>는 ‘선’을 행한다.
하나님은 마음을 살피사,
악한 자의 마음을 괴롭게 하여
스스로 끊고, 뽑고, 없애게끔 여건을 틀어 행하신다.
◇ 마음 밭이 좋아야
하나님 안에서 신앙 농사를 지어도 잘된다.
밭이 제 기능을 하여 소출이 많다.
‘못된 마음’은
하나님이 복을 주셔도 받지를 못한다. 오히려 화(禍)가 된다.
못된 마음 밭에 하나님의 복의 씨를 뿌리는 것은
자갈밭, 가시덤불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고로, 기근이 들어 효력을 내지 못한다.
절대 하나님과 성령님은
사람의 마음과 행실이 만들어져야 줄 것을 주신다.
그러므로 받으려면, 만들기다!
원하는 것을 기도만 한다고 주지 않으신다.
자기 마음과 행실을 만들기다.
‘마음이 나쁜 자’는
삭막한 광야나 사막 같은 마음이라
하나님이 아예 축복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버려두신다.
삭막한 바람만 밤낮으로 불고 야수들로 인해 무섭고 두려워
마음이 심란하기만 하다.
‘마음이 나쁜 자’는 <사막>과 같으니
사람들이 아예 가까이도 가지 않는다.
‘마음이 좋은 자’는 아름답고 귀한 <월명동>과 같아서
찾는 자가 너무도 많다.
◇ 사람 마음은 수백 가지, 수천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충성된 마음, 변하지 않는 마음, 선한 마음,
너무 좁은 마음, 이해 안 하는 마음, 부정적인 마음,
해(害)가 오면 변하는 마음, 간사한 마음,
유인하는 마음, 자기 이익만 위해 사는 마음 등이다.
배신하는 마음, 변하는 마음은
모두 <순금>이 아니었던 것이다.
<금도금>이었는데, 모두 순금 덩이로 알고 믿어서 속았던 것이다.
순금인지, 금도금인지 그들이 행한 일로 확인하면 안다.
그동안 변한 자들은 모두 때 되면 변할 자들이었다.
완벽한 자는 변치 않는다.
◇ 자기 행위는 누구나 열매로 연다.
고로, 그 열매를 보고 그를 안다.
환난 때가 되면
상록수 소나무인지, 낙엽 활엽수인지 안다.
잡나무는 가을, 겨울이 되면
단풍 들고 낙엽 져서 끝나는 것임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환난 때 모두 확인시켜 주셨다.
잡나무, 낙엽 활엽수가 제 계절에 싱싱해도 이제는 믿지 말아라.
상록수, 침엽수가 아니다.
낙엽 활엽수인 단풍나무는 영원히 단풍나무다.
팥이 콩이 되지 않는다.
상록수인 소나무는 변하지를 않는다.
가인의 족속은 6000년이 넘었어도 아벨 족속이 안 되었다.
◇ <돌감나무>는 잘라 없애고 뿌리만 사용하고,
보이는 나무로는 <참감나무>를 접붙여야 한다.
그래야 <돌감 열매>가 열리지 않고, <참감 열매>가 열린다.
참감나무를 접붙였다 해도
미처 접붙여지지 않은 <돌감나무> 뿌리의 일부에서
순이 나서 잎이 자라 또 <돌감 열매>를 맺기도 한다.
<돌감나무> 뿌리에서 본래의 근성이 자라나서
다시 본성으로 돌아가 <돌감 열매>를 맺는 것이다.
섭리사에 온 자들 중 변한 자들은
본성의 뿌리에서 또 돌감나무 순이 올라온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본성으로 돌아가 <돌감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창세기 3장 23절〛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 말씀처럼, 에덴에서 쫓겨나
근본 된 토지를 갈러 간 자들과 같다.
이 진리는 변함이 없다.
섭리사 환난 때 모두 일어난 일들이다.
◇ <순금 덩어리>는 더러운 것을 묻히면
겉은 더러워져도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씻으면 다시 깨끗해진다.
순금 덩어리 같은 자를 나쁘게 악평하고
그에게 더러운 것을 칠해 놓으면, 나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씻으면 깨끗이 빛난다.
그러나 변하여 썩은 자, 배신한 자는
과일 속이 썩듯 하여서 사용을 못 한다.
과일 속 썩은 것을 보았느냐.
겉은 아름답고 싱싱해도, 속이 썩었으면 먹을 수가 없다.
껍질은 상했어도 속이 썩지 않으면 먹는다.
◇ 1999년, 선생이 탄 비행기가 상공을 지나갈 때
한 나라를 내려다보며
“하나님! 이 나라는 정말 아름답습니다.”라고 말하니,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겉은 아름다워도 속이 썩어서 심판해야 된다.
행여 겉이 지옥 같고 속이 천국 같으면 심판하지 않는다.”
하셨다.
그 말씀을 하신 지 5개월이 지난 그해 연말에
시속 200km 넘는 풍속으로 폭풍이 불게 하여 심판하셨다.
이로 인해 농작물은 전체의 약 60%가 피해를 입었고,
이재민이 700만 명 이상이었으며,
피해 입은 나무가 3억 주나 되었고,
대궁전 안의 정원수만 해도 1만 주가 뿌리째 뽑혔다.
◇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실 때도 그리하신다.
<겉>은 지옥 같아도 <속>이 천국 같으면
심판까지 하지 않으시고,
<겉>은 천국 같은데 <속>이 지옥 같으면
근본, 근성이 이미 썩었기 때문에 심판하신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 행하시는 법이다.
어느 시대나, 어느 민족이나, 어떤 자에게나 그렇게 행하신다.
‘밭’도
<겉>은 돌밭인데 <속>은 옥토 밭이면, 쓴다.
그러나 <겉>은 옥토 밭인데 <속>은 돌밭이면, 버림을 받는다.
‘집’도 그러하다.
◇ 그러므로 자기 마음을 선하게 만들기다.
그래야 최고로 큰일을 한 자다.
짐승 같은 마음과 행실,
각종 돌밭, 가시덤불 밭, 잡초 밭 같은 마음과 행실을
절대 옥토 밭같이 만드는 것이 그리도 크다.
절대 만들기다.
아무리 10년씩, 20년씩 말씀을 듣고 따라도
환난 때 안타깝게 없어진다.
마음 때문이다.
만들면, 하나님 마음과 일체 된다.
II. 흠이 없이 행하여라
◎ 단식 첫날에 하나님께서 새벽에 말씀하시길,
“흠이 없이 행하여라.” 하셨다.
이 말씀은
“흠으로 인하여 영향을 받아 큰 것도 못 하는 것이다.” 하심이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흠 없이 행하심같이
우리의 육도, 혼도, 영도 흠 없이 행해야
하나님과 마음도 일체 되고 행함도 일체 된다.
◇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육신이었어도 흠 없이 행하사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을 보이는 절대적인 표상이 되어,
그를 보고 그와 같이 행케 하여 뜻을 이루게 하셨다.
흠이 없는 보석, 흠이 없는 사물, 흠이 없는 사람들은
그 존재물의 표상이다.
사람이 흠이 없이 살 때
빛이 나고, 그 가치가 하늘까지 치솟고, 가는 길이 형통한다.
하나님께 절대 사랑의 대상이 되어
오직 사랑으로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살아간다면
육신 일생, 영 영원까지 최고의 삶을 산 자다.
◇ 사람은 저마다 흠이 있다.
흠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깎고, 끊고, 만들어야 된다.
그렇게 흠을 없애면, 빛난다.
흠 있는 것 열 개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
흠 없는 것 하나를 가지고 있는 것이 훨씬 낫다.
그러므로 자기를 흠 없이 만들어라.
전체가 좋아도 흠 하나 때문에
전체 가치가 떨어지고, 전체가 빛을 잃는다.
고로, 흠을 없애라.
◇ <분재 솔>도 철사로 묶어 이리저리 형상을 만들며
흠 없이 키운다.
뿌리, 줄기, 가지에 흠이 없어야 걸작이다.
사람도 절대 하나님과 주 안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살면,
마음과 행실의 흠이 없어진다.
흠에 신경 안 쓰면 흠인지 모른다.
자기 흠을 잡아 없애기다.
흠으로 환난 때 날아가고, 흠으로 사탄도 묶어서 끌고 간다.
흠을 없애면, 전체가 빛난다.
흠 때문에 사람들이 트집 잡고, 꼬투리 잡고,
정떨어지는 말을 한다.
◇ 월명동 지형도 처음 쓸 때는
모두 불편한 흠투성이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상대로 만드니 흠이 다 없어졌다.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하나님의 궁전’까지 되었다.
천국같이 편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편하게 사는 것이 천국이다.” 하고
편하게 살기 위해 전심으로 수고하고 몸부림치며 산다.
그러나 편하게 살려면,
절대자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고
하나님이 편하시게, 삼위체가 편하시게 해 드려라.
그래야 편하게 살 수 있다.
또, 자기 흠을 고치고 개발하면 편하게 살게 된다.
자기 자체의 ‘흠, 문제, 약점’을 모두 고쳐야 한다.
흠을 고치는 만큼 편하게 살게 된다.
자기는 자기 흠을 잘 못 본다.
누가 이야기해 주기도 어렵다.
말씀 듣고 기도하고 자기 흠을 다 잘라 없애라.
◇ 요즘 사람들은 육신의 것들은 고치고 만들어서,
흠이 없어지고 모순도 없어졌다.
‘몸의 흠’은 없애기 쉽다.
건강에 흠이 있으면 운동하고 치료하고,
더러우면 씻고 닦고 단장하면 된다.
그만큼 육은 편해졌는데, 마음이 편치 않다.
항상 ‘정신, 마음, 생각의 흠’이 문제다.
곤고함과 정신적인 것들의 문제다.
이 역시 하나의 영적인 흠이니 고쳐야 된다.
그리고, ‘행위의 흠’이 문제다.
◇ 옥에 티가 있으면 그것이 흠인데,
사람에게는 ‘죄’가 흠이다.
‘버릇’이 흠이다.
‘약점’이 흠이다.
<회개>하면 ‘죄’의 흠이 없어지고, 의로움에 속한 자가 된다.
죄는 어둠이다. 죄로 인해 빛나던 몸과 옷이 빛을 잃는다.
죄는 육과 혼과 영을 절름발이, 불구자로 만든다.
흠이 있는 채로 빛의 세계로 가면
그 흠의 어두움이 너무나도 확대되어 드러난다.
고로 숨길 수가 없다.
사람은 타인의 흠은 잘 보고, 자기의 흠은 잘 못 본다.
이는 ‘습관과 체질과 생활’이 되어서다.
기도할 때나 꿈에
영계에 들어가서 보면 자기 흠들이 보인다.
어떤 자는 몸의 상처로 보이고,
어떤 자는 옷에 더러운 것이 묻은 것으로 보이고,
각종 계시로 흠을 보여 준다.
성경에 모든 죄의 흠을 말씀으로 기록해 놓았다.
자세히 읽고 보아라.
성경을 거울로 삼고 자기의 흠을 자세히 찾아야 안다.
자기 흠을 찾아서 없애라.
◇ <월명동>도 수년간,
쌓아 놓은 돌들 중에서 흠이 있는 돌은 찾아서 빼내고
좋은 돌로 바꿨다.
고로, 흠 없이 빛나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작품이 됐다.
흠 있는 곳에는 나무를 심어서 흠을 없앴다.
오랫동안 집중하여 고쳐서 흠이 없게 하여
오늘날같이 ‘하나님 궁’이 되었다.
사람도 그러하다.
오랫동안 집중하여 고쳐서 흠을 다 없애야 한다.
사람들을 보면 큰 흠들은 수년간 고쳐서 없애고 만들었는데,
남아 있는 작은 흠들은 그냥 두고 쓴다.
고로, 완전한 것이 못 되어 아쉽다고 모두 흠을 잡고 지적한다.
◇ 전능하신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과 달라야 하지 않겠느냐.
고로, 하나님은 사람도 흠 없는 자들을 가지고 계신다.
흠 없는 제물을 받으신다.
(레 22:19-20) “열납되도록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찌니
무릇 흠 있는 것을 너희는 드리지 말것은 그것이 열납되지 못할 것임이니
라”
◇ 사람들이 새 물건을 만들 때는 흠 없이 만든다.
흠이 있으면 값이 떨어지고, 흠을 잡고 사 가지를 않는다.
말씀도 새 말씀이니, 흠 없이 전해야 된다.
듣는 자가 흠잡지 않게 합당한 것만 지혜롭게 전하여라.
전하는 자가 미련하게 빨리 전해서
시대를 깨닫고 사명자를 깨닫게만 하려 한다.
3~6개월 동안 천천히 전하면서 스스로 깨닫게 해야 된다.
3년간 배우며 신앙생활을 하게 해야 된다.
그 기간은 회개하고
구시대와 세상의 체질을 없애고 만드는 기간이다.
말씀은 꼭 전문가들이 전하여라.
중고등부, 대학부, 청년부 모두 그리하여라.
일반 말씀만 잘 전해 줘도 교회에 잘 나온다.
3년 동안 퇴비하고 키워야 열매가 사과같이 연다.
감도 나무를 3년은 키워야 연다.
급한 이들은
일주일, 2주일, 1달 동안 말씀 전하고 수료시킨다.
그러면 안 된다.
6개월간 기본을 가르치며 신앙생활 하게 하면서
3년 동안 성경 바로 보게 말씀 전하고 설교로 깨닫게 해야 된다.
하나님과 성령님이 이같이 하라고 엄명하셨다.
그래도 교회에 잘 나온다.
빨리 가르치니, 말씀을 배울 때 사람이 될 시간이 없다.
기간을 두면서 이끌어야 한다. 그럼 전도도 잘된다.
쪼개서 초급, 중급, 고급 순으로 가르쳐 줘야 한다.
선생은 20년 동안 성경을 그리 수천 번 읽으면서 배운 것을
너희는 몇 주 만에 가르치니
배워도 사람이 안 되어서 결국 나간다.
모두 다시 새로 온전히 배워야 된다.
모두 이를 알고 천천히 가르치고,
고급 말씀은 아예 본인이 성경을 몇 번씩 읽으면서 배우게 하자.
선생을 직접 가르치는 자에게는 절대 강사 자격을 주지 말아라.
선생도 예수님을 스스로 기도하고 알았다.
병이 낫는 것도
선생은 “왜 이리 병이 빨리 안 낫습니까?
낫는 것이 뜻이 아닙니까?” 하니,
하나님께서 “뜻이다. 천천히 낫는다.” 하셨다.
“왜요?” 하고 물으니,
“그 기간 동안 자기 병 고쳐 주는 것의 가치를 깨닫게 하고,
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라.
순간 고쳐 주면 가치를 모른다.
몸부림치는 가운데 고쳐 줘야 가치를 안다.” 하셨다.
그래서 40번씩 기도하고 고쳐 줬다.
그렇게 고쳐 줬어도 관리 안 하면 또 아프다.
월명동도 그토록 오래 돌을 쌓으면서 더 가치를 깨달았다.
◈ 제대로 온전히 배워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육적 사랑과 영적 사랑’을 아직도 모르느냐.
‘사랑’ 하면, 왜 이성 관계만 생각하느냐.
그것은 미친 자, 정신이 돈 자의 생각이다.
사랑을 육의 사랑으로만 생각하게 방송이 만든 것도 있다.
우리를 악평하는 자들이 그리 생각한다.
몸도, 마음도, 혼도, 영도 다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 사랑이다.
예수님이
“네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다.
(마 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
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막 12:29-3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몸은 빼놓고 마음만 드려서는 이 말씀을 실천할 수 없다.
이는 영도, 육도 하나님께 다 바치는 사랑이어야 한다.
여기서 ‘마음’은 영적인 것을 말하고, ‘목숨’은 육을 말한다.
‘뜻’은 하나님의 계획에 해당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을 자기 뜻으로 삼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함이다.
고로, 우리는 육도, 혼도, 영도 하나님을 사랑해 왔다.
만일 ‘영적 사랑’ 하나만 생각한다면
머리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육신은 세상 사랑, 이성 사랑에 빠져 살게 된다.
하나님도 영의 사랑만 받으시려 한다면,
하늘나라에 계시지 세상에 왜 오시겠느냐.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배우고 알아야 된다.
◇ <사랑>은 ‘육적 사랑’과 ‘영적 사랑’을 다 말한다.
예수님이 말씀한 것에도 육적 사랑, 영적 사랑이 다 들어 있다.
육도 하나님을 사랑해야지.
왜? 땅에서 펴는 역사는 영들의 역사가 아니니까.
그러나 육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서
하나님과 이성 관계 사랑을 하는 것이냐?
아니다.
그런데 ‘육적 사랑’이라 하면
모두 이성 사랑으로 생각을 한다.
특히 환난 때 사랑 얘기를 하면
젊은 자들 중에서는 그 사랑을 이성 관계로 본 자도 있다.
그래서, 육적 사랑이 아니고 영적 사랑이라고 했다.
즉, 이성 관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 모두 정리하여 말씀해 주니, 잘 들어라.
선생이 10대부터 육도, 혼도, 영도 예수님을 사랑해 오다
다시 오신 예수님 영을 맞았다.
우리가 하나님을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 60년, 70년 사랑하고 온 것이
육체로만 사랑했냐?
혹은, 혼체로만 사랑했냐?
혹은, 영체로만 사랑했냐?
자기 영도 못 보면서,
영이 헌금하고 영이 월명동 돌 조경을 쌓았다 하느냐.
육이 한 것이다.
육이 하나님과 성령과 성자와 예수님을 사랑해서 한 것이다.
기도하고, 찬양하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은
자기 육이 한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그 마음과 생각으로
자기 육을 가지고 행하면서 사랑하면,
그 사람은 육도, 마음도, 혼도, 영도 다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된다.
하나님은 그 사랑을 영으로 다 받으신다. 알겠느냐.
◇ 또, ‘사랑’ 하면, 그 대상을 선생으로 생각하는 자가 있느냐.
하나님과 예수님을 맞고,
사랑이 하나님과 예수님께로 향해야 되지 않느냐.
‘사랑’ 하면 우리의 대상은 4명이다.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이다.
선생도 하늘 신랑을 맞았으니 신부 되어 너희와 함께
삼위일체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예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섬긴다.
항상 이를 알고 사랑하여라. 아멘.
◇ 새것은 흠이 없다.
사람들은 흠 없는 것을 좋아하니
장사꾼들은 그 심리를 이용해
새것을 만들어 사 가게 한다.
종교도 그러하다.
어떤 종교는 새것이라고 가르쳐 주면서
옛것, 흠이 있는 비진리를 말한다.
그들은 비진리로 유혹하는 자들이다.
사람들은 생명을 걸고 사는 것인데,
그들의 가르침에 흠이 많으면 생명이 위험해지는 것이다.
결국 거기에 유혹된 자들은 독약 같은 말을 듣고 죽는다.
육과 영을 사냥하는 자들이다.
영혼의 사냥꾼은 사망으로 가게 된다.
그들은 외식과 형식으로 성경을 풀고 가르쳐 행하니,
모두 흠과 점들이다.
그러므로
부활, 말세, 휴거, 삼위일체, 때, 역사, 기적으로만 보는 것 등
성경 해석의 모든 흠과 점들을 말해 주고,
흠 없는 <새 시대 말씀>, 온전한 말씀을 인식시키고
가르쳐 주어라.
◇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며 행하는
사랑의 대상들로서,
단장하고 흠이 없어야 되는 신부들이다.
흠이 없으면,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자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을 흠 없이 창조하셨으니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자기의 흠을 없애라.
흠이 없으면, 하나님은 바로 다르게 역사하신다.
III. ‘보냄을 받은 자’는 ‘자기를 보내신 자’를 증거한다
◎ <의>는 더욱 의를 행케 하고,
<악>은 더욱 악을 행케 만든다.
그러므로 주로 말미암아 전능하신 하나님께 속하여라.
다른 길 없이 영원히 존재할 세계다.
불법과 악의 주관권은 영원토록 괴로움과 고통의 세계이니
거기에 속한 자들은 다른 세계를 찾는다.
하나님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에게 구원자를 보냈건만,
오히려 갖은 불법과 악을 행하며
구원자를 괴롭히고, 억울케 하고, 배신하고서
오히려 하나님께는
자기의 행위가 옳다고 생각하며 말하는 자들이 있다.
◇ 악과 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가인과 아벨>이다.
<아벨>은 ‘보다 하늘에 속한 자’이고,
<가인>은 ‘보다 땅에 속한 자’이다.
‘땅에 속한 자’는 육적으로 살아가고,
‘하늘에 속한 자’는 영적으로 하나님 뜻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니 서로 의견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사람 한 개인을 봐도
자기 육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다르듯 그러하다.
고로, 서로 곤고하다.
‘그럼 한 번은 육의 방법으로 하고, 한 번은 영의 방법으로 하면
싸움이 없고 좋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럼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지 않는다.
항상 오직 선(善)이 중심이 되어 해야 된다.
◇ 하나님은 늘 “하나다.” 하셨다.
하나님 편에 속하려면 영의 생각 하나로 하고,
육은 항상 영의 생각을 따라 행해야 한다.
아벨, 선(善)이 항상 하나님의 몸 되어 하고,
가인, 육의 사람은 그를 따라 해야 된다.
아벨, ‘속 사람’은 제사장이 되고,
가인, ‘겉 사람’은 재료를 구해다가
예배를 드릴 수 있게 시중들어야 한다.
제사장이 되는 ‘영의 사람’은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 전하고,
‘육의 사람’은 그것을 듣고 하나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야 된다.
이 시대 <하나님이 보내어 구원하라는 자>는 ‘영’이요,
<기다리는 자들>은 ‘육’이다.
하나 되어 행해야, 하나님이 창조한 목적과 뜻을 이룬다.
육끼리 살면, 땅에 속한 자다.
하늘의 영원한 뜻을 이룰 수가 없다.
영끼리만 살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다.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뤄져야
그로 인하여 영이 공적을 받고 빛나게 된다.
육이 육적으로만 살면 육에서 끝난다.
<육>은 ‘나무’요, <영>은 ‘열매’와 같다.
‘육과 혼과 영’이 하나 되어 행해야 된다.
◇ 섭리사 안에도 ‘육적인 자’와 ‘영적인 자’, 둘이 있다.
하나 되어서 ‘육’은 육적인 것을 하고,
‘영’은 영적인 일을 하면 된다.
그럼 ‘두 나무’가 ‘한 나무’가 된다.
<돌감나무> 뿌리와 <참감나무>가 일체 되어서 큰다.
뿌리에서 수분과 영양분을 강력히 빨아들이고,
빨아들인 영양분은 나무줄기를 통해 올라가서
과일이 열리고 큰다.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럽고 아름다운 과수원의 열매들이다.
성령의 열매다.
진리와 사랑과 화평과 자비와 공의와
지혜와 지식과 의와 섬김과 인내와
기도와 증거와 찬양과 감사와 긍휼과 용서와 희생의 열매들이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도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했다.
◇ ‘두 나무, 곧 두 사람’에 대한 말씀이 또 있다.
〚요한계시록 11장 1~6절〛을 보면,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으리라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찌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하였다.
◈ 주 앞에 선 두 감람나무다.
증인 둘이 하나 되면, ‘주를 잘 증거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두 감람나무>를 뜻하는 자는
구약에서 최고로 활동하고 악을 멸한 ‘모세와 엘리야’이다.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한 자’는 엘리야요,
‘권세를 가지고 물이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친 자’는 모세가 아니냐.
<주 앞에>라는 이 말에서 ‘주’의 뜻은 두 가지다.
- 메시아 예수님 앞에는 그를 보내신 하나님이 주가 되고,
- 땅의 증인들 앞에는 하나님이 보낸 자가 주가 된다.
예수님 주가 왔을 때, ‘모세 영과 엘리야 영’이 왔다.
고로, 〚요한계시록 11장〛의 <두 감람나무>는
‘모세와 엘리야’다.
그러나 성경을 모르는 자는
〚요한계시록 11장〛의 <두 감람나무>가
‘선생과 증거자’라 한다.
아니다. 왜 모세와 엘리야 자리에 끼느냐.
지금이 구약 때냐? 신약 때냐?
시대를 분별하여라.
신약 때 <예수님>은 오셔서
자기를 보내신 ‘하나님’을 증거했다.
<엘리야 영>은 <세례요한>과 함께 ‘예수님’을 증거했다.
<모세 영>도 ‘예수님’을 증거했다.
구약 영계에 있는 영들에게 증거하여 예수님께로 오게 했다.
이와 같이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가 오면
<두 증인>이 나타나 증거한다.
<두 감람나무>는 주 앞에 선 <두 증인>이다.
예수님 때 육의 세계만 봐도,
‘육적인 증인’과 ‘영적인 증인’이 나타나 증거했다.
<세례요한>과 <베드로>다.
하나는 ‘육의 혈통’에서, 하나는 ‘신앙의 혈통’에서 뽑는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과 혈족 관계였다.
이같이 하나님은 시대마다 역사를 펴실 때
그 보낸 자를 증거하는 자로 항상 둘씩 보내셨다.
구시대 역사를 끝내고 새 역사를 시작하실 때도 그러하다.
증거자는 ‘오실 자’보다 먼저 온다.
증거자 <세례요한>은
구원하러 오는 자 <예수님>보다 먼저 나타나 전초 했다.
섭리역사를 시작할 때도
원증거자는 오는 자보다 먼저 왔다.
이미 와서 세계적으로 전초를 해 놓았다. 시대를 깨워 놓았다.
모두 증거하되, 시대 따라 증거자를 보내신다.
◇ 선생은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다.
선생은 하늘 쪽을 증거하면,
너희는 모두 내 말 듣고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을 믿게
선생을 증거하면 된다.
단 하나,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이 맞다.” 하면 된다.
“누구냐?” 하고 물으면,
“우리들에게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을 믿게 해 주는 자다.”
하면 된다.
◇ 요한계시록 11장의 말씀대로, 증거자에게 해(害)를 주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을 사른다 했다.
<불>은 ‘말씀’이다.
‘말씀의 불로 사른다. 말씀으로 심판한다. 친다.’는 것이다.
<모세> 때
애굽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안 내놓으니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선포하여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다.
그제야 애굽에서 나가라며 백성들을 내주었다.
<엘리야> 때
엘리야가 악한 왕, 아합을 놓고 기도하여
그 기도가 하늘에 닿으니,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않으리라.”
하고 선포하셨다.
그리하여 3년 6개월 동안 가뭄으로 고통을 받았다.
그 후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모두 멸했다.
<이 시대>도
하나님이 보낸 자가 하나님을 증거하는데 그에게 해(害)를 주면
하나님은 이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여 해(害)를 주신다.
심판하신다.
◇ 하나님이 이 시대에 보낸 자는
홀로 오지 않고 하나님과 온다. 예수님과 온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주’로서 영으로 오시사
시대 보낸 자와 일체 되어 그 육을 통해 행하신다.
그 육은 한 명이다.
‘오는 자’는 한 명,
맞은 자들 중에서 ‘증거자’는 둘이다.
하나는 육적 증거자요, 또 하나는 영적 증거자다.
한 명, ‘오는 자’는
하늘을 상징하는 자다.
‘맞은 자’, 두 명은
땅에 속한 증거자다.
맞은 자 둘이 하나님 앞의 두 증인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 ‘보낸 자’를 통해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신다.
‘땅에서 맞은 두 증인’은
‘하나님이 보내어 온 자’를 증거한다.
‘신앙의 신부’가 ‘하늘의 신랑’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를 온전히 알아라.
주 앞에 세운 두 증인은
하나는 ‘영적’증인이고, 하나는 ‘육적’증인이다.
둘이 하나가 되어서 내적으로, 외적으로 증거해야 된다.
서로 하나가 안 되면 큰 문제다.
하나가 안 되면 증거가 제대로 안 된다.
이들을 사탄과 악인들이 괴롭게 한다.
◇ 섭리사 내에서 증거하는 자가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세례요한>과 <예수님>을 같은 증거자로 보듯 아주 잘못 알았다.
<예수님>은 ‘구원자’요,
<세례요한>은 ‘주를 증거하는 자’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증거하였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을 증거할 수가 없다. 모른다.
세례요한은 땅에 있는 예수님도 제대로 모르고 좌우로 흔들렸다.
갈대 같은 신앙이었다.
(마 11:7)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
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이 시대도 <증거자>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보낸 자’를 증거해야 된다.
<증거자>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잘 몰라 증거를 못 한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보낸 자>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증거한다.
그로 인해 믿고 따르면, 새 시대 구원을 얻는다.
◇ 선생은 예수님께 배우고
내가 예수님에 대해 속 시원하게 증거해 준다고 하며
45년이나 증거해 왔다.
그 증거는,
“신약 2000년이 넘었으니
예수님 영이 다시 오시었다.” 하는 것이다.
“육이야 다음에 오든지 말든지,
일단 때가 되어 영이 오셨으니 맞아라.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도 육이 살았으면
다음에 오시겠지.” 하고 증거한다.
이와 같이 선생도 오신 예수님 영을 맞고 신부 되어 전한다.
이를 듣고 증거하는 자는
땅에서 전도되어 말씀을 배우고 맞은 자다.
선생을 맞은 자가 선생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래야 선생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증거한다.
이를 모르고, 자기와 선생이 두 증인이 되어
하나님과 예수님을 증거한다고 말한다.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예수님과 그가 보낸 자만 안다.
선생이 오래 수십 년간 배워서 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전하고, 예수님을 전하고 증거한다.
이같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를
땅에서 맞은 자들 중에서
두 명은 ‘내적인 자, 외적인 자’의 표상이 되어
둘이서 그를 증거해 준다.
그래야 그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을 사람들이 믿는다.
이것을 잊지 말고,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믿지 말고 행해라.
◇ 선생에 대해 몰라 궁금하면
성령께, 예수님께 물어보면 알려 주신다.
사명이 중하냐.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어서 진리 말씀을 듣고 온전하게 커라.
하나님
↙ ↘
영 예수님 육 선생
(둘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증거한다.)
하나님과 예수님 영
↓
선생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증거한다.
↙ ↘
육적 증거(섭리 외적) 영적 증거(섭리 내적)로, 두 증인이다.
◇ 자기 위치를 떠나면 루시퍼 천사장같이 심판받는다.
위치가 중하다. 증거자의 위치다.
자기가 증거할 자가 누군지 모르니, 그와 싸움한다.
그러니 제대로 증거를 못 하게 됐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보낸 자’를
자기와 동일한 증거자로 생각하고 증거하니 모두 받지를 않는다.
하나님은 모두 일점일획도 흠 없이 행하신다.
싸우지 않는 증거자만이 제대로 증거한다.
자기 위치가 어디인지를 알아야 한다.
모든 운동 경기에서도 자기 위치를 떠나면
그 위치에 바로 상대가 들어와서 공격을 당하게 된다.
◇ 땅의 두 증인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증거하지 못한다.
보이는 자, 자기가 맞은 자를 증거해야 한다.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
(요 1:26-27)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
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참고: 신들메- 들메끈. 신이 벗어지지 않도록 신을 발에다 동여매는 끈)
땅의 두 증인은 육에 속해 있으니,
땅에 보낸 육을 증거하는 두 증인이다.
보냄을 받은 자는 자기를 보내신 자를 증거한다.
선생은 항상 영에 속하였으니, 예수님 영을 증거한다.
예수
↓
선생
↙ ↘
외적 증인 내적 증인
◇ 섭리사를 이같이 펴 왔다.
전반기 1978~1999년까지 해 오고,
3년 반 지낸 후
후반기 2002~2023년까지 해 왔다.
성경에서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일찍 예수님이 온다고 했다.
(눅 12:40)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눅 12:45-46)“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
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
리니”
2000년이 되기 전에 오셨다.
가르쳐 줘야 증거하기에
미리 와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고, 선생이 증거했다.
예수님이 선생에게 20년이나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이 증거하라고 하셔서 다시 왔다고 증거하고,
하나님 증거도 하고,
성령도, 성자도 누군지 배웠으니 가르쳐 증거했다.
예수님은 땅의 성자이고,
하늘의 절대신 성자는 육 없이 영체로 존재하시는 자이다.
성령은 천모이시다. 영의 어머니 격이다.
◇ 증인들은 말씀을 들은 자들 모두 다다.
계속 선생이 역사를 해 간다. 선생의 후자는 없다.
하나님과 예수님도
누구든지 근본을 벗어나면, 그에게 역사를 안 하신다.
하늘이 보낸 사명자를 땅에서 맞은 자가
‘나도 같은 증거자다.’ 하고 동일한 사명으로 생각하니,
자기가 이제 ‘후자’라 한다.
이를 따라가는 자도 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이를 그냥 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가 그릇되게 썼으면 지우고 다시 쓰듯이
그릇된 자들의 가르침은 지운다.
◇ 예수님도 하나님을 증거하는 증거자셨다.
최고로 잘 아셨다. 하나님이 그를 보내서다.
지금은 예수님을 알고 증거해야지.
그런데 너희는 모른다.
지금 예수님이 땅에 있는지, 하늘에 있는지
그 육이 되는 자는 안다.
고로, 모르는 너희는
너희가 아는 자, 보이는 육이나 증거하는 것이다.
요셉의 후자가 당세에 있었느냐.
예수님의 후자가 그 당세에 있었느냐.
모르면 사탄이 들어가, 그 육을 쓰고 분쟁케 한다.
사탄이 한 뜻을 이루려 한다.
(계 17:13-14)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
더라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
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 이 시대 역사도 처음부터 선생이 했듯이, 선생 하나로 끝난다.
여자도, 남자도 후자가 될 수 없나니,
하나님도, 성령도, 성자도, 예수님도
오직 보낸 자는 하나라고 늘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성경에 나와 있듯
하나님도 하나, 성령도 하나, 주도 하나니라(엡 4:4-6).
단, 증거자는 둘이니라.
‘후자’라고 하는 자들의 주관을 보면,
이 시대를 모세 시대로 본다.
선생은 모세와 같고, 자기는 여호수아와 같이 후자라고 한다.
지금이 구약시대냐?
무식한 이론을 말한다. 모두 자기 욕심에서 나온 것이다.
깨닫고, 모두 그릇된 것을 돌이켜라.
◇ 항상 내게 배워라. 모르면 멸망으로 간다.
하나님도, 성령도 모두 이같이 처음부터 가르쳐 온 것이다.
오늘도 또 말씀해 주신다.
섭리역사 중간에 온 자들은 이를 잘 모른다.
섭리사는 전반기 21년, 후반기 21년으로 그 42년이 핵이고,
다 선생 하나가 계속해 왔다.
앞으로도 또 계속해 간다.
그동안 섭리사 45년 동안 자기가 후자라 한 자들은
후자 일을 하러 나갔다.
결국 그들은 남는 자 하나 없이 무(無)로 끝난다.
헛된 계시나 헛된 사고를 믿고 헛된 계산을 하면
지금껏 한 것이 다 날아가 고통만 겪는다.
이를 이미 가르쳤어도 잘 모르니, 오늘 다시 전해 준다고
예수님이 준 붓을 성령과 함께 들었다.
모두 혼동하는 자들을 위해 오늘 다시 말해 주었다.
◇ 육적인 자는 육적인 자를 좇는다.
인정(人情) 보고 평소 가까이 지낸 사람을 좇다가
자기 영혼이 사망으로 가게 된다.
꾀고, 악평하고, 선생을 원망하는 자를 따라가면
결국 원망의 세계로 간다.
처음 누구의 복음을 듣고 왔느냐.
처음 신앙, 처음 사랑을 버리면 촛대를 옮긴다.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
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는 하나님의 뜻을 두고 변한 죄로 인해
사망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 하늘 보고 죄가 있다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거스르니,
모두 죄인이 되어 죄 가운데 거하게 된다.
하나님은 죄인을 데리고 죄인들을 구하지 않으신다.
죄를 지은 자가
자기는 의롭다고 하고, 의로운 자를 죄인시한다.
예수님 때도 그러지 않았느냐. 시대가 증거한다.
◎ 늘 말씀을 자주 보고, 굳건히 하여라.
인(人)사탄, 영 사탄이 틈타지 않게 하여라.
그릇되게 말하는 자는
주와 같이 모으고 헤치지 않는 반대자다.
(마 12: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
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오늘 말씀을 깨닫고 행하여라.
모두에게 평강을 빈다.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