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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학교2025.06.01 (일)

성경중심인물 02 여호수아

선포일
2025.06.01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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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 ] 성경 중심인물 여호수아 [ 2/50 ] 1. 부르심을 받은 여호수아··········································································································4 1) 여호수아와 시대성················································································································4 2) 여호수아가 세운 믿음의 조건····························································································6 3) 실천자 여호수아····················································································································7 4) 긍적적인 사고························································································································8 5) 일화 - 가나안은 그냥 갈 수 없다····················································································9 6) 40년간 모세 밑에서 배웠다······························································································10 2. 가나안 정탐······························································································································12 1) 모세를 따르지 않는 이스라엘- 가나안으로 가야 한다··············································12 2) 평소 신앙에 의해 좌우된다······························································································13 3) 처음부터 밀어부쳐야 한다(탕감복귀)············································································14 4) 두려워 말라··························································································································15 5) 요단강을 3일만에 - 사고가 문제다················································································15 6) 애굽근성, 인식관이 문제다······························································································16 7) 이스라엘의 실패의 원인····································································································17 8) 가나안은 그냥 이뤄지지 않는다······················································································18 3.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21 1) 1세대는 신광야를 떠나지 않았다····················································································21 2) 왜 여호수아가 담대했나?··································································································22 3) 이적과 기적이란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22 4) 가나안 복지는 싸워서, 투쟁해서 얻는 것이다.··························································23 5) 가나안 복지는 계획이 아니라 대상자들의 신앙 척도에 의해 좌우되었다············23 6) 가나안 복지를 어떻게 가느냐?························································································24 7) 가나안 섭리는 뛰면서 이뤄진다······················································································25 8) 싸움의 역사··························································································································25 9) 가나안에 가려면 필요한것································································································27 10) 가나안에 대해 몰랐다······································································································29 11) 실천 - 가나안정복············································································································29 [ 3/50 ] 4. 가나안 전쟁······························································································································31 1) 태양아 멈추어라 - 시간의 승리······················································································31 2) 성경은 시대성으로 봐야 한다··························································································33 3) 가나안 거민들과 싸운 이유······························································································34 4) 다 죽인 이유 – 선생님 사연····························································································35 5) 하나님이 하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37 5. 가나안 정복 후························································································································39 1) 가나안 땅 분배와 갈렙······································································································39 2) 가나안 정복후 - 완전히 소탕해야 한다········································································45 ※ 부록··········································································································································47 ■ 점검하기(분석과 점검)······································································································47 ■ 생각하기··································································································································48 ■ 적용하기(실천 및 적용)······································································································50 [ 4/50 ] 1. 부르심을 받은 여호수아 <수 1:1-4>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 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 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 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 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1) 여호수아와 시대성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부르셨습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야! 예, 제가 여기 있나이다. 말씀하시옵소서. 내 종 모세가 죽었다. 예? 모세가 죽었어요?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영적으로 죽은 것이 아니고 육적으로 죽었느니라.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언제든지 역사의 새로운 주인이 나타날 때는 앞 역사의 주인은 없습니다. 앞에 있는 역사의 주인이 사명이 끝났던지, 죽었던지 해야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사람에게 다시금 일을 시키지 앞 역사의 주인이 그대로 있는데도 새 로운 주인을 일어나게 하지는 않습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금쪽같이 눈(目)같이 써먹던 모세가 죽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본래 모세를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이루려던 절대적인 뜻 은, 마치 볼을 찰 때 단숨에 중앙선을 넘고 골 에어리어 근방까지 공을 몰 [ 5/50 ] 고 나가서 멋있는 슛팅을 때려 골인을 시키는 입장처럼, 모세를 통해서 이 스라엘 백성들을 종 되었던 애굽에서 끄집어내어 멋드러지게 요단강을 건너 고 홍해를 건너서 그대로 가나안에 정착하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안되면 조상 탓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그 런 서투른 성서 해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성서 해석을 통해서 볼 때에 그 첫째 이유는 따르는 백성들이 절대적인 믿음과 절대적인 행실을 못했기 때 문입니다. 그래서 절대적인 지도자가 있었음에도 가나안 땅을 못 간 것입니 다. 항상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 없어서 가나안 땅을 못간 것이 아니라 하나 님의 사람은 있어도 따르는 무리들에게 폐단이 있음으로 못갔다는 것입니 다. 오늘날 현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수 1:2>에는 모세가 죽었다.는 말씀에 이어서 내가 다시금 너를 모세 의 다음을 이어갈 사람으로 길러서 준비했으니 네가 이 일을 해야 되겠다. 고 하시며 여호수아에게 엄명한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역사의 전반기를 끝내고 연속해서 후반기 역사를 지탱하는 주인공으로 부르심을 받은 여호수 아! 그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우리는 같이 들어보아야겠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옛날부터 약속했고 그들 또한 희망으로 삼던 약 속의 말씀인데 내가 그럭저럭하고 말겠느냐? 개인에게 약속한 것도 이루어 주는데 너희에게 한 약속은 민족에게 한 약속이요, 그 약속은 인간의 어떤 작은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나의 크고 거대한 뜻을 이루는 일인데...하 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일을 선포했을 때는 그것이 우리에게만 유익이 되 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엄청난 뜻이 있기에 그런 말씀을 선포했다는 것 을 첫째는 믿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 시고 함께 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여호수아를 부르듯이 불러냈습니다. 누가 죽었기에 우리를 새 로이 불러냈는가? 현 종교인들이 그들이 가야 할 가나안의 땅에 정착을 해 야 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했노라. 그러므로 이제 너희들이 그 땅으로 가야 되겠노라. 모세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려 했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모세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백성들로 인해서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 [ 6/50 ] 께서 하나님 역사의 뜻을 이루려고 오시고도 그 뜻을 제대로 성취하지 못한 것은 예수님께서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따르는 무리들 때문이었습니다. 따 르는 무리 안에는 유대인들 즉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제사장들도 있지만 그 시대 주를 따르던 사람들까지도 포함되는 입장입니다.¡그래서 시대의 지 상천국 가나안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다시 지상천국을 기다리는 입장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기성의 세계에서 이루지 못한 뜻을 이제는 우리가 이 루어야 됩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다.고 하시며 여호수아를 세운 것 같이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 나타났다 돌아가시고 그의 자손들로 기독교회가 세워져 현 재까지 존재하는 것 같이, 이제는 살았다고 하나 죽은 꼴이 되어 있는 기독 교에 이어 우리를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하신 약속은 철저히 뜻을 펴기 위한 일들인데 죽은 자로는 더 이상 뜻을 펼 수가 없기에 여호수아를 부르듯이 나와 여러분들을 이 복음 앞에 불러냈습니다. 2) 여호수아가 세운 믿음의 조건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어갈 사람으로 여호수아를 부르게 된 동기는, 물론 하나님께서 기르기도 하고 준비를 시켰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가 신광야 에서 상당히 잘 싸웠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의롭게 싸우고 선하 게 살려고 했던 사람으로 인생을 뜻있고 멋있게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여 러분들의 입장과 흡사합니다. 지금 시대성을 보고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뜻을 세우는 데 있어서 부르심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에는 큰 뜻이 몇 가지 있는데, 그가 민족적인 사람이었고 믿음의 조건과 그 당시 현실의 조건을 그 나름대로 세워주었던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 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불러주십니다. 여호수아가 세운 믿음의 조건이란 무엇 인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절대 믿음으로 의인 되게 하고, 노아가 하나님 의 말씀을 듣고 방주를 만들었으므로 의인 되게 하였다고 하셨듯이 하나님 의 말씀을 절대 믿은 사람들은 의인의 단계에 오른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 [ 7/50 ] 도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믿고 따른다면 의인의 단계에 서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자라야 하나님이 부를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됩 니다. 그 정도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그러면 어떤 것이 믿음이냐? 그때그 때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어 떤 믿음의 조건을 세웠는고 하니, 가나안 복지를 정탐하러 갔다왔을 때 다 른 사람들은 모두 악평했으나 그는 악평치 않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계다. 절대로 하나님이 주신 땅이다.하며 선평을 했습니다. 그 당시의 식 으로 그때의 믿음의 조건을 세운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는 믿음 의 조건을 세운 핵심적인 동기가 되었습니다. 3) 실천자 여호수아 아무리 여호수아에게 모세의 지팡이가 인수인계되고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땅을 허락하셨다 할찌라도 당사자인 여호수아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 다면 가나안 복지는 결코 정복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호수아 를 본받아, 여호수아가 31개 왕들이 있는 골짜기마다 찾아 다니면서 밟고 지나 갔더니만 여호수아의 발걸음을 따라 하늘이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서 실천하는 행동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어느 사람이 성령의 감화 감동을 받아 성령 충만함을 입 었다고 합시다. 성령께서 어떤 물건을 집도록 원하시는데 그 사람이 가만히 앉아 있다면 어떻게 성령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령께 서는 움직일 수 있는 사람에게로 역사의 주권을 옮기게 합니다. 이것이 무 엇을 뜻하는지 깨닫고서 행함이 있는 소유자 즉, 살아있는 자가 되기를 바 랍니다. 힘쓰는 자가 하늘의 주권을 뺏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믿어도 행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에겐 믿음 신앙 이 있지만 진리 신앙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즉 100% 완전한 진리 신앙의 터전 위에서만이 100% 완전한 믿음 신앙이 생기는 것이지 100% 믿음만 가 지고 100% 신앙이 건설되는 것은 아닙니다. [ 8/50 ] 이제 우리가 하여야 하는 일들은 삼천리 금수강산의 골짜기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돌아다녀서 그 골짜기들을 전부 우리들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 니다. 4) 긍적적인 사고 광야땅에서 시대가 다 가버리고 그 후손들이 우왕좌왕 하면서 살길을 찾 고, 종교가 무엇이냐, 길이 어디냐 했을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다시 쓰 기로 했습니다. 이는 악평자가 아니고 선평을 했기 때문에. 나이 차이는 굉장히 많았지만, 이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려고 고민하고 번민했을 때, “너는 마음을 담 대히 하고 강하게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해 주리라. 가나안 땅이 네 땅이 될 것이다.” 하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한 오늘 본문말씀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지도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위대한 위치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 누구를 막론하고 정 치적인 위대한 사람을, 종교적인 위대한 사람을, 또 오리지날을 찾고 자기도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 되지를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함께 했으니 잘 된다는 건전한 생 각을 하고 선평을 했습니다. 세상을 악평으로 보지 않고 선평으로 보고 항 상 순리로 보고서 잘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걱 정바가지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것은 잘 안된다 큰일 나겠다는 식으로 봤 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택하게 된 동기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항 상 긍정적인 사고가 얼마나 사람이 사는데 큰 일인지 모릅니다. 이런 긍정 적인 사고 외에도 마음에 강하고 담대한 사고가 꼭 거기에 필연적이라는 것 을 하나님은 아시고 여호수아에게 간단한 명언의 말씀으로 사상을 휘어 잡 았습니다. 너는 마음을 담대히 강하게 하면서 이 백성을 인도해 가라. 그래 야 된다. [ 9/50 ] 5) 일화 - 가나안은 그냥 갈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기필코 여호수아를 가지고 더 강하게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을 들던 사람입니다. 전에는 왼발이 오른발을 수증 들던 다리였는데 오른발이 다치니 왼발을 가지고 쓰기 시작한 것과 같습니 다.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를 중심해서 애굽에서 나왔습 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나온 당세가 아니라 그들의 2세들을 데리고 역사하셨습니다. 모세의 역사는 너무도 좌절되고 안타깝게 끝났습니다. 여러 분도 모세 때와 같이 악평이나 하면 신광야에서 끝나고 맙니다. 그러면 너 무도 안타깝고 너무도 불행합니다. 이제 선평함으로 가나안 복지를 가야 합 니다. 내가 과거에 1976년도에 고향 근방에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때 내가 산에 서 내려와서 얼마 안 될 때 큰 소리를 치며 돌아다니니까 그 사람이 점쟁이 에게 내 이름으로 점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 점쟁이가 하는 말이 나를 따 라다니면 40대부터 여봐라 하기 시작하니까 무조건 따라가라고 하더랍니다. 나는 그 사람을 데리고 전도를 하러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전도하러 다닐 때 내가 구질구질하게 돌아다니니까 그 사람이 "하늘의 역사 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 갑니까?" 그러면서 불평과 불만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는 말이 "불만, 불평하면 가나안 복지를 못 간다 고 해라."고 했습니다. 불만, 불평, 원망자는 가나안 복지를 가지 못한다고 잠언서에 나와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긍정적인 자는 가나안 복지로 가게 됩 니다. 결국 그 사람은 이 역사를 따라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 좋은 가나 안 복지를 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헤어진 지가 20년 가까이 되었는 데 얼마 전에 전화를 해서 나에게 물었습니다. “두 달 전부터 계속 꿈에서 그곳에 가보라고 해서 전화를 해보고 싶어서 전 화를 했습니다.” [ 10/50 ] “지금 무엇합니까?” “서울 청파동에서 배추 장사를 합니다. 그런데 배추 값이 떨어져서 죽겠습 니다.” “교회를 다니시지요.” “무슨 교회입니까? 나는 교회 다니기도 싫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모세의 후계자가 되어서 제 2세들을 데리고 3일만에 요 단강을 건너 가나안 복지로 갔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복지를 가던 길로 아얄론 골짜기에서부터 밀어붙이고 때려부수기 시작했습니다. "이놈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이다. 우리 조상들이 산 땅인데 너희 들이 살고 있느냐? 그동안 그냥 쓴 땅값을 내놓아라." 결국 여호수아는 이렇게 떳떳하게 싸워서 31개 족속을 한 골짝, 한 골짝 때 려부셔서 아름다운 이상 동산을 만들어서 각 족속들에게 나누어주지 않았습 니까? 가나안 복지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6) 40년간 모세 밑에서 배웠다 하나님만 압니다. 어린 것이 알겠습니까? 태어나면서부터 알겠습니까? 뱃 속부터 알겠습니까? 이미 교육받아서 깨달은 것입니다. 교육받지 않고 교수 가 될 수 있습니까? 미스코리아만 되려고 해도 2,3달 전부터 살도 빼고 뜯 어고치고 나가는데 그냥 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도 돈을 써야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 것도 준비하는데 그가 그냥 오겠습니까?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나이가 먹어가면서 배우고 터득했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도 40 년 동안 배웠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 밑에서 40년 동안 배웠습니다. 모두 배우고 터득해서 되는 것이지 그냥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영웅열사들이 그냥 하늘에서 나타나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세종임금이나 모든 지구촌을 흔들고 갔던 사람들은 지상의 사람이지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은 한 명도 없 습니다. 한 명이라도 있으면 앞으로 공중에서 온다는 말을 믿을 것입니다. [ 11/50 ] 그러나 한 명도 없기 때문에 안 믿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세 번만 약속 대로 안한다면 어떻게 또 믿겠습니까? 6000년 동안 한 번도 하늘에서 온 적이 없는데 왜 그런 말을 믿고 있습니까? 기독교 80%는 공중에서 나팔을 불면서 온다는 것을 다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 습니다. 아니니까 안 일어납니다. 그렇게 문자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싸움 만 하고 대들기나 하지 알겠습니까? 모세가 어릴 때 자기가 온 이스라엘을 지도할 줄 알았겠습니까? 몰랐습니 다. 이미 구출할 때 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끌고 갈 때 ‘성서에서 누 가 구출해서 이 민족을 끌고 간다더니 바로 나로구나’ 하고 깨달은 것입니 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복지를 쳐부수며 갈 줄 알았겠습니까? 모세인 줄 알 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자신이 가서 하다 보니까 ‘모세가 아니라 나구나. 성경에서 나를 두고 이야기했구나. 모세인 줄 알았더니 아니구먼’ 하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말씀을 읽고 더욱 깨닫게 된 것입니 다. [ 12/50 ] 2. 가나안 정탐 <민 14:6-9>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 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 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1) 모세를 따르지 않는 이스라엘- 가나안으로 가야 한다 다음 여러분에게 교훈을 시켜 말씀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일차 모세가 자기 백성들을 애굽에서 빼내듯이 일단 따라 나왔습니다. 모세가 갔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나라에서 너무 지겨운 삶을 살았습니다. 일단 모세 가 가니 자기 지겨운 것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해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두 번째 가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조금 숨 좀 쉬고 어려운 것이 해결되니 그 다음부터는 모세의 말을 안 들었다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것을 건져 주 었더니만 그 다음에는 제 길로 간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이 신 광야에서 그와 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보다 이상적인 세계로 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일차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다 기성 시대에서 보다 썩어져 가는 옛사람의 모습에서 벗어났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떻게 살았나를 통해서 다 알 수가 있습니다. 사는 것은 어느 나라든 다르 지만 정신문제는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근본된 이상을 찾지 못했을 때는 어 느 나라든 똑같다는 것입니다. 나도 역시 애굽을 벗어났습니다. 사망의 애굽 을 벗어났습니다. 여러분들도 사망의 주관권을 벗어 나 따라 온 것입니다. 이제는 가나안 복지로 그대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조금 어려운 문제가 해 [ 13/50 ] 결되었다고 거기서 자기 주관을 세우면 안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 사 람들이 자기를 괴롭히지 않고 종살이시키지 않으니 자기 주관을 세운 것입 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끌고 나온 모세의 말을 절대 들어야 했습니다. 그 러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40년 동안 탕감을 받고 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한 40살 되었을 때 나왔는데 광야에서 40년을 더 유리하 다 보니까 80살이 되었습니다. 고로 힘이 없어 가나안 복지를 들어갈 수도 없고 또 들어간다 해도 하나님 뜻을 이룰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40년 탕감 이 끝난 다음에 여호수아를 불러서 다시금 가나안 복지로 가는 역사를 시작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자손들이 같이 가게 되었죠. 그래서 오늘의 현실도 똑같은 입장으로 섭리를 뛰고 있습니다. 그런 섭리의 뜻이 없으면 이 나라를 오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땅을 시대의 가나안 복지로 생각하며 시대의 복음을 넣으라고 나를 보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곳에 올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장래에는 창대하게 복음의 나 라가 될 것입니다. 마치 한국이 미약하게 시작했지만 오늘날 구름떼를 이룬 격일 것입니다. 2) 평소 신앙에 의해 좌우된다 가나안 복지에 정탐하러 간 자들은 지도자들이었는데 그들이 차고 넘치는 충만한 신앙을 가졌더라면 악평하지 않았을 텐데 그들이 평소 살 때 여호수 아와 갈렙 같지를 못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평소에 신앙이 아주 불이 붙고 아주 좋은 신앙이었습니다. 열 명의 두령들도 똑같은 것을 보았는데 왜 여호수아와 갈렙 같이 못 보았습니까? 평소 닦여져 있는 사람은 어디를 내놔도 흔들림이 없고 오히려 환경이 우 습게 보입니다. 태권도를 5단 정도 배우면 아무리 등치가 큰 사람이 앞에 있어도 작게 보인답니다. 또 노래를 많이 불러보고 자주 청중 앞에 서 본 사람들은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작게 보이고 어린 아이로 보인답니다. 그 러나 노래를 많이 안 불러 본 사람은 어린 아이 앞에 가도 얼굴이 붉어지고 [ 14/50 ] 힘이 든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이 평소 신앙이 약했기 때문에 현실에 가서 보았을 때 들 통나고 간 것입니다. 믿음에 들통났지, 사물의 관찰력에 들통났습니다. 여호 수아, 갈렙이 평소에 얼마나 사물의 관찰력이 이상적이고, 믿음이 이상적이 었던가 그 때 비로소 증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3) 처음부터 밀어부쳐야 한다(탕감복귀) 결국 그들이 악평의 입장이 되었습니다. 왜 악평이라는 말을 붙이는고 하 니 그들이 옳게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악평으로 보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이 틀림없다고 했습니 다. “젖과 꿀이 흐르고 있음을 우리는 보았노라. 환경이 그러하더라. 먹는 것과 입는 것도 모두가 환경이 그러하더라. 우리보다 잘 먹고 잘 지내고 낫 더라. 우리는 광야에서 허허벌판에서 사는데 정말 좋더라.” 그렇게 했더니 여호수아와 갈렙이 말같지 않은 소리를 한다고 오히려 악 평한 자들의 잘못된 그릇된 말에 의해서 결론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탕감기간 40년을 받았습니다. 40년 동안 탕감을 받다보니까 그 때 애굽에서 나올 때 창창하던 사람들이 늙어 버렸습니다. 탕감을 받고 다시 재도전을 할려고 하니까 나이적으로 볼 때 재도전 할 길이 없었습니다. 나이 80살 된 사람들이 다시금 적들과 싸울 길이 없었습니다. 탕감은 끝났는데. 사람이 때와 시기라는 것이 그렇게 무섭습니다. 젊었을 때 한 번에 밀어 부쳐야 됩니다. 한 번에 끝나면 헛일입니다. 두 번도 안됩니다. 탕감이 끝나 고 보면 그 시대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못 들어갑니다. 한 시대의 탕감이 끝나고 나면 일단 끝난다는 것입니다. 신광야에서 탕감이 끝났으나 나이가 먹어서 못 들어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합니까? 우리에게 그런 것이 많은 교훈이 됩니다. 애굽, 신광야, 가나안복지 노정의 교훈은 우리의 생활 속에 엄청나게 크게 좌우되는 교훈을 줍니다. [ 15/50 ] 4) 두려워 말라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쳐들어가기 전에 정탐꾼을 보냈을 때 정탐하는 사 람들이 여리고성 사람들을 어떻게 봤는고 하니 “야. 그들은 정말로 큰 영웅 같고 키가 구척이요 장대같이 키가 크고, 그들을 보니까 너무너무 힘이 좋 고 무섭고 두렵고 항우 같이 보입디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못 간다고 포기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을 보니까 메뚜기 같다. 아프리카의 코끼리 잡는 민족같이 비가 난쟁이만큼 하고 무릎 밑에서 노는 데 다리로 톡톡 차 돌려도 쪽쪽 뻗게 생겼다. 싸우고 뭐하고 게임도 안되겠 다.”고 했습니다. 사람을 크게 보면 두려워서 절대 그 사람에게 가까이 못합 니다. 작게 봐야 합니다. 다스리려면 작게 보고 다스림을 받으려면 크게 보 십시오. 믿습니까? 민수기 14장 23절에 보면, 그래서 가나안 복지를 포기했 다고 나와 있습니다. 적은 크게 보이고 자기는 작게 보이는 것은 망할 징조 의 사고들입니다. 큰 자에게 놀란 사람들은 강아지만 쫓아 와도 질겁을 하 고 도망갑니다. 5) 요단강을 3일만에 - 사고가 문제다 담대한 마음으로 가라는 것은 무슨 뜻인고 하니, 거기에 원주민도 있고, 모든 겁나는 사람이 있으니까 담대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요단강을 3일만에 건너 갔어요. 유대민족들이 모세를 중심해서는 40 년동안 벅거적거려도 못건너갔는데 3일만에 건너가 버렸어요. 너무 차이가 많지 않습니까? 3일에 건너갈 땅을 조건이 안 되니까 못 간거여. 악평자는 못 가고 긍정성이 없는 자는 못갔다는 것입니다. 선평을 하니까 3일만에 건 너가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인식관이 뒤집어지면 수십년이 가도 못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 나 긍정할 때는 너무 쉬운 길을 갔습니다. 담이 높아서 못간 것이 아니고, 길이 멀어서 못간 것이 아니라, 우리 삶 가운데 보면 자기의 사고 때문에 [ 16/50 ] 사고를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사고가 사고를 냈어요. 6) 애굽근성, 인식관이 문제다 열 두 지파들이 하나씩 가서 검토를 하고 왔는데, 열 명은 그곳이 우리가 살만한 곳이 못되고 너무너무 무서운 곳이라고 평가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또 두 사람은 너무너무 좋은 곳이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열 사람은 너무너 무 나쁜 곳이다, 젖과 꿀이 흘러가는 곳이 아니고 너무너무 고통스러운 세 계더라 하고, 오늘 나오는 여호수아와 갈렙 이 두사람은 너무너무 좋은 곳 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수에 의해서 그 땅을 악평함으로 하나님께서 형벌을 줬지요. “나 여호와가 좋다고 가자고 했는데 너희들이 마음대로 안된다고 하느냐? 원주민들 쫓아내면 간단할 것이고, 개발하면 좋은 땅이 되는데. 떡이 그냥 있냐? 떡방앗간에 가서 찧어서 만들어야 떡이 되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격려하시면서 책망했습니다. 너무너무 공짜를 좋아하고 남의 집에 사는 머슴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고. 그리고 결국 수고와 애씀 가운데 얻는 것을 모르고, 가나안 복지가 하나 님께서 다듬어 놓고 신발만 벗어놓고 들어가면 되는 곳으로 생각을 했습니 다. 종들 생활하던 사람들이 늘 그렇게만 생각했던가 봅니다. 애굽에서 4백 년간 살았었기 때문에. 결국 지도자들이 그렇게 생각을 잘 못 했습니다. 사람이 인식관 차이가 심히 크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인식관을 잘못 가지 게 될 때는 일생을 두고 고생이 많다는 것입니다. 나는 산에서 기도생활을 할 때 인식관에 대한 도를 크게 깨닫고 내려 왔습니다. 그 땅을 가보니까, 젖도 흐르지 않고 꿀도 흐르지 않으니까 이게 뭐냐고 그랬어요. 이들은 문자적으로 꼭 젖과 꿀로만 생각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 서는 푸른 초장을 젖으로 보고, 흘러가는 요단 강물을 젖으로, 보고 먹고 살 수 있는 앞날의 기반들을 꿀로 봤습니다. [ 17/50 ]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듯 하면 금방 일어나서 높은 대궐을 짓고 살 것을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남의 집에서 저렇게 새빠지게 하는 것 보다 지가 가서 하면 잘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악평하고 지도자들이 돌아서 버렸습니다. 결국 모세도 갔다가 온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하니까 상당히 좌절을 했는가 봅니다. 그 후에 두 사람이 와서 하나님이 준 땅이 이 광야에 비하면 너무너무 궁 궐 같은 곳이고 너무너무 좋은 곳이고 너무너무 개발할 곳도 많다고 했습니 다. 푸른 초장에 양들이 한가롭게 놀고 요단 강물은 유유히 흘러가는 정말 로 멋있는 곳이라고 선평을 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장소를 갔다 왔는데 여호수아는 어떻게 그렇게 봤느냐고, 거기에 원주민들이 살아서 창을 갖고 돌아다닌다고 하는데 맞느냐고 했어 요. 그렇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겠냐고 하나님 으로 돌렸습니다. 결국 이들은 다수로 하나님이 준 땅을 악평했기로 40년 동안 광야땅에서 2백만명이 모세와 더불어 있게 되었습니다. 7) 이스라엘의 실패의 원인 정탐을 하러 간 12사람 중에 10사람은 돌아와서 악평을 했습니다. "그곳 이 무슨 젖과 꿀이 흐릅니까? 꿀은 커녕 흙탕물도 흘러가고 있지 않고 있습 니다." 그들도 악평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본 것이 그렇고 느낀 것이 그렇기 에 그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이 잘못되면 안됩니다. 개 념의 차이가 큽니다. 잘못 생각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사고를 잘못하면 사 고가 납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주는 것은 없지만 늘 "사고를 잘하 라. 좋은 사고를 가져라. 나쁜 사고를 가지면 안된다. 좋은 쪽의 사고를 가 져라"하고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런데 자기만 좋은 사고를 가진다고 되는 것 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몇 사람 때문에 자꾸 피해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같은 사고를 갖도록 자꾸 복음을 전하고 이야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 18/50 ] 그래서 결국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갔던 12사람 중에 10사람이 잘못된 사고를 가지고 "이곳은 좋은 땅이 못된다. 여기서 무슨 이상세계를 이룬다는 말이냐?"면서 악평을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사실상 악평을 하고 싶어서 그 런 것이 아닙니다. 다만 보이는 대로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는 마음이 있었다면 환경을 안 쳐다봅니 다. 무조건 하나님만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비가 오던지 눈이 오던지 무조건 하나님을 바라보다 보면 자기가 그 세계를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8) 가나안은 그냥 이뤄지지 않는다 악평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악평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현 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을 섬기고 잘될 것을 믿고 살라 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악평했던 10명의 사람들은 가나안 복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가나 안 땅을 가면 그냥 젖과 꿀이 흘러가고 이상적인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그 처럼 이스라엘 민족들은 가나안 땅에만 가면 다 되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가서 손질하고 파고 원주민들이 쓰던 것을 없애 버리고 다시 베어 내고 잘 라 내고 잡초를 없애고 밀어내고 잔디를 입히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 생각을 안했습니다. 그러니 발전이 없습니다. 정신 상태가 썩어빠졌다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무엇이라고 하나님께서 다 해놓고 가서 앉으라고 하겠습니까? 우 리가 어디를 가도 앉을 장소를 만들어야 하고 잔디밭을 만들어 놓았을지라 도 또 비닐을 깔아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습 니다. 전진적이고, 향상적이고, 발전적이고, 꿈틀거리고, 꼬무락거리고, 손톱 으로라도 파고, 머리가 터지도록 박고, 몸이 부서질 정도로 밀어붙일 정신을 갖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냥 가면 덤으로 되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습니다. 자기가 열심히 해서 자기가 잘 되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수고한 만큼 편해지는 것입니다. 한 삽이라도 흙 을 더 뜨고 앉으면 더 편합니다. 그러다가 잔디까지 입혀 놓으면 더 편합니 [ 19/50 ] 다. 바로 우리에게는 그런 정신과 사상이 있어야 합니다. 나도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보다 우리가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 습니다. 그전에는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나도 스스로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가지고 삽니다. 이미 지금 성공해서 은행 창 구에 돈을 쌓아놓고 사는 사람들은 옆의 사람을 안 쳐다보고 악착같이 절약 한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수고한 만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열심히 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 하십니다. 하나님도 하고자 하시는 자에게 역사 하신 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살았습니까? 그렇게 안 산 사람들은 앞 으로 그렇게 사십시오. 나는 여러분들이 잘되는 것을 원해서 이런 엄명을 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라고 했습니다. 나는 시범조로 그렇 게 살다보니 잘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10배, 100배 잘 되고 가속력이 붙어서 100개 만큼 일을 했지만 120개도 오고, 150개도 오게 되는 것입니 다. 악을 쓰고 혈기를 내면서 싸우기도 하는데 그런 것을 못합니까? 여러분들은 학교에서 학문을 배웠으니 이제 인생을 배워야 합니다. 인생 은 그냥 마구잡이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만물에도 질서가 있듯이 질서 정 연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실패한 원인이 있습니다. 잘된 사람 은 잘된 원인이 있고 못된 사람은 실패한 원인이 있습니다. 이번에 실패했 으니 다음에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개척 정신이 없었습 니다. 애굽 나라에서 일을 했던 힘이 있는데 편히 쉬려고 했던 것입니다. 나를 보십시오. 나는 벗어붙이고 일을 했습니다. 나는 산에서 연단 받고 수고하고 애쓰고 몸부림치고 했는데도 월명동 개발할 때 지금도 비를 맞으 며 일을 하지 않습니까? 내가 그렇게 산에서 일을 했는데도 또 일을 합니 다. 내가 아까 이야기 한 대로 산에 가서 30년동안 했는데 서울에 와서 또 비를 맞고 있다고 한심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전에 하던 것이 있으니까 비가 와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서 거기서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결국 내가 그때 기도하던 삼 [ 20/50 ] 각산 근방에 가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으로 정탐을 나갔던 여호수아와 갈렙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들이었지만 생각하는 정신이 달랐습니다. "야. 생각한 것보다 너무 좋다. 여기를 밀어붙이고 천삽뜨기 운동을 몇 년 하다 보면 기가 막힌 천국이 되겠다. 야, 이것이 다 우리 땅이란다. 밟는 대 로 우리 땅이란다."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구나. 요단강 물이 흘러 내리고 있구나. 포도송이가 많구나. 저 원주민들이 농사짓는 것을 봐라. 우리가 농사를 지으면 기가막히 게 지을 텐데." 성공은 생각 차이입니다. 여러분들 건전한 생각과 이상적인 생각을 갖고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잘 되는 꼴을 보고 싶습니다. 조만식 선생은 죽으면서 우리 나라가 잘되는 것과 일본이 망하는 것을 보고 싶다며 자기 비석에 눈을 새기라고 했다고 합니다. 나도 그처럼 여러분들이 잘 되 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 21/50 ] 3.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수 1:5-7>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 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 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 니 1) 1세대는 신광야를 떠나지 않았다 육신이 죽었을 때도 죽었다.고 하지만 사명이 끝났을 때도 죽었다.고 합니다. 본문의 모세나 그 시대의 사람들 또한 시대적으로 볼 때에 육신적 으로는 죽지 않았을지라도 사명이 끝났던 것입니다. 여호수아 때 한꺼번에 사람들이 다 죽은 것은 아닐테고, 그렇다면 나이먹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 다는 말인가?여호수아가 젊은 사람들만을 모아서 몰고 가고 노인들은 데려 가지 않은 것입니다. 노인들은 앉은 자리에서 자리잡고 40년 동안을 살았기 에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도 경험했겠지만 부모님들에게 40년, 50년씩 살던 시골을 떠나자고 하면 순순히 그렇게 합니까? 나는 집 떠나선 못산다. 고향 산천을 떠나서는 못산다. 늙으면 까마귀도 고향을 찾는다고 하는데 너도 이제 봐라.그래서 결국 여 러분들만 보다 이상적인 학문의 가나안을 따라서, 보다 이상적인 삶의 젊은 이가 노는 터전을 따라서 보다 높은 수도권인 도시를 따라서 나와 기어 붙 였습니다. 그와 같이 그 당시에도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은 한꺼번에 다 죽 고 젊은이들만 살아남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젊은이들만 몰고서 가나안 복지로 진군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 또한 기성은 한 시대가 끝나 [ 22/50 ] 고 사명도 끝났으며 그 진리를 갖고는 버르적거리기만 하지 다시 뒤집을 수 가 없고 엎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여러분과 같은 젊은이들만 모아서 시대를 향해 뜻을 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의 우리 가나안이 어디냐? 이 말씀의 뜻을 펴고 사는 곳이 바로 가나안이 아니겠습니까? 2) 왜 여호수아가 담대했나? 여호수아 같은 담대한 믿음을 가져라. 왜 여호수아가 담대했습니까? 절대 적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을 하셨고 또 하나님이 그 섭 리권을 보실 때 같이 할 다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배짱 내놓고 담대하였 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같은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모세도 담대했습니다만 그가 처음부터 담대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자기)이외 다른 사람을 들어서 역사할 사람이 없고 오직 자기 밖에 없 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그대로 역사를 밀고 나간 것이 바로 이 무서운 애굽의 바로를 벌벌 떨게 만들었던, 핵폭탄보다도 더 위력있는 모세 의 담대였습니다. 또한 이런 담대한 터전 위에 하나님께서 마음놓고 섭리권에 투자할 수 있 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담대했는데 현대의 사람들 에게는 그런 담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애석한 일입니다. 3) 이적과 기적이란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여호수아도 사명을 받게 되니까 31개 족속들을 무난히 다 쳐 없앨 수 있 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요단강을 건 너가는 엄청난 일을 했습니다. 얼마나 기적이고 이적입니까? 그런데 깊은 데를 지나갔기 때문에 이적과 기적이 아닙니다. 사실상 요단강의 깊이는 별 로 깊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은 삼팔선과 같은 입장이었고, 또한 국경을 넘는 것과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모세가 홍해바다를 건널 때에도 마찬가지 [ 23/50 ] 였습니다. 홍해바다가 애굽의 한계였습니다. 그 한계를 벗어나서 살게 되었 다는 것입니다. 결국 깊은 흥해를 가로질러 건넜기 때문에 기적이 아니라 발목까지 닿는 골일지라도 국경을 넘어가서 다른 세계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이 이적과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 다. 여호수아에게도 하나님이 능력으로 함께하심은 사명을 주었기 때문이다. 4) 가나안 복지는 싸워서, 투쟁해서 얻는 것이다. 그를 통해 가나안 복지의 31개 족속을 다 짓밟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밟 아 밟아 짓밟아 완전히 짓뭉개 놓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복지란 싸 우고 투쟁해서 보다 이상적으로 젖과 꿀이 흐르게 만드는 것이지 그냥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싸우고 투쟁해서 승리해야 됩니 다. 요새는 좀 독해야 됩니다. 예수 믿는다면서 흐리멍텅하고 순진한 사람을 저는 싫어합니다. 정말로 찌를 때 찌르고 일어날 때 일어나고 하면서 맺고 끊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5) 가나안 복지는 계획이 아니라 대상자들의 신앙 척도에 의해 좌우되었 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싸워서 정착하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신광야는 정착할 장소가 아닙니다. 가나안 복지는 정착할 장소이지 만 신광야 만큼은 정착할 장소가 아닙니다. 그 곳에서는 자꾸 가야 됩니다. 그런데 이들이 그 넓은 홍해 바다는 건넜는데 그 좁은 요단강은 왜 못 건넜 느냐? 그것은 다리가 짧아서 못 건넌 것도 아니고 강이 깊어서 못 건넌 것 도 아닙니다. 그 넓은 홍해 바다를 건너 놓고 요단강을 못 건넌 이유는 그 마만큼 그 곳을 악평했기 때문에 못 건너게 되었고 또 그들의 모든 사명이 거기서 일단 결정되었습니다. 40년으로 결정되었습니다. 40년이 끝났을 때 늙은이들이 건너가겠습니까? 힘이 있어야 건너가지요. 못 건너 간다는 것입 [ 24/50 ] 니다. (민 14:33-34) 애굽, 신광야, 가나안 복지 노정, 이것이 구약에 대한 상징 노정이요. 표 상 노정이 되는데 이와 같이 신약이 돌아갔습니다. 구약의 4000역사는 400년 애굽노정과 같고, 신약 2,000년 역사는 40년 신광야 노정에 비할 수 있습니다. 모세 일어나서 일하듯이 예수님이 나타나 서 구약에 있는 사람을 애굽에서 빼내듯 빼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예수님 께서 당장에 천국을 이룰려고 했지만 유대인들의 악평으로 인해서 되지 않 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같은 입장에서 재림 역사가 다시 시작되어야 한 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계로 전형적인 역사가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전 형적인 역사는 계획이 아니라 인간들 곧 그 원하고 바라는 자들의 신앙 척 도에 따라서 좌우되었다는 것입니다. 6) 가나안 복지를 어떻게 가느냐? 그래서 인간은 각종 각색의 자기급의 가나안 복지를 찾아야 됩니다. 자기 급의 가나안 복지를 찾고 하나님의 전체 테두리 안에서 그 뜻을 이루며 가 는 것입니다. 그 테두리 안을 벗어나면 안됩니다. 사망권을 벗어나서 신광야 급을 거쳐서 생명급에 해당되는 그 가나안 복지. 보다 이상의 세계를 가나안 복지로 보고 보다 지상천국 세계를 가나안 복 지로 보는데 그 가나안 복지는 어떻게 가는고 하니, 순서를 밟아서 갑니다. 탕감 받고, 지도자를 만나고, 그런 계통을 꼭 통해서 가야만이 가나안 복지 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냥은 가나안 복지를 못가는 것입니다. 쉽게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도 보다 신천지의 가나안 복지를 찾고 불교도 유교도 보다 가나안 복지 세계를 찾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복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여호수아 때는 신광야에서 가나 안 복지에 갔다와 본 여호수아 외에는 그 시대 가나안 복지를 아무도 몰랐 습니다. 어떻게 가는 것인지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 25/50 ] 7) 가나안 섭리는 뛰면서 이뤄진다 너희는 다 시대의 여호수아이다. 시대의 가나안을 뚫고 왔다. 그러나 가나 안에 왔어도 가만히 있으면 가난하다. 뛰고 달려야 한다. 그래서 옛조상이 쓰던 곳을 다시 찾아야 한다. 육으로는 조상이 뺏긴 땅을 말하는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뺏긴 에덴을 다시 찾아 사는 것이다. 흑암권을 쳐부수고, 조건을 세우고, 어둠을 쳐부수면서, 하나님이 원래 아담과 하와를 중심하여 하려던 그 일을 하여야 한다. 본래의 가나안을 차지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본래 하 나님의 섭리하신 땅, 역사의 땅을 차지하고 가야한다. 가나안이라고 하여서 가만히 있으면 밥이 들어오고 떡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대궐을 주었어도 때가 되면 밥을 하고 때가 되면 잠을 자야 된다. 그런 것을 사람들은 너무 모르고 살고있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존재하려면 모두 다 절대적 으로 존재 조건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예정되었다고 그냥 살면 된다고 한다. 기다리면 해가 그냥 뜬다고. 그러나 해도 그냥 뜨는 것이 아니고 지구가 도 니까 올라오는 것이다. 지구가 가만히 있으면 뜨겠느냐. 지구가 가만히 있으 면 죽은 것이다. 그러나 태양은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 법칙상 죽은 것이 아 니다. 빛만 비추면 살은 것이다. 그래서 존재대로 존재의 사명을 해야 한다. 존재 사명을 안하면 절대 안된다 일할 때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러니 앉아서 구상만 하지 말라고 했다. 전도도 A라는 사람을 전도해야 그가 B라는 사람을 소개한다. A라는 사람에게 전도의 문이 안열리면 B라는 사람을 소개시키지 않는다. 그 렇게 문이 열리는 것이다. 문은 계속 열어가는 것이다. 대문을 열어야 방문 을 열수 있고, 방문을 열어야 금고 문을 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법칙이 다. 그렇게 계속 나가야 한다. 8) 싸움의 역사 성서를 보면 여호수아가 가나안의 31개 족속을 쳐부수고 가나안 땅을 빼 [ 26/50 ] 앗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에는 신광야보다 다섯 배 정도 많은 족속 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빼앗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힘쓰고 애쓰고 싸 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극히 담대함을 가지라고 했지요. 그래서 결국 가나안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실상 남의 땅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자기 땅을 찾은 것입니다. 모세 때는 신광야밖에 가지를 못했 습니다. 전반전 역사는 신광야형의 역사, 후반전 역사는 가나안형의 역사입 니다. 1차 역사는 가나안형의 역사를 갈 수 없습니다. 싸움을 할 때는 모사와 기술이 필요하고 성격도 대단해야 합니다. 여호수 아가 가나안에서 승리한 모습을 보며 우리는 여호수아같이 담대해야 되겠습 니다. 우리는 우상을 섬기는 다신종교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신약의 본질을 찾았습니다. 가나안 복지형의 주관을 가지고 누구보다 본질에 가까운 역사 를 가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리 스도가 오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고할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예수님이 바 로 그 모든 답을 주러 온 사람이었습니다. 이 시대에도 예수님의 신약역사 를 절대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토대로 해서 나간다면그 시대가 생각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데 우리는 어디를 빼앗아야 될 것이냐? 신약시대의 예수님의 본질을 빼앗아 들어가야 됩니다. 어떻게? 주님께서 전한 말씀을 근본으로 받아들이고 생활하면서 찾아야 됩니다. 그 율례와 법도에 따라 산 다면 제 2의 신약역사가 폭발될 것입니다. 모세가 1차로 침노했을 때는 신 광야까지 갔지만 2차 때 여호수아가 침노했을 때는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이상세계를 깨닫고 그 이상세계를 침노해 들어 가야 됩니다. 세상은 총칼로 무섭게 싸우지만 신앙의 세계는 선으로 싸워야 합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듣고 싸워서 이길 것이 무엇인지 터득해서 역사 앞에 주인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는 말은 도전적 이며 책임성있는 말씀입니다. 그냥 얻는 것이 아니라 침노해야 얻는다는 것 입니다. [ 27/50 ] 싸움을 하는 사람은 첫째, 담대해야 됩니다. 과감하고 자신만만해야 됩니 다. 모사가 없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생활 속에 목적 달성을 하려면 침노하십시오. 침노할 때는 요령, 기술, 담대력이 있어야 하 고 여러 사람과 작전도 세우고 해야 됩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소원이 한 주간에도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제 역사의 눈을 뜨고 시대의 눈을 떴습니다. 그러니 가만히 있지말고 침략하십시오. 먼저 치는 편이 한 번이라도 더 때리게 되어 있고 담대한 자가 미인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관이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약하고 빌빌대면 안됩니다. 끈질기게 견디고 게기는 성격이 있어야 하고 고 집도 세야 합니다. 정신나간 사람같이 흐리멍텅하면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가 힘듭니다. 슬픔도 모르고 아픔도 모르고 끈질기게 밀어붙이는 성격이 있 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언젠가는 금빛찬란한 옷을 입고 황금열차를 타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독한 주관과 강한 마음을 가지고 생활 속에 써먹어야 합니다. 강하게 하는 만큼 강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 못지않게 잘 살고 있습니다. 이런 민족에 파묻혀 사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자기 민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 고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자기에게 희망과 소망을 갖고 자 기를 키우십시오.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 열 발자욱 가면 얻을 수 있는데 아홉 발자욱 가다 말면 얻을 수 없습니다. 얻을 때까지 침노해야 됩니다! 쫓 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편안하다고 하지 말고 용감하게 쳐들어가야 됩니다. 나폴레옹같이 용감하게, 처어칠같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멘! 9) 가나안에 가려면 필요한것 보다 가나안 땅이라는 것은 보다 자기의 본토, 자기의 본성입니다. 인간의 가나안은 자기의 본능을 찾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가나안 땅은, 가난한 [ 28/50 ] 사람이 부자가 되고, 옛날에 부자였는데 망했다가 다시금 정신차리고 달동 네에서 해동네로 올라온 것도 복직된 가나안땅이지요. 「본래 하나님이 계획한 대로 했다」 이것이 본래 가나안 땅이 아니겠습니 까? 가나안 땅이 여기있다 저기있다가 아니라, 사람마다 다르고, 민족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종교성마다 다릅니다. 각각 종교마다 따지는 것이 다릅니다.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음식을 각각 다르게 먹는 것과 똑같습니다. 쓴나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단나물을 좋아하는 사람 이 있고,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소주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식 성마다 이렇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하게 된다고, 이것을 좋아하는데 저것을 먹는다고 천국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래서 자기의 종교성이나 자기의 생활성이나, 인생성에 따라서 자기의 가나안 땅이 각각 주어지는데, 그 가나안 땅을 가려면 선평하면서 인생을 살으라는 것입니다. 자기 인생을 살 때 선평하면서 살아야되고 보다 긍정적으로 살아야되고, 그 터전 위에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고 조언을 받는다면, 그런 세계를 감당하려면 강하고 담대하라는 한결같은 답입니다. 인생을 사는 답입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 화면 앞에 앉아 있는 각 나라 모든 사람 들, 여러분의 선조들이 못갈 가나안을 가야될 시대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려면 첫째 긍정적인 사고를 가져야 되고, 낙심하지 말고, 담대한 마음 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강해야 돼요. 약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병들 어 약해도 안되고 마음이 약해도 안되고, 병이 안 들었어도 약하면 안된다 는 것입니다. 또 하고 또 하고 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째 일어나서 가야 됩니다. 칠전팔기 용기를 얻어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뭘 하다가 안되면 뜻이 아닌가 보다 하고 돌아갑니다. 뜻 의 결정체가 뭔지 몰라요. 뜻일지라도 열번 해도 안되는 것이 있어요. 하나 님의 뜻이 있고 자기의 뜻이 있고 온인류의 뜻이 있을지라도 매번 어려움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약한 사람들은 흔히 뜻이 아니라고 관을 잘 못 먹어서 돌아가 버려요. [ 29/50 ] 10) 가나안에 대해 몰랐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하나님도 모르는데 어떻게 믿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너무 답답한 일들입니다. 천국을 찾아가는 사람이 천국을 모르면 되겠 습니까? 모세를 중심으로 해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가나안 복지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대 백성들에게 가나안 복지가 어디냐 고 물었을 때 그들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내가 갔다 왔 으니 나를 따라 오라” 하고서는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끌고 갔습 니다. 그곳은 자기들의 고향이었습니다. 옛날에 가나안 땅에서 살던 이스라 엘 민족이 애굽으로 포로로 잡혀가서 40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게 되었습 니다. 그 포로생활이 끝나고 다시 모세를 중심으로 해서 애굽을 나와서 여 호수아를 중심으로 해서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곳은 젖과 꿀 이 흐르는 이상세계였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주관권에 살 때 그 것이 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에 있을 때는 그들이 하나님을 모시지 못 하고 애굽의 왕을 모시면서 그 나라의 주관을 받으면서 살았기에 천국이 되 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메시야가 오지 않았을 지라도 그때 보낸자 모세, 여 호수아를 중심으로 역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11) 실천 - 가나안정복 여호수아는 실천해서 가나안을 정복했습니다. 우리도 실천자의 뒤를 따라 실천하게 해주시옵소서. 온 지구상의 영웅열사들은 실천자들이었습니다. 이 들이 실천하지 않고서는 꿈을 이룰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들은 모 든 자들은 실천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게 해주시옵 소서. 어떤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주시옵소서. 건강도 실천하게 해주시옵소 서. 가만히 있지 않고 실천하게 해주시옵소서.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과 이 시대를 따라오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과 성령의 감동감화 역사 하시고 능력 [ 30/50 ] 과 권능을 부리시옵소서. 같이 뛰쳐나올 수 있는 실천력을 주시고 말씀에 앉은뱅이 신앙은 걸어가게 해주시옵소서. 오늘날 기독교가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의 관념적인 세계에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같이 일어나 빛을 발하게 해주시옵소서. 이들이 진리와 더불어 일어나 빛을 발하게 해주시옵소서. 오직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사는 자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이 시대에 나와 같이 모으고 헤치는 자들이 되 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빠져나오게 해주시옵소서. 이러므로 해서 모든 환경과 여건을 뛰쳐나와서 온 생명의 세계를 정복하게 해주시옵소서. 이들 로 인해서 온 세상은 교구가 되고 온 지구상은 다 우리의 교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쓰는 단상 외에는 다 교회입니다. 지붕이 없지만 역시 하늘 을 지붕 삼아 외칩니다. 우리에게 태산같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을 주셨습 니다. 우리에게 능력과 권능을 더해주시옵소서. [ 31/50 ] 4. 가나안 전쟁 <수 10:10-14>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 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도륙하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 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찌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 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 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 냐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 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1) 태양아 멈추어라 - 시간의 승리 여호수아가 『태양아 멈추어라』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왜? 계속 싸우면 이기는데 태양이 넘어가면 캄캄해서 못 싸운다 그것입니다. 전술법에 있어서 지역을 잘 알아야 승리합니다. 그런데 풍토적으로 볼 때 그 사람들이 지역을 더 잘 알지 이들이 더 잘 알겠습니까? 그들은 거기서 살았는데. 지리적으로 볼 때 그들은 눈 감고도 돌아다닐 수 있었으나 여호 수아 군대는 낮에 돌아다녀도 이 골짜기가 어느 골짜기인가 맨날 물어본다 는 것입니다. 태양이라도 있으면 좀 방향이라도 잡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태양아 멈추어라.』하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시간이 아 쉬웠습니다. 우리가 뭘 할 때 보면 시간이 아쉬울 때가 있지요? 많이 있습니다. [ 32/50 ] 여호수아가 기도하니까 태양이 멈추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호와께서 같 이 싸워주었기 때문에. 그것을 기독교에서 철통같이 기적과 이적이라 하면서 모두 가르치는데 우 리가 코웃음을 치지요. 그전에는 『아멘 , 아멘』하면서 『주여. 능력과 권능의 하나님』했지만 지금은 코웃음을 칩니다. 이런 위치까지 우리가 변화를 받고 알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 면 ‘저것. 몰라도 한참 모르네.’그런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되겠습니까? 은혜 를 정말로 까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같이 말려 들어갔습니다. 같이 죽었습니다. 지금은 같이 죽을 수가 없지요. 약 3,500년 전이기 때문에 시대성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500년 전에는 태양이 가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천동설 시대였기 때문에. 태 양이 간다고 했으나 따져보고 확인해 보니까 태양이 가는 것이 아니지 않습 니까? 초등학교 때 자연시간에 태양은 안간다고 배우지 않았습니까? 초등학 생만 돼도 벌써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박사들이 절대 태양이 멈추었다고 해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같이 춤을 추고 따라갔습니다. 박 사가 최고인 줄 알고. 박사도 모를 때는 모릅니다. 천동설 시대의 과학박사 들도 전부 태양이 가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렇게 바보입니다. 모를때는 박사 가 문제가 아닙니다. 게급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아니 라는 산 교훈의 진리의 말씀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당시의 시대를 볼 때 천동설의 시대였기 때문에 시대성으로 볼 때 그렇게 인식을 했을 뿐이지 실상은 태양이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적인 차』 였다는 것입니다. 『10시간 싸울 것을 5시간에 쳐부수고 이겼다 초인간적인 역사로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셨기 때문에 시간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이런 식으로 봄이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아얄론 골짝에서 여호수아가 가나안의 거민들을 이긴 첫째 이유가 시간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시간을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 33/50 ] 시간이 많아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장년부들에게 다시금 젊음을 준 다면 아마도 경험을 바탕으로 대성공을 할 것입니다. 시간은 1분도 뒤로 되 돌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습니다. 1초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천륜의 법칙 입니다. 그러나 나는 되돌리는 법을 세웠으니 그것이 바로 “시간아 멈춰라.” 하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시간을 맘추는가? 5시간을 갈 것을 2시간 동안에 가면 3 시간이 남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뛰는 것을 연습해서 시간을 많이 단축 하 는 길밖에 더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머리 쓰듯이 머리를 써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5시간을 일 할 것을 2시간만에 하고 3시간을 남기기 때문에 배 이 상의 엄청난 시간을 사는 것입니다. 시간은 24시간을 25시간으로 줄 수 없 는 것이므로 안 될 때는 방법을 달리 하라는 것인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 는가? 우리가 지혜로우면 시간을 많이 쓸 수가 있습니다. 시간을 아껴야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시간 쓰는 것을 계수해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젊은 자들에게는 특히. 젊은 사람들도 버뜩하면 시간이 다 간다는 것입니다. 2) 성경은 시대성으로 봐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는 식으로 안 하십니다. 우리들이 하는 짓이 하나님 과 똑같으면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식으로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은 인간의 제스처를 갖지만 여호수아가 전쟁을 하다가 시간이 다 지나가니까 태양을 멈추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호 수아가 그렇게 기도를 했어도 가만히 있는 태양을 멈추게 할 리 있겠습니 까? 싸움에서 이기는데 도와줄 것이 있으면 그것만 도와주면 되는 것입니 다.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 신이 되어서 역사함으로 적들이 무서워하면서 얻 어맞고 일순간에 전쟁이 끝난 것입니다. 전쟁을 수십 시간 하는 줄 알았는 데 후다다닥 하고 다 끝난 것이고 그때 적들이 녹아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 34/50 ]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태양이 멈추라고 기도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태양 을 멈추게 할 리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가지도 않게 만든 태양을 가게 만 들면서 멈추게 할 리 있겠습니까? 여기 있는 이 사람은 굉장히 박식합니다. 나는 굉장히 논리적이고 물리적 이고 근본적이고 실존적이고 실천적이고 실체적입니다. 옛날 2000~3000년 전의 일을 이 시대로 보고 풀면 안됩니다. 전깃불이 없이 생활했던 사람들 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밤에 아무리 어둡더라도 첫날밤에 자기 마누라를 못 찾겠습니까? 어째서 자기 첫날밤에 자기 부인을 못 찾고 밤새도록 헤맸 겠습니까? 얼굴도 못 봤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이해가 안됩니다. 같이 자 놓고서도 첫날밤에 얼굴을 못 보았다고 하는데 정말 이상한 것입니 다. 야곱이 결혼을 할 때 분명히 라헬과 레아가 있었는데 레아와 같이 살려 고 했습니다. 남자가 들어가 있으면 여자를 밤에 들여보내는데 자놓고서 아 침에 삼촌 라반과 싸운 것입니다. 자 놓고서 이해가 안 간다고 싸운 것입니 다. 환한데 왜 못 보았겠습니까? 지금의 시대와 달리 그 시대는 이런 불이 없었습니다. 호롱불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불마저 꺼 놓았던 것입 니다. 요즘 누가 그 좋은 전깃불을 꺼 놓고 자기 애인을 맞이하겠습니까? 오늘날의 불이 아니었습니다. 이와 같이 시대를 그 시대성으로 풀어 나가야 지 이 시대로 풀어나가면 풀리지 않습니다. 3) 가나안 거민들과 싸운 이유 그곳은 400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이 비워 놓았기 때문에 이미 원주민들 이 터를 잡고 31개 족속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곳에서 살려면 그 31개 족속들과 싸워 이겨야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와 함께 할테니 싸워 이겨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31개 족속 중 하나인 아모리 족속과 아얄론 골짜기에서 싸움을 벌 이게 되었습니다. 아모리 족속은 400년 전부터 자기네 조상들이 살아온 가 나안 땅에 여호수아를 중심한 하나님의 족속인 이스라엘이 쳐들어 오니 이 [ 35/50 ] 해가 안되었습니다. 400년 동안은 아모리 족속이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만 이 이스라엘 땅이라는 것을 아시고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 백성을 인 도하신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땅을 오래 사용한 사람이 법적소유자입니 다. 밭을 사용하고 세금만 내면 주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내게 물었습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하고 어떻게 싸울 수 있습니까?”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봐라. 너와 네 아버지가 10년 동안 영창에 갔다왔 는데 네 집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면 그 집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늘 굽신거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 다. 큰 것을 깨닫지 못하면 작은 것에서라도 내가 깨우쳐 줄께. 머리가 작으 면 작은 것 밖에 깨닫지 못한다.” “이해가 갑니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이해를 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데 왜 싸움을 했냐고 이처럼 물어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하 나님을 믿으면서 왜 싸움을 했습니까?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싸움을 한 것 이 아니겠습니까? 악이 쫓아 오는 것은 싫어하면서 왜 잡지 않습니까? 그런 입장과 똑같은 것입니다. 4) 다 죽인 이유 – 선생님 사연 지난 한 주일동안 아침말씀을 통해 말씀을 계속 들어 왔습니다. 여호수아 에 대한 이야기로 가나안 복지에 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내용의 말씀을 했습니다. 여러분들 그 설교 말씀 다 전해 들었습니까? 한 주일 동안 잠언 도 많이 보내주고 그리고 설교도 구체적으로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 호수아를 통해 시대에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 깨닫기 위해서는 여호수아서 를 계속 읽어보아야 합니다. 여호수아 11장 같은 곳을 계속 읽어보면 여호 수아는 너무 놀란 일을 한 것이 있습니다. 한 족속도 남겨 놓지 않고 다 멸 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거기 사는 사람들을 하나도 남겨 놓지 않고 칼로 찔 [ 36/50 ] 러 죽였습니다. ‘아니, 사람을 살리려 보낸 하나님의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죽일 수가 있단 말인가...’ 하면서 어떤 사람은 여호수아를 읽다가 성경을 안 읽고 성경을 덮어 버린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내 가 볼 때 약 7만 명이 넘을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되는가 하면 31개 족속 이라고 했으니 한 족속 당 2천명씩만 해도 6만 명이 넘으니 그렇게 되지 않 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는 전쟁하다 보면 여호수아 군대 도 피해를 입었을 것인데 여호수아 군대가 죽었다는 기록은 성경에 없습니 다. 나는 여호수아서를 많이 읽어 봤습니다. 이번에 읽을 때는 ‘어떻게 여호 수아가 사람을 한 명도 남기지 않고 그렇게 죽일 수가 있단 말인가’ 깊이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구체적으로 깨닫게 되 어서 여러분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월남전의 일이 생각이 납니다. 작전을 수행해 적지를 공격해 들어갔어도 사람들을 좀 살려주려고 많이 빼내주고 지휘관 몰래 보내주기도 하고 그랬 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때는 한 명도 남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왕들도 한 명도 살려둔 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성경 읽다가 시험 들 겠다고 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날 아침 잠언 50개를 주셨습니다. 가나안 복지를 들어가는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시키신 일을 해야 합니다. 바로 적을 없애는 일입니다. 적을 남기면 절대 안됩니다. 섭리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너는 담대하게 행하 라”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담대하고 강하게 교육을 시켰습니다. 결 국적으로 여호수아를 하나님께서 끌고 가나안 복지로 들어갔습니다. 가나안에 있는 그 족속들은 아담 때부터 그들을 계속 괴롭혀 온 자손들입 니다. 그 족속들이 바로 하나님이 이상세계를 이루려는 이스라엘 나라에 살 고 있습니다. 그들 때문에 도대체 섭리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 님께서 그들을 없애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들을 없애지 않았으면, 여호수 아가 죽이지 않았으면 아마 지금 섭리도 이렇게 갈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 [ 37/50 ] 다. 믿습니까? 그래서 거기서 가장 좋은 찬스를 얻은 것입니다. 그 때에 완 전히 손질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 그냥 불쌍하다고 놔두면 그들과 같이 살다가 나중에는 그들에게 다 죽습니다. 그래서 여호수 아가 그들을 남기지 않고 전부 다 소멸한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들 이 이곳에 여러분의 애인이나 부모를 죽인 자들이 와 있다면 그냥 놔두겠습 니까? 이곳에 와보면 이곳 섭리사도 사탄들과 흑암들이 하나님의 일을 다 깨부 셨습니다. 와 보면 너무너무 화가 납니다. 그래서 이쪽 유럽은 거의 다 창조 목적도 깨어진 상태에서 일을 해야 할 입장입니다. 이렇게 사탄들이 전부다 깨부셔버렸습니다. 그래서 섭리를 하기에 너무너무 힘들다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더니 절대 믿음의 조건을 세우고 따르는 자에게 섭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습 니다. 물론 모두들 세상의 미련을 끊고 옵니다. 그 미련을 끊고 왔어도 아직 도 그 세상의 근성을 모두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들을 직접 다루어 나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흠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 다. 5) 하나님이 하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 가는 태양이나 지구를 멈추게 할 필요도 없지 않았습니까? 도는 지구를 어떻게 멈춥니까? 그러면 기온이 영하 3000도 이하로 떨어져버립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손이 베었을 대도 피를 멈추게 해달라고 기도해서 정말 우리 몸의 피가 멈춘다면 다 죽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극히 머리를 써서 지능적으로 돕고 있는 것을 우리가 모를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뭉개 죽이고 싶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매일 기도해 도 응답을 안 주십니다. 나는 그런 하나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싸우고 다투는 것이 아닙니다. 감격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와서 이러쿵저러쿵 과거를 들먹거리면서 과거보다 못하니 잘하니 이런 짓 [ 38/50 ] 을 하다가 신광야에서 끝나버리고 나머지 사람들만 가나안 복지로 가게 되 었습니다. 가나안 복지로 간 사람들은 젖과 꿀이 흐르듯이 환경과 처세 속 에 기쁨과 이상세계를 누리면서 인생 100년이 너무 짧다고 하며 보람있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신광야에 있는 사람들은 인생 100년이 너무 길 다고 하면서 우물쭈물 살다가 신광야에서 끝났습니다. [ 39/50 ] 5. 가나안 정복 후 <수 10:10-14>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 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도륙하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 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찌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 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 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 냐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 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1) 가나안 땅 분배와 갈렙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11장에 나온 것처럼, 피흘리는 싸움을 많이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죽었다는 말은 하나도 안 나옵니다. 물론 싸움을 할 때에 하나도 상하지 않았을 리가 없겠지만 기 록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상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믿고, 더욱 담대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내가 경험한 것으로 볼 때도 월남에 있을 때에 적들은 엄청나게 죽었는데 아군은 한 명도 안 다 친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싸우는 기간에는 엄청난 두려움도 무서움도 걱정도 염려도 많았습니다. 여호수아 14장에서 이렇게 다 싸움이 끝나고 여 호수아가 이스라엘 족장들을 불러서 같이 의논하며 가나안 땅을 분배를 하 기 시작했습니다. 나누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제비를 뽑았습니다. 서 [ 40/50 ] 로 좋은 땅을 가지려 하니까 제비를 뽑기로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12지파가 있지 않습니까? 야곱의 12아들이 12지파가 되었습니다. 자기는 누 가 조상이다 하면서 지파가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같으면 종교로 볼 때에 교파가 되겠지요. 제비를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습니다. 두 지파와 반 지파는 이미 모세가 요단강 저편에서 주었습니다. 레위 지파 에게는 안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레위 지파는 제사장 지파라고 해서 모든 사람을 관리해 주고, 그것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신앙도 관리, 성전도 관 리, 역사를 관리 총괄하면서 그것이 그 지파의 분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얘깃거리는 모두 분깃을 나누어 주었는데, 갈렙이 여호수 아에게 나왔습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의 오른팔입니다. 갈렙이 이미 옛날에 있었던 얘기를 다시 하겠노라 하면서 여호수아와 얘기를 했습니다. “내가 나이 40살 먹었을 때에 모세가 보내어 당신과 같이 이 가나안 복지를 정탐 하러 오지 않았습니까. 나와 함께 올라 갔던 내 형제들은 악평해서 백성의 간담을 녹게 했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아, 가나안 복지 를 좋게 보고하였을 때, 모세가 그 때 당신과 나에게 말하기를,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 손의 기업이 되게 하리라.‘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 말을 하고 난 후부터, 내가 마음이 변하지 않고, 45년 동안을 살아, 결국 이 가나안 복지에 들어 와 살게 되었나이다. 이제 내 나이가 85인데 아직도 싸움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좋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 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듣지 아니하셨나이까.” 45년 전에 헤브론은 아낙 사 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건축도 굉장히 많이 해 놨습니다. 보기에 그곳이 빼 앗은 것 중에 제일 좋았습니다. 어제 말씀에도 나왔지만, ’그 성은 무너뜨리 지 말자.‘ 그러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옛날이 생 각나고 더 마음이 감동되어, 마음이 내킬 때 축복해 주리라 하고서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갈 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했습니다. 갈렙이 받은 헤브론이 [ 41/50 ] 아마 가나안 복지에서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도 나폴레옹이 전 쟁 때도 밀라노에 있는 성당 두오모를 무너뜨리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빼앗아서 우리가 쓰자 했다고 합니다. 전쟁 때도 나폴레옹이 건축하는 것을 허락했고, 보수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여호수아 때도 헤브론에 있는 건물들을 부수지 않았습니다. 길이 참아야 그 약속을 받는 것 같습니다. 45년 전에 약속한 것을, 45년 만에 받아 그 땅을 차지해서 그 땅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그 땅을 누리며 살게 되는 사람이 따로 있고, 그 땅을 빼앗아 오는 사람이 따로 있 는 것 같습니다. 전쟁이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이 끝나고 보니, 나이를 그렇게 먹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금방 끝난 것 같은데 굉장히 오래 걸렸습니다. 전쟁이 그치고 전부 다 나누어 진 것 같이 어려움 을 격은 후에 가나안 복지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섭리를 가만히 더듬 어 보면,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오늘까지 온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안 겪 고 온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 때를 다시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 어려움이 있을 때, 하늘을 찾으며 뛰어 돌아다녔던 그 열렬했던 때, 하나님이 함께 하 사 갈렙에게 은혜를 더하사 긍정적으로 보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갈렙에게 모세를 통해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영히 살도록 하라.’ 말씀 하신 것처럼, 여러분들이 그렇게 뛰어 돌아다녔을 때 하나님이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까. 여기 섭리 역사에 여러분들과 자손들이 영원히 살아야 하겠습 니다. 여러분들이 자기 행한 대로 분깃을 받을 것이며, 그 분깃 위에 영원히 살고, 자손들도 그 위치에서 그 하늘의 벼슬자리에서 살도록 해야 하겠습니 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지고 있었던 어려움을 시대에 비추며, 하나님께서 이 섭리에 있는 모든 자에게 잠언 하신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1. 만사에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이 있나니 화가 날지라도 참아라. 2. 악한 자는 선인과 동행할 지라도 잠깐 후에는 제 갈 길이 따로 있어 그 리로 가려 하느니라. 3. 사람이 잔인하게 행한 것이 담대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 42/50 ] 담대한 일이니라. 4. 하나님의 뜻을 두고 환난도 핍박도 일어나게 되나니 참고 견디며 너는 그 뜻 속에 묻혀 살아라. 그 환난들은 먹장구름이 해를 덮음과 같아 잠 깐이니라. 5. 죽음이 있는 곳에 까마귀들이 모이듯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 각종 환 난과 어려움이 모이나니 그 환난은 비바람 같아서 한바탕 쏟아지고 사라 지니 너는 끝까지 남아져 담대히 뜻의 주인이 되어라. 6. 환난을 두려워 말아라. 그것으로 잃는 것도 있지만 네가 평소에 얻으려고 하는 것도 그 때 얻을 수가 있느니라. 7. 환난에 인내. 인내에 연단. 연단에 빛이나, 어둠이 가까이 못하게 되느니 라. 8. 사람도 모든 만물의 존재물의 이치와 같으니, 진흙을 불에 천도나 구워 단단한 그릇을 만들 듯, 금을 도가니에 연단하여 정금만 남아져 빛이 나 게 하듯, 돌을 깎아 내어 조각을 만들 듯 사람도 그렇게 하여야 되나니. 9. 사람으로 태어 났을 지라도 그냥 놓아 두면 연단한 짐승만도 못하느니라. 10. 네가 지나간 날들을 생각해 보아라. 환난과 어려움을 통하여 주를 만나 게 되었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지 않느냐. 고로 환난으로 인하여 너는 구원에 이르게 되었느니라. 11. 주인이 버린 것을 너는 아깝다고 하느냐. 더 좋은 것을 갖고 살려고 버 리느니라. 종들은 그것들을 주어 귀하다 쓰느니라. 12. 큰 경기를 나가는 자가 마음과 체력을 극히 단련하는 것이다. 하늘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하여 환난과 어려움으로 몸과 마음과 영혼을 극히 연 단함이 당연한 것이니라. 그렇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맡긴 일을 할 수가 없고 그 주는 복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니라. 13. 하나님의 뜻을 안 자는 환난도 어려움도 스스로 감격하며 받지만, 뜻을 모르는 어린 신앙인들은 환난과 어려움을 그 마음 아프게만 생각하며 괴로워 몸부림을 치느니라. 14. 누가 여호와의 뜻과 그 심정을 알고 살 자 있으리오만 주는 그것을 깊 [ 43/50 ] 이 깨닫고 말씀해 주시느니라. 15. 하늘의 천상 천국에나 환난이나 어려움이 없지 사람이 세상에 살 동안 엔 그 어디를 가든지 어려움과 환난이 있나니 다만 하나님의 시대의 주 관권에 따라 그것이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니라. 16. 마음이 약한 자는 작은 환난과 어려움만 만나도 큰 환난이라 하고 그의 동료들을 부르며 하늘을 부르며 나를 도와 달라 하나니 그의 동료와 하 늘이 하는 말이 네 약한 마음을 강하게 하라. 그 환난이 큰 것이 아니 라 네 마음이 너무 약한 탓이다 하였느니라. 17. 태풍이 불어도 큰 나무는 크게 작은 나무는 작게만 부딪치나니 사람에 게 환난도 마찬가지이니라. 태풍이 불어도 큰 나무는 이미 뿌리가 깊이 박혀 잘 뽑히지 않는 법이며 작은 나무는 나무가 가늘어 그저 휘어져 그 뿌리가 약할 지라도 뽑히지 않는 법이라. 18. 태풍이 지나간 후에는 먹장구름도 없어지고 하늘도 맑고 해도 빛을 더 욱 발하게 되고 새들도 날아와 노래하며 화창한 날로 변하느니라. 푸른 초장에는 양떼들이 목자의 피리소리를 듣고 더욱 밀려 오느니라. 19. 여기는 아무나 설 수도 앉을 수도 없는 자리이니 주와 같이 쓴잔을 마 시는 자만이 주의 좌우 편에 가까이 앉을 수가 있어 그 시대에 모든 자 들을 심판할 수 있느니라. 20. 환난과 핍박 어려움과 억울한 일이 없었더라면 오늘까지 나를 따르는 자들이 오지를 못했을 것이다. 그 바람들이 하늘을 따라가는데 마음의 돛을 크게 움직여 가나안 해안까지 오게 하였음이니라. 32. <17장 14-18절> - 가나안 정착 후 아침말씀 하겠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복지를 소탕하고서 이스라엘 사 람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었습니다. 여호수아도 같이 거기서 살게 되었습니 다. 그런데 늘 지파별로 문제가 생겼다고 보고가 들어 왔습니다. 무슨 일인 고 하니 이스라엘 백성이 합동해서 31개 족속을 쫓나 내고 죽이고 했지만 [ 44/50 ] 막상 와서 살다 보니까 골짝마다 조금씩 조금씩 남은 족속들이 있었습니다. 그 족속들 때문에 늘 보고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그래서 싸워 서 내쫓아 버리든지 너희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종으로 부려 쓰던지 하라고 했습니다. 각 족속대로 어느 족속은 쫓아내고 어느 족속은 종으로 쓰고 했습니다. 그래서 큰 것은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책임분담인 고로 자기가 속해 사는 지역을 책임지고 자기가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이들은 작은 일일 지라도 하 나님의 운세를 받고 사는 자손인 고로 충분히 다스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 다. 한번은 요셉 자손에 속한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여호수아에게 나왔습니다 살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우리 자손들에게 준 땅이 좁아서 살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자손이 번성하는 고로 한 족속에게 한 지역만 주지 말고 더 크게 주지 그랬습니까" 했습니다. 우리 족속은 다른 족속보다 크므로 두 지역을 주리라 생각했는데 큰 족속이나 작은 족속이나 똑같은 땅 을 주면 어떻게 살 수가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는 말이 "그러 냐? 내가 둘러 보니 너희들 지역 가까운 곳에 땅이 남아 있다. 브리스 사람 과 르바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산지가 있다. 그 산지를 너희들 것으로 하고 서 스스로 개척하여 살도록 하라" 했습니다. 그 때에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하는 말이 "그 산지는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지역입니다. 산이 너무 험해 사 람들이 도무지 살 수가 없고 가나안 사람에게는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하는 자든지 다 철병거가 있습니다. 만일을 대비해서 그들은 대단한 각오를 하고 살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 곳에 들어 간단 말입니까?" 했습니다. "내가 말하였는데 무슨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느냐. 그땅은 영영 너희 땅이 되 고 말 것이다. 내가 같이 싸움을 같이 가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같이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좇아 내던지 때려 부수던지 하고서 너희 땅으 로 그 곳을 차지하도록 하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그 땅을 너희에게 주라 고 하시지 아니하셨느냐." 했습니다.(9935) 이와 같이 우리들도 이제는 신앙의 범위가 좁아서 활동하기 힘드면 다른 지 [ 45/50 ] 역까지 가서 싸워서 신앙의 나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만을 위한 지역은 너무 좁고 좁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주관권 가지고서 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와 살기에 좁습니다. 더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여 호수아 때에 싸우듯 신앙의 선한 싸움을 해서 자꾸 크게 벌려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땅입니다. 능히 할 수 있는 일들이라 했습니다. 2) 가나안 정복후 - 완전히 소탕해야 한다 이스라엘 군대가 그렇게도 모든 족속들을 멸했는데도 막상 가서 살다 보 니까 골짝 골짝에 작은 적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다시 물리친 족 속도 있고, 종으로 삼은 족속도 있어서 일생을 가면서 불편한 것도 있었습 니다. 우리도 무슨 일을 할 때에 확실하고 완전하게 해야겠습니다. 깨끗이 해놔서 일생을 살 동안에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여러분들의 개인적인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깨끗하고 완전하게 만들어 놓아야 일생을 살 때에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실천치 않으면 그에게 아무 것도 아니니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천하 지 못하는 사람은 적 속에 포탄을 가지고 가서 터트리지 아니하고 적의 총 에 맞고 죽은 사람과 똑같습니다. 말씀을 써먹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 씀은 바로 쓰여지고, 전할 때 하나님이 임해서 능력을 일으키게 되어 있습 니다. 결국은 말씀이라야만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모두 그렇게 알고 말씀으로 모든 것을 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다른 것으로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고 전할 때 그에게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나머지는 전부 효과가 없었습니다. 말씀으로 싸워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의 물입니다. 생명의 물입니다. 말씀은 전쟁터에서 군사의 무기와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총이라면, 그 총탄은 기도입니 다. 말씀을 영적으로 비추어 보면 항상 무기로 보여 줍니다. 말씀을 못써먹 는 사람은 무기는 없이 군복만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과 똑같고, 말씀을 써 [ 46/50 ] 먹는 사람을 영적으로 보면 전쟁에서 무기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으로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전하는 말씀을 항상 생명시하며 듣고, 그 말씀을 생활 속 에 써먹어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흑암의 적들에게 종이 되어서 끌려 다 닙니다. 말씀이 없으면 그 시대는 죽게 되고, 흑암에 묻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다고 말씀을 멀리하면 신앙이 죽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절 대시해야 하겠습니다. 금주는 여호수아의 말씀을 했으니 구약의 여호수아서를 계속 몇 번이고 읽어 봐야 합니다. 본문 말씀을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현실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런 능력과 기적이 개인에게, 각 교회 위 에, 섭리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실천하는 자의 기도는 늘 들어주십 니다. 그리고 역사와 능력이 크게 일어납니다. [ 47/50 ] ※ 부록 ■ 점검하기(분석과 점검) 1. 하나님께서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에 갈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2.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들었던 강의를 토대로 생각해봅시다. 3.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31개의 족속들과 싸워서 이겨야만 합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신앙과 삶의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싸워야하는 방해물이 나 환경이 있습니까? 그것이 무엇인지, 나에게는 어떠한 싸움의 대상들이 있는지 적어보고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4. 친한 친구를 전도하여 말씀을 듣게 했습니다. 태양이 멈추어라를 듣고 하 나님은 공의로우시다고 하면서 왜 가나안에 살던 족속들을 다 죽이라고 하 셨는지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설명해줄지 생각해봅시다. 5.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가나안을 정복하였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와 서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봅시다. [ 48/50 ] ■ 생각하기 생각하기 1 / 포기하지 마라 어떤 사람이 물건을 살려고 했는데 돈이 십 원도 없었습니다. 삼천원짜리 가 필요한데 돈이 없었습니다. 돈이 없는데 포기할 수밖에 더 있습니까? 그 럴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서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누가 왜 그렇게 서 있냐 고 물으면 말하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서있냐?” “저것이 10만원짜리인 데 3.000원이라도 받고서 팔고 간다고 하는데 나는 저것이 꼭 필요해요. 허 나 돈 3,000원이 없어서 서 있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다 사줄 것입니다. “아. 내가 사 가지고 가야 되겠다.” 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치고는 그것을 딱 사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는 못해도 하나님께서 딴 사람을 보내서 해주게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생각해서 포기 하지 마십시오. 누가 도와주려고 왔는데 없어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여기에 있었는데 3천원짜리를 사고 싶어서 두어 시간 있다가 그냥 갔다. 돈이 없어서!” “하이고, 해 넘어갈 때까지만 기다리지. 그렇게 기다렸으면 내가 못 사줄 것 같아? 인생은 포기하지 말고 가야지.”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하기 2 / 포기하지 마라 1970년도에서 75년도까지 그런 심한 고통과 어려움을 받았습니다. 75년도 특히 가장 심한 고통과 어려움을 받았는데 비바람 치고 못 먹고 못 입고 배 고프고 쓰러지고 도대체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때도 포기치 않았습니다. 얻어먹어 가면서 포기하지 않고 결국 역사를 이루면서 주님이 집으로 내려가라 할 때까지 있었습니다. 제 때 제 위치에 집에 내려가니까 일이 척척 잘 풀렸습니다. 78년도에도 서울에 올라왔을 때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거지 생활을 또 해야 되고 정말로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3년 동안을 내가 포기치 않았습니다. 낯설은 곳에 와서 누구 아는 사람도 없고 왔다 갔다 하 [ 49/50 ] 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으나 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세계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올라왔는데 한 번은 어렵다고 해서 하기는 하되 서울에서 내려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속버스터미날에 여 섯 번인가 가서 고향으로 간다고 했더니 주님은 남아 혼자 유령처럼 떠돌아 다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당시 내가 눈물겨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금 또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3년이 지나고 엘리야가 나타나듯이 나타났더니 사 람들이 시대의 뜻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역사를 펴기 시작한 것이 아 니겠습니까? 너무너무 어려웠고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가 힘있게 갈 수 있는 것은 딴 것 없습니다. “하면 된다! 끝까지 가자!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 성공비법이다.” 이렇 게 하며 왔기 때문에 오늘의 이런 세계를 저도, 여러분 모두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고향에 내려갔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어느 때는 막 밀어 붙이면 앞이 캄캄하고 뒤가 캄캄하고 옆이 캄캄하고 하늘이 캄캄하고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때는 ‘아이코, 나는 헤치고 나갈 길이 없 다!’ 하게 됩니다. 그래도 포기만 안하고 있으면 포기치 않은 그 정신력을 가지고 결국 태양을 뜨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 50/50 ] ■ 적용하기(실천 및 적용) 1.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아서 더 잘 된 일이 있었습니까? 자신의 경험을 생 각해보고 이야기 해봅시다. 그리고 포기치 않은 일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와주셨는지 생각해보고 이야기 해봅시다. 2. 윗 글의 주인공은 극적인 어려움과 고통으로 자포자기하는 마음을 가지 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금 마음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극복할 수 있었던 이 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3. 직장(학교, 가정)에 있는 모든 동료들에게 전도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를 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봅시다. 4.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과 힘을 받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보 고 실천합시다 5. 이 때까지 힘들고 많은 실패를 경험해서 중단했던 일이 있다면 다시 실 천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