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학교2025.06.01 (일)
성경중심인물 03 엘리야
- 선포일
- 2025.06.01 (일)
- 성경 본문
- 왕상 17:1
첨부 파일
- PDF
20250601_성경중심인물_03_엘리야.pdf
322.5 KB
[ 1/44 ]
성경 중심인물
엘 리 야
[ 2/44 ]
1.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 엘리야··························································································3
1)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3
2) 시대적 배경····························································································································5
2. 엘리야의 등장····························································································································8
1) 엘리야와 까마귀밥················································································································8
2) 사르밧 과부집의 기적········································································································10
3) 사르밧과부의 아들을 살린 엘리야··················································································14
3. 갈멜산 승리······························································································································17
1) 아합 왕과 만남····················································································································17
2) 결정하라································································································································21
3) 갈멜산 승리··························································································································22
3) 악을 제거한 후 비가 내림································································································25
4. 갈멜산 승리 후의 엘리야······································································································28
1) 자포자기하는 엘리야··········································································································28
2) 자포자기하는 이유··············································································································32
3) 과감하고 담대하게 어려움을 이겨라 ············································································33
4) 엘리야의 승천······················································································································35
5) 엘리야의 재림······················································································································37
※ 부록············································································································································41
■ 점검하기(분석과 점검)············································································································41
■ 생각하기······································································································································42
■ 적용하기(실천 및 적용)··········································································································44
[ 3/44 ]
1.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 엘리야
<왕상 17: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
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1)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
엘리야! 엘리야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열왕기상 17장, 18장, 19장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2장 11절에도 나와 있습니다. 엘리야는 어떤 사
람인고 하니 구약에서 아주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 중 한 사람입니다. 선
견자, 큰 대사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데 엄청나고 위대한 사람입니다.
엘리야 시대 때 주권자는 아합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아합도
엘리야가 하나님의 소명과 사명을 받은 것을 알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대했으니 엘리야 소명과 사명과 직분은 어마어마하고 엄청난 - 마른 하늘에
생벼락을 치는 것같이 - 위력적 사명을 받은 것이 확실합니다.
엘리야는 그 때 당시 무슨 일을 했는고 하니 모든 종교적인 문제, 곧 하
나님을 향해서 선을 찾고 있는 종교들이 많이 있는데 그 종교가 뭐인가 잘
못되게 인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섬기고 선을 찾는 것은
좋은데 더 이상적인 방향이 있다는 것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시
를 당했습니다. 엘리야는 그 후에 3년 6개월 동안 산에 들어가 있으면서 우
로지택을 주관하며 이 백성을 무지한 자들에게 비도 내리지 말라해서 비가
3년 6개월 동안 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흔히 생각하는 옛날의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까? 사명대사가 솔잎을 가지고 물에 찍
어서 한 번 우로지택을 주관했던 사람입니다.
이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소명과 사명을 가지고 왔으나 모든 사람들
로부터 천대를 받고서 산 속으로 다시 들어가서 3년 6개월 동안 가뭄 가운
데 자기의 목숨을 연명하면서 나왔습니다. 그 후에 다시 내려와서 너희들이
믿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인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인가 한 번
[ 4/44 ]
어떤 신이 진짜인가 해보자 하고서 결국 목숨을 걸어놓고 했는데 엘리야에
게 하나님의 신이 같이 했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과 교리가 같고 주장도
같고 사상이 같고 사고가 같았으므로 하나님의 신은 그의 위에 운행할 수밖
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믿을 때 어느 사람을 믿고 따르느냐에 따라서 그 사
람의 사고밖에 밝힐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면 온 지구상의 전
체가 믿고 따라야 될 존재자입니다. 엘리야가 결국 승리를 거두었고 그들에
게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보여주었고 정말로 증거하고 시인케 해 주었습니
다.
이 엘리야가 그 후로 그렇게 역사하며 가다가 열왕기하 2장 11절에 불병
거를 타고서 하늘로 승천했습니다. 이렇게 승천한 엘리야가 위대하게 남아
졌습니다. 엘리야는 예수님 시대로부터 900년 전의 사람입니다. 900년이 지
났어도 엘리야의 이야기를 또 했습니다. 예수님도 했습니다. 서기관과 유대
인들도 엘리야 이야기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엘리야를 늘 위대한 자로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상 위대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 시대의 일을 속이
시원하게 해 놓고 갔으니까! 특히 하나님의 종교적인 일을, 유대인들은 이
엘리야가 다시 온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엘리야가 온다고 말라기 선지자는 또 마지막으로 예언했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이 오기 전에 먼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이미 예수님이 오
시기 전 400년 전에 말라기 선지자가 마지막 예언을 하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400년 동안은 한때 두때 반때 고역 기간이기 때문에 선지자도 없고
무선지 기간이었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무선지 기간, 끊어진 상태가 400년
이었습니다. 우리가 축구 경기를 하다보면 전반전 끝나고 10분 쉬듯이 -무
경기 기간이 있듯이- 마지막 선지자가 끝난 다음 아무 선지자도 없었습니
다. 그래서 엘리야의 이야기가 그 동안 없었다가 갑자기 또 예수님 시대 때
엘리야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와같이 구약인들은 엘리야가 오면 엄청난 큰 일을 한다고 생각했습니
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하나님이 오실 것을 알았는데 하나님
이 오시기는 오시되 하나님이 오시기 전에 미리 올 자가 있으니 전초 하러
[ 5/44 ]
올 자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이드 카를 타고 에스코트하는 것을 보았지
요? 외국에서 누군가가 오면 사이드카를 타고 에스코트 하지 않습니까? 이
와 같이 하나님께서 오기 전에 엘리야가 그런 일을, 사이드카를 타고서 앵
앵거리며 길 인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야, 오는구
나!” 하고 알 수 있듯이 손님이 막 앵앵거리고 사이카를 타고 올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앵앵거리며 사이카를 타고서 나팔을 울리고 올 사람은 엘
리야라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낮은 산, 높은 산, 서로 부모 처자와 싸우고 형제 자매와 싸우
고, 모자지간, 부자지간, 형제지간에 서로 얽히고 설킨 이런 문제들을 엘리
야가 와서 잘 따 놓아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야가 큰 일을 하러 오
는 것이지요. 이런 것이 하나님이 보내신 엘리야가 오면 다 된다고 한 입장
이었으니 얼마나 기다렸겠어요?
2) 시대적 배경
엘리야는 B.C 9세기 (? ~ B.C 850)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2900년 전 사람입니다. 그는 디셉사람입니다. 디셉은 시골입니다. 즉 그는
시골 사람입니다. 그리고 앞에도 산, 뒤에도 산, 좌우에도 산으로 가로막힌
첩첩산중에서 살았던 산사람입니다. 그는 별로 이름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성서를 보면 엘리야가 누구의 아들로 어떻게 태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잘 나
와 있지 않고 단지 디셉사람이라고만 나와 있습니다. 엘리야가 등장하던 줄
로 어간이 좋지 않게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던 엘리야가 명령을 받고
나와 보니까 하나님의 중심 종교는 방계 종교-우상 종교-에게 짓밟히고 있
었습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사람에게 짓밟힌다더니만, 하늘 종교가 맛을
잃었는지 모르지만 사회의 이방 종교들한테 밟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중심 종교를 짓밟고 있었던 그 이방 종교는 바알신과 아세라 목상신을 섬기
는 종교였습니다. 그들에게 여지없이 짓밟혔습니다. 그들 종교가 얼마나 득
세를 하고 얼마나 열광적이었던지.... 왕궁에 이르기까지 그 종교를 받아들
[ 6/44 ]
였습니다. 아합왕은 그 종교의 교주나 되는 것처럼 그 종교에 같이 동참했
습니다. 그리고 그의 왕후 이세벨은 바알과 아세라신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어울리지 않는 말 같지만 소위 선지자라고 하는 그들을 - 잘 내적으로 조종
해 주고 붙잡아 주고 격려해 주고 하면서 뒷돈을 꽤나 썼습니다. 바알신을
섬긴다는 선지자들은 450명이었고 아세라신을 섬긴다는 선지자들은 400명
으로 도합 850명의 선지자들을 그렇게 도와주었습니다. 이 정도까지 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는 조그마한 나라에 그들 종교가 국교화가 되다시피 했
습니다. 방계 종교가... 그런데 하나님의 중심 종교는 오히려 그들이 볼 때
하나의 방계 종교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세벨은 하나님
을 믿는 사람들을 많이 멸해 버렸습니다. 그런 판국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라는 독수리를 끌러 놓았습니다. 즉 끌러 놓은 후 날려보냈던 것입니다. 엘
리야가 와 보니까 그런 환경과 처지가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날 때 즈음되면 그 시대는 이미 부패 속에 들어가 있
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날 때는 시대가 봄날이 되
어서 나비처럼 날아온 것이 아니라 이미 종교가 부패되어 있을 때 하늘의
독수리는 날아와서 안착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주권자가 난데없이 나타나면
그 시대는 역시 그만큼 부패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줌을 우리는 능히 깨
닫고 알아야 되겠습니다. 엘리야는 그런 판국에 나타났기 때문에 그야말로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잡혀가서 몽둥이 찜질을 받게 되어 있었습
니다. 엘리야가 보니까 당시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두 다 마음 굴복은 안
했지만 - 좋게 변호를 해준다면 - 육적인 굴복은 이미 해 버린 상황이었습
니다. 계시록에 있는 말씀을 보면 우상에게 굴복하지 아니한 사람들은 순교
의 대열에 선다고 했는데. 이들은 육적인 세계는 굴복하고 양심적인 세계만
굴복하지 아니하였으니 무슨 힘이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판국을 보시고 엘리야를 통해서 역사를 일으키는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마치 이 사건은 무엇과 같은고 하니, 모세가 바로 왕 앞에
나타났을 때 이미 그 시대의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 애굽의 혈통적인 종들이
[ 7/44 ]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보내사 독수리 날개로 인도한다는 그 말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했습니다.(출 19:4) 그런데 바로는 모세의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들을 인도하란다!”는
그 말에 “모른다!”하고 나갔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10가지 재앙을 착수
해 들어갔습니다. 이와 같이 아합왕 앞에 세워 둔 엘리야를 통해서 하나님
께서는 역사를 착수하셨습니다.
[ 8/44 ]
2. 엘리야의 등장
<왕상 17 : 2-2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
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
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
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
과 고기를 가져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1) 엘리야와 까마귀밥
엘리야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사심을 통해
서 맹세하오니 내 말이 아니면 수년 동안 이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리라!”
하고 한마디의 말을 떨어뜨렸습니다! 물론 엘리야는 우상 종교에 대해 반
발을 하면서 아합 앞에 반항을 하고 굉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엘리야를
더욱 미워하고 더욱 싫어하고 더욱 괄시를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엘리야
는 잡히기만 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판국에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야, 이제 됐노라! 너의 그 말이 씨가 되어서 계속 번져 나가리라! 그
들에게 너의 그 말이 생각나고 기억날 때가 오리라! 결국 너를 쫓아다니리
라! 자, 방향을 돌리자. 너는 요단 앞 그릿시내로 가서 숨어 있도록 하라!
그리하면 내가 아침에도 고기와 떡을 그리고 저녁에도 고기와 떡을 너에게
먹여 주리라!” 이렇게 해서 엘리야가 아합왕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엘리야가 그릿시냇가로 가서 정말 첫날부터 떡과 고기를 먹게 되었습니
다. 그곳은 산 좋고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득세를 부
리던 우상 종교인들은 산에 가서 제단 쌓는 일은 열 일을 제쳐놓고 했습니
다. 엘리야는 그 나름대로 일면 보람을 느꼈습니다. 아마 그 누구도 그런 정
성스러운 별미를 받아먹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신들 앞에 드릴 때
[ 9/44 ]
는 기가 막히게 정성을 드립니다. 떡시루에 머리카락이 하나만 들어가도 떡
시루를 엎어 버립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선생님의 외갓집에 가서 보았습니
다. 머리카락이 들어갔다고 떡시루를 엎어 버리고 다시금 방앗간에 가서 쌀
을 찧어다 하는 것을 보고 놀래 버렸습니다. 어렸을 때! 그냥 드렸다가는
산신령한테 큰일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그 나름대로 정성을 드린 제물
을 엘리야는 쳐다보았습니다. 바로 그것이 “까마귀 밥”이었습니다. 솔직한
이야기로 사실상 엘리야도 맨 처음에는 모르는 것입니다. 어떤 하나님의 뜻
이 있어서 해도 처음에는 잘 모릅니다! 하다가 그 과정에 딱 생각합니다.
‘아하, 하나님이 지시하신 그것이 바로 이것이구나!’하고 생각한다는 것입니
다. 머리가 120인 사람은 몇 번을 해야 생각이 납니다. 거반 끝나 갈 무렵,
그 일이 ‘삼분의 이’정도까지 가서야 생각을 하고 머리가 조금 더 좋은 사람
은 ‘삼분의 일’쯤에서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머리가 더 좋은 사람은 1000단
위로 넘어가는 사람은 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아무튼 처음에는 잘 모르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한번 먹으니까 먹을 만
했습니다. 사실 그 음식은 아합 왕의 정성도 담긴 음식이었습니다. 아합왕도
그들과 같은 또라이가 되어서 같이 했으니까! 아합왕도 바알신과 아세라 목
상신을 섬겼으니까! 즉 아합왕이 광주리에다 이고서 직접 가지고 오지는 않
았지만 그들과 같이 한 틀이 되어서 섬겼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생각했습
니다. ‘참....., 내가 종교성으로 볼 때 답답하고 고생스러워서 그렇지. 이놈
들이 정성스럽게 제단 쌓은 것을 식기도 전에 먹으니 별미를 먹는구나! ‘하
나님, 이게 웬일입니까! 감사합니다!‘ 하고서 그저 그들이 제단을 쌓고 내
려가면 퍼 대고 앉아서 별미를 먹었습니다. 이것이 엘리야의 까마귀밥이었
습니다. 과학적으로 풀 때 그들이 놔두고 가면 사실 까마귀들이 그 밥을 먹
습니다. 그리고 귀신들이 와서 그 제단을 받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쳐다
보고 귀신들이 있었으면 아마 도급으로 “이놈의 귀신들아!” 하고서 내 쫓았
을 것입니다. “어디라고 와서?”하면서 엘리야가 영급으로 그 영까마귀들을
쫓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육까마귀도 있었으니 그들은 영까마귀들에게 제단
을 쌓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반질반질하게 몸을 닦고서 옷을 새로 갈아입
[ 10/44 ]
고 메밥을 가지고 올라온 인 까마귀들이었습니다. 그 메밥을 먹으면서 엘리
야는 여러 가지 생각도 많았을 것입니다. 아무튼 엘리야는 그런 까마귀밥을
먹으면서 그릿 시냇가에서 한동안 있었습니다.
엘리야 까마귀밥의 근본을 몰랐을 때는 여러분들이 “능력과 권능과 이적
과 표적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에게도 까
마귀들이 와서 먹을 것을 주는 역사가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하고 과거에
기도한 적도 있을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렇게 한동안 그릿시냇가에 있다가
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기야 선지자가 굶어 죽는 법이란 없습니
다! 그 우환 중에서도 엘리야만큼은 음식을 먹고 남겼습니다. 일개 나라가
거반 다 그 산골짝에다 제물을 드리다시피 했으니 그것을 어떻게 다 먹고살
겠습니까? 그 시대 다 굶어 죽어도 엘리야는 살려주셨을 것입니다.
엘리야가 3년 6개월 동안 산 속에서 지냈는데 그 과정이 몸서리 쳐지고
정말로 너무 지겹고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서 참고 견디
면서 언젠가는 내려가면 다른 세계가 있을 것이라 하고서 과정을 겪었습니
다.
2) 사르밧 과부집의 기적
그 후에 하나님께서 또 엘리야를 불렀습니다. “엘리야야! 너는 그만 일어
나서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라! 그 동네에 들어가게 되면 한 여인이 나
무를 줍고 있으리라! 그 여인의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내가 지시하는 대로
하도록 하라! 그렇게 그 집에 가서 같이 먹고, 같이 살도록 하라!” 그래서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대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님은 한눈을 가졌어도 전체를
다 보지 않습니까? 사르밧과부가 나무를 줍고 있는 것도 보이고! 그러나 엘
리야는 보지 않고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야는 하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산이 가리고 눈이 가려서 잘 안보이
지만 하나님은 한 눈에 다 내다보고 안타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은대로 마
을에 내려가니까 마을 어귀에서 한 여인이 어린아이와 같이 마을 어귀에서
[ 11/44 ]
나뭇가지를 줍고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아하, 저 여인이 과부로구나!’하
고 그 여인에게 가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엘리야가 물었습니다. 가정을 묻
고 가사를 물었습니다. 물어 보니까 남편도 없이 사는 집이라 가난하기 그
지없었습니다. 들은 대로 그대로였습니다. 계시를 받으면 받은 대로 그러했
다는 것입니다. “나무를 주어다가 무엇을 만들어 먹으려고 하는 가 본데 그
렇습니까?” “네, 이제 가루단지를 박박 긁어서 마지막으로 먹으려고 합니다.
가뭄이 심해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경제 파동이 일어나면 있는 사람은 망해도 3년이 간다지만, 없는 사람은
더 정신을 못 차립니다. 가뭄이 들기 시작하면 강줄기는 물론 댐도 말라 들
어갑니다. 작은 내 줄기는 그러니 오직이나 빨리 마르겠습니까? 또 작은
옹달샘은 오죽이나 빨리 마르겠습니까? 이런 짝이 났다는 것입니다. 가난
한 집은 경제 파동이 약간만 일어나도 정신을 못 차립니다. 이 사르밧과부
의 집은 본격적인 하늘의 가뭄을 통해서 얼마 못 가서 그냥 생명까지 내 놓
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엘리야가 이 집으로 보냄을 받았다는 것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늘은 다
죽어 가는 사람에게 먼저 발길을 돌려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
니라 말씀을 들어보면 의미가 많이 나옵니다. ‘왜 그리로 갔어야만 되었던
가?’에 대한 여러 가지 의미가 많이 나옵니다.
엘리야가 그 마지막 박박 긁은 가루로 자기를 위해 떡을 먼저 만들어 가
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사실상 그때 사르밧 여인이 엘리야에게 구구 나름대
로 할 이야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아니, 점잖게 생긴 양반이 머리도 벗
겨지지 않은 사람이 왜 그렇게 공짜를 바랍니까? 더군다나 남편도 없이 어
린아이 하나를 데리고 사는데 하다 못해 쌈짓돈이라도 끌러서 주고 가지는
못할망정 벼룩의 간을 내 먹는다더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하면
서 충분히 한마디 아니라 두 마디 세 마디까지 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습니
다. 사르밧 과부는 그런데 아무 말 없이 엘리야의 말에 수긍했다는 것은 하
나님의 감동과 감화가 크게 있었기 때문이고, 또 사르밧과부의 “평소의 신
앙”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평소에 그렇게 살아온
[ 12/44 ]
위대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름대로 마음속 ‘왜 이러나...?’하고
의심은 했겠지요. 여러분 중에서는 ‘사르밧과부가 마지막 죽는 마당에 선한
일이나 하고 죽자! 그거 혼자 다 먹어도 죽을 것이고, 나누어 먹어도 죽을
것이니 선한 일이나 하고 죽자! 하면서 낙천주의로 생각하고 준 것이 아닌
가?’ 하고 여러 가지로 이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대로 푸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풀어지는 대로 풀어야 되겠습니다. 아무
튼 평소 신앙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 섭리가 있었다는
것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사르밧 여인은 과부치고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엘리야에게 정성 들여 만들어서
갖다 주었습니다. 그거 보통 정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처음 본
사람에게......? 엘리야의 그 인격을 믿어 주었던 사르밧과부의 인격 또한 훌
륭했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기도하고 간구했습니다. “이 과부의 집에 양식이
끊어지지 않기를 만군의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비를 내릴 때까지
이 가정에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하면서 엘리야가
기도했습니다. 비가 내릴 때까지 떨어지지 않게 축복을 했으니 됐지요? 이
엘리야는 이미 비가 오랫동안 안 내릴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
다. 자기가 하나님을 중심 해서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 주인이니까! 그래서
엘리야는 강력하게 또 자신만만하게 기도해 주었습니다. 자기가 주인이 되
어서 하는 말은 실질적으로 상대의 사람에게 부딪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서 그 입에서 말했기에 때문에 그 말씀이 살아 움직였습니다.
체험적이고 경험적이고 행동적인 사람의 말은 사람에게 감동과 감화를 줍
니다. 직접 보고서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은 더욱 확실하고, 또 직접 듣고서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은 확실하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들려준 음성
을 전할 때, 그리고 하늘이 보여준 상황을 전할 때 더욱 확실하다는 것입니
다. 사르밧 과부는 이렇게 해서 작은 예식을 통과했습니다. 믿음의 조건과
행실의 조건을 세워 하늘 앞의 예식을 통과했습니다. 그때부터 엘리야는 하
나님의 뜻을 더욱 절감 적으로 깨닫고 과부에게 확실성 있게 역사해 나갔습
니다. 엘리야는 그 집의 선생이 되어 주고, 생명의 지도자가 되어 주고, 그
[ 13/44 ]
들의 가사일의 인도자가 되어 주고, 기쁨 거리가 되어 주고, 심령의 낙거리
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정은 외롭지 않은 가정이 되었고 희망적
인 가정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그 집은 하루종일 있어도 그리고 초생달이
보름달이 되도록 있어도 아무도 오는 사람이 없는 외롭고 쓸쓸한 가정이었
습니다. 겨우 와 봤자 지나가는 새들이 잠깐 앉아서 삑삑 거리고 갔던 외로
운 과부의 집이었지만 엘리야가 온 날부터는 요상하게 사람들이 모여들었습
니다. 사람들이 과부의 집에 와서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서, 감명을 받고,
감화를 받고 그리고 힘을 얻고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엘리야가 아픈 자
에게는 의원이 되어 주었고 또 외로운 자에게는 친구가 되어 주었고, 무지
한 자는 깨우쳐 주었고 앞날을 근심하는 자에겐 앞날을 가르쳐 주고 했습니
다. 하늘의 사람들은 어디를 갈지라도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군다나
하나님께서 그곳으로 가라고 했으니 오죽이나 할 일이 있겠습니까? 엘리야
가 그 환경에 처한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우리는 그 환경에 처한 할 일
을 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고 가장 평범하면서도 고상하고 이상적인 길이
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것만 잘하면 다른 장소에 가서 일을 할 때도
이상(異常)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너무 짜증
스럽게 생각하거나 환경을 너무 배타시로 생각하거나 환경을 너무 저주스럽
게 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해야 되겠
습니다.
엘리야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마음에 기쁨을 주고 소망을 주었더
니 엘리야를 찾아오는 발걸음이 그저 오는 발걸음이 아니라 돕고 싶은 발걸
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에다 먹을 것을 채워 주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들의 발걸음은 뭐인가 들고 오는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
준다는 세계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에게! 먹을 것을 심었으면 먹
을 것으로 거두어지고, 물질로 심었으면 물질로 거두어지고, 육체로 심었으
면 육체로 거두어들이고, 영혼으로 심었으면 영혼으로 거두어들이고, 학문으
로 심으면 학문으로 거두어들이고, 사랑으로 심으면 사랑으로 거두어들이는
입장으로 이 모든 것이 말씀에 따라서 순리의 법칙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 14/44 ]
것입니다. 그런데 가루단지 역사를 일반적으로 해석할 때 이적과 기적이라
고 합니다. 가루단지에 가루가 또 생기고 또 생기고 계속 펑펑펑 가루가 눈
이 쏟아지듯이 쏟아져 찼다고 해석합니다. 항아리에 가루가 채워질 때 위에
서부터 들어가서 채워지는 것이 법칙이지, 밑에서 펑펑. 그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엘리야는 불로소득의 사람이 아닙니다! 또 도둑질 할 사람도 아닙니
다. 오직 자기가 수고하고 애쓴 것에 따른 대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
에 부지런히 심었습니다. 즉 심는 대로 거둔다는 법칙을 알았기에 부지런히
심었다는 것입니다.
3) 사르밧과부의 아들을 살린 엘리야
한 번은 산에서 기도를 하고 내려와 보니까 동네가 수라장이었습니다.
“아이고, 데고! 하늘아 무너져라, 땅아 와장창 꺼져라. 이게 웬일이냐?”하는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이게 무슨
일이지? 어느 집이여..?’ 하고 보니까 자기가 거하는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엘리야가 그 집에 들어가 보니까 사르밧과부가 “엘리야
여 어디에 갔다가 오시나이까? 내 아들이 죽었나이다. 내가 무슨 죄를 회개
치 않았기에 이렇게 했습니까? 이렇게 하려고 우리 집에 왔습니까?” 하고
야단이 났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죄가 있다니 나를 때려서 죽이지, 이
어린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죽였습니까?” 하고 푸념을 막 했습니다. 엘리야
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가만 듣고 있다 보니까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그래서 어린애가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까 저기 아랫방에 있다고 했습니
다. 엘리야는 가만히 들어갔습니다. ‘이럴 리가 만무한데...? 음!! 평소에 내
가 심정이 괴롭더니 그것에 부닥쳤구나!’ 엘리야가 평소에 괴로웠던 그 심정
에 부닥쳐서 생긴 일이랍니다!! “어린아이를 내게 주시오!” 이렇게 해서 엘
리야가 어린아이를 안고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그 어린아이를
침상에 누이고 몸을 세 번 엎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여호와여! 이
혼이 돌아오게 해 주시옵소서! 나는 감각이 무디지 않습니다! 이게 다 뜻이
[ 15/44 ]
있는 일인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하나님의 뜻은 선지자쯤 되었으면 빨리
압니다. 눈치가 빠르거든요! 어린아이에게 다시 혼이 돌아와 살았습니다. 엘
리야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어린아이가 죽은 것을 알았지만 사
르밧과부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살린 후 “여인이여! 여인이여!”하고
불렀습니다. “이 아이가 당신 아이이면 찾아가고 자기 아들이 아니면 찾아
가지 마시요!”하고 말했습니다. 사르밧과부가 보니까 자기 아들이 맞거든!!
“하이고 내 아들이 살아났다!”하고 야단법석을 피웠습니다. 눈물을 찔끔찔끔
빼면서 어떻게 할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런데 <왕상 17장:24절>에 사르밧
과부가 한말이 있습니다. “이제야 내가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았
습니다!” 그전에는 몰랐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심정이 괴로웠지
요!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하나님의 말인 것을 이제 구하는 내
가 믿겠나이다.” 이것이 사르밧과부가 평소에 근본적으로 가지지 못한 신앙
관의 고백이었다는 것입니다. 천륜의 법칙에 안 맞으니까 그런 상황이 일어
났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과부의 집에 갔는데 그 집 아들이 죽었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
면 죽는 것이지. 가뭄 때 제대로 못먹었나보지, 죽었게.” “하나님이 이적 기
적 보여주려고 그랬지.” 이것은 육적으로 푸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고 하
나님께서 계획적으로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뒤집어쓰고 그 집
에서 사는 것을 사르밧 과부가 몰랐습니다. 제일 처음에는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를 보고 신이라고 했습니다. 가루 단지에 가루가 막 생기고 하니까
신으로 보고 막 절을 해대고 신격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가다 보니까 이 과
부가 그런 것이 없어졌습니다. 어려운 위기를 다 면해 주었는데 있으나마나
로 대하니까 하나님께서 더 못 보신 것입니다. 엘리야는 혹시 못 봤다 할지
라도 하나님은 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꼴을 못 봅니다. 그리고 엘
리야가 대선지자인데 그 집에 살면서 그 집사람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처
음에는 신선같이 위하다가 나중에는 아저씨로 보고 할아버지로 보고 ‘혹시
이 남자가 나에게 붙어사는 것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만 봤기 때문에 하나
[ 16/44 ]
님께서 ‘요년이 정말로 맛 좀 보려나. 네 이년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여호
와의 소리가 안 들리느냐? 여호와의 발걸음이 안 보이느냐? 내가 엘리야라
는 신부를 뒤집어쓰고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너의 집에 찾아온 것을 몰라주
다니 요년, 정신이 버쩍 나게 해줘야겠구먼. 정말로 오줌을 싸게 해줘야겠구
먼.’ 하고 하나님이 계획적으로 하신 일입니다.
[ 17/44 ]
3. 갈멜산 승리
<왕상 18:1-46> -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
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
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
서 이 백성으로 주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
1) 아합 왕과 만남
엘리야는 이제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나갔는데, 18장에 보면 3년
이 지났다고 했습니다. 원래는 정확히 3년 6개월입니다. 개월 수는 42달.
42달 동안 성이 짓밟힌다고 했지요?(계 11:2) 엘리야가 나타나기 전, 42달
동안은 그 이스라엘 나라의 성이 짓밟히는 일이 일어납니다. 엘리야가 하나
님의 음성을 듣고 이제 그만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42달이 차서! 그래서 아
홥왕에게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아합왕!” 하면 머리가 쭈빗쭈빗 서는 아합
왕! 그런데 아합왕의 부인되는 이세벨은 여자였지만 당당하게 행세를 했습
니다. 이 이세벨이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때 그 중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마음은 굴복하지 않았지만 육신은 굴복하여 아합왕
밑에 가서 아합왕을 섬겼던 오바댜가 있었습니다. 이 오바댜는 이세벨이 이
사람들을 많이 죽였을 때 하나님의 사람들을 많이 숨겨 주었습니다. 100명
을 숨겨 주었는데 한군데 숨기면 많으니까 50명씩 나누어 두 군데다 숨기고
정치적으로 잘 덮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는 내려가라고 명령
을 했고, 또 오바댜의 마음을 감동시켜 아합 왕과 대화하며 가까이 지내게
했습니다. 오바댜가 아합왕에게 말하기를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는 물의 근원까지 말라서 노새도 죽게 되고, 짐승도
[ 18/44 ]
죽게 되고, 모든 씨가 멸할 것입니다. 어떤 조치를 취해야 될 것이 아니겠습
니까? 저기 그릿시냇가에 가면 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노새와 짐승과 궁궐
안에서 쓰여지는 가축이라도 살려야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릿 시냇가에 과연 물이 있을까?”
“그 골짜기에는 물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산은 워낙 깊고 깊어서 물이 있
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가볼까?”
“그렇게 하십시오. 우리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물을 먹고 지탱하지만
이 동물들은 그렇지 못하여 자꾸 죽어 가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가보니까 그릿 시내도 말라 있었습니다. 서
로 나뉘어서 왔다 갔다 해도 물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가서 결국
오바댜가 아합왕에게 말을 했습니다.
“아합왕이여!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적게 정성을 들
였습니까? 적게 신께 빌었습니까? 적게 바쳤습니까? 골짜기마다 갖다 바친
것만 해도 산 높이 만큼 갖다 바쳤을 것입니다. 떡시루에 떡을 한데 모아
쌓으면 저 갈멜산보다도 높을 것입니다. 돼지 대가리들만 모아 쌓아도 저
갈멜산보다도 이게 뭐란 말입니까? 물을 주는 신이 못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방법이 뭐냐?”
“방법보다도... 이 신들이 물을 내리지 못하는 신들임을 알았을진대, 분명히
엘리야가 3년 전에 사라지면서 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가, ‘분명코 말하
노니 내 말이 아니면 비가 오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없어지지 않았습니까?
그 말대로 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을 찾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산에
오니까 생각이 나는데 그 사람이 이 근방에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를 찾
아서 쇼부를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있을까..?”
“제가 한 번 요 근방을 찾아보겠습니다.”
오바댜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한 200m쯤 올라가다 보니까 하나님의 명령
을 받고 엘리야가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계획대로 잘 만나게
[ 19/44 ]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연극의 극본을 짜듯, 영화의 시나리오
를 짜듯이 짜 놓았던 것입니다. 하나는 내려가고, 하나는 올라오고. 서로 부
닥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우연같이 생각하기 쉬우나 그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제일 처음에는 우연같이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적인
일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 해 놓으시고, 예정해 놓습니
다.
엘리야와 마주친 오바댜는 놀라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여!”했습니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고생은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당신의 말대로 정말
이스라엘 땅은 말이 아닙니다. 지금 물이 다 떨어졌습니다. 송사리 떼로부터
시작해서 큰 고기까지 다 죽게 생겼습니다.”
“그것을 모든 사람이 느끼고 있는가?”
“느끼고 있습니다.”
“내 조화임을 사람들이 아는가?”
“제가 당신의 조화라고 아합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안 그래도 내가 지금 내려가는 판국이네!”
“여기 계십시오. 아합왕이 와 있습니다. 내가 내려가서 이야기를 하여 서로
대면하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발 딴 데로 가지 마십시오. 제가 아합에게
가서 ‘왕이 찾던 자가 저 위에 왔다!’는 이야기를 할 터인데 당신이 없어지
면 저의 모가지는 ‘땡강’ 합니다. 거짓말했다고. 죽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
의 사람,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약속대로 여기에 서 계십시
오...!”
“아니, 내가 내려가는 판국이었는데 딴 데 어디 가겠느냐? 하나님의 명령
을 받고 내려가는 중이네!”
“제가 빨리 뛰어가서 이야기 할 테니까 천천히 내려오고 계십시오.”
오바댜가 내려가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주, 아합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올라가니깐 엘리야가 있었습니다.”
“그 놈이 안 굶어 죽고 어떻게 살아 있더냐?”
“번들번들 오히려 광채가 나고 있었습니다.”
[ 20/44 ]
“뭐를 처먹고 그렇게 되었지?”
“조화의 사람이라 먹는 것쯤은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올라가 보자! 그런데 그 놈이 안 도망갈까?”
“안 도망갑니다. 아까 눈치를 보니까 오히려 만나러 내려오는 듯한 모습이
었습니다.”
“그래? 올라가 보자! 그 놈도 나를 찾고 나도 그놈을 찾으니 잘 됐다!
올라가자!”
올라가다 서로 부닥쳤습니다. 링 위에서 붙듯이 붙었습니다. 자, 누가 먼
저 말을 할 것인가...? 역시 아합 왕이 먼저 소리를 높였습니다. 항상 가
인이 먼저 시작합니다. 아합왕이 먼저 한 수를 떴습니다. 까만 알이 먼저
한 수를 딱 두었습니다.
“에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이 엘리야야!”
‘하이고 갈빗대가 웃는다. 세상에 내가 소리를 칠 사람인데 지가 소리를
쳐? 속담에 매달린 돼지가 누운 돼지를 나무란다 하더니만 그 짝이 났구나!’
하고 엘리야가 속으로 그랬을 것입니다. 엘리야가 아합의 그 말을 공격을
했습니다.
“누가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힙니까?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는 자는 당신입
니다.”
이렇게 아합과 엘리야가 찌그락 째그락 붙었습니다. 이 때 오바댜는 어느
편을 들어야 할 지를 몰랐습니다. 양심은 살아서 엘리야편, 육신은 아합
편.... 이렇게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마음이
돌아가면 다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엘리야가 아합에게 하는 말이
“당신의 말은 내가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힌다 하고, 나는 당신이 괴롭힌다
고 하는데 그러면 진짜 사생 판가름을 짓도록 합시다. 당신들이 하나님을
믿었을진대 왜 비가 안 오겠습니까? 당신들이 바알신과 아세라 목상신을 하
나님이라고 칭하면서 갈멜산이 닳도록 떡시루를 들고 날랐지만 비가 왔습니
까? 그 신은 비를 못 내리는 신입니다! 비도 못 내리는 신이 신입니까? 비
가 안 오면 사람은 물론 만물까지도 전멸하는데! 비라는 것은 별것도 아닌
[ 21/44 ]
것 같으나 이렇게 큰 핵심적인 것을 이제 느꼈을 것입니다. 1년 만에 그것
을 느꼈을 것이고 2년째는 못 견뎠을 것이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허우적
거렸을 것입니다. 3년이 넘어갔을 때는 너무나 힘들었을 것입니다. 없어도
아직 먹을 수 있습니까? 먹어도 잘 살 수 있습니까?”
엘리야는 할 말이 많았습니다. 3년 동안이나 쌓아 온 그 심령의 법을 가지
고 들이대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아합왕
에게 제의를 했습니다.
“왕이여, 당신네가 인정하는 당신들의 선지자들을 내게로 나아 오게 하십시
오. 당신들에게는 바알을 섬기는 450인의 선지자와 아세라 목상 신을 섬기
는 400인의 선지자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 시대에 선지자는 하나뿐인
데 거기는 어떻게 선지자가 그리도 많습니까? 가짜는 항상 많고, 진짜는 적
은 것입니다! 850명을 나에게로 나오게 하십시오. 그리고 갈멜산에서 송아
지를 가져다 제사를 지냈을 때 신께 응답을 받아서 비를 오게 하는 곳이 하
나님을 섬기는 사람임을 알기로 합시다. 보시다시피 당신네 선지자는 850명
이요, 나는 나 하나 뿐입니다! 왕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모
든 일을 제쳐두고 이 일을 착수하시기 바랍니다. 왕은 숫자에 좌우되어서는
큰일납니다.”
엘리야가 이렇게 제의를 하자 아합왕이 좋다고 했습니다. ‘요때 요놈의 새
끼의 모가지를 치자!’는 생각을 하고서 좋다고 했습니다.
2) 결정하라
엘리야와 바알신 아세라 목상의 선지자들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
을 통해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왕상 18:20~21>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보내어 선지자들을 갈
멜산으로 모으니라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
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
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 . .
[ 22/44 ]
3년 동안 숨어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회를 주었던 엘리야이기에
너희들이 어느 때까지 머뭇머뭇하려느냐? 예수님께서도 3년이라는 기간을
유대인들에게 주셨습니다. 기회를 주었는데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버리
리라!
<눅 13:6~9>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3년을 와서 이 무화과 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과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엘리야 시대에도, 머뭇거리는 것도 한도가 있으니 결정하라! "바알이 하나
님이냐? 여호와가 하나님이냐? 결정했으면 누가 옳은지 싸우자!" 서로서로
제단을 쌓고는 하나님의 판정을 기다리지 않았습니까? 결국 하나님의 불은
엘리야의 제단에 내려옴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
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왕상 18:36~38) 3년이 되어도 열매를 안
맺으면 찍는다더니만 역사는 항상 이렇게 흑백을 구분하셨음을 알 수 있습
니다. 우리도 어느 편에 설 것인가 확실히 구분을 내리고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3) 갈멜산 승리
왕이 급히 조서를 내려서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는 850명의 선지자들을 데
려다가 갈멜산 상에서 제사를 지내게 했습니다. 왕이 쳐다보고, 이세벨이 쳐
다보고, 그리고 모든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송아지를 잡고 기도했습니다.
[ 23/44 ]
바알신을 찾으며 열심히 부르짖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신을 섬기는 이들은
둘이 한패가 되어서 열심히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부르짖어도 응
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말하기를, “바알신은 그렇게 신사적으로
해서는 응답치 않을 것으로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나도 신사적으로 하지 않
고 야단법석을 피울 것인데.., 어떻게 그렇게 신사적으로 한단 말이요?” 하
면서 꾸실렁꾸실렁 해대니까 아합왕이 “야, 여봐라! 너희들 몸뚱이에다 칼자
국을 내가면서 기도하라! 그러면서 부르짖어라!”하고 명령을 했습니다. 850
명이 소리를 질렀을 때 어떠했겠습니까? 아마 이스라엘 나라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을 것입니다. 아마 그 같은 날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기
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것을 들어보았지요? “으악!!”하면서 프로급들이 소리
지르는 것을 보면 화통을 삶아 먹은 것은 저리가라고 할 정도입니다. 이 말
씀을 전하다 보니 그것이 연상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산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는데 바알신은 어디에 가 있었는
줄 압니까? 꽁꽁 묶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강림해서 꼼짝도 못하게
해 놓았습니다. “이놈, 거기 앉아 있어!” 바알신이 뭡니까? 만든 신이지! 아
무리 해도 안 되어서 그들이 결국 고개를 흔들흔들하면서 안 된다고 했습니
다. 그리고 또 하는 말이 “아마 저놈도 안 될 것이니까 걱정할 것이 없다.
우리도 안 되는데 저놈이 되겠느냐?” 했습니다. 그들이 못했을 때 아합 왕
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습니다. “야, 저놈들 봐라. 저렇게 안된단 말인
가?” 그래서 엘리야가 아합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하이고, 왕은 될 줄 알았
습니까? 제가 전에 그러지 않았습니까? 내 말이 아니면 수년 동안 비가 오
지 않는다고 그랬잖습니까? 이제 해가 넘어갔으니 내 차례입니다. 돌로 단
을 쌓고 도랑을 만들어서 물을 넣고, 그 위에 송아지의 각을 떠서 여호와의
무너진 제단을 쌓겠습니다.” 사실 3년 6개월 동안 완전히 여호와의 제단은
무너졌었습니다. 그 제단을 다시 쌓았던 것입니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엘리
야가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놈들은 아침부터 계속한 것입니다. 거진 하
루 종일을 한 것입니다. 한 시대가 거진 끝날 때까지! 결국 엘리야가 시작했
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여, 이삭의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 24/44 ]
여! 이때를 기해서 하나님이 계신 것과, 내가 하나님의 보낸 자임을 알게 하
시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지금까지 행한 모든 것은 이때를 위함이 아
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계획이 아니었습니까? 이들은 모르지만 여호
와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응답하셔서 이 백성들
이 보게 해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했더니 불이 붙었습니다. 안 붙겠습니까?
불이 붙고야 말았습니다! 가슴속에 화끈하게 불이 붙고, 심령이 찌릿하게 불
이 붙었고, 그리고 거기의 송아지가 불이 붙고야 말았습니다. 흙이 타기 시
작했습니다. 순식간에 물기가 싹 없어져 버렸습니다. 송아지는 간데온데없고
연기만 모락모락 나고 있었습니다.
아합 왕이 그것을 쳐다보고서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였고, 이세벨이도 쳐
다보고서 “달달달달” 사시나무가 떨 듯이 떨고 있었습니다.
“모두 들으시오! 말을 안 들으면 이 불덩어리가 머릿속에 들어갑니다. 그렇
게 되면 큰일 나니까 가만히 계십시오. 자, 약속대로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망각한 것들 때문에 민족이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저 사르밧의 골짜기
에 이르기까지 -불쌍한 과부에게 이르기까지- 가뭄에 시달려 죽어 가는 일
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정말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이렇게 망각된 일을 한 이것들을 없애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합 왕이 대답을 했습니다.
“이것들에게 속은 것을 생각하니 원통하고 분통하기 그지없네! 여봐라! 이놈
들을 몰아다가 엘리야의 손에 붙이도록 하라. 한 명도 도망가지 못하게 하
라!”
이렇게 해서 850인의 거짓 선지자들이 엘리야의 손에 끌려갔습니다. 기손
시냇가에까지 내려가서 엘리야가 850명을 다 죽였습니다.(왕상 18:40) 긴 칼
로 다 끊어 죽였다는 것입니다. ‘야, 정말 무섭다..!!’ 통쾌한 꼴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엘리야를 항상 추종했습니다. 엘리야는 통쾌한
사람이었습니다. 홱 뒤집어엎어 버렸습니다! 한다면 하는 엘리야였습니다.
엘리야는 참으로 위대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엘리야가 이렇게 승리하기
전, 엘리야가 나타나면서 그때 당시에 하나님의 사람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
[ 25/44 ]
래서 엘리야가 그 심정을 풀 때 개인의 심정으로 푼 것이 아니라 많은 자들
의 심정을 대신 풀어 주는 입장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흑암을 처단시켜야 됩니다! 어둠을 처단시키고, 마귀를 처단시키고, 귀신을
처단시켜야 됩니다. 흑암의 세력은 모두 처단시키고 오직 하나님의 사람은
한 명도 남김없이 다 흑암에서 풀려서 본래의 상태로 회복시켜 하나님께 영
광을 돌려야 되겠습니다. 결국적으로 이렇게 하여 갈멜산상에서는 승부는
끝났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야, 나는 이해
하지 못하겠다. 구약 시대는 이해 못할 사건들이 너무도 많다. 삼손에게는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서 그저 나귀의 턱뼈를 가지고 일 천명을 쳐죽여 버리
고, 하나님도 싸움하기를 좋아했나 봐. 하나님도 사람을 꽤 많이 죽였어..’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입장도 있지만 그러나 깊은 단계에 들어가서 깨
닫고 보면 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서이고, 새로운 역사를 시도하기 위해
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3) 악을 제거한 후 비가 내림
아합 왕이 이제 은근히 걱정되었습니다. “저 엘리야가 또 ‘아브라함의 하
나님이여, 저 아합왕의 머리에 불이 내리게 하소서!’ 하면 큰일나겠구나. 여
보, 안 무서워?”하고 무서워했습니다. “아이고 나 무서워 죽겠어요.” 이럴
정도로 이세벨도 무서워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나오는 말씀같이 -(왕상
18:41~46)-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가만 보니까 무서
워하고 두려워하시는 것 같은데 사람을 왜 그렇게 무서워하고 두려워합니
까? 하늘의 천법에서 벗어나면 하늘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시대나
동일한 것입니다. 내가 그렇다고 해서 갈멜산 제단 위의 송아지에 떨어진
불길을 아합왕의 머리 위에 또 이세벨의 머리 위에 떨어지게 하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 이제 먹고 자고 쉬고 그리고 소고를 치십시오. 올라
가서 먹고 마시면서 큰 빗소리를 들으십시오! 이제 비가 올 것입니다.”
악을 제거했으니 비가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동 법칙으로 비가 따라온
다는 것입니다!
[ 26/44 ]
“걱정하지 마시고 먹고 마십시오. 우리끼리 있으니까 말인데 왕의 체신이
그게 뭡니까? 아끼면서 쫄닥거리고? 없는데도 아낍니까? 왕이 아낄 정도니
백성들은 오죽하겠습니까? 비가 내려야 산천초목을 적셔서 땅을 기름지게
하여 농사가 대풍이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기 사르밧 과부의 집에도 제
가 가보니깐 아끼다 아끼다 결국 다 떨어져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고 하던
상황을 보았었는데 비만 오면 그럴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하고 엘리야가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아합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마차를 타고 빨리 들어가십시오! 비 맞은 장닭이 되기 전에.. 부지런히 말
고삐를 몰아 들어가십시오. 내가 아예 비를 오게 만들어 놓고 갈 테니까!!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먼저 가십시오.”
그렇게 하여 둘이 순식간에 친구가 되었습니다.
“자, 이제 시키는 대로해야 됩니다. 안하면 큰일납니다.”
그래서 아합은 마차를 타고 부지런히 달려서 올라갔습니다. 엘리야는 산
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이제 악은 다 제거되었습니다. 깨끗하게 없앴습니다.”
엘리야가 우상을 싹 없앤 거와 같은 입장의 때가 또 한 번 있었지요? 요시
야 때!!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20:1>에 있
는 말씀.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도록 하라!”하고 애굽에서 나올 때
아예 지계석으로 정해 놓았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 외에 다른 사람
을 더 사랑하지 말라! 하늘의 주체 이외는 더 사랑하지 말라! 메시야권 외
에는 다른 것을 더 두지 말도록 하라!” 이런 것이 1조 1항이라는 것입니다.
“네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애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
다!”고 한 주님의 입장도 이와 동일한 것입니다. 그래야 역사를 해 나갈 수
있고, 그래야 뜻을 펴 나갈 수 있으니까!
“하나님이여. 기도합니다. 이제 모든 것을 없앴습니다!” 하면서 엘리야가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일곱 번을 기도했더니만 바다 뒤에서 사람의 손 만
한 구름이 떠오르더니 점점 퍼져 나가 새까맣게 먹장구름이 되어 이스라엘
[ 27/44 ]
을 덮었습니다. 소나기가 내리기 직전에 엘리야가, ‘아, 나도 지체했다가는
비를 맞겠구나!’하고서 허리를 동이고 여호와의 능력에 사로잡혀서 날개가
돋친 듯이 왕궁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나옵니다.(왕상 18:46) 마차를 타고
간 아합을 앞서서 달렸습니다. 아합이 깜짝 놀라서 ‘아니 이 귀신같기도 하
고 이티(ET)같은 놈이 또 왔구나!’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엘리야
가 아합에게 말했습니다.
“아니 몇 시간 전에 떠난 사람이 여기까지밖에 못 왔습니까? 어디 다른데에
들렸다가 왔습니까?”
“아니요! 내가 지금까지 계속 달려온 것이요.”
“아니, 나는 7번이나 제단을 쌓고 왔는데도 이렇게 왔는데! 비가 그냥 올 것
같습니까? 제단을 쌓았더니 소낙비가 오려고 하지 않습니까? 왕이 간 후 하
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제 악을 제거했으니 비를 내려 주시옵소서’
하면서 7번 제단을 쌓고서 부지런히 뛰어오다 보니까 저렇게 비가 오지 않
습니까? 빗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이렇게 되어 소낙비가 와서 산천초목을 춤추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꽃
이 피고 그야말로 아낙네들의 일손이 바빠지기 시작하는 봄동산이 돌아오다
시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대는 회복되고야 말았습니다! 드디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 28/44 ]
4. 갈멜산 승리 후의 엘리야
<왕상 19:1-21>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
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
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1) 자포자기하는 엘리야
이같이 세계적인 사명을 가진 사람도 목숨을 내놓고 참고 견디면서 이겨
나가는데 하물며 하늘 사명을 맡은 섭리 주권자들의 마음 상태가 해이 해서
는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명을 쓴다 하더라도 더욱 더 심한 무
엇이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자포자기 해서는 안됩니다.
옛날 바알 선지자, 아세라 목상 선지자 850인을 단칼에 몰살시킨 엘리야
가 갈멜산에서 승리한 후 아합의 처 이세벨의 허풍에 그만 기가 질려 로뎀
나무 아래서 죽기를 간구했을 때 즉각 엘리사로 섭리사 주권자가 바뀐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 중심자가 자포자기한다면 그것은 끝장입니다. 신앙 전선에
서는 자포자기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 호랑이가 곰을 피해서 도망가
서 죽기를 간구하느냐는 것입니다.
법칙적으로 보면 항상 승리 후에 어려운 일이 꼭 오니 그것을 넘겨야 합
니다. 사탄, 마귀들은 항상 승리에 들떠 있는 아벨을 걸고 넘어질려고 덤벼
드니 우리는 반드시 전후반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서 전후반전을 다 잘해
야 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라는 사람을 알지요? 엘리야가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 450인과 아세
라 목상을 섬기는 400인과 싸웠어요. 3년 6개월 동안 산 속에서 심정태우며
있다가 나와서. 결국 싸워서 이겼습니다. 다 쳐돌리고 때려부수었습니다. 그
리고 하나님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 사람들이 『엘리야』햐면 달
[ 29/44 ]
달 달 달 떨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의 부인 이세벨이 한바탕 했습니다. “에
라. 잡것! 요새끼 패 죽이겠다. 가만 안 놔두겠다.”
그랬을 때 엘리야가 “아이고 ...”하고서 도망쳤습니다. 저 광야로 도망가
서 로뎀나무 밑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 나 여기에
서 죽어도 원통하지 않습니다. 명이 짦아서 죽었다는 소리도 안 할 것이고
그 동안 할 짓을 못하고 죽었다는 소리도 못할 것입니다. 나는 이것으로 만
족합니다. 오히려 남의 손에 죽느니 그냥 죽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나님 나
를 살짝 불러주십시오.”
이렇게 포기해 버렸습니다. 아니 아합 왕이 쫒아왔어도 멋있게 때려부수
었는데 그 부인 이세벨이 쫒아 왔는데 포기한단 말입니까? 그까짓 여자는
한 번 내질러 버리면 맥을 못씁니다. 한 번만 걷어차면 여자는 팽 나가떨어
집니다. 그것을 놔두고 포기를 한단 말입니까? 엘리야의 인격이 거기서 끝
난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그런 것이 많습니다. 엘리야가 바보처럼 포기를
했습니다. 그냥 해치웠어야 합니다! “이세벨? 하이고 잡년이! 탱칠이처럼 해
치워야 되겠구먼. 에이. 이년아! 내가 지금 너를 삶을려고 물을 끓이고 있
다. 그냥 푹 삶아서 국물을 후르룩 마실테니까 나와 봐. 850명이 죽은 것을
너 기억도 못하느냐? 이년이 환장했구먼. 너. 선지자 엘리야가 누구인지 모
르는구먼.“ 하고서 한 번 손을 봐주었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 때 엘리야가
눈만 흘겨도 꼼짝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벼르고 있다는 소식만 이
세벨에게 전달했어도 그 여자가 간담이 서늘했을 것입니다.
“엘리야가 “요년이 오면 반은 죽이겠다. 껍데기를 벗기겠다” 하고 있습니
다.” “응. 나살려!” 그런데 “엘리야가 지금 죽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니
까 이세벨이 더 신바람이 나서 밀어붙였습니다.
포기하면 하늘역사가 거기서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중심자의 역사도 포
기하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도 기구절창해서 얼른 엘리사를 세워
버렸습니다. 갈아치웠다는 것입니다.
“네가 내려가면 열 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을 세워서 빨리 빨리 네 대신자를 삼아라.”
[ 30/44 ]
그래서 엘리야 대신 엘리사가 나타나서 그냥 완전히 영감의 사람으로 활
약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임해서 무서운 것을 몰랐습니다. 말만 하면
확확 돌아갔습니다. 결국 부활복음은 그 사람에게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여러분들이 포기를 하게 되면 딴 사람에게 갑니다. 믿습니까? 섭리권에서
포기 할 사람들 손들어봐요! 포기하면 딴 사람에게 인계됩니다. 내가 딴 사
람에게 인계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엘리사같은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입니
다. 원래는 엘리사에게 갈 것이 엘리야가 다 하고 전후반을 살아 먹었어야
합니다. 믿습니까? 포기하는 사람들은 아주 형편도 없는 사람입니다. 지지리
못난 놈들만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낙심하는 것이 제일 무섭습니다. 낙심함으로 인해서 주권이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낙심치 말아야 됩니다. 믿습니까? 낙심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왕상 19장> 이하를 보면 엘리야가 아합왕 앞에서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목상의 선지자 400인을 때려 눕히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좋아했습
니다. 그런데 그후 아합의 부인 이세벨이 자기의 종교를 없앴다고 엘리야를
추적했습니다. 진 사람들이 승리자를 쫓아다녔던 것입니다. 진자는 이긴 자
의 종이 된다고 했는데 이게 웬말이냐 하겠지만 진자가 마지막 발악을 한
것입니다. 졌어도 마지막 발악을 한번 해 보는 것입니다. 뱀을 때려잡았어도
마지막 꿈틀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아이고 또 살
아나는구나! 아이고 큰일났다” 하면서 포기하면 안됩니다. 마지막 발악을 하
다 죽는 것입니다. 그것을 돌려서 생각하면 뜻이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그
것을 지켜보는 사람이 통쾌함을 느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엘리야를 보겠습니다. 엘리야가 그때 ‘아니 내가 이겼는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하고서 로뎀나무 밑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도망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거기서 노래나 쳐 부를 일이지, 왜 자포자기하고 앉아 있었냐는
것입니다. 엘리야 하면 “영감”의 사람이 아닙니까? 거기서 잠깐만에 한 곡
[ 31/44 ]
지어서 노래나 부르고 앉아 있지, 뭣 하러 자포자기하고 처박혀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 말씀을 들으니까 교훈이 되지요? 그때
다윗 같았으면 노래했을 것입니다. 사실상 다윗은 더 많이 쫓겼습니다. 또
쫓기고 또 쫓기고 또 쫓겼습니다. 수백 번 그랬는데도 바위 밑에 가서 노래
했습니다. 무대가 없을지라도 봐주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노래했습니다. 누구
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찬미하고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위대합
니까? 정말로 우리의 조상으로서 견본적이고 표상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다윗 같았으면 틀림없이 로뎀나무 밑에서 죽기를 구하지 않고 오히려 하
나님께 찬양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들이 또 쫓아오고 있는데 쫓
아 와봤자 이지요. 심심한데 잘되었습니다. 쫓아오면 데려와 놓고 옛날 이야
기나 해주고 보내고, 노래나 해주고 보내야 되겠습니다.” 오히려 이같이 하
면서 자포자기를 더 무서워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와 같이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승리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이마만큼 노래가 큽니다.
노래할 장소에서 노래를 안 하게 되니까 같은 입 가지고 무슨 소리가 나왔
습니까? 낙심과 낙담의 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되서 엄청난 차질이 생
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환경의 어려움이 있을 때
푸념하지말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이고 하나 님아버지, 정말로 신앙길이
어렵고 섭리길이 어렵습니다.”하면서 짜물거리지 말고, ”섭리길이 보람있습
니다. 그래도 섭리길 밖에는 없습니다.“하고 노래를 부르십시오. 쫓길 때마
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노래를 부르기 바랍니다. 그래도 섭리길에 왔
으니까 여러 사람을 서로 사귀고, 이렇게 서로 한 심정권에 있지, 어디라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 엠에스 이름을 가지고 또 선생님
의 이름을 가지고 전국 교회를 돌아다녀 보십시오. 서울 이야기 해달라고
붙잡고 끼어않고 난리가 아닙니다. 한 명 두 명이 붙잡고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열 명, 스무 명이 잡아당겨 남는 것이 없습니다. 성경을 이룰려고
잡아당기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무튼 어디에 또 이와 같이 심정일체세계,
행동일체세계가 돼서 인간관계가 회복되는 곳이 있습니까? 이것을 생각할
때 노래를 꼭해야 되겠습니다.
[ 32/44 ]
2) 자포자기하는 이유
▲ 포기하지 않음으로 기쁨을 느껴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포자기를 하게 된
다. 현재의 역경과 고난을 통해 미래에 큰 영광이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
이다.
▲ 자포자기도 습관성 전염병으로 머리 속에 잠재되어 있기에 버릇처럼 자
포자기한다. 포기함으로 인해서 과거의 뼈저린 살을 깎는 듯한 고통을 받고
도 잊은 자는 다시 포기한다.
▲ 자포자기는 심리적 상태에 의해 일어난다. 포기라는 심리적 상태와 기분
여하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 많다. 기분이 나쁘면 하다가도 “에이 될 대로
되라” 해 버리고 기분이 좋으면 “내가 하겠다”고 한다.
▲ 포기하는 자는 상대를 고려치 않는 자이다. 자기를 길러준 자, 지도자,
격려해 주고 박수 쳐 주는 응원자, 형이상학적으로는 하늘 부모, 그리스도,
성령을 생각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입장과 현실과 그럴 수밖에 없
는 환경과 자기의 현재 고통만 생각하고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기에 포기한
다.
▲ 포기하는 자는 하나님 중심하지 않고 자기 중심하면 포기한다. 대개 자
기의 힘이나 지혜나 능력, 소질, 재질만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떨어지면 일
단 포기한다. 그러나 골리앗 앞의 다윗은 오직 여호와만 의지하겠다고 시편
에 쓰고 있다. 포기하는 자는 주님을 바라보는 법칙을 잊은 자들이다.
▲ 포기하는 자는 대개 담력이 없고 담대하지 못해서 포기하게 된다. 심령
이 강하고 심지가 굳세지 못한 자가 포기를 한다.
▲ 인생을 막 사는 사람들이 막 포기해 버린다. ‘이왕 버린 몸, 더 버릴 수
있으랴?’ 하면 포기를 한다.
▲ 해도 안될 때는 경험적으로 볼 때 과거에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포기
를 한다. 한두 번 참다가 결국 포기해 버린다. 안될 때는 방법을 달리하라.
▲ 대개 ‘희망과 소망이 끊어졌다, 없다.’ 할 때 포기한다. ‘해봤자 별 재미
[ 33/44 ]
도 없고 이익도 없고 늘 그 모양 그 꼴이다. 미래에 살아 봤자 그것이다. 과
거에 살아봤을 때 별것이 없다’ 늘 그렇게 생각한다.
▲ 경험이 없어 포기를 한다. 포기하지 않고 앞에 나가는 선구자, 정신적인
지도자, 이런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포기하게 된다.
▲ 자기 어려운 상황만 크게 봐서 포기한다. 개미를 보듯이 코끼리를 봐야
하는 데 코끼리를 보듯이 개미를 보기 때문이다. 조그만 일도 크게 보고 쇼
크를 받으니 넘어진다.
▲ 하나님의 사람이 포기하면 의의 대가 끊어지고 사탄의 대가 이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사탄의 밥이 되고 앞잡이가 된다는 것을 모를 때
포기한다.
▲ 포기 잘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잘 포기하게 된다.
▲ 남과 비교하여 ‘남은 잘 생기고 멋있고 아름답고, 자기는 못생기고 미련
하게 생겼고 바보같이 생겼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포기를 한다.
▲ 실력 부족, 기술 부족, 지혜 부족, 자기 능력 부족 자기 스스로의 기도
부족, 말씀 무장 부족 이럴 때 포기가 온다.
▲ 전혀 예상치 않게 발등에 불 떨어지듯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냥 ‘아이
쿠’하고 포기하게 된다.
3) 과감하고 담대하게 어려움을 이겨라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야 합니다. 모든 학문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환경
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힘들 때는 산에 가서 하루 기도하고 오면 항우같
은 힘이 생겨서 소나무 뿌리도 잡아당겨서 뽑고 싶은 근성이 일어납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아휴, 힘들어. 어려워. 한 두
번도 아니고 나는 힘들어서 죽겠어. 한두 번이라야지’그러면 안됩니다.
성경에는 엘리야라는 분이 나옵니다.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
다. 그때 왕이 바알신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라고 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마
음으로 굴복하고 어떤 사람들은 마음으로는 아니지만 할 수 없이 여건상 굴
[ 34/44 ]
복했습니다. 엄청난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엘리야는 그 꼴이 보기 싫
으니까 산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결국 3년 6개월 만에 가물게 해놓고 그
후에 나와서 아합왕에게 대들고 싸워서 이겼습니다. 바알신과 아세라 목상
을 섬기는 사람 850명을 갖다놓고 누가 진짜 하나님을 섬기는지 보자고 하
면서 제물을 드려서 불을 붙이는 시합을 해서 엘리야가 승리를 했습니다.
엘리야기 믿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인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자가 굴복했습니다. 850명 모두 굴복시키고 생명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엘리야가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하고 마음을 탁놓고 있었습니다. 그런
데 이세벨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한 이야기를 듣고 엘리야는 도망쳤습니
다.
“하나님, 끝도 한도 없군요. 큰 것을 없애면 되는 줄 알았는데 작은 것이 또
대드네.”
이렇게 낙심했습니다. 그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저 잡년이 돌았나? 하나님, 자기 남편도 졌는데 나에게 대드네요? 정말 웃
깁니다. 제가 손가락 하나 가지고 이기겠습니다.”
이렇게 담대하게 했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을텐데 엘리야는 겁이 나서 도
망쳤습니다. 도망치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마음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아멘! 믿습니다. 할렐루야!”하면서 쳐부수고 싸움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머
리통이 터지고 몸뚱이에 뼈만 남고 백골이 진토가 될지라도 해버리는 것입
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올라가서 다 못한 일의 바톤을 주십시오. 나머
지 일은 내가 하겠습니다. 죽으면 끝이니까 살아있는 우리가 계속 하면 되
지 않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바톤을 이어받고 갈 수 있는 처지가 되어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수 있고 그 정신과 사상이 배었다고 할 수 있는 것
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이 거듭해서 일어나면 그냥 포기해버립니다.
밀어붙이고 과감하게 처리하는 것입니다.
[ 35/44 ]
4) 엘리야의 승천
그리고 <열왕기하 2:11>을 보면 엘리야가 불병거 타고 올라갔습니다. 신
학에서는 육으로 올라갔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마 17:1-13>에 나오는 엘
리야는 영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같은 사람인데 육으로 올라갔다 영으로
나타났다 하니 안 맞지 않습니까? 같은 사람인데! 육으로 올라갔으면 육으
로 내려오고, 하니 안 맞지 않습니까? 같은 사람인데! 육으로 올라갔으면 육
으로 내려오고, 영으로 올라갔으면 영으로 내려와야 되지 않겠냐는 것입니
다. 이것도 아다리 치는 말씀입니다. 엘리야가 그 때 변화산상에서만 나타나
고 말았겠습니까? 영으로 나타난 사람이 그 때만 나타나고 말겠습니까? 계
속 나타나 돌아다녔다는 것입니다. 그 때 당시 환상을 보는 사람은 맨날 봤
다는 것입니다.
이 섭리사 갈 때 이 주관권에 온 사람만 나를 자주 만나지 안 온 사람은
평생동안 내 앞에 서 보지도 못하고 끝나고 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미 자
기네들이 기다리던 바 사람이 왔어도. 그리고 이 섭리를 계속 수십 년 따라
다녀도 환상을 보는 사람만 예수님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을 몇 번 보고 못
보는 사람은 한번도 못보고 그냥 끝나는 것입니다. 별 수 있습니까? 똑같
은 세계입니다. 그래서 그때 당시 엘리야도 환상보는 사람만 본 것입니다.
아무튼 같은 엘리야이니 똑같이 따지라는 것입니다. 신학에서는 엘리야가
승천한 것은 육이 승천했다 하고 마태복음 17장에 나타난 것은 영이라 합니
다. 육으로 올라갔으면 육으로 내려오고 영으로 올라갔으면 영으로 내려와
야 이치가 맞지 않습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하면 엘리야의 육은 어디에 있
단 말입니까? 모순이 없어야 됩니다. 모순 있는 짓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도 육이라 하는데, 지금 환상 가운데 나타나고 우리 가운데
돌아다니시는 주님이 육이 아니고 영인데 예수님이 육으로 승천했단 말이
냐? 주님께서 이것도 아다리 칠 수 있는 말씀이라 했습니다.
열왕기하 2장 11절을 보면 엘리야가 승천해서 이적과 기적이라고 하면서,
[ 36/44 ]
그가 불병거를 타고 올라가서 찾을래야 찾을 길이 없었고 50명이 돌아다녔
어도 못 찾았다고 했습니다.(왕하 2:15~18) 그러나 눈이 삐졌으니까 못 찾
았지, 병신들이 왜 못 찾았냐 이거에요.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때 엘
리야가 재림해서 영인체가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영인체로 올라갔으니까
영인체로 와서 돌아다니지, 육인체로 올라갔으면 육인체로 와서 돌아다니지
않겠습니까?
사람은 한번 올라가면 안 죽고 계속 돌아다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환상이라고 합니까? 주님 때, 엘리야는 직접 본체가 내려와서 돌아다녔습니
다. 그러면 하늘 나라에서 초상치를 날이 있었다는 말입니까? 내가 하늘 나
라에 올라가서 물어보니까 그런 일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 하들들
말라고 그랬습니다. 천사가 “어디에서 왔냐? 이런 골빈 사람이 돌아다니네.
가서 일러 버린다.”고 그러더라고.
구약인들이 엘리야의 재림을 원했습니다. <열왕기하 2/11>을 보면 엘리야
가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했습니다. 승천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없
어진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사람을 찾습니다」하고 찾을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승천했습니다. 에녹이가 하나님과 동행하다 없어졌습니다. 모세
가 없어졌습니다. 히틀러 육체도 없어졌습니다. 또 일본의 히로시마 광도에
원자폭탄이 터지고 사람들이 다 없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육체가 없어진 사
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기독교에서는 엘리야가 불병거타고 하늘에
올라갔기 때문에 시체가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엘리야
의 부활을 어떻게 시켰나 보십시오. 육적으로 시켰나, 영적으로 시켰나!
여기 보십시오. (도표참조 3. 「엘리야 승천과 강림」) 엘리야가 불병거를
타고 올라갔습니다.(왕하 2/11) 엘리사에게 옷을 집어던져주고서. 유대인들
은 이렇게 올라간 줄 알고 이렇게 올 줄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말라기 4장
5절에서도 보면 엘리야가 온다고 했습니다. 메시야가 나타나기 전에 꼭 온
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닌게 아니라 900년 후에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 37/44 ]
그 동안 소식이 없다가 900년만에 나타났는데 변화산상에 나타났습니다.
엘리야가 모세와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이 육신 쓰고 있을 때 변화산상에 나
타났습니다. 그런데 이 때 나타난 엘리야와 모세는 육신이 아니라 영체라고
신학에서 말합니다. 사실상 영체(靈體)가 맞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그들을 딱 쳐다보고서 할 일이 생겼다며 좋아했습니다. “아, 우리가 할 일이
또 생겼구나! 예수님 초막 하나, 모세 초막 하나, 엘리야 초막 하나를 쳐 줘
야 되겠다.” 이렇게 했습니다. 이들은 육신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육신
이 아니고 영인체였잖습니까? 모세와 엘리야가 쳐다보았을 때 어떠했겠습니
까? “하이고 우리를 육신으로 생각하네. 누가 가르쳤길래 저렇게 되었을
까?” 그랬으니 예수님께서 얼마나 쑥스러웠겠습니까?
5) 엘리야의 재림
이래서 서로 하나되는 세계! 서로 형제끼리도 하나 안돼서 서로 싸우고
울고 짜고 맨날 저는 소리. 우는 소리. 고함 소리... 각종각색의 슬픔의 소리
가 있었던 - 모든 형제 사이, 종교 사이의 일들, 하늘과 인간 사이의 일들
-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다 보면 끼리끼리 그런 일들이 있습니
다. 예술인은 예술인 끼리끼리 다 그런 심정이 얼키고 아픈 것이 있다는 것
입니다. 그것을 풀어볼려고 모두들 발버둥을 치고 환경도 옮기고 하지만 잘
안됩니다. 이런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언제쯤 해결될 것이냐?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오면 모든 것을 풀어주겠다고 했으니 엘리야를 오죽이나 기다렸겠
습니까?
엘리야는 마치 불도우져, 포크레인 같이 앞장 서서 높은 산을 낮게 만들고
너무 깊은 웅덩이는 메꾸고 하는 이런 일을 하러 온다고 했습니다. 그와 같
은 인간을 잘 다루는 일을 하러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엘리야를 기다리
지 않을 수 없지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야, 너
희들을 보니까 너희가 예수를 보기를-산골짝 시골놈 한 청년을 보기를- 메
[ 38/44 ]
시야로 보고 좇아 다니는 것을 우리가 안다. 너희가 선생 선생, 랍비 랍비
하면서 좇아다니는데 기존성의 우리들이 볼 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 안 믿을려고 해서가 아니라 성경에 보면 엘리야가 먼저 온다고 했는데
엘리야가 어디 있느냐?”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구약 성경을 모르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좀 무식했지요- 얼버무렸지요.
“이런 여러 가지로 볼 때 엘리야가 꼭 와야 되지 않겠느냐? 너희들이 예수
를 메시야라 하는데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 엘리야가 온다고
했는데 너희들이 엘리야에 대해서 알기나 아느냐? 구약에 나오는 그 엘리
야가 무슨 일을 하고 갔는지 알기나 아느냐?”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뻥 쪄서
“응...? 베드로? 무슨 말이냐?” 이랬다는 것입니다.
“야, 자식아. 모르면 가만히 있어. 아는체 하고 있어야지. 자꾸 물어보면 큰
일난다. 야, 사라지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들이 구약의 말씀을 알겠습니까? 모르지. 더군다나 구약의 전문자들이
이야기하는데 여러분들도 나가서 일반교회 목사님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면
멍청하니 “잘 모르겠는데요. 그것은 잘 모르겠는데요.” 이렇게 할 때가 많다
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눈을 끄먹끄먹 하면서 서로 사라졌습니다.
그 후에 마침 상황이 돼서 예수님께 물은 말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서기관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된다고 하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제자들이 그 때에 그들의 말을 들었을 때 사실상 조
금 헷갈렸습니다. ‘아, 그렇구나...! 그러면 예수님을 메시야로 보고 좇아 다
닐 것이 아니라 뭐인가 다시 한 번 확인해야 되겠구나. 엘리야가 먼저 와야
된다고 하는데 그 엘리야가 어디있지? 아, 이상하다...? 예수님이 얼렁뚱땅
하고 가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마침 상황이 되
니까 슬쩍 물어 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말한대로 맞
다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먼저 와야 된다는 것이 맞다고 했습니다.
“맞다! 와서 모든 것을 먼저 회복해 줘야 된다. 그런데 이미 엘리야가 왔으
나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 39/44 ]
엘리야가 이미 왔는데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한 일
입니까? 그러니까 봉사이지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마음이 있어도 깨닫지 못하는 어둔한 자들! 화인맞은 자들. 또 인두
로 지짐을 받아서 감각이 없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눈 뜬 봉사! 당달 봉
사! 눈은 떴어도 보지를 못하고 귀는 열렸는데 듣지를 못하고 깨닫지를 못
해요...! 이것이 얼마나 답답합니까?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내 종들은
봉사, 앉은뱅이, 절뚝발이, 각종 불구자...」 그런 표현으로 표현했습니다. 보
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듣지 못하고 마음은 판단을 못하니
어둔한 자들이라고 하나님께서 한탄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들이 보기는 보아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미 엘리야가 왔으되
사람들이 유대인 서기관들이 - 구시대에 있는 사람들이 - 임의로 대우하였
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도 반드시 다시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와서 말씀하시
기를 세례요한이 바로 엘리야라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공중으로 불병거 타
고 올라갔으니까 위에서 올 줄 알았지만 항상 그 사명 가지고 다른 사람이
오는 것입니다.
<마 11:14-15>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
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세례요한이 온 다음에 메시아가 온다는 이야기보다 엘리야갸 온 다음에
메시아가 온다는 이야기가 더 근본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엘리야
가 온 다음에 메시아가 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왔을 때는 엘
리야가 죽은 지 900년이 넘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바로 엘리야라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을 이렇게 풀어지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바로 메시아
앞에 온다는 그 엘리야인데 그것은 바로 엘리야와 같은 사명을 가지고 온다
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세레요한은 엘리야라는 것입니다. 종들의 세
계였던 구약에서 나름대로 구세주는 모세였습니다. 그 앞에서 세례요한의
사명을 한 사람이 엘리야였던 것입니다. 신약에서 엘리야의 사명을 가지고
[ 40/44 ]
온 사람이 세례요한입니다.
지난 주의 말씀을 간추려서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지난 주일의 말씀은 마
태복음 11장을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이야기, 거기에 따르는
모든 역사관을 조명해보며 현실을 비춰보고 현실의 흐름을 역사대로 밝혀
말씀한 한 주간이었습니다. 예수님 때에 세례요한을 밝히는 문제보다 유대
인들이 오리라고 한 엘리야의 문제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관에 대한 여러
문제의 운명이 심히 크게 좌우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
시대에 유대민족이 기다리는 엘리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유대민족이 온
다고 하던 엘리야는 현시대에 사명으로 나타났으니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
인다면 곧 온다는 엘리야가 바로 세례요한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시작해서 세례요한이 엘리야의 사명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예수님의 제자들
은 예수님의 말씀을 여러 차례 들으면서 깨닫게 된 후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씩, 둘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시대에 나타날 그리스
도이심을, 그리고 구약에서 기다렸던 구약 이사야 11장에서 하나님이 온다
고 말씀하시던 신의 강림이 예수님께 임해서 그 시대 말씀의 역사를 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대의 세례요한을 확실히 밝혀야
메시아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다고 시대를 조명하면서 한 주일 동안 조언했
습니다. 아마 재림주가 와도 초림주가 왔을 때처럼 그 시대에 세례요한의
사명적인 존재자가 있어서 종교의 크나큰 세력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씀까지
했습니다. 이것이 지난주의 말씀 가운데 중요한 것입니다. (970202)
[ 41/44 ]
※ 부록
■ 점검하기(분석과 점검)
1. 엘리야가 아합왕 앞에 처음 섰을 때 엘리야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생각
해보고 각자의 의견을 나누어봅시다.
2.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집에 갔을 때 과부의 아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강
의를 통해서 과부의 아들이 죽은 이유가 무엇인지 이야기해봅시다.
3. 엘리야는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홀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를 믿는
사제들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갈멜산 승리
와 같은 일이 있었다면 서로 나누어 봅시다.
4. 엘리야가 포기한 후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거기서 받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5. 엘리야의 승천과 재림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야기해봅시다.
[ 42/44 ]
■ 생각하기
생활사에도 보면 실족할 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례를 들어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이렇게 어렵냐?하고 실족하기 쉽습니다. 성경의 예로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떠나 새로운 역사지인 가나안 복지를 가는
데 죽일 놈들이 더 많이 나타나고 더 으앙거리고 가나안의 31개 족속이 들
고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자꾸 읽는 것입니다. 내가 옥동자를 원했
더니만 몸부림을 치고 배가 불러와서 창피해서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이게
뭐냐?하는데 그런 것은 이미 각오를 해야 됩니다. 이런 것들을 자꾸 성경
을 통해, 설교를 통해 말씀해 주며 갈 때 힘이 되어서 아, 그렇구나! 그렇
지!하고서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도 하나님을 더 잘 믿으면 잘 믿을수록 어려움이 있었을 때 이것이 웬
일인가?하고 확인을 해봤습니다. 공사를 할 때도 보면 더 잘 꾸미면 꾸밀
수록 돈이 많이 들어가고 더 개발하면 개발할수록 더 힘이 듭니다. 아파트
도 5층 지을 것을 8층으로 지으려면 더 힘이 들고, 12층으로 지으려면 더
힘이 들고, 50층으로 지으려면 더 힘이 드는 것이 정상인데 그것을 두고
아!하고 낙심하면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무지한 사람이지요. 이와 같이 우
리의 신앙생활도 똑같습니다. 10명 전도하는 것보다 15명 전도하는 것이 더
힘이 듭니다. 공적은 더 높아지는데. 그러니 적당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남
을 구원시키려다 자기가 죽으면 안되지요!
이래서 실족할 사건이 많이 있는데 실족해서는 안됩니다. 대개 자신들이
생각을 잘못해서 착각한 것이 많습니다. 자기 문제도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
님의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실족하면 안 되는데 세례요한은 실족했습니다.
예수님이 초라하게 생겼지, 자기의 사촌동생이지, 예수님이 메시야라면 세상
을 뒤집어놔야 되는데 그렇게 못하지.... 이런 여러 가지 때문에 실족한 것
입니다. 그러나 메시야라고 금방 세상을 뒤집는 것이 아닙니다. 메시야가 오
면 금방 천국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겨자씨를 옥토밭에 심었어도 한참 몇 년 커야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
야 새들이 앉을 수 있고 열매를 먹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를 낳으
[ 43/44 ]
면 금방 영화를 볼 것 같아도 20년 동안 몸부림치며 길러야 됩니다. 그리고
스무 살에 고시에 합격한다는 보장이 되어 있습니까? 수십 년을 길러야 영
화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나를 낳고 45년만에야 겨우 영화를 본다.는 소리를 입에
서 부끄럽지 않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고향 어른들을 만
나면 당신은 정말로 자식 낳은 보람있어. 우리 아들 10명보다 낫네.하는
소리를 많이 듣는답니다. 45년이 걸린 것입니다. 그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
다.
[ 44/44 ]
■ 적용하기(실천 및 적용)
1. 섭리를 만나고 말씀을 들었지만 생활 속에서 힘든 일이 풀어지지 않았을
때 생각하기의 글과 같이 낙심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각자 그러한 경험
이 있었다면 이야기 해봅시다.
2. 섭리에서 가장 처음 맡게 된 사명은 무엇이었으며, 그 사명을 어떻게 감
당하고 있는지 혹은 어떻게 그만 두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봅시다.
3. 엘리야의 이야기를 통해서 각자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한 가지씩 이야기
해봅시다.
4, 생각하기의 글처럼 메시야의 역사도 겨자씨 같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비약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실망했던 일과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나
누어봅시다.
5.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지만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
력을 보였습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유가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자
신의 기도가 응답받은 경험을 서로 나누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