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24.07.26 (금)
기본신앙교육 0 예배
- 선포일
- 2024.07.26 (금)
- 성경 본문
- 로마서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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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신앙교육자료 《 예 배 》
1. 예배························································································································2
1) 예배의 의미······································································································2
2) 안식일은 휴거날입니다.··················································································3
3) 주일을 온전하게 지켜야 합니다.··································································7
2. 예배를 드릴 때··································································································10
1) 예배드릴 때는 예배의 기본을 꼭 지켜야 합니다.··································10
2) 예배드릴 때 자세가 온전해야 합니다.······················································10
3) 예배드릴 때는 옷을 갖춰 입어야 합니다.················································15
4) 예배 시간을 엄하게 지켜야 합니다.··························································17
5) 하나님께 약속한 시간을 꼭 지켜야 한다.················································19
6) 설교 들을 때의 자세····················································································23
3. 설교자 준비········································································································25
1) 설교자는 교인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연구해야 합니다.·························25
1. 예배
1) 예배의 의미
예배라는 것은 경배이며 절하는 것으로 존경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예배(禮拜)는 바로, 절한다는 것인데 절은 존경심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
존경은 바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
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주일날은 ‘하나님과 약속하는 날’입니다.
<이사야서 56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도록 하라. 안식일에 나와 너희가 연합한 역사가 일어남으
로 인해서 삶의 운명이 좌우된다.
안식일을 잘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야곱의 업으로 채워준다.
항상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며 실천하라.
그리하면 너희들이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가 잘해서 복 받는 것이지 하나님이 그냥 복을 막 주는 것이냐? 그렇
게 생각하지 마라. 너희가 잘해야 복을 받는 것이 아니냐?
복은 본인의 행동 여하를 따라서 좌우된다”하셨습니다.
2) 안식일은 휴거날입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까지 일을 하고, 일요일은 쉬는 날입니다.
창세기 창조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일요일에 쉬셨습니다.
그리고 십계명에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네 집에 거하는 종도 쉬게 해주고 소나 나귀도 부리지 말고
쉬게 해주도록 하라<출애굽기 23:12>” 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그렇게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모든 우리의 심령적인 것과 영적 문제와 신앙적 문제를
근본으로 해결해야 쉴 수 있지, 그전에는 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할 일을 못했는데 어떻게 쉬겠습니까?
농사로 비유를 들면, 배추를 뽑아 들이고, 무를 뽑아 들이고,
고추를 따 들여야 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서리가 오고 눈이 오는데
농사지은 것을 그대로 놓고서 어떻게 쉴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냥 쉬었다가 망하려고요?
겨울철에 눈이나 집어 먹고 얼음이나 깨서 먹고 살 것입니까?
눈물겹게 피눈물나게 농사지은 것을 쉬지 않고 열심히 걷어 들여놓으면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심령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는데 어떻게 쉴 수 있겠습니
까? 못 쉰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인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근심이 많고, 너무 염려가 많고, 너무 심적 고통이 많고,
마음이 아프고, 여러 가지 고통이 많은데,
그것은 심령적으로 쉼을 못 받아서 그렇습니다.
흑암을 이기고 죄악을 이기고 선 주관을 세워야 쉴 수 있는데,
그런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심적인 고통과 심적인 아픔과 심적인 어려움이 계속 일어나고
마음에 쉼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쉴 시간이 없습니다.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흑암의 세계를 해결하지 못하고,
정신적인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자기와의 싸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쉴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의 고통과 질병과 아픔과 여러 가지의 문제로 인해서
쉴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해결도 안 해 놓고 어떻게 쉬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해주리
라 <마태복음 11:28>”고 말씀하셨습니다.
푹 쉬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휴거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그 자체가 휴거입니다.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나와서,
근심과 걱정을 덜어 버리고 살게 되었고,
뜻 안에서 살 수 있는 여건이 되었으며,
하나님 품 안에 들어와서 살 수 있는 여건이 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있어야 쉴 수 있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생명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근원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 휴거 된 것입니다.
거기에다 또 더 좋은 부활, 더 좋은 휴거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성서에 천년왕국을 말씀하셔서 희망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동안에도 누려왔는데,
앞으로는 더 좋은 것, 더 이상적인 것을 누리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과거에 더 좋은 것, 더 이상적인 말씀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
습니까? 섭리에 와서 더 좋고 이상적인 말씀을 들으니 생각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안식’입니다.
이제 우리는 역사 앞에 참여하게 되었고,
안식(安息)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혼인잔치를 연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복지 역사가 안식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구약 4천 년, 신약 2천 년, 성약 천년 중에
맨 마지막의 천 년사가 안식의 역사입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베드로후서 3:8>에 나옵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는 말씀
을 풀면 역사가 풀립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
각각 하루를 천년으로 계산하면 몇 년입니까? 6천 년입니다.
월, 화, 수, 목을 확대시킨 4천 년은 구약 4천 년에 해당됩니다.
금, 토를 확대시킨 2천 년은 신약 2천 년 역사에 해당됩니다.
그 다음 일요일을 확대시키면 성약 천년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일요일에 해당되는 천년 동안은 휴거기간이라고 했습니다.
천 년 동안 우리는 말씀으로 계속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천 년 동안 변화되면 수준급의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우리에게 ‘휴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됩니다.
그 골치 아픈 인생 문제들이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쉬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은 영적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심령적으로도 쉴 수 있습니다.
심령적으로, 정신적으로 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조금만 뭐 신경쓰여도 못 쉬지 않습니까?
그런 영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쁘고 즐겁습니까?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주일을 온전하게 지켜야 합니다.
<주일날>은 <하나님의 날>이에요.
교회 와서 하나님 말씀 듣고
일주일 동안 그 말씀 중심해서 살아야 돼요.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날은 6일 동안 주시고, 일주일 동안 어떻게 지냈나
사연도 들어보고 말씀을 전해주는 날입니다.
그리고 사랑도 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정하신 날’입니다.
‘하나님의 날, 성령님의 날, 주의 날’입니다.
<안식일>은 ‘주와 일체 되는 날’입니다.
<주와 같이 예배드리는 자>만이
‘신령한 자’이며 ‘진정한 자’입니다.
사탄 마귀의 인을 맞지 않으려면 주일을 꼭 지켜야 합니다.
주일은 자기의 날이 아니니 자기 시간을 쓰면 안 됩니다.
십계명을 보면, 주일은 엄격히 하나님의 날이며,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날입니다.
주일에 놀러 다니고, 필요 없이 사람들을 만나 식사나 하고,
누구 관리한다며 이유를 달고 시간을 내어 만나러 다니면서
자기의 시간으로 다 쓰고 삽니다.
인간들만 생각하고 하나님과 주님을 생각하지 못하면
누구 손해입니까?
주일은 온전하게 지키라고 했습니다.
주일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써야 됩니다.
안식일에 특별히 구해야 될 양은 구해내야 되지만,
거룩한 주일은 각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써야 됩니다.
TV를 보고 오락을 즐기며 각종 대중매체에 젖어
주일을 보내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잘해야 됩니다.
어떤 자들은 주일도 안 지키고 말씀도 안 봅니다.
이러한 자들을 보시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지옥을 천국으로 생각하느냐. 그러고서 돈을 버느냐.
세상을 멀리하라고 해도 안 들리느냐.
너희는 더욱 빚을 지고 걱정과 근심과 염려의 함정에 빠지게 되리라.
바람을 잡듯이 돈이 잡히지 않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섭리를 외면하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멀리하면서
돈 벌어 성공한다고 하는 자들을 보시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 계획을 다 틀어 버렸으니,
어서 내 품으로 온전히 돌아오라.” 하셨습니다.
돈을 벌고 지옥에 가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고생되어도 생명 길로 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환난 날에도 주일을 꼭 지켜 행하는 자>는
결국 ‘주의 축복’을 받고 삽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을 범하는 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축복해 주지 않으시고,
원하는 것도 이루어 주지 않으십니다.
<안식일>을 자기 마음대로 쓰고 보내면,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도 그 하는 일을 틀어 버리십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거룩한 안식일>을 지키지 않음으로
‘축복’을 못 받으면, 하는 일이 제대로 안 됩니다.
집에서 자기 할 일을 하면서 <교회에서 안식일을 안 지키는 자>는
하나님도 ‘축복’을 안 해 주십니다.
그 하는 일이 안 되고, 슬피 울며 후회하게 됩니다.
주와 같이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집에서 말씀만 보면서 자기 나름대로 안식일을 지키는 자>는
‘온전한 신부’가 되지 못합니다.
<안식일에 자기중심, 안일주의로 행하는 자>는
결국에는 편히 쉬지 못합니다.
<안식일>을 온전히 지켜야, 제대로 ‘하늘 신부’가 되어
‘안식일을 확대한 천 년 왕국 혼인 잔치 안식’에 들어갑니다.
말씀을 선포했으니, 이제 확실하게 행해야 합니다.
<행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사랑’도 ‘축복’도 안 해 주십니다.
2. 예배를 드릴 때
1) 예배드릴 때는 예배의 기본을 꼭 지켜야 합니다.
예배드릴 때 기본 4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기도하는 것, 감사하는 것,
찬양하는 것입니다.
4가지 기본 중에 하나라도 상실하면,
예배를 100% 온전히 못 드린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같이
우리는 사람으로서 온전해야 하나님의 뜻을 같이 펴게 되고,
그의 예배와 기도와 감사와 사랑을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랑, 100%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온전한 증거를 해야 하나님도, 성령도, 예수님도 받으십니다.
온전한 십일조, 온전한 행실을 해야 받으십니다.
새벽에도 온전하게 단장하고 나서, 기도를 온전하게 해야 됩니다.
2) 예배드릴 때 자세가 온전해야 합니다.
예배드릴 때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 큰 실례입니다.
다리를 꼬고 있는 것도 예배 때 버릇 들이면 안 됩니다.
다리 꼬는 것도 어른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예배 때 자꾸 조는데
정신 사상이 흐리멍텅하기 때문에 조는 것입니다.
물론 졸 때는 귀신도 오고 마귀도 옵니다.
조는 마귀들이 배치되어 옵니다.
정신이 흐리멍텅하지 않으면 절대 예배 때 안 좁니다.
하나님께서 어명을 선포하시는데 감히 졸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은 15일 동안 안 잤어도 말씀 들을 때 안 졸아봤습니다.
정신이 흐리멍텅하면 육신도 일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정신이 흐리멍텅하다고 판단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말씀할 때 보면 사탄과 귀신들이 옵니다.
귀신들이 오고 마귀들이 와서 자꾸 졸게 만들고 그럽니다.
하나님의 성전인데 어떻게 올 수 있나 하지만
사탄 마귀는 자기의 생각대로 따라다닙니다.
자기의 생각과 행실이 사탄 마귀를 오게 하는 것입니다.
환경이 좋은 교회에 와도
자기가 나쁜 마음을 먹고 있으면 귀신이 옵니다.
좋은 마음을 먹고 있으면 귀신이 안 온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나쁜 장소에 있어도
사상이 투철하면 귀신이 안 오고 마귀가 안 오는 것입니다.
좋은 장소 교회에 와 있는데 왜 마귀가 오고 왜 귀신이 올까요?
아무리 좋은 장소에 와 있어도
나쁜 마음을 먹으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결과를 통해서 안다고 했지요?
육신의 현상을 통해서 마음 현상을 깨닫게 되고,
마음의 현상을 통해서 영의 현상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현상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역사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도 가만히 있으면 굳어버립니다.
자꾸 목운동도 해줘야 됩니다.
그러나 예배 시간에 너무 지나치게 하면 눈에 거슬립니다.
자리에 앉았을 때 반듯하게만 있지 말고,
말씀에 빠졌을 때는 괜찮지만
빠지기 전에는 운동도 하고 졸리지 않게 하고 들어야 되겠습니다.
졸리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조는 사람들은 대개 보면 무언가를 깊이 생각합니다.
가만히 생각하다가 자꾸 끄덕거립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현상으로 보이고, 환상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좁니다. 조는 것을 본인이 모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자기가 졸아도 본인은 안 졸았다고 합니다.
죽을 때도 그런 현상으로 죽습니다. 거의 그렇게 사르르 죽습니다.
조는 사람은 옆 사람이 깨워주지 않으면 모릅니다.
옆 사람이 살살 깨워주기 바랍니다.
졸 때는 본인이 모릅니다. 졸릴 때는 계속 졸립니다.
선생님께 보낸다고 비디오를 찍는데도 조는 것을 봤습니다.
조는 것이 습관 되면 안 됩니다.
예배드릴 때 조는 것이 습관 된 사람은 꼭 예배 때만 되면 좁니다.
평소에는 안 졸다가 예배 때 졸면 어떡합니까.
이런 것들을 완벽하게 행해야 되겠습니다.
임금 앞에 가서 졸아보십시오. 임금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민망하다 할 것입니다. 혼을 낼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졸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 조는 것은 큰 실례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자기 앞에 와서 이야기하는데
잠을 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전에 졸릴 때 바늘을 가지고 찌르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바늘로 찔러도 모르겠더라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려야 안 좁니다. 정신을 빠짝 차려야 됩니다.
정신이 조니까 육신이 조는 것입니다.
자세가 온전해야 됩니다. 자세가 흐트러지면 안 됩니다.
볼 찰 때 자세가 틀리면 볼이 제대로 안 갑니다.
자세가 불량하면 100번을 해도, 1000번을 차도 제대로 안 갑니다.
“자세 불량하면 절대 안 돼. 버릇 들어서 자꾸 그래.
버릇 들면 안 돼.”
버릇되면 예배드릴 때도 자꾸 자세가 틀어지고 흐트러집니다.
그것을 엄격히 내가 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버릇이 돼서 예배만 드리면 자는 사람들은 회개해야 된다!
그 제단은 못 받는다. 자세가 틀려서 안 받는다.”하셨습니다.
정신을 다시 차려야 됩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이 쳐다보십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은 그런 자세를 가지고 말씀을 받았습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은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하늘의 음성이 나도록 나는 숨도 잘 안 쉽니다.
물론 움직이는 것도 안 움직이고 숨도 안 쉬고,
하늘의 말씀을 받을 때 그렇게 받습니다.
먹는 것은 화장실을 가지 않도록 밥을 안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요.
우리의 시간을 맞춰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시간에 맞춰서 옵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은 참 중요한 시간입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은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이 전달되는 시간입니다.
하늘이 이 시간 사명자를 통해 말씀하시니 모두 뜨끔하게 듣고
고치기를 바랍니다.
예배드리는 것을 보고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 대해
많이 결정을 내리십니다. 예배 드릴 때 잘 해야 돼요.
졸거나 딴 생각하면 역시 낙제한 거예요.
예배드릴 때 다른 생각하고 전화까지 하는 사람 있어요.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에요. 그런 것을 많이 봤어요.
예배드릴 때 다 보여요. 문자 보내는 것도 훤히 보여요.
물론 급한 일도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 앞에는 잘 쪼개서 해야됩니다.
이 쪼개는 것을 안 하니까 사탄이 개입되었어요.
사탄이 개입된 것은 안 받아요.
사탄을 상징한 솔개가 뱅뱅 돌면서 힐문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는 받고 하나는 안 받았어요.
이래서 결국 결과로 볼 때에, 더러운 것, 죄, 모순,
바로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 것은 쪼개내야 합니다.
시대의 신부가 되었으니, 깨끗해야 해요.
그릇된 것 잘못된 것을 하나님이 보실 때 그냥 칼이 지나갑니다.
이건 메시아도 막을 수 없어요.
막으려면 그 전에 회개시켜야 됩니다.
나는 “반드시 이렇게 하라.” 분별히 전달했어요.
똑바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 칼이 지나가면 나는 못 막아요. 그땐 끝나는 거예요.
소나무 잘라놨으면 끝난 거예요. 며칠 전까지는 새파랗죠.
마르기 시작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 칼 지나가면 안 됩니다. 그 전에 살려야 합니다.
살리고 싶으면 그전에 가르쳐서 못 하게 해야 합니다.
3) 예배드릴 때는 옷을 갖춰 입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옷’을 입고 계십니까? (진지하게 묻기.)
본인은 원하지 않았는데 청함을 받고
<혼인 잔치 역사>에 참여했어도,
본인은 원하지 않았는데 청함을 받고
<예배>나 <섭리사 각종 행사>에 참여했어도
<기본>은 갖추고 삼위와 주 앞에 나와야 되지 않겠습니까?
‘역사가 이렇다 저렇다, 하나님이 이렇다 저렇다.
보낸 사명자가 이렇다 저렇다. ’
하지만 말고, 자신도 <기본 매너>를 갖추고 나와야 됩니다.
<기본>은 ‘옷’입니다. 곧 ‘행실’입니다.
<행실>을 제대로 갖추고 <매너>를 갖추고 나서
<혼인 잔치 역사>에 참여하고,
<하나님과 주가 베푸시는 각종 행사>에 참여하며,
<하나님과 주 앞>에 나아와야 됩니다! 믿습니까?
<행실의 옷>뿐만 아니라, <실제로 입는 옷>도
갖춰 입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예배 때>나 <하나님의 거룩한 전에 들어올 때>는
제발 갖춰 입고 와야 됩니다.
<사탄을 상징하는 검정 옷>은
부득이하게 회사에서나 학교에서 입어야 할 때만 입고,
<하나님의 거룩한 전에 들어올 때>는 삼가야 됩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지요?
임금이라도 ‘작업복’만 입고 다니면,
<작업하는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임금으로서 때에 따라 옷을 갖춰 입어야 됩니다.
여러분도 그러합니다.
<갖춰 입는다는 말>은 ‘때에 맞게 입는다는 말’입니다.
<때에 맞는 행실, 때에 맞는 옷>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팔자’가 돌아가기도 합니다.
어느 때는 <옷>이 자기 인물의 70% 이상을 좌우하고,
어느 때는 <옷>이 자기를 돋보이게 합니다.
<자기 몸>이 아무리 멋있어도 <옷>을 대충 입으면,
그때의 분위기에 맞게 처세할 수가 없습니다.
돈이 있다고 옷을 잘 입는 게 아닙니다. 감각입니다.
감각이 있으면, 돈이 없어도 잘 갖춰 입습니다.
<행실>도 ‘깨끗한 행실’이 중요하듯이,
<옷>도 잘 입지 못한다면 꼭 깨끗하게 갖춰서 입어야 됩니다.
4) 예배 시간을 엄하게 지켜야 합니다.
행사도, 예배도, 모임도, 그 어떤 일들도
미리미리 준비 안 하면 불가능합니다.
예배 전에 미리 설교 준비, 미리 기도 준비, 미리 찬양 준비,
미리 성가대 준비입니다.
예배 시간보다 미리 와서 준비해야 됩니다.
행사 전에 미리 사회 준비, 미리 갖가지 준비를 해야 됩니다.
<큰일>일수록 ‘미리’ 해야 실수없이 잘하게 됩니다.
예배 드리는 것도 미리 와서 준비해야 됩니다.
닥쳐서 그때 초를 다투고 겨우 들이닥치지 말고,
적어도 30분 전에, 한 시간 전에, 예배위원들은 더 일찍부터
최대한 지켜야 됩니다.
그냥은 안 돼요. 30분 전에 와있으면 초 지키는 것은 간단하잖아요?
예배는 이렇게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그렇게도 크고도 큽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면 항상 미리미리 하셨습니다.
미리 해버리면 초가 아니라
초의 백만분의 1까지도 다 지킬 수 있어요.
미리 행하는 것 외에는 못 하는 거예요.
<예배 시간을 안 지키는 자>는
‘성삼위와 예수님의 마음을 거스르는 신뢰 없는 자’입니다.
<예배 시간>은 ‘삼위일체를 대면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습관이 되고 뇌가 굳어서 안 지키고 살고 있습니다.
시간을 안 지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만,
‘시간을 지키려는 마음이 죽었기 때문’에 안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모
두 깨달아야 됩니다.
<예배 시간을 안 지키는 자들>이 섭리세계에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배 시간 지키기를 모두 행하여라’하셨습니다.
<예배 시간>을 안 지키는 것이 습관이 되니,
<자기 할 일들>도 안 지키며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다 마치 신호등의 초록불이 켜졌는데 느리게 걸어가다가
빨간불로 바뀌어 달려오는 차에 치여
죽음까지 초래하게 되듯 그런 결과를 맞게 되기도 합니다.
<예배 시간>을 스스로 엄격하게 꼭 지켜야 됩니다.
5) 하나님께 약속한 시간을 꼭 지켜야 한다.
성령님은 <하나님께 약속한 시간을 꼭 지켜야 된다>는
심정 타는 말씀을 선생님이 또 실제로 겪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주일 아침에 <예배>를 드리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시간>을 지키라고 하셨기에,
‘1분’이라도 더 빨리 가려고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예배 시간’에 맞춰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렇게 와서는 아무래도 ‘제시간’에 늦을 것 같아서
심정을 태우며 그들을 쳐다봤습니다.
이때 성령께서 감동시키며 깨닫게 하시기를,
“<교회라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나라’로 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과 약속한 시간>에 늦으면, 못 간다.”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거의 다 도착했는데,
저기 ‘뒤에 오는 사람들’이 못 탈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빨리 오도록 기도했습니다.
왜 더 애간장이 탔냐면, 뒤에 오는 사람에게
하나님께 드릴 선물을 맡겨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준비한 예물>을 못 가지고 간다고 생각하니,
정말 애간장이 타고, 심정이 타고, 간이 녹아내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 이러다 나까지 못 타겠구나.’ 하고,
심정을 태우며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 자리>에 앉았는데,
순간 귀에서 ‘비행기 엔진 소리’가 한없이 들리면서
교회가 비행기같이 느껴졌고, 곧 뜨기 직전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때 ‘뒤따라오던 사람도 왔나?’ 하고, 쳐다보면서 찾았습니다.
성령께 물으니, 방금 들어왔다고 하셨습니다.
이때 ‘휴’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떨어졌던 간이 다시 붙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맡겨 놓았던 하나님께 드릴 선물을 얼른 받았습니다.
선생님 홀로 가면 덜한데, <같이 갈 사람들>을 챙겨서 가야 하니,
애간장이 타고, 심정이 탔습니다.
<챙기고, 키우고, 살려야 될 생명들>과 같이 못 가면,
하나님이 왜 생명들은 안 데리고, 혼자 왔냐고 하십니다.
성령께서 이를 겪게 하시고 깨우쳐 주시기를,
“<하나님께 약속한 시간>을 지키기 위해
항상 준비하고 예비했다가 행해라.
예배 시간 20분 전, 혹은 30분 전에 안전하게 도착해야,
나 성령이 너희를 하나님께 인도해 갈 때
애간장이 녹지 않고, 심정이 타지 않는다.
<너>도 <섭리사의 모든 자들>도 그러하니, 내 말을 써서 전해주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뼛속 깊이 느끼고,
뇌에 채우고 잊지 않고 행해야 됩니다.
<하나님, 성령님>은 ‘우리가 사랑하는 주체, 신랑 입장’이 되시고,
<우리>는 ‘사랑의 대상, 신부 입장’이니, 꼭 같이 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약속한 시간 : 기도 시간, 예배 시간, 각종 공적 시간>을 꼭 지
켜야 됩니다.
성령님도 ‘우리에게 맡겨 놓은 것’이 있어서,
우리를 꼭 데리고 가기 위해 애간장을 태우십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맡겨 놓으신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성삼위 앞에 드릴 ‘감사의 제물’입니다.
그동안 하나님 성령님께서 우리의 육과 영의 생명을 살려 주시고,
늘 돕고 함께해 주시고, 구원시켜 주시고, 휴거시켜 주셨으니,
감사 감격하고 기뻐하며, 사랑을 드리는
‘감사의 제물’을 꼭 가져가야 됩니다.
하늘 앞에 시간을 드리는 것도 아까워하며 야박하게 쓰면 안 됩니다.
<평일>도 ‘자기 시간’으로 다 쓰면서,
<주일>까지도 야박하게 주일예배만 슬쩍 드리고,
나머지 시간을 ‘자기 시간’으로 다 쓰는 자들이 있습니다.
<주일>은 주의 날로서
‘삼위와 신부들이 사랑하며 보내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주일>을 자꾸 빼먹거나
<주일예배>를 드리더라도 야박하게 시간을 쓰고,
<기도>도 잘 안 하고
기도 하더라라도 야박하게 몇 마디 하고 끝냅니다.
그러니 하늘 신부가 <삼위와 사랑하며 보낼 시간>도 없고
<평소에 대화할 시간>도 없어져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또 서먹서먹해지고 마음도 사랑도 멀어져서 살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황금성 천국의 집>을 보면,
그 벽이 휑하니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영의 황금성 집을 보면
<샹들리에>에 5~10m짜리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장식돼 있는데,
어떤 영의 황금성 집을 보면
달걀 프라이같이 납작한 등이 천장에 붙어 있습니다.
그 행위가 야박하니, 집도 야박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떤 영은 왕관이 50cm 높이인데, 어떤 영은 왕관이 5cm입니다.
왕관이 작은 자들은 야박하게 기도하고,
야박하게 예배만 달랑 드리고 가는 자들입니다.
시간을 그렇게 야박하게 쓰는 자들이
성령을 받으러 가려고 특별히 시간을 내겠습니까?
생명을 살리는 데 시간을 내겠습니까?
당연히 생명을 살리는 데도 시간을 잘 안 씁니다.
그러니 ‘힘’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살다가는 ‘신앙의 부도’가 나 버립니다.
신앙의 부도가 나도, 살기는 합니다.
그러나 겨우 먹고 살면서 연명하듯, 힘겹게 삽니다.
오래된 자들인데, 새로 온 자들만큼도 ‘빛이 없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빛났지만,
지금은 ‘첫 신앙, 첫사랑’이 식어서 빛이 사라져 갑니다.
정신 차리고 해야 합니다!
6) 설교 들을 때의 자세
설교를 잘 듣고 뇌에다 핵을 입력하면서 ‘이해’하기 바랍니다.
설교 시간에 잘 듣고 이해하면,
나중에 설교 문서를 보면서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잘합니다.
설교가 시작되면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데 집중하기 바랍니다.
성경을 봐도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그때 ‘이해’를 못 해서
한자리에서 말씀하셨는데도 각각 ‘하는 말’이 달랐습니다.
그러니 지금도 한쪽에서는
“예수님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였다.” 하고, 한
쪽에서는 “아니다. <말씀의 떡>이다.”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면, 의문만 품고 수수께끼 신앙을 합니다.
말씀을 전해 줄 때 잘 이해하면, 전체를 다 알게 됩니다.
설교를 제대로 들으려면, 꼭 ‘듣고 이해하는 데 집중’해야 됩니다.
선생도 기도하면서 말씀을 받을 때,
먼저 하나님과 성령님이 계시해 주시는 말씀을 다 듣고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해한 것의 핵’을 기록합니다.
이것이 ‘잠언 한 개’입니다.
그러니 ‘내용’도 알고 ‘답’도 잘 압니다.
<설교 전체>를 잘 들어야 ‘답’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잘 들어야 됩니다.
3. 설교자 준비
1) 설교자는 교인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연구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설교할 때> 이해하도록 ‘감동’시키십니다.
그래서 모두 설교를 잘 이해하도록
설교자에게 ‘강약’을 넣어서 잘 설명해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강약’을 잘 조절하면서 설명해야
듣는 사람들이 ‘이해’를 잘하고 그들에게 감동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못하는 설교자는
<설교>가 아니라 <낭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약’을 조절해서 설교하라고 하니,
강하게 말할 때 너무 고함을 치는 설교자도 있습니다.
고함을 너무 크게 치면, 괴물 소리가 됩니다.
설교자는 매일 거울을 보고 저마다 연구해야 됩니다.
자기가 설교하고, 자기가 만족할 정도가 돼야 합니다.
설교하고 나면, 청중의 80~90%가 “설교 잘했다!” 해야 됩니다.
<작곡가>가 아무리 ‘멋진 노래’를 만들어 줬어도
<가수>가 ‘강약’을 조절하지 못하고 잘 못 부르면,
작곡가 실망, 청중 실망입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말씀’을 잘 만들어 내보냈어도
설교자가 ‘강약’을 조절하지 못하고 ‘감동’을 못 주면,
말씀을 주신 하나님과 성령님 실망, 선생 실망, 청중 실망입니다.
예전에 기독교 목사들은 금요일이 되면
설교 준비를 위해 기도하려고 산으로 갔습니다.
혹은 집에서 금식하며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섭리사는 설교를 다 써 주는데도
기도도 연구도 안 하고, 준비도 충분히 안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세요.
그들은‘몇 달씩’ 연습해서, 겨우‘한 번’TV에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1500번’ 연습하고서 나왔다고 합니다.
선생도 시대 말씀을 전하러 나오기 전에
<말씀 한 건>당 ‘5천 번’씩 기도하며 확인하고
이 시대말씀을 만들어서 나왔습니다.
그러니 설교자들도 듣는 자들도 말씀을 가치를 잘 깨달아야 됩니다.
목회자는 설교하고 나면, 설교가 어땠는지 꼭 물어봐야 됩니다.
‘교인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연구해야 됩니다.
교인들도 ‘목회자의 설교’를 보고, “좋다. 어떻다.” 하고
<반응>을 해 줘야 됩니다. 감정적으로 말하지 말고,
정말 진심을 담아서 인격적으로 말해 줘야 됩니다.
성령이 그 몸에 임하면, 그가 말할 때 ‘감동 감화와 불’이 옵니다.
<말씀>을 통해 ‘성령의 불같은 능력’을 받아서
병을 고치고, 말씀의 능력으로 행하고, 표적을 행하면
성령도 주도 ‘그’를 쓰고 ‘그 몸’을 통해 더욱 행하십니다.
모두 ‘말씀의 가치’를 진정 깨닫고, 더욱 증거하며
<시대 역사>를 찬란하게 뛰고 달려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