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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24.08.11 (일)

240811 주일말씀(변화와 조건 대가다)

선포일
2024.08.11 (일)
성경 본문
요한계시록 22장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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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1일 주일말씀> 변화와 조건 대가다 (부제 : 믿음의 조건과 실천이다) 본 문 : <요한계시록 22장 12-13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마태복음 16장 27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할렐루야! 오늘은 “변화와 조건 대가다. 믿음의 조건과 실천이다.”라는 주제로 말씀하겠으니 생명을 다하여 들어라. 그래야 즉시 표적이 일어난다. 오늘은 원본에서 토를 달지 않고 그대로 하나님 성령의 말씀을 권위 있게 듣자. 하나님 성령님의 말씀을 하찮은 우리들에게 이같이 ‘하였습니다.’ 하면 설교식이다. 전능자 하나님과 성령이 존댓말을 쓰시겠냐. 선생에게도 늘 65년간 ‘한다. 하여라.’ 하셨다. 그래서 말씀이 권위 있었다. 성령이 “나의 말인데 설교자가 하는 말 같다.” 하시면서 “원본대로 전하여라.” 하셨다. 고로 말씀대로 표현하여 전하니 ‘왜 설교자가 반말하지?’ 생각하지 말아라. 윗사람만 돼도 말을 내려놓고 한다. 전능자 하나님 성령과 메시아 예수님의 말이니 그대로 듣자. 설교자 식으로 전하면 설교자가 설교하는 것 같다. 선생 말도 역시 그대로 전한다. 이제 오늘 말씀을 듣자. ◎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얼마나 귀하게 생명시 여기고 그 말씀을 받느냐.’에 따라 육도 혼도 영도 변화가 좌우된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 똑같은 씨를 똑같이 뿌린다. 그런데 ‘땅의 토질’에 따라 곡식 농사가 잘되기도 하고 잘 안되기도 한다. 또한 ‘얼마나 퇴비하고 가꾸느냐.’ 하는 <조건>에 따라 좌우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말씀은 똑같이 준다. 동일하게 역사한다. 저마다 마음 밭에 따라 차이가 나고, 생각에 따라 감동도 달라진다. 마음 밭은 자기가 만든다. 만드는 대로 더 좋게 되나니, 매일 선하게 하나님 성령이 쓰기 합당하게 만들어라. ◇ 하나님, 성령, 성자와 주 예수님을 따라 자기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변화된 만큼, 조건대로 대가를 받는다. 그래서 선생도 먼저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키며 만들었고 그리고 말씀을 배웠다. 그릇이 생긴 모양과 형상대로 물이 담기기 때문이다. 자기 마음과 생각을 만든 조건대로 행실도 행해지고 하나님도 대하신다. 자기를 만들어 변화된 대로 영도 그에 따른 그 세계로 간다. 월명동도 하나님의 구상대로 만든 만큼 변화되어 귀히 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이 자기를 만든 대로 쓴다. 나 하나님이 너희에게 계속 말하니 들어라. 오늘도 말씀으로 자기를 만들기 바라느니라. 말씀을 들을 때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 알고 들어야 근본을 안다. 고생되어도 조건을 행한 만큼 그 대가를 선악 간에 환난이 와도 나 하나님은 준다.” 하셨다. 지금부터 전하는 말씀이 오늘의 핵이다. 하나님이 연속 말씀하신다. ◎ (하나님 θ) 변화됨이 정말 중하다. 변화되지 않으면 나 하나님의 나라에 올 수 없다. 섭리사를 따라오면서 열심히 했어도 근본 변화가 안 된 자는 변화가 안 된 마음과 생각이 자기를 주관하여 자기 중심으로 살아간다. 오다가 떠난 자들은 온전하게 변화가 안 되어서다. 예수 때도 무익한 자들이 있었나니 ‘무익한 종이나 아들이나 신부들은 쫓아낸다.’ 하였다. (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그러니 자기 생각 중심하면 망한다. 고로 자기를 온전히 만들어야 한다. 월명동도 만들고 계속 20년간 고치고 교정하였기에 흠이 없게 되었다. 글을 써 놓고 계속 교정하여 흠 없게 하듯이 자기도 계속 흠을 고쳐야 온전해진다. 그러면 완전하게 된다. 글을 써 놓고 수십 번 계속 교정하면 완벽한 글이 된다. 자기도 그러하다. 각자 자신의 작은 것은 자신이 하고 큰 것은 나 하나님이 해 준다. 이 모든 것을 깨닫고 행하라. 나의 교훈은 정직하고 완전하다. ◎ (R) 지금 선생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전하고 있다. 누구의 말인지 알고 듣도록 전능자 하나님과 성령이 전하는 대로 전한다. 오늘은 변화와 조건 대가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은 만물들도 사람도 ‘조건-대가’로 창조해 놓았다. ‘조건 대가’는 공의로운 천법이다. 하면 되고 안 하면 안 되나니, 그러므로 행하여라. ‘하는 게 하나님 뜻인가? 안 하는 게 하나님 뜻인가?’ 고민하는데 자기에게 속한 것은 자기가 해야 한다. 네 일, 네가 안 하면 누가 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것은 하나님께 묻고 하는 것이다. 작은 것은 자기가 해도 되니, 하고 큰 것은 오직 하나님이 해 주셔야 한다. 하나님의 말을 듣고 ‘변화됨’이 그리 크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이 보낸 자가 오면 그의 말씀 듣고 변화되어 개인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이상 세계를 이루었다. 그가 오면 말씀 듣고 홀연히 변화되어 공중에 끌어올림을 받는다고 하였다. (살전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 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이 말을 깨달아라. 이 시대 너희도 이같이 되었다. 변화가 안 되면 절대 안 된다. 그런 자는 돌 포도나무요, 돌감나무다. 자기를 만들어 월명동같이 변화시키기를 원한다. 조건 세워 놓은 것은 하나님이 정녕코 갚아 주시니 걱정 말고 희망으로 행하여라. 눈보라가 치는 환난이 와도 조건 세운 것은 다 주신다. 행한 대로 절대 주시나니 희망으로 행하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좌절하지 말아라. 나 하나님의 역사다. 나 하나님이 잡고 매일 행한다.” ◎ 이제 오늘 말씀을 더욱 깊이 하니 잘 듣자.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잘 들어라. ◇ (하나님 θ) 전지전능한 나 하나님 앞에 그 뜻대로 조건을 세워 놓으면 누가 악평하여도, 어려움을 당하여도 다 준다. 나 하나님이 함께하여 이기고 형통하리라. 누구나 자기가 의를 행하여 놓았으면 그 행한 대로 그 대가를 전지전능한 나 하나님은 정녕코 때가 되면 준다. 의심 말아라. 누구를 주겠냐. 끝까지 하기다. 악인들이 아무리 강하게 발악하여도 나 하나님은 선한 내 뜻을 행하는 자, 그편이 되어 행하나니 끝까지 믿고 행하여라. 선생이 그린「운명」이란 그림이 있지 않느냐. ‘끝까지 행해야 사는 운명’이라는 뜻으로 준 것이다. 결국 악은 악의 세계에 보내어 영원토록 형벌 주며 의인들에게 ‘보라.’고 하였나니 그러므로 절대로 악으로 가는 악한 자가 되지 말아라. 때가 되면 모두 드러나리라. 누가 나 여호와의 행함을 꺾겠느냐.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 1 시작) 시대 조건을 세운 자에게,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 그 시대 축복이 그에게 가나니 막을 자가 없다. 깊은 계곡에 비가 오면 모두 흘러 내려가서 그 밑에 댐에 들어가 차고 넘치어 그 물을 365일 쓰게 됨같이 그와 같이 시대 오는 축복이 조건 세운 자에게 흘러가느니라. 너희는 나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조건을 세워라. (영상 1 끝) ◇ 조건을 세운 자에게 축복을 주는 것은 뜻을 펴라고 주는 것이다. 자기 분깃은 따로 있다. 그것은 개인 것이다. 고로 ‘의의 씨를 뿌리고 가꾸기’다. 악의 대가가 있듯이 의를 행한 자에게도 대가는 항상 따라다닌다. 때가 되면 주나니 그때를 위해 죽도록 의를 행하고 희망으로 사는 것이다. 자기 행위로 자기의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섭리역사, 지금까지 오면서 환난 핍박 각종 억울함을 당하여도 때가 되면 나 하나님은 축복을 다 주었다. 모두 받은 것을 쓰면서 섭리역사를 이루고 오지 않았느냐. 나의 것을 귀히 여겨라. 계절이 때에 따라 돌아오듯이 때에 따라 조건 세운 것은 합당하게 축복을 다 주었다. 안 주고 나의 뜻을 이룰 기대를 하겠느냐. 받았어도 모르면 실망하며 사나니 다 준 것을 깨달아라. 싫다고 하여도 조건 세운 자가 주인이기에 주나니, 조건 대가다. 행한 대로 주나니 의를 행하라. 불만도 원망도 말아라. ◇ 모든 것은 조건 대가다. <월명동 약수>를 식수로 사용하는 자가 있다. 그 귀한 물을 식수로 사용하느냐. 조건 대가다. 약수도 귀히 여기는 조건이다. 식수로 사용하면 효력이 없다. 약수를 식수로 사용하면 나 하나님이 준 귀한 물을 권위 없이 여기니 그에게는 효력이 없다. 항상 귀하게 나 하나님의 권위대로, 내가 준 약속대로 사용해야 한다. 먹을 때 인사하듯 기도하지 말고 아프게 된 사연을 고하고 병 낫기를 간절히 기도하여라. 식수로 사용하는 자가 없게 하라. 나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안 하면 효력이 없는 것이다. ◎ (R) 사람들은 자기 삶을 살아갈 때 실상 아무것도 아닌 육의 것만 위해 살아간다. 그것은 영원한 삶을 모르니 일순간 잠깐의 것에 속해 사는 것이다. 행복하게 살았어도 후에는 늙어서 기억도 나지 않고 결국은 죽는다. 흔히 사람들은 죽어 자기 혼과 영이 어디에 가는지 모른다. 죽어서 해당하는 영계에 간 후에 이를 가는 고통을 받으니 그제야 ‘왜 이런 고통을 받나?’ 하다가 ‘영의 세계가 있었구나.’ 깨닫고 탄식한다. 육계에서 배워야 행하고 좋은 영계로 간다. 육신이 살았을 때 영원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안 믿고 형식으로 믿은 죄니라. 육신이 죽으면 그제야 혼과 영이 또렷하게 보인다. 육신 끝나면 영이 영원토록 천국의 삶을 사는 것을 그제야 안다. 육신이 살 때 구원받아야 정상이다. 육신이 살 때 전능자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가 보낸 구원자를 통해 준 말씀을 믿지 않고 행치 않으면 최고 불쌍한 영이 되어 늘 떨고 있다. 영은 영의 세계를 안다. 지옥도 알고 천국도 안다. 사망의 영들은 더 무서워 공포에 떤다. 영과 혼이 구원을 못 받으면 사망에 속해 사는 운명이다. 육신이 죽고서야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삶을 살려고 하나, 그때는 못 한다. 아예 지옥 쪽으로 가면 못 한다. 거기서 세상에서 지은 죄의 대가를 모두 받아야 한다. 고통을 수십조의 만 배를 받아도 구원을 못 이루게 된다. 육으로 인해 영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자. (하나님 θ) 너희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 육이 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축복받고 구원받기 위함이다. - 육도 영도 구원받아 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육이 끝나면 너의 영이 내 나라에 와서 영원히 나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 사랑하며 그 체제대로 살기 위함이다. ‘이것이 나의 천지 만물 사람 창조 목적이다.’ 하지 않았느냐. ◇ (R) 세상의 모든 자들의 모든 삶은 구원받고 영원한 영생의 나라 천국을 가기 위함이다. 고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뜻을 절대로 이뤄야 한다. 그 목적을 이룬 대로 산다. ‘어떤 목적의 뜻을 이뤘느냐.’에 따라 영이 천국에 가도 거기 속해 살아간다. 물에 떠내려가는 자가 구출을 못 받으면 계속 떠내려가면서 고통을 받듯이 영도 죄의 급물살에 떠내려가면 그러하다. 고로 하나님은 사람이신 구원자를 보내서 그와 함께 회개시켜 구원시킨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 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는 떠내려가는 급물살에서 구원하여 나오게 하고 그 뜻대로 살게 하여 구원의 삶을 살게 한다. ◎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자. (하나님 θ) 그 시대 나 하나님의 뜻을 펴기 위해 보낸 자가 아니고서는 그 시대 나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가 없다. 내가 그로 밝히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아라. 그같이 6000년 동안 해 오지 않았느냐. (아모스 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 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그 시대 뜻을 펴야 그 시대 해당하는 그 급의 새로운 구원을 받고 축복받고 살게 된다. 제대로 행치 않으면 이뤄지지 아니하니 새 시대 만난 보람이 없는 것이니라. 고로 복된 역사를 떠나가게 된다. 세상에서 육신이 구원을 못 받으면 육이 사망의 죄의 세계에서 살다 죽어서 영이 사망에 처해 살게 되나니 나 여호와의 시간을 상실함이다. 영원한 나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최고 죄니라. 그러므로 사람은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 죽는다. 구원 못 받고 살면, 그 삶은 창조된 목적과는 전혀 다른 삶이다. 자기 삶으로 끝나 버린다. 형식으로 적당히 믿고 행하고 사는 자, 행한 대로 영이 형성되어 그 세계로 가는 것이다. ◇ <구원>이란 사망 지옥 쪽에 사는 육과 영이 시대 보낸 구원자를 통해 나 하나님을 믿고 사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성경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 어야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온다.’고 예수도 말씀하지 않았느냐.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 겼느니라” 세상에서 자기 수고와 애씀으로 자기 희락을 누리면서 살아도 육은 늙어 때가 되면 죽는다. 늙어 가는 자들에게 물으면 ‘자기가 왜 살았나 모르고 과거 그렇게도 잘 살았는데 기억이 안 난다.’ 하지 않더냐. 그러면서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영이 있는지, 혼이 있는지 모른다.’ 하였다. 육이 늙어서 생각을 다 잃으면 치매 인간, 식물인간이 된다. ‘그러기 전에 나 하나님을 찾고 믿으라.’고 솔로몬을 통해 잠언으로 말해 주지 않았느냐. (전 12:1)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내 말을 들어 봐라. 이러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느냐. 세상에서 산 대로 된다. 자기 행위대로 자기가 만들어진다. 나 하나님을 믿지 않았으니 그 영도 혼도 나 하나님이 없는 세계로 간다. 육이 죽으면 혼과 영의 삶이다. 영 없다고 하는 자, 혼 없다고 하는 자들은 육신이 죽어 영의 존재 세계에 가면 자기 육신 세계의 육보다도 영과 혼이 백배 천배 또렷하게 존재함을 보아서 안다. 너희가 기도하면 꿈에도 환상에도 영도 혼도 보여 주지 않느냐. 지금도 누구나 영과 혼을 볼 수 있다. - 잠들면 혼이 보인다. - 육신이 깊이 기도하면 영계를 가기도 한다. 기도하던 중에 영계에 들어가서 보면 영들의 세계다. 육은 한 명도 안 보인다. 혼과 영이 보인다. 그들도 열심히 한다. 혼의 세계에 가면 혼만 보이고 영의 세계에 가면 영만 보인다. 육의 세상에 가면 육만 보이고 그 세계만 보인다. ◇ 그러다 육 죽으면 육은 죽고, 혼과 영이 일체 되어 세상에서 행한 대로 가서 그곳에서 고통을 받고 산다. 왜 고통을 받는지 모른다. 영원한 전능자 나 하나님과 내가 보낸 자를 믿지 못해서이다. 나 하나님을 믿었어도 형식으로 믿어서다. -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는 자의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차이가 크지 않느냐. - 농사를 짓는 자와 안 짓는 자는 차이가 있고 - 성공한 자와 성공 못 한 자 역시 삶이 차이가 크고 크다. - 이와 같이 나 하나님을 믿고 그 보낸 자를 믿고 구원받고 사는 자와 구원받지 못하고 사는 자의 차이가 하늘과 땅같이 크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너희 생각보다 높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사 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 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 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 안 믿고 사는 자는 자기 삶이 ‘안 믿고 사는 것이 편하다.’ 하고 믿고 사는 자는 ‘믿고 사는 자기 삶이 편하다.’ 한다. 그러나 그 영과 혼이 ‘지옥으로 가느냐. 천국으로 가느냐.’가 있기 때문에 자기 자유의지로 믿고 안 믿고 나름대로 기뻐 살기만 하면 절대 망한다. ◎ (R) 사람이 길든 대로 마음도 몸도 그대로 해야 편하다. 체질이 되어서, 길이 들어서다. 길든 대로 체질에 배고, 익힌 대로 편한 것이다. 하나님을 안 믿고 사는 자는 그 길이 들어서 그것이 편한 것이다. 후에 영과 혼이 지옥에 가서 고생하든지 말든지 생각 안 하고 살기에 편한 것만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편하고 안 편한 것은 길든 대로’다. - 일에 길든 자는 일하는 것이 그냥 노는 것보다 편하다고 하고 - 운동하는 자는 산을 타고 등산 운동을 하는 것이 편하다고 하고 - 노는 자는 운동 안 하고 쉬는 것이 편하다고 운동을 거의 안 한다. 사람은 체질에 길이 드는 대로 그것을 할 때 편한 것이다. - 음식도 자기 체질이 길이 든 대로 그것을 먹어야 기쁘고, 체질에 맞고 편하다고 좋아하나니 한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표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은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표준 하지 않고 의를 표준하고 행한 것을 공의로 보느니라. 그러므로 고생되어도 의를 행하여라. -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는 자들은 그것을 해야 편하다. 새벽에 기도를 안 하는 자들은 “하면 힘들다.”고 한다. 이는 체질이 안 돼서다. ◇ 자기 육체가 길든 대로 살아가는 것이 편하다. 그러나 편한 것만 생각 말고 근본은 미래의 영과 혼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자기 편한 대로만 살면 영원토록 영과 혼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우선 편한 대로 살아가는 자 사망이 덮친다. 미래 세상, 영의 세계만 없으면 육신 편한 대로 사는 것이 지혜다. 그러나 영의 세계가 반드시 있으니 영을 위해 살아야 된다. 또한 그냥 있는 대로, 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육계 세상만이라도 잘 따져 보기’ 바란다. 그러면 미래, 앞날을 위해서 고생돼도 의를 행하며 열심히 좌절 말고 살아야 함을 알게 된다. ◇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에 맞춰 길이 들어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육도 영도 삶이 쉽고, 구원받고 영원토록 잘 된다.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서 하나님을 안 믿고 육신의 삶에만 체질 되고 길들어 편안하게 살아도 육신 일생은 잠깐의 기간이다. 영원한 기간에 비해 너무나도 짧다. 구원을 못 받고 사는 삶은 부귀영화를 누리어도 육신만 잠깐 편안했지, 영과 혼은 영원토록 고통과 사망이다. 고로 의를 행하며 하나님 뜻을 위해 사는 삶에 길을 들이고 마음도 삶도 길을 들여 살아서 영원한 천국으로 가야 하나니 미련 없이 행하자. ◇ 예수님이 선생 어렸을 때 “좋은 것을 길들이고 습관 들여 체질을 만들어라. 그렇게 해 놓아야 행하기 쉽다. 나쁜 것 길들이면 해야 기쁘고 좋으니 하게 된다. 새벽에도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고 기도 습관 들여 놓아야 신앙생활 하기 쉽다.” 하셨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힘들어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경대로 사는 것을 습관 들이고 길을 들였다. 성경 읽는 것 길들이고 설교할 때 글 쓰는 것 길들였다. 그리고 평소와 새벽에 기도하는 것 길들이고 기도를 오래 하는 것도 길을 들였다. 그랬더니 지금은 아예 체질이 되었다. 예수님 말씀처럼 계속해야 체질이 되고 습관이 된다. 사람이 강한 것, 강한 체질과는 상관이 없다. 아무리 강한 몸이고 건강하여도 길을 안 들여 놓고 습관 안 들여 놓으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지도 못하고 기도도 못 한다. 체질 안 된 자는 처음엔 불가능하다. 기도하다 조는 것, 안 졸게 길들여야 한다. 한두 번도 아니고 늘 기도하다 자는 자는 은혜가 안 되니 집에 가서 기도하라. ◇ 의의 생활도 그러하다. 각종 의의 삶에 길을 들여 체질을 변화시켜 놓아야 보람 있게 산다. 버릇은 제2의 천성이다. 좋은 것은 습관 들여 놓아야 하기 쉽다. 운동이나 각종 것, 자기 습관이 들면 비가 오고 눈이 와도 기뻐하며 뛰며 행한다. 선생도 20년 동안 기도 생활, 길을 들여 놓아서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보다 쉽게 했다. 습관을 들여 놓지 않으면 마음도 몸도 체질 되어 하기가 정말 힘들고 하기 싫다. 좋은 것인데도 체질이 안 되니, 하기 싫어 성공 길을 벗어나서 편하게 게으르게 산다. 결국은 앞날에 가서 인생 망하고 고통 세계에서 살게 된다. 안 해 버릇하는 자는 - 체질이 안 받아들여 좋은 음식도 못 먹는다. - 환경 좋은 곳도 별로라고 하며 마음도 체질도 안 맞아 못 산다. 고로 마음도 체질도 좋은 것으로 길들여 놓아야 쉽게 한다. ◇ 크게 하는 것, 길들여 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좋은 것도 안 좋아하고 작은 옹달샘 삶을 산다. 좋은 것에 체질이 안 된 자는 집도 토끼집 같은 작고 허름한 데서 사는 것이 좋다고 산다. “정원도 크면 부담된다. 별로다. 그냥 익숙한 대로 작게 살기 원한다.”고 한다. 곧 무너질 것 같은 초가집에 살면서 그 집에만 마음을 길들여 놓았기에 집을 때려 부수고 다시 크게 짓자고 하면 옛날 노인들같이 막 화를 내고 “미쳤냐?” 한다. ◇ 그래서 선생도 옛날 선생이 태어난 오래된 초가집을 때려 부수고 다시 짓자고 하다가 아버지께 혼났다. 그 초가집에서 계속 살 때 예수님께서 “때려 부수고 새집 짓자.” 하셨다. 그래서 알겠다고 대답하고 아버지가 새집 짓는 것을 반대하니 ‘어떻게 할까.’ 하다가 방법을 달리해 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밭에 가신 사이 무너뜨려 보자.’ 하고서 동생들과 함께 살던 초가집을 발로 차고 밀어붙이니 그 자리에서 순간 집이 무너졌다. 그렇게도 오래되고 약한 집이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에서 조금만 더 그 집에 살았으면 우리 식구는 죽을 뻔했다. 예수님은 “속이 시원하다.” 하시며 좋아하셨다. ◇ 잘못된 것에 습관 든 자들은 습관 든 대로 다 살아간다. 선생도 처음에는 그러했다. 지금처럼 월명동에 대한 하나님의 구상을 못 받았을 때였다. 10대 때 내 나름대로 계획했었다. 겨우 집이나 하나 새로 짓고 좋은 환경 만들고 살려고 계획했다. 그렇게 했으면, 했어도 산새같이 숲속에 작은 새집 짓고 사는 꼴이 되어서 모기 등쌀에 시달리고 숲속에서 원시인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랬으면 선생 인생이 원시인 같다고 하나님이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초라하게 선생의 인생을 두지 않으시고 월명동의 동에서 서까지 모두 구상을 주시며 “나 하나님 궁을 짓고 크게 살아라.” 하셨다. ◇ 크게 해야 크게 된다. 마음을 크고 웅장하게 해야 하나님, 전지 전능자와 같이 살게 된다. 선생은 어릴 때 작고 좁은 골짜기인 시골에서 살다 보니 도시에 살기를 그렇게도 원했다. 도시를 천국으로 보았다. 그 후 커서 도시에 가서 좀 살아 보니 바로 불편함을 알았다. 공기가 안 좋고 소음이 많고 사람이 많아서다. 깊은 생각을 못 했다. 도시의 삶이 깨끗한 시골만 못 했다. 시골은 하나님의 자연적인 산과 돌과 물과 나무들이 갖춰져 있다. 이런 곳을 개발하면 도시의 배경이 따라올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도시는 아무리 개발해도 산도 계곡도 울창한 숲도 바위산도 만들 수가 없다. 대부분 공부하려면 도시로 가야 한다. 또 흔히들 돈 벌려면 회사를 다녀야 하기에 도시로 가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산은 항상 산에다 두셨다. (사 56:7)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 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인자들은 산을 좋아한다. 산에 가서 배운다.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仁者樂山)이다.’라는 말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예수님도 산에서 살았고 많은 자들이 산에서 수도 생활도 한다. 섭리인들 중에 가까이 있던 일부는 “나는 시골이 싫다. 도시가 좋다.”고 했다. 월명동을 싫어하였다. 그 마음 정신 육신 체질대로 길든 대로 못 고치고 도시로 가더니 결국 후에 육도 영도 척박한 도시의 삶으로 떠났다. ◇ 하나님 성령 성자와 예수님도 선생을 늘 산을 좋아하게 하셨다. 어디 가든지 산을 배경으로 주셨다. 그리고 명산에서 기도하게 하고 거기를 “정원처럼 써라.” 하셨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 주인이시다. 하나님이 태초 때부터 좋은 곳들을 만드셨다. 거기를 항상 세상에 주지 않고, 하나님의 전을 두셨다. 제일 좋은 곳, 하나님의 땅에 구원역사, 이상 세계 역사를 이루는 데 거룩한 땅으로 삼으셨다. ◇ 성경을 보면 -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시사 모세를 만나 말씀을 주시고 능력을 보이셨다. (출 3: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 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 19:20)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 르시니 모세가 올라 가매” 이 산에서 준 말씀으로 4000년 역사를 펴셨다. - 예수님도 산에서 청중을 모아 놓고 말씀하게 하셨다. (마 5: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 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이 말씀으로 2000년 신약역사 펴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거기 나타나셨다. 하나님은 산에 강림하시사 시대 말씀을 주시면서 이끌어 오셨다. - 선생도 20년 동안 집중적으로 시대 사명을 예비할 때 거의 산에서 기도하면서 배웠다. 감람산, 대둔산 등 조용한 곳에서 천 년 역사의 말씀을 주셔서 역사를 이루며 왔다. 도시에서는 절대 조용한 시간을 만들 수가 없다. ◎ 산에서 역사하며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보아라. -에덴동산에 아담 하와가 살았다.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물리쳤다. -감람산에서 예수님이 설교하셨다.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쳤다.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율법을 받았다. -시온산에 예루살렘 성이 세워졌다. -아라랏산에 노아 방주가 머물렀다. -헤르몬산(변화산)에서 예수님이 엘리야와 모세의 영을 만났다. 이처럼 성경을 보면 왕들이나 큰 사람들은 산과 인연이 깊다. 하나님은 큰 사람을 큰 산으로 비유하기도 하고, 그 산에서 수도 생활 한 자는 그 산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예수님이 선생에게 “너는 대둔산 바위산같이 산의 웅장함도 아름다움도 신비함도 받아라. 그리고 그런 말씀을 배워라.” 하셔서 대둔산에서 수도 생활을 했다. 아담 하와는 에덴동산, 모세는 시내산, 엘리야는 갈멜산, 예수님은 감람산이다. 전설이 있으면 거기 거하여 이룬 자가 주인 되게 한다. ◇ 하나님은 “산은 거룩한 곳이다.” 하시며 모세에게도 “이곳에 나 하나님이 다닌다. 거룩한 곳이다. “네 발의 신을 벗어라.” 하셨다. (출 3: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 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어느 날 월명동 기도동산을 선생이 청소하니 하나님은 “나 여기 다닌다.” 하셨다. 고로 즉시 대리석을 깔아 하나님의 길을 만들었다. 오직 하나님만 다니게 하였다. 그래야 깨닫고 그같이 대한다. ‘성령폭포’ 수영장도 그래서 금지시켰다. 구분해야 깨닫는다. 거룩히 구분해서 써야 한다. 막 쓰는 자, 막 사용하는 자 ‘하나님 것’과 ‘자기 것’을 구분해서 알아야 한다. ◇ 롯은 도시를 좋아해 소돔 성 도시를 택했다. 그 도시가 타락되니 하나님은 소돔 고모라를 멸했다. 반대로 아브라함은 산을 좋아해서 가나안 땅의 산에서 하나님께 제물을 매일 드리며 가나안 땅을 차지했다. 하나님이 동에서 서까지 그와 그 후손에게 주셨다. 축복해 주셨다. (참고 창세기 13장 전체, 일부 봉독)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 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 하나님 종교는 산에서 출발했다. 에덴동산이다. 기독교는 산과 사연이 많다. 산에 기도원이 많고, 예수님도 산에서 설교를 많이 하셨다. 하나님의 새 역사에도 하나님은 선물로 아름다운 산을 주셨다. 월명동, 해가 뜨는 데서 지는 데까지 주셨다. 20여 가지 형상과 모양이 있다. ◇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이 선물을 주시면 그것으로 인해 계속 안 되는 것도 이뤄지게 하신다. 하나님의 비밀이다. 그로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 월명동 지역을 주시고 그로 인해 축복이 이뤄지게 하셨다. 월명동에 인(人)구름이 몰려오고, 뜻한 나무와 돌을 주시고, 그것으로 인해 다른 안 되는 것이 이뤄지게 하셨다. 천 년 역사를 이곳에서 시작하여 이루신다. 하나님 성령 성자와 예수님의 선물이 만사형통 열쇠가 되게 하셨다. 깊이 깨달으라고 집중해서 가르쳐 주었다. 섭리사와 자기를 모두 상징하였다. 귀하게 깨닫는 만큼 귀히 쓰게 된다. ◇ 월명동 성전은 하나님 상징, 성령 성자 예수님 선생 상징, 섭리사 모든 각 사람을 상징하는 ‘상징체’다. 자기 몸같이 알고 귀히 여기고 대하라. 귀히 여기는 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자기에게 계시하듯, 월명동이 자기 육을 상징하는 성전이니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 성령님이 저마다 말씀해 주신다. 기도하며 찬양하며 들어라. ◎ 하루는 성령이 “하나님과 내가 준 것 보통으로 보지 말아라. 자연성전도 그 어떤 것도 귀하게 보아라. 귀하게 여겨라.” 하고 설교하게 하셨다. 그 설교가 나가고서 성령께서 선생 생일날 선물로 주신 수석을 수백 번 다시 보았다. 보면 볼수록 여러 형상이 있어 신기하여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수석을 귀하게 여겨 예쁜 비단 천으로 잘 연출하려 연출 재료를 사러 가는 길이었다. 그때 석막리 땅 밭 주인을 만나서 그 밭을 사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 밭은 15년간 안 팔던 월명동 올라오는 데, 초소 앞의 밭이다. 올라오는 곳의 좌측, 소나무를 심은 밭이다. 그 밭을 사서 그곳에 소나무를 심어 하나님 전으로 올라오는 데를 아름답게 꾸몄다. 성령은 이런 일이 있기 전에 이 밭 주인을 만나면 어떤 말을 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 있었다. 성령의 그 말씀을 전해 주었더니 그 말을 듣고 감동되어 그토록 안 판다던 밭을 주인이 팔게 되었다. 그동안 교인들이 선생 심정 모르고 서로 산다고 하여 땅값만 올라가게 했다. 돕는다고 한 것이 손해만 가게 했다. 지금도 선생 돕는다고 손해만 가게 하는 자 많다. 교인들이 그러하다. 고로 매일 기도한다. 이들이 해를 주니, 하나의 적이 된다. 사탄이 그 몸을 쓰기에 그냥 둘 수가 없으니 친다. 무지 속에 상극하는 미련한 자들이다. ◇ 이와 같이 하나님이 주신 것, 성령이 주신 것, 성자가 주신 것, 예수님이 주신 것을 귀히 여기니 그로 인하여 다른 원하는 것을 연결하여 얻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이 많지만 몇 개만 이야기해 주겠다. - 예수님께 “예수님은 일찍 돌아가셔서 그림 남기신 것이 없어 아쉽습니다. 내 손을 통해 예수님의 그림을 남겨 주세요.” 하고 간구했다. 세계적인 최고의 그림을 그려 달라고 기도하고, 주신 붓을 잡고 순간 구상을 주시어 그렸다. 잘 아는 「운명」이란 그림이다. 이런 귀한 그림을 그려 주셨다고 귀하게 여기며 감사했더니 그로 인해 계속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 그림은 ‘달팽이같이 끝까지 해야 영도 육도 산다.’라는 예수님 말씀 대로다. 섭리사 끝까지 해야만 영도 육도 살아남는다. 이 그림은 세계 작품전 ‘아르헨티나 아트페어’에 출품하기도 했다. 그때 대표작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끝까지 가면 산다’는 ‘운명의 그림’이라고 예수님이 주신 것이다. 귀하고 귀하다. (영상 2 시작) - <낙타바위>를 얻고 이 형상석을 귀히 여기며 감사했다. 그러자 그로 인하여 옆의 산수경석도 성령이 주어 얻게 되었다. 이 일 있기 전 하루는 수석가들이 월명동에 와서 “이곳에 큰 돌은 많은데 산수경석이 하나 없네. 아쉽다.” 했다.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듣고 산수경석을 찾으러 가다 성령이 보여 주어 발견했다. 쇼크는 약이 되기도 했다. 자존심 상하게 한다고 화만 내지 말아라. 뜻이 있다. 한국의 수석가들이 와서 그들이 자존심 상하게 말해서 그로 찾게 된 산수경석이다. (영상 2 끝) - 성령 사연 솔도 귀하게 여기고 대하니 그로 계속 얻는다. 자기도 귀히 여겨야 그로 얻는 것이 많다. - 월명동의 각종 보물도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이 주어서 얻게 되었음을 귀히 여기며 감사했다. 그랬더니 이로 인해 계속 귀한 돌들을 얻게 되고 귀한 나무도 사다 심게 되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천 년 역사를 이루고 간다. ◇ 옛날 그때나 월명동에 옮겨 놓은 돌과 나무를 살 수 있었지 지금은 불가능하고 아예 시간이 없어 살 수도 없고, 만들 수도 없다. 신앙도 때 지나면 끝난다. 해 놓고 고통받는 것이 낫다. 안 해 놓고 얻지 못하고 순간의 육적 유익을 받는 것보다 고통을 받더라도 얻는 것이 만 배나 낫다. 다시 못하기 때문이다. 비바람 환난 때도 해야 한다. 사탄과 악인한테 굴복하지 말아라. ◇ 하나님이 명하신 영원한 일을 못 했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해 놓고 고통과 핍박, 억울함을 받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뤘으니 하나님이 문제들을 다 해결해 주신다. 악은 사탄과 멸함을 받는다. 영계에 가보면 귀신도 되고 악의 영이 되어 성경같이 짐승의 영이 되어 산다. 해 놓았으므로 계속 그로 인해 축복을 준다. 시대 표적이나 이 시대 하나님의 표적을 보려면 “월명동 보라.”고 하여라. ◎ 오늘 말씀의 핵심을 듣고 끝나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 하나님 앞에 ‘조건’을 세워 놓으면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어려움을 겪든 내가 돕고 함께한다. 혹시 너의 어려움이 죄 때문이면 나 하나님이 용서해 주고 함께한다.” 하셨다. 이때 회개할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깨끗이 할 때다. 하나님이 도우실 때가 기회다. 표적이다. 조건은 회개요, 대가는 용서다. ◇ 환난 핍박 억울함을 받아도 ‘조건’은 세워야 한다. 아예 아무 조건을 안 세우고 바라기만 하는 자는 이는 씨를 뿌리지 않고 곡식이 나기를 원하는 자와 같고 또 일하지 않고 가을에 추수만 막연히 기다리는 자와 같다. 올무도 안 놓고 토끼가 얽히기를 원하냐. 그물을 쳐 놓지도 않고 고기를 잡기 원하냐. 고로 <조건 세우기>다. <하나님의 뜻을 두고 좋은 체질로 길들이기>다. 모두 하나님을 사랑함에 길을 들여야 하기 쉽다. ◇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체질은 길이 드는 대로 편하다. 나쁜 체질과 버릇이 중독되면 그 삶이 편한 것이다. 영이 죽든 혼이야 어디 가든 육만 위해 살면 인생 사망으로 간다. 한 가지만 보고 좋다고 하면 실패한다. 미련한 자들이 그러하다. 낮에 자고 밤에 돌아다니는 삶으로 길들이고 체질 되면 올빼미같이 그런 생활이 편하다. 결국 올빼미 짐승과 같은 삶이 된다. 오늘 말씀을 듣고 좋은 것을 길들여라. 듣고 행하여 변화되어 차원을 높여라. 조건 세워 놓으면 환난 때도 하나님은 준다. 누워서 먹는 습관이 길들이면 꼭 누워 먹어야 편하다. 좋은 습관으로 길들이는 것은 여러 번, 수백 번 해야 행실도 길들고 마음도 길든다. 나쁜 것은 몇 번 하면 바로 길든다. 좋은 길을 들여라. - 시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게 길을 들여라. - 새벽기도 체질적으로 길들여라. -성격 길 잘 들여라. 길 잘못 들이면 사람들 싫어한다. - 말씀과 전도와 관리 체질이다. - 자기 중심 말고 하나님 성령 보낸 자를 중심하여라. 자기 중심으로 하면 열심히 하다가도 불평하며 악평하고 세상으로 가게 되니 사탄이 끌고 간다. 영안이 열리지 못해 끌어가도 모른다.” 하셨다. ◇ 선생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섭리사에 해 온 모든 것은 예수님을 따라 하는 체질로 길들이고 마음을 굳게 행했기에 엄청난 일을 해 왔다. 그래서 사명을 준비했을 때부터 65년 동안 해 온 것이다. 모두 표상을 따라 너희도 해야 한다. 증거자를 따라 가면 주관이 바뀐다. 오직 시대 표상자가 기준자다. 예수님도 표상자다. 성경에 말했다. 배우라. ◇ 월명동도 안 해 놓았으면 지금 너희가 어떻게 됐겠느냐. 광야의 삶이 되었을 것이다. 영적으로 집 없는 천사가 되었다. 월명동이 얼마나 귀한지 알수록 기 받고, 능력 받고, 모든 것을 이긴다. 다른 곳, 세계적인 장소에 그같이 1년에 수십 번씩 가려면 얼마나 돈이 많이 들고 우리가 모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에 얼마나 불편하겠느냐. 자기 것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그러나 미련한 자는 모두 버리고 간다. 월명동같이 각종으로 갖춘 성전도 없다. 기성교회에 이같이 큰 성전도 없다. 성전 안에 대 수영장, 축구장, 대광장, 등산로, 산책 코스, 암벽 타는 길도 있고 세계적인 하나님 박물관도 있다. 박물관 안에 산이 몇 개인지 아느냐. 6개다. 월명동은 돌 박물관, 나무 박물관, 잔디 박물관이다. 약수와 각종 희귀종이 있고 수석까지 있다. 하나님과 성자가 준 정원석이 얼마나 귀하냐. 선생 자화상바위, 큰바위얼굴바위, 성자바위, 성령바위, 낙타바위, 성령이 준 산수경석 등이다. ◇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이 “네가 쓰던 쟁기나 괭이나 장독이나 초가집을 박물관 물품으로 하지 말고 자연 박물관, 하나님이 창조한 것으로 하자. 그럼 웅장하고 아름답다.” 하셨다. 귀한 것 갖추어서 갖다 놓았다. 모두 깨닫고 박물관을 구경시키면서 산도, 나무도, 돌도 모두 설명해 주어라. 그러면서 ‘증거할 자’도 증거하여라. 지혜가 무엇이냐. 지혜롭게 하나님 성령 마음 깨닫고 행함이다. ◇ 월명동은 하나님이 6000년 만에 주신 곳이다. 평생 쓴다. 미련한 자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어도 귀히 안 본다. 그 터전 위에 보낸 자를 보내 주시고 환경 주고 말씀 줘도 모두 순간 감정으로 떠나간다. 지혜자는 끝까지 간다. 말씀은 하나님과 성령이 주시니 귀히 듣기 바란다. 말씀이 없으면 갈 길을 잃게 된다. 예수님의 평강을 빈다.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