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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학교2025.06.01 (일)

성경중심인물 05 요셉

선포일
2025.06.01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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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9 ] 성경 중심인물 요셉 (꿈을 현실로 이룬 요셉) [ 2/69 ] 1. 꿈을 가진 요셉··························································································································4 1) 꿈이 있었기에 어려움에서 이겨낼 수 있었다································································4 2) 그 사람의 꿈을 보고 그 사람을 본다··············································································5 3) 하나님은 우리에게 손해를 끼치는 분이 아니다····························································5 4) 소망이 없는 자는 죽은 자다······························································································6 5) 야곱의 실수····························································································································7 2. 애굽에 팔려가는 요셉··············································································································9 1) 은 20냥에 팔리다 / 일반인은 그 꿈을 이해하지 못한다············································9 2) 소망이 있기에 어려움에도 굴복치 않고 이길수 있었다··············································9 3) 형제들이 요셉을 팔다 /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가야 한다············10 4) 중심자의 노정 / 함부로 판단하지 마라········································································12 5) 꿈을 포기치 않은 요셉 - 핍박받는 이유를 잘 파악해서 승리의 조건으로 만들어 라············································································································································13 6) 요셉이 형제들에게 핍박을 받은 이유 / 팔자가 아니다············································14 3.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요셉································································································19 1) 억울한 누명을 받지만 포기치 않고 오히려 감사해 하는 요셉 ······························19 2) 누명을 씌우는 것은 사탄이 하는 조작이다··································································21 3) 왜 누명을 씌웠는가? ······································································································22 4. 감옥에서의 요셉······················································································································24 1) 옥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충성을 다하다 / 오해와 누명을 받아도 소망을 놓쳐 선 안된다······························································································································24 2) 감옥에 간 요셉 / 염려하지 마라····················································································25 3) 감옥에서의 3년····················································································································26 4) 하나님의 위신을 세워드려야 한다··················································································27 5) 요셉의 노정과 예수님의 노정··························································································27 6) 감옥에서 꿈을 풀어주다····································································································28 7) 감옥에서의 요셉 / 자포자기 하지 않는 신앙······························································31 5. 총리대신이 된 요셉················································································································33 1) 바로의 꿈을 풀어주다········································································································33 2) 꿈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36 3) 소망이 없으면 낙심하게 된다··························································································37 4) 마음을 굽히지 않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겨낸 요셉 / 하나님도 마음먹게 된다38 5) 성공은 예정되어 있다.······································································································39 [ 3/69 ] 6) 때가 되었다··························································································································39 6. 꿈을 현실로 이룬 요셉··········································································································41 1) 애굽에서 형제와 만나다 / 꿈을 이룬 요셉··································································41 2) 22년만에 실현된 꿈············································································································45 3) 요셉의 꿈이 이뤄진 년수 계산························································································46 4) 하나님이 함께 한 요셉 / 모든 문제는 관계성의 문제다··········································46 5) 풍랑을 풍랑으로 생각지 않고 그 것을 타고 일어서다··············································47 6) 원래의 뜻이 아니라············································································································48 7) 요셉을 중심해서 하나되는 역사······················································································49 8) 요셉의 노정과 예수님의 노정··························································································50 9) 애굽에서의 요셉 / 조건을 세우는 기간········································································50 10) 하나님이 명백히 도와 주셨다························································································51 11) 중심자가 가는 곳이 천국이다························································································52 12) 핍박함으로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옮겨 길렀다··························································54 13) 야곱을 애굽으로 데려오다 / 기존성에 들어가면 안된다········································55 7. 교훈············································································································································58 1) 끝까지 싸우면 가인을 이길 수 있다··············································································58 2) 조건을 세워야 한다············································································································59 3) 함부로 판단하지 마라········································································································60 4) 하늘 뜻은 화려한 곳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61 5) 실존의 신앙인들이 되어야 한다······················································································62 6) 하나님의 뜻은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62 7) 요셉의 축복 / 섭리사에 오면 누구나 요셉의 축복을 받는다··································63 8) 애굽근성을 버려야 가나안 복지에 들어갈 수 있다····················································64 9) 자포자기 하지 마라············································································································64 ※ 부록············································································································································66 ■ 점검하기(분석과 점검)······································································································66 ■ 생각하기··································································································································67 ■ 적용하기(실천 및 적용)······································································································69 [ 4/69 ] 1. 꿈을 가진 요셉 <창 37:1-11> . . .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 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 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 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 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 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1) 꿈이 있었기에 어려움에서 이겨낼 수 있었다 요셉도 계시가 없었으면 엄청난 어려움을 받으면서 소망 가운데 넘어지고 넘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꿈의 계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형제 가 미워해도 거기서 얼굴을 돌리고 웃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살았 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수고하고 애썼습니다. 왜? 꿈이 있으니까. 그런 것도 없었으면 의지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꿈을 의지했습니다. 꿈에다 소망 과 희망을 걸었습니다. 여러분도 꿈을 꾸어보면 나쁜 꿈인지 좋은 꿈인지 분별이 되지 않습니까? 신앙을 열심히 하고 절대적으로 나가면 나쁜 꿈이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 나 개 같은 신앙을 하니까 나쁜 꿈이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쁜 꿈인데도 좋게 생각하고 그 길을 가다가 노루가 절벽에서 떨어지듯이 봉사가 떨어지 듯이 떨어져서 크게 다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 5/69 ] 2) 그 사람의 꿈을 보고 그 사람을 본다 나는 그 사람의 꿈을 보고 그 사람도 봅니다. ‘어떤 사람에게 어떻게 보여 주었겠느냐?’하고 하늘로부터 연결시켜 봅니다. 그리고 성경의 프로그램을 봅니다. ‘과거에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는가’를 보고 그 꿈이 계시임이 밝혀 지면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를 봅니다. 이루어진 것을 보여 준 사람은 어린 신앙들이고, 현재 이루지는 상황을 보여주었으면 어느 정도 큰 사람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 것을 보여주 었으면 대단히 큰 신앙들입니다. 그래서 성장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앞의 것을 보고 미리 알고 싶어도 신앙이 어리면 앞의 것을 안보여 줍니다. 미래 를 보려면 그만큼 성장해야 되겠습니다. 어린 신앙들에게는 미래치를 보여 주면 그것을 모르고 꿈이 금방 안 이루어진다고 노발대발 노발대발하는 일 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엔 미래치래도 간구하는 사람이 삶의 소망이 없다고 발버둥치면 하나님께서 보여주기는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근데 20년 후에 이루어질 것 을 하도 발버둥을 쳐서 보여주었더니 그 이튿날에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 고 자리를 깔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이 되었는데 안되었습니다. 그 이튿날도 안되고, 1년이 돼도 안되고 3년이 돼도, 4년이 돼도 안되니까 어떻게 하는 줄 압니까? “다 필요없어. 꿈에 봤어도 헛것이고, 환상으로 봤 어도 다 그거여. 계시도 거기가 거기여. 아무것도 아니여.”하면서 설교하고 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덜커덕 그 날이 왔습니다. ‘어, 이상하다. 이게 웬 떡이냐? 아하...“하고 미안해도 받기는 받는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에게 손해를 끼치는 분이 아니다 그런데 요셉의 꿈은 22년만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투덜거리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믿는 것이 있었습니다. 자기에게 하나님이 손해가게 했 던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그랬지 하나님이 안 그랬다는 것 입니다. 이것을 항상 요셉은 믿었습니다. [ 6/69 ] 여러분도 ”하나님은 손해 가게 하는 그런 짓을 하고 계실 하나님이 아니 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과 같은고 하니, 첫사랑 을 하는 연인들과 같은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첫사랑을 하는 사람은 서로 간에 잘 보이려고 잘합니다. 하나님도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잘해준다는 것입니다. 하늘편이 잘 보이려고 잘하듯이 세상편도 처음에 믿으면 잘 보이 려고 잘해야 됩니다. 처음에 만났을 때 잘 보이려고 잘해야 되겠지요? 그런 데 사람들의 사랑을 보면, 처음 만났을 때는 터미날까지 배웅을 나갑니다. 그 다음에는 대문 앞까지, 그 다음에는 응접실 문 앞까지 그 다음에는 방안 에서, 그 다음에는 쳐다만 보고.... 그러나 하나님은 처음의 절대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손해가게 하겠 습니까? 손해가게 안 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계획적으로 손해가게 하는 일을 안 하십니다. 하나님은 시험하지 않는다고 야고보선생 은 말씀했습니다. 다만 손해가게 만든 것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보다 더 전진하게 하기 위해서, 그 길을 못 가게 끄집어내서 다른 길로 가게 한 것 이 그 순간에 손해가게 한 것으로 생각될 뿐인 것입니다. 그것은 손해 간 것이 아니지만 꼭 손해를 붙인다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더 큰 흑자 를 보게 하기 위해서 끄집어내고 잡아당긴 것입니다. 4) 소망이 없는 자는 죽은 자다 소망이 없는 자는 죽은 시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소망이 없는 자는 바로 죽은 자입니다. 사람들은 소망과 희망 때문에 뛰고 달리고, 이마에서 발등까 지 주먹만한 땀방울을 흘리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꿈이 없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이라는 사람은 집에서 상당히 지천거리였습니다. 12아들 중에 11번째 아들로 태어난 요셉이는 다른 사람보다 색다른 사고를 가지고 사니 지천거리가 되고 손가락질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꿈을 잘 꾸었습니 다. 하루는 꿈에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자기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꾸었습니 [ 7/69 ] 다. 또 한번은 가을벌판에 곡식 단들이 묶여있는데 열 한 단의 곡식단이 자 기 곡식단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꾸었는데 상당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여러분 도 꿈을 잘 꾸면 기분이 좋지요? 형제들의 곡식단이 자기 곡식단에게 절하 는 꿈을 꾸고 형제들에게 이야기 했을 때 “이 녀석아, 감히 그런 참람한 말 을 할 수 있느냐? 그런 꿈을 꾸었다 할지라도 내뱉을 수 있단 말이냐?” 하 고 큰 형부터 모든 형들이 한마디씩 내뱉었습니다. 아버지도 그 이야기를 듣고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좋게 생각할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냐? 나라도 좋게 생각하지 않겠다. 꿈은 꿈에서 끝나고 말아야지 철없이 그것을 형들에 게 기분 나쁘게 이야기한단 말이냐?” 그랬습니다. 그러나 요셉이는 그 꿈을 버리지 않고 항상 마음에 간직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좋은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요? 그 꿈을 무시할 것 이 아닙니다. 소망을 무시할 것이 아니고 희망을 무시할 것이 아닙니다. 여 러분, 소망을 걸고 살고 있지요? 꿈을 품고 살고 있지요? 소망이 없는 사람 은 실존을 이룰 수 없고 실제에 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청사진 없이 어떻게 근본을 빼낼 수 있으며, 투시도 없이 어떻게 집을 지을 수 있겠습니 까? 대상 없이 어떻게 그림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꿈이 있어야 실제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요셉은 계속 꿈을 가지고 살아나갔습니다. 그래서 항상 긍정적으로 봤습 니다. 그런 희망과 꿈은 결국 알고 보면 자기 스스로 꾼 것이 아니고 하늘 의 큰 운으로 받은 꿈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꿈들도 스스로의 꿈 도 있지만 하늘이 여러분에게 큰 선물로 준 꿈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꼭 이 루어집니다. 물론 자기 꿈도 이루어지지만 하늘의 선물로 오는 꿈들은 이루 어지고야 만다는 긍정적인 사고(思考)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5) 야곱의 실수 요셉이 그 꿈을 부모에게 이야기했더니 자기 아버지가 “형들한테 밉게 보 이려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 잠잠하고 고요하라.”고 했습니다. (창37:10) 사 [ 8/69 ] 실상 야곱 자기도 꿈 때문에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자기도 꿈을 통해 계시 를 받고 큰 기업을 일으켰기 때문에 자기 아들이 꿈 꾼 것에 대해서 누구보 다도 이해를 했어야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야곱은 형제들편에 섰다는 것입니다. 가인편에 속한 형제들편에 서서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그때, “야 나도 옛날에 꿈을 꾸고 이렇게 이렇게 했다. 그 꿈이 귀중한 것이다. 얼마나 귀중한지 모른다.” 이렇게 했어야 됩 니다. 그리고 그때뿐만 아니라 그전에 이미 자식을 교육할 때 꿈이 귀중하 다고 교육했어야 됩니다. 야곱은 자기 아들이 꿈으로 득세할 사람이고 꿈으 로 성공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서 “얘. 그 꿈을 다른 사람은 안 믿어도 나 는 믿는다. 왜? 나의 경험적으로 볼 때 그렇다. 부전자전이라고 너에게 꿈이 있구나.” 이와같이 하면서 믿어주고 이해해주고, 섬겨줬어야 했으나 야곱이 가 그것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요셉이 혼자 꿈을 믿었습니다. “주여 믿 습니다.”하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꿈이 더군다나 나쁜 꿈이 아니고 좋은 꿈이었다는 것입니다. [ 9/69 ] 2. 애굽에 팔려가는 요셉 <창 37:12-36> ...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 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 1) 은 20냥에 팔리다 / 일반인은 그 꿈을 이해하지 못한다 요셉이 좋은 꿈을 꾸었다고 이야기했지만 결국 형제들이 요셉을 이웃나라 상인한테 팔아먹었습니다. 요셉은 후실자식으로서 전실자식에게 미움을 많이 받았는데 오늘날도 그러하지 않습니까? 다른 말로 표현하면, 보다 기성시대 는 보다 새로운 시대를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새로운 신진(新進)들이 하는 일들을 상당히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미워합니다. 정치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정치인이 들어서면 보다 기존성에서 싸움을 걸어오는데 진 다음에는 꼼짝 못하지만 그전까지는 상당히 무시합니다. 결국 요셉이 외국 상인들에게 은 20냥에 팔렸습니다. 예수님도 은 30냥에 팔렸습니다. 예수님도 소망과 꿈을 가지고 살았던 분입니다. 그런데 너무 엄 청난 꿈을 가지고 있으니까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2) 소망이 있기에 어려움에도 굴복치 않고 이길수 있었다 결국 요셉이는 애굽나라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는 한 가정의 종살이 를 하면서도 항상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이 나를 괄세했지만 꿈에 곡식단들이 나에게 절을 하듯 언젠가는 나에게 고개를 숙일 날이 올 것이 다. 형제들이 나를 팔아서 내가 이렇게 외국나라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하면서 소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해야지. 열심히 일을 해야지.’하고 충성과 진실을 다해 살았던 사 [ 10/69 ] 람이 있으니 바로 성서에 나오는 유명한 요셉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창세기를 주욱 읽어보면 나옵니다. 창세기 37장부터 45장까 지 읽어보면 그 유명한 요셉이가 소망을 이룬 것에 대한 내력이 나옵니다. 요셉은 하늘이 준 꿈과 하늘이 준 정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늘이 준 꿈은 하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순식간에 약해집니다. 가다가 자기 계획대로 생각했던 것이 되지 않으면 바로 약해져 버립니다. 포기하기 쉽습니다. 세상에 사는 가운데 제일 무서운 것 중에 하나가 뭔고 하니, 자기 인생을 포기하는 것입 니다. 그러다 보면 남의 인생까지 포기하게 만듭니다. 누가 “나는 이렇게 살 고 싶다” 하면 “자네, 그거 불가능해. 하지 마. 나도 해봤는데 안돼서 말아 버렸어. 괜히 헛꿈 꾸지 마. 꿈 깨.” 그럽니다. 자기 인생을 포기한 사람은 상대 인생의 꿈까지 포기를 시킵니다. 신앙을 하는 여러분도 자기 신앙을 포기할 때는 옆 사람의 신앙까지 포기를 권유합니다. “그거, 나도 해봤는데 별 특별한 것이 없어” 그럽니다. 이와 같이 요셉도 환경 속에서 굴복할 수 밖에 없었지만 끝까지 굴복지 않고 끝끝내 소망을 잃지 않고 살았습니다. 사람이 환난을 이기고 어려움을 이기고 그런 추잡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뭔고 하니, 소망이 있는 사 람은 벗어납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은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 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요셉이가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긴 것입니 다. 3) 형제들이 요셉을 팔다 /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가야 한다 오늘의 본문 말씀대로 요셉은 곤경에 처했습니다. <창세기 37:18~20> 『요 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 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 요셉이 꿈을 꿨다고 이렇게 미워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혈통적 으로 배가 달라 미워했습니다. [ 11/69 ]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 아 먹었다고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이마만큼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와 같은 일은 요셉때 뿐만 아니라 지금 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구시대 앞에 신시대의 사람들은 거진 그러한 무서운 문제를 당하고 있습니다. 환란과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그때마다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생각 을 깊이 하면 할수록 자꾸 손해만 갑니다. 환란을 당한 사람들은 ‘아이고 왜 이런 일을 당하나? 왜 우리 아버지는 결혼을 그렇게 해서 내가 이런 일을 당하게 만드나? 아 괴롭다.’ 이렇게 하면 안됩니다. 이것은 무조건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도 시험을 당할 때에 자꾸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 왜 이런 일을 당하나? 아, 왜 이렇게 되나? 저것들 다 없어지면 좋은 데, 저놈의 족속들.’ 이렇게 하면 안됩니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이기는 데에 주력을 해야지 그런 생각들만 자꾸 하게 되면 아주 불리해 집니다. 환 란을 당하여 생각할 때 자기 머리로 못 풀면 시험에 넘어가 버립니다. 그런 데 대개 그것을 못 풉니다. 풀 수가 없습니다. 성서의 이런 사건의 근본도 요셉으로서는 잘 못 풀게 되어 있습니다. 왠 고하니, 그런 것을 다 풀면 성경을 푸는 주인의 입장이 되기에 못 풀게 되 어있습니다. 단지 ‘이런 속에서 일어나야 된다. 좌절하지 말고 일어나야 된 다. 그렇지 않아도 미약하고 연약한데..., 하나님이여 나 좀 도와 주십시요.’ 하며 발버둥치고 기도만 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속에 끼어서 가시고 있기 때문에 아벨민족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뭔가 뿌리라도 남아 있습니다. 허가 없이 나무를 베어가는 도벌꾼들도 뿌리만큼은 남기고 베어 갑니다. 상수리 나무를 베어간다 해도 뿌리 만큼은 남아 있습니다. 거기에서 다시금 나무가 나므로 좌절 할 것이 없습니다. 환란을 바닥까지 당한다 해 도 상수리 나무와 같이 또 뿌리가 나고 새순이 난다는 것입니다. 거기까지 도 생각해야 합니다. ‘새순이 나면 새 포도를 따게 될 것이다. 새 상수리 나무도 새 열매를 맺 게 될 것이다.’하고 이렇게 까지 여유 있게 생각해야지. ‘아이고, 나무를 베 [ 12/69 ] 어갔으니 이제는 끝났다.’하고서 포기해 버리면 그냥 끝나는 것입니다. 나무를 베어 가는 사람이 나무는 베어 갈지라도 뿌리까지 캐어가지는 않습 니다. 그루터기라도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무를 베어 가는데 서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 단계는 마치 사람이 100년 살고 또 다시 100년을 사는 사람이 없는 것과 동일합니다. 한 단계에서 나무를 베고, 뿌리까지 캐는 두 코스는 못 뛰 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신약까지 두 코스를 못뜁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환란을 당할 때 따지고, 어쩌구 저쩌구, 이러니 저러니, 팔자나 운명이니 하며 자꾸 해 버릇하면 나중에 가서는, ‘아이고, 그냥 해 버리고 말자. 그냥 하자. 운명이니까 당하고 말자. 비를 맞듯이 흠뻑 맞자.’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주관이 없어지게 되고 자기 대가 약해져서 사는 것이 사는게 아니게 됩니다. 동물도 그렇게는 살거든요. 돼지나 소도 ‘돼지가 되었으니 팔자다. 소가 되었으니 팔자다.’ 라고 하며 산다는 것입니 다. 자기의 주관이 꺾이면 희망이 없습니다. 소망도 없고 사는 맛도 안 나는 무(無) 맛의 인생이 됩니다. 요셉도 욥과 같이 어려운 일을 많이 당했지만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었던 원인은 바로, 팔자로 생각지 않고 그 어떤 다 른 것으로도 생각지 않으며 이는 반드시 본래대로 안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서 본래의 세계를 창조하려는 마음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의 그 기간은 그렇게 섭리를 끌고 가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각이 요셉의 생각으로도 나타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4) 중심자의 노정 / 함부로 판단하지 마라 요셉이도 왠지 모르게 형들의 시기 질투 속에 시달렸어야 했고, 낯선 애 굽땅에 은 20냥에 팔려가야 했으며 더군다나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겨 내야 했으며 감옥에서도 변치 않는 신앙을 해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과거의 역사가 반복된다고 하더니만 야곱이가 받던 가정적인 입장의 고난을 요셉이 [ 13/69 ] 는 민족적으로 다른 민족의 종살이를 해야했던 것입니다. 야곱의 총애를 받 았던 요셉의 노정을 보면서 누구든지 그가 가는 길은 축복의 길이 아니요, 저주의 길이라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마치 2000년전 그 어느 누구도 죽 음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힘없이 끌려가고 계셨던 예수님을 보면서 의인 이라면 그와 같은 길을 걷지 않을 것인데... 라고 했듯이 어느 누구도 요셉 을 의인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현재 지나가고 있는 사건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라는 것은 상당히 힘이 드는 것입니다. 5) 꿈을 포기치 않은 요셉 - 핍박받는 이유를 잘 파악해서 승리의 조건으 로 만들어라 자기 아버지는 사탄국을 상징하는 밧단아람으로 도망갔지만 요셉은 애굽 땅으로 팔려가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습니 다. 죽도록 변치 않는 신앙을 유지했던 것입니다. 요셉이가 자신의 장래를 미리 내다 보았을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의 장래를 미리 가르쳐 주었을 까요? 아직 그런데까지는 터득하지 못했지만 누명을 쓰게 되고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었지만 요셉이가 걷는 신앙길은 그를 애굽으로 팔아먹게 했던 꿈 풀이를 여전히 소중히 여겼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역사를 통해서 찾아 볼수 있습니다. 보통사람들 같으면 인생 팔자 펴는데 방해가 된다고 아예 상관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요셉이는 비록 자신의 꿈 이야기 때문에 핍박을 받고 어려운 일을 당했지만 자신의 유일한 특기요. 재질인 꿈 해석만큼은 누구보다도 잘 간직했으며 자꾸 써 먹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꿈을 제대 로 푸는 것 하나로 애굽나라의 총리 대신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핍박받는 이유가 있으니 그것을 잘 파악해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십시요. 그렇지만 핍박받는 데에는 뭔가 잘못해서 받는 것도 있다는 것 을 유념하면서 말씀을 들음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결국 그는 외국인의 몸으 로 일국의 둘째자리에 앉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상에는 일국의 두번째 자리까지 나아갔던 사람들을 손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요셉 [ 14/69 ] 이요. 둘째는 다니엘, 세째는 모르드개, 네째는 느헤미야등을 들수 있습니 다. 이들 모두가 그와같은 위치에까지 나갈때까지는 엄청난 역경이 있었음 을 우리는 발견할수 있습니다. 즉, 이들이 하늘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항 상 도전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강도를 만날 이유가 있습니까? 반드시 뭔가 있어야 강도들이 따라 다닌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6) 요셉이 형제들에게 핍박을 받은 이유 / 팔자가 아니다 요셉 역사 또한 내내 그와 같은 내용의 역사를 갔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물론 그 전에도 있지만 특히, <창세기 37장>에서부터 요셉에 대한 이야기가 뚫어지게 나옵니다. 요셉도 처음에는 어려움 곡절도 많고 어려운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17살 때부터 어려움은 물밀듯 시작 되 었고 형제들로부터 고통과 고역을 받을 수밖에 없는 역경 속에 살게 되었습 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건 인생의 숙명. 예정이 아니냐? 팔자소관이 아니냐?” 하는 식으로 따지기가 쉽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따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 나 요셉이 그렇게 된 것은 팔자도 운명도 아닌, 자기 부모가 배 다른 자식 을 낳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팔자도 운명도 아닌 이유, 요셉이 시험을 이긴 원인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으로 알고 뜻으로 생각했기 때문 입니다. 뜻으로 생각해서 견뎌내었습니다. 운명이 아니고 팔자가 아니라는 이유는 본래대로 되었는데도 그리 되었다면 진짜 팔자소관이겠지만 운명이 아니고, 팔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여건은 본래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 니다. 요셉은 원래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뻗어 나왔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아버지인 야곱이 잘못 했습니다. 운명이나 팔자 때문에 그렇게 결혼한 것이 아니라 몰라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전처의 소생인 형제들로부터 미움 을 받을 여건이 되었는데 이것은 이 땅이 복직되지 않는 이상, 완전 구원이 [ 15/69 ]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은 보다 흑암세계. 어둠의 고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야곱에게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요셉이 한 가정속에서 커나갔지. 그 러한 고통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고통이 더욱 심했던 원인이 배가 달랐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 문제를 부모되는 야곱이 많이 커버했지만, 형제 들은 밖에 나가 고통으로 집어 넣었습니다. 요셉과 같이 우리도 배 다른 세 계의 고통을 받고 가는 수가 있으니까 지혜롭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같아서는 “요셉을 그런 곳으로 안 보냈으면 괜찮았을 것이 아 니겠냐?”할 것입니다. 이 섭리 역사는 꼭 고통을 거쳐 나가야만 뜻이 이뤄 지는 것은 아닙니다. 고통을 안 받고도 뜻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흔 히 확하는 팔자가 아니라고 따질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본래 상태대로 되었으면 그럴 필요가 물론 없죠. 그러나 야곱 의 결혼으로 인한 문제는 혈통적인 연대죄의 법칙에 걸려 그것만큼은 고통 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바로 그런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그 고통을 받았던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의 결혼 때문에 즉, 야곱이 죄를 지었기 때문 에 요셉이 그렇게 고통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요셉 당세로는 잘 안 풀립니 다. 거슬러 올라가면 야곱이 왜 그렇게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야곱도 좋아 해서 한 것이 아니라 몰라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몰라서 그렇게 되었다는 데 어떻게 합니까? 야곱이도 몰라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래 원하는 바는, 레아의 역사가 아니라 야곱이 라헬과 결혼하 여 라헬을 통해 진행되는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무식해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을 모르고서 라만의 큰 딸과 결혼하지 않았습니까? 모른 것도 한도가 있지. 그렇서 팔자가 아니라고 따지는 것입니다. 야곱이 결혼을 잘못해서 전처(前妻)와 후처(後妻)를 얻었기 때문에 전처의 자식이 후처의 자식에게 고통을 주는 입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전처인 레아 에게서 6명의 아들. 그이 시녀 실비에게서 2명의 아들이 있었고, 라헬의 시 녀 빌하에게 2명의 아들을 낳아 모두 10명인데다, 후처 자식인 요셉을 혈통 적으로 더 미워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집고 넘어 갈 것은, 종교에도 요셉의 가정처럼 전실 자 [ 16/69 ] 식, 후실 자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들은 전실 자식, 후실 자식이라고 말 하면 잘 모릅니다. 모를지라도 성경에 있으니까 배워둬야 합니다. 꼭 가정에 전실 자식, 후실 자식이 있어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더라도 성경 은 범위가 넓으니 그런 것이 무엇인지까지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은 후실의 자식으로 전실 자식들한테 굉장히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얼마만큼의 미움인가 하면, 옛날 에는 그런 문제 때문에 가정내에서 살인사건도 많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독약 먹여죽이고, 이런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후실자식을 죽이는 극적으로 무서운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요셉에게도 신앙도 신앙이지만, 배가 달랐기 때문에 아주 무섭게 굴어댔습니다. 지금도 그런 면담들이 꽤 들어오 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그런 면에 대해서도 잘 아니까 지혜롭게 지도를 해 줍니다. 신앙의 차이나 요셉이 꾼 꿈도 문제지만 사실상은 배가 달랐기 때 문에 그렇게 미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야곱이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까?” 조사를 하면 답이 나오게 되다며 책임을 져야 되지 않겠느냐고 해서 그 책 임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라반이라는 사람은 본래 사탄을 상징합니다. 왠고하니, 우상을 섬 기는 가정이었습니다. 라반이 사탄의 법칙대로 일을 진행 시키지 않았습니 까? 결국은 속인 것입니다. (참고: 창세기 29: 21~31) “왜 속였냐?” “아니다. 우리의 법칙대로 한 것이다.” “아니다. 내가 라헬을 구했는데 왜 레아를 주었느냐?” “우리에겐 그런 법이 없다.” 아벨의 편에서는 속였다고 걸고 넘어지고 사탄편에서는 그들의 법칙대로 한 것이며 그들의 법엔 그것 밖에는 없다고 합니다. 욥기서를 다시 생각하면서 잘 들어야 합니다. 결국 사탄에게 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피눈물나는 7년 고 생을 더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번 하시고자 원했던 일은 기여코 하시고 맙니다. [ 17/69 ] 하나님은 꼭 하시고 만다. 그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본래의 뜻대로 안 된 상태로 갔기 때문에 팔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개 본래의 일대로 안 되고 있는데 이것을 갖고 “팔자다. 숙명이다. 예정이다.”하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겠죠? 이와같이 성경에 대한 근본을 확실히 깨우쳐 줌으로써 모든 100가지 문제 가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해 주면 설교는 되는 것입니다. 대개 설교 를 자세히 하지 않습니다. 지나간 이야기를 자세히 할 필요가 있습니까? 하 나님은 모든 법칙을 같은 흐름으로 처리하시므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습 니다. 다만 그 수준만 놓게 진행될 뿐입니다. 요셉이 꿈을 꾼 것 때문에 미움을 받았다고만 알고 있는데, 실상은 배가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배가 다르다고 하여 받는 고통은 결 국 어디에서 왔는가?? 아직도 선악분립을 완전히 못한 것입니다. 즉 한 가 정에 보다 아벨편과 보다 가인편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레아는 데리고 올 필요도 없었으며 레아를 통해 자식을 번식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 나 레아를 통해 자식을 얻었기에 거기에서 라반의 혈통이 야곱의 집으로 흐 르게 된 것입니다. 결혼만 잘 했으면 그 혈통이 흘러들어 올 이유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암암리에 사탄의 혈통이 한참 조건을 세우고 나아가는 야곱의 집 으로 따라 왔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라헬과 결혼했다면 아들을 10명을 낳든, 20명을 낳든 모두 아벨의 자손이 되는데 그러지를 못했기에 또 다시 결혼으 로 인해 보다 아벨 족속과 보다 가인의 족속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는 것입 니다. 가정에서도 까딱 잘못하면 그러한 싹이 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보다 가인과 보다 아벨적으로 따지면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은 보다 가인편이고, 온 사람들은 아벨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앙 혈통적으로 쪼개져 나가고 있습니다. 다른 것도 이유가 되지만 배가 다르기 때문에 형제들이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배가 다르 지 않습니까? 복음으로 보면 여러분들은 내가 낳았고, 기독교는 예수님이 낳은 것이 아닙니까? 배가 다른 족속이기에 천대를 하는 것입니다. [ 18/69 ] 그러므로 쪼개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마지막 이름자가 쪼갠다 하는 쪼갤 석(析)자를 쓰고 있지만, 선생님이 쪼개 내고 있지 않습니까? 구약이 신약에 비한다면 전실자식과 같은 입장으로 전실 역사라고 할 수 있 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후실 역사를 하게 됩니다. 세밀하게 따지려면 이렇게 따져 야 합니다. 하나님의 세계에도 지상세계처럼 전처와 후처가 다 있다는 것입 니다. [ 19/69 ] 3.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요셉 <창 39:1-23> ...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 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 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 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 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 하리이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 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 1) 억울한 누명을 받지만 포기치 않고 오히려 감사해 하는 요셉 또 한 때는 억울한 누명을 썼습니다. 그가 보디발이라는 왕의 시위대장 집 에서 종살이를 했는데 그의 아내가 요셉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자기 남편에 게 일러서 감옥살이까지 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인이 요셉을 생각할 때 ‘머슴 놈이지만 착실하고 이런 일을 할 놈이 아닌데 이런 일을 했단 말인가?’ 하 면서도 요셉을 한낱 종에 불과한 사람으로 봤겠지만 사실상 요셉은 귀한집 자식입니다. 요셉이는 귀한 족속을 타고 났습니다. 애굽 족속과 판연히 다르 지요. 이스라엘 족속은 신앙으로 잘 만들어진 족속이고 애굽나라는 가인의 족속으로 삭막한 족속이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요셉이 너무너무 호감이 가 고 사람 됨됨이가 되어 먹었으니까 주인집 부인이 좋아했던가 봅니다. ‘세상 에. 저런 사람과 살아보면 죽어도 한이 없겠구나. 어쩌면 저렇게 착하고 좋 은 사람이 있단 말인가.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성질도 내지 않고 열심히 하네. 세상에 저런 사람이 있단 말인가? 저게 사람이냐, 신이냐? 여러 가지로 성질을 건드려봤지만 성질도 안내고 화도 안내고 분노 도 안내고 혈기도 안내는 저런 사람. 저 사람이 남의 집에서 종살이 할 사 [ 20/69 ] 람이 아닌데... 맞아. 저 사람의 족속은 우리 족속과 달라. 남다른 족속이야. 신을 최첨단으로 섬기고 신의 마음을 가진 족속인데 어떻게 하다 팔려온 것 이 틀림없어. 저런 사람은 앞날이 있어. 그런 사람과 한 번 껴안고 자고 싶 네.’ 하며 자기 남편보다 더 좋아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요셉이는 그런 데에 눈을 팔 여유가 없습니다. 자기의 억울함과 자기의 한스러움에 자기 고향땅을 쳐다보고 ‘부모님이 얼마나 나를 기다릴까? 나를 팔아놓고 형제들 이 부모님께 어떻게 말을 전해줬을까? 사자들이 물어갔다고 했겠지. 야수들 이 찢어놓고 가서 흔적도 없다고 했겠지. 어서 성공해서 고향에 돌아가 내 가 살아있는 것을 보여줘야 되는데.’하며 다른 것에는 신경 쓸 시간이 없었 습니다. 주인집 부인이 그래도 빤빤한 장관집 부인이기 때문에 아침 먹으면 화장, 저녁 먹고도 화장과 맛사지로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그 여자가 하루는 ‘에 라, 안되겠다. 짝사랑이 어디까지 가느냐? 상사병 나서 못 견디겠다.’하고 주인장이 출근한 뒤에 요셉을 덮쳐버렸습니다. 순진한 요셉이가 너무 놀랐 습니다. “왜 그래요?” “나, 당신 없으면 못살겠어.” “왜 그래요? 정말 이러면 무서워요.” “내가 찾던 이상형이 바로 요셉이야. 당신은 뭐라고 일컬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야.” “뭘 바라는 거예요?” “나랑 같이 껴안고 살아요. 영원히.” 그때 요셉이 고개를 싹싹 흔들면서 “나는 그런 것은 생각도 못해봤어요. 내 가 가는 길은 따로 있습니다.” 했습니다. 그래도 보디발의 아내가 옷을 잡아 당기고 난리가 났습니다. 요셉이가 속옷 바람에 막 도망가며 ‘이거 도망가도 걱정이다. 이 집에서 쫓겨나겠구나. 이거 어떻게 되는 건지 나도 모르겠네, 정말.’ 하고 도망갔습니다. 그때 요셉을 붙잡았던 장관의 부인이 갑자기 “아무도 없느냐?” 하고 소리를 [ 21/69 ] 질렀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하고 다른 종들이 쫓아왔더니 “저 놈이 나를 덮쳐 강간하려고 했다. 나 분통해 못살겠다. 오늘 큰일 날 뻔 했다.” 하며 누명을 씌웠습니다. 요셉이는 꼼짝없이 그 날 뒈지게 얻어 터졌습니다. “이놈아.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너 그렇게 순진하더니 이성에 만큼은 순 진하지 못하구나. 그렇지, 너도 남자니까 할 수 없다. 볼기짝 대라. 몽둥이 맞아라. 나도 너와 같이 이 집에 사는 종이지만 주인장 말에 순종하지 않으 면 쫓겨나기 때문에 할 수 없다. 이놈아, 내가 이 집에 온지 몇 년 됐지만 안주인 얼굴을 제대로 쳐다도 못 봤는데 너는 어떻게 감히 저 여자를 덮쳤 냐? 담대하다, 너? 어린놈이 굉장하네?” 그 후에 이 여자가 또 남편이 왔을 때에 일러바쳐서 당장에 감옥에 가두지 않았습니까? 감옥에 가서 얼마나 안타까운 시간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그 가정에서 종 살이 하다가 언젠가 조금 나은 곳으로 가려는가 했더니만 완전히 감옥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누가 그 안타까움과 아픈 마음을 알겠습니까? 여러분이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한다면 자기 꿈이고 뭐이고 다 포기했을 것입니다. ‘이제 다 틀렸다. 나이도 먹고 어떻게 성공할 수 있으랴? 영창에 갔다 오면 붉은 줄이 올라 취직도 안될텐데.’ 하고 포기를 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의 기록을 보면 요셉은 항상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옥에서도 “너는 옥에 올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어쩌면 옥에 오기를 원했던 사람처럼 웃어가면서 옥살이를 하느냐?” 했습니다. 그에게는 꿈이 있고 소망이 있었 기 때문에, ‘소망을 이룰 날이 언젠가 꼭 올 것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어려움과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시밭길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소망이 있기 때 문에 이길 수 있습니다. 원래 크게 될 사람은 가면 갈수록 힘든 쪽으로 빠 져듭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짚고 올라와야 됩니다. 빠지고 또 빠지다보면 바 닥까지 가게 되는데 그래도 올라와야 합니다. 2) 누명을 씌우는 것은 사탄이 하는 조작이다 그 원통한 것을 생각하면 자살이라도 해서 죽고 싶어요. 거기서 항의도 못 [ 22/69 ] 하고 어떻게 합니까? 원통한 일을 당해 본 사람은 이해를 할 것입니다. 사 람의 누명을 씌우면 꼼짝도 못합니다. 사람의 누명을 씌워 놓으면 대개가 ‘아주 추하게 사회의 이미지를 흐려 놓은 사람’이라고 못을 박아 버립니다. 그러기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누명을 씌워서 그 간판을 흐리게 만들어 사람들로 욕설하게 하여 완전히 좌절시켜 버리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누가 잘 되면 그 사람 사진을 하나 찍어오고, 어디가서 여자 사진 하나 찍어 와서 여자의 사진을 오려 남자 사진에 붙이 고는 다시 사진을 찍어서는 그 가정에 전화를 해서 “내가 이 여자와 당신 남편이 걸어가는 것을 찍어 놓았는데 그냥 놔뒀다간 큰일나겠다.” 이런식으로 조작해서 골치 아프게 합니다. 멀쩡한 어느 교회 목사님과 성도 도 아닌 한 여자를 데려다가 사진을 찍어서 잡지책에 싣게 하여 그 목사님 의 가정을 파괴시키고... 그가 하도 그러니까 나중에 그런 자들을 상대로 재 판을 한 사건이 있더군요. 그것은 사탄들이 하는 조작이요, 애굽나라 사람이 하는 짓입니다. 그 술법이 보디발의 아내가 하던 짓이어서 사람에게 골짱을 먹이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나도 그런 골짱을 많이 먹어 보았지만 그런데서 속아 넘어가고 좌절 할 사 람이 아닙니다. 내가 나올 때는 하나님을 위해서 왔지 저(그)를 위해서 오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내가 굴복지 않고 밀고 나갈테니 하나 님께서도 승리하는 대역사의 기쁨을 누리시라고 했습니다. 3) 왜 누명을 씌웠는가? 누명을 썼을 때는 자꾸 대들면 안됩니다. 누명이라는 것은 가만히 있어야 빨리 벗겨지지 흙탕물이 일어났는데 자꾸 가서는 “그것이 아니다. 보라, 돌 은 여기 있다. 뭐는 저기 있다.”하며 돌아다니면 오히려 더 구정물이 됩니 다. 그냥 나둬야 됩니다. 누명은 가만히 있어야 벗겨집니다. 누명은 왜 씌웠는가? 그의 요구를 안들어 주니까 누명을 씌운 것이지 들어주었다면 씌우지 않는 [ 23/69 ] 것이 법칙입니다. 만일 요셉이 못 이기는체 하고 들어줬어 보세요. 그랬으면 절대 누명은 안 씌웠을 것입니다. 같은 법칙에 들어가게 되면 누명을 씌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요구를 들어주면 하나님께 몽둥이가 날아 온다는 것입니다. 하 늘의 매를 맞고 땅의 사랑을 받을 것인지, 하늘의 사랑을 받고 땅의 미움을 받을 것이냐는 겁니다. 이런 양단의 사건들이 있을 때는 반드시 요셉처럼 단호히 결정해야 합니다. 그래도 누명을 받고서라도 하나님께 미움을 받지 않고 가는 곳에 앞날이 있 다는 것입니다. 누명은 가다보면 다 벗겨지므로 우리는 누명을 받을지라도 요셉처럼 살아나야 됩니다. 요셉이 3년의 누명을 벗고 다 끝내고 올라와 총리대신이 된 것을 보디발의 집에서 알았겠습니까, 몰랐겠습니까? 처음에는 잘 몰랐겠지만 그후로는 알 았을 것입니다. 성서에는 요셉이 그후 그 가정에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얘기가 안 나와있습니다. 그들은 그 때까지도 살아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누명을 받고 바로 영창에 가서 3-4년을 지냈기 때문에 그 기간은 아주 짧은 기간이었으므로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년 좀 데려다 한번 혼 내줘야지.’ 하고 얼마든지 혼낼 수도 있었습니다. 총리대신이나 되었는데 그 까짓것은 본인이 직접 나서서 안하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할 수도 있었습니 다. “내가 이러이러한 일을 당하게 했던 사람들이다.”라고만 했으면 얼마든 지 혼내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찌찌하게 놀 사람이 아니 었습니다. 지내 놓고 보니까, ‘그런 일이 있었기에 오히려 왕을 더 빨리 만 날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항상 좋게 생각을 했죠. ‘내가 누명을 받고 옥에 감으로 인해 왕을 더 빨리 만나고 갈 수 있는 여건이 되 었구나. 만일 이런 일이 없이 그 집에서만 아무리 충성을 했더라도 나의 소 식이 그렇게 빨리 전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불로소득이요, 화복전 환이다.’라고 요셉은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결국 요셉 에게 미래라는 역사가 왔습니다. [ 24/69 ] 4. 감옥에서의 요셉 <창 39:20~40:23> . . .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관원장에게 묻되 당신들이 오늘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그들이 그 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 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 서 . . . 1) 옥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충성을 다하다 / 오해와 누명을 받아도 소 망을 놓쳐선 안된다 요셉은 소망을 잃지 않고 소망을 부여잡고 살았습니다. 그랬기에 결국 옥 에 가서도 충성을 다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눈에 뜨일 정도로 열심히 했습 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땐 분통이 터지고 혈기가 나며 인생을 포기하고 싶고 다 때려죽이고 싶은 것입니다. 요셉도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내 심정 을 모르니 환장하겠다.” 하면서 노발대발 했을만도 한데 그런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처럼 분노가 치밀 때가 없습니다. 억울한 일 을 당하면 일이 손에 안잡히는 법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더군다나 그 일들은 소망적인 일도 아니었습니다. 옥살이를 하면서 청소나 하고 시중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열심히 청소하고 열심히 시중을 들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억울한 얘기를 많이 들어봤을 것이 고, 누명도 많이 받아 보았을 것입니다. 엄청난 것이 아닐지라도 여러분 나 름대로 누명을 받아보았을 것입니다. 집에서 오해도 받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밥도 먹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고... 오해가 풀어질 때까지 다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도 많은 오해를 받고, 누명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나에겐 소망이 있었습니다. 소망 때문에 그것을 이기고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 25/69 ] 여러분들도 소망이 있으면 반드시 이기고 올라올 수 있습니다. 희망이 있으 면 이깁니다. 어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여 그 여자가 아니면 못산다 고 생각한다면, 어떤 총칼이나 어려움 앞에서도, 어떤 누명 속에서도, 누가 미워하고 미쳤다 할지라도 절대 사랑의 불길을 꺼뜨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소망이 있어야 살 수 있고, 희망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감옥에 간 요셉 / 염려하지 마라 요셉이 그와 같은 고통을 받고 옥에 들어갔을 때는 아마도 별 생각을 다 했 을 것입니다. ‘내 다시는 선하게, 착하게 살 필요가 없구나. 공연히 몸단장을 하고 깨끗하 게 하며 살았네. 그냥 멍청하게 일만 잘 해 주고는 얼굴도 씻지 않고 입에 서는 냄새가 풍풍나게 만들면서 꾀재재하게 살 것이지 괜히 이쁘게 꾸며서 사람들이 따르고 여자들이 따르게 하여 누명을 받았네. 이놈의 얼굴 손톱으 로 쥐어 뜯지 다시는 맛사지로 문질러 대지 않으리라.’ 이렇게 생각하기 쉬 웠지만 요셉은 거기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외모가 멋있고, 충성하고, 맘에 들게 하다 보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 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음에 안 들고 매일 싸움이나 했으면 그런 일은 안 일어났을 것입니다. ‘에이 이럴바에야 맨날 찌그락 짜그락 싸움이나 하고 심정이나 긁을 걸..., 잘못 했네. 아 내가 그렇게 충성해 주었는데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렇게 10번만 하다 보면 ‘그럴 수가 없지. 세상에 그럴 수가 없지.’하고 쓰러져 버립니다. ‘아, 그년은 그럴 수가 있고, 그년이 그럴지라도 나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 어. 나는 적어도 하나님의 대신자 삶을 살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시험을 이기는 방법이 여러가지 종류로 각기 다릅니다. 시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여러분들이 겪고 오는 시험들이 결코 적은 [ 26/69 ] 과목에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 하는 중에 큰 과목입니다. 우리 믿 는 사람은 시험이라 하고, 안 믿는 사람들은 역경이라고 하는데, 요셉에게 닥쳤던 역경은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다 있습니다. 그래서 늘 빌 어대면서 억울함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옥에서 2가지로 낙심할게 있었습니다. 한 가지는 ‘괜히 인생을 그렇 게 살았네. 아무렇게나 살아버리지.’ 또 한가지는 ‘내가 꿈 이야기를 하다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구나. 괜히 꿈 얘기를 했네.’ 이 두가지로 낙심할 수밖 에 없었습니다. 낙심을 하다보면 이미 지나간 과거까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현실 에서 괴로움을 당하면 그 당세의 것 뿐만 아니라 그전의 것까지 고민을 합 니다. ‘아, 내가 괜히 꿈 얘기를 했네. 안 했으면 형들이 미워하지 않았을 텐데... 지혜가 없었어. 내가 멍청 했어.’ 이렇게 자꾸하다 보면 자포자기합니다. 자 기를 자꾸 억누르는 사람은 그러다가 죽어요. 왜냐하면 ‘아 내가 왜 이렇게 했나?’ 하며 자꾸 가슴을 치는데 그러다 결국 가슴이 절단 나죠. 그렇게 하 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음,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밀고 나가면 되니 괜찮아.’ 해야 지. ‘이런 실수를 해서 감옥에 갔으니 이걸 어떻게 하냐? 이걸 어떻게 해.’ 하면 안됩니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딱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됩니다. 대개 하나 님은 “이래서 저래서... 이래서...”이런 이야기를 안합니다. “걱정하지 마라. 염려하지 말라.” 하시기만 합니다. 여러분들도 기도할 때 간단히 했지 “요것 조것.... 이래서 저렇고 저래서 이렇고...” 하지 않습니다. “염려하지 말라 . 걱정하지 말라.” 이것이 대개 답입니다. 3) 감옥에서의 3년 옥에 가서 한 3년 동안 있었습니다. 성경책에는 3년이라는 기간이 안 나와 [ 27/69 ] 있지만, 요셉이 17살에 집을 떠나 잡혀 갔고, 30살에 바로왕 앞에 서게 되 어 총리대신이 되었다고 했으며 보디발의 집에서 10년을 있었으니 옥에서의 3년이라는 기간이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책에 안 써 있어도 따지면 다 나옵 니다. 사과가 10개 있는데 한 사람에게 2개 나누어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5개를 나누어 주었다 그럼 나머지는 몇개냐? 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질 때 는 이런 식으로 따지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3년을 있어던 이유는 대개 무덤기간이 3년입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보디발의 집에서 10년을 지냈으니 강산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왜 10년을 따지는고 하니, 개인의 1때가 10년 싹 가기 때문입니다. 수학의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 그 따지는 법을 압니다. 갑자, 을자... 24절후를 따지듯이 살수가 있습니다. 아무때나 씨를 뿌리고 먹는 것이 아니 라 그 절후를 따져 씨를 뿌려야 됩니다. 4) 하나님의 위신을 세워드려야 한다 영창살이 할 때에도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에 대해, 또 자기자신의 특기에 대해 의심과 자포자기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는 그 자신보다 하나님을 믿 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신을 세워 줄 줄을 알았습니다. 그는 굳건히 시련 과 고통을 감수했던 것입니다. 그가 황태자라면 그녀가 황공주라면, 어떤 환 경과 처지에 있더라도 황태자로서의, 또한 황공주로서의 위신을 세울 줄 알 아야 하며, 자기자신 뿐만 아니라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임금님의 위신까지 도 세워 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그 가 어느 곳에 있을지라도 조국의 위신을 세워야 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 다. 5) 요셉의 노정과 예수님의 노정 [ 28/69 ] 어느 때는 여러가지 생각도 듭니다. “참, 이런 섭리사가 시작되었는데 한판 벌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 해 주시기 때문에 여보란듯이 잘 되 어 경제 문제가 해결 안되겠습니까? 자기의 주관거리가 안 풀리겠습니까? 여러분들을 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서 설교 할 때도 많이 넣어 이야기 합니다. 요셉도 나름대로 꿈을 가졌을 것입니다. ‘아, 여기서 뜻이 펴지는구나. 이 집에서 잘되면 하다 못해 뭐라도 되겠구 나.’ 아니면 ‘이 집에서 내가 인정을 받고 한 밑천 잡아서 생활하게 되면은 그때 는 고향땅으로 다시 돌아 갈 수 있겠지’ 이렇게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과거를 걸어 온 것을 생각 해 보세요. 그런 하고 많은 꿈들이 많았을 요셉이 영창에서 일어나서 나왔습니다. 거기에서 나왔을 때는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했지만 어려움은 거기로 다 끝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지 3일 반만에 나타나셔서 부활기에 들어갔듯이 요셉 또한 부활기 에 들어 갔습니다. 요셉에게도 사생애와 공생애가 있었습니다. 집에 있었을 때는 사생애, 애굽에서 공생애를 채우며 공을 세우고 공생애가 끝나니까 예 수님의 한때, 두때, 반때 같이 무덤기간이 생기고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 다. 예수님께서 억울한 누명의 십자가를 진것처럼 요셉도 누명의 십자가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기를 가듯 요셉도 영창에서 나와 부활의 역사를 갔습니다. 그후 약 30-40年 동안 총리대신이 역사를 펴 나갔죠. 6) 감옥에서 꿈을 풀어주다 요셉이 옥살이를 하다 보니까 그 안에서 “당신은 왜 왔냐?” “그러는 당신 은 왜 왔냐?” 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요셉의 이 야기를 들으면서 “참 억울하게 왔구먼. 우리야 일 저지르고 왔기 때문에 할 수 없다 해도 너는 진짜 안됐다. 우리가 너의 충성된 행실을 볼 때 아무리 [ 29/69 ] 보아도 일을 저지를 만한 아이가 아닌데 정말로 안됐다. 도둑놈 잡으려다 생 놈 잡는다고 너야말로 그 꼴이 됐구나. 이 새끼들, 우리가 나가면 한 번 손을 봐줘야겠구만” 하고 이야기가 오고갈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사람이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셉은 어디 가도 꿈을 잘 꾸고 풀기도 잘했습니다. 선생님도 꿈을 잘 푸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여러분들의 꿈을 내가 풀어줍니다. 말씀 듣고 섭리권에서 살다보면 꿈이 풀 리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 내 꿈이 풀렸다.” “내 꿈이 풀린다.” “그 꿈이 이 때를 두고 꾼 것이었 군요.” 나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요셉이 옥 안에서 같이 있던 사람들의 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이상한 꿈을 꿨는데 꿈을 해석할 사람이 없다.” “무슨 꿈을 꿨나요?” “내가 사실 ..., 이거 창피스러워서 얘길 안하려고 했는데... 나는 임금 밑에 서 임금의 시중을 들던 보좌관이었다. 그런데 어제밤에 꿈을 아주 이상하게 꿨다.” “무슨 시중을 들었나요?” “임금님이 자주 찾는 음식이 떡이다. 떡을 언제든지 김이 모락모락 나게 만 들어 24시간 대기하고 있다가 임금님이 ‘떡’하면 ‘만세수 하옵소서. 오늘의 이 떡은 그 어느 날보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것이 맛있습니다. 너무너무 맛 있습니다.’하며 떡을 척 갖다바치는 일을 했었는데, 어느날 임금님이 배가 고파서 떡을 찾으시는데 떡이 준비되지 않아 갖다 바치지 못하는 실수를 저 질렀다. 임금님이 떡을 찾으시는데 그 때부터 준비를 했더니 늦어버려 결국 꿰장이 났다. 임금님이 ‘감히, 이놈아. 밥만 먹고 그 일만 하면서 실수를 했 단 말이냐? 가서 고통 좀 받고 오너라.’해서 3년 언도를 받고 왔다. 그런데 어젯밤에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나가서 복직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잠 을 잤는데 꿈을 꿨다. 내가 임금님께 드리려고 떡을 3광주리를 해가지고 갔 는데 위에서 “짹짹짹짹”하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참새들이 맨 위의 것을 계 속 뜯어먹고 있더라. 쫓아내도 자꾸 와서 뜯어먹더라. 기분 나쁜 꿈이지만 [ 30/69 ] 다시 또 떡을 만든 것으로 보아 내가 다시 복직할 꿈인가 하는 생각도 든 다. 이게 개꿈이냐, 아니면 실제 그렇게 될 꿈이냐? 꿈이 너무너무 생생하 다.” “꿈을 푸는데도 법이 있습니다. 그 꿈을 풀진대 3광주리는 3일입니다. 앞으 로 3일 있으면 이곳을 꼭 나가겠군요. 새가 맨 위를 쪼았다고 했죠? 사람은 하체 통, 가운데 통, 맨위 통으로 나누는데 맨위 통은 머리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맨 위를 새가 쪼아먹었다는 것은 당신의 머리를 새들이 쪼아먹는 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임금 앞에 복직을 못하고 끝나겠군요. 차라리 옥에 있는 것이 나은데 그렇 다고 안나갈 수 있습니까?” “아니, 그럼 나는 이대로 끝난다는 말이냐? 죽는단 말이냐?”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옆의 사람이 요셉이 꿈을 하도 잘 해석하니까 자기도 꿈을 꾸었다고 하며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사람은 궁궐의 술 반 장이었습니다. 임금 앞에 24시간 대기해놓고 술을 대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은 소주.” 하면 소주를, “오늘은 막걸리.” 하면 막걸리를 대절해야 하 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은 빼갈” 하면 빼갈을, “오늘은 조니 워커” 하면 조니 워커를 대절하고, 모든 것을 다 준비해놓고 착 갖다대야 하는데 어느 날 “빼갈” 하는데 맥주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감히, 이놈아. 밥 처먹고 뭘 했느냐? 임금 알기를 동네 아저씨로 아느냐? 여봐라, 내 이야기를 들어봐라. 이놈이 이렇게 부진하게 근무를 하고 있으니 이 어이할꼬?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 위신이 있지, 저 놈을 깨달을 때까지 옥에 갖다 가두어라.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임금을 수종치 못하고, 내 가 매일 술을 먹고 앉아있는 것도 아니건만 그것도 준비하지 못하다니.” 그렇게 되어 결국 옥에 들어온 사람이었는데 그도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 포도 3송이를 갖다놓고 술을 만들어서 임금에게 갖다 드렸더니 임금이 꿀꺽 거리고 먹으면서 “술 맛 좋다. 이거 포도째 깨물어 먹고 싶네.”하더라는 것 이었습니다. [ 31/69 ] ”포도 3송이는 바로 3일입니다. 3일 있으면 다시 복직하겠군요. 다시 그 일 을 여전히 할 수 있겠군요. 꿈이 맞아서 다시 득의하거든 꼭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내가 뭘 잘하는지 알지 않습니까? 나는 꿈을 잘 풀고 꿈을 잘 이 루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소망을 주는 사람, 모든 사람의 꿈을 이뤄 주는 사람이니 혹시 꿈을 꾸고서 꿈을 해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를 데리고 가주십시오. 나 좀 기억해 주십시오. 내가 여기 있을 몸이 아닙니다. 복직하면 꼭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들이 나가서 요셉의 말대로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복직했습니다. 그 러나 다시 득의한 술 반장은 요셉에 대한 이야기를 임금에게 하지 않았습니 다. 임금이 “뭣하러 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느냐? 내가 묻는 말에나 대 답하지.” 그런 소리를 들을까봐 감히 두려워서 말을 못했습니다. 7) 감옥에서의 요셉 / 자포자기 하지 않는 신앙 나도 어떤 문제를 당할 때에는 생각을 심히 깊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여러분들도 내 얼굴을 보고 알 것입니다. 어느 때는 얼굴이 싹 펴지는 데 그때는 도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어 그런 것은 아 닙니다. 그 순간에 깨닫기를 ‘이럴 필요가 없다. 이러면 안되지. 많은 사람 이 따라오는데 내가 이렇게 되면 전국적으로 파장이 안 좋지.’하고는 싹 돌 려버리고서는 다시금 딱 서서 새롭게 나갈 때는 말씀이 다르고 일이 잘 되 어 그렇게 되면 바로 복직되고 복귀가 되어서 보다 더 좋은 이상세계로 올 라가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일을 처리해 줘야 됩니다. 요셉이 바로 이런 신앙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요셉은 승 리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자포자기를 했다면 자기노정을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영창에 간 사람들 중에 제일 억울한 사람이었을 것입 니다. 애굽이라는 영창으로 들어갔지. 애굽에서 또 가정 영창에 들어갔지. [ 32/69 ] 그 다음에는 정치범들이 갇히는 데로 들어갔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서도 자 포자기 않고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모릅니다. 집에서는 ‘아유, 이제는 열심 히 하지 말고 그냥 앉아만 있어야겠다.’ 하더니만 여기 와서 얼마나 또 열심 히 했는지 옥반장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에겐 세탁소에서 전화가 옵니다. 왜? 못 말리겠다고.(웃음) 아마 이렇게 되야 성공하는 것 같아요. 좀 멍청한 기가 있는 것 같아요. 거기서 옥반장만 했겠습니까? 꿈 얘기를 또 하고 돌 아다녔어요. (웃음) 아니 자기 형제들에게 꿈 얘기를 했다가 얼마나 당했습 니까? 당하고 또 당했는데도 영창에 가서까지 또 꿈 얘기를 했습니다. 왜 꿈 이야기를 했는고 하니 술반장과 떡 반장이 꿈을 꾸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평소에 요셉이 그런 꿈 이야기를 했으니까 그 사람들도 꿈 이야기를 한 것 이죠. 결국 그가 해몽 해 준대로 이루어졌다는 근거가 나와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어려움이 있어도 자기 직을 밀고 나가야 됩니다. [ 33/69 ] 5. 총리대신이 된 요셉 <창 41:1~57> . . .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 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 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 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 . . 1) 바로의 꿈을 풀어주다 그런데 만 2년 후 어느날 임금이 꿈을 꾸었는데 해석할 사람이 없어서 상 당히 고심하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날고 기는 점장이들을 데려오고, 복술가 들을 데려오고, 이 사람 저 사람 다 데려왔지만 아무도 임금의 꿈을 해석하 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내가 꾼 이 꿈은 개인적인 꿈이 아니다. 민족적인 꿈 같다. 민족의 큰 난리 나 혹은 큰 희망을 놓고 꿈을 꿨는데 해석을 못하고 있으니 이 꿈 좀 해석 할 수 있는 자가 없느냐? 이 꿈을 해석하면 내가 곡간에 쌓아놓은 곡식의 절반을 줘도 아깝지 않다. 이 꿈을 해석하는 자에게는 내 다음 자리를 주겠 다.” 그래서 임금의 명에 따라 날고기는 사람들이 다 와서 꿈을 해석하기 시작했 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해석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임금님, 아뢰옵기 황송하옵지만 무슨 꿈을 꾸셨습니까?” “무슨 꿈을 꿨는고 하니, 내가 하숫가에 섰는데 살찐 소 일곱 마리가 하수 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풀을 뜯어 먹는데 살이 찌더라. 그런데 조금 있으니 까 일곱 마리의 바짝 마른 소가 와서 그 살찐 소들을 다 잡아먹더라. 얼마 나 무섭고도 이상한 꿈이냐? 내 평생 이런 꿈은 처음 꿨다.” “임금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그 꿈은 다른 꿈이 아닙니다. 무조건 잘 될 [ 34/69 ] 꿈입니다. 임금님께서 태평연월을 이룰 꿈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그 마른 소는 뭘 의미하고, 살찐 소는 뭘 의미한단 말 이냐?” “다 잘된다는 것입니다. 꿈은 해석하기에 달렸습니다. 나쁘게 꿔도 무조건 좋게 해석하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해석하면 좋기야 좋겠지만 내 마음에 답을 받은 것 같지가 않 다.” “또 다른 사람이 없느냐? 너는 그 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일곱마리 살찐 소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이 무조건 소를 많이 길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일곱마리 다른 소는 뭐냐?” “그것은 잡 것들이 그냥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아니 살찐 소를 마른 소들이 잡아먹었다니까. 네 말대로라면 목축을 잘해 봤자 모두 잡아먹히고 망한다는 것이 아니겠냐? 네가 내 꿈을 푼 해석도 내 마음에 합당치 않다. 혹여 내가 임금이라 해서 감히 두려워서 말을 못하고 있는게 있으면 괜찮으니까 말을 좀 해보라. 꿈을 꿈대로 제대로 풀어야 되 지 않겠느냐?”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꿈을 제대로 해석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 데 술을 맡은 관원장이 임금께 술을 갖다 바치게 되었습니다. “임금님, 만세수 하옵소서.” “혹시 너 꿈같은거 해석 못하니? 내가 이러한 꿈을 꾸고 고민하는데 너는 한 집에 살면서 해석해 보려고 노력도 안하냐? 해석만 하면 내 다음 자리를 준다니까. 네가 언제까지 이렇게 술시중이나 들고 있으려 하느냐? 이런 좋 은 기회를 왜 포착 못하는거냐? 이놈아.” “저는 저의 천직이 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꿈을 기차게 잘 해석하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어디에 있단 말이냐?” “아마 이제까지 왔다간 사람들은 그와 대조도 안될 것입니다. 꿈을 진짜 잘 [ 35/69 ] 해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셉이란 자가 있는데 그의 꿈 해석대로 되고 맙니다. 제가 옥에 있을 때도 꿈을 꾸었는데 그의 해석대로 되고 말았습니 다. 확실한 것은 그 때 그의 해석대로 떡 반장은 죽고 나는 살아서 이렇게 복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꼭 해드리고 싶어 오늘 계획적으로 술시중을 들러 나왔습니다.” “무조건 사면이다. 빨리 끄집어 내도록 하라.” 요셉이 감옥에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요셉, 오늘 출옥이다.” 하면서 불러 냈습니다. “왜 그럽니까?” “임금이 꿈을 꾸셨는데 아무도 해석을 못한다고 한다. 맨 마지막으로 너에 게 물으시려 한다.” “오늘이 오고야 말았구나.” 요셉이 꿈에 있어서는 도사라 임금의 꿈 이야기를 듣는 즉시로 척척 풀어 헤쳤습니다. “이 애굽나라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역사를 일으키시는군요”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고 항상 하나님을 섬겼던 요셉이었습니다. “일곱마리의 소? 숫자는 숫자로 해석해야 하는데 일곱은 7년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일곱마리의 살찐 소는 앞으로 7년 동안 큰 풍년이 든다는 뜻이고, 그 다음에 일곱마리의 마른 소는 7년 동안 흉년이 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앞으로 7년 동안 큰 풍년이 들고 그 다음 7년 동안 큰 흉년이 들 어 7년 풍년으로 쌓아놓은 것을 다 없앤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고 깨달아 그야말로 통쾌하게 꿈의 의문을 파 헤쳤습니다. “앞으로 온 지구촌에 흉년이 다 드는데 애굽나라만 풍년이 들 것입니다. 7 년 동안 큰 풍년이 들 것입니다. 그 때 농사를 지어서 모두 먹어버릴 것이 아니다. 국가가 철저히 다스려 적치를 해야 합니다. 어마어마한 창고를 지어 말린 곡식들을 계속 쌓고 쌓고 해서 그 후에 오는 7년 동안의 흉년을 지탱 해 나가야 합니다. 그걸 못하면 절대 안됩니다. 바로 그것을 알려주기 위한 [ 36/69 ] 꿈입니다. 민족적인 꿈이기에 임금님께 준 것입니다. 7년 동안 흉년이 들 때 는 온 지구촌에 흉년이 들 것 아니겠습니까? 그 때에 쌓아놓은 곡식들을 갖 다 팔도록 하십시오. 각 나라에서 금은보화, 각종 귀한 것을 싸 짊어지고 와 서 양식과 바꿔갈 날이 틀림없이 올 것입니다.” “이야, 내 꿈이 풀렸다. 틀림없이 그것 같다. 속에 얹혔던 것이 내려가듯 시 원하게 풀렸다. 네가 바로 내 꿈을 파헤쳤구나.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하며 직업은 무엇이냐?” “꿈 해석이 직업이죠.” “여봐라. 이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도록 하라. 내가 이 사람에게 이 나라의 국고를 맡기고 재물을 맡기겠노라. 그 문제에 대해 가장 뼈저리게 아는 사 람에게 그 책임을 맡겨야 되지 않겠냐? 이 자외의 누가 이 나라의 국고를 책임질 사람이 있겠냐? 네게 권한을 주노니, 7년 동안 풍년들 때에 전국에 명을 내려서 창고를 짓고 무한대로 양식을 사들여라. 내가 이 일을 너에게 다 맡겼노라. 이것이 너에게 벼슬이다.” 2) 꿈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요셉이 총리대신이 된 후 형님들이 와서 절을 할 때 옛 꿈을 기억했습니 다. 그때까지 안 잊어버리고 생각했으니까 기억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전에 요셉이 바로왕의 꿈을 계시를 받고 풀어주었습니다.(창41:25) 그것이 얼마나 큽니까? 학자들도 못 풀고, 점쟁이도 못 풀었는데 오직 하나님이 역 사하는 그 사람이 풀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허리에서 별 하나가 난다더니 만, 그 별이 점점 크게 빛을 내는 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역사 하는 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가면 갈수록 더 함께 하셨습니다. 그 사람에 게만 더욱 함께 하셨으니 안 클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저마다 어렸을때의 꿈들은 대단합니다. 엄청난 꿈들을 가지고 있 습니다. 그것을 이룰 사람은 그 장소를 향해 지금도 계속 실천해서 가고 있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못할 사람은 못할 장소로 지금도 가고 있다는 것입 [ 37/69 ] 니다. 사상의 꿈과 하나님의 계시의 꿈을 요셉처럼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요셉 은 바로의 꿈을 하나님의 계시의 꿈을 통해서 통쾌하고 속이 시원하게 풀어 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총리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3) 소망이 없으면 낙심하게 된다 요셉이 총리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꿈을 이루려니까 일순간에 됐습니다. 17 살에 애굽으로 팔려와 30살이 되었으니 요셉이 집을 나간지 13년 째 되는 해였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10년이면 벼슬을 하게 되는 것과 같 습니다. 정통을 향해 간다면, 낙심치 않고 간다면. 그런데 대개 요즘의 젊은이들은 낙심을 잘합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빈곤하고 약합니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학교에서나 모든 생활 가운데 작은 비바람 같은 어려움도 못 견딥니다. 그 것은 소망이 없고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희망이 있으면 비바람을 이긴다 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과거 짤막한 여생을 볼지라도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그 무한한, 엄청난, 상상할 수도 없는 어려움을 이겼습니다. 인생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갈 정도의 어려움을 이겼습니다. ‘도대체 더 이상 못하겠구나.’ 할 정도가 되어도 앞날의 희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뛰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초인이라고 하는데 물론 초인이지요. 그러나 얼마나 뛰고 달리는지 모릅니다. 세계적, 천주적인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제 밤에 내가 주위 사람들을 불러서 오늘 집회를 못하겠다고 이야기했습 니다. “더이상 내가 일어날 수가 없다. 허리를 일으켜 앉을 수가 없으니 내 가 어떻게 갈 수 있겠느냐? 부산집회를 포기할지라도 내가 살아야 되지 않 겠느냐? 부산이야 다음에 또 오면 되니까 내가 살아야 되지 않겠냐?” 할 정 [ 38/69 ] 도로 아팠습니다. 그러나 소망 만큼은 있었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 10시가 넘었을 때 버리적거리며 일어나서, “내가 가야 되겠다.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심어주러 온 내가 그냥 갈 수 없다. 한 번 준비들 해봐라.” “선생님, 부축하고서 움직여야 되는데 갈 수 있겠습니까?” “차가 있으니까 집회장소까지 데려다 달라. 가자.” 그렇게 하고 온 것입니다. 나는 공식의 300번 집회 외에도 얼마나 노동을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그 냥 봐서는 노동을 안하는 것같이 보이지요? 그러나 일을 할 때 보면 사람들 이 “저 사람이 강연하러 다니며 청중을 이끄는 사람인지, 세계적인 지도자 인지, 총재인지 분별할 수 없다. 야,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악착같다.”하 며 시험에 들 정도입니다. 나는 몸이 부서지던 없어지던 일을 합니다. 선생 님은 어디를 가도 항상 청중이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딜 가도 나가면 만납니다. 사람이 없는 데로 도망가 있어도 얼마나 귀들이 밝은지 거기에 미리 와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러 왔기 때문에 내가 그 모든 문제들을 채워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4) 마음을 굽히지 않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겨낸 요셉 / 하나님도 마음 먹게 된다 요셉은 배다른 형제들의 온갖 미움, 시기, 질투, 무서운 폭력, 멸시를 - 작 은 부인의 애들로 인해 고통을 -받았습니다. 생명을 없애려고 하기까지 요 셉을 휘둘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굴복치 않고 어린몸이 행실 도 굴복치 않았습니다. 마지막 가서 하다하다 애굽나라에 팔아 버렸는데도 그래도 굴복치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절대로 마음을 굽히지 않고 하나님 을 믿음으로 나아갔으니 용맹스런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때 이미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 애를 길러서 기필코 내가 성공을 시키리 라.’ 자기를 사랑할 때 그런 마음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애굽나라에 가서도 [ 39/69 ] 그 어린 것이 넘의 집에 가서 일개 가정의 종살이를 할 때 남자도 아니고 여자로부터 말할수 없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썼습니다. 뺨다귀를 맞고 머 리채 잡아 당겨 흔들림을 받아도 절대로 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감옥에 갇혔을 때도 감옥에 굴복하지 않고 자포자기 않고 ‘이제 끝났구나. 도대체 가만 갈수록 산, 또 산, 산을 넘으면 절벽이고 바다이니 이거 어떻게 건너갈 수 있으랴’ 하지 않고 절대로 굴복하지 않고 나갔을 때 결국 그 어려움과 고통과 형제들의 시기와 수명은 끝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육지끝을 가게되 면 바다가 보이고 바다끝을 가게 되면 육지가 보이고 땅이 보이듯이 끝장나 고 말고 결국은 영광의 대국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명예회복 했습니다. 주권회복 했습니다. 형제를 굴복시켰습니다. 환란과 핍박과 어려움과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아픔과 고통을 받아본 사람이나 영광을 받을때에 기쁨이나 희락을 느끼지 다른 사람은 못 느끼는 것입니다. 5) 성공은 예정되어 있다. 요셉을 둘러싸고 말들이 구구했지만 결국 굶어 죽어 가고 있는 애굽 백성 들을 살려 내지 않았습니까? 누명을 썼을지라도 가만히 있으면 과거 누명은 자연히 벗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성공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바 른 길, 진리의 길을 찾아서 성공하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습니까? 인생 실 패는 예정 속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은 예정해 놓았지만 지옥은 예정치 않고 왜 예정치도 않은 지옥은 앞다투어 갈려고 하느냐고 잠 언집(선생님)에 적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예정해 놓았지만 안 믿 는 것은 예정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각 시대마다 섭리사 주인들 을 보내서 하나님을 믿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6) 때가 되었다 요셉의 때가 되었습니다. 그 형제들의 때를 지나서 요셉의 때가 되었듯이 [ 40/69 ] 또 그런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형의 시대가 있고 동생의 시대가 있고, 아빠의 시대가 있고 아들 시대가 있습니다. 또 어머니의 시대가 한 때 있고 딸의 시대가 한 때 있습니다. 그런 시대를 우리가 만났는데 이제 우리시대 가 점점 해가 떠올라 오듯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한 때입니다. 한 때가 40년이면 40년 반세기이면 반세기, 그것이 한 때입니다. 그 시대의 때에 흔들어 놓고 무한점으로 하나님의 복음 역사의 터전을 이 지구상에 잡아나가야 합니다. 몇 십개의 교회가 아니라 몇 백개, 몇 천개, 몇 만개의 교회를 그 임기 기간 때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그 전에 우리를 욕하고 이단시 있던 사람들이 어디갔나 보면 다 죽어서 공 동묘지에 묻혔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이미 나이를 먹어서 알겠습니까? 지 금도 핍박하던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 때이 니까 열심히 하라고 내버려 둔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하라. 밥만 먹으면 연 구해서 열심히 하라. 우리는 열심히 하늘 일을 할테니까..”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그리스도와 더불어 일천년 동안 왕 노릇하며 해 나 가는데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가치 있는 시대입니까? 의인의 시대가 왔으 니 의인이 될래? 행악자가 되고 원망자가 되고, 불만자가 되고, 그리고 구시 대를 좇는 자가 될래? 의인들이 복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실오라기 만큼이 라도 명지털 만큼이라도 의롭게 살려고 발버둥치고 신경 쓰고 산 사람들의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 복음을 만났을 때는 불만과 불 평을 하지 않고 그대로 섭리가운데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자는 심 판을 받고 불티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옳은 진리의 심판을 받고 불티로 사 라져 보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시대가 오면 그렇게 무섭습니다. 악인은 심 판의 부활로, 의인은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생명의 부활로 왔습니다.. 요셉이 작았을 때는 이 놈이 짓밟고 저 놈이 짓밟고 했지만 요셉이 쩍하니 총리권을 잡고 있는데 어떤 놈이 짓밟는단 말입니까? 감히 누가 짓밟겠습니 까? 짓밟았다가는 단칼에 없어지지. [ 41/69 ] 6. 꿈을 현실로 이룬 요셉 <창 42:1 - 46:7> . . .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너 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요셉은 그 형들을 아나 그들은 요셉을 알지 못하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 . . 1) 애굽에서 형제와 만나다 / 꿈을 이룬 요셉 요셉이 불가능한 세계에서도 가능성을 심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이 꿈을 줬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7년 동안 애굽에 흉년이 들었는데 씨를 가마니로 가져다 뿌려도 곡식이 하나도 안 났습니다. 먹을 물도 없어서 강물을 떠다 먹을 정도로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1년, 2년도 아니고 7년 동안이 나 그랬습니다. 엄청난 흉년이 들기 시작하니까 양들이 말라서 죽고 쓰러지 고.. 농사도 지을 수 없었습니다. 이웃나라 사람들이 “이 지구촌이 모두 흉년만 드는 것이 아니라 풍년이 드 는 곳도 있지 않겠냐?”하고 양식을 구하러 원주민같이 돌아다닐 때에 “애굽 나라에 양식이 있다더라. 온 지구촌을 먹여살릴 정도로 양식을 준비해놨더 라” 라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요셉이 살았던 가나안 땅의 사람들도 그 소식 을 듣고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러 갔는데 요셉의 형제들도 그곳에 가게 되었 습니다. 요셉은 양식을 사러 오는 사람들 중에 혹시 자기 형제들이 오는가 보고 ‘내 형제들도 생계를 유지하려면 틀림없이 올 것이다’ 하고 항상 자기 나라 에서 오는 족속을 꿰뚫어 봤습니다. 어느날 굵직굵직한 사람들이 떼를 지어 서 왔는데 눈에 딱 띄였습니다. 그들이 한 형제들이라고 하는데 1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우리 형제들이 아닌가?’하고 보니까 맞았습니다. [ 42/69 ] ‘하나도 안죽고 다 살아 있구나. 이야, 어쩌면 저렇게 깡다구있게 살았냐?’ 하고 “여봐라. 어느 나라 사람이냐?”했더니 하인이 “네, 가나안 사람들이 가 난해서 양식을 사러 왔다고 합니다. 이제 소문이 꽤 많이 퍼졌군요. 소문이 수만리까지 퍼졌네요.”했습니다. “소문이 많이 퍼졌구나. 애굽나라가 유명하게 되었구나. 그 사람들을 좀 들 여보내라. 특수하게 임무를 띠고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들여보내라.” “우리는 가나안 사람들인데 애굽나라에 양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왔습니 다. 우리도 꽤 잘사는데 가뭄 앞에는 갈 데가 없습니다. 늙은 부모를 남겨두 고 형제들이 다 왔습니다.” “그러냐? 한 집에서 이렇게 많이 낳았단 말이냐? 세상에 어떻게 먹고 살았 냐? 이 흉년 때 천명이 아니고는 못 먹고 산다. 그동안 먹고 살았다니 기술 이 좋다. 양식 한 가마니 사가 봤자 며칠이나 먹겠냐?” “피죽 쒀서 먹고 쑥죽 쒀서 먹어야죠. 이 가뭄이 언제까지 가겠습니까?” “글쎄,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자네들이 한 집안 식구 같지 않고 이상한 마음이 들어. 혹시 간첩이 아닌가? 바른대로 말하게. 내가 많은 사람을 다뤄왔기 때문에 아네.” “아, 그런 마음에 없는 이야기 하지도 마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이 판국 에 이 대국을 어떻게 쳐들어온단 말입니까? 우리는 쌀만 사 가지고 가면 됩 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한 집에 형제들이 이렇게 많냐? 당신 네 아버지는 도대체 몇 명을 데리고 살길래 이렇게 많이 낳았냐?” “쑥스럽습니다.” (웃음) “그러면 형제들은 다 왔는가?” “네, 다 왔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찔벅찔벅하면서 “형, 있는 대로 불어버려요” 했습니다. “아니, 왜 찔벅찔벅하나? 틀림없구먼, 이거? 서로 무전 연락 하는 것을 보 니 틀림없구먼.” “사실대로 다 고하겠습니다. 우리 집에 형제가 또 하나 있습니다.” [ 43/69 ] “아니, 또 하나 있단 말인가? 그 사람은 연락병이란 말인가? 도대체 몇 명 이나 되나?” “11명입니다.” “또 없는가? 내가 다 조사할걸세.” “또 있는데 한 명은 죽었습니다...” “아니 또 있단 말인가? 진짜 화제거리다, 화제거리.” 하고서 “여봐라. 양식을 주어라.”하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보낼 때 요셉이 금 접시를 그들의 양식자루에다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문지기들한테 연락해서 “여봐라. 그 녀석들이 간 다음에 내 접시가 없어졌는데 잘 좀 확인하라. 이 미친놈들이 금 접시를 가지고 간 것 같다.” 하며 뒤지게 했습니다. 뒤져 보았을 때 아닌게 아니라 금 접시 하나가 나왔 습니다. “감히 이 놈이 총리의 접시를 가지고 갔단 말이냐? 이 놈들아. 이렇게 큰 도둑놈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대낮에 밤 손님 역할을 했단 말이냐?” “아닙니다. 이것은 전혀 근거도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잔소리 마라. 내가 순진하게 봐줬더니만 도둑놈들이구먼. 양식을 줄 수 없 겠구먼.” “아니올시다. 이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너희들이 진짜 훔친 일이 없단 말이냐? 접시가 너희 양식 자루에서 나왔는 데.” “네, 없습니다.” “이런 놈들을 봐라. 잔소리 말고 이놈들을 가두도록 하라.” 결국적으로 그들을 데려다가 고통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셉과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 베냐민을 데리고 오게 했습니다. 옛날에 형제들이 자기에 게 억울함을 줬으니 그 억울함을 그들이 당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요셉이 그들에게 질문을 하고 조사를 할 때 자기 어머니, 아버지에 대해서 도 물어 보았습니다. “그 노인들이 지금도 살아 있느냐?” [ 44/69 ] “네, 우리 부모님들이 살아 계십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정말로 구실을 못 하고 있습니다.” “좋아. 앞으로 내가 양식 만큼은 내어주겠어. 그러나 이런 못된 짓들을 하면 안돼.” 요셉이 무엇을 알아보려고 했는고 하니 그 형제들끼리 의가 좋은가, 지금 도 서로 으르렁 드르렁 하는가, 형제가 위급할 때 나서는가를 보니까 그전 보다 많이 좋아졌거든요. 그것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 졌습니다. 그 때부터 요셉이 그들 앞에 점점 다가서기 시작하면서 “내 음성을 어디서 들어본 일 이 없습니까?” 하니까 그들이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 같은데 꼭 죽은 우 리 요셉의 음성같이 들립니다. 우리 요셉이 그런 음성을 가지고 순진했는 데...” 그 때 요셉이 “아이구, 말씀들 놓으십시오. 나 요셉입니다.”하고 무릎을 꿇 었습니다. “아니, 요셉이 아니냐?.” “나 저승에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형제들에게 다시 나타났습니다. 얼마나 반가운 일입니까?. 7년 동안 흉년이 들어 죽을 지경인데 자기 형제 가 애굽나라의 총리대신으로서 양식을 맡고 있으니 이제 굶어 죽을 일은 없 다는 것입니다. 너무 소망적이고 너무 희망적인 날이었으며 너무 꿈같은 현 실이었습니다. 너무 감격했습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다가 팔아버렸는 데 그가 어떻게 애굽나라의 총리대신이 되었고 또 어떻게 그런 일을 하고 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요셉이 ‘옛날에 곡식단이 절하는 꿈과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절하는 꿈을 꾸 었는데 분명코 그 날이 왔구나.’하고서 형제들에게 절을 다 받았습니다. 21 년만에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17살에 애굽으로 팔려 왔으니까 왕 앞에 섰던 30세에 풍년 7년과 흉년 2년이 지난 때를 환산하면 21년이 됩니다. 그 런 꿈을 이루는데 21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창 37:2, 창 41:46, 창 45:11) [ 45/69 ] 2) 22년만에 실현된 꿈 그리고 그 전에는 그렇게 시기, 질투하고 미워하던 형제들이 와서 굴복하며 감격, 감사하게 될 때 요셉이는 얼마나 한이 풀리고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형제들이 절하고 굴복했던 것이 큰 것이 아닙니다. 그 꿈은 가정의 형제 들만 의미한 꿈이 아니었습니다. 그 축소판 가정에서 일어난 상황같이 확대 판 애굽나라가 굴복하게 되고 그 시대 사람들이 다 요셉앞에 굴복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꿈을 요셉이 17살 때 꾸었는데 그 후에 몇 년만에 이루어 졌 는고 하니 22년 만에 이루어 졌습니다. 어떻게 따졌길래 그렇게 나오느냐? 요셉이 30세에 총리가 되었지요? 그러니 까 꿈을 꾸고 13년만에 애굽나라의 총리가 되었지요. 그리고 풍년 7년이 있 었지요? 그 후 흉년이 든지 3년만에 형들을 만나지 않았습니까? (창41:46, 창37:2, 창45:6) 흉년이 드니까 그 형제들이 못 견디고 오지 않았습니까? 결국 그 꿈을 꾼지 22년만에 풀린 것입니다. 아주 오래 있다가 풀렸지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은 계시를 받고 바로 응답이 안오니까 잊어버리기 쉽 습니다. 여러분들도 오래전에 계시 받은 것은 잊어 버린 것이 많았을 것입 니다. 그런데 여기에 오니까 다시 생각이 나지요? 그것이 어떤 것은 10년, 20년 된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많 이 있습니다. 구약시대때 하나님의 예시에 대한 일들은 4,000년만에 이루어지는 것도 있 었고, 또 1,000년 후에, 2,000년 후에, 200년 후에, 300년 후에, 400년 후 에 이루어 졌습니다. 꿈도 하나의 예언이고 예시고 아니겠습니까? 그런 꿈 들이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로써 선포되었는데 그것이 400년 만에, 혹 은 900년 만에, 혹은 1,700년 만에, 혹은 3,000년 만에, 혹은 4,000년 만에 예수님 시대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런 것이 이루어질 때 항상 구약 말씀을 들어서, “여기 이러한 글이 있지 않느냐? 생각나지 아니하느냐? 나는 자꾸만 생각난 다. 그 때가 이 때인 줄 생각난다. 이 때를 두고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입을 [ 46/69 ]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냐?”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3) 요셉의 꿈이 이뤄진 년수 계산 요셉이는 성경에 그 어머니가 태몽이야기는 안해놨지만 요셉자신이 꿈을 꿨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와서 절을 했다고 했습니다.(창 37:9) 이 꿈이 이루어진 것을 정확하게 따져 보겠습니다. 요셉이가 17세때 옷이 다 찢기고 알몸뚱이로 팔려갔습니다.(창 37:2) 가서 30세때 어디에 나타났는고 하니 애 굽왕앞에 나타났습니다.(창 42:46) 그러면 그 기간이 13년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영창살이 3년 한 걸로 나타난 것입니다. 왜 3년이라 하는고 하니, 고역기간이 3년 6개월로 대개 3년이 탕감기간입니다. 요셉이 잘못해서 탕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잘못하면 중심자가 탕감 을 받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죄를 지어서 탕감 받는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내가 누구에게 “너 때문에 사고들이 자꾸 난다. 그러 니 잘하라.”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셉이 집을 떠난 지 13년에서 처음 7년 동안은 풍년이 들어 20년이 지났습니다. 그 다음에는 흉년이 들기 시작 했습니다. 형제들이 흉년든 첫해에는 안 오고 그 다음해에 왔으니 (창 45:11) 모두 합해서 22년만에 형제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꿈은 어렸을 때 꾸었기 때문에 계산이 잘 안나옵니다. 그러나 형제들과 헤어지기 1-2년 전에 꾸었다면 15세, 16세 정도에 꿈을 꾸었다고 하면 한 24년 만에 그 꿈 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총리대신이 되어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형제들이 와서 절을 했지요? 총리대신에게 절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동생이라도 왕 이 되면 굽신거려야 됩니다. 이와같이 꿈들을 꿉니다.(891227) 4) 하나님이 함께 한 요셉 / 모든 문제는 관계성의 문제다 야곱의 아들 중 11형제를 통해서 역사하시지 않고 요셉을 통해서만 역사하 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1형제들 사이에서 수많은 설움. 구박을 받으면서도 [ 47/69 ]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여름철에 눈보라가 휘날리고 영하 30도로 내려간대도 그 난관을 헤쳐 나가지만 만약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아무리 겨울 철에 비닐하우스로 재배한다 할찌라도 안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예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 어지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가장 귀하고 가치있는 문제입니다. 즉 종이냐, 아들이냐, 신부냐에 따라 다르며 가인이냐 아벨이냐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 입니다. 5) 풍랑을 풍랑으로 생각지 않고 그 것을 타고 일어서다 요셉이 그렇게 고통과 어려움을 받은 원인은 1)탕감해서 다시 복직해야 될 사건도 있었고, 2)그리고 그들의 무지로 인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 이는 오히려 그 바람의 물줄기를 탔습니다. 풍랑을 풍랑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 것을 타고 오히려 일어섰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로 앞에 설 때까지 비가 오고 눈이 오고 한 시대가 흘러서 20년이라 는 기나긴 역사가 흘러갔습니 다. 그러나 요셉이는 그 때까지도 싱싱하기가 그지없었고 겨울철의 상록처 럼 푸르렀습니다. 그에게는 함께 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온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함께 하지 않을 지라도 오직 요셉에게는 함께 하겠다는 하나 님이 비밀된 결정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순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절대 가치 기준을 세웠습니다. 그가 절대 가치 기준을 세우면서 역사를 집행한 결과 하나님께서는 결국 애굽나라의 위기의 시기 가운데 요셉이를 등장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때와 시기를 연극의 극본을 하듯이 짰다는 것입니다. 바 로 왕은 요셉이를 쓰지 않으면 안되는 환경과 처지의 무게에 부닥쳤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꾸민 것들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의 주관자가 되십니다. 그러할진대 하늘편의 승리는 항상 예정되어 있다는 것 입니다. 요셉이는 결국 애굽의 총리대신이 돼서 애굽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 48/69 ] 만들어 놓고야 말았습니다. 온 애굽은 그를 중심해서 뭉쳐졌고, 애굽인들은 그의 권위와 권세와 놀라운 지혜와 총명을 높이 칭찬했습니다. 요셉이로 인 해 그들의 구원이 좌우되었습니다. 육신적인 구원뿐만아니라 신앙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요셉은 그들에게 불을 붙였습니다. 요셉을 악평하고 입술 노름하던 형제들은 다시금 뭉쳐졌습니다. 그로인해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나라에서 역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애 굽나라에서 하늘역사가 휘황찬란하게 일어났습니다. 요셉 당세 때는 복음의 불길이 엄청났습니다. 그 후로 400년동안 고통과 고역의 역사를 당하다가 모세를 중심해서 애굽을 탈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섭 리 중심권의 역사가 간 것을 보면 늠름하기가 그지 없고 장엄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6) 원래의 뜻이 아니라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애굽 사람에게 팔아 버렸습니다. 이 또한 육적으로, 임으로 한 행동입니다. 그를 파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만일 안 팔았으면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안되었을 텐데요.” 하지만, 팔리지 않았다면 그 자리(이스라엘)에서 총리가 되어 외국의 모든 사람을 끄집어 들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안 되었더라면 일이 그와 같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솔 직히 왜 그렇게 일을 합니까? 사람들은 화복전환을 외치는데 오죽하면 그렇 게까지 하면서 역사를 돌렸겠습니까? 원래는 화가 필요 없습니다. 천국세계에서는 화가 필요 없고 화복전환도 없 습니다. 이 세상이 미완성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 완전한 세계에서 는 화복전환이 필요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완전히 모르니까, “요셉도 안 팔렸으면 애 굽에 안갔을 것이고, 안 갔으면 총리 대신을 못했 을 것이 아니냐?” 하지만 안 팔렸으면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복지를 중심 [ 49/69 ] 으로 그 당시 모든 나라가 양식을 사기 위해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중심권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쪽의 나를 바로 그 자리에서 복직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안 죽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으랴”하는데 그렇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화복전환 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책임을 못하고 형벌을 받음으로 애굽나라에 일단 종살이 하러 끌려갔습니다. 이때는 어떤 입장이었는고 하니 요셉이 가나안 땅에 살 다가 형제들의 미움을 받고 애굽에 갔습니다. 애굽에 가서 거기서 자녀를 번식시켰는데 그 자녀를 중심해서 뭉쳐진 것이 70문도에서 400년 동안 엄 청난 민족을 이루면서 그곳에서 종살이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 손이 번지게 되었습니다. 7) 요셉을 중심해서 하나되는 역사 양같은 사람, 염소같은 사람, 독사 같은 사람, 그리고 소같은 사람, 이런 사람들이 서로 하나 되어서 해 됨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인들은 메 시아가 오면 이런 양과 염소와 소들이 하나되고 한 자리에 뛰어 논다고 하 는데 이것은 동물을 비유든 것에 끝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고 이 야곱 의 열두 아들들이 양 같기도 하고 또 하나는 뱀 같다고 하고 또 하나는 사 자 새끼라고도 하고 각 종의 비유가 붙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결국은 요 셉을 중심해서 하나되는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하나님이 절대로 함께하는 것은 요셉이지요? 그 사람을 중심해서 하나되는 역사를 하나님은 일으키셨 습니다. 그것이 사실상 있었던 일입니다. 양과 염소가 하나되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요셉도 양을 치고 야곱도 양을 쳤지만 그 목장에 소하고 양하 고 독사들 하고 사자들이 같이 쉬었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바로 환경의 이 상세계보다 인간의 이상세계가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사람들이 양 같은 성격의 사람들 염소 같은 성격의 사람들 그리고 또, 사슴 같은 성 [ 50/69 ] 격과 생김새의 사람들이 서로 하나되는 역사가 일어 난다는 것이 아닙니까? 요셉 때 그렇게 일어났고, 예수님 때 또 그렇게 일어날 것을 예언한 말씀입 니다. 8) 요셉의 노정과 예수님의 노정 또 예수님은 요셉의 노정도 상징적으로 걸어가셨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의 미움을 받고 애굽 나라로 갔습니다. 그러나 결국 사탄국 애굽에서 기준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이성적인 누명을 받고 옥살이를 했습니다. 예수 님도 시대에 형제들의 미움을 받고 이방으로 가서 이성적인 누명도 받고 각 종각색의 누명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살창있는 옥살이를 했지만 예수님은 살창 없는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양식을 가지고 애굽나라의 통 치자가 되었듯이 예수님도 그 시대 신령한 진리의 신약 말씀을 가지고 그 시대 사람들을 치료했습니다. 사람에게 제일 큰 고통은 배고픈 고통입니다. 이것을 다른 것으로 말한다면, 말씀을 제대로 못 듣는 영혼의 고통이 그렇 게 크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해서 예수님이 요셉의 노정도 비슷하게 걸 어 가셨습니다. 9) 애굽에서의 요셉 / 조건을 세우는 기간 요셉이 형제를 떠나서 먼 애굽에 가 있을 때는 조건을 세워야 했습니다. 어려움을 이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조건을 다 세우고 난 다음에는 형제들과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안 만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 도 한 동네에서 크던 청년들을 요즈음에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대개가 목 사님들이지요 그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면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아주 친근 하게 얘기 합니다. 하늘 앞에 조건을 세우게 하기 위해서 나를 그들에게서 조금 떼어놨다가 내 가 조건을 세우고 가니까 다시금 하나가 되게 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 51/69 ] 야곱도 그러했고 요셉도 그러했습니다. 하늘 섭리의 대역사 그렇게 해왔습 니다. 또한 민족사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수도를 시키고 조건 을 세우게 하며 사람을 만드는 기간에는 사람들을 못 만나게 만들고 외롭게 도 만들며 각종 어려움이 있게도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 후에 그를 통해 서 크나큰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또 오를 수 없는 어려운 길을 오 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10) 하나님이 명백히 도와 주셨다 요셉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에 애굽으로 갔던 것입니다. 갈 때는 억울하고 원통하고 얼마나 속이 아프고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형제들이 팔아먹었을 때 얼마나 속이 아팠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만 그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 을 믿지 않았으면 제대로 못살았을 것입니다. 팔자한탄하고 팔딱 팔딱 애태 우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러한 환경을 이기 고 지탱해 올라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지탱해 올라온 사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꼭 하늘 백보 좌에 가서 확인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얼마나 도와주었는지 는 명백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조용히 머리 숙여 기도를 하노라면 어 디에선가 들려오는 조용한 음성이 있을 것입니다. 마음에 깨달음이 오는대 로 그 소리를 들어보면 하늘이 도와준 것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애굽나라에서 요셉이 득거했던 것은 하나님 때문에 그렇게 되었지 다른 것 이 뭐 있었습니까? 그 시대 신실한 사람도 많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을 믿었 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독점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런 어려움이 있을수록 환 란풍파가 있을수록 더욱 하나님께 매달렸고 하나님께 향한 진실을 더 지켜 왔습니다. 애굽나라에 가서는 정치에서 보낸 사람도 감히 장관짜리 하나 못 얻을 것인데 이름 없이 간 요셉이가 장관짜리도 아닌 국무총리 자리에 딱 앉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피눈물나는 사건들이 얼마나 [ 52/69 ] 많았습니까? 11) 중심자가 가는 곳이 천국이다 <창세기 41;44~45>에 보면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그가 요셉의 이 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 어 아내를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요셉이 총 리대신이 되면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형제들이 와서 굴복하였 고 그들이 다 애굽으로 옮겨져 살게 되었습니다. 중심자가 가는 곳이 천국 입니다. 중심자가 애굽으로 가니까 하늘도 그쪽으로 신경 쓰게 되어 가나안 땅은 결국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가나안 땅을 가나안 복지라고 하 면서 기름진 땅이라고 했지만 요셉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갔을 때는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 요셉이 이상세계를 누리게 됩니다. 애굽땅에서 역사가 시작 되어서 요셉 당세에 엄청난 역사가 마구 일어났습니다. 하도 막 역사 가 일어나다 보니까 한 민족을 이루기까지 했습니다. 그 당세라는 것은 가장 안전한 지역입니다. 섭리사의 주인이 있는 그 당세 는 하나님께서 때리지를 않습니다. 그 당세는 하나님께서 절대 보장을 시킵 니다. 아브라함의 당세때도 4대까지 절대 안때렸습니다. 그러나 그 당세가 끝나면 다르죠. 예수님때에도 예수님이 계시던 당세와 안계셨을 때는 또 다릅니다. 계시는 그때가 가장 좋은 때라고 합니다. 물론 문화권도 별 볼일 없었고 외롭고 쓸 쓸했지만 그래도 예수님이 계셨을 때가 제일 좋았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있었을 때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죽은 다음에 부자되어 더 잘 살 수는 있어도 심적으로 받는 고통은 도대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 당세엔 없고 가난 했어도 그때가 제일 좋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요셉뿐만 아니라 다 잘되게 되어있습니 [ 53/69 ] 다. 환란과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도 팔자가 아니라 원래대로 안되었기 때 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요셉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 전실(前室) 자식, 후실(後室) 자식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전(前) 종교의 역사는 후(後) 종교를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미 워합니다. 그래서 요셉을 애굽에 팔아먹듯이 _ 애굽은 사탄국이 아니겠습니까? _ 역 시 우리를 사탄국에 팔아먹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요셉이 있듯이 중심자가 딱 있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있는 곳은 복을 줘서 자꾸 잘 됩니다. 자꾸 불어나고 잘되서 짚고 올라갑니다. 주 권을 잡고 올라가면 나중에는 감히 그렇게 못합니다. 할 수가 있습니까? 요셉이 나가버리면 고요합니다. 쑥꾹새가 웁니다. ‘쑥꾹,쑥꿋,쑥꾹’하고 웁니다. 요셉이 떠나니까 야곱의 집은 고요한 집이 되 었습니다. 요셉이 떠나니까 “아이고, 골치아픈 것이 없어졌네. 이젠 됐구나. 이제 좀 편안하겠다.”했지만 외롭고 적막하고 쓸쓸하고 ‘인생이 무엇이냐?’ 하는 철학이 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 집에서도 여러분들이 없으면 속 안 썩이고 좋을것 같아도 여러분 들 때문에 자꾸 잘 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있을때 잘 됐듯이 잘 됩 니다. 요셉이 집에 있을때느 괜찮았는데 요셉이 떠나니 야곱이 심정고통 당 하며 괴로워 하고 형제들은 그런 짓 했따고 스스로 죄책감을 받게 되었습니 다. 일찍부터 결혼해서 아내 사랑을 받고 여자들 사랑을 받지만, 아무리 예 쁜 꽃을 붙잡고 있어 봤자 얼마 안가면 꽃잎이 자꾸 떨어져서 청소만 해야 합니다. 결국 고요한 바다로 항해하게 되어 물고기밥이 되었고, 부엉이 우는 골짜기 가 되어버렸습니다. 항상 “하이고, 속 편하다. 고새끼 없어지면 조용하겠다.” 했지만 막상 떠나면 그렇지 않습니다. 떠나면 적적하고 고요하고 아무것도 아닌 마을이 됩니다. [ 54/69 ] 12) 핍박함으로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옮겨 길렀다 야곱 가정에서는 요셉의 이름을 항상 오르내렸습니다. “요셉이 때문에 뭐가 안되느니, 요셉 때문에 소란하다느니, 요셉 때문에 뭐이 어쩧다느니” 했지 만, 요셉 때문에 안되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 입의 악한 말 때문에 더욱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적으로 요셉은 요셉대로 떨어지게 되고 그 들은 그들대로 외롭게 가나안 땅에 남아지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시대 때 아브라함을 줌심해서 역사의 물줄기가 흘러내리니까 황 무지였던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흘러내렸는데 야곱이 늙음으로 요셉에게 다시금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에 요셉을 중심해서 하나님이 뜻이 선 포되었는데 그러나 배가 달랐던 그의 형제들은 요셉이를 항상 메여 따귀를 쳤고 농락을 했습니다. 하늘은 할 수 없이 장소를 옮겨서 역사를 펴게 했습 니다. 애굽을 피난지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닦아놓고 선조들이 닦아 놓았던 유전과 전통의 그 좋은 가나안 복지를 벗어나서 이스 라엘 민족이 저주스럽게 생각하는 애굽 땅으로 피난지를 삼았다는 것입니 다. 오죽했으면 하늘이 그곳을 피난지로 삼고 요셉이를 길렀겠습니까? 그러 나 하나님이 함께 하면 아무리 적전지속에 들어가고 지옥을 갈지라도 그 땅 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투면서 궁궐에 사는 것 보다 오히려 움막을 치고 혼자 사는 것이 낫다는 성서의 말씀도 있지만 요셉이는 애굽땅에서 외로이 역사를 펴게 되었습니 다. 하늘은 요셉이를 애굽땅에 가게 해서 다시금 조용히 인생을 배울 수 있 게 했고, 그리고 거기서 역사의 기준을 세우게 했습니다. 그 때 애굽을 통치 할 수 있는 이념과 정신을 배우게 되었고, 또한 애굽 땅의 토질과 백성의 흐름도 알게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가정에서 일어난 사건과 고통은 그 민족 의 전체를 대표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요셉이는 보디발 가정에서의 고통과 고난을 통해서 그 민족 가운데 억울한 누명을 받는 백성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또 애굽 땅에 주권에 의한 알력이 승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 습니다.(창 39장, 40장) [ 55/69 ] 13) 야곱을 애굽으로 데려오다 / 기존성에 들어가면 안된다 성경에, 창세기 37장, 38장, 40장까지 죽 보면, 요셉과 야곱에 대한 이야기 가 있습니다. 한 가정 (야곱의 가정)에서 한 아들(요셉)이 없어졌습니다. 그 래서 그냥 버린 걸로 생각했더니만, 그후 시대의 가뭄과 흉년을 통해서 잃 어버렸던 자식을 그 형제들이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당시에 요셉 은 오히려 야곱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가서 아버지를 데려 오도록 하라.” 아버지는 자식을 찾아서 집으로 데려오려고 했더니만, 자기 집이 다 망했지 요. 양식도 없고, 그 지역이 다 망하다시피 하고, 완전히 흉년입니다. 만일 에 요셉이 애굽에서 자기 친척과 부모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갔다면 아마 법 칙에 벗어나서 그 시대로서는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같이 굶어 죽고, 씨 족, 종자가 없어지는 변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요셉이 아버 지의 집에서 살아야 하지만 그 후에 하나님 역사 흐름의 중심이 요셉에게로 흘러가니까, 이제 모두다 그리로 모여들어야만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 국 형제들과 부모들이 다 모여들어서 그 품을 떠나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여러분들은 보다 기존성의 사람들이 새로운 역사로 가는 사람들을 보고 “잘못 가고 있으니 데려오라.”하는 사람들을 많 이 만났을 것입니다. “거기 가지 말고, 여기 있으라.” 요셉때 같이 다시금 기존성으로 들어가게 되면, 정말로 배고파서 심령의 양식에 굶주리고, 더 나 아가서는 씨족과 종자가 없어지는 변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자꾸 새로운 역 사로 진군해서 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데리러간 사람들이 기존성의 어떠한 이론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41. 요셉이후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언제 이동을 한 것일까? 그들은 모질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듯이 무더기로 잡혀간 것이 아니고 형제를 미워하다 가 팔아 넘겼는데 그 형제가 애굽나라에 가서 득의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요 [ 56/69 ] 셉을 중심으로 하여 애굽에 가서 살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애굽 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과 애굽 종살이와는 다릅니 다. 70명이 애굽으로 이동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창 46:27) 그런데 요셉 때는 그런 고통이 없었고 요셉이 죽은 후부터 고통을 받게 되 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성장하고 있었는데 요셉이 죽으니까 여지없이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도자가 죽으면 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지도자가 있을 때 열심 히 해야 합니다. 지도자가 있을 때 얼마나 보람된 세계인지 모릅니다. 다른 세계로 본다면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다가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그 고통이 큽니다. 부모없는 고통, 지도자 없는 고통, 이런 것들은 같이 겸한 이야기들 입니다. 시대의 지도자가 얼마나 큽니까? 요셉이 죽기 전에는 “요셉 민족”하면 사람 들이 두려워서 우러러보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죽으니까 별 볼일 없 는 사람들로 천대 받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종살이까지 시켰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지도자에 대한 가치성도 더욱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이나 고통을 받았습니다. 탕감기간 이 그렇게도 오래 되는가? 모든 인생의 고통이 한때 두때 반때로 다 통합니다. 개인 단위는 40년이요, 민족형은 400년이며, 세계형은 4000년입니다. 이 모두가 똑같이 한때 두때 반때의 흐름입니다. 여러분, 하늘 앞에 개인적인 탕감에 들어가도 40년간 크 나큰 고통을 받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시대적으로 볼 때 감 축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 삼십년 만에 애굽에서 다 나왔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15장에는 400년 동안 종살이를 한 다고 했는데 왜 430년 만에 나왔습니까? 삼십년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 것은 해석을 하면 나옵니다. 400년은 종살이를 한 고역기간이고 오늘 본문 에 나오는 430년은 애굽에 거주한 기간입니다. 요셉이 있을 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거주하지 않았습니까? 요셉 [ 57/69 ] 때부터 애굽에서 나올 때까지의 기간이 430년인데 요셉 때는 고역을 안받았 습니다. 요셉 때는 영광과 영화를 누렸으므로 ‘요셉이 30년 동안 총리대신을 했구나’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요셉 때는 요셉이 총리대신이라는 높은 벼슬 을 하고 있었는데 고통을 받았겠습니까? 그래서 출애굽기 12장 40절로 41 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 삼십년이라. 사백 삼십년이 마치는 그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느니라”한 것입니다. [ 58/69 ] 7. 교훈 <창 50:19 - 21>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1) 끝까지 싸우면 가인을 이길 수 있다 요셉의 세계와 같이 가정의 세계에도 똑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 “어떻게 할까요?” 질문을 한다면, 보다 가인편의 혈통 즉 정신적. 사상적으로 가인편 - 좀더 설명하자면, 여러 분들의 가정에서도 똑같은 어머니가 낳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종교성의 흐름 에서 구시대측의 영향을 받는 편을 말합니다. 여러분들도 안 왔더라면 그렇 게 되었을 것입니다. - 을 아벨편에서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보다 맑은 물 이 구정물을 자꾸 뒤척거리면 맑게 됩니다. 그런 연유로 여러분들이 거기에 들어가 있으면 ‘어떤게 옳은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혼돈에 들어 갈 때가 더 러 있습니다. 아무리 깨끗한 물도 더러운 물을 몇 방울 떨어 뜨리고 나서 현미경으로 쳐다 보면 형편 없듯이 동일합니다. ‘이거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굴리게 되면 깨끗한 물이 되고 맙니다. 끝까지 싸우면 아벨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예정 되어 있습니다. 중간쯤까지 싸우다 말면 항상 가인이 앞에 가니까 가인이 이기게 되어 있습 니다. 그래서 끝까지 가야, 미래까지 가야 모든 본전을 찾고, 투자한 것의 200배, 300배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과정을 이겼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있었지, 이기지 못했으면 어떻 [ 59/69 ] 게 그런 것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만일 요셉이 가다가, “에라 틀렸다.” 하고서 투신자살이라도 했어 보십시오. 그렇게 했으면 정점을 얻지 못했다 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석달만 참으면 광명의 세계인데 그것을 못참고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투신자살한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후회해 봤자지 요. “야, 이놈아, 왜 죽었느냐? 너의 앞날에 석달만 참았으면 이런 일이 있 었는데...” 어떤 사람은 10을 못참아서, 어떤 사람은 20분을 못 참아서, 어 떤 사람은 30분을 못 참아서, 어떤 사람은 1분을 못 참아서, 어떤 사람은 2 년을 못 참아서, 어떤 사람은 8, 9년을 참고 1년을 못 참아서 그렇게 가는 사람들이 지구상에는 너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완전히 자기 수고의 대가를 못 받고 깨져버리는 것입니다. 참지 못해서 완전히 깨져 버 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무조건 참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참는 방법이 있 습니다. ‘아 내 앞날에 이런 일이 있으니까 웃으면서 가야지. 극복하면서 가 야지. 산 너머 행복이 있으니까 넘어가야지. 거기 가면 다 있으니까.’ 하고 서 부지런히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2) 조건을 세워야 한다 하나님이 개인의 역사를 운영해 주신다. 요셉도 개인이지만 하나님이 애굽 으로 보내어 민족의 대표자로 조건을 세우게 하셨다. 가정의 조건 세워 가 정의 중심자 되고 민족적 조건을 세워 민족의 중심자 되는 것이다. 물건을 계약했으니 자기 것이 되는 것이다. 그 같이 민족적 조건을 애굽앞에 요셉 이 세우고 왔기에 마음대로 자기가 원하는대로 하는 것이다. 애굽을 다스리 게 했다. 그래서 조건을 세우는 것이 크다. 조건 세운다는 것은 물건을 살 때 돈을 내는 것과 똑같다. 어떤 것이 내 것이 되기 불가능할 경우는 조건 을 안 세울 때이다. 일단 조건을 세우면 내 것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 요셉 은 자기 민족도 마음대로 못하는 애굽이었으나 가서 충성을 하였더니 애굽 을 주물 거릴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조건을 세웠다. 무조건 하나님을 잘 믿으니 그것이 조건이 되어서 이스라엘 민족도 못했던 애굽을 [ 60/69 ] 요셉이 주물거리게 되었다. 그래서 요셉에게 애굽의 통치권이 넘어가 버렸 다. 조건을 세워 그 댓가로 애굽의 실무진이 되었다. 그러니까 자기 민족인 가나안까지도 주물 거리게 되었다. 그래서 불가능한 것은 조건을 세워야 한 다. 조건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3) 함부로 판단하지 마라 여기에서 요셉의 경우를 통해 교훈을 얻어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당시에 야곱의 10형제보다는 요셉을 중심자로 택하셨으며, 또 요셉은 하늘이 원하 는 시범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감당하였습니다. 인간사를 보면 각종각색으 로 “나를 섬겨라, 나를 중심하라.”라는 속삭임이 많건마는 그것이 올바른 것 이 아닌 것이다.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건져 낸 자가 아니냐?’라고 모세에 게 하나님의 제 1조 1항의 법을 비추셨습니다. 요셉의 때에도 그를 둘러싸 고 많은 사람들의 쑥덕공론이 난무하였습니다. 하여튼 중심자의 근본을 모 르면 언제나 말이 많았다는 것은 상식적인 입장입니다. 배다른 10명의 형들 이 요셉을 시기, 질투하다 꼴 보기 싫다고 대상들의 손에 은 20냥에 팔아 본의 아니게 요셉은 애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누구 말대로 사람은 꼴 보 기 싫은 것은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것이라 하지만 사람처럼 놓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사의 근본 도리입니다. 예를 들어본다면 예수님 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유대인의 눈에는 거리끼는 존재로밖에는 안 보였지 만 이방인들의 눈에는 그냥 좋기만 하신 존재로 보였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죽을 사람은 거리끼게 보고 살 사람은 좋게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같은 형제들이지만 오죽해야 두들겨 팼으며 애굽에 팔아 버렸겠느 냐? 우리가 볼 때 그 놈이 워낙 잘못한 것이 많은지라 팔아 버렸다. 또 애 굽에 팔려 가서도 보디발의 아내에게 이성적인 것으로 누명을 씌게 되어 영 창 생활을 했을 때에도 보디발의 입장에서, 우리가 오죽해야 영창에 집어쳐 넣겠느냐?‘라고 자기 정당화를 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분은 적어도 인 간 세상을 판단할 때에 어느 누구에게나 장점과 약점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 61/69 ] 두고, 그의 약점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지 말고 그 사람의 장점을 갖고 판단 할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진실된 근본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 보디 발 등이 요셉의 장점을 파악했습니까? 아니면 약점을 파악했습니까? 또한 그들의 요셉에 대한 평가가 정당한 것이었습니까? 모함하고 누명을 씌운 그 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판단과 행동이 옳았다고 하더라도 어찌 한 형제를 그것도 사탄국에다 팔아 버릴 수 있단 말입니까? 사람을 돈을 받고 판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인신매매는 고대로부터 현재까지도 알게 모르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자신을 팔 가룟유다에게 오죽이야 “너는 차 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하였다.”(마26:24)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누구든지 시대 섭리의 주인을 펴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가룟유다에게 하셨던 그 말에 해당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어찌되었든 사람을 판다는 것은 좋지 않으며, 또 그렇게 한 사람 치고 결말이 좋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또 오죽해야 우리가 그를 감옥에 보냈겠느냐고 주장하면 만약 요셉이 보디 발의 아내의 청을 들어주었다면 영창에 보냈을까? 한 번 생각해 봄직 합니 다. 4) 하늘 뜻은 화려한 곳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등의 갈 이유가 없는 애굽땅으로 오게 된 요셉이 이제는 아무리 살펴봐도 갈 이유가 없는 영창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그는 세상 주권 갖고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길을 찾고 말았지 않습니까? 하늘의 길이 란, 가시덤불 속에서도 뜻이 펴 나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궁궐 안인 데도 불구하고 뜻이 안 펴지는 것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뜻이라는 것은 결코 화려한 곳에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하늘을 철통같이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는 망하는 법이 결단코 없습니다. [ 62/69 ] 5) 실존의 신앙인들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종교인들은 요셉이의 실적과 교훈을 날마다 날마다 받아들이고 있 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훈을 받을 때가 아니라 그 교훈의 주인들이 되었 으니 뜻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의 노정을 걸 어가고 있음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기성의 사람들처럼 미래를 희 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누리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의 것도 현재에서 차원성을 두고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야말로 실존적인 자들입니다. 그 러니까 관념적인 신앙자들이 아니라 실존적인 신앙 존재자들입니다. 구교의 기독교인들은 관념적인 신앙인들입니다. 왜? 믿음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는 행실에서 살며 역사를 펴나가기 때문에 실존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6) 하나님의 뜻은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그리고 또 야곱의 아들 요셉은 환경가운데 핍박과 어려움으로 인해서 할 수 없이 애굽으로 들어가는 교역의 길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순리를 벗어난 입장에서 오히려 너무 환경에서 요셉이를 몰라보고 요셉이를 고난과 고통으 로 몰아냈던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배가 좀 달랐습니다. 그래서 저기 민족이 다른 애굽으로 갔는데 거기서 출세(出世)하는 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참 여러 가지로 됩니다. 어떤 때는 시궁창으로 집어넣어서 출세하게 만들고, 그리고 오히려 적국에 가서 출세하게 만들고, 또 민족이 다른 데서 출세하게 만들고, 또 민족을 떠나서 출세하게 만들고, 또 가정을 떠나서 되게 만들고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이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 라.” 또는 “가나안 땅을 떠나라.” 또한 “가나안 땅을 떠나서 애굽으로 가 라.” 이러한 일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 63/69 ] 7) 요셉의 축복 / 섭리사에 오면 누구나 요셉의 축복을 받는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과 같이- 따져보면 해당되는 족속이 있습 니다. 그 시대에 아브라함의 축복이 달랐고, 야곱의 축복이 달랐고 요셉의 축복이 달랐습니다. 요셉은 절대적인 믿음을 세운 조상의 터전 위에서 축복 을 몽짱 받았습니다. 이와같이 우리에게도 섭리의 혈통이 있습니다. 섭리의 혈통. 예수님이 오신 이후 신교의 절대적인 믿음이 섰는데 바로 천주교인들 이 아브라함처럼 절대적으로 믿음을 세웠습니다. 곧 천주교가 1600년 동안 아브라함의 믿음 터전처럼 철저한 섭리의 대열을 세웠습니다. 그 후 그 자 손들이 야곱처럼 기독교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야곱 같은 기질을 가지고 축복을 받으면서 400년간 상황이 펴졌습니다. 다시금 새로운 역사는 요셉 같은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섭리의 혈통으로 볼 때 우리는 요셉 과 같은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런 축복을 꼭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일반적인 폐단이 무엇인고 하니, ‘나 같은 것에 하나님이 함께 할 리가 있나? 나 같은 것에 하나님이 뭘 그렇게 투자할 것이 있단 말인가? 나는 꾀죄죄하니 별로 하는 일도 없고 교회나 왔다갔다 하는데...’ 이런 생각들을 하는데 그러나 섭리적으로 받는 축복이 있고 개인적으로 공 적을 세워 받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섭리적으로 받는 축복에는 여러분 들이 다 끼어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빵이 모자라지 않습니다. 사람이 모자 랄 뿐입니다. 섭리의 혈통적으로 볼 때는 다 받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개인 상(賞)의 문제와 단체상(賞)의 문제가 구분되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요셉 같은 역사의 사명자입니다. 그리고 바울처럼 우리는 새 시대 복음의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물 가운데 지나가도, 불 가운데 지나가 도 함께 해 주시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섭리적으로 볼 때 우리는 요셉 같 은 복음의 혈통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요셉 같은 축복을 받게 되어있습 니다. 이 섭리사에 들어오면 누구든지 요셉 같은 축복을 받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동적인 것입니다. 그게 바로 시대성을 띤 섭리사의 혜택 입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상은 없어도 일단 단체상은 100% 있게 되어 있다 [ 64/69 ] 는 것입니다. 그 단체상을 제대로 받아도 못 다 써먹고 죽습니다. 개인상은 제하여 놓는다 할지라도. 8) 애굽근성을 버려야 가나안 복지에 들어갈 수 있다 아무튼 우리민족의 특성을 온 세계에 골고루 나눠주고 서로가 하나님 보기 에 합당한 아벨적이요. 요셉같은 민족의 사명을 다 감당해야겠습니다. 요셉이 언제 양식 사려온 이에게 주권을 부리며 양식을 팔지 않고 또 쌀 한 말에 금열냥씩 받아 가며 팔았습니까? “이제 걱정은 그만하고 와서 공짜 로 먹으십시오. 내가 전부 다 해 주겠습니다.”라는 식이었습니다. 이윤을 따 지지 않고 같은 형제로 보았습니다. 얼마나 이상적입니까? 옛날에는 비록 자신에게 그렇게 대한 형제였지만 잘 대해 주었습니다. 애굽의 근성을 버리 지 못하면 어느 민족도 그 시대의 가나안 복지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명 심해야 합니다. 9) 자포자기 하지 마라 이래서 이러한 요셉의 환경을 우리가 깊이 다뤄야 될 입장이고 요셉과 욥 와 같이 우리 또한 그래야 합니다. 그러면 요셉의 앞날이 어떻게 될것인가? 요셉은 항상 그것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생각 하면 가면 갈수록 산(山)이었습니다. 집에서 어는 정도 잘 되려고 했을 때 애굽으로 팔려 갔고, 보디발의 집에서도 희망을 갖고 잘 되는가 했더니 또 누명을 쓰게 되어 옥에 갇히게 되고...., 자포자기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 는데도 요셉은 아무 소리도 안했습니다. 대개 여러분들도 잘 되는듯 일어나다 보면 폭 꼬꾸라지고, 또 잘될듯 해서 다시 일어나다 보면 또 톡 꼬꾸라지고..., 그렇게 되면 자포자기 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요셉은 이런데서 넘어지지 않았다는 거 [ 65/69 ] 예요. 그러니까 영웅이라는 것이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것이 표 가 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요셉처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인데 사람들이 요도방정을 떨어서 요 셉만큼 못 가는 것입니다. 요셉이라 해서 우리하고 뭐 차이가 있습니까? 다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엘리야도 “왜 나만 이렇게 뛰어 돌아다니고 뾰족하게 하느냐? 왜 너희들은 쫓아다니기만 하느냐? 너희들도 전부 다 나와 같은 심 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하고 하며 깨달으라고 한마디 뱉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섭리사에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작게 만, 혼날 사건에서만 놀고 있다니까. 이 안에서 얼마든지 크게 될 수 있고, 영웅도 될 수 있고, 말할 수 없이 크게 될 수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렇지 를 못합니다. [ 66/69 ] ※ 부록 ■ 점검하기(분석과 점검) 1, 요셉이 핍박을 받은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이야기해봅시다. 2. 요셉이 유혹을 거절하자 누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떳 떳하고 아무런 허물이 없는데 오해를 받거나 미움을 받았던 경험이 있습니 까? 그러한 경험이 있다면 서로 나누어 봅시다. 3. 요셉의 노정과 예수님의 노정을 살펴보고 주님의 노정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4. 요셉이 많은 어려움을 당했지만 모두 이겨내고 영적, 육적 승리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고각자가 깨달은 점을 나누어 봅시다. [ 67/69 ] ■ 생각하기 10여 년 전 삼선교로 이사 가기 전, 신촌 이대 앞에 있으면서 전도하여 선 생님이 누군지 아는 사람 3명을 만들어 놓았을 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될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생각지 도 않았던 사람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져서 전화를 했더니 나보고 어디에 있 냐고 하면서 만나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다방에서 만났더니 하는 말 이 삼선교에 헌 건물 하나가 있는데 그곳에 있어보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아, 있겠다. 그런데 거기서 못 있을거야. 밑의 사람들 갖다 놔. 아니다. 내가 가겠다. 에이, 그러면 안돼. 이렇게 훌륭한 선생이 그런데 있을 수 있나? 아니다. 내가 간다. 난 지금 갈 데가 없어. 막바지야. 마음대로 해라. 그런 일 후에 삼선교로 이사를 갔습니다. 이사 가기 전 신촌에서 마지막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불도우저를 갖다가 터를 닦는데 큰돌을 백만 분의 일 밀리(mm)로 얇게 밀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대패로 나무를 밀듯 큰돌이 밀려 나가면서 또르르르 말리는데 그것을 보면서아!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운다더 니...맞다. 반석이다!했더니 맞다. 그러하다.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영 원히 망하지 않으리라.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다 찌그러지는 집이 있고 옆으로는 개울이 있고, 물이 흘러 내려가고 있었는데 거기에 있는 큰 바위 를 불도우저로 짝짝 깍아 내려가면서 거기에다 교회 집을 짓는데 그것이 내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그 교회가 영원히 서게 된다는 그 말씀표현이 그대로 왔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와 같이 되었습니 다. 물론 그 장소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팔려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시작한 교회는 지금까지 영영합니다. 92년 현재 전국 100개 도시에 있는 교 회들, 세계 18개국에 있는 교회들을 생각할진대 10년 만에 이와 같이 되었 으니 엄청나고 어마어마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영히 망하지 않게 되 [ 68/69 ] 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리스도 위에 교회를 지었기 때문이요 반 석 위에 교회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의 꿈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직선 적으로 표현하신 묵시였습니다. 그래서 두고 두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이 설교가 나올 때마다 그 이야기를 해줍니다. 여러분들도 들어 보았을 것 입니다. [ 69/69 ] ■ 적용하기(실천 및 적용) 1. 윗 글의 주인공이 하나님께 받은 묵시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 인지 생각해봅시다. 2. 말씀을 듣기 전이나 말씀을 들은 후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꿈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떠한 꿈인지 서로 나누어 봅시다. 3. 말씀을 듣고 자신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 있다면 이야기해봅 시다. 4. 생각하기의 주인공이 혼자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꿈을 가지고 있 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각자 앞으로의 소망을 생각해보 고 구체적으로 어떠한 실천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5. 올해에 실현하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꿈을 실천하기 위한 일 주일, 월별 계획을 세워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