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학교2025.06.01 (일)
성경중심인물 04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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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중심인물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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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3
1)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3
2) 믿음의 기준을 세우다··········································································································4
3) 복의 근원································································································································4
4) 아브라함이 선택된 이유······································································································5
2.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지다······································································································7
1) 소돔으로 간 롯······················································································································7
2) 소돔과 고모라························································································································8
3. 하갈과 이스마엘······················································································································11
1) 사라와 하갈··························································································································11
2) 이스마엘과 이슬람··············································································································12
3) 믿음의 자손··························································································································13
4. 사라로 인한 시험····················································································································15
1) 그랄왕 앞에 선 아브라함··································································································15
2) 축복의 조건··························································································································17
3) 아브라함이 가진 무기········································································································18
4) 환란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다············································································18
5. 여호와 이레······························································································································21
1) 아브라함과 이삭··················································································································21
2) 100% 믿음······························································································································23
3) 아브라함의 믿음··················································································································24
※ 부록············································································································································27
■ 점검하기(분석과 점검)······································································································27
■ 생각하기··································································································································28
■ 적용하기(실천 및 적용)······································································································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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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창12: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
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
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
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1)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입니다. 유브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줄기
가 흘러내려 그대로 페르시야만에 도착하는데 갈대아 우르지방은 이 페르시
야만 주변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서 우상 장사를 하
는 사람이었습니다. 십계명에 보면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는데 그 다
른 신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환경 속에 있는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아브
라함은 이방 신앙자였습니다. 본래부터 하나님을 믿지 않았었고 다만 하나
의 마음으로만 신의 세계를 인정하는 정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하늘로부터 부름을 받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
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에 결국 이르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특
명(特命)을 받고서 갈대아 우르를 떠났던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지방은 에덴
이 가까운 곳이며 그리고 병풍같이 둘러싸여 있는 노아 때의 아라랏산에서
도 멀지 않은 지역이었고 유브라데스강과 티그리스강이 맞부딪쳐 닿는 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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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만 주변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이가 하나님의 크나큰 소명
을 받고 그곳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指示)하는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저 멀리 홍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눈”같은 지
역입니다.
2) 믿음의 기준을 세우다
아브라함은 과거의 신앙의 조상들이 2,000년동안 세우지 못한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의 조건을 세워 놓았습니다. 아담 때도 못 세우고, 노아 때
도 못 세우지 않았습니까? 아담이 못했을 때 1600년 만에 다시금 노아를
세워서 섭리를 했지만 일차는 조건을 세웠으나 이차 자녀권에서 못 세웠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이름이 싹 올라갔는데 그 아들들의 이름은 시
적부적 되고 말았습니다.
왜? 자녀들이 세워야 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행실이 완전치 못했기 때
문에.
하지만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그가 철판같은 믿음의 조상이 되니까 그 자
녀권들도 믿음이 좋았습니다.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그 믿음이 얼마나 좋았
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것
입니다. 물론 요셉의 하나님도 되셨습니다. <마1장>에서 그들이 믿음의 조
상이 된 것을 시인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
리스도의 세계라”는 말이 나오지요? 노아의 자손이라고 하지 않았고 또 아
담, 하와의 자손이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역사를 계산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후 2,000년만에 메시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아브
라함 이후 철판같이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뭐인가 나타나고 뭐인가 부닥친
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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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복의 근원
이제 아브라함이는 믿음의 조상이 돼서 말 그대로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
다. 복의 근원의 실존체! 물이 내려와도 근원지가 있습니다. 마치 이 마이크
대가리 만한데서 물이 나오는데 그 물이 온 대한민국에 안가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같이 아브라함이가 물의 근원같이 근원 역할을 했습니다. 수
도꼭지의 물을 잠그면 물이 안 나오고 물을 틀면 물이 나오듯이 아브라함이
가 그런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아브라함이를 축복하는 사람도 있
고 저주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축복을 받을려면 어떻게 해
야 되는줄 압니까? 아브라함 시대에는 아브라함이를 축복하는 자가 복을 받
게 되어 있었고, 저주하는 자는 화를 받게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것이 화복을 받는 표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를 마
치 우주의 안테나로 비밀히 세워 놓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는 바로 그
런 표상적인 안테나 역할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화면이 깨끗하게 나오고
어떻게 하면 화면이 흐리게 나오느냐? 안테나를 바로 잡아 놓으면 깨끗하게
나옵니다. 이와같이 아브라함이가 복의 근원이 되기도 하고 화의 근원이 되
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4) 아브라함이 선택된 이유
시대를 비유하자면 구약 시대 때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취해서 이상세계
를 이루려고 했으나 그 여자가 타락해서 못 이루고 그냥 늙었다. 그 후 다
시 4년을 기다렸다가 새로 성장된 여자를 택했다. 그것이 신약 역사이다. 그
런데 택해서 기르고 있는데 다른 남자가 데려다 강간 살인하였다. 그것이
예수님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한다 소리 않고 비밀로 해야겠다고 하고 아예
말을 안하고 간다. 그것이 성약 시대이다.
하나님이 누구를 택해 놓으면 자꾸 문제가 터졌다. 아담, 노아.....는 선택
해 놓고 길렀다. 그러나 개똥 참외를 맡아 놓고 계속 거름을 하다보니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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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다 따 가 버렸다. 그러니까 다음에는 그렇게 안 하고 생각지도 못하
는 곳에서 길렀다. 사단편이 자꾸 끌고 가니까 이제는 사단이 좋아하는 편,
사망에 있는 편에서 길렀다. 그것이 누군가 하면 아브라함이었다.
그는 아예 미신세계의 사람으로 사단이 좋아하는 사망권의 사람이었다.
사망권에 있는 사람을 데려다 기르니 자기편을 기르니까 몰랐었다. 그런 사
람을 하나님이 데려다 도우니 잘되었으나 자기편이기에 못 건드렸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이방에서 뽑았다. 이방에서 뽑으니 순진하고 선하고
착하니 그냥 따라다녔다. 이같이 전혀 생각지 않은 곳에서도 역사가 일어난
다. 섭리도 교회 안 다녔어도 하나님께서 그 중에서 뽑아서 섭리를 하신다.
안 믿던 사람이 믿으면 찰떡 같다. 믿던 사람은 뺀돌뺀돌하고 까다롭다. 따
지기나 한다.
자기 아들은 밥을 해주어도 고마운지 모르고 까다롭기만 하다. 음식이 맛
이 없다고나 한다. 그러나 손님은 오면 잘 먹었다고 고마워 한다. 윗목에 재
워도 고마워한다. 그러나 자식은 아랫목에 재워도 뜨겁다고 투정이 많다. 그
런 모든 것을 생각해서 하늘 섭리에 와서는 종의 입장과 같이 하나님께 잘
하고 좋아하고 기뻐해야 한다. 하나님 앞의 도(道)중 하나가 좋아하는 것이
다. 좋아하는 사람은 절대 안 버린다.
하나님은 역사의 뜻을 그렇게 이루어 오셨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우상 숭
배하듯이 하나님 믿는 것이 철통같았다.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면서도 그
만큼 찌들렸던 것이다. 우상 섬기는 것이 인생의 다인가 하면서 뭔가 찾았
던 사람이다. 오늘도 안 믿는 사람 중에 뭔가 찾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
이 나에게 걸리면 다 온다.
내가 이때까지 역사 폈지만 절대로 임시로 안 하고 완전히 하나님이 옆에
서 쳐다본다고 생각하면서 한다. 임시로 전도 하나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
고 완전히 죽을 때까지 살펴준다. 하나님이 지구촌에서 할 일을 대신 해 주
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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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지다
<창13:5-7>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
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
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
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1) 소돔으로 간 롯
<창13:7>을 보면 아브라함과 롯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롯의 가축의
목자들과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들이 서로 싸우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
서 싸울 것이 아니라 서로 갈라지자는 입장을 가졌습니다. 결국 서로 갈라
서서 각각 살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롯이 차지했던 땅을 뺏기는 일
이 나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을 볼 때 가인 편이 가는 곳에는 축복이라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롯이 그 호화찬란한 소돔 땅에 갔지만 누
렸습니까? 못 누렸습니다. 불쌍한 거지들을 데려다가 밥이나 해주고 동냥이
나 해주고 했을 뿐이지 그 아름다운 땅을 못 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
상편은 줘도 못 누립니다. 어디까지나 하늘 편이 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줘도 결국 누릴 수 없는 세계로 가고야 만 것을 볼 때 세상편의
결국은 아벨편을 따라가지 않음으로 누릴 것도 못 누린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들이 싸울때 아브라함이는 생각했습니다. ‘신앙이 다르고 관이 다
르니까 아무리 잘해 줄려고 해도 안되는구나...!’ 그래서 할 수 없다 하고서
서로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롯이 윗사람한테 다스림을 받지 않고 주관을 받
지 않으니까 자유로운 몸이 될 것 같았지만 가서 보니까 자유로운 몸이 되
지 않고 오히려 멸망의 길로 가고야 말았습니다. 자기 삼촌 밑에서 잘 지도
받는 것이 훨씬 나았다는 것이니다. 그런데 롯이 그것을 못하지 않았습니
까?
흔히 누군가가 말하기를 섭리 안에 있으면 묶여 있는 것 같고 자유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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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다면서 섭리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시편 2장의 말씀이
그들에게 떨어지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열방이 소란하고 여호와나 그 기름받은 자를 대적하며 그 맨 끈
을 끊어버리고 결박을 벗자 하느뇨? 그 끈이 은혜의 줄인데!!” 알겠습니까?
이와같이 나가면 굉장히 자유로운 몸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어떤 자유로운 곳에 있어도 어
디에 매여 있는 것같은 작용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런 사람은 천국에 가도
자꾸 생각하기를 ‘아 뭐인가에 묶여있는 것 같어. 어디 묶이지 않는 세계가
없나? 하나님이 묶어 놓고 주관하는 것 같은데 혹시 지옥이나 한번 가볼
까...?’ 이렇게도 생각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이
없습니다. 누가 어쩌구 저쩌구 해도 섭리 중심권 속에 있으면 그대로 자유
롭고 보다 이상적인 세계입니다.
아무튼 아브라함이와 롯이 신앙 때문에 할 수 없이 서로 갈라졌습니다.
신앙이 갈라질 때는 혈통이고 뭐이고 다 필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
앙이 같아야 됩니다. 더 나가서는 심정(心情)이 같아야 됩니다. 믿습니까?
2) 소돔과 고모라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세 천사가 나타났다. 아브라함은 영적인 사람이었
다. 기도생활을 많이 했다. 하루는 아브라함이 사는 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기로 ‘지나가는 행인이겠지.’했는데 하나님이 보낸 자들이었다. 아브라함이
그들을 불러 그늘에서 쉬어가게 했다. 아브라함은 즉석 요리를 해서 그들에
게 대접했다. 그런데 그들이 식사 중에 소돔땅 얘기를 슬슬 꺼냈다. 식사 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할
일을 숨기지 않으셨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조카 롯이 있는지라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
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물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겠습니까? 그 성에 의인 50명이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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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치 않고 멸하시겠습니까?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하나님은 공의
로운 분이신데 맞지 않습니다.”
“만일 의인 50을 성중에서 찾으면 멸하지 않으리라” 또 묻는다.
“오인이 부족하여 사십오 인이면 멸하시려나이까?” 물론 대답은 동일하셨
다.
“사십인...”
“삼십인...”
“이십인...”
“십인...”
“내가 십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결국 하나님의 발길은 소돔땅으로 향했다. 하나님이 보낸 천사들은 성문
이 닫히기 직전에 들어갔다. 그 때 땅에 엎드려 절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롯이었다. 롯은 항상 그런 일을 했다. 너무 수준 낮은 일이었다.
“우리 집에 쉬어 가시지요. 가서 인생 얘기도 하고 하늘 얘기도 합시다.”
롯은 이삭줍기를 한 입장이었다. 사실상 롯은 그런 식으로 살면 안 되었다.
소돔땅에서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했다. 롯은 그들이
천사인지, 하나님의 대행자인지 몰랐다.
인간은 하나님이 자기 앞에 천 번 만 번 지나가도 모르고 살더라. 롯도
모르는 가운데 대화를 했다. 천사들이 롯에게 “이 성이 오늘 멸망하니 너는
속히 이 성을 빠져나가도록 하라.”했다. 롯이 하늘의 음성을 들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고 나타나서 일하신다. 이 나라는 하늘 나라의 유형세
계이기 때문에 쓰고 나타날 수밖에 없다. 글씨는 종이를 쓰고 나타난다. 전
파도 마이크를 쓰고 나타난다. “너는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빨리 빨리, 얼른
얼른 이 성을 빠져나가라. 이 성에 죄악이 관영하였음이라. 부지런히 날이
새기 전에 빠져나가라. 듣는 즉시 움직여라!”했기 때문에 그대로 일어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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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될 입장이었다. 사위들을 데리고 나가려고 했는데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다. 결국 롯은 자기 아내와 딸 둘을 데리고 그 성을 빠져나왔다.
천법이 떨어졌으면 미련을 두지 말고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라!! 미련을
끊고 잘라라! 절대 믿음의 조건을 세우고 하나님의 속이 시원하게 해드려야
된다. 왜 속 보이며 하느냐? 하나님을 깨끗하게 정숙하게 섬겨라. 하나님을
깨끗하게 믿는 칼 같은 정신이 필요하다.
아브라함은 소돔 땅에 그런 일이 있을 때 정성을 들이며 기도했다. 롯이
빠져나간 후 소돔땅은 불바다가 되었다. 그래도 아브라함을 기억하사 롯을
건져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건을 세운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남기신다.
“누구” 때문에 죽고 “누구” 때문에 산다! 여러분, 누구 때문에 망하게 되고
누구 때문에 살게 되는 일이 있다. 롯은 아브라함 때문에 살았다. 우선 목숨
을 건졌다는 것이 큰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롯으로 하여금 물질에 대한 미련을 끊어버리게 하셨다. 소돔땅
은 물질 때문에 잘 살게 되고, 물질 때문에 망한 것이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다. 여자들은 뒤를 잘 돌아본다. 사람에게는 하
지 말라고 하면 꼭 하는 심리가 있다. 롯의 부인도 물질의 사람이었다. 롯과
롯의 부인은 부부일체가 되지 않았다. 롯에게 “언제까지 여기서 살 것이냐?
저 높은 집으로 언제 이사를 가냐? 다이아몬드는 언제 사줄 것이냐?” 이런
식이었다. 잘 죽었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 아느냐? 섭리를 애인처
럼 따르다가 나가서 죽은 사람들을 두고 한 말이다. 그 따위로 해서 어떻게
따라가려느냐?
바보와 천재의 차이점은 바보는 바라보기만 하고 천재는 자꾸 재주를 부리
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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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갈과 이스마엘
<창 16장 3절>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그 여종 애굽사람 하갈을 가져 그
남편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10년
이었더라
1) 사라와 하갈
창세기 16장을 보면 아이를 낳지 못해 고민하는 사라가 자기의 몸종 하갈
을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이를 못 낳는다는 고통
과 아브라함에게 미안한 나머지 그 같은 일을 했는데 그 후에 되어진 일을
보니 사라에게 의학적으로 큰 결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때와
시기가 되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그 후 하갈이 애기를 낳아 그런 입장은 덜 곤란해졌고 미안한 마음도 없
어졌지만 반면에 하갈에게 멸시를 받는 일이 생겼습니다. 사실 사라는 본인
이 긁어서 부스럼 낸 격입니다. 뭣하러 그럽니까? ‘입장 곤란하든 말든 내가
애기를 못 낳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하고 밀어붙였으면 괜찮았을 텐데 미
안하게만 생각하고 몸둘 바를 모르게만 생각했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당신이 하갈을 취해서 후손을 내는 것이 뜻입니
다.” 했더니 아브라함도 그것을 뜻이라고 “아멘” 하고 따라갔던가 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이 좋아 무조건 “아멘” 합니다. 사라가 여기서 잘못 생각했
습니다. 입장은 곤란하지만 자기 취할 길을 취하면서 “나는 입장 곤란하고
면목이 없지만 이게 하나님의 뜻 같다. 내가 애기를 못 낳을 리가 만무하다.
의학에 자신이 있으면 검토를 해보라. 내가 병신인가 당신이 병신인가 보
자.” 이렇게 버티고 나갔으면 괜찮았을텐데 입장 곤란하고 남편 보기에 미
안하니까 어떻게 할 줄을 몰라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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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갈도 그렇습니다. 여주인 사라가 소개해서 그렇게 해줬으면 사라를 공
경하고 위해주고 섬겨 주고 받들어 주고 해야 되는데 멸시부터 했으니 못됐
습니다. 하갈이 원래 애굽사람이거든요.
성서에 보면 「내가 혈육과 의논하지 않고 하나님과 의논했다.」는 말이 있
는데 사라가 이것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과 의논해야 되는데
혈육도 아닌 종과 의논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갈도 그렇지요. 사라가 그런
일을 해줬으면 줏대 부리지 말고 교만 떨지 말고 멸시하지 말고 존경하고
위해 주고 받들고 “언니, 언니”하면서 잘 따랐어야 했는데, 오히려 멸시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구원할 사람을 멸시하면 구원을 못 받는 것입니
다. 구원주를 멸시하면 되겠습니까? 사라가 하갈에게는 구원주가 아니겠습
니까?
이것이 가인의 근성입니다. 혹시 아벨 같으면 이렇게 안 했을 것인데 애
굽 나라에 본적을 둔 하갈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근성 있는 사람에
게 축복을 해주면 안됩니다. 이 섭리사에서도 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선생님 앞에도 서지 못 합니다.
2) 이스마엘과 이슬람
이렇게 해서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 회교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
함이 유대교의 조상이 되듯이 말입니다. 하갈이 이스마엘을 키우며 어떻게
가르쳤는고 하니 “내가 여차여차 해서 지들이 아쉬운 소리해서 종살아 주고
또 아쉬운 소리해서 그들의 후손을 만들어주는 일을 했는데 이 죽일 놈들이
나를 내쫓았다. 아주 죽일 놈들이고 나쁜 놈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에
게 계시하시기를 반드시 나에게도 역사 하신다 하셨으니 하나님의 역사가
이리고 흐르고 있다. 그들은 사명을 못했다. 아브라함이 사명을 못해서 하나
님 뜻이 깨졌다. 이러면서 아브라함이 무슨 중심인물이 될 수 있단 말이
냐?” 하고서 늘 가르친 것입니다. 요즘 말로하면 교리를 가르친 것이 아니
겠습니까? 회교에서는 「아브라함이 간판은 크고 굉장하지만 하나님께서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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렸다. 몸종을 취해서 이짓 저짓하고 나중에 가서는 버리고 이렇게 제멋대로
하면 쓰겠냐? 이건 있을 수 없다. 하나님 뜻은 우리에게 있다.」하면서 스스
로 기틀을 잡고서 유대교를 쥐어뜯고 유대교에서는 「하갈이 종의 몸으로 와
서 그 까짓거 애기 하나 임신시켜놓고서 큰소리치고 아벨 민족을 쳐들어 올
려고 하느냐?」하며 욕을 하고 이러면서 계속 싸워 온 것입니다. 가인과 아
벨의 싸움이지요.
그 후에 얼마 가지 않아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네 처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그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가 될 것이다.”
그러셨습니다. 그러니 조금 참았으면 됐을텐데 그 때를 못 참고 요두방정을
떨면서 애기 낳는데 신경 쓰다보니까 이렇게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속을 꽤 많이 썩였을 것입니다. 왠고하니 이 이스마
엘 자손들이 상당히 과격하고 무섭고 그렇거든요. 이 이스마엘 자손들한테
상당히 고통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선한 사람들은 선하게만 살다가는 것
이 뜻인데 악한 사람들은 그것이 아니거든요. “무조건 하나님 뜻이다. 신은
우리와 싸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했다. 하나님이 우리 어머니 때에 계
시를 했다.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우리 자손이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
도로 많아지게 축복해줬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회교도들이 현재 10억
이란 인원이 됐지 않습니까?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창16:12) 지금 지구촌의 동방은
아시아 근방이지만 그 때 당시의 종교적인 동방은 현재 석유가 많이 나는
중동근방 나라들이 아니겠습니까? 그 당세권으로 설명해야 됩니다.
3) 믿음의 자손
<창15:4-21>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난 씨라야 네
자손이 될 것이다. 그 때부터 내가 축복하여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해주리
라.” 하셨다. 나도 그 전에 이 말씀을 가지고 기성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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쳤는데 구름떼같이 많은 사람들이 좇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따라오다가도
자기 나름대로 구상하고 심정 상하게 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 때 내가 ‘자기
몸에서 난 자식도 마음대로 못한다는데 남이 신앙으로 길러놓은 자식을 데
려다가 내가 역사의 주인으로 삼는다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했다.
1978년 8월 보름 원남동 4층 건물에 있을 때였는데 기도하는 중에 하나
님께서 “네 몸에서 난 신앙의 자녀라야 내가 역사의 주인으로 삼고 축복해
주겠다.”하는 음성을 들려주셨다. 그때부터 내가 싹 정리하고 전도해다가 말
씀 가르쳐서 지금까지 계속 번져오게 된 것이다. 그런 축복을 받았기에 이
렇게 전도가 잘되지 요즘 이렇게 전도가 잘되는 곳이 없다. 여러분은 그런
축복을 받은 자들이니 인력으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천력(天力)에 의해
서 온 것이 아니겠냐?
결국 아브라함의 자손이 수천 년 흘러오는 동안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
의 모래알같이 많이 불어나지 않았냐? 우리 섭리사도 수백 년 흘러가다 보
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지금도 과거에 비하면 엄청나게 늘어났다. 우리
는 이제 사람이 모자라서 못하는 일이 없다.
며칠 전에 서울로 올라올 때 하나님께서 창세기 15장을 깨우쳐주시며 “너
는 내가 흠있는 제물을 받지 않는 것을 정녕코 알라.” 하셨다. 그래서 큰 충
격을 받고 이 말씀을 이들에게 전하겠다고 하였다.
지금 날씨가 덥지만 나는 대둔산의 후끈후끈한 바위에서 이 말씀을 받았
다. 여러분도 나중에 후배들에게 더위와 추위와 비바람과 땡볕을 물리치며
이 진리 말씀을 받았다고 얘기할 수 있지 않겠냐?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는 일은 창세기 때부터 있어왔다. 아담 하와로부
터 시작했지만 그들은 제물이 부정하여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다. 오늘은
여러분이 하늘 앞에 제물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흠이 있고 비리비리한 것
은 안 받으신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비둘기는 쪼개지 않
아서 거기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어딜 가도 제물을 드릴 때는 쪼개서 드려
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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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라로 인한 시험
<창 20:1-16> 아브라함이 그랄에 우거하며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그날 밤에 하
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라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아
니한고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벌하시나이까... 나
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
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
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줄 알찌니라... 아비멜
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리 하
였느냐 ... 네가 합당치 않은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네가 무슨 의견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아브라함이 가로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
으니 내 아내를 인하여 사람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또 그는 실
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처가 되었음이니라...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노
비를 취하여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 보내고 아
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너 보기에 좋은 대로 거하
라...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1000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풀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선
히 해결 되었느니라...
1) 그랄왕 앞에 선 아브라함
아브라함에게 애굽의 바로왕(창12:10-20)에 이어 또 한번의 시련이 왔습
니다. 이번에는 그랄왕 아비멜렉에게 사라를 빼앗기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랄의 왕에게 나아갔을 때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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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한다면 자신을 죽이고 사라를 뺏어갈 것 같기에 누이라고 했던 것입
니다. 하지만 그리해도 “아 누이여? 그럼 괜찮겠군. 우리 서로 매제 됩시
다.” 하며 데려다 살게 될 것이니 역사가 또 깨져 버릴테고... 양단간에 어
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람을 보면 이래도 문제요, 저래도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풀듯이 모든 섭리를 풀어 나가야 됩니다. 이래도 문제요
저래도 문제인데 어느것을 먼저 하느냐? 이 순서를 바꾸면 안됩니다. 바보
는 불고기를 먹기 전에 먼저 이쑤시게로 이를 쑤시지만 지혜자라면 먹고 나
서 쑤실 것입니다. 같은 내용인데 어떠한 순서로 하느냐는 것입니다. 순서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어서 바보와 지혜자의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이 ‘그래도 믿음으로 나가자! 굳건히 내 애인이다 하며
나가자. 나는 하나님의 애인이니까 건드리려면 마음대로 하라. 죽이려면 마
음대로 하라. 목숨은 하나님께 있으니까!’ 라고 했다면 죽였을 것입니다. 그
러나 거기에서 모사를 쓴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사탄을 속였습
니다.
아브라함이 속인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속였다고 하면 안됩니다. 사
람들은 흔히 “믿음의 조상이 어찌 속일수가 있단 말이냐? 믿음도 속여서 하
느냐?” 하지만, 하나님께서 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상세계에 그를 놓
고 섭리 할 때 그렇게 아브라함을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했다니까
요!
사라를 누이라고 하자 자신은 죽지 않았는데 사라를 끌고 가 그랄왕이 취
하고자 했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나기를 “그러지 말아라” 했습니
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얼마나 아찔했겠습니까? ‘아이고. 내가 죽을지라도
내 아내라고 했으면 안 끌어 갔을텐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둘다 모두 장/단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이 미
련한 놈의 새끼야. 세상에 죽지 않으려고 끌고 안고 사는 자기 아내를 누이
라고 하느냐?!”라고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이라는 소리가 나는 것입니
다. “저 놈! 순 이단이여! 빌어먹을 놈이네. 저게 하나님을 믿는 절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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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조상이라고? 야 나는 그런 하나님은 안 믿겠다. 저게 믿음의 조상이냐?
세상에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기나 하고. 저 놈은 거짓말쟁이다.” 이렇
든 저렇든 하나님의 역사를 누가 펴든지 말이 많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
나님이 직접 세상에 와서 역사를 펴도 말은 납니다. 안 나고 배길 것 같습
니까?
세상이 그런 판국으로 장/단점이 있는데..., 또 안 믿는 데는 약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 믿는 사람만 끌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겠
습니까?
소리 없이 갈 수 있습니까? 한번 소리 없이 걸어 보십시요. 개미도 소리
는 납니다. 코끼리만 소리 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왕 갈 바에야 쿵쿵
거리고 가자는 것입니다. 다 자기 소리가 나게 만들어 놓았는데 소리 안 내
고 갈 수 있겠습니까?
결국적으로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통해 무엇을 얻게 되었습니까? 제물
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확실한 믿음 위에서 하나님이 착수하실 수 있는 조건을 세워
놓았기에, 하나님께서 그랄 왕에게 건드리지 말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이었으며 실천적인 믿음이었습니다.
만약 아브라함 혼자 다녔으면 별로 크나큰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아내가
있었고, 자기를 따르는 종들이 있었기에 무척 힘든 노정을 걸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여하튼 축복 받은 자 앞에는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을 유유히 건너오는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는 기특하
게 여기시고 그에게 축복의 축복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축복이라는
것이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2) 축복의 조건
아브라함이 이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빠져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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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라고 해서 무작정 금덩어리를 받는 길이 아닙니다. 복을 받고자 하면
무엇보다도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어떻게 그냥 축복을
받을 수 있읍니까? 민족사의 축복을 받을려면 그만큼 하늘앞에 조건을 세워
야 합니다. 구하라! 그전에 구할 조건을 세우고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겠다
는 것입니다. 불로소득은 있을수 없읍니다. 남이 피땀흘리면 모은 재산을 왜
아무 조건도 없이 갖고 도망칠 궁리만 합니까? 그럴수는 없는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이 가진 무기
사실상, 아브라함의 무기는 오직 절대적인 믿음밖에는 없었읍니다. 아마
그날밤, 아브라함은 간이 두근반 서근반 했을 것이며, 꼭 이렇게까지 해서라
도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인가 라고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신앙
의 싸움을 할 때에, 어떤 때는 믿음으로, 또 어떤 때는 사랑으로, 또 어떤
때는 담대함으로 싸우게 됩니다. 이와같이 상황에 따라 싸우는 법이 틀립니
다. 적이 바짝 붙어있는데 수류탄을 투척할 수 있겠읍니까? 그때는 육박전
으로 싸우든지, 총검술로 대항해야 하지 않겠읍니까? 항상 상황에 맞는 작
전을 제대로 펼칠 수가 있어야 합니다. 괜히 나만 좇아다니지 말고 여러분
들 앞에 나타나는 적은 여러분 스스로가 알아서 처리해야 되지 않겠읍니까?
주님은 물론 사도바울 선생도 항상 군인 같은 사람이 되라고 역력히 말씀하
셨습니다. 뭔가 확실히 해야 되며, 규모가 있어야 합니다.
4) 환란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도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어려움도 하나
님께 기도하고 찬미하며 이겨내는 신앙만이 가장 이상적으로 멋있는 세계를
향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태평양 바다를 건너가게 되었는데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친다
고 “에이 못 하겠다. 파도가 한이 없이 치네!” 하며 투덜거리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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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는 한이 없이 치는 것이지 숫자를 세어가며 파도가 칩니까? 그래야 바
다인데 그래야 천리적 현상인데!
환란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입니다. 마음이! 마음에 환란이나 어려
움에 어리면 안됩니다. 바울처럼 그러한 환경에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신앙세계에서 승리했고 가정 하나도 제대로 끌고 나갔습니
다. 가정에서도 환경에 흔들흔들 하지 말고 단호하게 웃으면서 헤치고 나가
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거울삼아 우리의 모든 신앙을 점검하여 잘못된 것
을 닦아내고 씻어내어 새로운 것으로 채우는 밤이 되도록 다른 차원의 많은
말씀을 전했습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올 때 왕창 지진과 혼돈이 일어났고 신약에서 새로운
성약시대로 가는데도 큰 지진과 혼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풀리
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얼어 난다고 해서 ‘아이코, 나는 죽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하며 도망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역사로 전환될 때마다 지진과 혼돈이 일어납니다. 서로 싸우
고 울고 짜며 창으로 찔러댔으면 큰 일 날뻔 하지 않았습니까? 모두 침착성
있고 겸손하게 기쁨으로 모든 것을 해 나갔을 때 모든 일이 잘 되었습니다.
우리가 모여서 같이 기도하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떡본김에 제사 지낸
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는 떡본김에 먹어버려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듣고
이런 말씀을 듣고 마음속에 뭐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지 않습니까? 이럴
때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부끄럽고 부족했구나! 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많은 선지선열들 그리고 바울과 같이 웃음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얼굴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 소망을 들어 주십니다. 상대의
말을 들어 주는데도 말하는 자의 얼굴과 마음이 일을 이루는데 상당히 크게
좌우합니다. 저도 상대의 얼굴과 마음을 많이 봅니다. 여러분들은 특히 신앙
의 얼굴 표정과 평소 신앙에 대해 많이 기도하며, 역사의 많은 선지선열, 중
심인물들의 신앙을 본받아 그 신앙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위인들의
전기를 많이 읽는데 이 성경 책에는 신앙자들의 전기가 많이 들어 있습니
다. 바울의 전기, 다윗의 전기, 솔로몬의 전기, 모세의 전기가 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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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항상 많이 봐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정기를 받고 신앙심을 가지
고 나가면 참으로 위대한 시대의 기둥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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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호와 이레
<창 22장 2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
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1) 아브라함과 이삭
이삭은 아브라함의 나이 100살에 얻은 늦둥이입니다. 어느 자식이 귀하지
않으랴마는 그는 자식이 없다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귀하게 귀하게 얻은 핏
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그래서 그를 하나
님께 드려 자신들이 못한 일을 이루게 하고 신앙도 철저히 가르치고, 늘 축
복을 해주면서 데리고 다녔습니다. 아브라함이 제물을 드릴 때면 데리고 가
서 보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
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
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
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에게서 가장 귀한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이삭
을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 “알았습니다. 하나님. 안 그래도
바치려고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이랬을까요? 아마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아브라함도 무척 놀랐으나 그는 평소신앙을
지켰습니다. 더 묻지도 않고 다시 확인하려 하지도 않으며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입니까? 그러려면 주시지를 마시지. 주셔놓고 달라고 하시다니?”
하며 한 번쯤 불평하고 대들 수도 있지만 그러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이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심지어 사랑하는 아내 사라에게도 하지 않
았습니다. 성서에서 보면 그가 나귀에 짐을 지우고 이삭과 사환이 따라가는
모습이 있는데 만약 사라에게 얘기했다면 사라가 가만히 있었을까요? 이삭
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 다시 기도해 봅시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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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이삭을 바치라고 한 것입니까? 이삭만큼은 안됩니다.” 아니면 “내가 마
지막 가는 길이라도 봐야겠으니 따라가야겠습니다.” 가정의 분위기는 심각해
지고 아무리 믿음이 강한 아브라함도 무척 곤란한 상황이 연출되었을 것입
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러 가
자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삭과 함께 제물을 드릴 장소, 모리아 산으로
향했습니다. 모리아 산에 와서 사환은 남겨두고 이삭이 장작과 불을 들고
아브라함을 따라 산을 오르던 중에 물었다. “아버지 불과 장작은 있는데 번
제에 쓸 어린 양은 어디 있나요?” 아브라함은 그저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셨
다고만 하며 사랑하는 아들에게도 그말을 하지 못하고 묵묵히 산을 올랐습
니다. 만약 했다면 이삭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그 사실을 자기만 알고 아무
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랐습니
다. 굳센 마음을 먹고 결심이 변하지 않았으며 믿음을 지킨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단을 쌓고 장작을 벌려 놓았습니다. 다만 평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번제할 제물이 어린양이 아니라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는 것
이지요. 그리고 제단 위에 이삭을 묶어 올렸는데 이때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과연 아브라함은 자신의 대답처럼 하나님께서 준비하심을 알
았겠습니까? 몰랐습니다. 100% 이삭을 바치라고 못박았고 아브라함은
100% 이삭이 제물임을 믿었으며 하늘이 시키는 대로만 했습니다. 아브라함
은 순순히 100% 믿음을 지키고 이삭을 바치려 칼을 꺼내들고 이삭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리고 칼을 들어 내려찍으려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
늘 앞에 100점이 나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순간 여호와의 사자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제가 여기 있나이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
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
하는 줄을 아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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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을 들어보니 수풀에 걸린 수양이 있어 그것으로 번제를 드리고 땅
의 이름을 여호와이레(여호와께서 준비하심)라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러
한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한숨을 쉬고 땀을
닦고 나니까 여호와의 사자가 두 번째 이야기하였습니다.
<창22:16-17>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
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라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대적, 많은 적의 문을 얻는다
는 것입니다. 한번 닫으면 열 사람이 없고, 열면 닫을 사람이 없는 그 문의
주인이 되게 해주리라. 그 문으로 통과하게 해주고 주인이 되게 해주고 자
손으로 복을 얻게 한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킴으로 엄청난 축복을 받아 4대까지 그 축복이 이어져 아
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까지 모두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잘되었습니다. 아
브라함은 100% 믿었고, 그 믿음대로 100% 행함으로 하나님께 믿음을 보인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신뢰를 확실하게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많은 일을 하셨고 그를 믿음의 기초를 삼아
역사의 깃대를 꽂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도 크지만 하나님으로부
터 신뢰를 받는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2) 100% 믿음
믿음이라는 것은 마치 무엇과 같은고 하니 뒷집에 참기름을 가지러 가면
서 밑 빠진 병을 가지고 가면 주겠습니까? 믿음은 밑, 곧 기본이라는 것입
니다. 밑 빠진 것을 가지고 가면 물건을 못 담습니다. 그 밑은 금이 가도 안
됩니다. 모든 근원이 되는 것이 믿음인데, 그 믿음에 실금이라도 가서는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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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몇 %여야 합니까? 믿음만큼은 99%도 안됩니다.
100%여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과거에는 무엇을 100% 믿어야 될지 몰랐지
만 이제 믿을만한 사건을 가르쳐주었으나 믿으라는 것입니다.
진리도, 사건도 여건도 100% 믿으라는 것입니다. 믿을려면 100% 믿고
안 믿을려면 아예 안 믿어버리는 것이 오히려 낫습니다. 괜히 80% 투자해
놓고 깨지는 바에는 아예 투자 안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믿음 100% 그리고 행동도 100%! 이렇게 되면 완성된 세계입니다. 사실
상 항상 의심하는 사람은 맨날 의심합니다. 아무리 더 확실한 것을 줄지라
도 자꾸 의심한다는 것입니다. 그 병을 고쳐야됩니다. 의심이란 병은 철판같
은 믿음으로 고쳐져야 됩니다. 그런데 항상 의심하는 사람은 의심하지만 잘
믿는 사람은 아주 잘 믿습니다. 혹시 속는다해도 또 믿고, 또 믿고... 하나님
께서는 그런 사람을 보면 아까워서 철판 같은 역사 앞에 아브라함처럼 인도
해서 정말로 믿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것이 의로 여김을 받아 의인이
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레10/10>에 있는 말씀을 보면 마음으로 믿
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해서 구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그와같
이 믿으니까 의인 취급을 받은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의 믿음
0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제 좋은대로 믿지 말고 하나님 좋은대로 믿어라!
오늘 말씀을 가지고 올라오기 전에, 앞서 아브라함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철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냐?”고 물었습니다. ① “얻어지
는 것이 있기 때문에 믿었다!”고 했습니다. 믿었는데 안 얻어졌으면 믿겠냐
고 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분명코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주었을 때 아브라함이 축
복을 받았거든..! 화를 받은 것보다 축복받은 것이 더 많지 않겠습니까?! 그
래서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분을 안 믿느냐는 거여! 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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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100% 그런 분을 믿어야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믿습니까? 두
번째 그때 철통같이 믿을 수 있었던 것은, ②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행하신 것을 보아서!”하고 했습니다.
함은 자기 아버지가 과거에 행한 것을 못 깨닫고 “믿음의 도를 못 지켰습
니다. 과거에 노아가 함을 살려준 것을 못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깨달았다
면, ‘과거에도 살려주었는데, 현재도 저렇게 무슨 짓을 하든지 살려주겠지..!
이와같이 믿었을 텐데 못 믿었다는 것입니다. 과거를 잊어버리는 사람은 현
재의 자기 인생의 길을 제대로 갈 수가 없습니다. 또 현재를 잊어버리면 미
래의 꿈이 깨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자기에게 역사 한 것을 봐서 현재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확
실히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과거에
모든 일을 나에게 해 주신 것을 봐서 나는 100% 믿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에게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세요! 순간순간 역사하신 것을 보면, 얼마나
기가 막히게 역사해서 우리가 환경을 얻어왔습니까?! 그래서 나는 100% 믿
는 것이 아니라 1000% 믿습니다. 믿습니까? 1000%믿어 버리고 이미 감사
해서 이미 이제는 끝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이 기도
가 끝난지 오래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설교가 끝난 다음에 감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 것이고 나는 벌써 끝난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또 ③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하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경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하는
일이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런 일을 하든지 저런 일을 하든
지, 아들에게 손을 대든지 칼을 대든지 하나님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믿었
습니다.
이런 원리를 깨닫고 아브라함이 그런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하는 일을 두고서, ‘이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가..?’ 하면 큰
일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못 가는 것이지 별 수 있습니까? “자기가 하는
일은 하나님이 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서 한다!” 이것을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100%, 1000%의 믿음을 세우고 가야 됩니다.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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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해서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곧 그 믿음을 지킨 주님의
세계를 가지고 우리가 아브라함의 근본된 믿음의 원리를 찾아낸 것입니다.
‘아하, 이랬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그렇게 했구나!’ 아브라함은 이미 체험을
했고 겪었고 했기 때문에, 그리고 아브라함은 음성을 평소에 듣고 했기 때
문에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이러하니 믿어라”
하는 것은 다 안 믿어집니다. 무조건 아브라함만 믿고 나가면 끝나는 것입
니다. 아브라함같이 믿음을 지키고 이겨나가면 -마지막에 이겨놓은 다음에-
믿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이긴 다음에는 그동안 의
심하고 뭐했던 것이 다 풀릴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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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록
■ 점검하기(분석과 점검)
1. 창세기 13장 이하를 읽고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인 롯이 살았던 지역과
그들의 삶을 비교해 보고 깨달은 점을 이야기해봅시다.
2. 이삭과 이스마엘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교훈이 무엇
인 지 생각해봅시다.
3. 자신이 만약 아브라함이었다면 어떤 결정을 했을지, 그리고 자신이 만약
이삭과 같은 입장이라면 어떠했을지 이야기해보고 지금 현실 속에서 아브라
함과 같은 믿음으로 시험을 이긴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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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기
생각하기1
나는 몰랐는데 하나님께서 늘 내 옆을 쫓아다니면서 하늘사자를 통해 나를
인도해 주심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이길 수 없었는데 나는 하
나님이 특별할 때만 따라다니고 특별한 때만 역사하는 줄 알았어요. 제일
위대한 믿음과 제일 큰 믿음은 어떤 믿음인고 하니 하나님 옆에 있다고 믿
고 자기를 돕는다고 믿을 때 그 믿음이 재일 위대한 믿음과 가장 위력 있는
믿음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지 않으면 내가 여기에 오겠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내 입을 통해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내가 설교를 하겠습니
까?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을 통해서 은밀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알겠습니
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런 하나님의 묵시와 하나님의 뜻을 받으려면 한
달 두 달 기도해서도 받기 힘듭니다. 직접 이렇게 말씀을 듣게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믿습니까? 항상 사람은 자기 혼자 사는 것으로 아는데 하나님은
절대 혼자 살도록 두지 않습니다. 국가가 여러분들 개인 살림살이를 놔두는
것 같은데 다 관련하고 있지 않습니까. 악하게 사는 사람들 선하게 사는 사
람들 다 관련하고 주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뭘 잊고 사는가 하면 하나
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산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매일 걱정
근심 짜증과 고통 속에서 살지요. 기도를 안 하니 그렇습니다. 알겠습니까?
잠깐의 순간의 기도라도 해야 합니다. 오늘 시험 들지 않게 해주세요 하나
님, 불같은 마음을 달라고, 10분만 하나님께 진정으로 기도해도 어떤 시험도
다 이깁니다.
생각하기2
<창15:4-21>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난 씨라야 네 자
손이 될 것이다. 그 때부터 내가 축복하여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해주리
라.” 하셨습니다. 나도 그 전에 이 말씀을 가지고 기성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르쳤는데 구름 떼같이 많은 사람들이 좇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따라
오다가도 자기 나름대로 구상하고 심정 상하게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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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내가 ‘자기 몸에서 난 자식도 마음대로 못한다는데 남이 신앙으로 길
러놓은 자식을 데려다가 내가 역사의 주인으로 삼는다는 것은 힘들다.’고 생
각했습니다.
1978년 8월 보름 원남동 4층 건물에 있을 때였는데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
께서 “네 몸에서 난 신앙의 자녀라야 내가 역사의 주인으로 삼고 축복해주
겠다.”하는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싹 정리하고 전도해다가
말씀 가르쳐서 지금까지 계속 번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 축복을 받았기에
이렇게 전도가 잘되지 요즘 이렇게 전도가 잘되는 곳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축복을 받은 자들이니 인력으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천력(天力)에
의해서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아브라함의 자손이 수천 년 흘러오는
동안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알같이 많이 불어나지 않았습니까? 우
리 섭리사도 수백 년 흘러가다 보면 엄청나게 늘어날 것입니다. 지금도 과
거에 비하면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우리는 이제 사람이 모자라서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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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용하기(실천 및 적용)
1. 가장 큰 믿음이 어떤 믿음입니까? 윗 글의 내용을 읽어보고 이야기 해봅
시다.
2.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은 적이 있다면 서로
나누어 봅시다.
3. 네 몸에서 난 씨라야 네 자손이 될 수 있다고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
일까 생각해봅시다.
4, 믿음을 가지게 되더라도 그 믿음을 지키는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믿고 가야겠다고 느꼈던 계기와 또 그러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5. 믿음을 지키기 위해 오늘부터 내가 실천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
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