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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학교2025.06.01 (일)

성경중심인물 07 다윗

선포일
2025.06.01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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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 ] 성경 중심인물 다 윗 [ 2/60 ] 1. 사랑 받는 자 다윗 ··················································································································4 1) 사랑 받는 자 ························································································································4 2) 절대적인 신앙인 다윗··········································································································4 3) 다윗은 문학가························································································································6 4) 정치가 다윗····························································································································6 5) 다윗은 전쟁의 영웅··············································································································7 2. 목동이 왕이 되다······················································································································8 1) 목동이 왕이 되다··················································································································8 2) 다윗의 눈동자······················································································································10 3) 하나님의 신이 다윗에게로································································································11 4) 다윗이 선택받은 이유········································································································11 5) 다윗 같은 선생님의 삶······································································································12 3. 궁중 악사가 된 다윗··············································································································14 1) 궁중악사가 된 다윗 ··········································································································14 2) 하나님의 신이 떠나면 말씀이 들려지지 않는다··························································15 4. 다윗과 골리앗··························································································································17 1) 다윗과 골리앗······················································································································17 2)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20 3) 다윗의 기도··························································································································21 5.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23 1)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23 2) 악평하지 않는 다윗············································································································25 3) 하나님 뜻에 의해 움직여야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26 4)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해야····························································································26 5) 과정을 극복한 다윗············································································································28 6. 다윗과 나발······························································································································29 1) 분노의 포도주 틀을 밟은 아비가일················································································29 7. 법 궤··········································································································································33 1) 신앙의 급수··························································································································33 [ 3/60 ] 8. 압살롬과 솔로몬······················································································································35 1)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다································································································35 2) 하나님이 세운 솔로몬········································································································39 9. 다윗의 실수······························································································································41 1) 오직 하나님만 찾아야 한다······························································································41 2) 회개········································································································································42 10. 만능 엔터테이너 다윗··········································································································44 1) 말씀의 진가를 안 다윗······································································································44 2)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어...······················································································45 12. 마음을 정한 다윗··················································································································47 1) 자기를 만들어야 한다········································································································47 2) 마음을 정한 사람들············································································································47 13. 시인 다윗································································································································50 1) 시인 다윗······························································································································50 2) 시편 23··································································································································50 3) 감사와 찬양··························································································································54 4)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찬양··················································································56 ※ 부록············································································································································57 ■ 점검하기(분석과 점검)······································································································57 ■ 생각하기··································································································································58 ■ 적용하기(실천 및 적용)······································································································60 [ 4/60 ] 1. 사랑 받는 자 다윗 <사무엘상 16: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 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 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1) 사랑 받는 자 영어식 이름 가운데 성경에서 비롯된 이름들이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이다. 특히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이 ‘데이빗’인데 이처럼 기독교 문화권에 서 사랑 받는 사람이 바로 데이빗. 즉 우리 성경에는 다윗이라 부르는 인물 이다. 다윗은 어린 나이에 용맹하게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쓰러뜨린 사건으로도 유 명하고, 시편의 기자로도 유명하며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번영과 발전의 장 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다윗의 후손’이라는 호칭 을 쓸 정도로 이스라엘의 본이 되는 인물이었다. 직업에 있어서도 엄청난 변천사를 거쳐 목동에서 장수로, 또 왕이 된 인물 이며 수 없는 전쟁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한계를 극복했으며 하나님에 대 한 사랑이 지고지순했던 위대한 사람이었다. 그는 유다 지파인 이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으며 그의 고향은 베들레헴이 다. 사울의 뒤를 이어 통일왕국의 제 2대 왕이 되었던 그 이름은 ‘사랑 받는 자’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왕정국가로서의 정치체제를 정비하고 대외적으 로 국권을 떨쳤으며 하나님을 어떠한 사람보다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2) 절대적인 신앙인 다윗 다윗은 유능한 정치가였으며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시인이었으며 또 [ 5/60 ] 하나 덧붙인다면 전쟁의 영웅이어서 마치 영국의 정치가 처어칠과 같은 유 능한 사람이었고 맥아더같이 영웅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열국들의 틈바구니 속에 끼어 있었으나 다윗은 그런 어려운 환경과 시대에 도전하여 끝까지 나라를 수호 한 왕이었습니다. 신앙의 절개를 끝까지 지켜 무서운 악평과 도전 그리고 열국들의 침략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열렬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지켜 왔으며, 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40년동안 역사에 기록될 뛰어난 정치를 하여 후에 선평 받는 왕으 로 등장합니다. 영웅이 아니고서는 장기 집권을 그것도 특출나게 정치를 하 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장기적 통치는 잘못하면 백성으로부터 야유의 소 리와 오해를 받기 쉽고 또한 백성들에게 권태감을 줄 수 있습니다. 더군다 나 이스라엘 민족은 다른 민족과 지리적으로 달라서 국가의 일에 상황판단 을 잘 못했다가는 여차없이 사자 같은 바벨론에, 또 불개미떼 같은 블레셋 에게. 곰같이 사정없이 밀어 붙이는 앗수르에게, 그리고 괴물같은 갈스미스 등 무서운 적 앞에 먹힐 수밖에 없는 위치에서 있었습니다. 이렇듯 어려운 시대 가운데서도 40년이란 긴 기간동안 무난히 이겨 나온 것을 볼 때 먼저 는 하나님의 큰 은총을 받았던 다윗이요. 선한 정치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자기 몸 이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여 수호하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편 전장을 보면 하나님을 찬미하고 찬양한 다 윗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그의 신앙은 숭고하고, 장엄하고, 과감하였고 또한 절대적인 신앙자로서 하나님 앞에서는 마치 양을 치는 목동과 같이 순 했지만 악의 세계에서만은 사자의 어금니를 뽑아 올 정도로 담대하고 강하 며 전쟁에 능통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당대에 못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수고하고 애쓰는 가운데 늘 마음속에 품어 염원한 것이 있었으니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6/60 ] 3) 다윗은 문학가 시편을 통해 볼 때 그는 문학가였습니다. 그는 묵시 문학을 기록했습니다. 오늘날 박사들에게 이런 묵시문학을 기록하라고 하면 못할 것입니다. 해보 기 전에는 모릅니다. 다윗은 이 묵시문학을 통해서 이스라엘 전 역사에 일 어난 상황을 다 기록했습니다. 비유와 상징으로 기록 했기 때문에 암시를 많이 남겨 놓았습니다. 그냥 봐서는 별것도 아닌 것 같고 그 말이 그 말 같 지만 각 내용이 다 다릅니다. 하나는 천장에 박히고 하나는 벽에 박히고 하 나는 문짝에 박히고 하나는 대들보에 가서 박히고 다 다르게 박힙니다. 이 와같이 내내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를 밝힌 것입니다. 그 리고 예언도 무척이나 기록했습니다. 또한 시편에는 제도적인 이야기도 많 이 나와있고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 가도 나와 있습니다. 또 자기가 어떤 고통과 고역을 당했는가도 나와 있습니다. 시편에는 이같이 엄청난 내용이 들어있는데 다윗은 그런 문학을 쓴 문학가였습니다. 4) 정치가 다윗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을 이스라엘 나라의 왕으로 세 워야 되나니 그래야 평안하고 이상적인 세계가 일어날 것이다.” 이같이 하 나님이 다윗을 정치가로 추천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추천할 정도되면 대단한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의 여생을 보면 정말로 위대한 영웅적인 지도를 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좋아하셨고 둘째, 정치를 하는 가운데 백 성으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정치를 하는 가운데 엄청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야 말로 정치천국을 만들었고 종교 천국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40년 동안 위대하고 영웅적인 정 치를 했습니다. 40년 쿠데타 한번 안 일어났고 데모도 한번 안 일어났습니 다. 오늘날 현실을 보면 다윗과 같은 인물이 아쉬운 인물로 떠오르는 시대 입니다. 다윗과 같은 사람은 100년대 하나가 아니고 천년에 하나 나기도 힘 들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 7/60 ] 5) 다윗은 전쟁의 영웅 그리고 다윗은 또 무슨 사람이었는고 하니. 전쟁의 영웅이었습니다. 이스라 엘 나라 주변에 열국들이 둘려 쌓여있었는데 다윗이 정치할 때 그 조그마한 이스라엘 나라를 열국들중에 이긴 나라가 없습니다. 다윗은 아주 전쟁에 유 능한 영웅이었습니다. 다윗이 돼 그렇게 싸움을 잘했는고 하니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명철을 싸움하는데 써먹었습니다. 이웃나라를 쳐 없애는 데 써먹 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기가 막히고 위대하고 멋있는 싸움을 했습니 다. [ 8/60 ] 2. 목동이 왕이 되다 <삼상 16:11-13>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 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 을 부으라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1) 목동이 왕이 되다 다윗은 형제들이 많았다. 8 형제 중 막내였던 다윗은 직업이 목축업이었고 직책은 목동이었다. 그의 취미는 피리 부는 것과 노래 부르는 것이었는데 물론 무대는 푸른 초장이었다. 희망 사항 같은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는 않지만 처음부터 주권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어려서부터 양을 쳤던 그는 오직 어떻게 하면 이리와 사자에게 어린양을 지 킬까 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였고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순 수하고 착실하게 모실까 하는 것들이었다. 영웅이 클 때는 환경에 묻혀서 잘 모른다고 하듯이 다윗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살았던 나라의 배경을 본다면 외부의 침범을 많이 받는 상황이었고 그 당시 왕은 사울이었다. 다윗은 그 때 나이가 17~18세인 소년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이민족의 침입이 잦아서 민족의 운명을 두고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왜 그와 같은 어려운 궁지 속에 자꾸 빠지게 되었을 까? 그 당시에는 다윗이 그 이유를 잘 몰랐지만 그 후에는 알게 되었다. 그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그 시대의 제사장이며 선지자였던 사무엘 선지자의 [ 9/60 ] 말을 듣지 않는 사울 왕 때문이었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았던 사울을 하나님은 떠나 버리고 사무엘을 시켜 새로운 인물을 찾고 있 었던 상황이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명해서 이새가 살고 있는 그의 동네로 들어가게 하셨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집으로 가서 이새 가문의 아들들을 다 앞으로 나 아오라고 했다. 그들이 나왔는데 다들 한 자리씩 할 인물들로 보였다. 외모 도 준수하고 덩치도 크고 우람하고 하나같이 멋있고 잘 생겼다. 왕도 시키 고, 내무부, 외무부 장관들도 세우고 한 사람도 뺄 사람이 없이 모두가 거창 했다. 사울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할 정도였다. “와, 하나님, 헷갈립니다. 너무너무 좋은 사람이 많네요. 이렇게 좋은 사람 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래도 내가 볼 때는 저 애가 그중 좋은 것 같은데 요.” “너는 외모로 보지 말라고 했는데 또 외모만 보려고 하고 있느냐? 눈을 감 아라. 그리고 조용히 묵상해 봐.” “하나님, 이러고 보니 여기엔 없는데요.” “더 찾아봐.” 그리하여 사무엘이 이새에게 물었다. “여기에 온 아들이 전부 다입니까?” “쓸만한 아들놈은 다 왔습니다.” “더 없습니까?” “하나가 있긴 있는데 꼬마라서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이런... 자기 자식을 그렇게 칭한단 말입니까? 빨리 데리고 오십시오.” 다윗이라 하는 막내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보니까 눈이 빼어나 불꽃같고 빛 이 나고 얼굴에도 빛이 나는 용맹스러움이 물씬 풍겨나는 아이였다. 사람이 풍기는 것이 있다. 소는 소 냄새를 풍기고 성령은 성령냄새를 풍기듯이 풍 기는 것이 있어야 된다. 다윗은 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했기 때문에 풍 기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항상 그 사상이 건전하고 눈이 제대로 떠져 있었다. 사람은 눈을 보면 안다는 데 다윗에게는 무엇인 [ 10/60 ] 가 신앙적으로 풍기는 것이 있었다. 다른 아들들에게는 풍기는 것이 없고 다만 외모만 풍성했다. 사무엘이 다윗을 보고 감동을 받아 기도하고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비밀 로 아무도 모르게 하였다. 그때부터 사울에게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신은 다윗에게 옮겨져 함께 하셨다. 다윗이 비록 어린 목동이였지만 하나님께서 는 외모가 아닌 그의 중심을 보시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신 것 이다. 2) 다윗의 눈동자 다윗이 왔는데 다윗은 눈은 독수리 눈처럼 생겼고, 키는 작았습니다. 여러분 은 눈이 잘생겨야 합니다. 눈의 모양을 가지고 잘생겼다고 하는 것이 아니 라 눈에 총기가 있어야 합니다. 판단력이 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 한 사람도 악하게 보기 쉽습니다. 눈이라는 것은 중요합니다. 보는 것 위에 서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시력을 따지기 전에 다윗의 눈은 살아 움직였습니 다. 정신이 이상하거나 한물이 간 사람들의 눈을 보면 흐립니다. 눈동자가 흐렸다가 다시 맑아지면 정신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알겠습니까? 잠을 자고 나면 눈이 흐려지는 것과 똑같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면 눈동자가 퍼뜩퍼 뜩 돌아갑니다. 오늘 설교한 것을 듣고 여러분들도 집에 가서 눈을 한번 보 십시오. 판단력이 빨리 돌아가면서 생기가 도는 지 흐리멍텅한 지 보십시오. 다윗은 생기가 도는 눈을 가져서 사무엘이 감동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의 눈을 보면 화가들이 굉장히 총기 있게 그립니다. 그리고 영인체에 나타 난 눈도 보면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환상에서 본 사람들은 예수님의 눈 이 불꽃 같다고 합니다. 보는 대로 심판하지 않고 듣는 대로 심판하지 않는 눈매를 표현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눈매로 살아 남기 위해서 눈을 막 찢고 수술을 하기보다 정신이 살아나면 눈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정신이 흐리멍텅한 사람의 눈을 보면 한물이 갔습니다. 내가 100명을 보면 99%는 맞출 수 있습니다. 먼저 눈에 총기를 발해서 긍휼히 볼 사람을 긍휼히 보고 [ 11/60 ] 불쌍하게 볼 사람은 불쌍하게 보고 교만하게 볼 사람은 교만하게 보는 그런 눈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눈이 있어도 봉사라고 하는데 그것은 보 았어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신이 다윗에게로 다윗이가 신의 감동을 받은 후로부터 모든 일을 신의 입장에서 신의 눈으로 내다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신의 사고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신 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서 중심권이 좌우됩니다. 그냥 보면 왕이 둘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울왕에게 역사 하던 하나님의 신이 철수하는 일이 있었 습니다. <삼.상 16;14>을 보면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서 분명히 떠났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했습니다. 두 사람에게 다 역사를 하면 아마 골치가 아플 것 입니다. 해가 둘일 수는 없습니다. 시간차로는 두 개가 있을지 몰라도 같은 시간에는 둘 일수가 없습니다. 시간차 속에는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튼 세 상의 지도자도 그렇고 하나님이 보내신 섭리권도 그렇고 똑같은 시대에 똑 같은 나이의 두 지도자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루터가 오고 칼빈이 왔던 입장과 같이 “엄연히 그 차이가 떨어져 있다는 것 입니다. 20년 이상의 기간 차이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루터:1510-1517, 칼빈 1935-1941) 4) 다윗이 선택받은 이유 다윗의 특기를 몇 가지 얘기한다면, 그는 누가 보나 안보나 늘 하나님을 찬미하고 찬양하며 기뻐하고 애인을 숨겨놓고 좋아하고 시중들듯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늘 노래하기를 좋아하고 손뼉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 기를 좋아하고 찬미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런 그의 성격은 순수했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그의 직업부터도 양을 기르는 직업이라 상당히 순수하고 [ 12/60 ] 양에 대한 주인의식이 대단히 강했습니다. 말 못하는 양들이기 때문에 주먹 만한 사람일지라도 책임을 져야 되는 입장을 느끼고 항상 양들 앞에 왕을 살아 먹다시피 했습니다. 말 못하는 양들에게 항상 주권자의 행실을 해줘서 사나운 동물들이나 짐승들이 한 마디라도 해치면 죽자사자 쫓아가서 때려 죽이고 오는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는 다윗이었습니다. 그런 성격이 점진적 으로 커서 결국적으로 하나님의 눈에 띄게 되었고 하나님의 보호자가 되게 되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표상인물이 되었고 중심인물이 되었습니다. 통일왕국 시대 때 또 하나의 중심인물이 다윗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저거 데려다가 주권자 삼아 놓으면 나의 영광을 거침없이 나타내겠고 악착같이 억척같이 정말로 불티나게 영광을 나타내겠구나’ 하고 그에게 착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적인 영광을 받기 보다, 가 정적 단위의 영광을 받기 보다, 그리고 민족적 단위의 영광을 받기 보다 세 계적 영광을 받는 것을 더 좋아하시고 천주적 영광을 받는 것을 더 좋아하 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민족적 영광을 돌리기 시작했 습니다. 그 모든 근본은 어디서 나타났느냐? 양을 칠 때에 하나님께 하던 것을 민족 적으로 그대로 확대 시켰습니다. 그래서 결국적으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기쁘게 하는 그 모습이 시대가 갔지만 웅장하고 대단한 것을 오늘도 내 입을 열어서 하나님이 말씀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입장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처지들입니다. 여러분도 과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고마워하고 기쁘게 했던 일들이 있다면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지금도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자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고 지금도 그런 삶을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5) 다윗 같은 선생님의 삶 나도 처음부터 멋있게 인생을 산 것이 아니고 혼자 산에 나무하러 다니면서 [ 13/60 ] 앉으면서 지게 목 바쳐가면서 장다리춤 치면서 인생을 멋있게 살아야 되는 데, 하면서 지게 장단을 치고 돌아다녔습니다. 찬송도 부르고 노래도 부르면 서 소리를 과감하게 지르면서 산울림을 울리면서 그랬던 것이 하늘앞에 눈 아 띄였던가 봅니다. 다윗이 목동 생활하면서 하늘 앞에 눈에 띄여서 그를 붙잡아 그 시대에 왕 을 삼았지요. 나는 이 시대 이 나라의 지도자가 아니라 세계적인 지도자로 삼아서 이런 말씀을 전해줘라고 했습니다. “멋있게 인생사는 방법이 있어. 너는 나의 통역관이 되서 내 말을 전해줘. 그들과 더불어 같이 청중 속에 살게 되면 더 멋있게 사는 방법을 깨닫게 될거여. 그들도 그러하고 “젊은이 들도 젊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뭣인가 해야됩니다.” 아침에 밥 빵빵히 먹고 하루종일 양달에서 자는 것도 한 두 시간이지 계속 자고 있단 말입니까? 봄 날에도 계속 하루 종일 자 보십시오. 해 넘어갈때는 서운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밥먹고 하루 종일 잠만 잤단 말인가? 이것 밖에 없나?’ 하게 됩니다. 그것을 누구한테 자랑하겠습니까? “아, 나는 하루 종일 잤다고. 하루 종일 자는 것이 아니라, 한 시간 자고, 한 시간가서 목욕하고 나와서 운동했네. 운동 4시간 동안하고 그 다음에 가서 산책했어.” 인생을 그 나름대로 멋있 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 14/60 ] 3. 궁중 악사가 된 다윗 <삼상 16:14-16>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 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을 번뇌케 하온즉 원컨대 우리 주는 주의 앞에 모시는 신하에게 명하여 수금 잘 탈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 리신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1) 궁중악사가 된 다윗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받은 다윗은 긍지를 가지고 늘 준비하고 예비하고 있었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신이 떠나버리고 악신이 들었다. 하나 님께서 계획적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악신이 들어와서 매번 괴롭다고 했다. 부귀영화가 있어도 괴롭고 늘 심통이 나서 어떻게 할 줄을 몰라할 때 하나 님께서 계획적으로 다윗을 등장시키셨다. 왕은 고통스러워하면서 말했다. “내가 심정이 괴로워 죽겠다.” “왜 그러십니까? 아무래도 왕이 잘되니까 영들이 괴롭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그 노래를 들으면 그 영들이 간답니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 “소문을 들으니 저기 베들레헴 이새의 집에 다윗이라는 목동이 있는데 하루 에도 수천 번씩 매일 노래 부르는데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것 같습니다.” 사울이 그 말을 듣고는 다윗을 불러오라고 했다. 다윗이 사울 앞으로 가기 전에 사무엘이 다윗에게 “아무 말하지 말고 가서 무조건 노래만 해줘라.” 했다. 다윗이 소고를 치며 노래를 하니 악신이 떠나 버렸다. 악신은 노래를 하면 떠난다. 슬플 때, 괴로울 때 노래하라. 괴로울 때 찬송을 부르라. 그러 [ 15/60 ] 면 괴로움이 떠나가 버린다. 다윗이 찬미하고 감격 감사했더니 악신이 떠나 간 것이다. 그래서 사울이 “정말로 너에게 노래하는 신이 임했구나.”하고 기 뻐하면서 칭찬을 했다. 그 일을 계기로 얼굴을 익히게 했다. 문제가 해결되 어서 다윗을 집에 돌려보내고도 “보통애가 아니다.” 했다. <삼상 16:23>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 하나님의 신이 떠나면 마음이 괴롭다. 그리고 슬프고 짜증이 난다. 그러면 하나님의 신은 어떻게 해야 올까? 하나님과 사고가 일체 될 때, 하나님을 믿어줄 때, 하나님을 섬기고 위해 줄 때 하나님은 그와 동행하게 된다. 사울 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니까 하나님의 신이 떠나간 것이 다. 그렇게 되니까 하나님은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서 다윗에게 기름 부은 것을 말없이 사울에게 깨닫게 해주는 간접적인 역사를 하셨다. 그것 중 하나가 악신을 물러가게 한 것이고 두 번째 또 다윗이 등장하게 했다. 국가가 전쟁 에 접어들어서 사울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대상국은 블레셋이었다. 블레 셋이 “이번만큼은 이스라엘을 아예 없애 버리겠다”고 쳐들어왔다. 그래서 사울왕이 뉘집 아들이나 딸이나 다 불러 들여서 전쟁의 울타리를 치게 만들 었다. 그러나 블레셋 대군에게는 그 까짓 것은 흙벽을 무너뜨리듯이 무너뜨 릴 수 있는 입장이었다. 2) 하나님의 신이 떠나면 말씀이 들려지지 않는다 다윗의 용맹과 광대함과 용감성은 신의 감동에서 나온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새가정의 여덟 아들 중 가장 막내둥이로서 약하고 빈약하고 연약했습니 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후부터 그의 체구가 커감에 따라서 그 용 맹함과 용감성을 누구도 따라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의 엄청나고 위엄스 [ 16/60 ] 러운 기질과 자질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습니다. 백성이 그것을 알게 되 었습니다. 어떻게? 그의 모든 노정 가운데 실존이 그것을 증거했습니다. 실 적이 그를 증거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 인해서 기쁨과 즐거움의 정치를 다스려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떠나가면 괴로워서 못 견딥니다. 하나님의 신이 떠나게 되면 말씀이 들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신이 떠나게 되면 말씀도 같이 떠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 이 떠났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치 않는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하 나님의 신이 떠났다는 것은 말씀이 떠났다는 것이 됩니다. 성서에 보면 하 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신이라고 했습니다.(요10:35) 사울에게는 말씀이 들려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다윗에게만 들려졌습니다. 사 무엘 선지자가 항상 다윗에게 가서 상의하고 의논하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낸자를 통해서 말씀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잘 못했을 때에도 선지자를 보내서 꾸짖고 책망을 했습니다. 이성의 범죄를 저 질렀을 때 나단을 보내서 책망했지요? (삼.하11:7) 그 때 다윗이 책망을 달 게 받으면서 회개하고 갔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다윗에게 나타났습 니다. 그래서 말씀을 계속 전해 들었습니다. 결국 말씀이 끊어진 자는 죽었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와 일체되어 그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는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악신이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 17/60 ] 4. 다윗과 골리앗 <삼상 17:45-47>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 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 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 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 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1) 다윗과 골리앗 국가가 전쟁에 접어 들어서 사울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또 다시 다윗을 등장시키는 사건이 일어났다. 전쟁의 대상국은 블레셋이었다. 블레셋이 “이 번만큼은 이스라엘을 아예 없애 버리겠다”고 쳐들어 왔다. 그래서 사울왕이 어느 집 아들이아 딸이나 다 불러 들여서 전쟁의 울타리를 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블레셋 대군에게는 그 까짓 것은 흙 벽을 무너뜨리듯이 무너뜨릴 수 있는 입장이었다. 다윗의 집에도 키가 구척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민족의 전쟁 통에 다 군대로 불림을 받고 갔다.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활만 쏠 줄 알면 비공식으로 다 불려 갔다. 우리 나라 6.25전쟁 때처럼.... 다윗의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윗의 맏형 엘리압과 그 밑으로도 둘이나 불려갔다. 그런 데 한 두 달도 아니고 몇 달 동안 소식이 없으니 아버지 이새가 다윗을 불 렀다. “얘 다윗아!” “네” [ 18/60 ] “너의 형들이 살았나 죽었나 소식이 없으니 니가 한번 가봐라. 꿈자리도 뒤 숭숭한데 이 늙은이가 갈 수 없으니 니가 가서 소식을 알아봐라. 우리가 밥 만 먹고 잠만 잘 때가 아니다. 너의 형들이 죽었나 살았나 궁금해서 도대체 잠도 안 온다. 니가 가보고 오너라.” “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양들은 어떻게 하지요?” “지금 양들이 문제가 아니다. 살아 남는 놈만 기르면 될 것이 아니냐? 내가 양들을 돌볼테니 너는 형들한테 어서 가보거라.” 그래서 다윗이 형들의 소식을 알기 위해서 아버지가 가르쳐 준 골짜기로 갔다. 가서 그 형들이 듬성듬성 배치되어 다 살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 막내 동생이 온 것을 보고 형들이 놀라면서 물었다. “너 어떻게 왔느냐?” “아버지가 걱정하시면서 가보라고 하셨어요.” “야, 빨리 발길을 돌려 집에 가거라. 여기는 위험하다. 저 앞에 있는 적이 조금 있다 밀고 들어올지 모를 일이다. 빨리 가라.” “아니 어떤 자들이기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덜덜덜 떨고만 있습니까?” “블레셋 놈들이 와서 진을 치고 항오를 벌였고 또 그들 중에 싸움을 돋우는 골리앗이란 자가 고함을 치며 돌아다니니 모두 기가 죽어있다. ” “아니, 그런데 사울 왕은 이런 때에 나오지도 않고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할례도 받지 않은 저들한테 벌벌 떤단 말입 니까? 그렇게도 무섭고 떨립니까? 부정한 저들에게 우리가 당할 수 있습니 까?” 하면서 다윗이 분개하여 말했다. 결국 다윗이 사울 앞에 서게 되었다. 그 판 국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누군가가 다윗의 상황을 사울에게 보고했 다. 그래서 다윗이 왕 앞에 섰던 것이다. “어찌된 일이냐?” “아버지 심부름으로 왔는데 아니 이런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가서 골리앗 의 목을 베어 올테니 구경만 하십시오. 저를 믿으시고 나가서 싸우도록 허 락해 주십시오.” [ 19/60 ] “...니 말은 가상하나 몸조심하라. 니가 아니라도 너의 형제들이 와서 희생 을 당하고 있는데 집으로 내려가도록 하라.” “아닙니다. 그 전에 사울 왕이 어려움을 당할 때 제가 해결해 주었지 않습 니까? 이와 같이 민족의 어려움도 제가 해결할 지 누가 압니까? 나는 나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갈 테니 나를 보내주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 이 우리편이 되어 주시기 때문에 망할 리가 없습니다. 저게 뭡니까? 쥐 죽 은 듯이 엎드려서 뭐 하는 짓입니까? 이 일이 해결되기를 원하신다면 나를 보내주십시오.” 사울 왕이 다윗 앞에 체면이 안 섰지만 답답하니까 열 일곱, 여덟 살 된 그를 보냈다. 사울이 다윗에게 갑옷을 입혀주었다. 그런데 키가 9척이나 되 는 사람의 갑옷을 입으니까 땅에 끌리고 칼도 너무 길어서 들 수가 없었다. “이것을 입고 가다가는 제가 쓰려져 죽겠습니다. 이런 것을 의지하니까 못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지요” 다윗의 말 한마디 한 마디 하는 것이 사울 왕의 가슴에 대못을 치는 것 같아서 변명할 말이 없었다. 그 때 왕이 골리앗을 없애주면 자신의 딸과 결혼을 시켜준다고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대담하게 마음을 먹어보았지만 아무도 실체로는 쫓아가는 사람이 없었다. 다윗이 쫓아갔을 때 골리앗이 쳐다보니 어떤 놈이 지팡이를 가지고서 쥐새 끼처럼 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가 말했다. “이 골리앗, 할례도 받지 못한 자야! 너는 네가 들고 있는 칼과 활과 말과 네 몸을 의지하지만 나는 하나님을 의지한다. 너와 나의 싸움은 하나님과 너와의 싸움이다. ” 골리앗이 가만히 보니까 그 어린 소년이 자기한테 하는 말이었다. 골리앗 이 너무 기가 막혀서 웃어댔다. “으하하하 세상에 니놈을 봐도 웃음이 나오지만 사울의 신세를 생각하니까 가련해서 웃는다. 오죽 사람이 없었으면 저 애숭이를 내보내고 기대를 한단 말이냐? 그것을 보니까 기가 막혀서 웃는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 [ 20/60 ] 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이스 라엘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알 게 해 주겠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손에 붙이실 것이다.” 골리앗이 보니까 다윗이 아무 것도 안 가지고 왔다. 창도 칼도 가지지 않 고 갑옷도 입지 않고 나오고 망아지도 안타고 오고 맨발로 뛰다 시피하며 쫓아왔다. ‘저것이 미쳤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윗이 주머니에서 돌 을 취하고 물매 질을 하려고 폼을 잡았다. 다윗은 그 때 기도를 했다. “주여 하나님이여, 하나님께서 친히 나와 함께 하시옵소서. 저놈이 지금이 물매에 맞고 죽을지를 모를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의 이마에 물매질을 하자 돌이 정확히 박혔다. 골리앗이 쇠 망치에 한방 맞는 기분을 느끼며 그대로 땅에 엎드렸다. 다윗이 두 방을 쏜 것도 아니고 한 방에 명중시켰던 것이다. 골리앗이 나가 떨어졌을 때 다윗 이 그에게로 달려가서 아직 살아서 푸드득거리는 놈을 창으로 쑤셔버렸다. 골리앗이 가지고 있던 큰 칼을 빼 가지고 목을 끊었다. 다윗이 골리앗의 목 을 메고 오는데 그만한 보물을 주워 오는 것보다 더 기뻤다. 사울이 그것을 보고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랐다. 이 일로 사울이 다윗을 곁에 두게 되었고 사울의 보내는 싸움마다 가서 승전을 하게 되었다. 2)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시 44:5~7>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려 일어 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 이라 내 칼도 나를 구원치 못하리이다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대적에 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케 하셨나이다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려 일어나는 자를 하 [ 21/60 ] 나님의 이름으로 밟아 버렸나이다.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하나이다. 그리고 나는 내 칼을 의지하지 않습 니다. 활이 없어서가 아니고 칼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사울왕이 칼을 주었는 데도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칼과 활은 넘도 구원치 못하고 나도 구원치 못한다는 것을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런 체질로 성 장했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케 하셨나이다. 우리가 종일 하나님으로 자랑거리를 삼았나이다. 하나님이여! 그 이름이 영영히 빛 나야 겠고,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을 감사하는 백성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고백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가 그러한 환경에 들어가 있었을 때 창, 칼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뢰하니까 오히려 자신을 치 려 일어났던 자가 수치를 당하더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려움이 일어날 때마다 그 때 하나님이 함께 했던 것을 표준삼고 날마다 찬양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함께 했던 것을 생각했을 때 ‘그 때는 함께 하고 이 때는 함께 안할 리가 만무하다.’ 하며 나갔다는 것입니다. 혹 시 죄를 지어서 죄 가운데 빠진 것이면 몰라도 그렇지 않을진대 틀림없이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게끔 해 놓고 기다려야 되고, 그리고 하나님이 과 거에 함께 했던 것을 잊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3) 다윗의 기도 다윗도 기도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영웅이 되었습니다. 시편을 통해서 보 면 다윗이 구구절절 기도를 열심히 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다윗은 기도 를 생활화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골리앗 앞에 가서도 담대하게 서게 되었 습니다. 골리앗에게 나갈 때 기도해서 뭐인가 받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나 가라! 너밖에 나갈 사람이 없다. 그를 없앨 자는 너밖에 없다. 물 맷돌을 주 머니에 넣고 가도록 하라.” 이같이 응답을 받고 나간 것이지 그냥은 힘들었 을 것입니다. 기도했기 때문에 자신력이 생겨서 가게 된 것입니다. 기도 안 [ 22/60 ] 했으면 하나님께서 같이 가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몸에 붙 어 따라다니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 23/60 ] 5.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삼상 18:6-9>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 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 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이 말에 불 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 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 날 후로 사울이 다 윗을 주목하였더라 1)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사울은 골리앗을 없앤 이 어린 소년이 누구의 아들인지 그 때부터 그를 유 념하여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장마다 그를 보내면 늘 승리하고 돌아오니 그를 곁에 두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다윗을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의 명성이 날 로 높아지면서 백성들이 “다윗은 천천이요, 사울은 만만이다”하고 노래까지 지어 부르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다윗을 쓰셨다. 보다 선한 곳에 강하게 역 사하시는 분이시니....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사울의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국방 의 문제가 해결되기는 했으나 오히려 배가 아프고 미운 마음이 들었다. 그 래서 원래 골리앗을 없애주면 준다고 약속했던 딸도 주지 않고 다른 사람에 게 줘버리고 백성들의 눈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으니까 둘째 딸 미갈을 아 내로 주었다. 그처럼 자신의 사위이기도 한 다윗을 늘 죽이려고 위협했던 사울이었다. 그러나 자기 아들도 딸도 온통 다윗에게 마음을 빼앗겨 죽이려고 할 때마다 다윗을 도와주었다. 하나님이 그를 도와주시고 강하게 붙들어 주셨기 때문 [ 24/60 ] 이다. 반대로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 부은 사울을 해칠 마음이 없었다. 어느 날 사울은 다윗을 잡아서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찾고 있었다. 그 러다 다윗이 숨어 있던 동굴에서 사울이 잠깐 쉬게 되었는데 다윗은 충분히 사울을 죽일 수 있었으나 옷자락만 살짝 베어내서 가졌다. 이런 사실도 모 르고 사울이 다윗을 계속 죽이려고만 하자 다윗은 자신이 죽일 수 있는 상 황에서도 사울의 목숨을 살려주었음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이 임했기 때문이었다. 자기의 목숨을 위협하는 원수조차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신 것은 분명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원수 같은 사울인데 다윗은 사울에게 그렇게 축복을 해줬습니다. 구약에서 손꼽히게 원수를 축복해 준 인물이 다윗이었습니다. 선지자쯤 되 고 중심자쯤 되면 그런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원수를 통해서 자기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원수를 통해서 사탄이 거기에 다 몰리게 되어 있으므로 원 수를 사랑하면 사탄을 다 이긴 것이 됩니다. 미운 자식 밥 많이 준다고 하 지만 미운 자식은 사랑을 더 해줘야 됩니다. 그러면 원수를 통해서 뜻이 이 루어집니다. 한번은 사울이 다윗에게 네가 진짜 나를 사랑한다면 내일 모레 내 생일 때 와라. 안오면 네가 나를 원수로 생각하는 줄 알고 전군을 다 배치시키겠 다. 죽을 때까지 해보자. 오면 네가 나를 진짜 사랑하는 것으로 믿고 그렇게 하지 않겠다.그랬습니다. 사실은 모사를 쓴 것입니다. 그래서 생일날 다윗 이 갔습니다. 왕궁에 들어갔더니 사울이, 거기 앉거라. 신세는 편하냐? 뭘 편합니까? 다만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뿐이지요. 임마, 그래도 나이먹은 장인이 이야기하는데 어찌 감히 얼굴을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느냐? 얼굴 처박고 하거라. 알겠습니다. [ 25/60 ] 왜 눈을 부릅 떠? 밑을 쳐다보면서 들어. 아니, 그렇게 하고 돌아다니면서 신세가 편하겠어? 제 마음과 신세는 편한데 상대는 편한가 안 편한가 모르겠습니다. 헷갈립 니다. 그 때 사울이 단창을 숨겨놨다가 다윗의 심장에다 착 던졌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해놨습니다. 항상 원수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다윗이 얼마나 영감적인지 순간 피했습니다. 심장에 맞을 것인데 옆으로 들어갔습니다. 20M에서 던져도 맞추는데 불과 10M에서 던졌는데도 못 맞췄으니 사울이 얼마나 혈기 났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장인이 나이가 먹어서 힘이 없으 니까 창자루 끝이 다른데 들어가는군요. 여기 맞추려고 했었지요? 하나님께 서 나와 함께 하심으로 인해서 나의 몸을 피하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저, 다음에 또 올께요.하고 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서도 또 또 사랑해줬습니다. 이것이 진짜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사울이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괴롭혔습니 다. 2) 악평하지 않는 다윗 다윗처럼! 다윗이 사울왕이 쫓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뭐라고 했습니까? 안 그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 기름 부음을 받고 왕이 되었으니까 저들로 나를 따라오게 만들지 왜 그냥 둡니까?” 이렇게 안 했다는 것입니 다. 다윗은 지혜롭게 슬기롭게 나갔습니다. 많이 주면 그만큼 피곤하다는 것 입니다. 그저 크는 대로 받아서 감당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백만 대군이 그 상황에서 모여들었다면 그만큼 진액이 빠져 나갈 뿐이 아니겠습니까? 나도 주님께 그전에 그랬습니다. 많이 보내 주었는데 감당 못하면 오히려 주님께 혼만 날 뿐이니까 크는대로 그저 적당히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믿습니까? 다윗같이 가만히 있으면 결국 때가 되면 자기 사명을 자기가 힘이 모자라서 못할 정도로 한다는 것입니다. [ 26/60 ] 3) 하나님 뜻에 의해 움직여야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 시편 23편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다고 했습 니다. 스스로 안 했으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풉니다. 그러나 스스로 한 사람 같으면 자기가 그것을 감당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노력하고 애를 쓰든지 해서 자기가 처리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할 것 같으면 하나님이 움직여줍니다. 진실로 원(原) 선(線)을 따라서 명령을 받고 하다가 조사를 받을 것 같으면 위에서 전화를 걸어서 “우리가 시켜서 한 일이니까 가만 놔둬라.” 합니다. 이와 같이 스스로의 삶은 하나님께서 책임을 못 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시켜서 하는 일은 책임을 져줍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푼다” 그것은 뭔고 하니 성경을 통해 말씀한다면 다윗이 사울왕의 창에 맞아 죽을 뻔했는데 거기서 살았습니다.(삼상 18:11) 그것은 원수의 목전에서 상 베품 을 받은 것입니다. 왜? 다윗의 삶은 스스로의 삶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 는 하나님의 뜻에 의한 삶을 살았습니다. 또 사고 당했을 때 사고의 목전에서 도와주었다. 이런 것들이 전부 다 하나 님께서 상을 베푸신 것입니다. 스스로 가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도와준 것 입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가 크게 적용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움직여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움직여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책임이 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 일은 하나님의 책 임이 큽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4)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나님은 오늘 말씀과 같이 보다 에돔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고, 보다 아 벨편의 하나님입니다. 가인편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으 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해서 문제를 털어 없애라는 것입니다. [ 27/60 ] 다윗이 말하기를, “하나님 나의 어려움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도울 자도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구하소서.”하니까 하나 님이 나타나셔서 “내가 그들을 처리하겠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산의 힘센 황소들이 나를 쫓아오고 많은 개들이 나를 쫓아다닌다.” 했습니다. 원 수를 개로 표현을 했습니다. 안한다고 하고 또 하고 안한다고 하고 또 하고 했기 때문에 개로 표현을 한 것입니다. 다윗은 왕이었는데도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울이 쫓아다니지 않았습니까? 육적 혈통으로는 통하는 사람이지만 영적 혈통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 다. 다윗의 부인이 사울왕의 딸이었습니다. 그러니 다윗과 사울은 서로 사돈 간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육적으로는 통했는데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일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안 통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결국 하나님께 “바산의 힘센 황소가 나를 쫓아다닌다. 개들이 나를 쫓아다닌다.” 하며 심판 을 부르짓던 입장이었습니다. 다윗을 추적하는 자들을 개들로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아벨 자손을 가인 자손들이 괴롭히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 서 시편 22편에서 하나님을 찾았더니 시편 23편에 가서는 벌써 풀어지는 말 씀이 나옵니다. 어떤 말씀인고 하니,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가 부족 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 하시는도다. 나로 하여금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 송정 해수 욕장에 인도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어 긴밀히 부르시니 원 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도다.”하고 노래했습니다. “항상 원수의 목전에 서 행한 만큼 상을 베푸는 하나님이시라.” 했습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앞날 을 내다보고 노래를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다윗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서 열 심히 기도하고 간구하며 시대를 살아나가는 우리들의 삶이 이루어져야 됩니 다. 이 세상을 보면 항상 보다 악편에서 선편을 해합니다. 국가도 손을 대기 는 대는데 어렵습니다. 민족도 손을 대기는 대는데 어렵습니다. 어느 단체가 손을 대도 어렵습니다. 근본문제는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 28/60 ] 5) 과정을 극복한 다윗 다윗은 이렇게 과정을 극복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치하에서 고통과 고역을 받았습니다. 마치 우리 민족이 일제 치하에서 고역을 받았듯이 또 공산권의 괴로움을 받듯이 신앙권의 공산주의인 사울의 치하에서 갖은 고통 과 고역을 받았습니다. 다윗의 입장은 사울을 죽일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는 환경에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를 극복하면서, 하나 님을 찾고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하여 숨어 살기도 했습니다. 허허 벌판에 서 광야에서 오랫동안 참고 견디면서 숨어 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보 니까 생명의 위험성도 있었고 사울이 죽일려고 궁으로 끌어 들이기도 했습 니다. 그러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 ‘안되겠다. 내가 더 이상 일을 하다가는 죽겠구나.’ 이렇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포 기하지 않고 끝까지 갔더니 결국 사울 정권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영웅들은 다 과정을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 29/60 ] 6. 다윗과 나발 <삼상 25:2-5>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 여 양이 삼천이요 염소가 일천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 양털을 깎고 있 었으니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사가 악하며 그 는 갈멜 족속이었더라 다윗이 광야에 있어서 나발이 자기 양털을 깎는다 함을 들은지라 다윗이 이에 열 소년을 보내며 그 소년들에게 이르되 너 희는 갈멜로 올라가 나발에게 이르러 내 이름으로 그에게 문안하고 ... 1) 분노의 포도주 틀을 밟은 아비가일 성경에 나발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발이라는 사람이 목축을 했는데 다 윗이 옆에다 천막쳐 놓고 살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정권을 잡고 있었을 때 (사실상 사울은 정권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밑에 있는 지도자들과 같이 들 판에 가서 천막을 쳤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한 정권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인 정을 안 해주고 있었죠. 이미 판국은 다윗에게 넘어갔습니다. 섭리 권도 마 찬가지입니다. 섭리권 가다가 새로운 지도자 나타나면 그에게 영적으로 넘 어가 버리면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은 확실히 압니다. 바깥에 있는 사람은 넘어간 것을 잘 모릅니다. 왜? 고정관념이 있고 자기의 의식 관념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용납을 잘 안합니다. 정권이 넘어갔어도 전혀 넘어간 것으로 안하고 자기 주관을 하고 있는 시대가 지금도 그렇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다윗때에도 사울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그런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니가 하나의 반란군이 아니냐” 그런 식으로만 생각을 했죠. 정권은 이미 넘어가서 다윗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발의 집의 목축 옆에다 천막 치고 살았습니다. 이리와 사자들이 와 서 나발의 많은 양을 잡아갔는데 다윗의 군대가 오니 목축하는 나발의 종들 이 상당히 좋아했습니다. 양들이 한 달에 약 50마리씩 없어지는데, 다섯 마 [ 30/60 ] 리도 안 없어지고 깨끗하게 잘 큽니다. 병들어 없어지는 것은 있어도,. 그래 서 너무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그 후에 다윗이 자리를 옮겨 다른 곳으로 가 기 전에 “야! 파티나 한 번 하자.” 그런데 무엇이 있어야지. 그래서 종들에 게 “너의 주인한테 가서 다윗이라는 사람이 와 있는데 곧 떠나려고 하니까, 그 동안의 이야기를 해주고 양도 50마리씩, 100마리씩 안 없어졌는데 양 몇 마리하고 포도주하고 골고루 좀 해서 한탕 내라고 하도록 하라. 주인에게 그러면 주인이 기뻐할 것이다.” 해서 종들이 집으로 가서 이야기를 했습니 다. 그랬더니 나발이 하는 말이 “참, 나도 나발이지만 누가 나발 불고 있네. 정 말로. 누가 나발분다는 거야. 다윗 나 몰라. 다윗도 모르고 아무도 몰라. 무 슨 양떼들이 말이야. 다 내 복이지. 그놈의 이리들이 먹다가 배가 불러서 안 먹은 거지.” 나발이 그렇게 멍청했습니다. 이리가 암만 잘 먹어도 그 이튿 날 또 배고픕니다. 사람과 같지 않습니까? 호랑이도 사자도 “잔뜩 먹어서 이제 체통을 지키려고 안 먹은 것인데 뭘 그렇다는 거야. 있으나 없으나 마 찬가지라고.” 그렇게 생각하고서 나발을 불었습니다. 그래서 종들도 가지고 왔는데 전혀 못 얻고 퉁사리만 받고, 꼭 그 말을 전해 주라고 했는데 그 말 을 전해 주었다가는 얻어맞아 죽게 생겼습니다. 할 수 없이 왔습니다. 와서 다윗한테 그 이야기를 했죠. “자기도 나발이지만 나발 분다고.” “다윗도 모 른다. 누가 그런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있단 말이냐. 어디서 얻어먹고 돌아 다니는 상거지. 각설이가 있단 말이냐?” 그러고 혼치미를 주었다고 그러니 까 다윗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 용감한 사람이 그냥 있을 리가 만무합니 다. 열일곱살때 골리앗 대장을 법칙 벗어난다고 물 맷돌 몇 개 가지고 가서 후드려 갈겨서 마빡을 터뜨려 죽여 놓고서 모가지를 잘라 가지고 왔지 않습 니까? 그런 다윗이 그때는 나이가 더 먹었기 때문에 굉장히 울분을 달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냥 으악 하고서 “다 가자. 나발 그놈 잡아와라. 삭 그냥 죽여 버리고 와라. 그놈의 새끼 양떼 다 몰고 가 버리자. 이런 배은망덕한 놈이 있고 이런 미련하고 지혜 없는 놈이 있단 말이냐.” 하고서 “그 사람은 살면 역시 쌀 값이 비싸다. 그놈이 어떻게 이런 많은 양떼를 거느렸지? 무 [ 31/60 ] 슨 복으로. 다윗을 모르다니 이놈. 하나님도 아는데 이 잡놈.” 그래서 마차 타고 다윗도 같이 잡으러 갔습니다. 다윗이 웬만하면 출동을 안하는데 출동 을 해 버렸습니다. 얼마나 미안하겠습니까? 자기 밑의 사람들한테. “오늘 저녁 한 탕 잘 낼 테니까 기다리라.” 이렇게 했으니까. 그래서 배도 쫄쫄 굶 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런데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얼마나 민망하고 얼마 나 그 밑의 사람들한테 쥐구멍을 찾았겠냐는 것입니다. 말이 그렇지. 여러분 다윗 같아 보세요. 주권 받고. 그 후에 어떻게 했는고 하니 나발의 부인이 나갔다가 들어왔습니다. 그 때 나발이 하는 말이 “참 내. 오늘 별놈의 꼴 다 봤다고. 어떤 놈의 새끼들이 와 가지고 우리 양 옆에서 천막 치고 있다가 뭐 몇 달 동안 이리와 사자들 한테 물려 가지 않게 해서 수백 마리가 살았다고 그런 이야기를 전해 주면 서 아니 날보고 그 지역 옮긴다고 한탕을 내라고 하면서 보리떡 50덩어리, 뭔떡 몇십 덩어리, 양 몇 마리 잡아서 가지고 오라 했는데, 다윗이 누구냐 도대체 그놈이 정말 나발 불고 돌아다닌다고.” 그러니까 부인이 가만히 보 니까 다윗이 듣던 이름입니다. “아! 그때 골리앗 모가지 잘라 온 사람! 그 사람 맞아. 그 용감한 사람. 아이쿠 이 영감쟁이야. 죽을라고 환장했냐?”고 하필 왜 그런 사람 이름을 몰랐냐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아냐고. 그 분이 골리앗 모가지 잘랐다고 이야기를 해 주니까 “모가지를 잘랐으면 자른 것이 고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냐고. 이 순수한 농촌에서 양치는 사람이 무슨 상 관이 있냐고.” 그랬더니 이 여자가 달려나가서 밑의 사람, 종들을 시켜서 양 을 잡고 보리떡을 뭉쳐서 여러 가지를 골고루 해 가지고 마치 시집갈 때 뭐 해 가는 것 같이 해서 그것을 가지고 불나게 나귀에다가 싣고 갔습니다. 그 분 성질에 분명히 오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 분 성질을 막으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위대한 사람이 거기에 있었구나. 그리고 거기서 양도 지켜 주고 그런 일을 했구나. 하고서, 그 전에 있다 소리 들으면 대접을 하고 싶 었는데 하며 부랴부랴 지혜롭게 가다 보니까 중간에서 만났습니다. 허더덕 거리고 오는 것을 보니까 다윗입니다. 여인이 가서 내려앉아서 절을 했습니 다. “누구냐고 길을 막고 안 비키냐. 비키라고.” 다윗이 했더니만 일어나지 [ 32/60 ] 않아서 “누구냐.” 했더니 이 여인이 “용서해 달라고 내가 나간 새에 우리 남편이 미련한 이야기를 했는데 아무것도 모릅니다. 푼수입니다. 모르고 이 렇게 일을 저질러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나만 있으면 그럴 리가 있겠습니 까?”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키라.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했는 데 하도 막고 옷자락을 붙잡고 절을 해 대끼니 다윗의 마음이 좀 가라앉았 습니다. ‘참 그놈은 미련하지만 하나는 지혜롭구나.’ 그러고서 못 이긴체 하 고서 할 수 없이 붙잡고 끌고 다시 오던 길을 가서 먹었습니다. 먹여 놨는 데 다윗이 결국 가서 쳐 없앴습니다. “그 미련한 놈 안된다고.” 그리고 지혜 로운 여자가 혼자 있기 너무 안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를 데리고 다 녔습니다. 다윗의 애인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은 참 용감한 사람입니다. 의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다윗같은 사 람이 되고 싶죠? 때와 시기를 따라서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꼭 다윗같 은 사람만 되지 말고 다윗같은 사람의 때가 있을 때는 그렇게 하고 솔로몬 같이 해야 될 때에는 솔로몬같이 하고 예수님같이 해야 될 때에는 예수님같 이 하고 모세같이 할때는 모세같이 하고 나는 그렇게 늘 기도했습니다. 그 때 그때에 그 처세를 돌려서 하는 것을 느낍니다. 결국적으로 미련해서 죽 었습니다. 지혜로운 여자가 살게 되었고, 지혜로와서 다윗을 만나게 되었고 그 후에 정식적으로 왕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와 같이 미련할 때는 안된다 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모든 일을 미련하게 하면 절대로 안된다는 것입니 다. 간혹 보면 여러분들도 그런 일을 하죠. 노발대발할 때 “아이고, 참으십 시오. 미련해서 몰랐습니다. 못 깨달았습니다. 참으십시오.”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분노에 가득 찼을지라도 다시 꿰메는 일들이 있습 니다. 나도 노발대발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가정을 보고 그럴 때마다 “나 는 알았으니 가지 않냐.”고 그래서 그런 분노의 포도주 틀을 밟는다(계 19:15)는 말씀같이 가정의 분노의 포도주 틀을 가정의 지혜로운 여자가 밟 았습니다. [ 33/60 ] 7. 법 궤 <사무엘 하 6:12-15> 혹이 다윗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나님 의 궤를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 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성으로 올라갈쌔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행하매 다윗이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 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 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 1) 신앙의 급수 다윗이 블레셋에서 하나님의 법궤를 뺏어왔습니다. 그런데 다른 백성들은 그것이 큰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궤를 뺏어올 때 다윗의 기 쁨과 은혜 충만함은 하나님 다음으로 컸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뺏어옴으 로 운명이 좌우되고 그것을 뺏어옴으로 요즘 신형무기 원자탄 수십개를 갖 고온 것보다 더 힘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뺏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뺏어왔기 때문입니다. 법궤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있음으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선포할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사단에게 뺏김으로 맥을 못쓴 것인데 다윗은 그것을 늘 생각하다가 전쟁하여서 뺏어왔기에 춤 을 추고 소고를 치고 노래했는데 다윗의 부인은 그 감격함을 모르고 왜 저 렇게 좋아하는 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기뻐 뛰는 것을 보며 오히 려 비웃었을 때 그에게는 일생동안 치명적인 곤고를 주었습니다. 자손을 없 게 만드셨습니다. 자손이 없으니까 맥을 못쓰는 것입니다. 그와 똑같은 입장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이 그렇게 크고 귀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법 궤를 가져왔을 때는 이미 뺏겼던 하나님 성전을 다시 찾아오는 것과 똑같았 습니다. 우리가 심령으로 다시금 뺏은 성전을 뺏겨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그 러니 조건을 세워야 할 것이고, 열심을 내야 할 것이고, 근본을 찾아야 할 [ 34/60 ] 것이고, 일편단심하는 여러가지 각오가 있지 않고서는 다시 몸을 뺏깁니다. 몸 성전을 뺏기면 벌써 영원한 흑암의 세계, 원수국으로 가는 것이고 마치 뱀의 소굴과 같은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뱀이 수만마리 살고 있는 골짝에 그 뱀에게 물려가면서 같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뱀이 물어도 죽지도 않습 니다. 내가 전에 한 이상을 보았는데 수만마리의 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계단별로 되어 있어서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사람은 3층으로 걸어가 는데 거기는 뱀이 안 닿았습니다. 2층에 걸어가는 사람들은 뱀이 닿을랑 말 랑하고 가끔 뱀을 밟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층에 가는 사람들은 뱀과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의 급수를 얘기한 것입니다. 군대도 계급 이 있어서 계급이 높으면 가는 식당부터도 다르고 자는 곳도 다릅니다. [ 35/60 ] 8. 압살롬과 솔로몬 <사무엘하 15:1-6> 이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 하고 전배 오십명을 세우니라 압살롬이 일찌기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 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 을 불러서 이르되 너는 어느 성 사람이냐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 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압살롬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또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 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공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사람이 가까이 와서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입을 맞 추니 무릇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에게 압살 롬의 행함이 이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하니라 .... 1)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다 <삼.하 15:1-5>를 보면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다윗이 어 려운 일을 당한 것이 나옵니다. 외부로는 사울왕이 고통을 주었었는데 내부 로는 그 아들 압살롬이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 압살롬이 헤드가 나가 가지 고 정치야욕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버지에게 나도 뭐인가 거느리게 해달라고 졸라대었습니다. <삼.상 15:7>을 보겠습니다. “4년만에 압살롬이 왕께 고하되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컨데 나로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해달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이미 맹세해 버렸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이런 식으로 자기 아버지께 간청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기 아들의 속꼬라지가 어떠함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있다 고...?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나님은 자기가 보내고 세운 다윗을 통해서 항 상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원 아니라 무슨 맹세를 했을지라도 [ 36/60 ] 다윗을 통해서 그 응답이 떨어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 으로부터 압살롬을 헤브론으로 보내라는 계시를 받은 적이 없는데 서원을 했기 때문에 가야 된다고...? 그러나 다윗이 그 아들에게 평안히 가라고 했 습니다. ‘그래 니 좋은대로 한번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가 일어나 헤브론으로 가니라. 이에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 파 가운데 두로 보내어...” 압살롬이 정치야심이나 지도자 야심을 먹고 있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이리 저리 모아 만들어 놓고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내보내면서 지시를 내렸습니다. “다윗왕이 자기에게 허락한 것이 있는데 나 팔소리가 들리면 자기가 왕으로 추대 받은 것을 알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 렸습니다. 나팔이 뭡니까? 말이지요? 그대 당시는 진짜 나팔이었지만 현대 식으로 설명한다면 말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모사를 서서 나팔을 불 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가 백성들이 “야 압살롬이 왕이 되었구나”하면서 압살롬을 두렵게 생각하고 “압살롬이여! 압살롬이여!”하고 추대를 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엄청난 정치역사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놓고 지들끼리 좋다 좋다 하면서 쑥떡 쑥떡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가는 사 람들은 마치 봉사들 같이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사건에 대해서 모르니까 봉사들이 아니겠습니까? “그 때에 압살롬에게 청함을 받은 200명이 그 사기를 알지 못하고 아무 뜻 없이 예루살렘에서 저와 함께 갔으며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더라” 압살롬이는 그야말로 사기를 친 사기꾼이었습니다. 그는 각종 각종의 모사를 다 썼습니다. “다윗 왕이 있지만 나에게 다 연계했다. 그 이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따라오라!” 이같은 말을 하면서 그동안 다윗왕 에게 데식데식하던 사람들을 특히나 전부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 여금 왕을 배척하게 만들고 왕에 대해 잘못된 것을 들춰내면서 인신공격을 했습니다. 다윗이는 지애비가 아닙니까? 아무튼 그같이 하면서 자신을 중심 한 무리들을 산적떼 같이 만들었습니다. 압살롬을 중심한 200명이 모사를 쓰면서 백성을 고이니까 백성들도 같이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속는 [ 37/60 ] 것같이 원통한 것이 없습니다. 귀가 얇고 눈이 제대로 안박힌 사람이 자꾸 속는 것입니다. 헤드가 나간 사람들이 자꾸 속고. 그런데 솔로몬은 조용했습니다. 그런 것도 하지 않고 조용하니 가만히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어떤 권세나 정권을 받을 때 어거지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삼.하 18:9>을 보겠습니다. 압살롬이 아버지를 공격해서 업애 버릴려고 했습니다. 완전히 왕궁을 차지하려는 야 심에 가득 차 있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압살롬은 다윗 의 군대를 쉽게 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항상 다윗의 군대를 보면 “아 니 이놈들아 니놈들이 감히 어떻게 왕자와 다툰단 말이냐? 나에게 아버지가 정치를 인계해 주었다” 이런식으로 해서 대담스럽게 과감스럽게 대어 들었 습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을 처단시켰습니다. <삼.상 18:9> 이 날도 도 상수리나무 밑에서 다윗의 신복과 마주쳤습니다. “압살롬이 다윗의 신복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 나무 무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털이 그 상수 리 나무에 걸리며 저가 공중에 달리고 그 탔던 노새는 아래로 빠져 나간지 라” 그러니까 상수리 나무가지에 압살롬이 상투 끝이 꽂혔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기는가 했더니 공중에 매달려 있는 자신을 발 견했습니다. 밑을 보니까 가물가물했습니다. 빠져 나온 노새는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이상하다...? 어? 내등에 탔던 사람이 없어졌네! 떨어질 사람이 아닌데... 아무튼 쉬자! 일단은 지가 오겠지’(웃음) 그러나 암만 눈이 빠지게 기다려도 안왔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그 주인이 어디서 없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누가 알겠습니까? 감쪽같이 하시는 일이라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사람이 알 수 있겠습 니까? 하나님의 컴퓨터에 한번 입력만 되면 -그 날짜만 돌아오면- 순식간에 없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노새도 모를 일이고 귀신도 탐복할 일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상수리나무에다 콱 꽂아 놓는단 말입니까? 아무튼 다윗의 군 대들이 압살롬이 매드랑 매드랑 걸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두 겁이 나 [ 38/60 ] 서 어떻게 할 줄을 모르고 무서워 했습니다. 결국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에 게 보고가 올라갔습니다. “아니 그 즉시에서 처단하고 오지 그냥 왔느냐?”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야 이놈아, 그 놈이 얼마나 골치를 아프게 만들었다고 그러느냐? 그냥 그대로 잡아 당겨서 껍데 기를 벗겨 버리지! 야 그동안 살아 도망갔겠다” “아마 못 도망 갔을 것입니 다. 내가 올 때 몸이 축 느러져서 손이 못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 “한 번 가보자” 정말로 가서 보니까 참 희한하게 매달렸더라는 것입니다.(웃음) 어쩌면 그렇게 희한하게 매달렸는지 모릅니다. “야 저게 도대체 어떻게 저 같이 희한하게 매달릴 수 있단 말이냐? 참 사람의 팔자가 희한하게 되었구 나. 아무튼 가자. 저기 꿈틀하는구먼” 결국 요압이 단창을 가지고 그대로 가 서 찔렀습니다. 그냥 놔둬도 죽는데 더군다나 누가 와서 쑤시기까지 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는 것입니다. ‘내 운명이 여기서 이렇게 되는구나. 아, 어 쩌면 이렇게 된단 말인가?’ 하고 그 순간에는 타다다 번개처럼 깨달았습니 다 애비를 추격하고 쫓아다니고 모사쓰고 사기를 쳤던 것이 다 생각났을 것 이 아니겠습니까? 아마 압살롬이 지가 두발검사에 걸릴 줄 알았으면 그 전 날 밤 쪽집게로 다 뽑았을 것입니다.(웃음) 그러나 하나님이 뽑게 하겠습니 까? 이미 그는 컴퓨터에 입력돼서 꼼짝도 없이 당하게 되어 있었다는 것입 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다윗이 한 일도 아닙니다. 다윗의 신 복들이 한 일도 아니고 그 산의 주인이 한 일도 아닙니다. 또한 노새가 “어 디 넝쿨이 없나? 적당히 가던 중에 상투나 꼽혀라”했던 것도 아닙니다. 오 직 하나님이 한 일입니다. 어느 누구도 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밖에 그 일을 할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한번 걸리면 완전히 뿔이 빠 지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죽어도 잔인하게 죽습니다. 믿습니까? 작명가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들의 이름이 다 뜻이 있다고 하더니만 이 압살 롬이 그야말로 이름대로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말로 창에 맞아 “압사 한 놈”이 되고 말았습니다. [ 39/60 ] 2) 하나님이 세운 솔로몬 성경에는 다윗의 두 아들인 솔로몬과 압살롬이 나옵니다. 압살롬은 스스로 인생을 살아나갔습니다. 압살롬이 북쪽 나라에 가서 “아버지가 나에게 정권 을 주었다. 부친께서 나에게 왕위를 계승했다”고 했습니다. 정치에 어둡고 ..에 어두운 사람들에게 쫓아다니면서 얘기를 하니까 다 믿고 그 주관을 받 고 그 명령을 왕에게 받은 명령같이 여기고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이 군인을 동원하고 만들고 해서 오히려 아버지를 따르는 신하들의 군대를 쳐 부수고 쳐들어오다가 상수리 나무에 모가지가 걸려서 매달롱거리다가 결국 다윗의 신하들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다윗은 솔로몬이 어렸을 때부터 왕을 삼겠다고 솔로몬의 어머니인 밧세바에 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중심자가 마음을 결정했기 때문에 바로 하나님이 일 찍부터 역사를 시작했지요. 그래서 결국 솔로몬을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습 니다. 통일왕국시대에 마지막 역사를 40년 동안 끌고간 솔로몬, 그는 우리에 게도 지대한 관심과 이상을 준 하나님의 역력한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래 서 잠언과 전도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와 오묘함을 많이 나타내 주었습 니다. 하나님이 세운 자들은 이와같이 역사에 뭔가 남기고 그 시대에 크나큰 영 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 뿐만 아니라 어 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늘 앞에 절대적인 영향을 남겨야 됩니다. 하나님이 세운 자가 남긴 것 하고 하나님이 세우지 않은 자가 남긴 것은 역사가 다릅 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가 하늘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자기 시대에도 가치 있게 살다가고 후대에게도 길이 남기고. 솔로몬은 3천 잠언을 남겨서 사람 들에게 인생을 지혜롭게 가치있게 살아나갈 수 있는 길을 주는 삶을 살았습 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역시 압사를 당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개죽음을 당했 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공주에서 말씀할 때에 “인생을 자기 스스로 자기 맘대로 살아나가 다 보면 대개 압살롬같이 모가지 걸려 죽는 일이 있다. 모가지가 덫에 걸려 죽는다.”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절대로 인생을 자기 맘대로 살면 안됩니다. [ 40/60 ] [ 41/60 ] 9. 다윗의 실수 <사무엘하 24:10-15> 다윗이 인구 수를 조사한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 였나이다 하니라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 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 의 말씀에 내가 네게 세가지를 보이노니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왕의 땅에 칠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시 왕이 왕의 대적에 게 쫓겨 석달을 그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시 왕의 땅에 삼일 동 안 온역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이에게 대답 하게 하소서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 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 기를 원하노라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을 이스 라엘에게 내리시니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인이라 1) 오직 하나님만 찾아야 한다 다윗이 한번 혼난 일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군사 파악을 했습니다. 기도를 먼저 안하고 ‘요번 작전에 나갈 수 있는 인원이 몇 명이나 되나’ 그것을 먼 저 파악했습니다. 그것을 하늘이 보았습니다. 다윗이 나중에서야 자책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갓을 보내 세 가지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삼하 24:1~17) “너 무엇을 했느냐?” “군사 파악을 했습니다....” “그래? 셋중에 하나를 택 해! 삼일동안 병으로 치는 그것을 받겠느냐? 석달 동안 전쟁의 고통을 받겠 느냐? 7년 기근을 받겠느냐? 내가 지금까지 너와 함께 했는데 어찌 정신 나 간 짓을 했느냐? 그 까짓거 군사를 세어 봤자 얼마나 된다고? 니가 군사가 [ 42/60 ] 지고 이겨왔는냐? 항상 한명당 천명을 당하는 입장이었는데?” “잘 못했습니 다” “잘 못했으니까 받아야 된다.” 그래서 삼일동안 온역을 받았습니다. 삼일 동안 7만이나 되는 사람이 죽었 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는 머리를 잘 써야 됩니다. 한번 잘못 쓰면 큰 일납니다. 저 같은 입장은 그런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을 1번지 에다 두고 갑니다. 철통같은 사고를 가지고, “하나님이 1번지! 1번지는 하나 님이다!” 하며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다 여러분을 위해서 그러는 것입 니다. 나는 여러분 무리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가 보면 항상 나 혼 자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만 찾아야 됩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신앙을 가지십시오.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님으로 가게 되는데 아예 첫 번부 터 “하나님”으로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2) 회개 오늘 본문 말씀에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 는 사람이다” 했습니다. 허물의 사함은 회개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죄를 가 림도 회개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죄를 가리지 않고 다 벌려 놓으면 다 죄인 들입니다. 의인도 지금은 자복하며 회개를 해야 하는 그런 시대가 왔습니다. 의인도 하나님께 속을 상하게 하는 일을 하고 죄인들도 속을 상하게 하는 일을 했습니다. 아무리 가정에서 불효 자식을 향해서 부모가 말하지만 효자 라도 그때는 무릎을 꿇고 부모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는 그런 것을 보여야 맞고 있는 불효 자식도 다시 뉘우침이 크게 되고 또 부모도 용서하는 마음 이 생기고 불타는 심정을 가라앉힐 길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이 의 인도 회개하고 자복해야 할 시대가 돌아 왔습니다. 죄가 없는 의인이라고 하는 모든 지구촌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죄인이라 하는 사람들 도 마찬가지로 허물을 사함 받도록 회개하고 그 죄를 가리움 받도록 하는 자가 복있는 자라고 다윗은 말했습니다. 다윗은 이 말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죄를 가리움 받고 허물을 사함 받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자기를 노래한 시 [ 43/60 ] 입니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는 사 람이라고 했습니다. 환난 날에 간사한 자들이 되어서는 안되고, 여호와께 정 죄를 당치 않는 자는 환난 날에 복이 있습니다. 다윗은 간사함이 없었고 환 난 날에 하나님께 정죄 받을 일을 안했다고 자기 자신을 들어 얘기한 것입 니다. [ 44/60 ] 10. 만능 엔터테이너 다윗 <삼상 16:14-16>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 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을 번뇌케 하온즉 원컨대 우리 주는 주의 앞에 모시는 신하에게 명하여 수금 잘 탈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 리신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1) 말씀의 진가를 안 다윗 시편의 여러 곳을 볼 때 다윗은 말씀의 진가를 안 사람이었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시119:99) 내 자신이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게 되니 그 어떤 스승들보다도 낫다는 것 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나이다(시 119:103)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 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시 1:2~3)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 을 바라나이다.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나이다. 내가 연기 중의 가죽 병같 [ 45/60 ] 이 되었으나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나이다(시119:81~83) 항상 주의 법을 사모한다는 다윗의 생각은 완전히 그의 철학이 되었다. 이에 모든 말씀의 주인이 되었다. 이 다윗은 여호와의 절대적인 법의 진가를 알고 살았던 사람이다. 세상 법 보다 하나님의 법을 중심했다. 어디 세상 법을 중심 할 수 있겠는가? 여호 와의 법은 영원한 법이고 인법과 천법, 무형과 유형의 법을 다 합해놓은 법 이기 때문에 이 법에서 벗어나게 되면 다 벗어나게 된다. 말씀의 진가를 모르고 살면 마치 뜻 없이 인생을 사는 사람들, 목적 없이 항해하는 사람들, 그리고 입맛 모르고 창자만 채우고 위만 채우기 위해서 밥을 먹는 사람들과 같다. 다윗이 살았던 삶을 보면 늘 긴장과 근심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왕위를 얻고 또 그것을 지키며 번영을 이룩하고 원수를 사랑했던 그 모든 것과 그리스도를 탄생시킨 의로운 혈통의 선조가 된 것은 하나님이 함 께 하심이었다. 하나님을 늘 순수한 마음과 정성으로 사랑했으며 그 사랑함 이 어떤 애인보다 아내보다 자식보다 더 컸다. 아무런 사심 없이 하나님과 자신의 민족을 사랑했던 다윗은 결국 모든 자들에게 사랑 받고 귀하게 여겨 지는 통일왕국의 위대한 왕으로 그를 영원히 남아지게 했으며 그의 삶의 진 솔한 기록과 찬양들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위로와 힘이 되 어주는 노래가 되어 오고 있다. 2)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어... 여러분들도 늘 성서 속에 묻혀서 성서의 기계를 거쳐서 나와야 사람이 된 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나는 여러 수십바퀴를 거쳐서 나왔 어요. 철사를 펴는 기계속에 들어가면 철사가 펴져서 나옵니다. 그러나 세상 에 사람 만드는 기계는 없다. 때리고 박고 치고 주먹질을 하는데 그런식은 반발심만 더 강해지고 자존심만 더 넓어지고 상대만 더 강하게 하는 것입니 [ 46/60 ] 다. 그런것이 아니고 오직 사람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만든다고 했습니다. 청년이 어떻게 행실이 바르게 되는가 하고서 다윗이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까 딴것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밖에 바르게 되는 것이 없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겪어 봤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사람 만들려고 많이 했지만 잘 안 되었을 것입니다. 나도 역시 나 자신에게 불만도 많았지 만 역시 내 잘못인 것을 깨달았지만 나를 어떻게? 해 치고박고 때려? 밥도 굶어 보기도 하고 여러가지 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사 람이 되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 47/60 ] 12. 마음을 정한 다윗 <삼상 16:14-16>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 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을 번뇌케 하온즉 원컨대 우리 주는 주의 앞에 모시는 신하에게 명하여 수금 잘 탈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 리신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1) 자기를 만들어야 한다 다윗도 말하기를 “적은 내 친구도, 친척도 아니고 바로 ‘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자기 자신이 곧 자기의 적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안에 있는 자기의 적을 잡아내고 자기를 만들면 기쁩니다. 자기를 만들 때 영만 만들거나 혹은 육만 만들지 말고 영과 육이 둘다 잘되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야 만족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창조하신 목적의 핵심을 보니까 영의 목적이나 육의 목적이나 결국은 똑같은 피 흘리는 일들이 일어나는데 이는 누누이 말하지만 서로 하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영과 육이 하나되 지 않아서 많이 괴로워했고 문제도 많았는데 결국 이렇게 터득하게 되었습 니다. 2) 마음을 정한 사람들 그래서 늘 물론 그냥 마음을 정할수 없죠. 다윗도 그냥 마음을 접을 수 없 고 뭐인가 가능성을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 향해서 살 수 있죠. 다윗은 늘 블레셋에 쫓기고, 이웃나라에 쫓기고, 그리고 주위에는 갈 그미스가 쫓아 내려오고, 애굽 역시 잡아갈려고 애타게 준비하고 있고, 이러 한 나라속에서 상당히 전쟁이나, 이러한 것을 볼 때 다윗은 하나님 내 마음 을 정했나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마음을 [ 48/60 ] 정한 사람이다. 오늘 나랑 한번 싸워보도록 애굽을 끌고 오게 유도 좀 해주 시죠. 그런 일에도 다윗은 한번 마음을 정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님과 함께 하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긍지력을 갖게 된 다윗도 여러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전쟁이나 다윗의 상황을 볼 때 물론 충분히 각오를 갖고 마 음을 정한 사람입니다. 정치적인 입장도 여러가지 문젯거리 많았지만, 역시 정치하는 사람 문제 많죠. 몇년동안 무섭게 사로잡고 가는데도 어려운데 다윗은 그런일 없었어 요. 그렇게 까지 무섭게 하지 않았는데 40년 동안 이것도 나를 통해서 정치 를 하면 문제도 없다. 모두 내 손아귀에서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접은 것 같 습니다. 이래서 늘 맘이 기뻤어요.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 시면 못할 것이 없다고 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시다. 믿습니까? 그래서 내가 그런 소리를 많이 안합니다. 너가 뭘 좀 하겠다, 너가 한번 해 봐라.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얼마나 긍정적인 것입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못한다고만 하고 집에서도 부모님들이 너가 뭘 아냐고 많이 그럽니다. 그런 데 뭘 아냐고 소리를 듣던 사람들은 다 법관 되고, 자기 형님들은 집에서 농사짓고 있더라고요. 다윗에게도 형들이 너가 뭘 안다고 그래? 양이나 쳐, 시간있으면 설겆이나 해, 청소나 해 이렇게 했는데 오히려 다윗은 왕이 되 고 그 형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성경기록에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오히려 못한다고 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래고 불가능하다고 하는 사람일지라도, 옆에 사람들의 말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마음을 정 하였기 때문에 뭐든지 잘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겁니다.마음을 정하고 살면 누가 안 된다고 해도 잘되게 되어 있습니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한 사람 입니다. 마음을 정했기 때문에...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얘기를 하지도 말라 고 그래요. 마음 못 정하고 왔다갔다 하면 봄바람에 날려 다니는 머리털 처 럼 이리갔다 저리갔다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이제 마음을 정하고 사는 사람 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가지가 아니라 모든 부분에 마찬가지입니다. 이렇 [ 49/60 ] 게 할까 저렇게 할까 하다보면 해 넘어 간다니까요. 송곳으로 호박을 찌르 듯이 확실하게 찌르고 가야됩니다. 믿습니까? [ 50/60 ] 13. 시인 다윗 <삼상 16:14-16>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 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을 번뇌케 하온즉 원컨대 우리 주는 주의 앞에 모시는 신하에게 명하여 수금 잘 탈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 리신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1) 시인 다윗 다윗은 시문학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시편을 다수 기록한 사람이다. 이 시편이 아름답고 감동적이라는 것은 성경을 한 번이라도 접해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시편을 통해 볼 때 그는 문학가였다. 그는 묵시문학을 기록했는 데 이스라엘 전 역사에 일어난 상황을 다 기록했다. 비유와 상징을 기록했 기 때문에 암시를 많이 남겨 놓았다. 그냥 봐서는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각 내용이 다 다르다. 그리고 예언도 많이 기록했다. 시편에는 제도적인 이야기 도 많이 나와 있고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 가도 나와 있다. 또 자기가 어떤 고역을 당했는 가도 나와 있다. 우리 나라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같은 것보다 더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글은 책상 앞에서 나온 글이 아니었다. 때로는 쫓기고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경험하면서 이루어 낸 삶의 결정체였다. 2) 시편 2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라(시23:1) 시편 23편은 다윗이 하나님께 영광 드리며 한 찬양이다. 다윗은 누가 보나 [ 51/60 ] 안보나 하나님을 찬미하고 찬양하고 기뻐하고 애인을 두고 좋아하듯이 인생 을 살았다. 그의 성격은 상당히 순수했다. 왜냐하면 그의 직업부터도 양을 기르는 직업이라 상당히 순수하고 양에 대한 주인의식이 대단히 강했다. 말 못하는 양들이기 때문에 주먹만한 사람일지라도 책임을 져야되는 입장을 느 끼고 주권자의 행실을 해서 사나운 동물들이나 짐승들이 한 마디라도 해치 면 죽자 사자 쫓아가서 때려죽이고 오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다윗이었다. 그런 성격이 점진적으로 커서 결국 하나님의 눈에 띄게 되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자가 되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표상인물이 되었다. 다윗 처럼 부족함이 없게 하는 한 가지 비법은 하나님을 참 목자로 삼는 것이다. 평생에 자기의 목자로 인도자로 인생의 리더로 삼고 자기 인생의 중심자로 삼아야 된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 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 시편 23편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다고 했다. 다윗이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은 것이 있는데 여호와께서는 원수의 목전에서 반드시 도와주더라는 것이었다. 원수가 해하려고 하는 그 순간 목전에서, 아 주 아슬아슬한 순간, 마지막 포기 상태, 마지막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마지막 쓰러질 입장에서, 마지막 실패 직전에 있을 때 모든 것이 결정적으 로 넘어가기 직전에 도와 주신다. 다윗이 목전에서 도움을 받은 것이 많은 데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이스라엘 민족이 골리앗에게 정권이 완전히 넘 어가기 직전에 있을 때 블레셋의 골리앗이 와서 괴롭히던 때가 바로 민족의 위기 목전이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서 도와주셨다. 그래서 자 기가 작든지 크든지 하나님께서 인정만 하면 끝난다. 지금도 변함이 없이 그렇게 역 사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런데 원수의 목전에서 도움을 받을 자들 이 자포자기를 잘한다. 하나님 앞에는 포기하고 불평하면 안 된다. 그럴 때 일수록 하나님께 감사, 감격하면서 매달리는 것이다. [ 52/60 ]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갈지라도 해받을 것이 두렵지 않은 것은 주께서 나 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다윗도 종입니다. 그 시대의 종 대장입니다. 종인데도 하나님이 함께 했습니 다. 왜 주인이 종 가는데 같이 따라갔을까요? 구약시대는 종시대이기 때문 에 그 시대의 중심자도 종입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했다” 그것은 하나님 이 그를 따라 다녔다는 것입니다. 왜 주께서 종을 따라 갔을까요? 내가 이 야기 할까요? 맞았나 틀렸나 답안지를 발표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일을 맡겼기 때문에 따라다녀야 됩니다! 종한테 일을 맡겨놓고 일 잘하는가 보고 지적도 하려고 밭에 가봤다는 말입니다. 일을 맡겼기 때문에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주인이 종에게 일을 맡겼으니까 따라다녀야지요. 돈보 따리 맡긴 것과 똑같은데. 그렇지요? 그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쉽고도 어렵 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모르더라구요. 왜 따라다녔다고 했습 니까? (“하나님의 일을 맡겼기 때문에”) 이 정도는 알아야 되는데 여기저기 서 간접적인 이야기를 하니까 어리다는 것입니다. 지식이 어리지 않습니까? 내가 적게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더군다나 신약 때는 아들에게 일을 맡겼기 때문에 분명히 아버지가 아들을 아끼고 따라다닙니다. 예수님도 신약 때에 다윗같은 입장에서 종교 통일왕국의 왕을 살아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 들인 주님에게 일을 맡겨놓고 그를 따라다녔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는 애인시대로서 하나님이 애인에게 일 을 맡겼기 때문에 일 때문에 따라다니는 것은 근본이지만 또 하나는 사랑하 기 때문에 따라다닙니다. 애인을 사랑하기에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일과 사 랑 때문에 따라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따라오고도 남지요.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꼭 따 라다니십니다. 사랑할수록 더 따라다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중심권을 품어야 [ 53/60 ] 됩니다. 아들의 마음을 품은 자는 아버지가 함께 하시고 아들의 마음을 품 지 않은 자는 아버지가 함께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옛날에는 왕도 기름으로 식(式)을 거행했지 않습니까? 요즘은 어떤 기름을 붓는고 하니, 바로 말씀의 기름을 붓습니다. 잔이 넘친다는 표현을 하는데 그것은 “말씀으로 부으니 마음의 충만함이 솟나이다.” 이렇게 할 수 있습니 다. 또 영적으로 말하면 성령의 기름을 붓고 영적, 신(神)의 기름을 붓는다 는 말입니다. 신의 충만함의 기름으로 우리 머리에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부어주기만을 원하지 말고 기본적인 것은 본인이 일으켜야 됩니다. 본인의 책임분담은 기본적인 것입니다. 불이 위에서 내려온다면 나 무는 우리가 준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불을 일으키게 준비를 하고 작업을 해야 불이 일어납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다윗을 중심했을 때 그러 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막대기. 양을 칠 때는 막대기와 지팡이로 양을 몰지요. “지팡이는 능력, 막 대기는 말씀” 이렇게 말할 수 있고 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말씀 으로 인도한다” “신(神)의 능력으로 인도한다” “신과 말씀으로 인도한다” 는 것입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고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 것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잔도 넘치고 여호와의 성전에 영 원히 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전에 영원 히 거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치 않고 보낸자를 중심치 않은 사람들은 섭리를 따라오다가 섭리의 전(殿)에 영원히 거하지 못하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주 (主)의 전에 영원히 거할 수가 없습니다. “에덴에서 쫓아내어 근본된 토지를 [ 54/60 ] 갈게 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선연히 느껴봤지요? 3) 감사와 찬양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고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 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100:4) 위의 글은 경험을 통해서 한 얘기이다. 다윗은 40년 동안 궁궐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을 접했다. 하지만 감사하고 거짓없이 노래하며 춤을 추는 자들을 궁에 들어오게 했다. 그것을 반영해서 천상의 세계도 똑같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대했던 것이다. 다윗은 (시편100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윗은 궁궐에서 있었기 때문에 경험상 체험상 간증삼아 이야기한 것이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 어가고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 지어다!” 다윗은 이 경험이 컸습니다. 40년 동안 궁궐에 있으면서 많은 사 람을 접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고 거짓없이 노래하며 춤을 추는 자들을 궁 에 들어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반영을 시켜서 천상세계도 그와 똑같 다고 생각하면서 다윗은 하나님을 대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다 윗의 시를 보면 “감사”소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셀라!”하고 붓점을 주어가면서, “여호와를 찬송하고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셀라”라는 말은 ‘힘차게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그저 힘차게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노래할 때 아주 신바람이 나서 신이 들려 노래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냥 입만 “뻘쭘 뻘쭘”하고 벌려서는 안됩니다. 누가 그 목소리를 들을까봐 무서워서 입만 딱딱 벌리는 자가 있는데 독창을 시키면 표가 난다는 것입니다. 정말 로 신이 들려서 노래하고 신이 들려 춤을 추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는 모두 어립니다! “노래함으로 궁궐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이것을 다윗은 [ 55/60 ] 하늘 앞에 당연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만을 품고 입에다 밤을 물 고 오는 사람이 있으면 문지기가, “웬일이요?”하고 막는다는 것입니다. “나, 볼 일이 있어!” 해도, “볼일? 혹시 화장실 볼 일이 아니여? 여기가 어디라 고 그런 모양으로 들어올려고 그러느냐? 여기가 술집인 줄 알어? 너희 마누 라한테 성질을 내고 난 다음에 들어가는 집인줄 아느냐? 여기는 궁궐이여, 궁궐! 길을 잘 못 들었구먼.”하고 안 들여보낸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갈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것을 평소 신앙으로 삼고 하늘 나라에 반영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의 궁궐도 춤추고 노래하는 궁궐이 돼서 비파와 수금소리가 그치 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신앙은 감사로부터 시작한다”고 선생님이 분명코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감사하지 않습니까? 어렸을 때는 입버 릇처럼 엄마한테 감사했을 것입니다. “엄마 감사합니다!” “뭐이 감사해?” “저요? 점심 도시락을 싸 줘서 잘 먹고 왔습니다.” 어렸을 때는 이런 감사 를 했는데 이제는 성장이 되어서, “어머니, 만세수를 하옵소서! 어머니 건강 하셔야 됩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제가 득거할 때까지 잘 살아 계셔야 되 는데...” (여러분만 할 때 그렇게 할 때입니다.) “뭐이 그렇게 감사하냐?” “책에다 기록을 해도 끝이 없습니다. 표현을 다 못하겠네요. 정말 고맙고 감 사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 감사!! 어렸을 때. “엄마! 감사합니다!”하는 것과는 천지차이 입니다. 가색이 없는 감사!! 부모는 100% 해 주었기 때문 에 100% 감사를 받아도 아무런 꺼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100% 해주었기 때문에 100% 인간들이 감사를 해도 하나님에게는 부당치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감사는 무조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상세계에 인간으로서는 만들 수 없는 태양을 주셨습니다! 달과 해를 주셨습니다. 지상 세계가 몽땅해도 별 하나를 못 만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완성 품을 주신것도 있지만, 비완성품을 주셔서 인간으로 하여금 개발하여 나름 대로 쓰게 하신 것도 있습니다.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몽땅 주시면 서, “한번 살아 봐라!” 하셨으니 감사할 일이 아닙니까?! 누가 커피한잔을 [ 56/60 ] 사주면 미치게 고맙다고 하지요? 특히 남자에게 여자가 사주면! “아, 정말 고맙습니다. 내가 다음에 점심을 내겠습니다!”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 감사 를 하나님께 한번 해 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감사의 도를 터득한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심었습니다. 4)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찬양 다윗은 시편100장에서 150장에 이르기까지 감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 을 뿐만 아니라 찬양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노래 할 수 있는 처지가 못되었습니다. 그는 초상집을 당한 것과 같은 입장에 놓여있었고, 인생의 곤고를 당해 고민과 걱정과 염려속에 있었습니다. “아 나는 인생이 왜 이러한가? 신앙 길을 꼭 이렇게 가야 하는가? 이렇게 고달 픈 정권을 꼭 인계 받아야 하는가...?할 정도로 고달팠다는 것입니다. 그 장인(丈人)되는 사울이 자기를 죽일려고 너무나도 쫓아다녔기 때문에 노래가 나오다가도 쑥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다른 입에서는 노래가 나올 수 있었는지 몰라도 다윗의 입에서는 노래가 나올 수 없는 처지였습니 다. 그러나 비파와 수금으로써 열심히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가 나올 수 있는 여건이 못되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여건이 못되었는데도 하나님 을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초상집에서 찬양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뭏든 다윗은 자기의 마음을 억제하면서 찬양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찬양하고 감사해야 되지 않겠느냐?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하나님께는 노래하고 영광을 돌려야 되지 않겠느냐’ 이런 신앙의 철 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잘 갈수 있었다는 것입니 다. 믿습니까? [ 57/60 ] ※ 부록 ■ 점검하기(분석과 점검) 1.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신 이유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2. 사울은 하나님의 신이 떠나게 되면서 어떻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신이 떠 난 이유가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 알아봅시다. 3.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게 된 마음자세는 어떠했는지 이야기해봅시다. 4. 다윗은 사울에게 핍박과 괴로움을 받으면서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이것 을 통해서 깨달은 점을 서로 나누어 봅시다. 5.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죽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느낀 점을 이 야기해봅시다. 6. 다윗은 많은 성서를 기록했고 여러 가지 사건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다윗 강의를 통해서 다윗의 많은 특징 가운데 가장 감동을 받은 부분은 어떤 부 분인지 서로 나누어 봅시다. [ 58/60 ] ■ 생각하기 오직 하나님입니다. 칼도 활도 어떤 것도 의지할 것이 못되고 오직 하나님 을 의지해야 되겠습니다. 저도 전쟁터에서 어느 때는 총을 의지하기도 했습 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총은 밀집 부대를 없애는 총이라 가까운 데는 못 쓰고 멀리만 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50m밖의 적은 쏴도 50m안에 나 타나는 적은 뻔히 보고도 쏠 수가 없었습니다. 쏘면 오히려 자기까지 당한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작은 총 하나를 더 갖기 원했습니다. 앞에 나타나는 적을 쏠려면 작은 총이 필요하니까요. 결국 두 종의 총을 가지고 다녔는데 그러나 총이 나를 살려 주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두 종의 총을 가지고 다니니까 무겁기만 했습니다. 아무튼 어느 날 적이 바로 코앞에 나타났는데 50m밖에 쏘는 총을 가지고 급한 사망을 면했습니다. 그 때는 나에게 작은 총이 없었을 때인데 순간적 으로 가지고 있던 큰 총을 들이댔습니다. 구멍이 자기 얼굴 보다 큰 놈을 들이대니까 그 적이 질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로 나를 지켜주었던 것입니다. ‘작은 총구에서 나오는 총탄을 맞아도 죽는데 저렇게 큰 구멍에서 나오는 총탄을 맞으면 빵구가 나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습니다. 총이 나를 살려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순간의 지혜와 모사로 살았다 는 것입니다. 사실상 50m밖에만 쏘는 총이라는 것을 발각나면 큰일 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해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혼난 일이 있었습니다. 군사 파악을 했기 때문이죠. 기도 를 먼저 안하고 ‘요번 작전에 나갈 수 있는 인원이 몇 명이나 되나’ 그것을 먼저 파악했습니다. 그것을 하늘이 보았습니다. 다윗이 나중에서야 자책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갓을 보내 세가지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 습니다. (삼하 24:1-17) 그래서 삼일동안 온역을 받았습니다. 삼일 동안 7만이나 되는 사람이 죽었 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는 머리를 잘 써야 됩니다. 한번 잘못 쓰면 큰 [ 59/60 ] 일납니다. 저 같은 입장은 그런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을 1번지 에다 두고 갑니다. 철통같은 사고를 가지고, “하나님이 1번지. 1번지는 하나 님이다.” 하며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사람의 무리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마지 막에 가 보면 항상 나 혼자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 찾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신앙을 가지십시오. 어차피 마지막에 가서는 하 나님을 찾게 되는데 처음부터 “하나님”으로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라는 소리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을 1번지로 하 고 나가는 사람은 수도생활을 10년 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나도 처음에는 습관이 안되어 생활가운데 당하기도 많이 당하고 혼나기도 많이 혼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뜨거운 맛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지요. 오직 하나님! 오직 하나님! 믿습니다. [ 60/60 ] ■ 적용하기(실천 및 적용) 1. 생각하기의 주인공은 총이나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을 의지해서 생명의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해서 도움을 받 은 경험을 서로 간증해봅시다. 2. 다윗처럼 사람이나 환경을 의지하다가 하나님께 책망 받은 일이 있습니 까? 어떠한 상황이었는지 서로 나누어봅시다. 3. 다윗은 불평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부 르고 찾았습니다.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합시다. 4. 다윗은 시편을 통해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의 제단을 매일 빠뜨리지 않는지 점검해보고 부족하다면 찬양의 제단을 다시 쌓읍시다. 5. 다윗은 할례받지 못한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담대 하게 맞서서 승리하였습니다. 주변에서 하나님과 주님을 조롱하고 비웃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 해보고 실천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