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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학교2025.06.01 (일)

성경중심인물 01 베드로

선포일
2025.06.01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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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 ] 성경 중심인물 베 드 로 (어부에서 수제자가 된 베드로) [ 2/51 ] 1.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4 1) 베드로의 신앙························································································································4 2) 베드로의 성격························································································································5 3) 예수님과 만남························································································································6 4) 갚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9 2. 베드로의 일화··························································································································12 1) 풍랑을 만난 베드로············································································································12 2) 물에 빠진 베드로················································································································14 3) 사탄의 주관을 받은 베드로······························································································16 4)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17 5)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19 3. 베드로의 고백과 부인············································································································23 1) 베드로의 고백······················································································································23 2) 영생의 말씀이 있사오매 어디로 가오리이까································································25 3)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25 4. 예수님 사후, 베드로의 삶····································································································29 1) 내 양을 먹이라····················································································································29 2) 성령을 받은 베드로와 사도들··························································································30 3) 옥에 갇히면서 전도············································································································32 4) 베드로의 설교······················································································································33 5. 베드로가 주는 교훈················································································································36 1) 개인 감정으로 타인을 아무렇게나 대하면 안된다······················································36 2) 남을 무시하지 말고 존중해주라······················································································37 3) 하늘 앞에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38 4) 자신의 노선, 위치에서 메시야를 만난다······································································42 5)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다························································································43 6) 구원의 가치과 귀중성, 내세관을 깊이 깨달았다························································44 7) 반석 위에 역사가 진행되어야 망하지 않는다······························································45 8) 주님을 따르면서 어려움을 이겼다. ··············································································46 [ 3/51 ] ※ 부록············································································································································48 ■ 점검하기(분석과 점검)········································································································48 ■ 생각하기··································································································································49 ■ 적용하기(실천 및 적용)······································································································51 [ 4/51 ] 1.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 <눅 5:1-1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 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 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 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 였으되 얻은 것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 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 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 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 릎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 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세 배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과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1) 베드로의 신앙 베드로가 예수님을 좇는 것은 중년기 허리부터 출발하듯이 중간에 좇았습 니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베드로에 대해 세밀히 말하지 않더라도 성깔있게 잘 좇았습니다. 훌륭하게 좇은 것으로 평가되고 좀 더 잘했더라면 예수님이 십자가 지지 않고 할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하고 아쉬움을 열심히 좇았 던 그때시대 사람들에게 해 보는 것이 이 시대 사람들로 거울이 되는 것입 니다. 오늘 베드로같이 하늘을 열심히 따르고 좇는 기본적인 신앙만큼 우리 가 이 시대 역사를 깨닫고 오는 사람들에게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이것이 보낸 자의 입장이며 하늘의 음성을 대변하는 말씀입니다. 악착같이 열심히 [ 5/51 ] 쫓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늘을 좇을 때 악착같이 좇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깨장 난 다는 것입니다. 낙오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결국 하늘과 멀어지 고 하늘의 건너 마을에서 하늘을 곁눈질하며 욕설을 펴붓는 자가 되어서 하 나님의 심판대를 면치 못하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늘 을 열심히 따르고 좇는다는 것은 크나큰 이권이 없을지라도 지금은 유익이 없을지라도 대단한 엄청난 흑자를 남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날에 돈을 벌 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안 번다 할지라도 여러분들은 영원한 세계에 비해 볼 때 하나님을 믿고 쫓는다는 것이 엄청난 흑자를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 씀을 듣는 비디오 앞에 있는 모든 사람들, 이 말씀을 처음 듣는 사람도 마 찬가지로 전체가 그러한 것입니다. 2) 베드로의 성격 베드로 이야기를 좀 해 주겠습니다. 그는 소위 말하는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직업 역시 소위 말하는 천한 직업이었습니다. 큰 군함 을 가지고 다니면서 고기떼를 잡는 업(業)이 아니라 마치 태평양 바다에 가 랑잎이 뜬 것 같은 나무로 만든 조그만 배, 오래된 배를 가지고 다니면서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는 직업이 천한 직업이지 귀한 직업이 아니라고 봅니 다. 가정은 오막살이로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베드로 자신은 구레나룻이 잔뜩 나서 면도하기에 바쁘고, 나이는 젊은데 하도 고생을 하며 커서 상당히 나 이도 들어 보였습니다. 30대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40대 이상 50대 된 사람 같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처음에는 전도를 안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아주 낙천주의적인 사람이고 성격도 우왁스러웠습니다. 뱃사람치고 성격이 온순하고 호수같은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거칠은 바다 에서 살기 때문에 성격도 그렇게 되어 돌아가서 호수에서 노는 사람, 낚시 질하는 사람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도 잘 먹었을 것입니다. 뻔한 [ 6/51 ]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회도 잘 먹었을 것입니다. 가끔 싸움이 붙으면 시퍼 런 회칼을 휘두르기도 했을 것입니다. 재미있다. 인생 사는 보람이 있다. 이렇게 하며 살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뻔한 사실입니다. 여러분들도 생각을 한 번 해 보십시오. 오늘 말씀은 내가 생각하면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안무를 짜서 주 시는 것입니다. 너희들도 생각 좀 해보면서 들어라.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 뇨?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늘 인생을 한탄하고 고민하며 잘사 는 사람을 보면어떻게 하면 저 사람같이 잘 살 수 있을까? 나는 언제 휩 쓸려 죽을지 모르는데...했습니다. 형제간에 만나면 팔자 타령을 하고 인생 타령을 하고 흐느끼며 뱃노래를 불러가면서, 다른 특별한 직업이 없잖아? 우리가 무슨 다른 직업을 생각한다는 말이냐? 아, 나는 정말 다른 직업을 찾고 싶다. 하기야 나도 이 직업, 때려치우고 싶지만 다는 할만한 일이 뭐 있냐? 이렇게 직업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다른 일을 꿈꾸던 베드로! 그 시골 촌구 석에서 따분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갈릴리 바다밖에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배가 언제 엎어져 죽을지 모르니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베드로는 하나님 을 믿지 않는 입장에서 있지만 신을 찾고,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고 자기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느끼고는 오히려 두려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렇 게 사는 베드로의 마음은 거칠고 충동적이고 완고했습니다. 어느 때는 세상 이 저주스러워서바다가 왜 생기고 고기가 왜 생겨서 내가 이런 직업을 가 지게 되었나?이렇게 까지 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가끔 한 잔 술을 먹 고 뱃노래를 불러가며자, 이게 나의 직업에 대한 기쁨이 아닌가?하고 소 리를 꽥꽥 지르고 하다가도 고기만 잘 안 잡히면 이놈의 고기들이 다 여행 갔나? 등산을 갔나?하고 투덜댈 때도 많았습니다. [ 7/51 ] 3) 예수님과 만남 이런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고기가 안 잡혀서 밤새도록 그물을 집어던졌지만 새벽까지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너무 화딱지가 나서 또 한번 집어던져 봤지만 결국 못 잡았습니다.별 조화 속을 다 봤네. 이거, 때려치라는 것 아니야? 무슨 조화 속이길래 이렇게 안 잡히지?하고 욕을 해대끼면서 자기 한탄을 하면서 뭍으로 나왔습니다.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벅적거리고 있길래 왜 그런가 하고 가 보니까 예수라는 사람이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전도대회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생 강의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서 배 좀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찜둥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아무리 배가 뭣같이 생겼어도 그냥 빌려달라고 하니 좀 가소롭기도 하고 화가 나서 한바탕 해 퍼붓고 싶었지만, 그 때 당시에 이렇다 할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그랬는지 빌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예수님께 배를 빌려줬습니다. 그리 고 배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예수님의 설교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예수님이 말씀을 하는데 종교적인 말씀이면서도 인생살이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인생 아무리 장담해도 자기 인생 꿈을 못 이룹니다. 아무리 자기 센터의 전문가도 자기 센터의 성공을 못합니다. 자기의 이상적인 꿈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다 만물의 조화, 신의 조화이지! 안될 때도 있고 될 때도 있다고 하지만 뭐이 뜻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하며 인생을 살아야 합니 다.이러면서 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자기를 두고 하는 말같이 충격적으로 들렸습니다. 베드로는 종교에 대해 거리감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정말로 저 분이 인생을 강의하는구나!하고 깨달아졌습니다. 아무리 인생을 낙천주의 로 산다 하지만 세상 끝이 끝이 아니고 목적지가 아닙니다. 아무리 희망찬 젊음을 자랑하고 살았지만 벌써 인생은 햇 그늘이 가깝습니다. 가는 인생에 대한 허무감을 다시 생각하고 세상에 근본 뿌리를 내리기보다 미래에 대한 뿌리를 내리십시오. 허무주의에서 언제까지 인생을 살 것입니까?하고 예수 [ 8/51 ] 님을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리면서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요즘에 흔히 기독교 목사님들이 하는 것처럼 30분만 하 고 마는 설교가 아니라 끝이 없이 하고 싶은대로 한 자리에서 외쳐서, 상대 가 뒤집어져서 구워질 때까지, 녹아질 때까지, 마음을 접을 때까지, 완전히 푹 빠져서 뭐인가 생각이 달라질 때까지, 본인이 길을 잘못 들은 것을 깨닫 고 가던 길을 중단할 때까지 외쳤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일 정도 의 정신이 오게끔, 그래서 하나님이 믿어지게끔 만들 때까지 말씀이 연속됐 습니다. 동대문에 약장사가 나타나면 지나가던 사람이 그 말을 듣고 약을 사갈 때까지 소리를 지르고 한자리에 깔린 약이 바닥이 날 때까지 외치듯이 예수님은 계속 말씀했습니다.바다는 곧 세상입니다. 바다에 일어나는 조심 과 걱정과 아픔과 고뇌와 고통의 이 파도를 무엇으로 막을 수 있습니까? 베드로는 사실 밤새도록 잠을 못 잤기 때문에 피곤해서 집에 가고 싶었습 니다. 그리고 거기에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종교성이 없었지 만 말씀 가운데 얽히고 설켜서 정말로 예수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고 발걸 음을 멎게 했습니다. 그럭저럭하다가 해가 너울너울할 때까지 말씀을 들었 습니다. 배가 고픈지도 모르게 말씀을 듣고 시간이 가는지 모르게 젊음이 늙는지 모르게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예수님 저 분한테 내 인생에 대해서 한 번 물어봐야겠다.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그리고 내가 엊저녁 에 일평생 가운데 있을 수 없는 일을 당했는데 무슨 뜻이 있는지 한 번 물 어봐야겠다. 저분쯤 되면 나보다 나으니까 혹시 알고 대답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하고 생각했습니다. 말씀이 끝나고 개인 면담 시간을 줬습니다. 베드로가 성급해서 먼저 개인 면담에 뛰어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 배입니다. 그러십니까? 배를 빌려줘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파도와 싸우느라고 인생 사는데 고달픔이 많겠군요. 너무너무 말씀에 은혜를 받고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실상은 어제 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어 [ 9/51 ] 서 왔습니다. 어제 밤에 내가 고기를 잡으려고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이런 날은 과거에 한번도 없었습니다. 무슨 조화 일까요? 그래서 그냥 집에 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배를 빌려달라고 해서 배 를 빌려주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조금만 듣고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연속 들어봐야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 같아서 계속 듣다보니까 이렇 게 해가 넘어갈 때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내가 해야 될 직업은 무엇입니까? 이것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이러면서 여러 가지를 물어봤습니다. 물론 어제 왜 고기가 안 잡혔냐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그것만 물어봤을 리가 있겠습니까? 자기의 앞날에 대한 것도 물어봤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면담시간을 주면 무엇을 먼저 물 어보겠습니까? 아마 앞날의 진로에 대해서 물어볼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잘 살 수 있겠습니까? 내가 무엇을 하면 좋겠습 니까? 무슨 직업을 가져야 되겠습니까? 이 직업에 만족하면서 있다가 결혼 하면 되겠습니까? 다른 할 일이 없겠습니까? 이렇게 꼭 묻듯이, 베드로도 예수님께 진로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렇게 물 을 때 주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셨을까요? 그 시대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을 배우라고 했겠지요. 오늘날로 말하면 30개론을 배우라.했을 것입니다. 시대를 모르고 주님을 모르면 진로를 자꾸 묻습니다. 알면 따라가는 것이 바로 직업입니다! 일반적인 직업은 부전공으로 돌려서 입에 풀칠만 하며 가 면 되니까. 주님은 거기서 베드로를 쳐다보고 의미가 있고 뜻이 있다고 생 각했습니다. 주님도 꿰뚫어보는 것이 있기 때문에 베드로가 묻는 것을 보고 즉시 알아봤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네가 얽혔구나! 밤새도록 고기를 못 잡도록 하나님이 조화를 부린 상대가 되었으니 얽혔구나! 그래서 얽혔지. 알 았어. 네가 낚는 고기는 너에게 안 얽혔는데너라는 고기는 내 말씀의 그 물에 얽혔구나.하고 예수님께서는 서서히 말씀으로 요리를 했습니다. 그래 서 대화의 면담은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 10/51 ] 4) 갚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 베드로가 졸지 않고 들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 설교가 다 끝났을 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가서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무식한 사람이 말씀을 듣고 많은 감명을 받고 감동을 받았으니 저 유식한 사람들은 얼마나 감명을 받고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그 설 교 가운데 어쩌면 그렇게 나를 두고 하는 말씀이 많습니까? 다 나 들어보라 는 이야기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내가 어젯밤 에 밤새도록 그물을 수백 번 던졌는데 -나는 고기 잡는 도사라고 할 정도로 고기 잡는 것은 전문입니다-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래서 구실렁거리 면서 그물을 씻고 있었는데 선생께서 오셔서 배를 빌려 달라고 했던 것입니 다. 구구 나름대로 구실렁거리던 판국이었는데 이상하니 선생에게 마음이 끌리면서 빌려주고 싶은 생각이 나서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보니 그것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내가 피곤해서 집으로 돌아갔어야 하는데 안 가고 말씀을 들었더니 피곤 이 다 달아나서 낮잠을 푹 해 넘어갈 때까지 잔 것보다 편합니다. 이것이 우연이 아닌 것을 나는 알았습니다. 참,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은 이 바닷가 고기가 없는 바닷가 아닌데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한 마리 도 못 잡았으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이 바다에 고기가 없는 것입니 까?”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한계가 거기까지이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고기를 잡고 갔다면 내가 배를 빌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 하늘이 틀어서 그렇게 된 것을 나는 알고 있습 니다. 고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아까 씻던 그 그물을 가져다가 이제 다시 한 번 던져 보십시오. 깊은 데에 가서!” 거기서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듣 고 ‘야, 신기한 꼴을 계속 보겠네!’ 하면서 배를 저어 깊은 데로 가서 그물 을 집어던졌습니다. 그런데 고기가 하도 많이 잡혀서 그물이 찢어지게 되었 습니다. ‘이게 생시냐?’하고 꼬집어 볼 지경이었다는 것입니다. ‘야, 이거 정 말 생시인데....! 꿈이 아닌데!’하고 베드로가 부리나케 와서 예수님 앞에 엎 드렸습니다. [ 11/51 ] “선생이시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기를 잡았습니다. 정말로 내가 어젯밤 에 고기를 못 잡아서 그렇게 투덜대고, 그렇게 한숨을 짓고, 씨부렁거리면서 혼자 저주스럽게 욕을 하고 그랬던 것을 회개합니다! 밤새도록 욕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배가 다 고프군요. 내가 욕을 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습니다. 무 식한 욕이 다 나옵니다!” 뜻인 줄도 모르고 저주하면서 욕을 하고 씨부렁거 렸던 것을 회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눅 5:8) 과거에 투덜대고 잘못한 것을 전부 다 회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었는데 저주스 럽게 생각했습니다. 어젯밤에 고기를 단 몇 마리라도 잡았다면 나는 들어갔 을 것입니다. 예수 선생께서 오기 전에 벌써 갔을 것입니다. 갔다가 내가 다 시 나올 사람이 아닙니다. 야..., 그런데 나 같은 사람에게도 뜻이 있단 말입 니까?”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그렇게 자기의 죄를 자복하면서 회개하는 것을 보고 참으로 감격해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베드로처럼 과거에 무엇이 안되었을 때 구시렁거렸던 것을 모두 다 이제는 하늘 앞에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베드로의 위치를 따라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베드로 위치를 따를 수 없고, 베드로의 건너편에서 베드로에게 심판을 받아야 됩니다! 다 뜻이 있었 다는 것입니다! 고기가 잡혔다면 오히려 큰일날 뻔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격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잘못했습니다! 죄인이로소이다!”하고 이렇게 빨리 뒤집어졌던 베드로의 신앙의 뒤를 우리는 따라야 되겠습니다. 주님께 서는 그 때 베드로에게 “너는 앞으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엄명했 습니다. “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낚아라.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 면 잘 낚아지리라! 사람이 따라야 된다. 고기가 따라 봤자 뱃놈밖에 안되는 것이다. 사람이 따라야 임금도 되고, 사람이 따라야 경제도 펴 나가고, 사람 이 따라야 모든 것이 잘 되는 법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그 한마디가 몇천 명의 철인의 말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머리를 숙여 주께 경배했습니다. “옳소이다! 맞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인 줄을 알 고 따르겠습니다.” [ 12/51 ] 2. 베드로의 일화 <마 8 : 23-27>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좇았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 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1) 풍랑을 만난 베드로 이뿐만 아니라 <마 8:23~27>의 말씀도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를 횡단했습니다. 제자들과 같이 배를 타고 중간쯤 갔습니다. 예 수님은 주무시고 계신데 바람이 막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이 야단 법석 났습니다. 풍랑이 심하여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포기 상태로 들 어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도 안드레도 별 볼일이 없었습니다. 뱃사람인 베 드로도 “아~ 야단 났다. 내가 어떻게 하다가 이 배를 탔던고? 예수님을 따 라다니다 보니까 타게 된 것인데....?? 야, 뛰어 내려야 되나? 뛰어 내려도 죽게 생겼다. 이거 어떻게 하냐?” 하고 야단이 났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아니 우리가 왜 따라다니는 것이냐? 바람이 왜 일어난 것인가?”하고 어떻 게 할 줄을 몰라 했습니다. “왜 풍랑이 일어났지?” “별 것 있어? 바람이 부 니까 일어났지!” 그것은 자연과학적인 해석이지요. 파도가 높이 8m에서 15m까지 막 치닫고 하니까 돛단배가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그러니까 과거 가 막 후회스럽게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예수 선생을 따라다 니다 이렇게 되었구나. 아, 괴롭다” 하면서 과거를 후회하면서 낙담했습니 다. 좋아라 하면서 따라 다닐 때는 언제고. “예수가 진짜 하늘의 사람이란 말이여? 도대체 모르겠다. 그런데 예수는 어디 있지?” “어, 없네! 벌써 날랐 구나 날랐어. 없어졌다! 벌써 뛰어내렸구먼! 야, 진짜 기 차다 기차. 야, 가 [ 13/51 ] 만 있어봐라. 예수가 저기 주무시고 있다. 가 보자!” 허둥지둥 가보니까 예 수님이 “쿠룩쿠룩”하면서 자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흔들어 깨웠습니다. “예수 선생이여!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야단났습니다! 이것 좀 보십시오.” 예수님이 딱 쳐다보고 엘리야처럼 알았습니다. 저희들이 깨닫기까지 그냥 놔두었습니다. “바람이 왜 불었을까?” “자연법칙 때문에 불지, 불긴 왜 불 어??” “배가 왜 움직였을까?” “바람이 부니까 파도가 일어나서 움직인 것이 지.” 이게 자연법칙의 설명입니다. 이것 가지고 그때 상황이 설명되지 않습 니다! 근본의 영적인 설명을 들어봐야 왜 풍랑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습 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서 딱 하시는 말이 “바람아! 잔잔하라! 물결아, 호수가 될 지어다! 잔잔하라! 고요하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순식간에 잔잔해졌습니다. 그때에 이제 답이 나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답이. (마 8:27)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느뇨?” 이 속에 답이 다 들어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인지를 몰랐기 때문에 파도가 일어났다는 거 여! 어떠한 사람인지를 모를 때마다 파도가 계속 일어납니다! 멸망보다 나으 니까... 계속 일어나서 완전히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선생님도 떳떳하게 간증하지만,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모르고 하나님이 어 떠한 분인지를 모르고, 하늘이 시대에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를 몰랐을 때는 파도가 계속 일어났습니다. 시대에 선 자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메시아가 누 구인지를 모르고, 하늘의 사람을 몰랐을 때마다 바람이 일어났습니다. 그러 나 일단 알았을 때부터는 오히려 바람을 다스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 름으로! 그가 말씀으로 바람을 다스리고, 물결을 다스리고 다니기에 나도 역시 말 씀을 가지고 다스리며 주관하고 세상의 풍랑을 다스립니다. 풍랑을 못 다스 리면 헛일입니다! 이 역사를 펴 나갈 때 문제를 못 해결하면 되겠습니까? 아무리 가르치고 해서 농사를 지어도 풍랑을 못 다스리면 -문제를 못 해결 하면- 포도송이와 무화과 열매를 바벨론이 다 따 가 버리고 앗수르가 따 가 버리고, 애굽이 따 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것이 상당 [ 14/51 ] 히 큽니다. 농사를 짓고 난 다음에 거두어들일 줄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 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꾸짖었습니다. “이 믿음이 없는 자들아!” 하고 책망했 습니다. 그 믿음은 어디에다 표준을 둔 믿음이었을까? 예수님 자신에다 표 준을 두었습니다. “나를 믿는 믿음이 없는 자들아!” 보낸 자 앞에 대상이 되 는 사람들의 상태가 잘못되었을 때마다 풍랑이 일어나고 어려움이 일어났습 니다. 예수님 제자들이 그러했고 사르밧 과부가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그래 서 이것을 육적으로 해석하면 해석이 안 나옵니다. 다스린다! 이것은 상당히 큰 것입니다. 나는 다스리는 은총이 크다는 것을 늘 느껴 왔습니다. 마음 상태가 잘못되어 있을 때마다 이러한 풍랑이 일어난다는 천륜의 법 칙을 알고 우리는 마음 상태가 잘못되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마음 상태 와 행동 상태가 잘못되면, 우주의 근원의 법칙이 잘 안 맞습니다! 자기가 하 나님 앞에 정통하게 조건을 세워 나가면 그 복을 못 다 누리고 죽는다는 것 입니다. 이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괴로웠던 심정이 풀 리는 것은 참으로 통쾌한 일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환란과 어려움이 있으면 먼저 파악해야 됩니다. 2) 물에 빠진 베드로 연이어서 마태복음 14장 22절에 있는 말씀도 비슷한 말씀입니다. 예수님 께서 배를 타고 제자들과 같이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는 중에 해는 져서 밤 이 왔습니다. 제자들을 바다에 놓고 예수님은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셨습 니다. 낮에는 외치고 밤에는 기도하신 예수님! 조용한 시간이란 잠을 안자고 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도하다가 새벽이 되어서 밤에 생각하고 구상한 것을 이루러 내려왔습니다. 바다 위를 걸어갔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 가 졸았던지 잤던지 간에 후닥닥 일어나면서거 뉘시오?하고 예수님을 보 고는 유령이다, 유령! 모두 일어나라. 유령이 나타났다.하고 옆 사람들까 지 같이 놀라게 해버렸습니다.¡ [ 15/51 ] 너, 똑똑히 봤냐? 저기 철벅거리고 오잖아! 유령이야, 유령! 어떻게 하냐? 빨리 노를 젓자. 그 때에 예수님이 듣고서지랄들 하네!(웃음) 저것들, 자빠져 잤구먼. 나 다, 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어? 예수님이네, 예수님! 주님이네, 주님!하고 베드로가 아까까지는 귀신 이라고 하더니만 예수님인 것을 알고서 너무 기뻐했습니다. 베드로가 귀신을 상당히 무서워했던가 봅니다. 그리고 갈릴리 바다에 많 은 사람이 빠져죽었기 때문에 귀신 이야기가 많이 있던가 봅니다. 그러니까 유령이다! 했지요. 유령이란 한 맺힌 영이 아니겠습니까? 베드로가 유령 이다!하고 막 야단법석 쳤을 때에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혼자 살려고 바다 로 빠져 도망가려고 했던 판국인데. 그 때에 예수님이 나니라.했을 때 반 가워서 어쩔 줄을 모르며 아, 주님! 나도 그렇게 걸어가게, 신비한 일 좀 하게 해 주세요. 했습니다. 한 번 걸어봐! 베드로가 엉겁결에 후닥닥거리고 바다에 뛰어들어서 걷게 되었습니다. 그 런데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니까 예수님을 쳐다보다가 바람을 쳐다봤습니 다. 바람과 파도가 산더미같이 밀려오는 것을 보고서 아이코! 저놈한테 내 가 덮여서 죽겠구나!하는 생각을 함으로 인해서 다시 빠지게 되었습니다. 빠져서 허공치면서 주여, 내가 빠졌나이다.하고 소리를 꽥꽥 지르고 있을 때 주님께서 붙들어주면서 다른 마음을 먹었구나!하고 다른 곳을 쳐다봐 서 빠졌다는 것을 아시고 왜 그걸 쳐다봤냐?하시며 바람도 꾸짖고 풍랑도 꾸짖고 바다도 꾸짖으셨습니다. 물 많이 먹었냐?물 먹은 것은 좋지만 안 죽은 것이 다행입니다. 본문에서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같이 산에 갔다 왔으면 괜 찮았을텐데 그렇게까지 못 하였음으로 인해서 착오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예수님께서 착각 은 자유니라, 망상은 해수욕장, 오산은 비행장이다. 이야기하셨지만 착각을 하는 사람을 보면, 항상 착각을 일으킬 수 있는 여건 속에 있습니다. 꼭 그 [ 16/51 ] 렇습니다. 베드로가 바다에 빠진 이유는 의식을 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의식했는 가? 바람을 의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서움을 탔습니다. 여러분들, 시험 이 닥쳐올 때 무서워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안 믿느 냐? 처음 말씀 들을 때 믿은 것을 영원히 간직하도록 하라. 처음 사랑을 잊 어버리면 안돼. 너희는 조금도 착오 없이 처음 신앙, 처음 말씀 들었을 때의 마음을 영원히 굳히고 못을 박아버려. 못대가리는 왜 남겨놨어? 또 다시 빼 려고 남겨놨느냐? 완전히 때려박아라! 지구촌이 변해도, 천하가 변해도 없어 지지 않을 영원하고 완전한 진리 말씀이니라.합니다. 그렇겠습니까? 안 그 렇겠습니까? 못대가리의 조금도 남겨놓지 말고 마음 밭 깊숙이 때려 박아 놓으십시오. 그래야 바람 불 때 함석판 날아가듯 날아가지 않는 법입니다. 3) 사탄의 주관을 받은 베드로 예수님께서는 상대에 자기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보기 전에는 자기에 대한 여러 가지 행, 불행에 대한 얘기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가 베드로 가 예수님을 알아보자 베드로에게 이르시기를 “나는 예루살렘으로 가야 되 겠다 나를 반대하는 장로들이 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리라.”하시니 베드 로는 “메시야로써 어찌 반대파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하느냐?” 막고 나섭니 다. 이에 예수님은 “그러니 주를 아는 자는 가슴을 칼로 베는 듯한 쓰라림 이 있으리라 한 성서도 읽어보지 못했느냐?”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역 시 마리아에게도 눅2:34-35에서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 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이 패하고 흥함 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 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 라라고 이른 것이 나옵니다. 그런데 주님이 메시야임을 알게 된 베드로는 걱정거리가 생겨서 사탄이 그에게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 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됨을 막고 다녔으나 주님은 이미 베드로가 사탄 [ 17/51 ] 의 주관을 받아서 그러는 것인 줄을 아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항상 내 마음을 거스리게 해서 나를 넘어지게 하려고 하는구나”하고 꾸짖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메시야인 것은 알았지만 메시야의 노정을 몰랐으니 그 틈을 타고 사탄이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 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라오도록 하라.”고 주님은 말씀 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에서의 십자가의 의미는 본래의 십자가의 뜻은 아니지만 “만인이 구원받는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만민의 구원을 위한 일 만을 위해서 살도록 하라는 뜻이니 그 이외의 것은 사탄을 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이에 합당하게 만민을 위한 일만을 하도록 해 야겠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메시야를 부인 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메시야를 부인하면 신앙인으로서 살았다 하나 죽은 거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각자 자기 생각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 생각이 자기를 죽이고 자아주관에 빠지게 하여 번뇌로 화하게 하는데 이 와 같은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자기의 인간적인 생각을 부인해 버 리라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입니다. 어찌 하늘 뜻 앞에 자기 주장 과 생각을 개입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곧 자기 손해이니 항상 하늘 뜻 에 따르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4)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마 19:27~30>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 고 주를 좇았사온즉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열심히 했으면 얻는 것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 았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열심히 했으면 그 댓가가 있어야 되는데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그 댓 가가 무엇입니까?하고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세상 [ 18/51 ] 이 회복되어 새롭게 되었을 때 너를 열 두 보좌에 앉게 해 주고 이스라엘 민족을 총 다스리게 해 주겠다.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뜻대로 안됐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얼마 안돼서 만인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억울한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베드로가 말하기를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 를 좇았습니다. 그런즉 우리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무엇을 얻습니까?했습 니다. 이 말을 베드로가 하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예 수님께 묻기를 내가 성경에 나오는 선한 일을 다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했을 때 예수님께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너는 나를 좇으라.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이 근심스런 얼굴로 그냥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돈이 많아서 그랬 다고 하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똑똑히 몰랐습니다. 메시야의 가치성과 구원의 가치성과 내세에 대한 가치성을 모르고 그리스도 를 좇아다닐 때의 그 기쁨과 영광과 환희를 근본적으로 못 깨달았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는 것을 어찌 자기가 가진 부귀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구원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심령의 기쁨은 은으로도 금으로 도 부귀영화로도 못사는 법인데! 예수님을 똑똑히 모르고 하나의 종교 지도 자로만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청년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청년이 예수님을 못 좇은 것을 보고 베드로가 예수님께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좇았나이다.했습니다. 베드로는 정말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러니 그런 것을 물을 만 하지요. 베드로는 가진 것 도 없었는데 뭐.하겠지만 인간사는 다 같습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몸을 가 지고 생계를 유지하는 한 청년이었습니다. 바다에 그물을 던지지 않으면 생 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연로한 부모들이 기다리고 있는 오막살이 집에 누가 끼니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가 모든 것을 과 감하게 버린 것은 대담한 버림이었습니다. 그물을 버리면, 바다를 버리면 당 장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고, 소위 말하는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는데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학생들이 많은데 버릴 것이 없다.하 [ 19/51 ] 지만 마음을 접고 따른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고 작은 일이 아닙 니다.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다녔는데 그러면 무엇을 얻 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이 새롭게 되어서 인자가 자 기 영광으로 보좌에 앉을 때에 열 두 보좌에 앉게 된다고 했습니다. 인자가 처음에는 헌 누더기를 입고 극적인 고생을 하면서 고난도 받고 핍박도 받으 면서 온다고 했습니다. (마 17:12) 예수님도 그렇게 왔고 어느 시대의 인자 든지 그렇게 온다는 것입니다. 영광으로 온다는 것, 구름을 타고 온다는 것, 주장은 맞습니다. 해석이 틀려서 그렇지! 주님은 결국 베드로에게 죽어서 하늘나라의 12지파를 다스리는 일을 주셨 습니다. 이 세상의 일도 주려고 했는데 이 세상치는 못 주고 하늘나라치만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놈들, 너희들이 세상에서 우리를 반대하고 저주스럽게 생각하 고 이단이라고 했지? 늙은이, 제사장이지? 이리 와봐. 면도칼 없으면 턱주가 리의 수염 다 뽑아버려. 이것이 도대체 뭐여? 제사장이.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리 와. 따귀나 한 대 맞아.하며 다스리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기다림의 고통과 고역을 겪고 있습니다. 그 기다리는 고통은 눈이 빠지는 고통이 아니겠습니까? 유대 민족은 예수님을 죽인 후 2000년 동안 기다림의 고통 속에 들어있고, 무지한 고통 속에 들어있고, 형벌기간에 들어가 있습니다. 5)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 왜 예수님께서 식사를 하시다 말고 이런 일을 감행하셨을까요? 또 왜 이런 일을 했어야만 하셨을까요? 그때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가 “주여 그러지 마 옵소서” 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13장5절 이하의 말씀을 상고해 보면서 갑시다.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를 시작하니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 [ 20/51 ] 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일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이게 웬일입니까? 베드로는 전혀 그 이유를 모르는 상태에 있었지만 다음 에 알게 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빨리 네 발을 내놔라!” 하여 발을 씻겨주니 베드로는 오히려 미안하고 거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도 베드로가 말하기를 “이왕에 할 바에야 손도 씻어주고 머리도 감아주시옵 소서” 이왕이면 온 몸도 깨끗이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선생이 자기를 씻 어주니 얼마나 좋으냐 하고서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고 하였 던 것인데 이런 생각은 아마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 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팔, 다리, 목, 머리, 손은 다 깨끗한데 오직 발만 씻 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몸은 다 씻어 깨끗하다고 하더라도 발을 씻지 않 았다면 냄새가 풍깁니다. 일반교회에서 말하기를 이스라엘 나라는 열대지역 에 해당하는 땅이기 때문에 발을 꼭 씻어야하는데 그래서 예수님께서 발을 씻어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적 애굽에 있을 때 그런 설교를 많이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애굽이고 아는 것이 가나안 복지가 아니 겠습니까? 그렇다면 한대지방은 발을 안 씻어도 됩니까? 그것이 아니고 이 말씀은 누구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다 씻어야 하는 교훈이며 사건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메세지를 예수님의 원산지 말씀을 한 번 들어봅시다! 어떤 말이 더 맞는가? 다른 곳은 다 깨끗한데 발을 씻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곳은 왜 깨끗한가? 몸뚱이는 다 비슷비슷하고, 또 똑같이 목욕탕에서 발도 씻었고 가슴도 씻었고 장딴지도 씻었는데 왜 발만 씻어야 하고 다른 곳은 깨끗하다고 하실까? 발이 더 빨리 때가 묻어서 그런가? 아마 그런 원 인도 있기는 하겠지만 근본은 아닙니다. 지금 그 근본을 우리 다같이 깨달 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밥을 먹다 말고 이 법석을 띤 원인은 분명코 뭔가를 깨우쳐 주려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엉뚱하게 아무 이유 없이 그런 일을 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하늘은 항상 은밀하게 뭔가를 하시기 때문에 눈치 빠르게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 이유를 빨리 깨닫지를 못했습니 [ 21/51 ] 다. 제자들이 볼 때는 밥먹다 말고 갑자기 발을 씻기시니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서로 대화하고 밥을 먹는 방에서 (우리나라 방과 는 달리 신을 신고 들어가는 방이기는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이 얼 마나 어색한 일입니까?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께 들어붙어서 발, 머리, 손 을 다 씻어달라고 했습니다. 야(베드로를 가리킴)는 어디를 가든지 웃기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베드로가 언제적 사람이길래 야!라 그럴까하고 이상하 게 생각하는데 선생님도 그때 태어났으면 베드로만큼 나이를 먹었을 것이기 때문에 똑같은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속을 모르고 이야기하니 까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속을 모르니까 다 씻어달라고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다 씻어줄려고 한 것이 아니라 본을 보이려 고 사탄의 계교와 제자 중에 마음변한 가롯유다와 긴급한 사건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깨우쳐 주려는 이유에서 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사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고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다고는 하나 모두 다가 깨끗한 것은 아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모두 다 깨끗한 것은 아 니다! 이것이 바로 답이었습니다. 답이 나올 수 있게끔 하는 말씀이셨습니 다. 왜 모두 다 깨끗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는고 하니 제자들 중에 예수님 을 팔 가롯 유다가 끼어 있었기 때문에 그럴 지적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선 생님은 여러분에게 성경의 전문가가 되라고 강조하는데 성경을 풀어나갈 때 이런 식으로 나가면 자연히 전문가, 박사가 되는 코스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을 보십시오! 사탄이 누구한데 들어갔다고 되어 있습니까? 벌써 가룟 유 다에게 사탄이 들어가서 옆에 앉아있는데 예수님께서 그 광경을 보시고 심 정이 터져서 어떻게 밥을 먹고 앉아있겠습니까? 제자들에게 그 상황을 빨리 깨우쳐 주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탄들이 하나씩 하나씩 제자들의 마 음속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제자들 전부를 사탄으로 만드는 불상사가 일어납 니다. 여러분! 사탄, 마귀들은 사람들 마음속에 들어가서 또 들어가서 자기 네 편으로 만듭니다. 그런 광경을 선생님이 봤다 하더라도 예수님같이 행동 [ 22/51 ] 할 것입니다. 그런 일이야 없다고 하지만 밥을 먹는데 누가 사탄 짓을 하려 왔다고 합시다. 그러면 벌써 밥상머리를 돌리면서 애들이 깨달으라고 딴 짓 을 합니다. 그와 똑같은 일인 것이었습니다. [ 23/51 ] 3. 베드로의 고백과 부인 <마 16:13-20> -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 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 신 내 아버지시니라 - 1) 베드로의 고백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게 된 과정은 여러분들 각자가 집 에 가서 읽어보기 바랍니다. 이때쯤 되면 섭리를 한참 폈을 때입니다. 그렇 다고 해서 10년, 20년 편 것이 아니고 2년 정도 폈을 때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지가 한 2년쯤 되고 예수님이 복음을 편지가 한 2년 정 도 됐을 때입니다. 청중강의가 끝나고 제자들과 함께 노상(路上)을 걷게 되었습니다. 요즘 같 으면 차를 타고 씽씽 달렸겠지만 그 때는 차가 없었습니다. 성경에 차에 대 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일단 시대적으로 볼 때 차가 없다는 것입니 다. 예수님께서 노상을 걸으시면서 제자들과 같이 대회를 나누며 가다가  이들이 이렇게 열심히 나를 좆아 다니는데 내가 누구인지 알고 따라다니는 것인가?하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하며 좆아다니느냐? 너희들 들어본 일 있느냐? 그럼요. 들어봤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설교만 끝나면 ‘야, 정말 이스라 엘에 종교의 선생 중의 선생이 나타났다.’하기도 하고 혹자는 말하기를 ‘이 스라엘 나라에 선지자가 나타났다.’ 또 혹자는 말하기를 ‘정말로 시대에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 나타났다.’하고 여러 가지로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 다. 그래?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로 보고 따라다니느냐? 측근에서 따라다니고 같이 밥을 먹고 사는 그들에게 이렇게 물었을 때 그 [ 24/51 ] 들이 주춤거리다가 하는 말이, 나도 역시 훌륭한 선생이라고 봅니다. 엘리야 같은 사람이라고 봅니다. 훌륭한 선지자라고 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찝찝한 마음으로 그들을 민망스럽게 쳐다봤습니다. 그 리고는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베드로 너는 나를 누구라고 보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긴장하면서 어쩔 줄 을 몰라 했습니다. 베드로는 당시에 사도 중에 최고의 사도요, 예수님의 우 측에 있으면서 우정승을 차지할 정도의 사람인데 예수님이 너는 나를 누구 로 보느냐?하셨을 때 아마 생각을 깊이 했던 모양입니다. 한참이나 생각하 다가 결국 입에서 나온 말이 있었으니,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온 인류가 구약부터 기다렸던 메시야가 아닙니까?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다른 사람 들은 모두 나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지만 너는 정말 똑똑히 근본을 알고 있구나! 하시고 거기에서 발걸음을 멈추시고 베드로에게 귓속말로 바요나 시몬아, 너는 참으로 복이 있도다. 네 이름을 「베드로」즉, 「반석」이라는 뜻 의 이름을 줄 테니까 네 이름이 영영히 빛나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닌게 아니라 그 후로 이름이 빛나고야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외쳤더니 모든 사람 앞에 빛나게 될 수밖에 없고 모든 자들이 그를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잊혀질 수가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께 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지금부터 음부의 권세가 너를 이기지 못할 것 이다. 메시야를 알았는데 어찌 사탄들이 너를 이길 수 있겠느냐? 내가 너에 게 진실로 말하노니, 기도만 하라. 단 내 이름을 꼭 대야 되나니 이것이 천 주의 비밀이다. 내 이름을 대고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러면 주겠노라. 그리 고 또 하나 내가 너에게 진실로 말하노니, 내가 그리스도인 것을 말하면 절 대로 안된다. 너만이 아는 것으로 족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맞다. 내가 바로 그리스도이니라. 내가 왔노라! 이것은 네 스스로 안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너를 깨우치사 알게 한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 [ 25/51 ] 라는 것을 네가 알았겠냐? 하나님이 네게 가르쳐주셔서 알았지. 이렇게 풀 어주고는 가던 길을 다시 가자. 모든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이 심히 많다. 이 진리가 역사에 영원히 기념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하고 가던 길 을 갔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지방은 2천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리스도인 것을 시인하게 되고,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확인해주신 일이 바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 노상에서 있었던 역사의 이야기입니다. 2) 영생의 말씀이 있사오매 어디로 가오리이까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있으매 우리가 갈 데가 어디 있습니까?”하며 주 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 엄청나고 좋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데도 그곳으 로 안 가고 주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사람들은 “야! 뱃놈 촌놈들아! 이왕 믿 을 바에야 예루살렘 성전으로 다녀야지. 소를 잡아 올릴 수가 없으면 너희 들에겐 물고기가 있으니 물고기로 제물 드리면 될 것 아녀! 저런 바보같은 녀석들, 나사렛 촌놈 예수를 따라다니네. 거처지도 없이 왔다 갔다 하네”하 면서 핀잔을 주었지만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영생의 말씀이 있으매 우리가 다른 데 갈 데가 없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라 다녔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말씀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 아무도 따라갈 수 없는 영원한 말씀이 있었 습니다. 누가 따라갈 수 있었겠습니까? 제사장들이 거기에 한 몫을 끼겠습 니까? 또 날고 긴다고 했지만 입만 가지고 조잘대는 앵무새 같은 그 시대 랍비들이 따라갔겠습니까? 그들은 주님 옆에서 신들메도 감당할 수 없었습 니다. 3)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 또 베드로는 예수님이 말씀한 대로 “너는 어쩌고 저쩌고 해도 이런 판국 [ 26/51 ] 이 일어나기 때문에,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했을 때 베드로가 “아, 내가 주와 같이 죽을지언정 그런 일이 없습니다. 안 합니다. 예수님이 혹시 죽을지라도 나도 같이 죽겠습니다” 그러나 판국이 그렇게 돌 아가는 판국인데... 그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으면 죽게 되어 지 탱을 못하게 되었는데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것을 내다봤습니다. 그러 면 베드로가 부인하는 것이 원 뜻이었던가, 부인치 말아야 될 것인가? 여러 분들이 베드로의 입장이었다면 참 어려웠을 것입니다. 왜? 시인하면 갖다가 십자가에 때려 박아 죽일 것이고 시인하면 몰매맞아 작살 났을 것입니다. 부인하면 안 죽을 것이고. 그러면 작살나면 섭리를 못하게 되어 어떻게 할 것인가? 베드로가 섭리를 하기 위해서 부인한 것입니까? 아니면 역시 인연 을 끊어버리려고 부인한 것이겠습니까? 이 베드로 같은 믿음의 철판에 못이 들어가서 철판이 뚫어졌습니다. 세 방이나 뚫어졌습니다. 베드로의 입장을 하늘 뜻으로 좋게 푼다면 자기 선생을 그 때 당시에 그렇게 부인하지 않으 면 역사를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는 입장으로 풀 수도 있겠지요? 베드로가 부인을 해 버리면 우선 거기를 당장 빠져 나올 수 있거든요. 그런 입장에 있어서 하나의 모사였던가? 아니면 이미 판국이 끝났으까 부인해 버리려고 했던가? 환경이 그렇게 되어 돌아갔습니다. 부인하고 싶어서 부인한 것이 아니라,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환경적인 입장에서 돌아가기 때문에 그렇게 됐지 베드로 역시 계획 안 했습니다. 누가 애초부터 그렇게 계획을 하고 살 인마적인 입장을 갖고서 살인을 계획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 다. 대개 여러분들, 이렇게 보면은 본래부터 계획을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 라 순간에 척 그럽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붙잡아 주는 것입니다. 역시 몇 일 만 가면 괜찮습니다. 그 보람 때문에 붙잡아 주는 것입니다. 수영하다 보면 물에 ‘풍’하고 하나 없어집니다. 그것은 벌써 빠져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을 계획했습니까? 순간입니다. 이런 순간의 일들은 환경이 그렇게 돌아갔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입장을 했는데 그러나 유다는 좀 틀립니다. 그는 받아들 였다는 것입니다. 유다가 그렇게 하려면 예수님께 물어 봤으면 되었습니다. “예수님 내가 당신을 팔려고 하는데 허락해 주십시오” 했으면 예수님이 팔 [ 27/51 ] 라고 했겠습니까? 팔라는 소리 안 합니다. 유다는 유대종교인들에게 왔다갔 다한 이야기를 또 안 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께, “저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 게 작전을 하고 있는데 나는 판국이 할 수 없이 저들에게 스며들어 죽일 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했으면 예수님이 딱 이 렇게 저렇게 하는 길을 가르쳐 주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무조건 뜻 이 없었든지 이야기를 자꾸 안 했습니다. 그러니까 또 역시 뭡니까? 가서 보고생활, 책임분담을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대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런 환경에서 있었을 때 결국 부인하지 않겠다고 그런 환경에 있 을 때 이야기했지만 나중에 가서는 부인하고 말 것을 예수님께서 이미 예정 이 아니라 이미 그런 환경을 주님께서 딱 점치시고 부인할 수밖에 없는 환 경이라 세 번을 부인한다고 했습니다. 너, 나를 주여 주여 하지만 닭 울기 전 3번 나를 부인하리라. 마음을 다해 서 쫓겠습니다. 내가 왜 주를 부인하겠습니까? 목숨을 다해 쫓겠습니다. 했 지만 그날 마당에 가서 너도 그편이냐? 아니라, 그걸 왜 묻습니까? 이미 아 니라 했을 때 예수님을 부인한 게 되어 버렸어요. 너 수상하다, 너 예수를 쫓던 사람이지? 아니라고, 쫓았으면 왜 여기 있냐? 구경꾼이에요 구경꾼. 너 그 제자가 아니냐? 보기는 보았을 겁니다. 몇 번 예수의 설교를 들으러 갔 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닭이 세 번 울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되고 말았 습니다. 그런 모든 경지를 예수님이 아시고 나 가는 곳에 오지 마라 했습니 다. 그리고 그 후 베드로는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서 이럴 바에야 죽는 것이 낫다 하고 죽음까지 각오했던 베드로. 그런 기질의 소유자였습니다. 결국, 죽음은 너무 억울하니까 회심하고, 마지막 죽을 때 거꾸로 죽겠다고 하면서 죽었어요. 그런 사상가, 정신가, 종교가였던, 주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였습 니다. 핵심적인 것은 알아야 되겠어요. 그런 처세를 가지고 가야 되겠습니 다. 지난 주 말씀이 그런 정신과 사고가 아니고서는 주를 따라갈 수가 없다 는 것입니다. 가다가 환경이 어려우면 뒤로 돌아가는 그런 정신이 없는 행 동을 하는데, 그래도 영원히 주님을 불신치 않고 따라갔습니다. 환경 따라 [ 28/51 ] 그런 처지에서 굴복했던 베드로는 역사의 오점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환경 과 처세.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일편단심을 가지고 가야 됩니다. [ 29/51 ] 4. 예수님 사후, 베드로의 삶 <행 2:40-41> 또 여러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 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 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베드로는 근본적인 복음을 펴나가다가 B.C 63년 네로황제 때에 로마에서 순교했습니다. 1) 내 양을 먹이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디베랴에 있던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다음과 같 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 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양을 먹 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 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 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 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우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 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 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 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 를 따르라 하시니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 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 [ 30/51 ] 오니이까 묻던 자러라." “아직도 양이 차지 않은 곳이 있는데 나를 따르라."하시니 베드로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쿠오바디스)라 했던 것입니다. 이 때에 주님께서 로마에 간다고 하셔서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전초하는 엄청 난 역사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사실 복음은 어린애처럼 간단한 것입니다. 이 에 베드로를 떠나서 스데반이 일어나서 순교하고 7집사를 비롯하여 각 지파 의 모든 사람들이 따라오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들은 세상 직책 이 집사이지만 사도같이 따라가면서 뛰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사도바울을 중심한 반대파를 만나서 굉장히 심한 고역을 치뤘습니다. 사도 바울(사울)이 나타나서 극적으로 이들을 핍박하고 스테반을 돌로 쳐 죽이는 데까지 참여해서 신교인들은 굉장히 많은 타격을 받았습니다. 열두 제자들 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부터 점진적으로 신앙이 들어간데 비해서 사도 바 울은 굉장히 돌연적으로 근본적인 신앙이 들어갔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보면 사도바울은 굉장히 불같이 나가서 예수님의 복음의 역사를 편 사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상 사도바울도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종교가도 제사 장도, 획기적인 사람이 아니고 순수한 마음으로 천막 장사를 하던 천한 직 업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철통같은 신앙생활을 하며 큰 공적을 세우고 남보 다 투철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종교가인 것처럼 눈에 띄었던 것이지 애 초부터 큰 종교가는 아닙니다. 2) 성령을 받은 베드로와 사도들 사도행전 2장과 같이 오순절 날에 이르러 한곳에 모여 전심으로 기도를 하다가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은혜를 받고 방언을 하게 되 고 신령한 체험을 하게 되므로 다른 지역과 서로 말이 통하지 않다가 방언 으로 다른 지역의 말을 해서 서로 통역도 하게 되니까 신기하고 오묘해 서 로 기뻐하며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러한 영적인 체험을 처음 맛보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고기를 잡던 사람들이 이러한 영적 체험을 할 수 있었 [ 31/51 ] 겠습니까? 사도행전 1:15에 120문도가 뭉쳐지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12사도가 70 문도가 되고, 다시 120문도가 오늘 본문 말씀처럼 베드로가 말씀을 전해 3 천명이라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돌아가는 대단히 큰 역사의 광경이 일어 났습니다. 이렇게 미약한 자들이 서로 뭉쳐지는 일들이 굉장히 크게 대대적 으로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그 당시에 무엇을 했는고 하니 돌아다니면서 말씀을 가르치고 또 정해놓은 시간에 기도를 하는 등 예수님 께서 생존해 계실 때 하던 대로 하고 있었음을 사도행전을 보면 알 수 있습 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제9시 기도하는 시간이 되어서 베드로와 요한이 기 도를 하려고 성전에 올라가는데 성전 문 앞에서 앉은뱅이가 구걸하는 모습 을 보았습니다. 이에 베드로, 요한은 그 앉은뱅이를 보고 측은한 마음을 금 할 길이 없어 뭔가 그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도와줄 것을 갖고 있지 않았습 니다. 여기서 베드로와 요한은 경제적인 면에서 능력이 없이 연약했다는 것 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금과 은은 내게 없고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내가 예수 이름으로 무한한 역사를 이루고 무한한 운세권 을 가졌으니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원히 일어나 걷도록 하라."고하면서 기도 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앉은뱅이가 일어 나는 일, 하나를 통해서 그 시대 사도들이 아픈 자를 정말 측은히 여기며 굉장히 많은 기도를 해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대단한 신앙이 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앉은뱅이가 있으면 예수님 시대의 사 도들같이 베드로 요한과 같이 기도해 줄 수 있는 신앙까지 들어가야 됩니 다. 혹 앉은뱅이가 안 일어나더라도 한번 기도를 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3:11-26까지 베드로의 설교 내용이 나와 있는데 베드로의 설교 를 통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감동과 감화를 받았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설교가 뭔지 잘 몰랐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청중들 앞에서 설교를 하 니까 잘 했습니다. 설교는 꼭 강대상 위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므로 장소 [ 32/51 ] 에 구애됨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며 어느 것이든지 설교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설교를 하고 싶으면 집에서도, 노방에서 도, 노방전도시에도 설교를 많이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설교를 잘 했음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서 알 수 있는데,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 들은 저 사람이 학문도 없고, 특별히 종교 생활을 한 것도 아니고, 설교할만 한 터전이 안 되는데 그렇게 말을 잘해서 우리를 감동시킬 수 있을까 하고 놀랐습니다. 이와같이 해서 3천명이나 "나는 하나님을 믿고, 또 예수님을 믿 고 살겠다."고 나올 정도에 이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도들은 많은 설교를 했으며, 설교 내용은 구약에 대한 말씀으로 입증했습니다. 사실 그들은 구약 에 대해서 전혀 몰랐었지만 예수님께 많은 말씀을 듣기 전에는 아마 모세의 이름은 알았어도 전체적인 성경의 흐름에 대해서는 잘 몰랐을 겁니다. 이스 라엘 민족의 짧은 역사 가운데 위와 같은 일들은 큰 역사인 만큼,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파악해서 연구, 분석하는 것은 바로 종교인들의 과제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와 같이 종교인이 아닐지라도 이렇게 외치고 또 많 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겠다고 자꾸자꾸 돌아오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새로 시작하는 역사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물을 짓고 신앙을 배타시하 고 여러분들이 믿던 하나님을 오히려 부정하던 내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 지 않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모르고, 또 예수님이 잘못된 사람이라면 지금 이와같이 설교를 하면서 하나님을 따르겠습니까?"라고 설교했습니다. 이런 베드로의 설교에 그 시대 사람들은 감동, 감화를 받아서 지금의 우리 까지 이르렀습니다. 설교를 할 때 구약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은 구약시대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이고 성도적인 입장에서 설교하는 것은 이방인 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3) 옥에 갇히면서 전도 베드로는 죽 전도를 열심히 했는데 전도하고서 무슨 일이 또 있었는고 하 니 사도행전 12장 5절에서 19절까지를 보면, 지난주의 역사를 보면은 전도 [ 33/51 ] 하다가 옥에 갇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원래 옥이라는 것은 법에 벗어난 사람이나 갇히는 것인데 법을 벗어나지 않았는데 천법에는 온전히 이루고 인법에도 온전했는데 인법에 뭐인가 잘못된 법이 있었던가 봅니다. 이로 인 해서 -깨닫지 못한 자로 인해서- 베드로를 옥에다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래 서 천사의 도움을 받고서 겨우 일어나 나와 다시금 복음을 전하는 장소를 옮겨서 복음을 전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옥 안에서 신발을 벗어버리고, 신발을 복음이라고 에베소서 6장에 나와 있지요? “복음의 신발을 신고...” 그 복음입니다. 그 다음에 천사가 부지런히 띠를 띠라고 말을 했지요? 이는 역시 에베소서 6장 14절에 있는 말씀같이 진리의 허리띠라고 했으니 진리를 말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다음에 가서는 천사가 옷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옷도, 겉옷을 벗었던가 봅니다. 옷은 그 당시에는 육신의 옷이었지만 이 근 본을 보면 이 얘기는 복음의 옷을, 의의 옷을 입어야 되겠습니다. 의의 옷! 계시록 19장 8절 바로 의인들이 입는 옷, 의로움을 옷으로 상징했습니다. 이 세 가지를 항상 가져야 그런 옥에서 제대로 갖추어야 나올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올 때는 반드시 갖추고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흑암에서 살 때는 -보다 옥에서 살 때는- 신발도 벗어 던져 버리고 띠도 끌러버리고, 옷도 벗어 제쳐도 괜찮은데 옥에서 나왔을 때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초상집 다르고 잔칫집 다릅니다. 그래서 종전에 있던 상황에 있지 말고, 보다 흑암권에 있을 때의 행실을 하지 말고, 빛 가 운데의 본래에 처했던 위치에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감옥 가기 이전상태의 위치, 즉 타락된 사람은 타락되기 이전 상태의 위치에서 행실을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4) 베드로의 설교 베드로가 가서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듯 이, 가서 말씀의 그물을 집어 던졌더니만, 삼천 명이 몰려왔습니다. (행2:41) 한자리에 모인 삼천 명이 베드로의 이야기를 듣는데, 베드로가 뭘 압니까? [ 34/51 ] 신약을 제대로 나왔습니까? 구약을 제대로 나왔습니까? 신학을 제대로 나왔 습니까? 제대로 나온 곳이 없다고. 한가지 제대로 한 것이 있다면, 아직 과 정 중이지만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과정 중에 있지요. 그거 하나 있고, 다른 것은 똑똑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똑소리 나게 끝난 것이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똑소리 나게 제대로 하는 것이 뭐가 있습니까? 정말로 자기가 만족할 정도로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만 있어도 괜찮습니다. 자포자기할 필 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축구를 제대로 잘 합니까? 배구를 제대로 잘 합니까? 수영을 제대로 잘 합니까? 잘 한다 해도 자기가 보기에 잘한다는 것이지, 진짜 잘 한다고 할 수 있는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공부를 제대로 잘 가르칩니까? 전도를 제대로 잘 합니까? 자기 만족이지, 하나님 만족까지 갈 정도로 제대로 잘하는 것이 있습니까? 예수 믿으면서 노래를 제대로 잘합니 까? 그렇지 않으면 글을 잘 씁니까? 제대로 잘한다면 괜찮지요. 나는 제대로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를 한번 들었습니다. 한번 속 아픈 이야기를 들어서 쇼크를 받았습니다. 하늘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 었습니다. “너는 제대로 잘 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 뭘 그렇게 하려고 그러 냐?” 그래서 밤새워 생각해 봐도 제대로 잘 하는 것이 하나도 없더라고. 그 때부터 하나라도 제대로 잘해야 되겠다고 몸부림을 쳤는데, 하다보니까 한 가지 도를 찾으니 백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때, ‘한 가지 뭘 제대로 잘할까?’하고 늘 생각했는데, 바로 하나님의 말 씀을 최대로 알고 싶어서 거기서 결정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래서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제대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 관(觀)에 있어서는 내가 두 번째 가라면 서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잘 가 르쳐 주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이 있는가? 없는가?’했던 것이, 하나님께서 생 활 속에 나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내 손을 통해서 움직이고, 하나님께서 하 시고 싶은 예술성은 나를 통해서 노래로 나타나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생각 으로 나타나고... 이런 것을 통해 ‘정말로 하나님은 계시구나! 정말로 하나님 [ 35/51 ] 은 내 옆에 계시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때에 베드로를 보고서 (3000명을 모아 놓고 말씀 전하는 것을 보고서) 누가 제일 감탄한 줄 압니까? 베드로의 동생이 제일 감탄했습니다. 뒤에서 쳐다보고, “야! 나는 형님을 알지. 누구는 몰라도 나는 혈통이기 때문에 알 지. 야! 낙천주의 인생을 살면서, 이태백이 놀던 달을 찾으면서, 한잔 술에 인생 달래면서, 형제간에 같이 빠져 죽자고 하며 ‘서로 엎어져 죽자. 물 속 에 빠져 죽자. 투신자살하자’하던 그 날이 정말로 생각난다.” 뒤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던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였습니다. 자기 형에 대해서 잘 알거든. 무식하고, 별 볼일 없고, 그저 회나 쳐먹고 앉아 있고... ‘회를 쳐 먹는다.’는 말 있지 않습니까? ‘회 쳐먹는다.’ ‘묵 쳐 먹는다.’고 그러지요. 이렇게 생각할 때, 안드레는 거기서 너무너무 감격하 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쳐다볼 때, 저기서 누군가 눈물을 뚬벙 뚬벙 한강 줄기처럼, 흘러내리는 폭포수처럼 쏟는 사람이 있었으니 자기 동 생이었습니다. ‘음, 너는 뜨거운 눈물을 흘릴거야.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 둘 이 살아보려고 얼마나 몸부림을 치고 발버둥을 쳤는가?’ 부모에게 받은 것 은 없고, 죽자니 청춘이요 살자니 고생이니, ‘바다에 안 들어가고 살 길은 없는가?’하고 아버지, 어머니한테 좇아가서 왜 이 팔자밖에 못 타고 났냐고 푸념하고 부모님은 “너 죽고 나 죽고 같이 죽자.”했던 그 날을 생각할 때 너무나도 괴로웠습니다. 그 날, 베드로는 그 심령을 가지고 온 백성에게 같이 살자고 외쳤습니다. “너희도 아마 마찬가지일거다. 너희들도 똑같을거다. 나, 베드로도 바다에서 이렇게 겪었지만 너희는 육지에서 겪었을거다. ‘육지’라는 파란만장한 넓은 대지에서 겪었던 인생살이, 삶의 전쟁터에서 얼마나 고생들을 했는가? 자기 삶의 괴로움을 통해서 남까지 저주하며 살았던 인생들, 너나 나나 마찬가지 이다. 너희들 들어라.” 하고서 외쳤을 때 가슴에 와 닿지 않은 사람이 없었 습니다. [ 36/51 ] 5. 베드로가 주는 교훈 1) 개인 감정으로 타인을 아무렇게나 대하면 안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앞에 배를 빌려 달라고 하던 때는 밤새도록 고기잡이 를 했어도 한 마리도 못 잡았을 때였습니다. 고기가 잡히지 않으니 베드로 가 성질을 부리고 혈기를 내었습니다. “세상에! 고기가 안 잡히다니.... 에이! 이놈의 바닷물을 바닥까지 빼서라도 이리 빠져나가고 저리 빠져나가는 고기 를 잡아 버려야지!”라고 하면서 별소리를 다 지껄였지만 날이 새서 할 수 없이 육지로 돌아왔습니다. 나와서 보니 고기는 잡히지도 않았는데 신경질 나게 얼기미는 그렇게도 많이 그물에 얽혔는지....(충청도 말로 바다의 찌꺼 분한 것들을 얼기미라고 합니다) 그것들이 바싹 마르면 뜯기가 힘드니까 물 이 묻었을 때 뜯어내야 하기에 그 많이 얽혀 있는 것을 뜯어내고 있는데 예 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배를 빌려 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는 배 를 빌려 달라고 하는 예수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을 것입니다. “당신 뭐야? 당신 아무것도 모르는구먼! 당신이 종교가면 종교가이지, 당신 남의 배를 헌신짝 같이 보는거야? 뭣 좀 아는 사람인가 했더니 뭘 모르는구먼!” 하며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베드로는 씹 어 뱉을 수 있는 이빨이 아주 강했고 입이 모터를 달은 것 같이 너무너무 잘 돌아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배를 빌려 주었다는 것입니 다. 더군다나 그 당시처럼 성질이 나고 화가 났을 때에 배를 빌려 달라고 하면 빌려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개인 감정으로 타인을 아무렇게나 대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연(年)수로는 짧은 기간의 신앙 생활과 짤 막한 인생을 살았지만, 경험한 것은 하나님께서 영계와 육계에서 계획적으 로 겪게 만들었기 때문에 수백 년을 겪고 나왔습니다. 내가 겪지 못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경험한 것을 깨우쳐 주면서까지 겪게 해 주신 것까지 합한다 면 수천 년 동안의 것을 겪고 나온 것입니다. 약 육천 년 어치를 겪고 나왔 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는 말이 많은 것입니다. 내가 직접 깨달은 것 즉, [ 37/51 ] 영계와 육계에서 겪은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겪은 것을 받아들이면 그것 도 하나의 자기 체험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배를 빌려준 것이 아니라 평소의 마음과 성격이 그러했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그는 평소에도 그런 성격을 갖고 있었구나!’ 나도 사람을 파악할 때는 이러한 예수님의 입장과 철학을 갖고 파악합니다. 똑같습니다. ‘이 사람이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고서 이렇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성격이 이렇구나.’ 하며 바로 성격을 인정 해 주고 고백하고 들어갑니다. 2) 남을 무시하지 말고 존중해주라 베드로에게 또 한가지 배울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를 빌 려서 열심히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밤사이 잠을 못자서 졸려 죽을 판국이었고, 그물의 얼기미도 다 뜯어서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도 거기 에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혼자 스스로 들은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이 권유를 했던 것입니다. “배를 빌려주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참으로 복 받 았네. 정말로 복 받았네.” 예수님의 옆에서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무슨 복을 받았다는 말입니까?” 물었을 때 “말 씀을 들어보면 복을 받은 줄 깨달을 것입니다. 한번 말씀을 들어보고 가십 시오. 그분은 주는 것도 아무것도 없는데 오직 저 말씀 때문에 이렇게 사람 들이 따라 다닙니다.무슨 말을 하시는지 한번 들어 보십시오. 그의 말씀만 들으면 성격들이 변화됩니다.” 이와 같이 말하는 사람의 말을 베드로는 무 시하지 않고 들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인격이하 인지 모릅니다. 어린 아이이든 어른이든 그 사람의 말을 존경 해 주어야 합니다. 왜? 사람마다 하나님의 신성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아십니까? 하나님의 신성 이 나름대로 개성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개인의 재질과 소질을 중심으로 해 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므로 신성과 인성(人性)이 겸해 흐르고 있다는 것을 [ 38/51 ] 생각할 때는 인간을 무시하는 자는 바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라는 것입니 다. 작품을 무시한다는 것은 바로 작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자존심 상하는 때가 바로 나를 무시 할 때입니다. 내가 못생겼어도 나를 못났다고 하니까 그렇게도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알수 없 었습니다. 내가 생각해 보아도 원래 못하고 멍청했지만 그래도 “멍청하다. 미련하다.”고 했을 때는 너무너무 속이 상하고 아팠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베드로는 남의 말을 상당히 존중해 주었다는 것입니 다. 일반적으로 -겉으로- 베드로는 상당히 무식한 것 같이 보였지만, 하늘과 접해 보았을 때는 상당히 인자하고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베드로는 어디에서 배웠느냐? 도대체! 그가 인격대 학을 다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말조심 대학을 다닌 것도 아니었습니 다. 결국 평소 인생의 삶 속에서 자기를 수도한 것이 아니겠냐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자기 나름으로 자신을 깎은 것입니다. 그리하였기에 마음에 사리 박히듯 박힐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에게는 누구든지 베드로와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찾을 때까지 서로 깊이 사귀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찾을 때까지 접해 주셨습니다. 그냥 보아서는 정말로 볼만한 것이 없고 흠모할 것도 사모할 것도 없어도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그런 점들이 나올 때까지 깊이 사귀었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사람을 사귈 때는 그것과 부딪힐 때까지 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깊이 사귀어지지 않습니다. 또 깊이 사귀었다고도 볼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이와 같은 점들이 참으로 훌륭했다는 것입니다. 3) 하늘 앞에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예수님의 설교가 다 끝나고 베드로가 어떻게 했는지 압니까? 즉석에서, 말씀 끝나자마자, 개인 면담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인생에 대하 여 이야기했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못 잡았다고 이야기하면서 자기의 괴로움을 이야기하자. “더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아 보자.” “잡 [ 39/51 ] 힐까요?” 그렇지만 깊은데 가서 고기를 잡으니 고기가 잡혔습니다. 이것은 상징이 아닙니다. 고기가 잡히는 것을 보고는 자기는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왜? 자기의 부족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은 적어도 갈릴리 바다의 어부로서는 도사인데도 고기를 못 잡았는데 갈릴리 바다에서는 고기를 잡아 본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보았던 예수가 시키는 대로 하니 고기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시키는대로 하니까 되는 것을 보고 너무너무 놀랬던 것입니다. ‘정말로 도사로구나!’ 하늘에서 내려온 자는 꼭 경험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 니라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그대로 명령하여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일을 다 경험하고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개개인의 경험을 어떻게 다 하겠 습니까? 못하는 것입니다. 척하면 벌써 번쩍 깨닫고 알고,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은 현장에서 순간 배우는 것입니다. 순간 배워 가르쳐 주어도 여유가 있 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할 때에, “밤새도록 고기를 잡아도 못 잡았는데 다시 가서 잡으면 된다고 합니까? 아,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고맙기는 하지만..., 내일은 그곳으로 가서 잡아 보죠.” 했지만 직접 가서 잡아 보니 잡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끝나고 나서 나한테는 안 그러고 내 옆의 사람에게 그랬답니다. “참, 목사님은 좋은 데... 설교는 몰라도 그림은 내가 50여 년 동안 그렸고, 사회에서도 이렇다 할 국전 작가인데, 그림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할 때에는 내가 마음으로 좀 비웃었습니다.” 그래서 내 제자가 날 보고 하는 말이, “선생님, 그런 건 조금 교정했으면 좋겠어요. 우리에겐 교정할 것 없지만, 그분한테는 좀 교정 해 주면 좋겠어요.”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뭐? 교정혀? 뭐가 잘못 되었길래 교정하냐? 그분도 그렇게 해 야 언젠가는 좀 깨닫게 되지.” 그랬습니다. 그 후로 보니까, 그 이야기를 두 고두고 죽을 때까지 한다고 그랬습니다. 표승현 교수님이 이제까지 50년 동 안 작품 뜬 것 중에서 나랑 작품 뜬 것이 색깔도 제일 잘 나오고, 제일 멋 있다고 했으니까. 내가 가져다가 아무렇게나 막 싸인 해대꼈는데도 그렇게 잘 되었습니다. 그건 왜 그런고 하니, 하나님께서 그 작품에 함께 하셨다는 겁니다. 도자기 구울 때도 적어도 한 반절은 깨지고, 한 70%는 깨지는건데, [ 40/51 ] 한 개도 안 깨지고 100% 다 나왔습니다. 그런데 2개가 아담과 하와처럼 들 러붙어 서로 껴안고 있어서 그래도 버렸습니다. 나머지 98개는 모두 깨끗하 게 잘 나왔습니다. 그 후에 또 구우러 갔는데, 그 색깔이 안 나왔습니다. 이 와 같이 전문가 앞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명이 크다는 겁 니다. 사명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거기서 충분히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여건이 있었는데 안 내세 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 앞에는 자기를 내 세우지 말고 잠 잠할지어다.” 나는 정말로 그것을 느꼈습니다. 나도 전문적인 것을 많이 내세웠습니다. 농사지을 때도 내가 먼저 이렇게 해 버리고서, ‘하나님은 농사를 안 지어 보 셨기 때문에.... 비 주고 햇빛 주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이지만 이건 모르시 니까...’ 이런 식의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하다 안 되면, 하나님께 ‘왜 안 되나?’하고서 노력했습니다. 노력했어도 나를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 니다. 그러나 은근히 함께 하셔서 잘 되게 하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해 주 셨는데도 늦게까지 몰랐습니다. 그 후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깊은 데에 그물을 내리고 그물이 찢 어지도록 고기를 잡고 나서, 자기는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고 기를 잡았습니다. 이상하지요? 그렇게 다 뒤져도 고기가 없었는데, 고기가 나와서 잡혔다니까. 그놈의 고기가 땅 속에 들어갔다 나왔을까요? 결국 고기를 잡고서, 그때서야 비로소 고백했습니다. “정말 나는 죄인이 고, 당신은 의인이요, 정말로 큰 자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눅5: 8) 그 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보고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눅5:10) 베드로는 그때부터, ‘예수님만 따라다니면 수산조합을 할 것이다. 정말로 수 산업에 크게 성공할 것이다.’ 아마 나름대로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내가 그런 것을 어떻게 깨달았는고 하니, 삼선교에 있을 때 회원들을 통해 서 ‘브리테니카 백과사전’을 팔러 다니는 아가씨들을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가씨들이 보름동안 팔고 다녔는데, 꼭 팔아야 되는데, 사는 사 람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애들이 “우리 선생님께서 기도를 해 주시면 정 [ 41/51 ] 말로 잘 팔릴 겁니다.”라고 하면서 데리고 왔길래, 내가 그 사람한테는 이야 기 안 하고 그 회원에게 그랬습니다. “야, 네가 그렇게 하고 왔으니 이왕에 할 수 없지만, 왜 그렇게 나에게 무거 운 짐을 지우면서 전도를 했느냐? 내가 기도해 주면 팔린다고 했는데 만약 에 안 팔리면 그냥 갈 것 아니냐? 「네 믿음의 조건 여하에 달렸다」 하고 두 가지를 붙여서 데리고 왔으면 괜찮은데, 꼭 팔린다고 하고서 데려 왔으 니..., 하여튼 무턱대고 기도를 해 주자.” 하고서 기도를 해줬습니다. “네 믿 음대로 되라. 심은 대로 되라.”고 기도를 해주었더니만, 턱하니 그 건물 주 인이 하나 샀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가씨가 그때부터 그러더라고. 그 비싼 것을 팔고 와서, 또 하 나 팔게 또 기도 해달라는 겁니다. 그거 두 개 팔면 거진 한달 봉급이 왔다 갔다 하거든요. 두 개 팔면 한달 봉급이 된다는 겁니다. 잘 파는 사람은 열 개씩도 파는데, 자기는 이상하니 안 팔린다는 겁니다. 얼굴이 꽤 번질번질한 여자인데, 안 팔린다는 겁니다. 두 번째 왔을 때 무슨 생각이 오는고 하니, 베드로처럼 평생 그걸 하려고, 고기 잡아서 수산조합 차리려고, ‘이 사람한테 계속 기도 받으면 내가 최고 로 끗발 내서 부장까지 살아 먹겠다.’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더라고. 그 후, 계속 기도를 해주었는데 안 팔렸습니다. 하나도 못 팔았습니다. 결국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나를 따르지 못하고, 교 회에 나오다 말았습니다. 왜? 어떻게 해서든 그걸 하나 더 팔면 한달 봉급 이 되니까 그것을 좇았다니까. 그 때 나를 따랐다면, 아마 지금쯤은 꽤 괜찮 게 되었을 겁니다. 그 아가씨가 나 따라다녔으면, 지금 아마 “여봐라!”하면 괜찮습니다. 남자들은 40대에 “여봐라!”하면 괜찮고 알겠습니까? 그 후에 들어보니까, 브리테니카 백과사전 팔러 돌아다니다 한 권도 못 팔았답니다. 베드로는 아마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계속 예수님을 좇아 다니면서 기도 받고 고기 잡으러 다녔으면, 그것이 아닌 것을 확신했을 겁니다. 이와같이, 그 후에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네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 고기를 잡듯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사망권에서 생명권 인생을 살게 해주는 [ 42/51 ] 사람이 될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했다고 해서 베드로가 그냥 “네!”하고 그물 던지고서 따른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 오. 마태복음 4장 18절로 20절에 보면, “갈릴리 해변을 두루 다니면서 예수님 께서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가 그물 던지는 것을 보고서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하시매 저희가 그물을 던지고 주를 따르니라.” 그렇게 나왔지만, 아니,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밥통인데 그것을 버리고 배고파하며 주님을 따 라가겠습니까? 아무리 예수님이 인자하게 생기셨다 해도 따라가겠습니까? ‘빌어먹을 놈. 야, 너를 따라가서 내가 먹을 것이 있겠냐?’하고 안 따라가지. 그런 설교를 여러 번 듣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까 말이 통한 것입니다. ‘저 분을 따라가면 괜찮겠구나.’하는 것을 느낀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4) 자신의 노선, 위치에서 메시야를 만난다 베드로는 어디에서 만났습니까? 공장에서 만났습니까? 직물 공장에서 만 났습니까? 벽제의 화장터에서 만났습니까? 오직 베드로는 고기 잡는 자기의 영업지에서 만났습니다. 삭개오는 어디에서 만났습니까? 자기가 늘 왔다 갔 다하는 장소에서 만났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자기의 직업의 노선에서 만 난다는 거여! 그래서 자기의 직업지에서 충성하고 누가 있다고 해서 막 쫓 아다닐 필요는 하나도 없습니다. 믿습니까? 메시야는 어디에서 만나겠습니까? 딴 것 없습니다. 자기 노선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니까 많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공중에서 만난다! 위성국에서 만난다!” 이런 것은 다 한 잔씩 먹 고 술 취해서 하는 소리이지 술을 깨면 그 소리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차 있는 고정관념을 깨부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압니까? 어 렵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자기가 세금 받으러 다니고, 아침 출근길에 다니 는 모든 자기의 노선에 있는 길목의 뽕나무 가지 위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 동기로부터 시작해서 가정에서 근본적으로 알아보고 만났습니다. 옛날 [ 43/51 ] 사람들인데 머리가 좋았습니다! 왜? 그 날 알아보았습니다! 베드로도 거진 그 날 훌륭한 사람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메시야라는 것은 3년 만에 알아보고...!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알아보았지요?! 선생님이 진 단해 보건대 한 3년씩 가면 알아보는 것 같습니다. “저 나무가 무슨 열매를 맺을 것인가 3년을 기르면 나옵니다.”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또한 3 년쯤 사귀면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코스, 자기 노선에서 메시야를 만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왕좌왕 할 필요는 하나도 없다고 하늘의 말씀을 선포합니 다. 5)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다 베드로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좇았다는 것은 대단한 위대한 삶을 산 것 입니다. 이것을 하늘을 대신해서 이야기해주고 이 시대의 제자들을 보고도 참 훌륭한 일을 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좇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지상에서 그를 맞이하 고 살림하면서, 생활하면서, 인생을 살면서 가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믿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인생의 근본 한가지를 확실히 깨닫도록 하십시오. 모 든 것을 버릴 때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늘 앞에 받을 때는 어떻게 받 아야 하는가? 이 모든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도 모든 것을 버 릴 때 힘이 들었습니다. 생활은 자기가 해나가야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께서 베드로에게 “야, 저놈들이 날보고 세금 반세겔을 내라고 한다. 그런데 돈이 없다”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 자신의 세금조차 해결하지를 못하고 왔 다갔다 하다가 결국 누가 예수님께 드린 돈을 가지고 같이 내지 않았습니 까? 그 정도로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마 17: 24-27) [ 44/51 ] 6) 구원의 가치과 귀중성, 내세관을 깊이 깨달았다 베드로나 안드레나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살았을 때는 정말로 훨훨 날아 돌아다니다 예수님이 죽었을 때는 “살면 뭐하냐?” 하고 같이 따라 죽었습니다. 베드로가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는 얘기를 들어봤지 요? ♪ 서쪽하늘 붉은 노을 영문 밖에 열렸구나. 연약한 두 어깨에 십자가를 지고 가니 머리에는 가시관 몸에는 붉은 옷 힘없이 걸어가는 영문 밖의 길이라네 주님 제자 베드로는 거꾸로도 갔사오니 고생이라 못 간다면 죽음으로 가오리다. 깨닫고 보니까 죽어도, 목숨을 걸어놓고도 가야 될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30년, 70년 더 살아봤자 인간은 육계의 세계에서 끝나버리거든요. 그러지 말고 좀 일찍 죽더라도 그 영원한 세계에 가는 것이 낫다고 하며 베드로는 간 것입니다. 이 세계는 영원한 그 세계에 비하면 100년이 수천만 억조의 1 초 밖에 안 되는 시간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 나라를 가기 위 해서는 이 세상에서 좀 고생되더라도, 좀 일찍 죽더라도 그 길을 가는 것이 낫다 하고서 베드로가 결정하고 간 것입니다. 베드로는 구원의 귀중성과 가 치성을 알고, 내세관을 깊이 깨달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서 뱃놈을 면한 것 입니다. 누구는 베드로를 들어 말하기를 “뱃놈, 어부놈” 이라 하지만 그는 위대한 정신이 들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위대한 정신과 내세관을 가져야 됩니다. 나도 그러한 정신관과 내세관을 가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춘을 투자하고, 젊음을 투자하고, 70일을 굶을지라도, 못 먹을지라도, 모 든 사람이 나에게 악평을 하고 미쳤다고 했을지라도 굴하지 않고 미래에 대 한 구원관과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관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 45/51 ] 7) 반석 위에 역사가 진행되어야 망하지 않는다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을 때 그날부터 완전히 삶이 바뀌었습니 다. 알게 된 그 날부터 제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삶의 전환이 시작되 었고 이상의 빛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신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는 존재자로 보기 시작했 습니다.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반석은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 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자입니다. 반석, 즉 본질 위에 역사가 진행되어야 망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예수가 메시야인 것을 100% 믿고 신앙생활을 하니까 그때부터는 사탄이 베드로를 잡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에서부터 신약 종교가 시작되었고 거기에서부 터 교회가 형성되면서 바로 천주교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당을 가리 켜 베드로 성당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너에게 천국열쇠를 주리니 네가 끌르면 따져서 그곳으로 만인이 들어 가리라. 베드로가 예수님이 메시야인 것을 시인하자 열쇠를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메시야에 대한 말씀을 주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으니까 메시 야가 주는 말씀을 생명시 하고 전했고 그 말씀이 바로 열쇠가 된 것입니다. 말씀의 키(key)! 그리하여 베드로를 통해 수만 명 씩 전도되어 많은 생명들 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신약역사가 펼쳐져 나갔고 그것이 교회가 되었습 니다. 그 교회를 베드로성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베 드로를 굉장히 큰 초대교황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알아보기 시작하면서부터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해 주어 메시야인 것을 암시하고 가르쳐 주어 모두가 알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신약역사가 형성되었습니다. 베드로부 터 시작되어 신약역사가 깨지지 않고 형성되었습니다. 그전에는 베드로부터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몰랐습니다. 모두가 그 [ 46/51 ] 냥 훌륭한 선생, 선지자, 사도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교회를 세울 수가 없 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교회를 세워도 오히려 금방 빼앗겨 버립니다. 그 리스도라는 것을 알았을 때 전체가 그리스도에게 영광돌리기 위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초대 9개 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어마어마하게 번져 나갔습니다. 그리스도를 알게 되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외부 사람들은 그들이 왜 그렇게 번져 나가는지 몰랐습니다. 그들은 메시 야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으로는 에이 또라이들아! 에이 잡놈들 아. 메시야가 왔는데도 모르냐?’하고 비웃고 너희들이 믿는 사람을 누구로 보느냐?하고 물어오면 훌륭한 사람으로 봅니다.하면서 나간 것입니다.  선지자를 왜 따라 다니냐? 모세가 더 크지. 하고 말들을 해댔지만 메시 야를 알게 된 그들은 계속 모사를 쓰면서 나아갔기 때문에 유대인들로서는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920216) 8) 주님을 따르면서 어려움을 이겼다. 베드로도 주님을 따르면서 욕도 얻어먹고 무서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내 밑에 있는 여러분들이 따라오면서 욕을 얻어먹는 것처럼 피눈물나는 욕 을 얻어먹고 말할 수 없는 욕을 얻어먹었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저들이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할 때는 이길 수 있지요! 그런데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은 욕을 얻어먹다가 안되겠다 싶어 넘어가 버 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넘어가서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괴로워서 자기 모가지를 매달아 곤두박질 치고 죽지 않았습니까? 오죽하면 자기를 죽이겠 습니까? 그러나 죽는다고 끝납니까? 영계에 가서도 연속되는 것입니다. 그 것은 일년, 이년, 십 년에 되지 않고 다른 섭리가 올 때까지, 다시금 성약의 역사가 올 때까지 그 괴로움을 받는데 그게 바로 지옥이 아니겠습니까? 이 사람과 베드로가 비교가 되겠습니까? 베드로는 참고 견디고 그 과정을 이겼 습니다. 그 후에 받은 것이 얼마나 큽니까? 그리고 베드로가 죽을 때 고통 이었지만, 가룟 유다는 악인들이 괴로워서 스스로 죽는 그런 고통에 참여했 [ 47/51 ] 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만민을 살리는데 써먹는 생명적인 순교를 당했고, 또 하나는 만민을 살리는 것이 아니고 죽이는 첨단의 길을 갔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를 죽임으로 인해서 -물론 가룟유다 혼자 죽인 것이 아니지만- 여 러 사람이 같이 책임을 져야 하는 무서운 세계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 래서 재림주가 올 때까지 말할 수 없는 해산의 고통의 과정을 겪으며 기다 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금 하나님의 사람이 올 때까지, 이 세상에 주가 나타날 때까지, 그 주를 만날 때까지 사람들이 그 고통을 어떻 게 이기고 맞이할 것인가도 귀추가 주목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 고 또 한가지 덧붙여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들이 나와 같이 어느 단계 를 얻을 때까지, 추수를 할 때까지, 그 때까지 여러분들이 고통을 어느 식으 로 이길 것인가 그것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 48/51 ] ※ 부록 ■ 점검하기(분석과 점검) 1. 예수님을 만났을 때 베드로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성경을 읽고 이야기해 봅시다. 자신이 베드로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어떤 태도를 보였을지 이야기 해봅시다. 2. 베드로가 예수님이 물 위를 걷게 하셨을 때 물에 빠진 이유는 무엇입니 까? 3.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4.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길을 막자 예수님께서 ‘사 단아 물러가라’는 말씀과 함께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고, 이 말씀을 자신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서로 나누어 봅시다. 5. 베드로가 예수님이 자신을 누구라고 하는지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했으 며 그로 인해 어떠한 축복을 받았는지 알아봅시다. 6. 베드로의 삶을 통해 각자가 깨달은 점이 있다면 이야기해봅시다. [ 49/51 ] ■ 생각하기 마태복음 4장 22절의 말씀과 같이 사람이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할 때 모든 것을 버리고 한 가지 일에 치중할 때는 보다 이상적인 역사가 일어나고, 훨씬 더 멋있는 작품이 나오고, 멋있는 역사를 낳게 됩니다. 이것 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좇을 수 있는 어떤 목적이 있 습니까? 자기의 모든 생각, 혈통을 버리고 좇을 수 있는 것이 있느냐는 것 입니다. 나는 어렸을 때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늙어가는데 어떻게 인생을 보낼까? 동해에서 뜬 해가 서해로 지듯이 순간 지나갈 것인데...’ 늘 이렇게 노래하면서 시대를 보냈습니다. 나는 찬송가 358장 이 노래를 철학같이 불렀는데 그대로 되고야 말았습니 다. 정말로 아침에 떴던 해처럼 하루 일을 표있게 하고 매듭짓는 역사를 원 했던 것입니다. 배와 그물을 집어던진다는 것은 이제 내 생업을 집어던진다 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내 생업이 무엇인지 알지요? 나의 생업은 농사를 지어먹고 사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집어던지고, 부모 형제도 집어던지고 하 늘을 좇을 수 있는 열렬하고 위대한 삶이 나에게 있었기에 오늘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내가 집어던졌던 생업은 하늘의 선한 사업으로 뒤바뀌었고, 집 어던졌던 형제들은 다시금 가까이에서 늘 떨어지고 헤어지면 못살 정도로 되었고, 형제들뿐만이 아니라 남남이었고 멀리 있었던 여러분들까지도 ‘저 하늘에 태양이 떠있는 한 당신 없이는 못삽니다’ 하는 역사가 되어 버렸습 니다. 본래 하나님의 역사는 상대성의 역사라서 상대성의 세계는 서로 떨어 져서는 안됩니다. 모든 우주의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만 존재할 수도 없 고, 지구만 존재할 수도 없고, 별들만 존재할 수도 없고, 달만 존재할 수 없 는 세계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런 법칙으로 볼 때 이 세상은 하나님이 없 이는 못산다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버리고, 생업을 버리고, 자기 혈통을 버리고 주를 좇아왔 던 여러분들의 모습들이 다시금 돋보입니다. 그런 것이 오늘날 이상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크나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정말로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좇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 50/51 ] 호랑이라도 토끼를 한 마리 잡을 때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쫓아가야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삶이 일어나야 하겠습 니다. 항상 하늘의 인(人)호랑이가 되고 독수리가 된 여러분들이 아닙니까? 호랑이는 강하고 담대하고 으르렁거리면 먹을 것이 생깁니다. 여러분들도 호랑이처럼 강하고 담대한 자가 되어서 시대에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자 녀권과 애인권의 사명을 다하기 바랍니다. [ 51/51 ] ■ 적용하기(실천 및 적용) 1. 생각하기의 주인공은 생업과 혈통을 다 버렸습니다. 주를 만나고 나는 모 든 것을 다 버리고 좇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았는지 생각해보고 이야 기해봅시다. 2. 생각하기의 주인공은 찬송가 358장을 자신의 철학으로 삼으며 찬양했다 고 했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철학으로 삼고 부르는 찬송이 있다면 서로 나 누어봅시다. 3. 베드로가 수제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나누어 보고 자신은 말씀을 듣고 주를 깨닫게 된 것이 언제였으며 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서로 나누어봅시다. 4,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 했습니다. 자신도 혹시 삶 속에서 주를 부인한 적이 없는지 반성해보고 그 러한 상황이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는지 이야기해봅시다. 5. 베드로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엄청난 핍박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이 그 리스도이신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상황에서 어떻게 주를 증 거해야 하는지, 지금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지 이야기해봅시다. 6. 베드로처럼 주님처럼 많은 청중들 앞에서 증거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의 변화와 주님에 대해서 간증할 수 있는 간증문을 작성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