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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학교2025.06.01 (일)

성경중심인물 12 사도바울

선포일
2025.06.01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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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 ] 성경 중심인물 사도 바울 (복음의 대승자(大勝者), 사도 바울) [ 2/60 ] 1. 사도 바울의 생애······················································································································4 1) 사도 중의 사도······················································································································4 2. 사도 바울의 신앙과 사상········································································································9 1) 믿음을 지킨 사도 바울········································································································9 2) 그리스도의 성품을 좇아····································································································13 2-1) 희망과 기쁨의 얼굴····································································································14 3) 선한 싸움의 승리를 위하여······························································································16 4) 뜻을 헤아리는 신앙············································································································17 5) 매일 죽고 사는 삶··············································································································18 3. 사도 바울의 복음에 관한 정신····························································································19 1)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다··································································19 2) 복음을 위하여는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이 아니다.············································20 3) 모든 영혼을 위한 복음이다.····························································································21 4. 사도 바울의 업적(전도 여행)······························································································22 1) 교회를 세우다.····················································································································22 2) 복음의 표상을 세우다········································································································23 3) 사도 바울의 전도 ··············································································································23 3-1) 유대인들을 전도··········································································································23 3-2) 빌립보에서의 전도- 옥에서의 기적········································································24 3-3) 고린도에서의 전도 - 잠잠하지 말라······································································28 3-4) 에베소의 전도 - 아데미와의 싸움··········································································29 3-5) 아시아 일대를 주께로································································································31 3-6) 복음의 사명이 복음의 능력을 ················································································32 3-7) 말씀의 실력을··············································································································32 3-8) 의무와 권리를 행사함으로························································································33 4) 바울의 교회와 생명관리····································································································34 5) 사도 바울의 힘의 근원, 하늘과의 하나됨····································································35 [ 3/60 ] 5. 사도 바울의 메시지················································································································36 1) 바울이 전한 복음················································································································36 1-1)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36 1-2)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있을때 그리스도의 사람이 됩니다.························37 1-3)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38 1-4) 관원이 한 명이라도 알았더라면 뜻이 달라졌을 것입니다.······························40 1-5) 죽든지 살던지 오직 주를 위하리라········································································41 1-6) 모든 권세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42 1-7)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42 1-8)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를 하십시오······························································43 1-9) 이 복음의 앞에 나의 생명을 다하리라··································································43 1-10) 생명의 면류관이 우리에게 예비되어 있습니다.················································43 1-11) 가치로운 삶이란 영혼의 영원한 것을 위한 삶입니다.····································43 1-12) 주인이 쓰기에 합당한 그릇을 만드십시오··························································44 1-13) 몸의 구속을 기다리며 ...······················································································45 6. 사도 바울 생애의 주제들······································································································46 1) 사도 바울의 생애 4주제····································································································46 7. 사도 바울과의 만남················································································································50 1) 사도 바울을 만나며....····································································································50 2) 복음에 대승한 자················································································································53 3) 확실한 신앙을 통한 처세에 능한 자··············································································53 4) 환경을 요리하는 자············································································································54 5) 복음을 전하기를 두려워 않은 자····················································································55 ※ 부록 ··········································································································································58 ■ 점검하기(분석과 점검)········································································································58 ■ 생각하기··································································································································59 ■ 적용하기(실천 및 적용)······································································································60 [ 4/60 ] 1. 사도 바울의 생애 <행 9:1~7>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 려 함이라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 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 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 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1) 사도 중의 사도 사도 바울은 정말 사도 중의 사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되어 뒤집어지기까지의 내용이 사도행전 22장 1절부터 10 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 저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이어 가로되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 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 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형벌 받게 하려고 가 더니,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 이 나를 둘러 비취고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와 함께 있 [ 5/60 ] 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를 듣지 못하더라.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 어가라 정한 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다메섹으로 사도 바울이 들어가서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된 눈을 뜨고 그때부터 한꺼번에 뒤집어지게 된 것입니다. 다른 사도들은 예수님이 육적으로 전도했지만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죽어서 영적으로 전도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이 순식간에 다메섹에서 변화되어,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 라."(사도행전 9:5)라는 말을 듣고 뒤집어진 것처럼 과거에 미신을 섬기는 하 나의 이방 선지자였지만 이제 새로운 하나님의 선지자 입장에서 명령을 받 고 가게 됩니다. ‘바울’하면 개종 전의 바울과 개종 후의 바울을 생각할 것입니다. 나사렛 성 과 그 주변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예수님과는 달리 비교적 큰 성(다소) 에서 자랐으며 로마제국의 대도시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바울은 성장함 에 따라 인간에 대한 예리한 감각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가 성장한 다소 성은 그리이스 문명의 전형적인 도시로서 여러 시대의 종교들이 꽃을 피웠 던 문화의 현장으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같이 여러 환경, 여러 사 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적응하는 방법은 배웠을 망정 그는 결코 유대인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고전9:22) 즉 자기의 유대 혈통을 떳떳하게 여기고 항상 자랑으로 삼았습니다. (고후11:16-22, 행22:3) 스테반 사건이 있을 당시 바울은 젊은 청년이었으며 다른 유대 청년들과 같 이 그도 30세의 랍비로서 세상에 나섰으며 지도자적인 위치에 서 있었습니 다.(행 26:10) 아무튼 그는 자기 자세가 진리이며 자기 행위가 정의라고 생각되면 어느 곳 에도 의혹됨이 없이 신념대로 실천해 나가는 사람이었고 유대교에서 기독교 로 개종한 후에도 그의 열정적인 성격은 변함없이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주관이 틀릴 뿐 동일한 성격으로 하늘 뜻을 섬겼습니다. 당시 헬라 철학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은 바울의 문체는 운율적으로 정교하 고 예술적인 산문이었고 철인을 능가하는 그의 날카로운 사고력은 주님을 [ 6/60 ] 변증하고도 남음이 있었고 깊은 그의 사리판단력은 시대를 살릴만한 능력으 로 결국 영웅 중의 영웅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또한 로마의 시민권을 소 지한 사람이었음에도 민족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극진하여 먼저는 유대인임 을 잊지 않았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일이라면 목숨을 내걸고 사람을 죽일 정도로 신 앙이 상당히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신앙 가운데 예수님으로 인해 회심 하고 난 후에도 그런 강한 마음을 갖고서 섭리권을 철통같이 밀고 나갔습니 다. 그는 신교적인 입장보다 구교인을 생각하는 입장이 더 컸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사람들을 끄집어 내느라고 애를 쓰고 자기의 사명을 스스로 죽 이면서 "나는 사도도 아니고 하나의 만삭되지 못한 자와 똑같은 자로, 내가 핍박했던 것은 원래 도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이 모든 인간에게 다 똑같이 인생을 한 번 살게 했는데 종교들끼리 핍박하는 것은 모순되고 잘못된 일이므로 율법도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내가 회 심했다"며 유대 종교와 신교 사이에 서서 복음을 전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신교에 가면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유대 종교로 가도 달갑지 않게 바울을 생각했지만 그런 어려운 입장에서 서서히 복음을 피게 했던 지혜롭고 슬기 로운 사도였습니다. 그가 로마에 들어가 엄청난 복음을 전한 것은 기독교사 에 둘도 없는 유일한 것일 것입니다. 그는 로마의 시민권도 있었고 정치적 인 안목도 있고 사회적인 면에도 상당히 밝았습니다. 베드로처럼 움직이는 신앙보다는 바울은 여러가지를 종합적으로 한 사람이 었고, 철학적인 사람이었고, 종교적인 경험도 많은 데다가 주님의 사명이 다 른 제자를 통하지 않고 직접 들어가 자기 눈이 띄여진 때부터 뒤집어진 것 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사도 바울이 덩치가 크고 체격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 다고 교회사를 통해 참고 서적을 통해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체 구적으로 그렇게 위대하고 훌륭한 거구(巨軀)의 사람이 아니라 작고, 남자로 서 키가 170Cm도 못 되는 작은 키에 다리도 돌아가서 볼품없는 인물이었 [ 7/60 ] 답니다. 그리고, 눈에는 가시와 같은 안질(眼疾)이 있어서 신앙적 가시, 영적 가시, 육적 가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별 볼품없고 별볼일 없는 사 람 같았지만 마치 가뭄 땅에 오아시스와 같은 말씀이 그의 입에서 흐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많은 제자를 양성치 않고 바나바 같이 앞장서서 뛰고 달리는 사람들 불과 몇 명만 데리고 대담하게 많은 일을 했습니다. 데오빌로 각하 같은 사람에게는 감히 복음을 전할 수가 없고 어떤 공문 갖고서도 통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복음의 모사를 써서 들어가 전했습니다. 즉 조건을 줌으로 인해서 조건의 댓가를 받기 위해 끌려가서 복음을 전해 정치인들까지 전도 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바울 선생의 이름이 사울이었지만 나중에는 바울이라고 하게 되 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 속에는 못 들어가면서 사도에 붙어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는 아닌데 사도라 는 소리는 들어야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12제자에는 속에 속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큰 역사를 했습니다. 예수님의 나머지 제자들이 죽었을 때 계속 말 을 타고 다니고 걸어다니면서 순회를 하며 전도여행을 하고 돌아다니면서 아시아에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와 같은 7개의 중심 교회를 시범적으로 먼저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계속 밀어붙여 신약역사의 패권을 쥐게 되고, 조직을 만들어서 증인이 되었 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과거사에 대해, 복음에 대해서 철통같이 깨달았습니다. 고 린도 전서 2장 8절 같이 "이 시대의 관원과 종교인들이 한 명만 알았어도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를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것을 깨닫고부터 바울은 정치적인 복음을 넣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의 잘 못으로 인하여 정치도 오인을 하고 예수님을 죽이는데 동조했지만 이들은 아직 그런 것을 이해를 못했기 때문에 이방인 로마에 복음을 집어넣는 이방 복음의 역사를 피웠던 것입니다. 로마가 뒤집어지는 역사가 그 후에 일어나 서 로마가 신교(가톨릭)를 인정을 하고 결국에는 신교의 교황청이 로마에 설 [ 8/60 ] 립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때 복음을 안 넣었다면 정말 큰일날 뻔 했습니다. 처음에는 복음의 아주 미세하고 바울 자신이 몽둥이를 맞으러 가면서까지 복음을 전하던 것이 로마 제국을 휩쓰는 엄청난 복음이 될 줄은 바울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란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 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감옥에 집어쳐 넣어서까지 복음의 역사를 펴는 경우 처럼 복음은 어차피 꼭 승리해야 되므로 복음의 역사를 여러가지로 다양하 게 펼쳐 나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국가가 편하고 종교의 시국이 편안하 면 괜찮은데 종교의 시국이 어수선하니까 그 복음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 서 그렇게 쓰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에 복음을 전하고, 로마를 중심으로 소아 시아를 6-7바퀴 돌면서 전했던 복음의 씨가 통통하게 열매를 맺어 결실하게 되어서 오늘날 교회사에 크게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결국 주님의 그는 하늘의 신약말씀에 근본을 깨닫고 영적, 육적의 터전을 잡고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열 세권 책을 썼지만 바울 선생은 혼자 14권의 책을 썼습니다. 바울 선생이 제자들과 쓴 신약성경이 14권, 예수님이 제자들 과 같이 쓴 것이 13권입니다. 그렇게 많은 기록도 남겨놓고 엄청난 일을 해 놓으셨습니다. 영적인 사도이며, 모든 이치와 법칙을 더욱 꿰뚫어 날카롭게 찍어서 유대인들을 부끄럽게 만들어 놓았으며, 그 시대의 역사를 다시 종결 지며 일으켜놔서 이십오륙년 동안 거의 죽을 때까지 사도의 역할을 잘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신교가 다시 살아나며 부활된 역사가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명한 사도 바울. 그를 통해서 하나님 역사하신 말씀 을 봅니다. 성경에서는 선생이라는 말을 두 사람에게 붙였는데, 하나는 예수님이고 하 나는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의 정신과 사상이 여러분들에게 들어가서 실존적인 삶의 능력과 시대의 사명자로서 능력있는 자가 되어주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 9/60 ] 2. 사도 바울의 신앙과 사상 <딤후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 켰으니- 1) 믿음을 지킨 사도 바울 이 바울이라는 사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같이 믿음을 지키기가 극적으로 어려웠던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어려웠습니다.! 왜 그러한고 하니, 신앙생 활을 잘 했기 때문에 믿음 지키기가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못한 사람들은 믿음 지키기가 힘들지 않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받는 어려움과 역경이 덜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일반적 믿음이 아니라 -평범한 믿음을 지킨 것이 아 니라- 절대적 믿음으로 지키기 어려운 믿음이었습니다. 그 믿음은 모든 사 람이 환영하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반대하는 믿음이요, 모 든 사람이 막는 믿음이요, 모든 사람이 짓밟아 버리는 그런 믿음이었습니다. 바울은 과거 구약시대의 믿음을 지킨 것이 아니라 구 시대를 집어던져 버리 고, 그 시대에 새로 나타난 하나님의 가냘픈 역사에 들어와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그 믿음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 치 치열한 전쟁터에서 수십번씩 죽을 고비를 넘기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 아지는 것 같이나 어려웠습니다. 바울은 앞서 말한대로 잘 믿었기 때문에 믿음 지키기가 어려웠다는 것입니 다.! 바울은 로마 사람으로서 호화찬란한 민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경제의 나라, 그리고 문화권의 세계, 철 학과 정치성의 수준 높은 로마나라에서 태어났던 것입니다. 하기야 고대광 실(高臺廣室) 높은 집에 산다고 인생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 가 알고 있는 것같이, 바울이 고대광실 놓은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인 생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로마를 등지고서 인생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서 로마가 쥐고 흔드는 로마의 속국인 이스라엘 나라로 갔습니다. [ 10/60 ] 이스라엘 나라는 로마 사람들이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나라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정말로 하나님이 있느냐? 믿는데 왜 이 스라엘 민족이 저 모양 저 꼴들이냐?” 이렇게 로마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생각했습니다. 믿어서 잘돼야 사람들이 “아!” 하면서 위대하게 보는데, 잘되지 않으면 무조 건 별것도 아닌 것으로 봅니다. 그런 판국인데도 불구하고 결국 이스라엘 나라로 와서 신앙생활을 하게 된 사도 바울! 바울은 모든 사람이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키도 작고 별 모양도 맵시도 없었지만, 그의 행동 은 모든 사람의 눈에 띄게 되어 존경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것은 적극적인 신앙의 사고, 열심적인 신앙의 사고, 그리고 전심전력을 다하 는 신앙의 사고를 가지고 끝내주는 행동력(行動力)으로 유대 종교에 충성(忠 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든지 바울을 쳐다보면 존경하 고 부러워하면서 그 바울을 치하하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런 중에 바울이 신교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유대 종교인들이 이단시하는 신교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바울도 처음에는 신교를 발견하고서 유대종교의 입장에 단단히 서 있었습니다. “유대종교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 유대 종교는 4000년 동안 길이길이 믿었던 조상들의 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겐 기존성이 있 다 이들이 잘못되었을 리가 있느냐? 이제 나타난 저들이 잘못되었지! 그러 니 저들의 처세는 있을 수 없는 입장이다!” 하면서 바울은 대강 파악을 하 고 “잘못되었다”고 신교를 평가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에 가서는 극적으 로 신교를 말렸습니다. 죽이고, 밟고 뭉개고 하면서 첨단의 인물이 되었습니 다. 바울은 그 정도로 끝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바울 이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고 표현할 수밖에 없도록 눈에 띄는 사람이 되 었습니다. “참으로 로마인다운 사람이다.! 대국(大國)에서 산 사람은 다르구 나!” 이런 시인을 할 수밖에 없었던 행실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는 그렇게 하면서도 뭐인가 인생 문제를 못 끌었습니다. 그렇 지만 근본 문제는 못 풀었습니다. 그는 곤고한 가운데서도 더욱 신교를 박 멸시 했습니다. ‘아, 내가 믿는 율법을 중심한 이 종교가 갈면 갈수록 이상 [ 11/60 ] 적인 세계가 일어나겠지! 때와 시기를 따라서 하나님께서 보다 이상적인 세 계로 이끌어 주시겠지...!’ 이렇게 생가 하면서 갔는데 그러나 결국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새로운 종교로 전환할 때 얻어맞고 그리고 깨우침을 받고 확인을 받은 후 그때부터 신교에 들어와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유대 종교에 있을 때 극적으로 믿지 않았더라면 신교에 와서도 반대가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극적으로 믿고 왔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바울에 대 한 반대도 대단했습니다. “야 이 녀석아? 그 때는 니가 잘못 봤었단 말이 냐? 니가 옳다고 하면서 그들을 쫓아다니지 않았느냐? 그런데 어떻게 그들 에게 갔단 말이냐? 니가 핍박하던 자들 속에 들어갔단 말이냐 하고서 과거 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바울을 모두 비난하고, 꾸짖고 칼도마 위에 올려놓은 고기처럼 마음대로 난도질을 했습니다. 바울이가 별 두드러짐 없이 신앙생활을 하다 왔으면 누가 그렇게까지 할 사 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너무 신앙생활을 잘했기 때문에 신앙 을 지키기가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신교에 와서도 주님을 그리스 도로 보고 믿고 나가는 신교인들에게도 또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왜냐? 신교인들에게는 바울이 믿을 수 없는 메이커(maker)였습니다. “저 사람이 그 사람이지?! 우리를 반대하고 핍박하던 사람. 저는 믿을 수 없다!” 했습니 다. 유대 종교인들에게는 위험인물이요, 안에-신교에-들어오니까 믿을 수 없 다!“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다! 무슨 짓을 할 줄 아냐?“ 이런 환경에서 바 울이 신앙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으로서 신앙을 지킨 것이 아 니라, 로마인으로서 자기 민족이 주물주물하는 속국 민족에 와서 정신 문제 를 해결하기 위해 국적에 대해서 별로 크게 보지를 않았습니다. 체면도 위 신도 다 깎아 버렸습니다. 바울이 만약에 종교 세계에 들어오지 않고 일반 적으로 사업하러 이스라엘 나라에 왔었다면 아마 그 국적을 단단히 써 먹었 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민족이 주물주물하는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 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울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누가 고통을 주었는고 하니 유대민족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 서 바울이 <빌4:10-13>에 있는 말씀같이, “ 나는 빈천에 처할 줄도 부에 처 [ 12/60 ] 할 줄도, 가나에 처할 줄도, 그리고 풍부에 처할 줄도, 곤경에 처할 줄도 안 다!”고 했습니다. 그 말(言)한 것을 통해서 우리가 성서를 깨달을진대, 바울 이 곤고의 학교를 나왔겠습니까? 바울이 일체의 모든 처세 비결을 배웠다고 했지요?! (빌4:12) 바울이 배고픔의 학교를 나온 적이 없습니다. 무슨 학교 가 배고프게 하는 학교가 있겠습니까? 지금 그런 학교가 있습니까? 지금 없 다면 옛날도 없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학교에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배웠답 니다...? 그것은 뭔고하고, 생활사 가운데서 그런 처지를 걸어왔고 그런 환 경을 겪어 왔기 때문에 그 가운데서 - 어려움과 환란과 곤란과 낙심과 낙담 가운데서- 바울은 신앙의 절개를 지켜왔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켜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늘은 바울의 신앙을 들어서 진리 시대의 새로운 말씀을 들 은 자에게 바울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누가? 주님께서! 그 길을 걸어가신 주 님이기 때문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지키기 어려운 신앙 이었습니다. 어려운 믿음을 지켜왔습니다. 베드로 같은 제자들은 바울의 입 장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존의 신앙을 하지 않고 왔기 때문에 바울과는 차이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기존신앙, 유대 종교의 신앙을 하고 왔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싸주고, 이해해 주고, 감싸주고, 수술하고 하 는 이런 것이 있었는데 신교인들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구교를 겪지 않고 왔던 베드로 같은 사람은 구교에 대한 것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극과 극이 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교를 겪고 왔 기 때문에 구교에 대한 그 입장과 실정을 잘 이해하면서 나가는 방향이었으 므로 기존의 신교와 너무너무 뭐인가 잘 안 맞았습니다. 결국 못내는 외경 에 나온 거와 같이 “서로 의견이 원만치 못했다!”는 표현까지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바울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항상 구교에서 들려오는 악평 소리였고, 신교에 서 들려오는 두성 두성하는 소리였습니다. 좌절할 수밖에 없고, 쓰러질 수밖 에 없고, 몸 둘 바가 없고, 의지할 곳이 없는 바울은 하늘밖에 의지할 곳이 [ 13/60 ]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바울이 믿음을 지켜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 대한 영웅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때는 매를 맞았습니다. 그것도 로마 사람에 게 맞은 것도 아니고 로마 사람에게 관리를 받는 유대 종교인들한테 맞았습 니다. 또한 과거에 자기를 존경해 주고, 위해주고, 섬겨 주던 그런 자기 제 자같은 사람들이 와서 바울에게 매질을 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회초리를 가 지고 와서 “장 다지를 걷으시오!” 하면서 신사적으로 딱 딱 때린 것도 아니 고 그저 경상도 사람이 유월달에 보리타작을 하듯이 도리깨 하듯이 그들이 후드려 때렸습니다. 40번씩 때렸는데 그 중에서 한 번 감해 주었습니다. 하 도 감해 달라고 하니까 한 대 감해 주었습니다. 그놈까지 맞았으면 죽었을 지 모를 정도로 그렇게 매질을 당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울의 성 격이라는 것은 세계에서 랭킹(ranking)의 사람입니다! 하루 아침에 수십명 씩 죽이기도 껄껄하는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하 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상 또 그렇게 했습니다. 구교에 있을 때 신교인들을 쫓아다니고 죽이고 그랬습니다. 그의 그 혈기! 그 성격! 그것 을 아무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거기에다 과거에는 존경받던 사람이었는데, 신교에 왔을 때 존경은 고사하고 매질을 해도 참았 다는 것입니다. 그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왜? 역사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적자를 내면서 역사(役事)하는 사람을 보았습니까?? 흑자가 있으니까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성품을 좇아 신교에서 최대의 화살을 많이 맞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최대의 비난도 많이 받고, 또 적의 최대의 목표지가 바울이었습니다. 악인들의 악평할 대상은 바 울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총 집중 되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욕하 던 것이 다 가고, 안드레에게 욕하던 것도 다 가고, 삭개오한테 욕하던 것이 다 가고, 구교인들이 신교인들에게 욕하는 모든 것이 바울에게 총 집중되었 습니다. 시골에 가면 서낭나무 밑에다 돌 하나씩을 집어던지고 지나가지요? [ 14/60 ] 그와같이 바울이 돌 집어던지는 무덤이 되었습니다. 집에서 가정 싸움을 하 고 화나면 바울한테 몰아 부쳤습니다 “저 놈 때문에 가정 싸움을 했다!” 고. 형제 싸움을 하고 와서도, “바울 저 놈 때문에 형제 싸움을 했다!”고 할 그 정도까지 바울을 표적 삼았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바울이 신앙생활을 해 왔다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벌려왔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영웅이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결국 그 영향이 우리에게 미쳤다는 것입니다. 그 참고 견딘 영향이 우리에게까지 미쳤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되겠지요? 하나 님을 안 믿을려면 몰라도 믿을려면 그렇게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인간 기질 바탕, 성격을 못 고치면 성공 못합니다! 성격을 고쳐야 됩니다. 성격을 고쳐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의 삐쭉삐죽한 성격도 지금은 다 고쳤습니다! 원래 어렸을 때에 그렇 게 삐쪽빼쪽하는 사람은 커서도 삐쪽빼쪽 잘합니다. 왜? 세 살때 버릇이 여 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그런 것이 있지요? 내가 강조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해봐서 잘 알 것입니다. 그런데 삐족 빼쪽한 그것을 고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부딛쳐서 홀연히 변화가 왔다는 것입니다. 2-1) 희망과 기쁨의 얼굴 또 하나 바울의 좋은 점이 있는데 이는 어떠한 사람인고 하니 어떤 어려움 을 당할지라도 그의 이마나 얼굴에 표가 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환란을 당 하거나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도 웃는 얼굴로 기쁜 마음으로 모든 복음을 소 화시키며 하나님의 일을 했으니 하나님께서 참으로 바울을 위대하다 평가하 지 않을 수 없었던 성서의 입장입니다. 여기에서 못을 박듯이 여러분의 가 슴을 때려 박는 것은, 여러분들이 환란과 어려움을 당할 때 여러분의 얼굴 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 거울을 한번 보시면 잘 알수 있겠지만- 말씀을 대 변하는 이 사람은 진실로 묻고 싶습니다. "환란을 당할 때 거울을 쳐다 보라 " "왜요? 그러면 환란이 물러가나요?" "니 꼴이 어떤가 좀 보려고! 얼굴색이 어떤가 보려고!" 성경을 보니 바울은 얼굴색이 좋았습니다. 기쁨과 소망과 희열이 넘치고 광채를 발하는 얼굴로 [ 15/60 ] 서 찬미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이 바울의 신앙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거기에 비해 볼 때! 차이가 좀 있지요? 오늘 저녁에, 상에서 제분 을 때려 분지르는 법을 가르쳐 주듯이, 차이 있는 것을 없앨 비법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사람에게 있어 환경에 가장 많은 바람을 타는 것이 있다면 마 음과, 얼굴로서, 마음과 얼굴을 보면 압니다. 바울이 기쁨으로 찬미와 찬양 을 할 때 '찬송과 기도를 하면 문이 열릴 테니까, 제까짓 문이 안 열리고 배 기나?' 이런 사고로 생각 했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그건 둘째고 그저 하나 님 일이니까 찬양해야지' 이랬을까요? 아니면 평소에 신앙 사고가 그랬을 까요? 셋 중에 어떤 것이겠습니까? 평소에 신앙 사고가 그러했다는 것입니 까? 예! 제가 문제를 냈지만 그 답이 맞을 것입니다. 평소에 신앙사고가 그 러했습니다. 갇히나 나와 있으나 늘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이 그의 신앙생활의 역사였습 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에 우리도 어려운 일을 당하나 안 당하나 항상 기 쁨의 얼굴을 가지고 하나님께 찬양하고 찬미하는 바울 신앙의 정기를 오늘 받아야겠습니다. 어떤 회원 가정에 늦게 들어온다고 아버지께 꾸중을 듣는다고 제게 얘기했 습니다. "일찍 들어가면 되지 않겠느냐?" "일찍 들어가면 말씀을 못 듣는데요." "몇 시까지 들어오라고 하시는데?" "6시까지 들어오라고 하시는데요." "6시까지 들어오라고 하신다니 너무 걱정을 많이 하시는구나. 그러면 6시까 지 들어가지 뭐." "그렇게 들어가면 나중에는 5시에 들어오라고 할 것이고 5시에 들어가면 또 4시에 들어오라고 할 텐데요." "그럴리가 있겠냐? 부모님인데. 걱정이 되서 그렇지!" 걱정되서 그런 것은 알겠지만 걱정도 너무 지나치게 하니까 잔소리 같이 들 [ 16/60 ] 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래도 염려해 줄 때가 있지 날마다 그렇겠느냐? 그렇다면 네가 오목조목 다 얘기를 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것을 어떠한 환란으로 본다면 그 환란이 문제가 아니고 그것이 시험이라면 시험문제가 아니라, 너 자신이 시험에 덜 커서 문제이다." 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시험에 크면 자신이 충분히 그것을 소화할 수 있 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사는 가운데 요령도 있어야 되고 인생을 사는 기술 도 있어야 한다." 는 말도 해 주었습니다. 3) 선한 싸움의 승리를 위하여 바울에게 아무것도 아닌 강아지 새끼 같은 사람들이 힐난했습니다. 그리고 무렴을 주었습니다. 바울을 악평했습니다. 바울을 죽일 놈이라 했습니다. 감 히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처지의 아무것도 아닌 사람한테 바울은 그런 소리 를 들었습니다. 바울이 승리의 길을 걷지 않았더라면 아마 즉시로 쫓아가서 멱살 잡고 후드려 갈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 로마인 인데 너 맛 좀 봐라!” 하고 정치적으로 충분히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일 본이 우리나라를 다스릴 때 일본 사람이 우리 민족을 마음대로 했지요? 그 런데 우리 민족이 일본 사람을 두드려 팼다 해 보십시오. 그 이튿날 베게날 상 싶습니까? 바울이 그와 같은 입장에 있었기에 충분히 하고도 남았습니 다. 그러나 그런 환경에 있었는데도 그것을 못 써 먹었습니다. 써먹을 줄 몰 라서 못써 먹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기위해서 못써 먹은고 하니 그것은 바로 “내가 선한싸움을 하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그랬는데 선한싸 움을 했다는 것입니다! 악한 싸움을 하지 않고. 두드려 팰려면 두드려 패고, 줘 박을려면 줘 박고 발로 찰려면 차고, 들어 박을려면 들어박고, 찢을려면 찢고, 혈기 낼 것 다 내고, 입에서 거품이 나오도록 까지 해부칠 것을 다 해 부쳐 버리면서 온 바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야기하는 대로 참고 견디면서 선한 싸움을 하면서 바울은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표상적 [ 17/60 ] 인 시대인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느 때는 근신함으로 절개있는 이 선한 싸움을 했습니다. 어느 때 는 참고 견디면서, 어느 때는 혓바닥을 깨물면서, 어느 때는 이빨을 갈아서 이가 부러질 정도의 사건이 있어도 이만 갈다 말았습니다. 바울이라고 왜 부닥치는 것이 없었겠습니까? 더 혈기 당당한 것이 있었으나 참고 견뎠습니 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참고, 하나님을 위해서 참고, 세상을 위해서 참고, 자기를 위해서 참았던 바울의 신앙은 위대한 신앙입니다! 웃으면서 그리고 기뻐하면서, 바울처럼 근신하면서, 또 바울처럼 모든 사람 이 울 때는 웃으면서, 모든 사람이 웃을 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나가는 신앙 사고를 가져야 승리의 신앙생활을 하고 선한 싸움의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 는 것입니다! 4) 뜻을 헤아리는 신앙 사도 바울의 그런 사고(思考)를 볼 때 참으로 훌륭하고 위대한 길을 간 사 람이었습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병은 자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다 고쳐주 는데 자기 병은 안 고쳐줘..! 거기서도 서운한 꼴이 있었습니다. ‘왜 안 고쳐 주나...?’ 그러나 알고 보니까 너무 너무 충만해서 하나님께서 브레이크를 잡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병을 잘 고쳐서! 그러니까 지가 하는 것이 아 니라 하나님이 하는 거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러한 모든 환경...! 하나님이 계속 도와주고 그래야 되는데 이상하니 가는 곳마다 어려움이 있 고 절벽에 부닥치고 했습니다. 바울은 많은 절벽에 부닥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일을 안 한 것이 아닙니다. 계속 소아시아를 돌아다니면서 전도하고 선교 활동하고 다녔습니다.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따르 는 사람이 오죽 많았겠습니까? 따라가는 사람 중에서 바울 선생을 싫어했던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결혼 대상자가 없어서 못한 것이 아니라 그는 뭐인가 하늘의 심정 세계를 깨닫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수고하고 애쓰고 몸부림 쳣던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어느 때는 자기 [ 18/60 ] 밑에 있는 제자들이 찌그락 째그락 싸움을 했을 때도 바울이 처리를 하면서 가는 그 입장...! 바울은 극적인 이야기를 많이 안했습니다. 그러나 신교인들은 극적인 이야 기를 많이 했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상당히 합의적으로, 협력적으로 말을 많이 했습니다. 바울의 말투가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웅변술이라는 것은 무서웠습니다. 극과 극으로만 연결되는 그런 언어를 쓰 는 바울이었습니다.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내고, 쌍소리로 시작해서 쌍 소리로 끝내는 바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쌍”자(字)를 잘 안 쓰고 신 앙생활을 했던 바울의 신앙을 하늘은 오늘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바 울 같은 신앙을 가지십시오! 5) 매일 죽고 사는 삶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매일 죽는다.(고전 15:31) 했습니다. 즉, 매일 자기 사고(思考)를 죽이고 하나님 사고(思考)로 산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 이 코가 커서 훌륭하고 강한 체력을 가지고 있어서 훌륭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는 것에 훌륭한 것이 나타났지, 다른 것에 대 해서는 잘 모릅니다. 예수님도 특별히 초인(超人)의 체구(體軀)를 가져서 훌 륭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19/60 ] 3. 사도 바울의 복음에 관한 정신 <롬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 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 라인에게로다. 1)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다 사도바울은 주님의 복음 역사를 이어받은 자로서 담대의 종교 지도자요, 철 인이요, 종교가요, 사상가요, 웅변가로서 비록 정계에 투신하지는 않았지만 정치에 밝은 사람으로 정치인답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종교적으로 뿌리가 깊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상록수 같았으며 뿐만 아니라 그는 이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으리라는 고백을 할 정도로 복음에 대한 애착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성경의 절대적인 뜻을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이유는 이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 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로마서 1장 16절 말씀 가운데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시키는 말씀임을 믿을찐데 어찌 이 복음을 부끄 러워 하리오! 상대방의 영혼이 오히려 이 말씀을 갈구하고 있음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야! 너 지금 뭐 꺼낼려고 하느냐. 내가 한 두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니고 내가 가고 싶으면 갈 것이니...”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교회 가자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말씀을 알자 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한 번 꺾여 들어가면서 전도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상대방의 팔뚝을 잡고서 “내가 이렇게 너를 잡는 것은 다 뜻이 있는 것이다...” “그 뜻이 뭐냐?” [ 20/60 ] “복음이다.” “복음이 뭐냐?” “너에게 있어서 기쁜 소식이니 너 같은 애는 이 복음을 듣고서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니 가자!” 이런 식으로 상대를 누 르고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후자는 사도바울식 전도방법으로 바울 선 생은 속된 말로 일단 사건을 저질러 놓고 보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감옥에 갇힐 정도로 과격하게 밀고 나갔습니다. 후자의 전도 방 법을 택할 때는 우선 자기가 담대해야 될 것이고 사도 바울의 복음 전선의 묘법을 알아야 합니다. 2) 복음을 위하여는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이 아니다. 바울이는 과거에도 - 신세계를 발견하기 전에는- 율법적인 사명을 받았습니 다. 그래서 그때도 대단하게 활약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젖먹은 힘과 목숨까지 다해야 되는 복음의 사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증 거하기 위해서라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이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처음 듣는 사람이 이 말을 들으면 ‘아무리 복음이 좋다해도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할 것입니다. ‘아니 복음이 무엇이길래 생명을 초개(草芥)같이 여긴 단 말이냐?’ 하고 의아(疑訝)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곧 자기를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영혼을 구출할려니까 자기의 육적인 생명을 돌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자기 영혼을 구출하는데 필요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한 죽음은 육신이 죽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영혼이 죽는 것까지 말했다면 말이 안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생명(生命)이란 사실상 천하(天下)를 주고도 바꿀수 없는 것인데 아무 유익 (有益)도 없이 무작정 생명을 내어 던지겠습니까? 자기 생명을 집어 던져도 또 다른 생명이 살아나는 것이 있으니까 던지는 것입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왜 썩은 것이 아깝다고 씨를 안 뿌리면 되겠습니까? 씨 하나가 썩 어야 수 백배의 결실이 온다는 것입니다. 돌쇠가 소팔고 냄비 팔고 집을 다 팔아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왜? 보화(寶貨)를 살려니까 아깝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는 황소 보기를 정말로 귀하게 보았지만 보화를 발견한 후 부러는 귀 [ 21/60 ] 한 것으로 보지 않고 헐값에라도 팔아서 보화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보탬 이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바울도 생명을 귀하게 보지 않았던 이 유는 -생명의 가치성을 망각(妄却)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영혼(靈魂)이 귀함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혼은 복음 때문에 살았다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에 빚지지 않기 위해서 육심이 죽은 것도 귀하게 보 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3) 모든 영혼을 위한 복음이다. 하나님의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이 바울 선생님의 신앙 사상 입니다. 그리고 흠집에 손을 대면 분명코 먼지가 묻고 때가 묻을 것을 각오하고 밀어부치며 건설을 하신 '신앙 건축자'라고도 부를 수 있는 바울 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흑암에 사는 꼴을 보고 딴 사람들은 그냥 스 쳐갈 지 모르지만 바울은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사고를 갖고 살았습니다. 이 것이 바울 선생의 평소 신앙철학 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갈 때가 있지요? 딴 사람은 그냥 지나가도 되지만, 여러분이 그냥 지나간다면 시대의 사람 노릇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대의 사람 노릇 을 제대로 하려면 그날 그 시간에 합당한 일을 하려면 그 때 그때 닥친 일 을 서둘러 꼭 감행하고 지나가는 여러분들이 되야 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바울이 자신이 걸어간 내용의 설교를 듣고 있는 여러분 들을 정말로 크다 평가할 것이고 크게 함께 할 것입니다. 바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에게 더욱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 22/60 ] 4. 사도 바울의 업적(전도 여행) <행 18:9~10>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 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 교회를 세우다. 사도 바울은 새 역사를 깨달은 후 복음 앞에 담대히 서서 자기를 먼저 사람 되게 만들었고, 그 다음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들을 전하여 그들로 복음 앞에 오게 하는 일을 했습니다. 바울 선생은 날마다 전도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가르치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따라온 무 리들은 관리를 해야 됩니다. 처음에는 그냥 관리해도 되었지만 숫자가 불어 나니까 교회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처음부터 고희를 크게 잘 만들 수는 없 었습니다. 셋방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회관( )들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한 교회를 각지 역마다 만들어 주었습니다. 갈라디아에도 만들어 주었 고, 고린도에도. 로마에도. 에베소에도. 대살로니가에도 그러한 교회들을 만 들어 주었습니다. 대도시( )에 하나씩 만들어 주었습니다. 때로는 그들의 교 회가 커지게 되면 다시금 또 지교회들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에도 갈라디아교회하나만 있었던 것이 아집니다. <갈 1:2>을 보면 갈라디아에 여 러 지교회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현실( )의 우리들을 보면 각지방에 하나씩 있던 교회들이 이제 도시권을 중심 해서 계속 지교회( )들이 불어나고 있습 니다. 이와 같이 바울도 그 시대에 많은 지역에 교회들을 만들어서 역사의 터전을 마련했고 섭리권을 넓혀 나갔습니다. 바울이 일평생 동안 한일이 무엇이냐? 새로운 복음의 말씀을 전해 주었고 그리고 그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들을 위해 방을 얻거나 회관을 얻어서 교 회를 만들어 주었고 또 거기서 불어나면 확장시켜서 지교회를 만들어 주는 [ 23/60 ]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사면은 평생 가르치고 평생 지도( )해야 되 는 그런 사명이었습니다. 2) 복음의 표상을 세우다 바울의 곁에는 디모데와 실라가 있었습니다. 바울이는 이 두 사람을 아주 가깝게 잘 대해 주었는데 이들은 바울 앞의 복음에 대한 견본적 표상이었습 니다. 바울이가 실라와 디모데, 이 두 청년에게 잘 대해주고 붙잡아 주고 기 도해 주고 인도해 주고 길러준 것같이 다른 사람들도 그런 입장으로 대해 주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곧 모든 교회들, 타교인들, 타인들에 이르기까지 그런 식으로 잘 인도하고 지도하여 실라와 디모데를 만듦과 같이 만들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디모데와 실라도 처음에는 찌그락 짜그락하는 사 이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되게 만들고 이상적으로 만드는 일을 바울 이 해주었습니다. 하나를 갖다 놓고 가르치는 데도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데려다 놓고 가르칠 때도 오래 걸렸습니다. 그런데 몇 명을 가르 쳐서 똘똘하게 만들어 백만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크다는 것입니다! 3) 사도 바울의 전도 3-1) 유대인들을 전도 유대인들은 말씀도 같이 배웠습니다. 그들이 바울에게 말하기를, "우리에게 도 가르쳐 봐라" 그때 '때는 요 때다'하고서 가서, 바울이 잘 외우지 않습니 까! 우리들이 외우듯이.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서, 역사를 해야 틀림이 없으니 까 전체를 하나씩 하나씩 따질 것이 아니라 잘 이치에 맞고 원리에 맞는 말 씀을 해서 결국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고, "이미 역사가 이렇게 돌아 가고 있고, 구약에서 나타난 것같이 이 사람이 했으니 이 사람이 아니냐."하 [ 24/60 ] 고 이야기 해 주었고, "성경에서 고통과 고난을 받으면서 나타나 십자가를 지면서 온다더니만 이 사람 밖에 더 있느냐? 이 사람이 아니냐? 예수가 아 니냐? 우리는 이 일에 대한 증인이다. 맞다."고 바울이가 말했을 때에 이들 이 듣고 "의의(疑義)가 없다!"고 했습니다. 큰 감명을 받고 이들의 종교성이 다시 한번 뒤집어지는 역사가 연속 일어났습니다. 이 바울이 말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이 말할 때는 땅벌처럼 대들고, 또 입을 쉴새 없이 입에서 거품이 나올 정도로 이변을 토했는데 바울이 말할 때는 사람들은 그렇게 안 한 것을 성경에서 봤습니다. 왜? 바울이 거기에 대해서 는 잘 알고 있으니까 구시대에 대해서 구시대에 있던 사람이 구시대의 일을 오죽 잘 알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론(異論)이 없습니다. 맞거든! 그래서 바울 이 말할 때는 잠잠했다고 했습니다. 근데 조금 이 구교에서 오지 않고, 그저 기다림 없이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은 그들-구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구시대를 전혀 이해를 못하고 그저 막 그냥 가서 따발총으로 막 말을 했습 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함으로 대단히 강한 것 같은데 사람들이 좀 고개를 흔들면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받아들이기는 하는데 고개를 좀 흔들면서 이런 것을 우리가 진리의 횃불을 든 사람들에게 꼭 참고가 아 니라 생명적인 말씀의 좌표로 꼭 삼아야 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말씀을 전해 보니까 그런 것이 많이 있지요? 교회 안 다녀 본 사람들은 참 뜨겁게 받아 들이고 하는데 "이것을 모르냐?"는 식으로 하는데 이런 것을 잘 전도하는데 있어서 잘 해야 되겠습니다. 3-2) 빌립보에서의 전도- 옥에서의 기적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마리아, 예루살렘, 루스드라 이런 모든 지역에와 지방으로 복음을 전하고 돌아다니다가, 여기 이 지역에-빌립보-와 서 가다가 보니까 어떤 점쟁이가 점을 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점쟁이의 점괘가 나오기를 바울과 실라를 보고 “이 사람들은...” 그 신의 감 동을 받고 말하기를,-저급한 영들이지요-“이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 고 천지의 신을 섬기는 아주 위대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하는 것을 그 [ 25/60 ] 냥 놔두라.”고 그렇게 까지 말했습니다.(행16:17) 귀신이 그러는 것을 알고 서 바울은 “이 귀신아! 즉시 나가라!”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도 괴롭게 정말 괴로울 정도로 쫓아다니면서 “이 사람들은 큰 신을 믿는 사람들이다. 하는 것을 놔두라.”하면서 쫓아다니고 하니까 바울 선생이 “이 귀신아 사탄아, 귀 신아 나오라,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하니까 귀신이 즉시 나가버렸습니다. 근데 여기서 귀신이 나간 것은 좋은데 귀신이 붙어서 밥벌이하던 사람이 밥 통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사실상은 이런 것도 잘 보고 해야 됩니다. 알고 보면. 해 놓고 보면 지혜롭게 할 일들을 지혜롭게 하지 못한 일들이 많이 있지요? 생활 가운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그래서 귀신을 쫓아내니까 이 점쟁이가 귀신이 나가니까 점을 못합니다. 이상하게 보니까 아주 한집을 잡아 놓고서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서 살았어요. 귀신 붙은 이 사람이. 그 집 으로부터 생활 유지를 단단히 하고 있는데 점을 못하니까 당장 밥벌이가 없 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가만히 보니까 아까 영의 도움을 받아 이렇 게 되었는데 가만히 보니까 자기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상 관들에게 가서 말하기를, “유대 사람들이 와서 큰 소리를 치고 돌아 다니는 데 도대체 볼 수가 없다고, 이상한 풍속도 가르치고 이상한 사상도 넣어주 고 이상한 모임을 갖고 모두 이상한 짓만 하고 돌아다녀서 주권도 다 뺏기 게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놔두었다가는 큰일 나겠다고. 책임을 나한테 묻 지 말고. 이제 내가 이 일을 위해서 관직에게 보고했으니 빨리 처리해 주시 고 많은 사람들이 주민들이 덜덜 떨고 정치인들 보다 더 무섭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왕거리고. 그런데 이들은 좋아서 우왕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서 이 사람들이 당장에 바울과 실라를 묻지도 않고 끌어다가 무조건 내려 때렸습니다. 그 사람의 말을 듣고서, 옷을 벗기고 매질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여기서도 무한히 많이 맞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고다음에 가서는 이 래놓고서 그냥 놔 줄줄 알았지만 또 꽁꽁 발모가지를 묶어서 옥에다-정치범 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종교범으로 보았는지, 어떤 풍속의 문란 죄로 보았 는지 모르지만- 데려다가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도 어이가 없어서 바울과 실라는 옥에 똑같이 갇혔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뭐 옥에 갇히면 할 [ 26/60 ] 일이 있습니까? 기도하는 수밖에 더 있습니까? “기도하고 찬송했다.”했습니 다. 아마 이쯤 되었으면, ‘복음이 무엇이길래 내가 매를 맞고, 복음이 무엇 이길래 내가 얻어맞고 얻어터지고 옥에 갇히는가?...’이렇게 생각하지 않았 습니다. “복음이 무엇이냐?”복음은 국경이 없다. 복음은 살리는 것! 기쁜소 식! 희망을 주고 소망을 주는 것, 절망 된 자에게 소망을 주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먼저 받았으니 전해야 될 사명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 입니다. 이들은 역시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알지 못하는 이들을 보고서 기 도하고 또 이런 괴로운 일을 당할 때에 낙심할까봐, 이런 역경을 당할 때에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이같이 괴로운 일을 당할 때에 혹시나 영혼이 낙심할까봐, 육신이 실족할까봐 찬송을 열심히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 나름 대로의 역경을 벗어났습니다. 육신이 그런 옥에 갇혔지만은 그 영혼과 마음 에 옥에 갇히지 않게하기 위해서, 그 하나님의 관계성이 끊어지지 않게 기 도했습니다. 이게 가장 고상한 바울 선생의 위대한 그런 천품입니다. 위대한 그런 신앙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환경에 갇힐수록 거기서 낙심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영혼까지 갇히고 또 마음이 갇히면 옥 중에 옥에 들어 있 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 특히 잘 해야 되겠습니다. 항 상 복음을 잘 전하다 어떤 때는 이런 때도 있습니다. 이런 때는 기도하고, 찬송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도 이 두 가지는 아마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흔히 살창 없는 감옥에 갇힐 때가 많 이 있을 것입니다. 환경의 감옥! 어떠한 그러한 사고의 감옥! 사고(思考)의 감옥에 갇히면 사고(事故)가 납니다. 어떤 그런 개념의 감옥! 어떠한 그런 잘못된 인식관의 감옥에 갇힐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감옥에 갇힐 때마다 기도하고 찬송해야 됩니다. 이런 때에 그렇게 하면 벗어 날 수 가 있지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고 하니, 여기 바울과 실라가 잘 한 것인 지는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보니까 주위가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옥 토가 움직이고 문들이 곧 다 열려버렸고 쇠고랑은 풀려져 버렸고 간수들은 자다가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거꾸로 되었습니다. 근데 보니까 결과로 볼 때 에 그 한 일이 잘 한 일이었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이들이 하는 일을 바울 [ 27/60 ] 과 같은 신앙이 필요하다고 오늘 말씀으로서는 그렇게 전하고 또 하늘의 말 씀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모든 환경과 처지에 감금 될 때가 많았을 것입니다. 흑암의 감옥, 어두움의 감옥, 낙심의 감옥, 염려 의 감옥 또 어떤 문제의 감옥에 갇혀있었을 것입니다. 이 복음을 따라오다 가, 사실 과거에도 두 말 할 것 없이 많이 있었겠지만. 이런 감옥들을 잘 벗 어나야겠습니다. 믿습니까? 어떻게 벗어난다고 했지요? 기도하고 찬송으로! 이 때는 중언부언 했다가는 정말 안 됩니다. 이 때 만큼은 중언부언 해서는 안됩니다. 알겠습니까? 이 때는 중언부언 하지 말고 정말로 뭐인가 확실한 해답을 받는 그런 기도를 하고, 찬송하고 해야 됩니다. 찬송을 안 하면 불만 불평이 많이 있습니다. 슬프더래도 찬송을 자꾸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알겠 습니까? 찬송은 사람을 요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동과 감명과 감화를 줍니다. 못하더래도 자꾸 하시기를 바랍니다. 알겠습니까? 사도 바울도 이런 문제 때문에 매도 맞게 되고 옷도 찢김을 받 게 되고 또 옥에 갇힘을 받게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낙심치 않고 평안한 마 음을 가지고서 무엇을 했습니까? 기도하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런 데 슬픔의 찬송을 부르면 안됩니다. 알겠습니까? 요런 때 일수록 기쁨의 찬 송을 불러야 돼요! 영적으로 생각하면 기쁨의 찬송, 육적으로 생각하면 슬펐 지만 이 때 슬픔의 찬송을 부르면 눈물만 더 나오고 낙심만 더 됩니다. 그 래서 찬송도 때와 시기에 맞춰서 잘 골라가면서 불러야 되겠습니다. 결국 풀려 나왔지만 나와서 담대히 어떻게 했는고 하니 도망치지 않고 말했 습니다. 이 때에 이들은 상당히 죄인이 없어진 것을 보고 쑥스럽게 생각하 며 어떻게 할 줄을 몰랐습니다. 보니까 옆에 서 있었습니다(행 16:27). 그래 서 괴로와서 자결하여 죽을라고 했습니다. “그러지 말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냐고 말했 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역사적으로 증거 할 사명이 있었 습니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까지 구원을 얻게 되리라.” 했습니다. 하나만 믿으면 다 얻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인해서 [ 28/60 ] 또 하나가 믿게 되고, 또 하나가 믿게 되고 계속 믿어서 8명이면 8명, 9명 이면 9명 다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만 믿으면 그냥 다 구원된다는 것 은 없습니다. 그만큼 잘못 해석하면 그런 말씀이 되는데, 하나 때문에 또 다 른 사람이 믿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에 일이 어떻게 됐는고 하니 나중 에 나와서 결국 로마 사람인 것을 알게 되고, 또 이상이 없는 사람임을 알 게 되고, 좋은 풍속을 전하고 돌아다니고, 좋은 그런 이익과 유익을 주고 돌 아다니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를 집에 초청해서 음식을 차려주고 온 집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어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3-3) 고린도에서의 전도 - 잠잠하지 말라 주께서 밤에 환상으로 바울에게 말씀하시길,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 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말씀을 전파하라! 이 성에 말씀을 전 파하다 보면 말씀에 접할 많은 사람이 있고 너와 같은 사고(思考)를 가진 사 람이 있으니 말씀을 전하라! 그리하면 말씀을 듣고 모두 따라 오리라! 오히 려 너를 따를 자가 있을지언정 너를 해할 자가 없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이 음성을 듣고 바울이 그 곳에서 1년 6개월을 더 유하면서 잠 잠치 않고 복음을 힘있게 전했더니 허다한 무리가 쫒아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 보면 위축감에 의해 ‘이 복음을 전하면 잘 먹힐까..? 씨가 먹혀들어갈까..? 오해는 받지 않을까..? 같은 하늘아래 살면서 혹시 형 제로부터 같은 민족으로부터 오해를 받지 않을까..? 그들이 오해를 사지 않 을까..?’ 이같이 생각하며 조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소심 하지 말고 담대히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 그리하면 너와 같은 마음을 가진 자들이 진리로 뭉쳐져 모든 자들이 하나되는 일들이 심히 많을 것이다! 말 씀을 전하라! 믿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예비한 그 곳에 해당되는 하 나님의 말씀을 나타내면서 그의 모든 일들을 코치한다는 것입니다. 꼭 환상 으로만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잠잠하지 말고 전하라! 그래야 사람들이 많이 따라올 것이다.” 이것은 그 [ 29/60 ] 냥 한 말이 아니라 사실상 그 시대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현실에 맞는 말씀 입니다. 너희를 대적하여 해할 자가 없으니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치 말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라!! 3-4) 에베소의 전도 - 아데미와의 싸움 바울은 이 말씀을 가지고 곳곳마다, 발걸음이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대로 개인적 차원 혹은 가정적 차원, 혹은 어떤 무리적인 대상을 놓고 늘 심정이 터지도록 불같은 말씀을 쏟았습니다. 이들의 잘못을 간접적으로 직접적으로 깨우쳐 주면서 새로운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인들을 중심한 복음이었지만은 오히려 이방에 이르기까지 넘쳐흘러 가버려서, -알지 못하 는 신들에게, 손으로 만든 존재들을 신으로 섬기는 미련하고 소망 없는 일 을 하는 이방의 세계로 가서- 이들에게도 사도 바울은 뛰어가서 복음을 전 하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 종교의 세계에는 많은 미신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손수 그들은 신을 만들었습니다. 마치 인형을 만들듯이 만들었습니다. 이 이스라엘 나라는, 이 방쪽으로 -특히 사마리아 쪽, 또는 에베소쪽, 또 마게도냐 쪽으로- 가면 손 으로 만든 우상들이 그렇게 많이 있다고 했습니다. 손으로 만든 우상은 인 형같이 12가지 색상을 넣어 갖고, 실장색으로 만들었는데 그 만든 것을 집 집마다 갖다 놓고서 위하고 섬기고, 복을 달라 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 다. 바울은 에베소에 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 이 아니다! 그것은 상식적인 일이고 사람으로서는 지극히 깨닫고 알아야 된 다! 오히려 사람을 믿는 것이 그러면 더 낫지 않겠느냐?! 사람이 만들어서 신을 섬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하면서,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간 접적으로, 직접적으로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들도 듣고 보니 그것이 아니거 든... 잘못된 진리는 보다 이상된 진리가 올 때는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감 추기 마련입니다. 사라집니다! 그래도 이 사람들이 최 발악을 하면서 자기들 이 섬기는 신들이 크다고 했습니다. “이 신이 도와서 잘 살았다.”고 했습니 다. 그것은 신이 도와줘서 잘 살은 것이 아니라 신을 믿으면서 자신이 열심 [ 30/60 ] 히 뛰었지!... 부지런히 열심히 하고. 바울은 철학적인 사람이었고 논리적인 사람이었으며 또 실질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거기에다 종교의 빛을 받고부터 는, 진리의 빛을 받고부터는 더욱 확실하게 섰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깨우쳐 주고 살려 주었습니다. 그들이 소리를 지르고 무리를 지어서 자기들의 신이 도와주었다고 했는데도 바울은 그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만들어서 섬길려면 사람을 섬기지 왜 그것을 섬기느냐? 신은 사람보다 낫고 이상된 세계에 계시니 그 신을 소개하겠다.”하면서 죽 강론 했습니다. 역사를 이야 기 했는데 아담 이후 노아 그리고 아브라함부터의 역사를 죽 이야기 했습니 다.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그에게 역사하셔서, 그들 불러내서 신의 생각으로 살게 해 주셨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참으로 신의 도움을 받고서 이렇게 이 렇게 잘 살았다! 아브라함이 그 신을 믿고 섬겼으니 그 신은 하나님 이시다! 약속한 것이 많이 있었으니, 후손들에게 많은 약속을 해서 그 신으로 인해 서 모든 만민에게 소망을 주셨다! 그래서 그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 하시는데, 많은 그 희망과 소망 된 일을 모든 유대 땅의 종교인들이 기다리 고 바라고 있으며 또 찾고 외친다! 유대 땅에 가면 이렇게 사람이 만든 신 은 없다! 그곳은 오직 모이는 장소에서 하나님만 섬기고 있다! 이게 바로 신 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 신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실장색으로써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또 연지 찍고 곤지 찍어서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미신 섬기는 이야기를 쭉 했습니다. 참으로 미신 섬기는 사람들을 보면 그 정성은 대단합니다. 그들은 만들지요? 만듭니다. 갖다 놓고서! 사도 바울이 이같이 이야기를 했더니만 너무나 타당하고 당연 해서 그들이 그와 같이 섬겼던 것을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참된 진리를 깨닫고부터는 과거의 진리가 참된 진리가 아니고 비진리임을 알고 그 주장까지 무색함을 받고, 그것을 주장하던 사람들까지도 무색함을 받아 왔습니다. 이와같이 무색함을 받고서 바울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고 있었습 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니까 이 신을 섬기던 사람들이 모두 다 아무것도 아 니라고 집어 던졌습니다. 그 만든 우상을! “사실 그렇구나. 신이 와서 도와 주는 것이 아니구나.”하고서 그때부터 만들어 파는 우상을 사가지를 않았습 [ 31/60 ] 니다. 그 섬길 수 있는 신을 공장에서 만들고 했는데 안 사가는 거여! 그러 니까 공장주인이 가만 생각해 보니까, 옳은 말씀을 듣다가 자기 공장을 운 영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만들어 파는 장사를 해서 단단히 한 목을 했는데... 그 직공들도 당장에 고향으로 가야 될 판국이 되었습니다. “안 되겠다. 데모하자!”하고서 모두 일어 서가 지고 소리를 지르며, “그래도 에베소 사람들아! 이 신이 크다 아데미 신이 크다. 그 말 듣고 괜히 휩쓸리 지 마라. 신이 크다.”면서 소리를 꽥꽥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바 울 말 듣고서도 약한 사람들은 다시 또, “그래 맞어, 신이 크지... 신이 커! 우리가 섬기는 신이 크다.”면서 모두 일어나 그 공장의 직공들과 더불어 합 동작전을 해서 바울을 관원에게 고소하게 되었습니다. “안 되겠다! 이 사람 때문에 우리가 큰일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적으로 어떻게 됐는고 하 니, 막 잡아다가 관으로 넘겼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이렇게 이렇게 해서 경제 파산을 시키게 했고 또 여러 가지로 신을 모독하고 있으니 도저히 이 해할 수 없는 일이고 또 이 사람을 알고 보니까 유대인 같은데 유대인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며 그 신이 크다고 하지만 이럴 수 있단 말이 냐?”하며 넘겼습니다. 이래서 결국적으로 모두 모여들었습니다. 극장으로 모 여들어서 바울을 끌고 갔습니다. 그래서 끌려 갔습니다. 모두 끌고 가서 여 러 가지로 힐문을 했습니다. “결국 재판날을 잡아서 재판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하며 결국 관에서 모든 사람들은 흩어지게 하며 처리를 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입장이지, 종교관의 입장을 개인의 입장으로 파괴시켜서는 안된다.”하면서 이해시켜 오히려 그런 기회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전 도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가는 곳마다 복음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 었습니다. 그렇다고 복음에 손을 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담대히 외쳤습니다. 3-5) 아시아 일대를 주께로 때로는 복음을 강하게 전파해 나가면 어려운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감수하면서 잘 다스려 나가야 되는 입장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 32/60 ] 사건들을 여러 가지로 겪으면서 죽 여기 있는 19장까지 왔습니다. 20장에는 바울이 마게도냐 지역으로 갔고 또 헬라에 가서 석달쯤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해 할라고 항상 복무하고 모사를 썼습니다. 바울은 그 가운데 베뢰아 사람들에게, 또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죽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가서 드로아 근방에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이제 마지막 복음을 전하고서 떠날려고 하는 직전입니다. 그래서 마지막날 저녁에 말씀을 열심히 전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하다가 점진적으로써 아시아 일대를 확장시키고 확대시켜서 복음을 전해 나갔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발길들이-기쁨을 전하는 발길들이- 참 보람있는 발길들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하다 보니까 여러가지 인생의 참 깊이를 터득했습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신앙길을 통해서! 많 은 사람을 보고, 깨닫고 전하고 하면서 하나님의 심정도 체휼하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심정도 체휼하게 되었고, 중심에 서서 정말로 산 철학을 배우게 되었고, 정말로 산 인생과 참 지도자를 깨닫게 되었고, 과연 종교의 참된 지 도자가 될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도 누누이 본인(本人)을 통하여 많이 체험하고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3-6) 복음의 사명이 복음의 능력을 이와같이 바울은 복음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명을 받으니까 능력 이 나타났습니다. 바울의 능력에 대해서는 누누이 다 이야기하지 않을지라 도 바울 서신을 보면 나타나 있습니다. 돈으로도 따르게 할 수 없고, 은으로 도 따르게 할수 없고, 그리고 명령으로도 따르게 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말씀을 듣고 복음에 동참했는데, 사람을 따르게 하는 그 능력을 참 큰 능력입니다. 이처럼 바울 사람을 따르게 하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없는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치유하는 능력도 바울은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복음의 사명을 받음으로 인해서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7) 말씀의 실력을 [ 33/60 ] 사도 바울의 자세를 반드시 따라야 됩니다. 과학적으로 자료를 충분히 준비 하고 또 뿐만 아니라 학문의 자료를 충분히 하고 말씀의 자료를 충분히 해 서 이들을 가르쳐 주니까 과학자도 철학자도 문학자도 전부다 이치에 합당 을 깨닫고 솔깃함을 금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것들이 우리에게 절실 하게 필요하다고 오늘 바울의 위치에서 말합니다. 3-8) 의무와 권리를 행사함으로 진리가 없으면 이 바울이 감히 그렇게 할 수 가 없었습니다. 딱 진리 하나 입니다. 진리가 없었으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까? 진리로 인해서 이와같이 메일 수 있는 그런 환경, 붙잡힐 수 밖에 없는 환경, 낙심할 수 밖 에 없는 환경을 역시 진리 때문에 진리에 제재를 받으면 이와같이 바울처럼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진리를 가진 자는 책임성이 없으면 묶 인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이것은 우리 인간의 책임입니다. “그리하면 네가 구원 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하늘의 책 임! 구원을 받게끔 하는 것은 인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세우는 것 은 인간 구원에 해당되어 있는 타락한 무리들! 그래야 구세주가 갈 수 있고 메시야가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도 안 해 놓고 어떻게 갈 수 있습 니까? 못 간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시대 때의 복음에 들어온 사람 들은 그마만큼 나름대로의 복음에 들어 올 수 있는 구세주가 올 수 있는 그 런 구세주를 만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저 차원에서부터 상(上) 차원에 이르 기까지의 나름대로 이방 사람들이 준비를 했다는 것입니다. 살았다는 것입 니다. 예수님은 역시 그들은 하나님이 부르시고, 준비한 그릇으로 보고 그들 에게 미련 없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복음을 나갈 때는, 만나 는 그들이 준비되고, 예비된 그들 인줄로 알고 그 나름대로의 터전에서 복 음에 걸린 줄로 알고 복음을 부끄러움 없이, 그리고 담대하게, 성실하게, 정 성을 다해서 심혈을 다 기울여서 미련없이 전해줘야 될 의무와 책임이, 먼 저 흑암 가운데서 나온 사람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 34/60 ] 4) 바울의 교회와 생명관리 그런데 바울이 지교회를 많이 만들다 보니까 한두 군데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 지교회에 자주 못 갔습니다. 1년에 한 번씩 혹은 2년에 한 번씩 정도 밖에 각 지역을 순회할 수 없었습니다. 비록 바울이 모든 세워 놓은 곳을 수시로 돌면서 전도 여행을 했으나 평생 동안 몇 번밖에 못 돌았다는 것입 니다 물론 작은 규모로는 많이 돌았겠지만 대폭적으로 돈 것은 번에 불과하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교회를 세웠을 당시에는 그들이 말씀을 믿고 확확 따라왔는데 바울이 오래있다 와보면 문제 투성이들이었습니다. 아무래 도 그 지역은 지역 사람한테 맡겨서 그들로 다스리게 헸더니 바울이 오랜만 에 와 보았을 때 문제투성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는 대개다 동일 헸습니다. 신앙에 대한 좌절감, 신앙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요령이 없어 넘어 지고 쓰러지는 일들, 또 신교( )의 복음을 도존하는 사람들의 소리들 듣고 헷갈리는 일들..., 이러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무식한 구시 대의 유대 종교인들이 그들을 요란케 하는 말을 했을 때 오히려 복음을 도 전하는 일들이 옅어서 바울 사도가 아주 골치가 아팠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바울선생은 그들에게 나가서 새로운 복음의 가치성을 말해 주고. 시대의 흐 름을 말해 주었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다. 이 복음 외에 다른 것이 어디 있 단 말이냐?” 이같이 말하면서 자신만만하게 그들을 가르쳤습니다. “여러분 들이 기존성이 없어서 많이 흔들리는 일들이 있는데 흔들릴 필요가 없다. 사실상 너희들이 깜박 다른 복음을 쫒아갔을 때 뭐이 있더냐? 없지않았느 냐?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게 이렇게 흘러왔다. 이 복음이 진짜 그리스도를 중심한 복음이다. 여러분들은 투쟁 역사의 복음에 동참했으니 그 가치성을 느껴야 된다.” 바울 선생은 관리를 참 잘했습니다. 매일 편지를 써서 보내고 그랬습니다. 그것으로 해서 성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도 편지를 잘 쓰니까 하나님 께서 편지를 아예 성경화한 것입니다. 아주 영감적인 편지를 썼습니다. [ 35/60 ] 5) 사도 바울의 힘의 근원, 하늘과의 하나됨 바울의 복음이 열렬하게 전파 될 때에 흑암에 있는 세계가 빛의 세계로 직 접 밝아져 과거에 흑암세계에서 주장했던 사람들이 빛 가운데로 옴으로해서 과거를 모두 해탈하고 벗어버려 보다 흑암권, 무덤에서 생명으로 오는 일들 이 이제 그룹단위로, 소단위에서 대단위로 직접 번져가는 광경이 사도행전 사에 계속 나옵니다. 바울이 옥에 있다가 들림을 받고 나와서 모든 사람에 게 하늘의 사정과 하늘에 대하여 가르쳐 줄 수 있는 좋은 찬스(기회)가 되고 그들로 인해서 하늘 앞에 부끄럽지만 돌아 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속적 으로 일어나고 있었어요. 그러면 바울의 이같은 모든 일들이 어디서 힘이 왔느냐? 모든 존재세계는 힘이 없으면 존재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 에서 그 힘이 오느냐? 핵심적인 말씀이 본문말씀 곧 사도행전 18: 9 - 10 의 말씀입니다. 자꾸 위에서 즉 하늘에서 명령을 받게 되니까 바울은 거기 에 힘의 일체가 되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쳐나갈 수 밖에 없고 모든 일들이 하나가 바로 서니까 하늘은 최대의 섭리권을 조성할 수 밖에 없었고 또 바 울이 사람이 되고 나니까 거기에다 인정하면서 모든 것을 믿어 줄 수 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늘 수시로 하늘로 부터 명령을 받게되니 거기서 대단한 힘이 왔던 겁니다. [ 36/60 ] 5. 사도 바울의 메시지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1) 바울이 전한 복음 1-1)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것은 바울의 일반적인 말이 아니라 바울의 도(道) 로 봐야 됩니다. 도! 지극히 깊은 단계에서 깨달았고, 많은 실천을 하면서 또 많이 움직이면서, 그리고 많은 매를 맞고, 채찍과 고난과 곤경과 어려움 과 또 은혜 가운데 말씀을 선포하며, 많은 보람을 느끼며, 그리고 많은 청중 속에서 역사를 피는 가운데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 니다. 도(道)입니다. 道!! 아주 극적인 세계에서 한 도를 깨달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죄를 범함으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두절되어 담이 생겼고, 하나님의 그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것을 바울이 깨닫고 또 바울 자신 을 통해서 하나님의 그러하심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하면, 곧 메시야, 구속자, 예수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다시금 그 관계가 회복되어서 하나님 영광의 값없는 은혜를 받음으로 인해 서 해결되게 되었다는 것을 바울이 깨닫게 되고 알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사도 바울이 떳떳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해방을 받아야 된다! 그 리스도를 중심해야 된다! 그리고 나와야 된다! 그 구시대에서 나와야 된다! 하나님께서 일단 이런 일을 시작지 않았을 때는 구시대에서 열심히 살 필요 성이 있지마는 나도-사도 바울- 구시대에서 열심히 살다가 이렇게 나오지 않았느냐?! 보다 해방을 받지 않았느냐?!”하고 바울은 자기의 일평생 가운데 [ 37/60 ] 자기의 모든 역사적인 간증을 털어놓았고 구시대의 모순을 밝혔습니다. “단 번에 집어 던지고 나와라! 역사와 전통을 집어 던지고 나오도록 하라! 나오 지 않으면 그 고달픔이 심히 극렬하게 될 것이고 또 그로 인해서 곤고에 빠 져서 그나마도 실가닥 같은 구원도 받지 못하고 끝나고 말 것이다. 나오라! 마치 애굽 땅에 있는 그들이 나와서 구출함을 받는 것처럼, 또 다른 역사적 인 증거로 볼 때 창세기 19장에 있는 말씀같이 저 소돔 땅에서 그 곤고한 세계에서 나와서 구출함을 받는 것같이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 물질은 고사 하고 어떤 것을 다 버려버린다고 할지라도 나와야 된다.”고 했습니다. 제사장들이 그것을 집어던지고 와 버리면 밥벌이가 없어지게 됩니다. 입에 풀칠을 못하게 됩니다. 또한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권위를 못 받게 됩니 다. 또한 많은 사람들과 엉키는 세계에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욕을 합니 다. 이단에 들어갔다고 이단 소리를 얼마나 하겠습니까? 이런 것 때문에 못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1-2)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있을때 그리스도의 사람이 됩니다. 이래서 바울이 새로운 역사를 논했는데 바로 우리 시대도 보다 구약적인 입 장에서 볼 때에 애굽에서 신광야로 가는 것은 엄청난 강(江)이 있었다는 것 입니다. 차원이 있었고..! 이런 차원은 스스로 자기의 마음에서 못 들어 온 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크나큰 강도 사실은 없습니다. 그 강(江)은 정신의 강이고, 사상의 강이고, 생각의 강이고 주관적인 강으로 거기서 크나큰 착오 가 생겨서 건너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분명코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쫓고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말하기를, “따르기만 한다 고 해서 다 된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마음속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말 씀이 나오고, 그리스도와 일체되고 성령이 그로 말씀하게 되고 그러해야 바 로 그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다.”고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회도, 왜? 사도 바울도 그걸 그대로 예수님한테 그대로 받아서 가르키니까 [ 38/60 ] 어제는 괜찮았지만 오늘은 이단이래, 사도 바울은 심정이 하나되어서 떨어 질 수 없는 그런 세계에 있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 고린도 전서 2장 8절은 평범한 말씀이 아닙니다. 풀지 못할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안 죽었어야 하는데 몰라서 죽였다는 것입니다??! ‘우 리들은 십자가로 인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거 안 죽었으면 어떻게 된단 말인가?.. 바울은 이상하네... 이 사람은 십자가 공로가 없어도 살 사람 인가?...’이렇게 생각하는데 모르면 복잡하지만 알면 한 길입니다. 이것도-고 전 2:8 - 성경말씀인 만큼 우리는 심각하게 알고 지나가야 되겠습니다. 말 씀을 보면 일반적인 것이 있고 역사를 좌우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 역사를 좌우하는 말씀에서 머리가 아픕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 뜻으로 생각하면 골치가 안 아픈데, 못 박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것은 뜻이 아니라고 사도가 이렇게 말을 하니 헷갈리고 혼돈이 온다는 것입 니다. 그러니까 오늘 어떤 의미에서 이런 말을 했는지 성경의 전체 흐름을 한번 보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온 8절만 보지 말고! 알겠습니까? 우리가 이 구절만 보고 사는 사람이 아니니까... 신학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한 절 만 가지고 푸는 것이 위험합니다. 전체 흐름의 역사를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가 없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 스도를 아는 지혜가 있었으면 안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에 대해서 우리는 속편으로 생각 해야 되겠습니다. 전편에서는 “영광의 주와 고난의 주”라고 했는데 속편의 제목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입니다. 이 지혜를 받아야 정말 지혜를 받은 것입니다. 자기를 구원시킨 메시야를 따라다니면서 메시야를 아는 지혜가 없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메시야를 아는 지식이 없으면 지식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갈 때 둘러갈 길을 바로 갔다고, ‘아! 나는 지혜를 받 았다...!’ 그것도 지혜이지만 그리스도를 궁극적으로 근본으로 아는 그 지혜 를 받지 않으면 구세주를 이 모양 이 꼴로 자기가 그렇게 만든다는 것입니 [ 39/60 ] 다. 알겠습니까? 그래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 구원주를 아는 지혜.”이것 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 주(主)라는 것은 구약에서는 보다 높임의 차원으로 ‘주’‘주’했습니다. 우리들의 차원에서는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기름 부은자, 메시야, 구세주! 이런 여러 가지로 표현되는데 이 메시야가 필요치 않은 사 람은 이 지구촌에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다 필요합니다. 사람에게도 그 러하고 그 오는 메시야에게도 누구든지 필요하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다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일개국의 주권자는 그 나라에서만 필요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필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지만, 또 기업의 회장이나 또 어떤 학자는 자기가 해당치 않는 곳이 있고 없어도 괜찮은 것이 있지만, 구세주만큼은 해당 안 되는 건(件)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혼 문제가 그로 인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절대 필요합니다. 주님과 같이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지면서 절대 그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 이 기본입니다. 도리입니다. 이것이 도덕이고 윤리이고...! 도덕의 1조 1항이 무엇인지를 저의 도덕선생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로 인사하는 것이 도덕 의 1조1항이라고 그랬습니다. 인사하는데서 부터 도덕의 첫발자국이 들어간 다는 것입니다. 인사하는데서부터! 아는데서부터! 바울은 고난을 당하신 주를 두고 말하기를, “만일에 자기네 들이 죽인 예수 가 영광의 주라는 것을 알았다면 즉 자기들이 4000년 동안 기다리고, 하나 님께서 구약에서 큰 것만 쳐도 300군데-약속하신 메시야인 줄을 알았다 면..., 감히 침발라서 뺨을 칠 수 있었겠으며 또 참람하다고 할 수 있었겠으 며 감히 몽둥이로 때리면서 ‘너 나가서 살라.’고 하며 이스라엘 민족으로 취 급도 안하고 내어 쫓을 수 있었겠으며 감히 죽일 수 있었을까?..”이렇게 말 했던 것입니다. 자기(自己)-사도 바울-를 보고서 그 시대를 투시했습니다. 바울 자신도 예수님을 처음에는 반대하고 이단시 하고, 적대시 하고, 멸시하 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후에, “나도 몰랐으면 연속 그 짓을 했을텐 데 알았기 때문에 안한다! 과거의 나와 똑같이 반대하는 이들에게 죄가 있 다면 다른 것이 죄가 아니라 주를 아는 지혜가 없구나! 하나님의 이 숨긴 비밀을 아는 지혜가 없구나..!”말했습니다. 바울은 회심 후에 알았습니다. 그 [ 40/60 ] 전에는 예수님의 제자들, 스데반같은 사람을 때려 죽일 때 옳다면서 때려 죽여야 된다고 박수를 치며 협조하고 그저 소리를 질렀던 사람입니다. 몰랐 던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8절과 같이 말했는데 거 기서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왜, 죽었는지를... 또 왜 그렇게 되었는지의 사실을... 1-4) 관원이 한 명이라도 알았더라면 뜻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몰라서 주를 죽였다. 세상에 몰랐어도 그렇게 모를 수가 있느냐? 한명도 모를 수가 있단 말이냐? 그래도 똑똑하다고 종교의 관원, 정치의 관원으로 세워 놓았건만 그 지도자들이 그렇게도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안타깝기 그지없고 인간 무지를 누구한테 개탄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도 한 사람이 없었단 말인가? 한 사람만 알았어도 그런 만행 을 저지르게 놔두지를 않았을 것이고 그런 무지(無知)와 비인도적인 사건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바울은 한마디로 역력히 여기서 말씀했습니다. 어떤 시대의 역사가 갈 때 그 당세에는 알아보기 힘들고 어려운 것이 있다 고 하지만 그렇게도 몰랐단 말인가? 하나만 제대로 알고 확실히 서서 제대 로 외쳐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나도 제대로 선 자가 없었고 하나도 제대로 마음에 드는 자가 없었고 하나도 제대로 그리스도를 변호해 주는 자 가 없었습니다. 하늘은 세례요한을 이미 찍어놓고 그 상황을 감당하라고 길 렀건만 오히려 실수투성이로 지나가고 자기 하나 처신하지도 못하고 역사가 지나가 버렸으니 안타깝기 그지 없었던 사건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건을 보고 자기가 행한 일을 생각했고 유대종교가 행한 모든 만행을 생각하고 안타까움을 금치못했습니다. “이미 옹기 바가지는 다 깨져 버리고 금항아리는 산산조각이 나버렸구나!”하면서 일이 이미 끝나 버렸다고 이 말씀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도 역사(歷史)는 안타깝게 지나갔다는 것입니 다. 만일 종교의 관원 중에서나 정치의 관원 중에서 하나만 알았더면 그렇지 않 았을텐데..., 하나로 인해 엄청난 것이 좌우됩니다. [ 41/60 ] 만일 어느 곳에 화재(火災)가 날 때 하나만 알았으면 그 집이 그렇게 불타지 않았을텐데! 이런 입장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6.25를 저질려고 했던 이북놈들의 만행을 하나만 알았어도 그렇게 안당했을텐데 한도 몰랐다는 것 입니다. 넘어간 간첩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우리 국가를 위해 생명을 내걸고 넘어갔던 사람도 하나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모르니까 몽창 당했지요 알았 으면 당했을리가 있겠습니까? 하나만 알면 만족하다 그래서 내가 자주 그러지 않습니까? “하나면 족하다! 둘도 필요없다” 여러분의 재질과 소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뭐이고 뛰어나게 하나만 세계적으 로 잘하면 족하다는 것입니다. 수영을 세계적으로 잘하든지 축구를 세계적 으로 잘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설교를 세계적으로 잘하든지, 자기가 개성으 로 받은 것 하나만 잘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한마디 절감적인 표현을 한 것이지만 시대를 다 표현했다 할 수 있습니다. 몰라서 다르게 이루어진 뜻..., 모르면서 지나가는 역사의 일들! 이 본문 말씀을 두고 보면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그렇 다고 사람의 뜻도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의 뜻이 이루어졌느 냐? 아무도 원치 않은 뜻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약 역사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실상은 사람이 원하는 뜻도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 님이 원하는 일이 이루어진 것도 아닌 역사가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 울이가 개탄한 말씀이며, 과거를 후회하는 말씀이며 그리고 안타까움을 금 할 수 없어서 표현한 말씀입니다. 1-5) 죽든지 살던지 오직 주를 위하리라 사도바울의 이렇게 마음을 정한 걸 봐요. 믿습니까? 내가 해봐서 너무 잘 알아요. 내가 안 해보면 성경풀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이 절대 적으로서 오직 하나님만이 오직 하늘만이, 사상이 차고 그리고 주관이 찼으 며 하늘의 사상과 이념으로서 완전히 사귀겠다는 결심을 내리고 일편단심의 [ 42/60 ] 신앙을 가지고 각오를 갖고 그때부터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하고서, 그전에 는 자기를 찬양하고 그 전에는 오히려 어떠한 다른 것에 중심을 두었지만, 이제 자기중심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중심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마치 바울사도가 말하기를 죽든지 살든지 오직 주 를 위해 살겠다, 이런 것이 사도바울의 한 마디 한 것이 따르는 사람의 백 마디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1-6) 모든 권세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는 반드시 굴복하고, 그런 마음으로 순종해서 사는 것 이 도리라고 바울은 깊은 진리를 터득하고서 하늘 입장의 일들을 밝혔습니 다. 왜 그런고 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을 알 았노라고 한 바울이 밝힌 말씀을 본다면, “모든 권력과 권세는 하나님으로 부터 났으니까 순리적으로 세상을 살려면 권세를 거스리지 말고서 살도록 하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최후에 올라가 보면 그 최종점에는 하 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 된다고 이렇게 성서는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인해서 거스려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입니다. 1-7)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바울은 순회를 돌 때마다 이같은 말씀을 하면서 복음을 다시금 강조했고, 그들에게 불일듯한 마음이 지속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른 복음을 쫒 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나로서는 정말 이해가 안 간다, 그들의 복음은 요 란케 하는 복음이다. 사실상 복음도 아니다. 복음은 기쁜 것을 전하는 것이 복음이 아니냐? 그런데 그들의 소리는 인성으로 만든 소리로 복음이 아니오 이론( )이다. 어떤 학문에 불과한 것이다. 죽은 종교의 이름은 붙였지만 고 질화( )된 조상들의 유전을 쫒는 것에 불과하다. 만약 이 복음 외에 다른 복 음을 전하면 천사도 엄청난 하늘의 저주권에 들어가는 만큼 우리는 이 복음 을 쫒아야 되겠다.”고 바울은 강력히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인생살이를 사느냐,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인생살이를 사느냐? 내 [ 43/60 ] 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을 했더라면 아마 역사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사 람을 기쁘게 해 봤자 아무것도 아니다.” 1-8)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를 하십시오 디모데 후서 4장으로 넘어가면 바울 선생이 전도하라고 했습니다. 때를 얻 든지 못 얻든지 꼭 전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것은 오직 지상 명령임을 말했습니다. “. . . .하나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 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라!”고 하면서 전도의 명령을 했습니다. 1-9) 이 복음의 앞에 나의 생명을 다하리라 바울은 복음(福音)을 생명보다도 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 복음은 천 하만민(天下萬民)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고, 또 그 복음을 전하다 죽으면 죽 어도 구원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뭏든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복음의 사업’은 엄청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복음 앞에는 자기가 생명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의 사명은 자기를 구원(救援)한 구주(救主)로부터 받았다는 것입니다. 1-10) 생명의 면류관이 우리에게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면류관을 말한 것은 육신의 면류관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 가치성을 말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바울이 말한 면류관은 자기가 전도한 사람을 면류관으로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는 것을 보고 면류관이라 했 습니다! “미래는 나를 위해서 면류관이 예비되었다!” 고 했는데 자기를 많은 사람이 따를 것이라는 말이니 그거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자기가 억울 함을 받은 것, 누명을 받은거, 짓밟힘을 당한 것들을 그 따라오는 자가 다 해명해 주고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크지, 육신의 면류관 덩 어리가 해명을 해 주겠습니까? 1-11) 가치로운 삶이란 영혼의 영원한 것을 위한 삶입니다. [ 44/60 ] 우리가 돌아보는 것을 사실상은 육신의 세계인데 잠깐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살아보기 전에 먼저 알고 모든 것을 미리 끄집어 내었습니다. 지나간 다음에 속은 다음에 기회가 지나가 버린 다음에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과정 가운데 모든 것을 집어내고, 과정 가운데 모든 것을 끄집어 내서 인생의 행 과 불행, 희로애락을 또 인생의 성공실패를 미리 고(告)해 주고 선포해 주었 습니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모든 자는 미리 인생을 알고 살 수 있는 그런 신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그 영원한 보배, 영혼의 가 치성을 말해서 그 가치성을 한없이 찬양했고, 지금 받는 고통과 어려움은 당연한 일이라고 그는 자부하며 말했습니다. 자신만만한 가치성을 말했습니 다. 그런데 우리가 보배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복음도 또한 보배로 이 복음 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복음이 아니고서는 질 그릇의 보배를 발견한 수 없고, 복음이 아니고서는 보화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듣는 자마다, 또한 보낸 자마다 복음에 대한 가치성을 크게 느끼고 전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라!”그리하여야 그들이 새로운 소망 가운데 온전케 됨을 바울은 확실하게 시인해 주었습니 다. 1-12) 주인이 쓰기에 합당한 그릇을 만드십시오 사도 바울이 말한 여러 표현 중에는 고상한 표현들이 많이 있지만 <디모데 후서 2:20>에도 이런 그릇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 그릇이 있을 뿐 아니라, 나무와 질그릇과 같은 것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는데 그러므로 누구든지 깨끗하게 예비해 놓고 깨끗 하게 준비해 놓으면, 즉 주인이 쓰기에 합당하게만 만들어 놓으면 주인이 쓰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바울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준비하고 예비하고서 누구든지 가져 다가 쓰도록 만들어 놓으면 그는 역시 놀 여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항상 준비하고 예비해 놓으면 누가 쓰든지 간에 씁니다. [ 45/60 ] 1-13) 몸의 구속을 기다리며 ... 바울이 말한 곤고함은 바로 구원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구원문제가 다 해결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만일 구원이 되었다면 뭐하러 그렇게 기도를 해대고 금식 기도를 하며 야단법석을 칠 것 이며 구원된 사람이 왜 또 죄를 짓겠습니까? 바울이 여기에 대해 깨닫고 < 로마서 8 : 23 >에 이야기 하기를 “성령의 처 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도 겉신앙을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겉신앙을 하면 그 나름 대로의 갈등이 오고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영적으로 빠지면 빠질수록 갈등 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적으로 빠지면 빠질수록 심 령적 갈등이 있었고 신약인들도 영적으로 빠져 육적 세계보다 훨씬 더 기쁨 으로 충만했지만 가다가 결국 갈등을 겪은 것과 동일합니다. 어디까지나 육 과 영은 발란스가 맞아야 되고 하나되야 합니다. 구약의 율법세계가 육 이라면 신약은 영의 세계요 영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아니면 말아라!” 하며 배타시하고 가다 보니까 곤고함을 갖 게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영과 육의 바란스가 맞아야 하는데 바울도 항상 육을 치고 굴복시키면서 “육은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치 않을 뿐만 아 니라 우리를 죽인다. 육신을 쫓는 자는 육신의 일을 하게 되니 육신의 생각 은 사망이나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라고 하며 영의 생각만 주장했 으나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과 육의 세계에선 절대적으로 영으로만 누 릴게 있고 육으로 누릴게 따로 있습니다. 밥맛은 영이 아는 게 아니라 육이 아는 것입니다. 육은 육의 세계로 누리고 영은 영의 세계로 누리는 것으로 이 두 가지가 평행을 이루며 가야 됩니다. 한 가정에서도 남편이 좋아하는 것과 부인이 좋아하는 것이 다르며 취미 또한 다릅니다. 영의 만족과 육의 만족도 다릅니다. 구약에서는 영의 세계를 좌절시키고 신 약에서는 육의 세계를 죽여야 된다고 했습니다. [ 46/60 ] 6. 사도 바울 생애의 주제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1) 사도 바울의 생애 4주제 첫째, 사도 바울은 원래 로마나라의 사람인데 정신적인 갈증 때문에 로마나 라의 속국이었던 유대나라의 종교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차 전환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종교를 크나 큰 스타가 되었지요. 사람들이 그때 당 시에 바울에게 말하기를 -성경에 안 씨었지만- “야, 이녀석아! 아니 큰 대국 인 로마에서 그 조그만 나라에 뭘 배울게 있다고 거기를 가냐, 세상에!” 그 랬을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미국 나라에서 “그 나라가서 뭘 배운다고 대한 민국에 가느냐?”(웃음) 그랬을 거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대국(大國)에서 소국(小國)으로 오니까! 사도 바울도 역시 대국 로마에서 조그만 소국 유데나라에 왔습니다. 바울 은 자기의 정신적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었기 때문 에 유대나라에 온 것입니다. 바울도 1차 전환을 했는데 율법세계로 전환을 했습니다. 바울이 전환을 해 서 보람과 이상을 느끼고 있는 판국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고 하니, 어떤 사 람을 ‘메시야’라고 하며 좇아 다니는 젊은이들이 뭉쳐진 단체가 있는데 알고 보니까 “예수”가 이끄는 단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도 처음에는 잘 몰랐지 요.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물어보니까 “절대로 거기에 가서는 안된다. 큰일난 다. 가까이하면 염병(染病)이 옮듯이, 피부병이 옮듯이 옮으니까 가까이 하 지 말라.”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말을 했습니다. 거기에서 바울이 그 단체를 사이비 집단이라고 판단을 내리고 완전히 발벗고 쫓아 다니면서 말 리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다멕섹 도상에서 갑자기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친 것입니다. 바울이 “누구냐?”했을 때 “너, 내가 누군지 [ 47/60 ] 모르지? 네가 반대하는 나사렛 예수다.” 그 당시에 예수라는 이름이 많았지 만 나사렛 예수가 진짜 예수요, 진짜 구세주였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렛 예수’라고 하니까 바울이 속으로 ‘아, 그 놈이구나. 그 놈 이 나타났구나.’했습니다. 그리고는 “왜 그러느냐?” 했을 때 예수님께서 “나 와 상관하지, 왜 나를 반대하느냐? 왜 핍박하느냐? 어째서?” 하며 걸고 넘 어지기 시작해서 마지막에 “네가 그 답답한 것을 벗어나려면 성(城)으로 가 서 기도를 받으라.”하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성으로 가서 아나니아 선지자 에게 기도를 받고 다시금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봉사가 얼마나 답답한지 압니까? 여러분이 그 답답함을 알고 싶다면 길을 가다가 눈을 감고 딱 3분 만 걸어가 보십시오. 아마 10초도 못되어 눈을 바짝 뜰 것입니다. 너무 너 무 답답해서. 바울도 눈이 안 보이자 답답했는지 눈을 뜨러 가서, 결국 눈을 떴습니다. 그때부터, 사건의 봉사, 이치의 봉사, 시대성의 봉사 인 것을 깨 닫게 되고 뒤집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팝박했던 종교로 전환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두 번째 전환입니다! 전환을. 이와같이 해서 바울이 구시대에서 새로운 시대로 전환을 했기 때문에 그렇 게 유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환을 해서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알겠습 니까? 여러분들과 비슷하지요? 여러분들도 과거에 모를 때는 이 역사를 팝 박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전환을 해서 와 보니까 너무너무 이상적인 세계 이지요? 둘째, 사도 바울은 전도를 많이 했습니다. 전도의 영웅입니다. 어떤 사람도 바울이 전도의 영웅이라고 하는 교리가 잘못됐다고 안할 것입니다. 바울이 는 무지무지하게 전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 전에는 사울이었는데 전도를 많 이해서 바울이 되었습니다. 엄청나게 전도를 많이 했는데 본인이 직접 전도 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직접 전도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이와같이 사도 바울이 직접 전도한 사 람은 얼마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의 전략을 새워서 전도를 총 지 휘했습니다. 그러니 결국 바울이 전도를 한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 48/60 ] 그래서 우리의 입장과 흡사합니다 바울이 전도를 많이해서 유명한 별이 됐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서 12장 3절 에도 “...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 취리라.”하고 말씀했습니다. 전도를 많이 하면 별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여 러분들도 출세를 하려면 전도를 많이 하십시오. 만명을 전도해서 만명 교인 이 따르면 출세하는 것이지요. 만명이 좇아다니면 출세한 것이 아니겠습니 까? 전도를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그만큼 출세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 니까? 조용기 목사님도 한경직 목사님도 마찬가지로 전도를 많이 했기 때문 에 출세를 한 것입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 전환을 하고 신앙생활만 열심히 했다면 그렇게 유명하게 이름이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도를 많이 해서 많은 사람이 따르게 만들었기 때문에 역사에 길이 남는 이름이 되었다는 것 입니다. 세 번째 원인은, 교회를 많이 세웠습니다. 선교인으로서는 가장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전도 전략을 멋있게 세우고 군인이 전쟁하는 것 같이 멋있게 싸워 나가면서 교회를 많이 세우고 또 그 교회들을 관리했습니다. 특히 아 시아의 전 지역을 7바퀴씩 돌며 연속적으로 교회를 세워 나갔습니다. 바울 은 전도여행을 많은 일들을 체험했고 또한 많은 이적과 기적이 일어났는데 그러한 것을 이야기 해주다 보니까 듣는 사람들이 실감을 하게 되고 신기함 을 느끼게 되어 모든 사람들이 호응도가 심히 컸던 것입니다. 네 번째, 사도 바울이 유명하게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시대의 새로운 말씀을 선포 하면서 갔습니다. 특히 영적인 말씀을 많이 했습니다. 보다 영력있고, 보다 권세있고, 보다 세력있는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구시 대에 해당하는 케케묵은 말씀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새로운 말씀 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따르게 된 것입니다. 그의 인품을 보고 따른 것도 아니고, 그가 돈이 있어 따른 것도 아니고 그의 체구가 멋있어서 따른 것도 아니고 또한 그의 학문이 높아서 따른 것도 아닙니다. 그는 학문을 갖고 설 [ 49/60 ] 교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서의 심오한 진리를 가지고 설교한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연구한 바에 의하면 그의 외모는 못생겼다고 평가했습니다. 키 는 짝달막하고 다리는 휘어지고 눈은 푹 들어갔고 코만 하나 삐죽하게 나왔 고... 그런 사람에 불과합니다. 바울은 상당히 고지식하면서도 대범하고 성품이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많 았습니다. 사람이 성격여하에 따라서 운명이 많이 결정되고 좌우됩니다. 사 람이 생긴 꼴값을 한다고 하는데 마음 상태에 따라서 생긴 꼴값을 하는 것 입니다. 성현, 성자들이 생긴 것은 일반 사람들과 같은데 정신이 다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마음여하에 따라 상당히 차질이 큽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도 마음의 각오를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가 일어나고 변동이 일어나고 다른 상황을 감행해나갈 수 있는 발동이 걸립니다. 바울의 직업은 천막 제 조업자로서 (행 18:3) 예루살렘의 가말리엘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행 22:3) 엄격한 유대교인이 됩니다. (갈 1:14) 당파는 바리새파로 (행 26:5) 독신자이 며 홀아비라는 설도 있습니다. (고전 9:5) 바울의 성품은 독립성이 강해서 장막을 만들어 비용을 충당하면서 선교 사 업을 열심히 했습니다. (행 18:1,3) 항상 그리스도 중심적인 사람이었고 (빌 1:20-23) 아주 열성적인 사람이었고 (롬 9:3) 외모는 빈약하였지만 그리스도 를 위한 사역에 힘쓰다가 육체의 고난을 많이 받으면서 몸이 항상 상해있는 상태였습니다. (고후 11:24-27, 갈 6:17) 그리고 육적으로 살까봐 육신의 생 각을 많이 제재시킨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말을 잘하지 못했으 며 (고후 10:10) 역경 중에서도 즐거워한 본보기의 신앙인 입니다. (고후 4:8-10) 이방의 사도로 택정되어서 유럽 등지를 돌아다니며 3차에 걸친 전 도여행을 하고 로마서, 디모데 전후서, 디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 보서, 데살로니가 전후서, 빌레몬서를 기록하는 엄청난 업적을 남기며 사도 의 직임을 연속해갔던 바울입니다. [ 50/60 ] 7. 사도 바울과의 만남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 사도 바울을 만나며.... 옥중에서의 바울 - 옥중에서 쇠사슬로 벽을 긁던 심정과 마음-“악은 망하고 선은 승리한다.” 사도 바울이 옥에서 맞은 것도 성경에는 안나옵니다. 그러나 옥에서 많이 맞았습니다. 그래도 맞았다는 소리는 못하고 “내가 그들에게 해를 많이 받 았다”고만 써 있습니다. 해 받았다는 것에는 매맞은 것도 다 들어있는데, 매 맞은 것은 옆 사람을 통해서 전해 들어서 압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입니 다. 그곳에 직접 가서 보니까 매맞은 것이 확실하게 표가 다 나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갇혀있던 옥에 가보았습니다. 옛날에는 죄인들은 무조건 쇠고 리로 채웠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한국에서 내가 목사님들에게 들었을 때는 사도 바울이 여러 가지 고통의 쇠사슬에 매였었다고 들었습니다. 고통을 쇠 사슬로 표현하면서 영적인 해석을 하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얼 마나 무지한 해석들을 했습니까? 가서 보니 쇠사슬에 묶였던 자국은 있었습 니다. 벽을 보면 쇠사슬로 하도 긁어서 다 파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은 그렇게 한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언제 사도 바울이 묶여있었던 옥에 한번씩 가보십시오. 벽을 그렇게 긁어놨더라구요. 아무리 보아도 쇠고랑을 찬 바울 선생이 쇠사슬로 긁어놓은 것이 역력히 표시되어 있습니다. 내가 엎드려 잠시 기도했을 때 이런 영감이 스쳐갔습니다. 그 벽의 여러 흠집 낸 내용은 “로마는 망한다. 악한 자들은 망한다. 선은 승리한다. 이렇게 핍박할 지라도 결국 지상에 하늘 나라는 실현되고 말 것이다”이런 영감이 나에게 응답되었습니다. 바울 선생이 쇠사슬로 벽을 긁으면서 그런 심정과 마음을 가지고 긁었다는 것입니다. [ 51/60 ] 악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유- 후손들이 길이길이 선악을 분별하며 거울이 되라고 남겨 놓았다 “하나님, 왜 악인들을 흔적도 없이 없애지, 안 없애는가?” 의문을 품고 하나 님께 기도를 했었습니다. 유럽에 와보면 기독교를 핍박한 자들의 흔적이 아 직까지도 너무 많이 남아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나와 같이 이렇게 생각할 때 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흔적을 없애놓으면 그 들이 악행한 것을 후대에 알도록 하기 위해서 거울로 남겨놓았다는 것입니 다. 예수님께 악인들이 한 일은 십자가의 거울로 남겨놓고, 로마 박해의 400년 핍박한 것도 남겨져있고, 그것을 보고 세계의 관광객들이 보면서 모 두 그들의 악함을 책망하면서 관광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흔히 볼 때 네 로 황제의 흔적이 박물관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것을 보는 자들마다 “저 악한 놈이 쓰던 그릇이 저기 있구나. 저 악한 놈이 쓰던 물건이 저기 있구 나”라고 평가하는 것을 봤습니다. 로마에 가면 무너지다 만 성(콜롯세움)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저것 다 무너지고 없어지게 하지, 저렇게 남겨서 세 계 사람들이 쫓아다니게 만드냐?”했는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렇게 흔적을 남겨야 그것을 보고 후손들이 길이길이 보면서 선악을 분별하며 거 울이 되지 않겠느냐?”고 나로 깨닫게 했습니다. 그것을 보면 가인 족속들은 아쉽다고 하고, 아벨 족속들은 욕을 하기 바쁘다고 합니다. 족속대로 다릅니 다. 바울의 심정의 영혼이 서린 말씀은 - 옥 벽에 쇠고랑으로 파서 남긴 흔적의 성경 바울 선생의 글 중 성경에 나오지 않은 글이 많지만, 그 중의 심정의 영혼 이 서리고 남을 말씀이 있다면 옥 벽에 자기 쇠고랑으로 파서 흔적을 남긴 흔적의 성경이라고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옥중의 바울 - 매를 많이 맞고 지냈지만 그 속에서도 전도하고 복음을 전했 다. [ 52/60 ] 그러면서 옥에 있는 사람에게 많이도 맞았습니다. 그러나 옥반장이 때리고, 로마 병정들이 때릴 때 웃으니까 “너는 왜 그렇게 웃느냐?”하였고 “나는 마 음이 편하다”했습니다. 때린 사람들은 “맞는 사람이 괴로워야하는데, 때리는 사람이 괴롭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그러면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어 라”하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거기서 전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거기에 있으 면서 숨어서 매일 공부를 한 것입니다. 밖에 나와서는 못하고 거기서 쇠고 랑을 차고서 했습니다. 관리하러 들어간다고 하면서 비밀되게 조금씩 듣고 듣고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감동되어서 “선생이여 우리가 도와줄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때 바울 선생이 심판과 내세에 대해서 무섭게 얘기했답니다. “나는 때가 되어서 갈 길로 가지만, 너희들도 남아있 다가 곧 죽을 것이 아니냐? 내세가 있다. 나도 그 세계에 가려고 매를 맞아 가면서도 하늘을 불신치 않는 신앙심을 갖게 되었다”했답니다. 거기에 물이 있는데, 그 물로 옥반장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 모습은 성경에 나와있 습니다. 지하실이라 물이 나고 사방한자 원형 크기로 깊이는 60센티인 샘이 지금도 있습니다. 그 물은 세례를 준 물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울 선 생이 매를 맞은 것이 확실한 것인가 관광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그 옥에 들 어온 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굶기고 매로 때리고 그래도 안 죽었을 때는 벽에다 머리를 찧어서 죽였다고 합니다. 머리 찐 벽은 지금도 표시가 남아 있고, 석회석 벽이 많이 파여있는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고로 바울 선생도 많이 맞은 것으로 그 때 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계속 전해 내려오니 확실 하다고 그는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선생은 이런 문제를 성경에다 기 록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 심복에게 편지를 썼던 것이지, 그것이 후대에 성경이 되리라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고로 그 글은 편지로 남아 있지, 성경적인 입장의 내용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안부 편지, 그리고 무엇 을 가져오라는 내용의 편지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모든 것을 말할 수 없으 니 변명으로 말할 뿐이다”라고 말한 내용이 나와있습니다. [ 53/60 ] 2) 복음에 대승한 자 지난 주에는 사도행전 16장 16절 이하의 말씀이 나갔습니다. 바울은 복음 을 가지고 어떠한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갔으며 다시 또 도전(挑戰)하면서 복음을 전해 많은 무지(無知)의 세계와 싸워 승리하여 복 음의 문(門)을 열고 빛을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바울은 복음의 포기 자가 아닌 대승자(大勝者)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복음에 대승(大勝)한 사 람입니다! 우리가 기존성의 복음을 가지고 있다면 두려워할 것도 뭐할 것도 없습니다. 과거의 기존성의 복음을 전한다면 내내 똑같은 것을 전하는데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새로운 역사가 오면서 새로운 법이 선포될 때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가 힘듭니다. 그러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구약이 아닌 신약시대가 되었을 때 사실상 예수님의 말씀 을 전하기 모두는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보다 기존성과는 다른-진리가 달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생각지 못한 예상밖의-말씀을 선포하니까 모두 박 멸시하고 박대시하며 괴롭히고 때리며, 복음을 전하면 잡아가고 또 공회에 서 논쟁을 붙였으므로 오히려 복음을 두려워한 그 당시 상황이었습니다. 그 런데 오늘날 복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시대가 또 왔습니다! 복음을 전 하는데 두려워하지 말고 잠잠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3) 확실한 신앙을 통한 처세에 능한 자 바울!! 지난번에도 말씀했지만 바울은 한마디로 말해서 신앙이 통통 영근 사람입니다. 곧 곡식의 알곡이 가을이 되어 통통하게 영글고, 나무의 열매가 무르익은 듯한 인상을 주는 사람입니다. 어디 흠집이 별로 없으며, 바늘로 쑤셔도 들어갈 곳이 없는 약점이 없는 사람이며, 확고부동한 인생을 살아나 갔던 찾아보기 드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둥을 가지고 전봇대를 가지고 쑤셔도 흠집이 남아돌아 갈 정도의 사람들이 바울 [ 54/60 ] 을 심문했던 그 때를 생각할 때 말이 안나옵니다. 바울은 어떠한 환경, 위치 처지에 들어갔을지라도 그 때 그 때마다 처세를 확실하게 해 나가고 분명하 게 이루어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확 실한 신앙관, 분명한 진리관에서 온 처세인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있습 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믿음과 말씀 관(觀)이 확실하고 분명해야 됩니다! 그래야 바람도 덜 타게 되고 역사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에 흔들리고 어찌할 줄을 모르고 우왕좌왕하면 역사의 앞대가리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줏대가 강하고 주관이 확실하고 분명해야 따르는 사람도 확실하게 또렷하게 따를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흑백이 있고 동서남북의 방향이 분명코 있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면 공산주의, 민주주의이면 민주주 의, 흑백이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4) 환경을 요리하는 자 바울은 어떠한 환경도 요리를 잘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빌 4:11-13>을 보면,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 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하나님께서 능력만 주신다면 못할 것이 없 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사도행전과 바울의 전서를 통해서 바울의 신앙관이 흘러가는 역사를 보면 마치 밀림속을 뚫고 가는 밀림의 왕자같은 입장입니다. 계속 밀림을 뚫고 가고 뚫고 가고..., 또 뚫고 갔습니다. 혹은 저 사하라 사막을 자동차로 달리 는 사람같습니다. T.V에서 보았는데 사하라 사막에서 자동차 경주를 하는데 아주 무섭게 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길도 아닌 곳을 먼지를 내며 달렸습 니다. 그리고 앞차가 지나간 다음에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산더미같이 모래 를 쌓아 놓기도 했습니다. 그 때는 할 수 없이 둘러서 가기도 했습니다. 이 와 같이 바울 전서를 보면 바람과 태풍과 어려움으로 인해서 앞을 가리는 [ 55/60 ]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혹자는 물을 것입니다. “왜 고속도로로 안 달리고 이렇게 바람이 불면 모래가 날리는 곳을 달려야 하느냐?” 그 곳에서 시합을 하는데 거기를 달릴 수밖에 더 있습니까? 거기서 경기를 벌리니 그 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가끔 T.V에서 자동차 경기하는 것을 비 춰줄 때 보면, 어떤 사람은 그저 인상을 찌푸리고 아주 불쾌하게 생각하면 서 경기를 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맥주를 마셔가면서 인생을 즐기는 입장과 같이 너털 웃음을 웃으며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경기는 1등하는 것 도 문제이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회사의 명예를 위해서 혹은 PR을 위해서 참여시키는 것일텐데 너무 악착같이 가다가 뒹굴어 불이 나는 차도 보았습 니다. 신앙역사도 너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하면 안됩니다! 신앙역사는 또한 모래벌판을 달리는 시합용 차와 같아서 앞차는 그냥 지나갔는데 뒷차는 모 래가 쌓여서 앞이 가로 막힐 때도 있습니다. 5) 복음을 전하기를 두려워 않은 자 오늘 주께서 밤에 환상으로 바울에게 말씀하시길,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 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말씀을 전파하라! 이 성에 말 씀을 전파하다 보면 말씀에 접할 많은 사람이 있고 너와 같은 사고(思考)를 가진 사람이 있으니 말씀을 전하라! 그리하면 말씀을 듣고 모두 따라 오리 라! 오히려 너를 따를 자가 있을지언정 너를 해할 자가 없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 보면 위축감에 의해 ‘이 복음을 전하면 잘 먹힐까..? 씨가 먹혀 들어갈까..? 오해는 받지 않을까..? 같은 하늘아래 살면서 혹시 형제로부터 같은 민족으로부터 오해를 받지 않을까..? 그들이 오해를 사지 않을까..?’ 이같이 생각하며 조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소 심하지 말고 담대히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 그리하면 너와 같은 마음을 가 진 자들이 진리로 뭉쳐져 모든 자들이 하나되는 일들이 심히 많을 것이다! 말씀을 전하라! 믿습니까? [ 56/60 ] 여기서 환상을 보았다고 했는데 여러분들 환상을 모고 싶습니까? 그런데 환상도 연습용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역사를 해 나가고 복음을 전하다 보 면 하나님께서 자동적으로 환상이 필요하면 환상을, 계시가 필요하면 계시 를, 말씀이 필요하면 말씀을 주시면서 그 때 그 때 하나님의 묵시적 차원에 서 역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대로 우리가 일을 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예비한 그 곳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면서 그의 모든 일들을 코우치한다는 것입니다. 꼭 환상으로만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잠잠하지 말고 전하라! 그래야 사람들이 많이 따라 올 것이다.” 이것은 그 냥 한 말이 아니라 사실상 그 시대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현실에 맞는 말씀 입니다. 너희를 대적하여 해할 자가 없으니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치 말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라!! 복음을 전하라! 그냥 갖고 있지 말고 전하라! 전하면 누군가가 나타날 것이 다! 이것이 성경의 역사에 틀림없이 증명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술이나 음 악이나 모든 예술도 누구 하나가 뚫고 해 나가면 그 사람을 따라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누군가가 그것을 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면 다른 사람도 노래 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기게 됩니다. 바울이는 복음에 대해서 시범을 보이며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딸려와서 같이 복음을 전하고 복음의 기쁨을 누리며 희열에 찬 얼 굴들로 시대를 감당해 나갔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묵시(黙示)와 환상 (幻像)으로 이렇게 이렇게 하라는 말씀들이 많이 옵니다. 바울에게 들렸던 음성이 우리에게도 들린다는 것입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잠잠하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매 아무리 사명을 해도 너희를 대적할 자 없으니 복음 을 전하라! 아무도 너희를 대적하지 못할 것이니라!”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한 마음도 큰 자본입니다. 그런데 담대한 말씀을 들 으면 담대해지고 약한 말씀을 들으면 약해집니다. 바울이는 속이 찬 신앙자 요, 실천적 사람이며, 시범적인 자요, 표상적인 인물이었고 기준적 인물이었 으며, 복음을 전함에 째째하게 굴지 않고 복음을 위대하게 전해서 모든 사 [ 57/60 ] 람들이 복음을 함부로 평가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늘은 우리들에게 바울과 같은 신앙을 요망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들 이 혼자라며 외롭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외쳐놓고 보면 하나님께 서 이미 많은 생명들이 오도록 복음의 조직을 해 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외 침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꾸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외치지 않 으면 사람이 없습니다. 장사도 외쳐야 살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외치면 평소 그 같은 사상을 가졌던 자들이 동참하게 되어 하나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 복음을 만약 외치지 않고 가만히 쌓아두고 묶어 두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무것도 안 이루어졌다는 것입니 다. 그러나 외치고 외쳤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외치고 눈이 오고 비가 와도 외쳤습니다. 복음때문에아닌게 아니라 두려워 할 일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복음을 전하고 외쳤더니만 결국 사람들이 복음에 동참하게 되고 받아 들여 서 하나되고 일체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 주는 가장 크나큰 핵심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전하고 돌아다니니까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그냥은 따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나팔을 힘차 게 불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 58/60 ] ※ 부록 ■ 점검하기(분석과 점검) 1. 사도 바울의 예수님을 만난 사건과 배경은? 2. 사도 바울이 힘든 상황가운데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이 유는? 3. 사도바울의 생명에 대한 열정적 전도 활동의 근원적 힘은 무엇이었을지 나누어 봅시다. 4. 사도 바울의 곤고한 구원 문제는 무엇이었으며 또한 그것(곤고한 구원문 제)의 시대적인 의미는? 5. 사도 바울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을 4가지로 이야기하여 봅시다. [ 59/60 ] ■ 생각하기 나는 구원역사를 하는데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과거에 여러 가지로 생각했습니다. 나가서 무슨 일을 할까? 가다보면 변합니다. 여러분들 도 마음이 약해서 또는 보는 것마다 틀려서가 아니라, 크다보면 변합니다. 왜?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습니다. 어느 때는 운동선수가 되고 싶고 어느 때는 예술가가 되고 싶고 어느 때는 정치가가 되고 싶고 어느 때 는 종교인이 되고 싶고 어느 때는 재벌가가 되고 싶고 어느 때는 조용하게 살고 싶고 어느 때는 이것저것 다 때려치고 싶고 어느 때는 죽고 싶고. 사 람이 이와같이 조석(朝夕)으로 변하는 원인은 환경 따라 변하기도 하고 자신 이 없어 변하기도 합니다. 저도 무슨 일을 할까? 했을 때 처음에 배고플 때 는 실컷 먹고 싶었고 더 나아가서는 집을 멋있게 지어놓고 살면 되겠다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다보니까 잘 곳도 생기고 모기 안 물리게 모기장도 쳐놓고 해서 그것이 이루어지니 심적(心的)고통이 왔습니다. 그래서 ‘이건 나만하고 죽으면 억울하다. 많은 사람에게 나타나고 싶다!’ 하고 많은 사람 에게 나타나고 싶어서 아나운서(ANNOUNCER)가 되려고 아나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내 길을 가려다가 하늘 앞에 크나큰 책망을 받고 돌이켜 서 이제는 하늘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일 좋은 것 이 뭔고 하니 - 내가 겪어보니 - 구원을 시키는 사업입니다. 물에 빠져 죽 을 사람을 끄집어 내 주면 내가 그에게 부탁할 때 내 삶을 대신 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암만 못해도 반은 해 줄 것이 아닙니까?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죽었을 테니 까 말입니다. 그래서 구원사업이 대단히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무가 죽게 된 것을 살려주는 입장, 토끼가 죽으려고 할 때 보살펴서 살릴 때의 그 보 람 살려주면 죽을 때까지 10년 20년은 삽니다. 그릿서 ‘사람을 살려주면 70 ~ 80년, 영혼을 살려주면 영원히 그 살려준 사람을 기억할 것이고 그 상(賞) 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대단히 엄청난 것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메시야가 와서 무슨 일을 했나? 생각할 때 구원사업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 습니다. [ 60/60 ] ■ 적용하기(실천 및 적용) 1. 위 <생각하기>의 전도의 중요함과 가치를 설명했던 것의 의미를 묵상하 여 봅시다. 2. 각 세운 교회를 훌륭하게 관리하고 가르쳤던 사도바울을 본받아 자신의 주변에 귀한 영혼들을 어떻게 관리하여야 할지 생각해보고 편지나 전화 등 관리계획도 세워봅시다. 3. 사도 바울과 같이 증거의 영력과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신이 더욱 노력해야 할 것들을 생각해 봅시다. 4. 자신의 전도 계획과 전도를 위한 기도 제목을 나누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