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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사연2026.10.17 (토)

2026년 성령 말씀 182

선포일
2026.10.17 (토)
2026년 성령 말씀 182 성령의 말씀이다. 모두 안녕. 하나님 영광 행사 주간에 모두 수고 많다. 뛰고, 사연을 남겨 놔야 후에 자녀들, 후배들 혹은 섭리사에 늦게 오는 자들에게 증거하고 말해 줄 수 있지 않냐. 많이 행하고, 죽도록 충성하라 하지 않았냐. 자기 충성이 자기에게 간다. 믿음을 굳건하게 하고 지구가 돌듯, 태양이 비추듯 행하여라. 하나님, 성령님께, 또 선생에게도 속 보이지 말고, 이왕에 할 바에야 뜨거운 마음, 기쁜 마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행해라. 선생이 예수님과 같이 있을 때 "네 몸 쓰고 하는데 네가 버뜩버뜩 하지 않으면 심정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냐. 육신 없는 내 영혼의 서러움을 너는 아느냐." 하시며 "제발 알아라. 나 예수가 어련히 알아서 하지 않겠느냐. 손해 가는 일을 하겠느냐. 화 받는 일을 하겠느냐." 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선생은 예수님 말씀 듣고 그 후부터 버뜩버뜩 했다. 믿음의 조건, 행실의 조건을 세우며 했다. 그러니 빨리하게 되어 많이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보다 10배, 20배, 100배 더 산 것이 되었다. 성령이 말씀하시길, "너희도 나 성령과 선생이 말하면 요리조리 재 보지 말고, 의심도 말고, 믿고 버뜩버뜩 행하기다. 왜? 나는 영이고, 너희는 육이다. 나는 너희 중에 행하는 자 쓰고 한다. 누가 빨리 행하는지 보고, 그 사람 쓰고 행한다. 굳건한 믿음이다. 손해 가는 일 시키겠느냐. 선생도 하늘에 매여 행한다. 너희도 하늘에 매여 자기 마음과 육신이 서로 하나 되어 행하는 것이다." 하셨다. 하나님, 성령이 어느 때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을 행하신다. 손해 가는 일을 행하신다. 그때 '왜 그러시지?' 한다. 그러면 하나님, 성령은 "믿음이 없는 자여, 왜 나를 의심하느냐." 하신다. 세상이 악하여 좋은 길을 닦아 놨어도 그 길을 안 가고 험한 길을 가야 한다. 그래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인들이 선인들을 주관하는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관받으시겠느냐. 야곱도 모를 때는 최고 좋은 길 가는데도 ‘내가 악에게 쫓겨 가나? 분하다. 억울하다.’ 했다. 그러나 기도하고 깨닫고 보니 그것이 아닌 것을 알았다. 최고 이상적인 길을 가고 있었다. 성경의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의인들이 험하고 두렵고 무서운 길로 가며 하나님 뜻을 좇아 왔다. 그것이 선조들의 길이었고, 후손들도 그리 가게 된다. 하나님, 성령, 성자 모두 행하시는 길이다. 앞에는 불도저가 있고, 뒤에는 포클레인이 닦고 간다. 하나님이 능치 못함이 없이 행하신다. 선생이 베트남에서 있을 때 하나님이 "네가 살아간다. 걱정 마라." 하시었다. 그러나 계속 전투했다. 겪어야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항상 잘되게 해 주시고, 능력의 하나님이 시대 따르는 자들에게 최고로 행하신다. 늘 감격하고, 감사하고, 고마워하면서 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해 주시는 시대이니 기뻐하는 얼굴로 웃으며 항상 행하기다. 그래야 복이 따라 같이 행한다. 지금은 많은 말씀을 통해 '어떻게 하라.' 하나님이 늘 가르쳐 주신다. 설교만 듣지 말고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알아야 한다. 언젠가 "주식도 높은 산 올라가는 등산객 같아서 올라가면 내려온다."라고 말하지 않았냐? 말해도 왜 깨닫지 못하느냐. 툭 내려오지 않았냐. 역사가 그러하다. 바람 부니 어떤 자는 '추워 못 살겠다.' 하고, 어떤 자는 '시원하다.' 한다. 왜 그런가 보니, 체질적인 것과 옷 입은 것 따라 좌우된 것이다. 우리도 마음, 정신의 체질과 의의 옷, 믿음의 옷 따라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자기를 갖추면 환경을 지배하고 다스린다. 그렇지 않냐? 어서 해라. 섭리사 사람들 말씀 듣고 모두 지금은 월명동의 단단한 돌들이 되었다. 그래도 이제 온 자 잡아 주고, 약한 자 붙잡아 주고, 담대하게 행하라. 담대하지 않은 자 중 영웅 열사는 없다. 독립 운동가는 없다. 시대 민족, 종교 살린 자 없다. 다윗, 엘리야, 에스더, 선지자들, 예수님 제자들, 사도 바울, 루터 얼마나 담대했냐. 여호수아도 그러했다. 신앙 용사들 중 담대하지 않은 자 없었다. 하나님의 신이 임해서 그러했다. 말씀 듣고 깨달아서였다. 미리 어떻게 될 것을 알아서였다. 모두 배우고 알았으니 너희도 그렇게 하길 바란다. 성령의 말씀을 정말 귀하게 여기고, 읽고, 또 읽고, 또 읽어라. 베트남전 책과 <죽음에서 살려 주신 하나님> 책을 만화책 보듯 보지 말고, 읽고, 또 읽고, 또 읽어라. 그것 읽고 시대를 안 큰 자도 있다. 성경도 읽고 또 읽어 근본을 깨달아야 한다. 평강을 빈다.